신광수, <단산별곡(丹山別曲)>
단산별곡 원문:
1
丹山別曲 (단산별곡)
2
人生至樂 혀여 보니 山水밧긔 잇가
3
烟霞 痼疾이오 泉石 膏肓이라
4
淸福이 잇돗던지 聖恩이 至極샤
5
領運使 湖南 의 海山 風景 다 후에
6
碧水 丹山의 墨綏를 빌니시니
7
景槪도 죠커니와 水土도 淸涼다
8
瘴海烟波 드온 病을 이 아니 셔 볼가
9
少年 行樂時의 갓치 보아더니
10
五馬로 다시 오니 옛길이 依稀다
11
長淮村 도라드니 彩雲峰이 반기는 듯
12
구름 속 린 비 그 아니 神女런가
13
石谿 빗긴 곳의 肩輿를 가라 메니
14
巫峽 猿聲은 兩岸의 들니 듯
15
鳥道 三千은 劒閣을 지나 듯
16
松亭벌 너머드러 官府를 바라보니
17
羽化橋 무지개 銀河水를 쳤 듯
18
二樂樓 風樓亭은 神仙의 居處로다
19
三淸 福德地 이 곳이 아니런가
20
吏隱堂 은 나리나니 鳥雀이라
21
簿牒이 閑暇고 楓菊이 爛漫 제
22
仙遊洞 집흔 막대 下仙岩의 슈엿시니
23
層層히 노힌 盤石 座榻이 졀노 되고
24
구븨구븨 은 물은 슐잔을 웠셔라
25
空中의 러진 돌 뉘라셔 괴왓고
26
瑤池 蟠桃를 玉盤의 다만 듯
27
石鼎의 밥을 닉혀 둘너안져 먹은 후에
28
中仙岩 드러가니 水石이 擾亂다
29
雙龍瀑 소래 白日에 雷霆이라
30
絶壁 層臺 鬼斧로 가 노코
31
秋水 寒潭은 鏡面을 닷가시니
32
雲影 天光이 上下의 어릐엿다
33
靈源을 즈리라 上仙岩 올나가니
34
臥龍岩 누은 瀑布 鱗甲을 쳤 듯
35
擎天壁 노픈 돌은 뉘 손으로 밧쳤가
36
守一庵 더 새여셔 雲岩村 다르니
37
禹舍人 노던 바회 九疊雲屛 여러셔라
38
女媧氏 補天石을 괴이 가 괴앗가
39
阿彌陀佛 千年 工夫 百層塔을 무엇가
40
石面의 그린 바독 四皓를 거의 볼 듯
41
시내물 새이 두고 四仙臺도 絶勝다
42
외나무 다리 건너 水雲亭 올나가니
43
奇岩 古木의 曲欄이 瀟洒대
44
碧玉 갓튼 물결이 巴字形 둘너 잇셔
45
竹嶺山 달 후의 萬片金 뛰노 듯
46
濁酒를 半醉고 七絃琴 집헛시니
47
世間 榮辱이 太空의 浮雲이라
48
上津의 돗츨 다라 島潭의 沿洞니
49
六鰲背 三神山이 어느 여 왓던고
50
靑天 半落니 鷺州의 二山이오
51
中流 不頹니 東海의 砥柱로다
52
凌瀛臺 발근 달의 玉笛을 엿시니
53
猴山 笙鶴이 半空의 나리 듯
54
醉眼 잠간 드러 石門을 바라보니
55
놀납다 져 峰巒은 어이여 녓고
56
龍門山 린 도처 水門을 내엿가
57
巨靈의 큰 손바닥 山窓을 밀쳣가
58
萬古의 洞開여 다들 줄 몰낫도다
59
仙人畓 열두 바미 瑤草를 싱것던가
60
仙人은 어듸 가고 들엉만 나마시니
61
우리 百姓 勸耕여 壽城의 올니고져
62
滿江 風浪 지 곳의 隱舟岩 奇妙샤
63
一葉 漁艇 드러가면 處士蹤跡 긔 뉘 알니
64
八判洞 기픈 곳을 武陵이라 건마
65
人居 몃 난친지 白雲만 겻셔라
66
下津의 배를 나려 丹岩書院 瞻拜니
67
至今의 친 德化 山水間의 흘너 잇다
68
石柱灘 밧비 건너 降仙臺 올나셔니
69
兩腋 淸風이 飄然이 輕擧 듯
70
可憐샤 杜香魂은 무쳔니 여긔로다
71
勝地의 留名은 兒女子도 願이런가
72
夕陽의 順流여 龜潭으로 나려가니
73
蒼壁은 揷天고 錄水 滿地대
74
前後 峰巒이 面面이 마 나니
75
살살이 펴인 붓 疊疊이 도 屛風
76
諸佛이 拱立 듯 衆仙이 나니 듯
77
이리저리 뵈 거동 恍惚도 져이고
78
돌노 긴 져 거복은 名區를 직히가
79
五老峰 眞面目은 芙蓉이 소사 듯
80
壺天臺 올나안자 全體를 領略고
81
蒼霞亭 잔을 드러 風烟을 戲弄타가
82
忽然니 도라보니 이 몸이 登仙 듯
83
逸興(일흥)을 가득 시러 구븨 홀니 도니
84
마죠 오 玉筍峰이 다시 神奇다
85
天柱 突兀여 北極을 괴왓 듯
86
華表 特立여 白鶴이 넘노 듯
87
碧玉 琅玕이 낫낫치 버러시니
88
이 기 열매 열면 鳳凰이 먹으리라
89
丹邱洞門 삭인 글 先賢의 筆跡이라
90
仙府을 重히 녁여 境界를 정신가
91
靈區의 逍遙니 古今의 뉘시런고
92
九曲灘 노여 朱夫子를 思慕며
93
東山의 携妓니 謝安石의 風流런가
94
赤壁의 泛舟니 蘇子瞻의 樂이로다
95
봄 노름 가을 興과 雪景을 죠 고
96
梅軒의 놉피 누어 名勝을 손곱다가
97
閃遽이 을 드니 丹邱生을 의 만나
98
엇개를 긔 겨러 즐거이 노니다가
99
五更 셔리에 蝴蝶이 도라오니
100
滿窓 松月의 鶴唳聲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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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산별곡 현대어 번역:
인생의 즐거움을 헤아리니 산수 밖에 또 있는가.
산수를 사랑하매 못 고치는 병이로다.
좋은 복만 있었던지 성은이 지극하셔 영운사로 호남을 배를 타로 바다 풍경 다 본 후에 물 푸른 단양 땅의 수령이 되었으니 경치도 좋거니와 물과 흙도 깨끗하다.
습기 많고 안개 자욱한 바다에서 든 병을 여기에서 이 아니 씻어 볼까 어릴 적 즐길 때는 꿈처럼 보았더니, 다섯 말로 다시 오니 옛 길이 그대로이다.
장화촌 돌아드니 채운봉이 반기는 듯 구름 속에 뿌린 비는 그 아니 선녀런가.
돌 깔린 시냇가에 가마를 갈라 메니 무협의 원숭이 울음소리 양쪽 기슭에서 들려 오는 듯 새재의 아득한 길 검각을 지나는 듯 송정벌 너머 들어 관아를 바라보니 우화교 무지개는 은하수를 꿰었는 듯 이락루 풍루정은 신선의 거처로다.
삼청의 복덕의 땅 이곳이 아니런가.
이은당 맑은 뜰에 내리느니 참새로다.
관아가 한가하고 단풍 국화 난만하니 선유동서 짚던 막대 하선암에서 쉬었으니 층층이 놓인 바위 좌탑이 절로 되고 굽이굽이 맑은 물에 술잔을 띄웠어라.
공중에 쓰러진 돌 뉘라서 괴었는가.
요지의 복숭아를 옥쟁반에 담았는 듯.
돌솥에 밥을 익혀 둘러앉아 먹은 후에 중선암 들어가니 돌속 물소리 요란하다.
쌍룡폭포 뿜는 소리 대낮에 천둥이라.
절벽의 층층다리 귀부로 깎아 놓고 가을 물의 차가운 못 거울처럼 닦였으니 구름그림자 하늘빛이 위아래로 어리었다.
영원을 찾으리라. 상선암에 올라가니, 와룡암에 누운 폭포 갑옷의 미늘 떼어 흩어둔 듯 경천벽 높은 돌은 뉘 손으로 받쳤는가.
수일암 더 쉬다가 운암촌 다다르니
우사인 놀던 바위
아홉 겹으로 구름 병풍 열었어라.
여씨 하늘 괴던 오색 바위 괴상히도 깎아서 괴었는가.
아미타불 천년 동안 공부하던 백층탑을 묻었는가.
바위 위에 그린 바둑 사호를 거의 볼 듯 시냇물 사이 두고 사선대도 뛰어나다.
외나무 다리 건너 수운정에 올라가니 기암 고목 굽은 가지 난간처럼 맵시 있는데 벽옥같은 찬 물결이 파자형으로 둘러 있어 죽령산 달 뜬 후에
수많은 금 조각으로 달빛이 뛰노는 듯 탁주에 반쯤 취해 칠현금을 짚었으니 세상살이 영욕이 먼 하늘의 뜬구름이라.
상진에서 돛을 달아 도담에 배를 대니 여섯 거북 삼신산이 어느 해에 떠 왔는가.
푸른 하늘 반쯤이나 가라앉았으니 백로주의 두 산이라.
물 가운데 무너지지 않았으니 동해 바다 지주로다.
능영대 밝은 달에 옥피리 띄었으니, 후산에서 신선이 학을 타고 생황 불며 반공중에 내리는 듯.
취한 눈을 잠깐 들어 석문을 바라보니 놀랍구나, 저 봉우리 어이하여 뚫었는가.
용문산 때린 도끼 수문을 내었는가.
거령의 큰 손바닥 산 창문을 밀쳤는가.
오랜 옛날 활짝 열어 닫을 줄을 모르도다.
신선들이 농사짓던 열두 배미 땅에다가 요초를 심었던가.
신선들은 어디 가고 드렁만 남았으니 우리 백성 농사짓기 권하여서 모두를 장수하게 만들고자.
강 가득히 바람 물결 치는 곳에 은주암이 기묘하네.
한 잎 작은 고깃배로 들어가면 처사 종적 그 뉘 알리.
팔판동 깊은 곳이 무릉이라 하건마는 사람들 사는 곳이 어디인지 흰 구름만 잠겼어라.
하진에서 배를 내려 단암서원 참배하니 지금까지 끼친 덕이 산수 간에 흘러 있다.
석주탄 바삐 건너 강선대에 올라서니 양쪽 겨드랑이 맑은 바람에 가볍게 들리는 듯.
가련하다, 두향의 혼 묻혔으니 여기로다.
명승지에 이름 남김은 아녀자의 소원인가.
석양에 흘러가며 귀담으로 내려가니 푸른 절벽 하늘을 찌르고 푸른 물은 땅으로 가득하니 앞뒤의 봉우리들 여러 면이 마주 뵈니 살살이 펴진 부채 첩첩이 펼친 병풍 여러 부처 함께 선 듯 여러 산이 이어진 듯.
이리저리 뵈는 모습 황홀도 하였구나.
돌로 새긴 저 거북은 명승지를 지키는가.
오로봉 진면목을 예 보는가.
연꽃이 솟았는 듯.
호천대 올라 앉자 전체를 얼추 보고 창하정 잔을 들어 흐릿한 기운 희롱하다 홀연이 돌아보니 이 몸이 신선된 듯.
편안한 흥 가득 실어 한 구비 흘러 도니 마주 오는 옥순봉이 또다시 신기하다.
하늘 기둥 우뚝 솟아 북극을 괴었는 듯.
화표는 우뚝 서서 백학이 날아든 듯.
벽옥 낭간 열매인 듯 낱낱이 벌렸으니 이 기 열매 열면 봉황이 먹으리라.
단구 동문 새긴 글자 선현의 필적이라.
신선 땅을 중히 여겨 경계를 정하셨나.
신비한 땅 거니는 이 고금에 뉘시런가.
구곡을 노래하니 주부자를 사모하며 동산에서 기생의 손 잡으니 사안석의 풍류런가.
적벽에 배 띄우니 소자첨의 낙이로다.
봄 놀이 가을 흥과 설경을 쫓아다니다 관아에서 높이 누워 명승지를 손꼽다가 잠시나마 참을 드니 공자를 꿈에 만나 어깨를 함께 걸어 즐겁게 노닐다가 새벽의 찬 서리에 나비가 돌아오니 창 가득 솔 사이로 뜬 달빛 안고 학의 울음 소리 뿐이러라.
# perspectives
시 분석 및 정보
시인 프로필
신광수(申光洙, 1712-1775)는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관료로, 서울 출신이다3. 그는 향리 한산에서 살다가 늦은 나이에 벼슬길에 올랐으며, 주로 외직에서 활동했다4. 신광수는 과문(科文)에 뛰어났고, 하층민의 고난 등 당시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노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4.
창작 과정
<단산별곡>은 신광수가 영월부사로 재직 중이던 1773년 또는 1774년 가을에 단양팔경을 유람하고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8. 작품은 총 99행의 기행가사로, 3대단 15소단으로 구성되어 있다8.
시 관련 정보
<단산별곡>은 단양팔경을 중심으로 단양 산수의 절경과 풍치를 노래한 기행가사이다6. 작품은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장회나루에서 하선한 후, 단양의 여러 명소를 거쳐 관부에 도착하는 과정과 단양팔경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다6.
역사적, 문화적 배경
시의 역사적 배경
18세기 조선 후기는 실학사상이 발달하고 문화적으로 풍요로워진 시기였다. 이 시기에 많은 문인들이 산수유람을 즐겼고, 이를 바탕으로 기행문학이 발달했다1.
당시 한국인의 관점
조선 후기 문인들에게 산수유람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학문과 수양의 기회였다. 그들은 명승지를 돌아보며 역사와 문화를 되새기고,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심신을 수양했다16.
현대 한국인의 관점
현대 한국인들에게 <단산별곡>은 단양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문학작품이자, 조선 시대 문인들의 정서와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8.
현대 미국인의 관점
미국인들에게 <단산별곡>은 한국의 전통 문학과 자연관을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일 것이다. 특히 시인의 섬세한 자연 묘사와 철학적 사고는 동양 문학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영향력 분석
삶에 미치는 영향
<단산별곡>은 독자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작품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줄 수 있다.
통찰
이 시를 통해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 그리고 역사와 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시인의 풍류와 여유로운 삶의 태도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균형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현실 세계 반영
<단산별곡>은 18세기 조선의 문화와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관료들의 여행문화, 자연에 대한 인식, 그리고 유교적 가치관 등을 엿볼 수 있다16.
영향력의 범위
이 작품은 한국 고전문학 연구와 교육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단양 지역의 문화관광 자원으로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현대 시인들에게도 영감을 주는 작품이다8.
자주 묻는 질문
추가 정보
- 핵심 용어 및 어려운 용어 설명:
- 단산(丹山): 단양의 옛 이름으로, '붉은 산'이라는 뜻을 가짐
- 별곡(別曲): 조선시대의 가사 문학 양식 중 하나로, 특정 지역의 풍경이나 정서를 노래한 작품
- 영운사(領運使): 조선시대 지방 관직 중 하나
- 호남(湖南): 전라도 지역을 일컫는 말
- 해산(海山): 바다와 산을 아우르는 말로, 여기서는 넓은 자연 경관을 의미
- 묵수(墨綏): 관리의 인장을 매다는 검은 끈, 여기서는 관직을 상징
- 시 제목의 의미 및 설명:
- '단산별곡(丹山別曲)'은 '단양의 노래'라는 뜻으로, 단양의 아름다운 경치와 정서를 담은 가사 작품을 의미함
- '단산(丹山)'은 단양의 옛 이름으로, 붉은 빛을 띠는 산이 많아 붙여진 이름임
- '별곡(別曲)'은 특정 지역의 풍경이나 정서를 노래한 가사 문학의 한 양식을 지칭함
시에 나온 지역들의 역사적인 사건들
- 단양:
- 신라 시대부터 중요한 군사 요충지로 여겨짐
- 고려 시대에는 '단주'로 불리며 지방 행정 중심지 역할
- 조선 시대에는 '단양군'으로 승격되어 중요한 행정 구역으로 자리잡음
- 1973년 충주댐 건설로 인해 일부 지역이 수몰되어 새로운 도시 계획 수립
- 죽령(竹嶺):
- 삼국시대부터 영남과 기호 지방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됨
- 조선 시대에는 영남 대로의 일부로 활용되어 상업과 문화 교류의 중심지 역할
- 청풍(淸風):
- 고려 시대부터 '청풍현'으로 불리며 지방 행정 단위로 존재
- 1973년 충주댐 건설로 인해 대부분의 지역이 수몰되어 현재는 제천시에 편입됨
죽령추가 정보
죽령은 삼국시대부터 영남과 기호 지방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되었습니다.
역사적 중요성
죽령은 소백산맥에 위치한 해발 689m의 고개로, 경상북도 영주시와 충청북도 단양군의 경계에 있습니다8. 이 고개는 영남지방과 경기 및 호서지방을 연결하는 3대 관문 중 하나로 꼽힙니다13.
개척 시기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아달라왕 5년(158년)에 죽령 길이 처음 개척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0. 이는 죽령이 적어도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군사적 요충지
삼국시대에 죽령은 고구려와 신라 사이의 국경 지역으로, 오랜 기간 양국의 분쟁 지역이자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10.
교통의 대동맥
죽령은 약 2천년에 걸쳐 우리나라 동남지역 교통의 대동맥 역할을 했습니다8. 특히 조선시대부터 1910년대까지 경상도 동북지방 사람들이 서울을 왕래하기 위해 이 고갯길을 이용했습니다9.
문화 교류의 장
죽령은 다양한 문화가 전달되는 접경지이자 요충지였습니다11.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 장사꾼, 관리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이 길을 통해 오갔습니다9.
현대적 변화
20세기 초반까지도 중요한 교통로였던 죽령은 철도와 고속도로의 발달로 그 중요성이 감소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1014.
# link:
2025.04.03 - [문학 (Literature)] - List) 기행가사 목록: 시대의 반영과 감정의 표현
List) 기행가사 목록: 시대의 반영과 감정의 표현
기행가사 목록 일부 :백광홍, , 1556년정철, , 1580년조우인, , 1617년경조우인, , 1623년경송주석, , 1675년작자미상, , 1694년박권, , 1695년노명선, , 1698년경권섭, , 1704년위세직, , 1707년 이전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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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f.:
http://www.davincimap.co.kr/davBase/Source/davSource.jsp?job=Body&SourID=SOUR002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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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학 (Literature) > 한국 시 (Korean Poet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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