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겸,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일동장유가 원본:
## 1권
1
일동쟝유가 졔일 김인겸 소
2
- 1a~2b에는 '계미통신 좌목'이 있으나 직책과 인명의 나열이므로 생략함. 세종말뭉치에도 입력하지 않음. -
3
평의 소활야 공명의 이 업
4
진 쳥명 족거니 과여 무엇리
5
장듕 졔구 다 업시고 유산 장 여 여
6
팔도로 두루 노라 명산대쳔 다 본 후에
7
풍월을 희롱고 금호의 누엇더니
8
븍창의 잠을 야 셰샹 긔별 드러 니
9
관이 쥭다 고 통신 쳥다
10
삼신 극고 문 아니
11
남추월 시온이 졔슐관 망졍고
12
원 셩집은 샹부방 셔긔로다
13
늙고 병든 이 일홈 니교리 과히 듯고
14
탑젼의 계쳥야 벽셔로 촉니
15
예붓터 이 소임이 문장듕 극션이라
16
조건의 칠보시와 온졍균의 필하
17
겸야 두엇셔야 비로소 담당
18
조 각니 실노 외람다
19
하물며 만리 길을 쇠골이 엇디 가리
20
졍의 졀박고 왕가 지듕니
21
인신이 되여 잇셔 니험을 갈흴소냐
22
가묘의 하직고 쳐 도라보니
23
니별이라 경이 참담다
24
댱부의 철셕댱도 강잉키 어렵거든
25
연약 아녀야 어이 아니 그러리
26
음을 굿게 먹고 치고 문을 나니
27
린의 친척들이 다 모다 니별다
28
필마 기리 모라 령 너머 쳔안 고
29
동작이 건너 도라 대동 드러오니
30
누의와 식이 반기고 근심
31
나 만코 조 업셔 이 소임이 어려워라
32
댱셔로 면고 여러번 면쳥되
33
진졍의 이 음 둉시히 못 일우니
34
이제 할 일 업셔 가기로 완졍니
35
은 팔십오 냥 필 포목 십석 미와
36
슈화쥬 도포와 흑셔 목홰
37
호조로셔 여 쥬고 치을 촉니
38
일신의 샹하 의복 졀노 마련야
39
극진 명쥬 비단 션젼의 잡아다가
40
화려키로 위쥬야 갓가지로 지어니
41
나라의셔 쥬신 거시 반 남아 모라니
42
예 빗고 져긔 어더 간신이 혀 여
43
길 날 밧고 바다 가기 임시야
44
의외의 삼신이 일시의 파딕고
45
로이 곳처 나니 누고 누고 단 말고
46
됴졔곡 니회계로 샹부 낙졈고
47
혐암 김교리로 종관 이시니
48
일의 쥰망이오 진신간 극션이라
49
지쳐도 죠커니와 덕이 겸젼다
50
이 달나지니 거취가 냥난터니
51
뎨비장 반인 외예 나토 갈지 말고
52
문무역 삼반인을 다 몰슈 인존샤
53
급급히 발라 뎐교가 나리시니
54
투 고처 고 로이 치장 제
55
졍원령 급히 와셔 입시라 혼동
56
장복을 급히 여 궐하의 드러가니
57
일 졔인들이 다 쥬어 모닷고야
58
삼신 몬져 들고 졔슐관 됴초든 후
59
셔긔 브거 집은 근친가고
60
원봉만 남앗기의 다만 둘이 입시
61
급급히 츄창야 탑뎐의 부복니
62
나라히 우시고 은언으로 무시되
63
네 셩명 무어시며 어서 고 뉘 손으로
64
연세 멧멧치며 뎐함은 무어신다
65
소신이 황공야 긔복야 엿오
66
진 신 김인겸은 문졍공 현손으로
67
쉰일곱 먹어고 공쥐셔 나이다
68
어져 네 그러면 댱동 신 멧 촌인다
69
고 샹신 츙헌공의 오촌 딜이 되이다
70
텬어가 슌슌샤 곳처 하교오시되
71
명됴의 손로셔 문임의 히여셔
72
나라일노 가게 되니 귀고 긔특다
73
조 시험랴 너희 불너시니
74
왜놈과 슈 측각의 제진되
75
글졔 셔 여 졔슐관을 주어시니
76
슈이 나가 어셔 지어 다시 입시라
77
곡고 물너셔니 쥬셔 분부샤
78
초지 쥬시거 비문 라셔
79
글졔 보니 츄션시 칠뉼이라
80
시온은 몬져 나와 반 남아 지엇기의
81
몬져 입시고 나와 원 봉
82
옥당 셔리의게 필목을 겨요 어더
83
풍우처로 지어 여 번갓치 급히 제
84
이 무 귀경이라 궐의 하인들이
85
다 쥬어 모다와셔 위립여 보고나
86
보를 밧비 랴 광달문 드리다라
87
시초 드리오니 입시 유 승지가 (‘우’로 쓴 것을 우측 행간에 ‘유’로 교정함. 펜글씨로도 보이므로 원본 확인할 필요가 있음. 이하 동일함.)
88
글을 몬져 바다 소 놉혀 엿오
89
귀 읽고 두 귀 읽고 셰 귀 네 귀 다 닑그니
90
용안이 열샤 격졀탄샹 오샤
91
둘 귀 셋 귀 제 잘 삭엿고
92
제 말노 여시니 말 귀 더욱 됴타
93
남옥 원듕긔 라 리로다
94
너희 조 보아니 극일시지 션인이라
95
이국의 보여도 근심이 업다스니
96
만니창명 험 길의 병 업시 단여오되
97
긔교물을 탐치 말고 화국고 도라오라
98
슈명고 승셕여 도라오니
99
이튼날 유 승지가 날보고 니 말이 (‘뉴’로 쓴 것을 우측 행간에 ‘유’로 교정함.)
100
그네 나온 후에 세 글을 곳처 올녀
101
글 혀 내여 셔안의 노흐시고
102
서너 번 풍영고 셰 귀 비졈 오시니
103
뇽샹이 마이 놉하 아모 귄 쥴 모네라
104
이 말 듯오니 황감기 그지업다
105
초야의 미신으로 외람이 등제야
106
어려온 응졔시 일 처음 짓게 되니
107
겁도 나고 급거야 바히 잘못 지은 글을
108
쳔도 입오니 붓그럽고 영다
109
한강 제문 지야 졍셩으로 제 후에 (‘을’로 쓴 것을 우측 행간에 ‘을’의 받침 위에 줄을 긋고 ‘로’로 교정함.)
110
츌날 곳처 바다 일이 니발
111
이 어 고 계미 팔월 초삼이라
112
븍궐의 하딕고 남문 다라셔
113
관왕묘 얼풋 지나 젼셔 다다르니
114
을 젼별랴 만조공경 다 모닷
115
곳곳이 장막이오 집집이 안마로다
116
좌우젼후 뫼와들어 인산인 되여시니
117
졍 잇 친구들은 옷 잡고 우탄고
118
쳘모 소년들은 블워기 측냥업
119
셕양이 거의 되니 치 고별고
120
샹마포 세 번 노코 례로 나갈
121
졀월과 젼군관 국셔 인도고
122
비단 일산 슌시영긔 신을 뫼와 섯다
123
역시 뒤 라 역마 칩타니
124
가치옷 지로나장 깃 고 압 셔고
125
말 셔 부측고 견마 잡아고나
126
셰라놈의 된소로 권마셩은 무 일고
127
아모리 말나여도 젼례라고 부 나
128
슈의 늙은 션 졸연이 별셩 노릇
129
우슙고 긔괴니 남 뵈기 슈괴다
130
나 말을 모라 부오츼 넘어셔니
131
션척도 그지업고 안마도 장시고
132
긔치 폐일고 고각은 훤쳔야
133
한강을 얼풋 건너 이 릉을 지나오며
134
임진년을 각니 분 눈물 졀노 난다
135
삼십니 냥역을 어듭게야 드러가니 (‘대’로 쓴 것을 지우고 우측 행간에 ‘'로 교정함)
136
각읍이 령야 지공을 고나
137
각샹 통인 방 모 일시의 현신다
138
포진도 화려고 음식도 장시고
139
넉 일흔 관속들은 겁야 젼뉼니
140
말마다 잘못고 일마다 셩야
141
여긔 막고 져긔 마 소경이 불샹다
142
예 고 나 널리 듕화고
143
용인읍 드러가니 낫이 겨요 계워세라
144
접 긔구 범 도처의 일반일다
145
의 드러가셔 삼신긔 잠간 뵈고
146
햐처의 도라와셔 셕식 후 편히 쉬여
147
양지 듕화 쥭산 고 도관 말마 슝션 오니 (‘안’으로 쓴 것을 우측 행간에 ‘양’으로 교정함. ‘슈’로 쓴 것을 우측 행간에 ‘쥭’으로 교정함.)
148
열읍 지공들이 젼처로 나아온다
149
경긔 역마 러치고 연원 인마 체야 (‘라’로 쓴 것을 우측 행간에 ‘’로 교정함.)
150
미명의 몬져 나셔 달 디나올
151
신원슈 김 장군의 진터 라보고 (‘시’로 쓴 것 아래에 ‘ᄂ’을 부기하여 교정함.)
152
뉼시 한 슈 지어여 츙혼을 위로 후
153
츙쥐로 드러가니 청풍 지 나왓다
154
종이와 신익이 먼니 와 기리
155
졍담을 못다 야 샹방의셔 브거
156
비 맛고 드러오니 셰문 모다 왓다
157
이칠졀 일칠뉼을 샹이 내여노코
158
운라 권거 요초여 고
159
음셩 현감 장종시가 지참라 왓 잇거
160
이튼날 잠간 보고 우장 닙고 니발야
161
단월역 가셔 충녈의 첨고
162
역놈을 촉야 무리 지나와셔
163
안부역 잘 참 드니 비도 오고 져무럿다
164
날 며 몬져 나셔 남여로 조령 올나
165
쥬흘관 드리다라 영남 말 가라타니
166
우셰도 장시고 의복 안마 다 젓다
167
석노 참암고 황도 창일대
168
교구졍 올나안 좌우 둘너보니
169
만목은 참쳔고 쳔봉이 뭇거시니
170
일부당관 만부막이 검각을 블워랴
171
슬푸다 슌변가 지략도 잇건마
172
여긔 못 딕희여 도이 넘게 고
173
이 막비 하이라 쳔고의 한이로다
174
뇽츄 구버보니 우후의 셩 폭포
175
벽녁이 진동고 셜이 셰라
176
귀 눈이 먹먹고 심신이 늠뉼다
177
글 하나 지어 고 남여의 곳처 올나
178
동화원 잠간 올나 문경으로 도라 드러 (‘회’에 가획하여 ‘화’로 교정함. ‘을’을 지우고 우측 행간에 ‘으로’로 교정함.>)
179
햐처의 말 나리니 샹쥐 관속 현신다
180
본관은 지친이라 잠간 보고 도로 나와 (‘븍’을 쓴 것을 우측행간에 ‘본’으로 교정함>)
181
석반후 취침고 이튼날 니러나니
182
밤도록 우 와셔 평뉵이 셩강이라
183
마포원 계요 건너 댱의 올나보니
184
계슈가 창일고 월쳔군 바히 적다
185
삼 함긔 오니 소숄도 장시고
186
닷토아 건너랴고 현박이 낭다
187
나고 뉴영장이 남여의 겨요 건너
188
원 쥬막 졈심고 후영이 밧비 오니
189
유명 여흘이 바다히 되엿고나
190
급고 깁고 머니 제 엇디 건너가랴
191
각방 복들이 언덕의 메여고나
192
다이 내 복마 무이 몬져 갓
193
역졸 나장 호령야 실 남여 어더 타고
194
군 겁을 야 븟들고 말니고
195
슈십명 건장 놈 좌우로 부축야
196
시험여 건너오니 위도 위샤
197
훙훙 셩 물결 엇개 우희 넘고나
198
져편의 나려안 지나온 도라보니
199
망녕되고 오활니 후회가 그지업다
200
오십니 유곡역의 날이 서 어두엇다
201
지공관 션산부 졉도 거록샤
202
경샹도 넘으면셔 젼처로 댱더니
203
담과 조석샹이 일로의 제일일다
204
이튼날 비 거 영슌쳔 지나와셔
205
용궁 읍 낫참 드니 비안 현감 지공와셔
206
슈월누의 안다가 날보고 반겨
207
종샹의 병방 군관 듕의 아귀로셔
208
셔울서 나면셔 져녁 참의의
209
슈 호장 호령야 고은 차모 츄심며
210
오히려 낫비 역여 게 와 간쳥되
211
예쳔은 향이라 날 위여 몬져 가셔
212
일등미인 바내야 두엇다가 날을 쥬오
213
드 즛시 뮈워 번을 속여 보
214
헛답 쾌히 고 졍녕이 샹약야
215
동졍 지나와셔 예천읍 드리라
216
뭇 기 블너 세고 기듕의 말 기
217
늙고 얽고 박박을 갈희고 갈희여셔
218
니방의게 분부고 병방 모 졍 후의
219
의막의 안져드니 젼로 몬져 와셔
220
방의 잠간 뵈고 내게로 급히 와셔
221
우스며 이 말이 쳥 말 엇디 된고
222
거동이 졀도되 우슴을 겨요 참고
223
은근이 답되 동의 그만 청을
224
내 어이 허루리 듕의 제일을
225
갓가스로 뒤져 내여 그 모 졍엿
226
햐처로 어셔 가셔 블너 보면 아니 알가
227
셔시 옥진 졀대도 이에셔 뭇 나으리
228
오날 밤 합친고 내 덕으로 아오소셔
229
드 웃 입이 함박귀만 고나
230
창황이 도라셔셔 젼도이 나가거
231
양 보랴 고 나도 함긔 라가니
232
안방의 겨요 들며 령 블너 분부되
233
가 고을 슈쳥 모 어이 아니 현신니
234
급히 와 목마르니 냉콤 가져오라
235
이윽고 현신니 져 모 뫼양 보소
236
갓흔 저 머리 실노 하 마조 고
237
눈 인 오흰 눈을 부싀여 겨요 고
238
옷조롱 갓흔 낫치 멍셕처로 얽어고나
239
무명 반물 뒤롱다리 귀지 담복 고
240
헌 져구리 자 치마 현슌결 여셰라
241
동구안 삼월이 예 비면 일이라
242
보오 손의 들고 의 와 조츰 제
243
밋살이 터저던지 방귀 조곰 거고나 (‘넌’을 썼다가 지우고 ‘던’으로 교정함.)
244
져 병방 거동 보소 삼듕석의 지혀 안
245
두 눈이 러지게 죄오고 안져다가
246
호풍이 소삭야 무릅 도라안
247
낙심천만 거동 뇽긔예 비 마다
248
일좌가 박소고 면으로 조롱니
249
슈괴 선우슴을 날만 보고 짓다
250
져녁밥 잠간 먹고 방의 잠간 단여
251
홍나쥐 잠간 보고 도라와 자고 니러
252
피골 역골 두 산소의 얼픗 드러 소분고
253
쇠오뫼 동둉드리 다 모 기리
254
팔조 지으신 집 삼졍이 남아 잇고
255
쳥음 선조 겨시던 집 동셩 겨 드러고나
256
즉시 니러 말을 타고 풍산참 밧비 가셔
257
봉화 고을 차담 졈심 촉여 먹고
258
오례 산소 잠간 건너 부듕으로 드러가니
259
안동은 대도회오 우리 집 션향이라
260
인민도 부셩고 성지도 웅장다
261
동셩의 아젼드리 갓금 와 고 가니
262
본시 동근이라 인졍이 귀도다
263
통신 여긔 오면 예븟터 연향터니
264
올 시졀 흉황키로 특별이 폐감나 (글씨상으로는 ‘페’로 보임.)
265
졀녜로 하로 묵어 풍악으로 소일
266
묘의 현알고 본쥐관의 드러가셔
267
글 슈 운고 밤들야 나오도다
268
효월의 길을 나 영호루 귀경고
269
나로 잠간 건너 일 와 말마야
270
의셩 가 슉소고 십니 의흥 가셔
271
동헌으로 바로 가니 구졍이라 반겨
272
장긔판 내여노코 삼국을 마츤 후의
273
이 온다커 로 나오니라
274
니보령 문이가 졍묘년 일본 갈 제
275
여긔 기 슈쳥야 하나히 잇다 고
276
나려올 제 간쳥되 속신여 달라커
277
드 측은여 말 나리며 무러보니
278
시년이 십오셰오 비장 모 뎡다
279
욕 볼가 불샹야 내 모 샹환야
280
급급히 불너다가 차담샹 여 쥬고
281
문의 말 다 젼니 우 거동 참혹다
282
원려 이 말고 혀 쥬라 간쳥니
283
대비 쥬면 면역지 그져 못 다
284
제 어미 일낭이 병비로 못 오기의
285
동로 오라 고 신영으로 로 오니
286
지례 현감 송이 지라 왓다커
287
로 그리 가니 반겨도 반겨샤
288
아 져녁 지응범 다 내게 맛기면셔
289
김진 이리 온 후 내 무 근심리
290
만이 드나 적게 드나 일만 아니 나게 소
291
그러면 지례 현감 소임과 샹환면
292
일 나나 아니 나나 담당 여 봄
293
져도 웃고 나도 웃고 셔
294
예천셔 기 일노 동을 소겨시니
295
미인 나 아야 깃김 곳처 여 보
296
열다 관비 듕의 난을 블너 여
297
햐처로 다려다가 가마니 여려 두고
298
병방 군관 왓다커 젼갈여 니 말이
299
거번의 속인 일은 잘못하엿기의
300
일등 기 나 어더 감초아 두엇시니
301
졍이 엇더고 와셔 보고 다려가소
302
그 말 듯고 희야 다라왓 보커
303
병풍을 여러 노코 불너 여 뵈고 쥬니
304
흔흔 쾌락야 잇고 가고나
305
잇틀날 만나보고 흥미 무러 보니
306
날 속인 분 음 이제 이저시니
307
이후 압 참의 가 양 어더 달나
308
청신의 말마야 영쳔으로 바로 가니
309
읍디도 웅장고 안셰도 광활다
310
여긔 도회라 젼례로 연향
311
감도 친히 오고 열읍이 만히 왓내
312
됴양각 놉흔 집의 포석을 장히 고
313
슌와 삼신이 다 쥬어 올나안
314
그 버거 문 레로 좌졍고
315
풍뉴 치오면셔 잔샹을 드리오니
316
찬품도 거룩고 긔구도 도샤
317
군관과 원역들은 이 연셕의 못 든다고
318
연샹을 각각 밧고 좌의 안고나
319
눈 압 너른 들 혁통처로 길을 닥가
320
볼 품 조흔 말게 마샹 시험니
321
그 듕의 박셩적이 좌우 칠보 날게 고
322
송장거리 등니장신 일등으로 고나
323
방의 관망리 냥식 고 두루 모다
324
좌우의 미만니 멧 만인 쥴 모괘라
325
창영의 관속들이 왓다가 날을 보고
326
반겨고 노 샹 그려 두고 보고지고
327
경쥬 부윤 숑나 찰방 낫낫치 반갑고야
328
뉵십니 묘장원의 연일 지대 나왓고나
329
김각간 뫼흘 지나 동경으로 말을 노하
330
동헌으로 바로 가니 윤유 감참봉이
331
방의 와 잇다가 인가 의심
332
경쥬 고국이라 신나 풍속 그져 잇다
333
쳠셩 봉화 의구히 남아 잇고
334
반월셩 포석졍은 거츤 만 여셰라
335
오릉의 우 망국을 네 아다
336
초혼의 방의가 세 곳즈로 문후고
337
하처로 나올 적의 홍셩노 라와셔
338
모 어린 아기 보고셔 곱다 고
339
달나 고 간쳥커 뮈우 허락니
340
드립더 손목 쥐고 가 양 긔괴다
341
리의 그져 누어 다리 치라 니르고셔
342
투미 곤 잠을 도록 혼침야
343
쟝야 허송고 도라보니 간 업
344
아이의 져러면 무엇랴 다려간고
345
동들이 이 말 듯고 용열다 웃고야
346
윤 김 냥인 샹별고 구이 낫참 달여오니
347
쳥하 현감 지참라 와 잇다가 날 와 보
348
희 나려올 제 두호라 던지라
349
니 병방 불너다가 각별이 존문고
350
낭이 쥬 두 기은 셩희예 소면이라
351
차담샹 여 쥬고 옛말 니 반겨
352
져 말 가라타고 좌병영 지나가셔
353
울산부로 로 드니 쥬슈도 반겨고
354
니의슉 와 잇다가 젼도이 나와 보
355
느즉이 발야 오십니 용강 고
356
일은 습유졍의 일이 슈험
357
일 몬져 못 나셔 종샹 뒤 라
358
슈험소의 밋쳐 오니 진가 창쳔고
359
삼 의농 짐이 뫼 갓치 혀고나
360
일이 느져시니 이루 어이 다 볼소니
361
삭을 만히 어더 열십로 봉야
362
셰셰히 슈험로 다 여 쥬고나
363
이윽고 쟝부방이 례로 드러오
364
동로 향리라 오리뎡의 다라셔
365
삼방 소속들이 관복을 다 갓초고
366
너른 벌 긴긴 길 각각 뒤흘 라시니
367
유의 유복으로 나 참예 브졀업셔
368
반비 셔야 뒤희 오며 굿슬 보니
369
어즈러온 소 고각 산악을 진동고
370
무슈 부월졍긔 쳔일을 가리왓다
371
연락 복 바리 뉵십니의 다하시니
372
거동 제고 비 젼혀 업다
373
굿 보 남녀노소 십만을 혜리로다
374
쥬조문 다라셔 삼혈방포 노흔 후의
375
식파루 드리다라 벽쳥의 좌긔고 (‘심’을 지우고 ‘식’으로 교정함)
376
열다 비장들과 열일곱 원역이며
377
허다 듕하관이 례로 참알 후
378
동부 청알고 각진 변장 군례다
379
동들 잠간 보고 의 와 셕식고
380
초 물니고 잠을 니 날 쥴 모노라
381
이튼날 묵게 되니 신 심심야
382
관덕당 나제 올나 댱교 시 식이시고
383
기 공인 밤의 모하 제창 졔가 고나
384
노병 이 음 풍뉴의 이 업셔
385
삼중뇨 보고 일이 누어셰라
386
오날도 장복 업셔 을 못 니
387
가 연 취품고 홀노 몬져 나아와셔
388
졍원누의 올나보니 부방비장 햐쳐로다
389
조망을 잠간 보고 한훤을 파고셔
390
동문 나 십니 가셔 츙녈 가니
391
숑쳔곡 뎡장군의 비문일셰
392
츙녈을 감격야 공경야 고
393
우리 길 각니 괴루 금소냐
394
슈복이 블너 야 심원뉴 보니
395
농악션 갑년의 어로 고
396
우리 왕고 긔츈의 연일슈로 와 겨시다
397
필젹이 완연니 감창도 셔이고
398
적 피람고 남문으로 도라드러
399
독목교 건너 도라 부산으로 려가니
400
오리졍 군막 속의 네 관원 긔 누곤고
401
김 창원 칠젼 원이 쥬진쳠 잇다
402
말 나려 입담고 본진으로 드러가셔
403
방의 두어 을 번처로 얼풋 보고
404
햐처로 가니 남문 박긔 이슈다
405
창원 관쇽 다령야 지응 범 거니
406
삼듕셕도 화려고 병풍 안셕 휘황다
407
통인 모 현신고 낫 담 드리고
408
황산 말 가라 타고 영가 올나가니
409
동남의 요튱이오 산의 인후로다
410
셩지도 극탕이오 여염도 장시고
411
왜관과 졀영도 팔댱처로 환포고
412
그 밧근 무변양 하의 다하 잇고
413
그 안은 호슈처로 안은고 광활다
414
슬푸다 임진년의 이곳치 됴흔 지리
415
츙무공 니장군이 직희여 방비면
416
왜병이 강타들 제 어이 등뉵리
417
삼경이 함몰고 승예가 파쳔샤
418
거의 망케 되엿다가 황은이 망극샤
419
천명이 나온 후의 계유 회복여시나 (‘명’의 초성에 가획한 흔적이 있음. ‘병’으로 교정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
420
간신이 오국야 강화 무일고
421
븟그럽고 분 길을 열번 고나
422
한 하 못 닐 원슈 아조 잇고 가게 되니
423
댱부의 노 터럭 관을 딜너 이러선다
424
석양이 거의 되니 이 나려오
425
빈일헌의 드러가셔 삼신긔 참알고
426
관덕당의 나려와서 종샹긔 뵈오니
427
응구첩야 글 나 지어면
428
창원 기 운졍이 샹을 쥼 어셔 짓소
429
나 만코 둘 션 괴로이 양니
430
나 아니로 잠말 말고 어셔 짓소
431
문방우 여노코 셩화처로 촉니
432
종시히 아니면 조흔 이 몰
433
묵 가라 조희 펴고 붓 번 두루치
434
니 쳥평 경의 차운커라
435
네 기 여노코 비장으로 제비 아
436
나식 샹을 쥬니 잇글고 가고야
437
일장을 박소고 햐처로 도라오니
438
운졍이 몬져 와셔 슈청로 안져고나
439
의복도 치례고 교도 그지업
440
평의 졍 이 져 보고 변소냐
441
리 펴고 초 물니며 나가라 촉니 (‘’로 썼다가 지우고 ‘며’로 주서함)
442
무류고 슈괴야 몸 둘 히 업서
443
방의셔 통인 와셔 가마니 엿보다가
444
가 거동 보고 가셔 낫낫치 엿오니
445
이튼날 종샹이 날 보고 우스시
446
옹졸은 거니와 어렵다도 리로다
447
쉰 다 동들이 각 도라오니
448
일쳔니 멀고 먼 길 스무날의 오거고나
449
영이남 칠십이쥐 례로 지공니
450
읍은 나흘이요 듕읍은 사흘이요
451
지 고을들은 이틀식 다
452
니 사이요 쳔산 음식일다
453
쥭조반 먹은 후의 영가 고쳐 가니
454
삼방의 병방들이 격군을 졈고
455
도회 여 례로 여시니
456
통영과 좌슈영셔 가 왓다 고나
457
크기도 그지없고 놉기도 장시고
458
열두발 돗 젼후로 셰워 잇고
459
열셰간 널 노 방 좌우로 그럿다
460
그 아 집을 짓고 그 우흔 누히로다 (‘후’로 썼다가 지우고 ‘그 우’로 주서함.)
461
여 지은 물역 십만 냥이 드럿다
462
두어 날 몸을 쉬여 장의 올나갈
463
노숑과 속으로 굴곡여 길이 낫
464
웃층 올나가니 지셰도 죠흘시고
465
평연 잔듸밧치 말을 타고 달념다
466
어쥬와 샹고션은 변의 왕고
467
운포 두목 눈알 버러 잇다
468
뉴영장 잇 가 병 뭇고 도라오니
469
영산의 아젼 기 기린지 오고나
470
창원 지공 맛고 가니 칠원이 다
471
합쳔군슈 심듕은 부방 지공 라 와셔
472
어제밤 전갈 밤드러 못 가 보고
473
이튼날 부방의셔 뭇 군관과 노니더니
474
다졍이 와셔 손잡고 반겨다
475
인여 타니 뭇 기 라오
476
고인과 취슈들은 각의 올나고나
477
저녁밥 예서 먹고 촉불을 히고셔
478
됴션달 노고 덕심이 검문
479
웅쳔 거창 곤양 원이 지참라 모다 왓
480
초하로 망궐례 관복 업셔 불참니
481
졍상이 니시되 비록 션라도
482
용을 븟처 잇고 왕로 길을 가니
483
삭망의 망하례 아니키 블가니
484
그의 력으로 장복을 어이고
485
어더 쥴 거시니 이후 참녜고
486
유으로 관복기 슈괴고 민망나
487
도리가 그러니 양치 못노다
488
아밥 먹은 후의 합천 군슈 잠간 보고
489
샹방으로 드러가니 삼신 다 모닷다
490
일 샹듕하관이 일곱 고을 슈령들과
491
여명 기들노 셔너 면잡이
492
빈일헌 너른 쳥의 가득이 안고나
493
구 기 옥진 형졔 황창무 일등
494
삼신 쳬 돈과 열읍 슈령 하 것
495
쟝함도 장시고 오냥 거의로다
496
오날밤 이 노이 이리 온 후 처음일
497
초계 현풍 병참다 곤양 지 오
498
문 닷고 드러누어 됴리니 저기 나의
499
식후의 삼샹이 운 가신다
500
햐처 마이 머러 샹마포 드 후의
501
비로소 말을 타니 이 발셔 갓
502
비장과 군관들이 군복고 느러섯다
503
나고 삼문 첩노로 바로 갈
504
좌슈영 남문 드러 동문으로 다니
505
누션 일 며여 션창의 여거
506
자근 의 인마 시러 로 건너 가라 고
507
삼뇨로 등쥬야 슌풍의 노흘 저어
508
슈십 격군들이 일시의 노니
509
쾌고 편기가 뉵노의 비소냐
510
졍동방 두 동부 로로셔
511
군악 치고 오시다가 우리 바라보고
512
비장들과 슈령들이 블워기 측냥업
513
우리가 처음의 늦게야 낫기의
514
라갈 길 히 업셔 부득이 탓더니
515
블워 쥴 어이 알니 우슙고 다다
516
의 나려 뒤 라 운의 올나가니
517
안계도 멈도 멀샤 슈쳔이 일일다
518
쥬먹만 마도 구 밧게 명멸고
519
산 갓튼 놉흔 슈동 반공의 가려시니
520
저 물을 엇지 가 말고 음이 서늘다
521
동 기 구 기 쳥홍으로 작야
522
무슈가 편편니 운이 머뭇 듯
523
가셩이 쳥원니 물을 슬퍼다
524
풍뉴 마 후의 복 굿 보
525
삼십 명 포잠이 일시의 옷살 고
526
허리의 망 차고 노 뒤웅 야
527
억만장 풍도 듕의 것구로 여 드러
528
흐로 머리 가고 하노 발이 가지
529
헤음야 가 샹이 고리 모양일다 (‘모양이다’의 ‘이’를 지우고 ‘일’로 주서함.)
530
복을 가지고 뒤웅의 걸머듸여
531
호흡을 두루고셔 다시 드러가니
532
무섭고 불샹야 심골이 놀납도다
533
인인 군 보 되면 복을 먹을소냐
534
좌슈 포이 만호 차담 졈심 고나 (‘됴’로 쓴 것을 지우고 ‘포’로 주서함.)
535
처음의 나올 제 풍우가 작니
536
이러 조흔 경치 못 볼가 엿더니
537
오후의 쳥명야 비 고 잔풍니
538
승지의 장 노 하이 쥬시도다
539
일모 셔산니 파연고 도라올
540
무슈 홰불 빗치 삼십 니의 버러고나
541
슌식간의 도라오니 삼경이 거의로다
542
초오일 청명커 물운 보랴 고
543
합쳔 군슈 가지로 운포로 지나오니
544
부방의 비장들이 풍뉴고 압 섯
545
말 모라 오니 김영장이 몬져 왓다
546
예 올나 잔간 쉴 제 뉴영장 셔듕화가
547
셰 기 다리고셔 미조 라왓
548
서너 영 곳쳐 너머 바다흘 엽 고
549
다리 동문으로 화원누 드리라
550
호두각 드러가니 쥬진 첨 기리
551
난간 압헤 감셕뉴가 휘여지게 열어거
552
다가 먹어 보니 그 맛시 이샹다
553
지형도 조흘시고 뇽호가 한포야
554
운을 가리오니 션창이 졀로 되여
555
젼션을 야시니 진실로 관방일다
556
지리 의논면 부산도곤 낫다 다
557
남문을 다라셔 물운 가니
558
평지의 뇽야 봉 나히 니러셔셔
559
달우리 로처로 바다 처시니
560
우의 올나안 좌우 도라보니
561
바둑처로 버린 셤이 예도 잇고 제도 잇셔
562
형형 으로 긔긔 괴괴야
563
괴셕 갓튼 것도 잇고 소라 갓튼 것도 잇다
564
창망 우연 밧긔 만산이 은영다
565
심듕 이 보고 손등 치고 탄되
566
관동 구군 좃타 나 이런 못 보앗
567
우리 나라 산 듕의 제일이라 리로다
568
광활고 통창키 해운만 못여도
569
긔묘고 졀승키 마이 낫다 리로다
570
삼현을 크게 치고 일댱을 진탕니
571
묘리 잇 듀진장이 셜찬을 장이 여
572
온갓 실과 더운 과 연 고기 가 회
573
로 드리고셔 벙거지골 먹인 후의
574
복 잡아 난고 고기 잡아 탕을 야
575
석반을 드리고 감로 위니
576
접도 묘리 잇고 음식도 맛시 조
577
서울서 난 후의 처음으로 부르다
578
경치 양 보랴 일낙후 회뎡야
579
왜관 지나 원문 나셔 홰불 혀고 도라와셔
580
블너 밥 못 먹고 그져 누어 랴더니
581
종샹이 브거 드러가 문후니
582
산 승경 시 뭇고 나가 쉬라 고야
583
지례 현감 편지고 약과 궤 보엿고
584
모 통제도 신을 고나
585
초팔일 제 하랴 슈셔계 습의
586
오각 흑단령은 종샹 빌니시고
587
사모와 젼후 흉 최판 보엿
588
삼샹 뒤흘 라 영가 드러가셔
589
예의 얼풋 고 샹방의 드러가니
590
졔술관 지은 제문 졍샹이 여 노코
591
슈십 에우치고 곳처 지어 드리라
592
도라와 고 나니 진격기 고나
593
식후의 의 가 졍샹긔 문후니
594
곳처 지은 제문을 보앗냐 무시
595
이윽고 남시온이 가지고 왓거
596
펴 노코 리 보니 젼도곤 마이 나의
597
시온이 나간 후의 사을 치우시고
598
날려 니시되 엇그제 졔슐관이
599
글 지어 보면셔 기 달나 여시되
600
쥬지 아닌 이 을 그 응당 짐리
601
져 불너 계 남 모게 여시나
602
셩셔긔 마 와셔 가지로 드러시
603
그 노셩니 어이 그일손고
604
나 져문 동뉴들과 드지 아니 은
605
비록 불명나 모가
606
져녁의 종샹이 영가의 올나 안
607
제문 밧 시거 장복고 라오니
608
졍샹 한가지로 셩긔 셩 고나
609
오후븟터 구토고 몸이 심이 거북야
610
로 도라와셔 셕식을 젼폐고
611
신음고 누어시니 참 어이리
612
강잉야 소셰고 삼경양의 관복고
613
젼관 곳의 가셔 신음고 안더니
614
이윽고 삼신이 례로 나오거
615
외의로 로 가니 신도 안고나
616
시 기려셔 안 반열의 드러가니
617
졔물을 진셜고 삼신이 삼헌고
618
시온은 축이오 집은 집녜고
619
봉향은 가 고 봉노 로셰
620
현익은 관고 진폐 최학녕이
621
젼폐 니명윤이 튝은 니좌국이
622
현심은 쥰이오 니병화 찬쟈로다
623
현계근 니인오 알 여시며
624
남두민 니언진은 호창을 고나
625
셩월은 소삭고 셔풍이 소슬니
626
동신 아명시가 흠향을 시가
627
신판 츅문 소화고 양시 셔딕만을
628
져근 의 시러다가 슈의 너흔 후의
629
제파여 도라오니 계삼창이 되여셰라
630
울산슈와 니의슉이 왓노라고 젼갈
631
몸 알파 못 가 보니 섭섭도 온지고
632
느즌 후 니러나셔 샹방의 문후고
633
부삼방 잠간 거처 울산슈 보고 오니
634
셩쥐원 쳥도원이 왓노라 긔별 왓
635
일은 구일이라 등고 하여 보
636
아의 부삼방이 물운로 가신다
637
진 관속 물너가고 울산 지공 와셔
638
밥 먹고 말 타고셔 민명쳔 가셔 보고
639
뉴영장 냥션젼과 장로 올나가니
640
남촌 별장 포이 만호 뒤 라 올나오
641
밀양 경쥐 김 기악 다 쥬어 올나왓다
642
셔듕화 됴도는 츄후여 오고나
643
다졍산 합쳔슈가 지공고 도라갈 제
644
일들 먹고 놀나 소 나 쥬고 가
645
근검 쥬진 첨 이 소 잡고 셜찬니
646
음식도 무던고 검무도 보암다
647
글 두 슈 지어 여 가졀을 갑흔 후의
648
부삼방 오시거 잠간 가 문후고
649
샹방의 얼풋 단여 쳐로 도라오니
650
밀양 기 와셔 뵈니 긔긔진 분취영일다
651
쳥가 슈곡 드러 니 회 니즐노다
652
슈 연향 일이라 일 니러 드러가니
653
빈일헌 동쳥이 오히려 좁은지라
654
그런 장 너른 을 부계 야 포진고
655
삼샹 남향고 슈 북향이라
656
우리 문 셔향여 안시며
657
삼방의 군관들은 우리 엽 남향고
658
역관 냥의 관은 슈 뒤 안져 잇고
659
마샹 별좌진과 젼악 니방 반인들은
660
뭇 역관 안즌 뒤의 좌우로 갈나 안고
661
뉵 션장 삼 집 마샹 뒤 잇고
662
각방의 노들은 가온 안시니
663
위의도 졍졔고 풍뉴도 장시고
664
경샹도 일도 기 다 몰슈 왓다
665
우흐로 신븟터 아로 기지
666
연셕의 드니 화 다 다
667
풍악은 쳘고 연샹은 드고야
668
져 연샹 귀경소 댱고 거룩다
669
큰아큰 고샹을 네 놈이 겨요 드러
670
신 네 샹이오 우리 셰 샹인
671
그릇 슈 얼풋 셰니 샹의 팔십이오
672
물속 다 왜화기요 슈륙진찬 다올나다 (슈'를 썼다가 지우고 '속'으로 주서함.)
673
샹마다 칼다슈 다 로 만드랏다
674
궁유의 장으로 먹을 길 히 업다
675
쥬리 일가 친척 난화 먹여 보고지고
676
구작칠미 다 드리고 공연을 파 후의
677
복고 곳처 드니 연샹 드린다
678
그릇마다 묘찬이오 음식마다 일미로다
679
가난 좌슈가 허비도 만흘시고
680
좌우로 굿 보니 그 슈 어이 혜리
681
셩도 타고 담도 타고 집 우도 올나시며
682
쳠하의도 가득고 나모 우 더욱 만타
683
잔의 셩기와 풍악의 장기
684
셔왕모 반도연이 이의셔 더소냐
685
긔운 블평야 몬져 퇴고
686
이튼날 호궤호 비 마 장이 오니
687
삼방의 여 군관 영긔 셰고 군악 치고
688
뭇 격군 다 먹이라 뉵션으로 바로 가고
689
신와 샹듕관이 어제처로 버려 안
690
삼현 치고 가무고 한 샹식 드리고
691
연파의 졍샹이 부체 봉 여 노코
692
일 졔인들을 각 나식 난화 쥬고
693
우스며 이르시 이것이 람 여
694
바다 건너갈 제 슌풍을 여셰라
695
오날도 몸이 알파 일이 도라오니
696
경쥐 기 와셔 뵈니 취졍 취석 취로다
697
슴브시 부윤 졍의 다 갓가이 엿다
698
이튼날 웅쳔 지공 참혹도 셔이고
699
동샹 좌슈 치고 예방 비장 공형 첫
700
십삼일 젼 탄일 망졀녜 온 후의
701
승션 일 오날이라 촉여 조반고
702
비단 도포 졍관을 처음으로 입고 니
703
인 광 모양이라 소견이 슈샹다
704
포변으로 바로 오니 역관들도 다 모닷다
705
국셔 뫼시고셔 삼신이 나오신다
706
식파루 로 드러 일이 다 모드니
707
졍샹이 알셔 샹션으로 올나가니
708
부종샹 남여 타고 례로 승션
709
일긔션 도라보니 여 군관 셰 역관이 뫼시고 올나시며
710
부긔션 도라보니 뉵비장 일셔긔와 셔너 역관 올나고나
711
시온 집 장 군관 졍복션 타 잇스며
712
별파군과 다엿 역군 부복션 타 잇고나
713
나고 삼비장과 홍초관 두 역관은
714
삼거션을 타 잇스며 양의 젼악 마와
715
두 관 두 역관은 삼복션을 타 잇고나
716
닷 들고 노역야 반양으로 나릴 적의
717
세 탄 왜놈들이 점션로 나오다가
718
삼션 만나보고 돗 지우고 닷 쥰다
719
뮌가리 벌건 다리 쳐음으로 만나보니
720
인형이 바히 업셔 놀납고 더럽고나
721
삼현 소 듯노라고 션두의 뭇거 셔셔
722
가치고 들네난 샹 소견의 경다
723
인야 회션 돗 달고 듕뉴야
724
뉵션이 취타고 션창으로 드러가니
725
이 날의 굿 보니 뫼와 들의 가득다
726
삼샹이 국셔 뫼셔 로 가시거
727
경쥬 부윤 잠간 보고 햐처로 도라오니
728
우병 편지고 의 식물 보엿다
729
십오일 십뉵일은 창원 고을 지공일다
730
십칠일 언양 지공 피폐도 가이 업다
731
십구일 의홍 지공 원의 부 보고 가
732
가지로 노 병 드러 못 가니라
733
니튼날 뉴영장이 문병고 가고나
734
샹방 비장 편지 보니 원 욕을 보고
735
어제밤 삭말 타고 서울노 올라가니
736
남제슐 셩셔긔가 만뉴 욱여 갓
737
드 놀나오 병 들어 못 가기의
738
녜방의게 편지야 곡졀을 시 아니
739
원 본진의 가 첨 보라 드라갈 제
740
일긔 션장 김구영이 안연 부동고
741
마루의 놉히 안 무례기 심지라
742
원 햐처의 가 령으로 브르라니
743
거역고 아니 오고 다번 겨오 와셔
744
쳥죄도 아니고 방의 드러 안즈랴니
745
분믈 못 니긔여 도로 가라 호령니
746
귀영이 발악고 불공 말 만이 니
747
하인 블너 분예고 졍샹긔 알외오니
748
션장 블너 화니 할 일 업셔 나올 적의
749
션장이 듕노의셔 의 잡고
750
노긔가 발발야 무슈이 휘욕니
751
방의 곳처 뵈고 욕 본 말 다 알외니
752
션장과 죵을 오도식 결곤니
753
가 졀분야 삭말 타고 올나갈 제
754
남시온 셩집이 북문의 와 보 제
755
불승강야 손목 쥐고 눈물 지니
756
경쥐 기 연이계도 시온의 소면으로
757
가지로 나왓다가 제 역시 우다
758
샹방의 녜방 비장 샹긔 알외오
759
영긔로 잡아다가 징집을 게 오
760
병무 군관 이 말 듯고 일시의 간오
761
아모리 셔긔오나 비장과 다옵고
762
글 닑은 션오니 잡아오든 못 오리
763
졍샹이 올히 넉여 편지 아니 오고
764
례 비장 됴구로 다려오라 보니
765
다 원가 삼일만의 도로 오니
766
김귀영 샹방의셔 다만 결곤 삼도니
767
도 인입고 두문 칭병
768
이 날은 각방복들 다 의 싯지라
769
구 몰속 혀 삼션으로 보 후의
770
이리 혜고 져리 혜니 셜치 못 젼은
771
아니 가미 올흔지라 병셰 강잉야
772
이십일 겨유 니러 미음을 조곰 먹고
773
삼방으로 드러가니 시온 집 안고나
774
하딕고 물너갈 말 누누히 알외오니
775
처음은 종샹이 극녁여 말니더니
776
아 그려도 못 갈 말을 셔히 베푸오니
777
그 소집 그러니 나도 과연 못 말니니
778
시험여 샹방의 가 면을 여 보소
779
바로 니러 샹방으로 가니 긔침을 아니 여기의
780
부방으로 려와셔 못 갈 연고 시 니
781
소집 그러니 임의로 지어다
782
그리로셔 보고 욕 본 말 위루고
783
인여 손목 잡고 말 드러 보소
784
세가지 그 닐 아가 모가
785
션장이 무례 제 못 본 체 거시
786
제일 냥인 이러니 나 놈을
787
잡으라 보 적은 욕 본 취 나히고
788
군의 츌처 신 옹용불박 거신
789
밤듕의 남 모게 급급히 길을 찰여
790
도망듯 올나가니 잘못미 둘이오
791
그 욕을 본 후 아모려도 못 갈지라
792
가거든 아조 가지 무엇라 도로 온고
793
젼후의 그 닐 이거시 세가지니
794
원 말 듯고 격졀고 칭
795
노형의 시 말 졀졀이 올타
796
나 시방 하딕고 아조 도라가랴
797
삼문 함긔 말은 올오나
798
말초가지 각고 샹심여 오소셔
799
서울서 올 제븟터 물의 아니 들 쥴
800
즐 모고셔 용열이 넉인지라
801
말 비록 이러나 못 가 염녀
802
웃고 니러나셔 샹방으로 바로 가셔
803
문 열고 드러가니 샹이 감긔 잇셔
804
옹금고 누엇다가 날을 보고 안지라
805
나아가 문후고 졍고 물너안
806
곳처 러 엿오 이번의 쳔니 길을
807
뫼고 나려와셔 외국의 가게 되니
808
바라미 산 갓고 졍이 역시 깁오나
809
젼후의 불평 닐 바히 업디 아니
810
브졀업 적은 일을 결각을 아니 랴
811
봉영 봉교야 죄 업시 왓더니
812
오날은 박부득이 죄라 왓이다
813
샹이 무시되 무 일노 그러고
814
다른 일이 아니오라 원셔긔 일이올소이다
815
원봉 욕 본 일을 김진 가로맛하
816
부졀업시 셩야 과거 랴고
817
곳처 온 말이 그러치 아니오
818
사은 다오나 셔긔 가지오니
819
머리 삼오면 긘들 아니 닉가
820
셔긔 욕 보고셔 처치 못 젼은
821
듕의 네 문가 다 먹은 시오니
822
완만 션장 놈을 결곤 삼도 겨유 고
823
비록 거다 나 츌 아딕 아녀오니
824
금명간 슌풍 어더 급히 타올 적의
825
인입여 다려가면 셔긔 거취들은
826
니 것 업거니와 토교 랑고
827
션 쳔면 쳥문이 엇터켓소
828
셔긔 노 냥반 비록 심히 제미나
829
님하의 독셔고 호 션로셔
830
욕본 안다가 후 욕보면
831
하노 못 오르고 바다흐로 못 들지라
832
뒷발 듸딜 평지의셔 딕고 가이다
833
샹이 오시 김진 이런 말은
834
진실노 의외로다 그 입시야
835
특명으로 글 지이고 이국의 보시니
836
쳔은을 감격야 화국고 도라오미
837
분의예 올거 별반 시비 어 여
838
김진 아니 가면 져 셰 어이 갈고
839
네히 다 못 갈진 인들 어이 갈고
840
나라 일 그 되면 김진 탓 아닌가
841
어져 그 말 마오 예븟터 션 츌쳐
842
나라 일과 남의 일을 슌편이 랴 고
843
제 몸 몬져 더러인 일 에도 업니
844
다른 셔긔 일이라고 아니 도라가게 되면
845
용녈 이 션 무어 오릿가
846
샹이 곳처 임의 치죄고
847
거 여시니 장슈 다토아셔
848
과거 거조 말고 말을 시하소
849
하 비록 유리나 쳔니와 다외다
850
다른 장교 갓오면 혹 용셔려니와
851
하물며 이 장교 동부 와 겨실 제
852
친근이 환야 소아처로 부리섯오
853
그 놈이 이 밋고 방약 무인야
854
냥반 욕 죄가 기 어렵거든
855
볼기 셋 치오시고 젼과 치 후니
856
일도의 샹하 인민 셩외의 다 왓시니
857
군관을 보서 믈의 드러 보오
858
토교 셕야 셔긔 쳔다
859
인심이 분울야 져마다 분니
860
이번 길 가 듕의 이 놈 아니오라
861
이갓치 브리든 놈 나 둘 아니오니
862
져마다 효측면 그 욕이 오오
863
뉵지의 잇슬 적의 하딕고 가려오니
864
소은 이번 길의 득죄 닐 업오니
865
부졀업시 처로 서울노 아니 가고
866
이 근처의 잇다가 신 가오실 적
867
선두의 별고 연회 투비려 오
868
각관의 지공들을 이제 못 먹으리니
869
일이 나가와셔 먹을 도리 이다
870
인여 니러서서 나오려 올 적의
871
샹이 니러셔셔 급급히 손을 잡고
872
위로여 니시되 셩의가 불부야
873
처 잘못엿시니 장 회심
874
누누히 개유고 회우 뵈니
875
이 말 듯오니 마음이 풀니인다
876
러 엿오 소이 우딕와
877
허다온 츄은얼을 외람이 알외오니
878
번연이 다라셔 인구 오시니
879
존안코 당돌오나 임의 도라가게 되니
880
속의 잇 먹은 말 다 쥬어 오리다
881
관복 일노 이르 왈 무진년의 통신 갓던
882
문의게 뭇와 학창의 졍관을
883
젼례로 지엇더니 져젹의 승션 제
884
샹방의 비장이 고담 언으로
885
려 니오 졍관 와룡관은
886
신들 시 것 심도 못 리라
887
듯고 통분야 답야 니오
888
삼년 유 고규 그 어이 모로고셔
889
역관이 못 기의 그놈과 부동고
890
말독 젼닙 잇기의 븟그럽고 용심 여
891
예븟터 관복 져희 무 일고
892
그러면 셔긔들은 그처로 군복가
893
그 비장 곳처 샹하 귀쳔 다거든
894
등분이 업슬소냐 도긔 엿고셔
895
곳쳐 변통야 복을 졍리라
896
드르 분이 나나 다토기 졈지 아녀
897
잉분고 도라와셔 두 보랴더니
898
과연 슈일 후의 이 비장의 말과 치
899
관복 교 나리시니 뉴여 오 제도
900
비장의 참소 말노 일조의 그되니
901
비록 궁노나 비장의게 조롱 바다
902
굴슈 무언야 말도 아니가
903
늙고 병든 이 셔긔는 화국 조 업기
904
구튱기슈야 승핍여 왓거니와
905
남 원 셩 세 사은 일의 문장이오
906
하물며 셔긔 노릇 일시의 극션이라
907
천니마 조타 고 갈희여 다려다가
908
네 굽을 동혀면 제 어이 긔손고
909
글만 읽은 션들은 녜로븟터 오활야
910
웃람 되시니 너그러이 조용야
911
잔 허물 보지 말고 구속지 안케 면
912
우유야 걸닌 업슨 후야
913
졀도 긔운이오 글 짓기도 긔운인
914
엇디타 조졀키 하류와 갓치 오
915
샹이 니시되 처음의 원봉가
916
심이 나 션장을 어이야 나입고
917
분연이 엿오 그 그러 아니오
918
그려도 셔긔들이 제 집의 잇슬 제
919
장교 나 두루기 남의 힘을 아니 비니
920
하물며 봉명고 이역의 가올 적의
921
듕의 토교 못 처치오릿가
922
긔년 통신 갈 제 제슐관 니현이가
923
슈역을 그어드려 무슈히 둘너시
924
그 의 사들이 그르다 아니고
925
니현의 다려온 둉 결곤 일 업오니
926
국의예 션들은 의 가 장교
927
못 처치려니와 듕의 가 셔긔
928
당교 나 두루고셔 볼기 맛기 올올가
929
그 밧긔 잡말을 무슈히 진졍
930
샹이 어지샤 뉘 아니 보시고셔
931
온언으로 달시고 가지 말나 오시니
932
졀고 엿오 오날 하딕려더니
933
하교가 감격니 아딕 물너가 잇다가
934
쳐치 기리와 일 물너 가오리다
935
인야 문을 나셔 듕계예 려셔니
936
역니 통인 급장 기 젼의 거만던 거시
937
다 의 나려와셔 부복여 보고
938
처음의 드로올 제 잔망 니좌보가
939
기 슷처 알고 난처 닐 볼가 야
940
제빗로 나가 셔셔 창밧긔셔 엿듯다가
941
이제야 마조 와셔 치하고 가고나
942
벽쳥의 나와 안져 잠간 비겨 쉬을 적의
943
집 급히 블너 김구영 나입야
944
령 세 놈 팔을 가라 낫낫치 고찰야
945
십오도 결곤고 인여 거니
946
착샤 우리 샹 젼환냥이 갸륵샤
947
밋친 놈 어린 말을 그다 아니시고
948
광명 쇄락 처치 경각의 리시니
949
우리 무리 영감키 이도 말녀니와
950
이 빗기가 만장이나 더도다
951
남 셩 원 셰 사이 굼굼여 거시니
952
말 고 그리 가셔 젼후 연 다 일니
953
누엇던 원가 용약야 니러나셔
954
손벽 치고 웃고 무 병이런고
955
다만 심병 어렵더니 노형의 말의
956
슉병이 다 하리고 쾌활야 날 듯니
957
긔특고 장지라 탄복 밧 무고
958
져녁밥 예셔 먹고 쥬진으로 드러가니
959
뉴 셔 니 셰 사이 일시의 치하되
960
좌하의 한 말의 완득니
961
허다 일으로 긔용여산 게 되니
962
봉명됴양 단 말을 옛글의 보아더니
963
오날 이 거둥은 학닙부산이라
964
하장고 갸륵니 우리 니러 졀라
965
역시 졀을 맛고 츄연여 답
966
불 날을 만나 광망 잡말을
967
고져 모고셔 음것 얏더니
968
샹이 현명샤 그다 아니시고
969
일일 쳥종 오시니 무 힘이리오
970
부방 삼방 잠간 뵈고 치 엿오니
971
김진 이번 일은 이 실노 쾌도다
972
오다가 예방 보니 임 오 이인 안다가
973
긔경고 칭찬 쟝고 거록다
974
우리 샹 젼갈샤 치소셔 권오되
975
드 체 아니터니 말의 치오니
976
우리 녹녹야 무어 잔 말고
977
그 밧긔 보 사 져마다 탄복니
978
괴롭고 우울 햐처로 도라오니
979
게 온 마부놈이 업듸여 알외오
980
소인이 이리 오와 뫼시고 단니다가
981
쾌고 깃분 일을 오날이야 보앗다
982
진님 의셔 상 도와 다토실 제
983
각관의 아젼 관쇽 문 밧긔 다 모다셔
984
혀 고 니오 이 도 감 적의
985
경쥐 안동 동부 다 몰슈 겁을 여
986
그 밧 열읍 원님가 적도 못 더니
987
이번의 김진 엇더 냥반인지
988
졍도의 위엄으로 휘우지 못 야셔
989
그 말로 시니 오납고 무셥기가
990
아국의 업다 고 지점고 기리 양
991
소인이 쾌기 비 업이다
992
우슙고 긔괴야 지져 물니치고
993
방의 누어 각니 소범 만토소니
994
일변으로 구연며 일변으로 붓그럽다
995
아의 니러나니 샹방의셔 브거
996
로 드러가니 셔긔 제슐 다 모닷다
997
나아가 문후고 곳처 러 엿오
998
어제 광망와 존비 모고
999
작죄 만히 여시니 죄 이다
1000
샹이 오시 이번의 전후 일은
1001
졍의 불부 탓시니 이후 힘을 셔
1002
샹하가 교면야 그른 일 업게
1003
인야 쥬진의 가 삼문 오라 야
1004
의셩 기 윤 봉 듕츔 츄 귀경고
1005
햐처로 도라오니 영산의 김필슌이
1006
김산 슈 무용이가 와 보고 가고나
1007
밤의 고 니러나니 김산 지공 와셔
1008
이십오 일 미우 우장고 셩의 드러
1009
셰문 보니 냥의도 거긔 왓다
1010
시온의 슈쳥 기 비졈의 족하로셔
1011
말 잘고 협긔 잇셔 져희 듕의 기로다
1012
셰 사이 글을 지어 노 불여 보니
1013
불구의 날지라 원강야
1014
장가 튱관고 인이 단장
1015
남으로 나려온 후 이 노 읏듬일다
1016
역시 글을 지어 부쳬예 셔 쥬고
1017
도로와 고 나니 인 지공 와셔 다
1018
냥션젼 병을 뭇고 뉴장흥을 오니
1019
부방 비장 드러와셔 말 드러니
1020
경쥐 기 종란 년 유지의 소면으로
1021
식 역질 핑계고 도망여 나려오
1022
쥭기 그윽고 호혈노 말을 모라
1023
하로 밤 하로 낫제 니니 달려오니
1024
동경 로야 잡으라 군 노핫
1025
니비장 일 업셔 뉴장흥을 와셔 보고
1026
엇딜고 의논니 뉴장흥 니른 말이
1027
이 일을 쥬션리 김진밧 리 업
1028
각여 보니 제 비록 기이나
1029
졍인을 보려 고 모고 달녀온 일
1030
그 이 가샹이오 협긔도 잇다 쇠
1031
졍샹 가셔 보고 이 연 다 오니
1032
초비장 불너다가 삼방의 젼갈되
1033
경쥐 부윤 친기 날보다 나으시니
1034
게셔 가 편지고 머무러 두오소셔
1035
삼방의셔 답 쾌 허락 아냐거
1036
그될가 염녀야 부방의 가 도모고
1037
삼방으로 즉시 오니 종샹 뭇오
1038
샹방의셔 젼갈 일 어이면 조흘소니
1039
이 기의 호협긔 쇠셰예 드문지라
1040
이리 조흔 풍뉴 셩취 오소셔
1041
종샹 말 듯고 경쥬 노 불너 드려
1042
편지고 젼갈고 종 아니 쥬니
1043
비장 락고 장흥 깃거
1044
이십칠일 흰 쥭 먹고 동 햐처 두루 단녀
1045
홍초관 드러가 보니 슈쳥 기 운월이
1046
음여속공 거스로 홍초관을 어더 만나
1047
온갓 니 도고 날마다 밤의 나가
1048
오장이만 지우고셔 밤 들 야 드러오
1049
홍비장은 전혀 속고 혹여 아조 져
1050
각읍의 어든 돈을 다 몰슈 여 쥬고
1051
나 보 희롱고 홍비장을 마이 치니
1052
홍비장 두굿거워 알푸다고 에라 니
1053
소견이 졀도고 도로혀 블샹다
---
## 2권
1
일동장유가 뎨이
2
이튼날 비안 지공 차모 션 현신다
3
임도 와셔 보매 초 혀고 말더니
4
뉴 셔 민 세 비쟝이 미복으로 만이 와
5
창밧긔셔 뎐갈 임도 나으리
6
샹방의셔 불니신다 임도 소 듯고
7
셔듕홴줄 알고 대즐고 욕을 니
8
세 사 크게 웃고 방으로 드러와셔
9
조용이 말다가 밤든 후 가고나
10
일은 영쳔 지공 통인 차모 현신다
11
챵녕 고을 관쇽들이 샹방 지공 라 와셔
12
열여 아젼 통인 열다 기 관비
13
비 맛고 드러와셔 놀고 반겨 다
14
챵녕 통인 하대육이 숨 업시 급히 와셔
15
간지가 다 진니 일 나게 되엿다고
16
가 티고 슬피 우니 불샹키 이 업
17
팔십복 비안 간지 내여 주니 됴화 다
18
초삼일 지공관은 삼가라 고나
19
아의 왜놈이 와 라 쳥
20
우리 나라 샤공들이 졈풍고 도라와셔
21
역풍이 나리라고 승션을 말나더니
22
우후의 그 말치 과연 역풍 나고나
23
왜놈들의 말을 조차 만일 돗더면
24
낭패 아니가 다도 셰이고
25
오은 연일 지공 통인 차모 현신다
26
슌풍이 분다 고 라 녕이 낫
27
여긔 와 오래 묵어 십여일 되여시니
28
굼굼코 답답더니 면 싀훤다
29
경의 밥을 먹고 션소로 바로 가니
30
일이 다 모다셔 각각 로 오고
31
격군의 부모 쳐 다 주어 모다 와셔
32
옷도 잡고 손도 잡고 통곡고 나 양
33
참혹고 불샹야 마 못 보리로다
34
두 아 왓돗더면 나도 뎌러리로다
35
각방 슈쳥 긔들도 등불 잡고 바자니며
36
졍인 니별 양과 듕의 삼방 동
37
각각 기 븟들고셔 마 못 나 양
38
우고 긔괴다 그려다가 보고시븨
39
안장과 던 가 쥬인 불러 맛디고셔
40
의 올나 셔셔 보니 십월 초뉵일이라
41
셩두가 쇼고 셔북풍이 이 분다
42
샹션포 세 번 노코 거졍포 소예
43
리 올려 노코 일시의 닷 주니
44
쳔금 이 내 몸을 죽기로 츼우치니
45
이 활발야 걸린 거시 바히 업
46
나라 일로 나왓다가 죽은들 어이고
47
나 셰샹의 나 아모 일도 못 일우고
48
쳐의 손 가온대 골몰야 디내다가
49
녹녹 부유텨로 힘힘히 죵신면
50
긔 아니 늣거온가 이 역시 쾌로다
51
창 건너가셔 부샹의 고
52
삼신산의 올나가셔 불약 야 내여
53
도라와 고 구듕의 드리오면
54
셩명신 우리 님군 만슈무강 오시면
55
이에셔 더 경 어 잇단 말고
56
신의 직분이라 긔 아니 됴흘소냐
57
니 졍돈고 방을 살펴보니
58
뎨일방은 죵샹이오 뎨이방은 내가 들고
59
뎨삼방 녜방 비쟝 뎨방 임도요
60
뎨오방은 공방 비쟝 뎨육방은 샤공 드
61
우편을 도라보니 홍쵸관 반젼직이
62
슈역과 건냥 판 각각 방 디고
63
됴훈도 긔션쟝은 방의 드러시며
64
가온대 큰 방은 션신을 위엿고
65
말재간 좁은 방은 왜인이 드럿고나
66
왜샤공 세 놈 고 금도 나 통 나
67
다시 올라와셔 온갓 일을 피고
68
댱풍의 돗 라 뉵션이 나
69
삼현과 군악 소 산 딘동니
70
물 속의 어룡들이 응당이 놀라도다
71
구 얼풋 나셔 오뉵도 뒤지우고
72
고국을 도라보니 야이 창망야
73
아모것도 아니 뵈고 연 변진 각포의
74
불빗 두어 뎜이 구 밧긔 뵐 만다
75
방의 누어 이셔 내 신셰 각니
76
이 심난 대풍이 니러나니
77
태산 셩낸 물결 텬디의 옥니
78
큰나큰 만국가 나모닙 브치이
79
하의 올라다가 디함의 려지니
80
열 두 발 돗대 지이텨로 구버 잇고
81
쉰 두 복 초셕 돗 반쳐로 블럿
82
굵은 우레 별악은 등 아래셔 딘동고
83
셩낸 고래 동 뇽은 물 속의셔 희롱
84
방 속의 요강 고 쟛바지고 업더지고
85
샹하 좌우 방덜은 닙닙히 우고나
86
이윽고 돗거 장관을 여 보
87
니러나 문 열고 문셜쥬 잡고 셔셔
88
면을 라보니 어와 장시고
89
인 텬디간의 이런 구경 어 이실고
90
구만니 우듀 속의 큰 물결분이로
91
등 뒤흐로 도라보니 동 뫼이 눈섭 고
92
동남을 도라보니 바다히 이 업
93
우 아래 프 빗치 하 밧긔 다하 잇다
94
슬프다 우리 길이 어로 가쟉고
95
긔 난 다 간 모로다
96
면을 두로 보니 잇다감 물결 속의
97
부체만 쟈근 돗치 들낙날낙 고나
98
션듕을 도라보니 져마다 슈질야
99
물을 다 토고 혼졀야 죽게 알
100
다샤 죵샹은 태연이 안시고나
101
방의 도로 드러 눈 고 누엇더니
102
대마도 갓갑다고 샤공이 니거
103
고텨 니러 나와 보니 십니 남앗고나
104
왜션 십여 이 예션로 모다 왓
105
그제야 돗 지고 머리의 줄을 야
106
왜션으로 더지으니 왜놈이 줄을 바다
107
제 예 여 노코 일시의 리으니
108
션이 안은야 좌슈포로 드러가니
109
신시 여 잇고 복션은 몬져 왓다
110
포구로 드러가며 좌우 둘러보니
111
붕만이 삭닙야 경치가 긔졀다
112
용 듁 귤뉴등감 다 몰쇽 등쳥일쇠
113
왜봉 여 놈이 금도졍의 안잣고나
114
인개가 쇼됴고 여긔 세 집 뎌긔 네 집
115
합야 혜게 되면 오십 호 더 아니타
116
집 형샹이 궁슝야 노젹 덤이 고내야
117
굿 보 왜인들이 뫼 안자 구버본다
118
그 듕의 나 머리 가시
119
뒤만 죠금 남겨 고쵸 샹토 하여시며
120
발 벗고 바디 벗고 칼 나식 이시며
121
왜녀의 치장들은 머리 아니 고
122
밀기 북 발라 뒤흐로 잡아야
123
죡두리 모양쳐로 둥글게 여 잇고
124
그 두로 트더 빈혀 질러시며
125
무론 노쇼 귀쳔고 어레빗 잣고나
126
의복을 보와 니 무 업 두루막이
127
동 단 막은 매 남녀 업시 가지요
128
넙고 큰 졉은 느히 둘러 고
129
일용 범 온갓 거 가 속의 다 품엇다
130
남진 잇 겨집들은 감아게 니 칠고
131
뒤흐로 고 과부 쳐녀 간나
132
압흐로 고 니 칠티 아냣고나
133
외총 낸 고은 집신 남녀 업시 신엇고나
134
비단 오 셩젹고 곳곳지 안자시
135
그 듕의 두 겨집이 허여 셜면로
136
머리 고 안잣거 통려 무러보니
137
벼 잇 사들의 쳐쳡이라 고야
138
부긔션 부복션은 질 글 드러오
139
일긔션 일복션이 초경의도 아니 오니
140
념녀가 이 업서 샤공을 탐후니
141
비로소 현영야 복션과 긔 오
142
샹부방 두 샹은 슈질을 아냣다
143
깃브기 이 업서 샹부방의 급히 가셔
144
례고 뭇오니 샹션 치목 부러져셔
145
이제야 드러오고 부방은 더욱 굿겨
146
두 번을 치졀야 황황야 위태 제
147
민명쳔이 악몽 고 젹삼 버서 더뎟다
148
위경을 격거시나 팔십니
149
무히 건너오니 쳔이라 리로다
150
이경의 국셔 뫼셔 삼샹이 가지로
151
관소로 려가니 졉도 가이 업
152
왜공이 오브터 년야 다
153
곱프고 밤이 드니 내 의셔 식여 먹고
154
슉공을 바다 보니 뉴육 어 총고
155
밥 그 국 그 잡탕 나 쟝 죵
156
무엇 드리고 큰 졉시 나 속의
157
다엿 가지 거 나죵의 그
158
죠금식 노코 세번재 드리 것
159
가지 김 그과 무오 쟝아지로다
160
감 가 버혀 례로 와 드리니
161
돈 세 조각과 귤병 누른 을
162
두 낫식 노하 내야 녕니 왜쇼동이
163
례로 와 드리니 보기의 가쇼롭다
164
나 고 여 비쟝 방의셔 자고
165
시온 집이 션방의 가 잔다
166
초칠일 쳥명야 노키 됴컨마
167
수험도 못 엿고 치목도 쥬변로
168
여긔셔 묵게 되니 궁금기 이 업
169
타누의 올나안자 삼현을 크게 치고
170
션쟝 젼악 마샹 니러나 무니
171
무수 남녀 왜가 고 와 구 보
172
영졉관 사이 봉 나 판 둘이
173
삼 신긔 니 신 읍신다
174
부방의 드러가니 삼 신 모다
175
말고 허여질 제 죵샹 뒤흘 라
176
삼방으로 드러가니 님 니 오 홍 다 왓고나
177
왜놈이 보낸 음식 내여 노코 시 보니
178
네모진 세 층합을 삼목으로 거
179
삼듕이라 일홈고 층의 두 가지식
180
겻겻치 녀허시니 합여 여 가지
181
가지 송풍이니 빗 누고 산 고
182
뉴미라 거 강 형상이오
183
쇼츈과 화면은 오화당 모양이오
184
낙안 세 가지니 븕고 희고 누고나
185
반월형 과 반뇽형 과
186
셜당 타셔 라다 고나
187
갓가지로 먹어 보니 마시 들콤고나야
188
열다 복 듕의 세히 네흘 어더시니
189
벽슈의 마내니 그 마시 긔졀다
190
왜놈이 만홀야 일공을 아니 주매
191
뉴영쟝과 오션젼이 짓고 촉니
192
일노 바텨디라 손 묵거 걸
193
션방의 와셔 자고 늦거야 니러나니
194
내 비파 박듕이 블근키 업
195
어제 오 조반쥭을 늣도록 아니 주니
196
션샹의 나와 안고 결 십도 온 후의
197
니비쟝의 방의 가니 향고직 거고
198
가합니 못 엇거 최영 쳔거니
199
어려워라 마다 이 놈을 졍다
200
다 동 상뉵 쳐셔 다 승쳡 온 후의
201
급급히 가셔 셔 장계 편의 부치니라
202
왜인의 오일 지공 오이야 바티
203
무수히 죠롱니 졀통키 측냥 업다
204
초구일 새벽비의 치노라 을 니
205
풍셰가 불슌야 묵으니 민망다
206
초십일 비 개고셔 월이 뎡됴커
207
타누의 올나안자 진 공인 불러다가
208
삼현을 크게 치고 수 쇼견터니
209
비쟝들 나와 샹이 드시고
210
웃고 오시 김진의 풍뉴기
211
늙어도 쇠치 아니니 긔특다 신다
212
젼악이 져 불고 션쟝이 병곡야
213
새도록 즐기다가 계명의 침다
214
십일일 쳥명커 뉵션이 나역야
215
포구로 나오면셔 됴션을 라보니
216
녁녁히 다 뵈고 반갑기도 반가올샤
217
왼편의 바다 고 올흔편의 뫼흘 고
218
혹션 혹후야 돗 고 나아가니
219
밀물과 바결이 사오납고 거스려
220
갈 길히 젼혀 업서 일긔션 방포고
221
대포로 드러가니 다 뒤흘 라
222
만희 굴곡야 뉵칠이나 드러가니
223
인가 오 호오 빈잔이 참혹다
224
우 안잣다가 왜놈들을 만나보고
225
셩명을 무러보니 질화 도슌길일쇠
226
여긔셔 부듕 가기 언고 무러보니
227
뉵노 이이오 슈로 더 머다
228
션창이 험기의 샹부방 못 니고
229
홍쵸관과 방의 가 상뉵 치고 도라오니
230
오션젼 와셔 보고 밤든 후 도라가
231
십이일 풍우야 못 가고 묵게 되니
232
식후의 샹부방의 가 샹네게 잠간 뵈고
233
동들 자보고 내 방으로 도라와셔
234
임도 홍비쟝 쟝긔로 쇼일다
235
십삼일 역풍으로 묵으니 심난다
236
십일 울 의 대풍고 우박야
237
훙흉 물결 뫼쳐로 니러나니
238
뉵션이 진탕야 다 서 브드잇고
239
줄이 어지니 뒤의 격군들이
240
소치고 구완야 다 줄노 쳐맬 제
241
방이 일니이여 숨을 어이 자리
242
아의 니러나셔 동을 만나보고
243
위고 무셥던 줄 서라 치위고나
244
왜공은 아니 주고 오도 묵으니
245
굼굼고 심난기 부 다소냐
246
오은 보름이라 망절녜 새배고
247
삽션의 두로 녀 각각 문후 잠간 니
248
왜사공 와셔 비록 람 아니 부나
249
물결이 사오나와 못 가리라 고나
250
도듕이 토박야 니가 가난니
251
효 토란 심거 두고 글노 구황 다커
252
서 되 보내여셔 사다가 먹으니
253
모양은 하슈오요 그 마 극히 됴타
254
마 치 므 기 더 낫도다
255
이 내여다가 아국의 심거두고
256
간난 셩들을 흉년의 먹게 면
257
진실로 됴컨마 시졀이 통한야
258
가져가기 어려오니 죵을 어이 리
259
비 개고 이 아 야경이 긔특거
260
죵샹 뫼시고셔 임 오 니 홍 네 비쟝과
261
판옥의 올나 면을 라보니
262
건곤은 뇨학야 졈 구 바히 업고
263
만산은 녀하야 편의 둘러 잇고
264
슈파 불흥야 기름쳐로 고앗
265
잇다감 큰 고기가 물 속의셔 노고나
266
신셰 일평이오 고국은 쳔니로다
267
오밤의 여긔 와셔 이리 놀 줄 어이 알니
268
셰샹의 모 거 나 일이로다
269
십뉵일 풍우야 못 가게 되니
270
샹션의셔 니강녕과 쟝긔 세 번 니긔오니
271
졍샹이 기리시고 부체 나 상을 주
272
십칠일 슌풍 부니 졍샹이 병이 잇고
273
부샹도 져야 됴흔 람 허송니
274
애고 심심야 여러 동 리고셔
275
왜션 나 비러 고 듕뉴야 풍뉴고
276
예 가보고 졔 가보니 왜인들이 막고나
277
오이야 오일 지공 비로소 가져오니
278
찬물은 아니 주고 다만 만 주고나
279
십팔일 죵샹과 식젼의 상뉵 치고
280
샹션의 가 세 문로 원노시 운니
281
졍샹이 보오시고 지필묵 샹을 쥬
282
십구일 셔북풍의 비로소 고
283
뉵션이 례로셔 악포로 디나오니
284
병풍 험 바회 울산브터 여긔디
285
오니 막아 물 속의 숨어 잇고
286
디날 만치 고지 터져시니
287
만일 죠금 그 가면 경의 파션매
288
왜놈이 두 두 편의 버러 셔셔
289
길을 내여 노코 그 이로 가라 니
290
구당과 염여퇸들 이에셔 험손가
291
여 조심야 례로 너머갈 제
292
물결이 사오나와 셜산이 니러나니
293
가 못 견여 틀니여 틈을 내
294
위고 황공야 비 젼혀 업다
295
거긔 너머셔니 긴 숨이 나고나
296
람아 사오나와 셔박포로 드러가니
297
인가 수삼 호요 경개도 긔졀다
298
역관셔 뒤의 셔북이 잇다커
299
두어 동 리고셔 구경로 올나갈
300
총울 초목 속의 수십 층 셕계 올라
301
문 열고 안자 보니 계뎡이 쇼쇄고
302
화초가 긔이야 크나흔 동나모
303
붉은 만발고 열 길히나 놉하시며
304
종녀 단 노숑 감 좌우 둘너 잇고
305
영산홍 남쳔화 난만이 픠여시며
306
그 밧긔 긔화이초 무수이 둘러시니
307
비록 겨이나 예 홀노 봄이로다
308
졀 뒤 왼 뫼 나모 다 몰쇽 츈일쇠
309
졀집이 삼 만인 듕 뫼 북 고
310
상탁이 졍결야 틔글 나 업고나야
311
죠고만 법당 속의 금부쳬 세히 잇
312
안계 구버보니 바다히 호슈 되여
313
대수풀 속으로셔 은영야 뵈고나
314
아국의 잇게 되면 졀승타 리로다
315
즁의 모양 보와 니 머리 다 고셔
316
아모것도 아니 고 쳔닉 거문 오
317
북이 닙어 잇고 가사 메여시
318
로 흰 골희 가의 라 잇다
319
져므도록 풍 여 두통이 심기의
320
져녁밥 혀 먹고 방의 누어시니
321
어두운 후 비가 오니 심난키 이 업다
322
이십일 셔풍 불매 셔박포 묵게 되니
323
삼 샹 셔복 가 죵일토록 완경
324
나 몸이 알파 됴리고 누어셰라
325
이십일 조반터니 뉴한상 와셔 보고
326
졍긔산 먹으라매 세 쳡 지어 복 먹다
327
태풍이 불니라고 판이 블니라고
328
과연 황혼 의 비 오고 람 분다
329
감와 강고도리 왜놈이 드리오니
330
죵샹이 호실 내게도 보내엿다
331
이십이일 죵일 대풍 가 못 가고 병 드러
332
방의 드러누어 두시 운니
333
죵샹도 감긔 어더 힌 밥 시다
334
이십삼일 병이 나아 삼션으로 두로 녀
335
왜놈은 가쟈 일션 사공 막고나
336
병 들고 의박 줄 졍샹이 드시고
337
샹가 념녀샤 양피옷 보내엿
338
념일 풍역야 못 가니 답답다
339
뉴영쟝 병이 드러 셔복 가 됴리
340
념오일 고 복군 리고셔
341
풍뉴 치고 포구의 가 복 잡아 회 먹고
342
대풍이 이 나니 젼방으로 도라와셔
343
민명쳔 병을 뭇고 유지의 방의 가니
344
약과 홍시 먹이거 뉴영쟝 보라 가니
345
일 졔인들이 만히 와 안자고나
346
도라와 밥을 먹고 다시 올라가셔
347
밤 드도록 말다가 도라가 자고 니
348
이 날은 념뉵이라 쳔명의 니
349
풍죠가 구역매 돗 지오고 노역야
350
금포 와 다히고 뉵십니 계유 왓다
351
졍죵방 긔복션은 포북의 닷 주고
352
부방의 긔복션은 포남의 다혀시니
353
이 이 머러 왕 길 젼혀 업다
354
수십여 호 압 어망을 덥허시니
355
미 검고 기 기러 몃 발인 줄 모러라
356
져녁의 비션편의 셔울 긔별 드러니
357
가국이 무사니 깃브기 이 업나
358
회시 긔별 못 드니 굼굼기 측냥 업다
359
념칠일 북풍 부니 효두의 발션야
360
방포 압뇌 휴도 지나 션두포 져만 보고
361
부듕으로 드러갈 좌편으로 도라보니
362
쳔가 망망야 너기 이 업고
363
우편을 도라보니 긔암과 긔셕들이
364
구구 졀승야 응졉 불가리로다
365
삼현 치고 지오고 포구로 드러가니
366
도쥬와 졍암승이 고 나와 맛
367
도쥬의 보니 오 비단 쟝막 모양
368
묘샹각 모양이오 긔와 둑과 챵과 춍을
369
어러이 속의 피 셩셩뎐을
370
교의예 걸치고셔 그 우 안자시며
371
이졍승 보니 블근 일산 잣
372
다홍 비단 오 닙고 평상의 안잣다가
373
션이 드러가니 일시의 니러나셔
374
두 번식을 읍니 샹들도 답을
375
두 편의 굿 보니 남녀노쇼 귀쳔 업시
376
언덕의 몌여 잇고 바회예 묵거시며
377
도 고 와셔 보니 그 수 어이 알리
378
신 겨실 셔산로 졍엿다
379
부치가 터히 좁아 들 나히 바히 업고
380
언졍을 올니며 바회의 의디야
381
져비집 브쳐 짓 집들이 니엿다
382
져녁의 밥을 먹고 셔산로 올라가니
383
삼 샹 겨신 방이 간식 격지 두어
384
바다흘 님야셔 경치가 긔특다
385
션챵을 무어 올녀 야시니
386
안온고 긔졀야 진실로 관방일다
387
우리네 이실 의 북편일다
388
밤 든 후 슉공 오니 옷칠 세 상 우
389
서너 긔식 노아시니 먹을 것 바히 업다
390
나죵의 드리 것 뉴로고나
391
방마다 구돌 업서 다 몰쇽 마로방의
392
다담이 담북 고 바람벽은 아니 고
393
면의 밀장디로 람을 막아시며
394
그 안의 금병풍을 뉵쳡을 쳐 이시며
395
벼로 필묵 됴 붓과 쵹 화로 담
396
다 새도로 라셔 다 각각 노아시며
397
비단 니불 비단 요흘 사 수로 드리
398
니불은 소매 이셔 셜면로 우 두어
399
둣겁기 측냥 업고 요 모양은 이 널너
400
니불쳐로 크다 고 소음을 장히 두어
401
안밧기 다 비단이 각 빗치 다 잇고나
402
신 니불 요흔 대단으로 여시며
403
격군과 노들이 무영으로 여시며
404
그 갑 혜여보면 은 수쳔 냥을 준다 하
405
판옥이 소야 자기 어렵도다
406
역관들 겻 드러 므 말 의논인지
407
새도록 요란니 괴로와 어렵도다
408
이튼날 소셰고 방의 드러가니
409
삼신 모다 삼현 장히 치고
410
쇼동으로 무며 인으로 덕담고
411
줄거리고 조 시겨 죵일토록 단난니
412
왜놈들 구경며 긔특고 장히 너겨
413
서 보고 지져긔며 입 버리고 다
414
도박 장계 일 매 가셔 부치고셔
415
거쳐가 소야 방으로 나오려니
416
삼문 만뉴키의 쵸 혀고 안잣더니
417
격벽의 민명텬이 냥의고 긔 와셔
418
삼현 치고 놀라 가셔 밤 들거야 가고나
419
십구일 조반 후의 민명쳔 보라 가니
420
쳐지가 고상고 안계가 광활니
421
헌창이 소쇄 화묵이 층울야
422
햐쳐 의논면 일듕 뎨일일다
423
부복션쟝 김진원이 좌슈포 이실 적의
424
궁긔 낙샹야 병드러 누엇더니
425
오 예 와 니 참혹도 참혹샤
426
초일일 쳥명커 망궐녜 새고
427
방의 잠간 녀 햐쳐로 도라오니
428
니졍암 삼신긔 찬합 일비 드리시
429
일홈은 아니 고 별호 도셔 텨 왓기의
430
불경타고 도로 주니 고쳐 일홈 와시
431
그제야 밧고 보니 일흠 늉방일다
432
졔슐관 셔긔들과 삼슈역 삼판긔
433
각각 녜물 여시 증루라 엿기의
434
아니 밧고 도로 주니 증유라 고쳐시나
435
무례키 가지매 다시 내여주니
436
세번재 고쳐 온 도셔 아니 치고
437
계암 별호 와시니 그제야 바든 후의
438
우리도 져와 티 서너 가지 답녜고
439
별호 보낸 후의 졔 녜물 혀 보니
440
남초 이십 근과 션 네히로다
441
일들 화 주니 다 됴화 고나
442
초이일 쳥명고 셔산셔 묵으니라
443
공인 두 놈 격군들이 병드러 못 가기의
444
김진원 관 가 동로 보내니라
445
봉 세히 몬져 와셔 삼 신긔 쳥알니
446
와룡관과 학챵의로 삼듕셕의 안자시니
447
군관들 군복 고 좌우의 립니
448
봉이 드러와셔 공슌이 례니
449
신 니러셔셔 두 번 담읍고
450
차담상 다 먹인 후의 고 나가고셔
451
대마도쥬 평의창과 니졍암 뇽방이와
452
셔산 장노 와셔 뵈 닙고 것 고이다
453
도쥬의 거 사모 형상 되
454
모 이 젹고 나 시
455
언월형 모양으로 국뒤 드리웟고
456
니졍암 던 거 파리 머리
457
면으로 드림야 투고텨로 드리오고
458
홍금 가사 곱게 지어 복이 닙어시며
459
셔산 쟝노 거 더고나 고이야
460
모양은 휘항 고 뒤이 죡야
461
괴귀텨로 니러셔고 나흔 알 잇다
462
샹와 샹읍고 자리의 안 후의
463
다 잔 먹이시고 차담을 드리오
464
샹과 도쥬 댱노 좌우 겻상 초왓고
465
셔산 댱노의게 다만 상 주온 후의
466
샹 져 드러 먹기를 권오니
467
삼인이 져 드러 두세 번 집어 먹고
468
노앗던 져 노흐니 다 세 슌 드리고셔
469
사샹 슌슌마다 져 들면 저도 든다
470
도쥬의 안 뒤예 사모 놈 세히 안고
471
두 쟝노 안 뒤의 샹재 셋식 안잣고나
472
왜봉과 최슈역이 피 젼어 서 다
473
파야 도라간 후 우리도 도라왓
474
져녁밥 먹을 제 뉴영쟝 병이 나아
475
소셰고 나와시니 깃브고 다다
476
무진년 일긔 보니 귀국셰라 놈이
477
별호 남암이오 우동의 졔로셔
478
음흉고 불냥야 해로온 일 만타터니
479
일학이라 일홈 고쳐 부산셔 나올 제
480
됴션쥬로 나왓다가 예디 와 잇더니
481
호차 거 의 간관을 제가야
482
우리와 가게 되니 근심이 젹디 아니
483
판 가지로 우리 와셔 뵈
484
킈 크고 글 잘 고 삼국 말을 다 다
485
얼굴이 검프러 소견이 흉참다
486
초삼일 마도쥬 판을 보내여셔
487
슈역의게 쳥을 고 우리 보쟈
488
긔년 적의 례 졀 토아셔
489
이 본 일 업고로 칭병고 아니 가니
490
니졍암 글을 보내고 운야 달나
491
뉼시 나 졀구 나 와운산인 도셔 쳣
492
화답야 보낸 후의 방의 드러가니
493
칠언 뉼시 세흘 지어 삼 신긔 드리고셔
494
운야 달나 못 젼은
495
챵화 못 노라 아니 지어 주엇고나
496
셔듕화 뉴영쟝이 겻방의 와셔 드러
497
쥬야로 단난니 이 든든다
498
초일 방의 가니 샹 심심야
499
초한 적 인물로 일을 비교야
500
댱완으로 날 비고 시온은 쟝숑이오
501
비위라고 집은 범증이오
502
민명쳔은 관우 고 김영쟝은 댱비로다
503
셔듕화 룡이오 니강녕은 마쵸라고
504
니매 황튱이오 뉴영쟝은 향춍이오
505
임도 마라고 오션젼은 왕평이오
506
조도 위연이오 냥션젼은 마량이오
507
홍쵸관은 미츅이오 니마 쥬창일쇠
508
니좌국은 냥읜고로 양의라 일홈고
509
젼긔 동명타고 뉴긔라 고나
510
일쟝을 대쇼고 의 도라와셔
511
왕유 궁 열두 슈 삼뇨로 운다
512
초일 졍샹이 두 셤 동혀 노코
513
일 졔인 듕의 아모나 들나 니
514
아모도 못 들고셔 장 군관 조만호가
515
음 겨유 니 그 을 샹을 주
516
예놈들 모다 보니 피연키 막심다
517
남편 언덕 우 안 잇다커
518
삼방의 졔인들로 삼현을 압 셰고
519
구경고 거러가니 두 솔바탕 계요 다
520
술집과 면방 젼 좌우의 버럿
521
굽히 잇 왜녀들이 풍뉴 둣고 다 나오
522
길집 겨집이 문 열고 뵈
523
뵈틀 연장 온갓 거시 됴션과 가질다
524
층층 돌듕계 이 놉게 올라가니
525
대문 들고 듕문 드러 졀의 올라 보아니
526
방샤도 광활고 화초도 긔묘다
527
금칠 부텨 나 북벽의 안자 잇고
528
동편의 집 속의 도민들의 부모 신패
529
두로 버려 안텨시 영게 옷칠고
530
금으로 장식야 츅도 고 신쥬 다
531
북벽의 쟈근 문을 이 갓거
532
왜통 달내여셔 문을 열고 드러가니
533
즁 나 안잣거 긔골이 쳥슈다
534
필묵을 달라 여 필담으로 문답고
535
다과 내여 먹이고셔 글시 구거
536
됴원 대필 어더 열아문 댱 셔 두고
537
오던 길로 도로 나와 광쳥 둘러보니
538
경개도 졀승다 안의 비면
539
뫼 빗과 바다 경이 이 낫다 리로다
540
남누의 올라안자 죵일토록 됴망니
541
이역의 손의 근심 져기 잠간 니로다
542
임도 병을 뭇고 삼문 리고셔
543
뉴우셕의 듁지 십칠 슈 운다
544
초뉵일 조반고 방의 올라가니
545
도쥬가 문안 일이 보내엿다
546
쟈 보내여셔 신 쳥오니
547
위의 초아셔 삼샹 가오실
548
구십오 필 안장 을 도쥬가 보내엿
549
샹방의 샹듕하관 다 을 이시며
550
냥의와 삼슈역은 가마 잇
551
그 가마 모양 보니 우흔 옷칠야
552
디봉 마루쳐로 나모로 여시며
553
면의 흰 돗로 마치맛게 베혀 내여
554
나모 조각 다히고셔 못 박아 며시며
555
왼녑흐로 밀창야 그리로 들게 고
556
압과 올흔편은 사 바른 밀창 내고
557
등으로 네모 얽어 아래 우흘 다래고셔
558
아래채 아니고 기로 마루 우
559
옷칠 긴 나모 붓박이로 언저 노코
560
두 놈이 메고 가니 멜통과 마치 다
561
우리 아니 가고 햐쳐로 도라와셔
562
격군 네 놈으로 흰 을 치이더니
563
예놈의 아들이 울 틈으로 여어 보고
564
샹관을 브면셔 빌면셔 달라거
565
죠금식 화 주니 놀며 됴화 다
566
뎐어관 승칠이가 드러와 뵈오
567
위인이 신실야 간사티 아니커
568
전모 먹게 주니 죠금 혀 먹어 보고
569
품으로 됴 내야 가지고 나가더니
570
져녁의 오 제 결 니길이
571
밥 드리고 드러와셔 먹으라 권거
572
식후기의 가 불러 목 먹을다 양니
573
우리가 독 잇다고 아니 먹 줄 알고
574
제가 죠금 마 보고 졀이 권거
575
인졍의 걸니여셔 서너 술식 마 보니
576
네 가지 반찬들이 마시 퍽 무던다
577
화젼으로 답녜니 티샤고 도라간다
578
초경냥의 신가 타고 오시거
579
즉시 가 뵈고셔 연향 졀 뭇오니
580
샹 오시 연노의 굿 보니
581
그 수가 무수고 좌우의 시졍들이
582
번화키 극진고 부듕의 드러갈 제
583
대문의 니러셔 니 리고
584
뎨이문의셔 니러셔 가마 니 다 리고
585
세재문의 다러셔 신 남여 려
586
도쥬가 나 맛 각각 도로 인도야
587
여러 구븨 드러가셔 졍텽의 올라가니
588
승션다 녕이 나니 우리 로 가셔
589
머리의 셔셔 보니 각션으로 오신다
590
밤 든 후 마도쥬가 날 탄다
591
십삼일 진시냥의 비로소 발션
592
도쥬가 알 셔고 뉵션이 례로다
593
포구 계유 나니 셔풍이 이 부러
594
가기 심히 나 물결을 헤티고셔
595
나 라나니 람과 물결 소
596
텬디가 딘동고 하을 도라보니
597
빗과 구덩이 뒤흐로 고나
598
방이 진탕야 이리 눕고 뎌리 눕고
599
돗대가 움여셔 우도둑 소
600
하금 놀라오니 혼이 니톄다
601
션듕의 사들이 다 몰쇽 구토고
602
다만 나 도샤공이 치만 잡고 안자시니
603
염나국 십왕뎐이 널 나만 렷고나
604
슬프다 죽기 살기 호읍의 렷더니
605
다이 미시냥의 일기도 풍본포의
606
닷 주고 다히니 이제 사랏도다
607
오니 큰 바다흘 세 시만의 드러오니
608
왕뎡이 도은 배라 하이라 리로다
609
위 일긔션이 삼십니 못 나와셔
610
아 구목치가 풍도의 브러지
611
가 기우러져 물 속의 들락날락
612
녈 바다 물결 면으로 니러셔셔
613
타루 우 잇 사 의복이 다 젓다
614
다 치 계유 혀 바다 드리치고
615
궁긔 박으랴니 람의 노 가
616
만쟝이나 올나가다가 쳔쟝이나 려지고
617
인녁이 일 업서 속슈고 안잣더니
618
물결이 모라다가 션혈의 졀로 드니
619
하이 도으시고 귀신의 힘이로다
620
야흐로 황황 제 샹셔의 무지게가
621
걸터 호위고 날빗치 빗초이니
622
긔특고 이샹 일 쳔고의 드무도다
623
졍샹 도홍로 국셔 야 지고
624
우 의지야 가지로 지랄 제
625
대구 통인 박태튱이 젹삼 버서 달나 고
626
울면셔 쳥니 졍샹이 니시
627
사의 죽기 살기 오 달려시랴
628
죵시이 아니 주니 졍녁이 갸륵다
629
그 의 부긔션이 겻트로 디날 적의
630
셔듕화 뉴영쟝이 민명쳔 라보고
631
손 드러 영결니 그 경 각니
632
참혹고 망조여 비 전혀 업다
633
됴 김 니 세 군관은 인 못 히니
634
불샹 최봉녕이 제 형 위 거동을
635
부션의셔 라보고 질야 업더뎌셔
636
못 번다 니 잔잉셔이고
637
뭇 린 후도 반송장이 되엿다
638
삼복션 부긔션이 례로 드러오고
639
일긔션 일복션이 나죵의 드러오니
640
부죵샹 샹방의 가 손잡고 눈물 지고
641
우리도 서 잡고 눈물이 절로 난다
642
뭇 결션야 션창을 여시
643
큰 널로 마루 노코 두 편의 난간고
644
리 다리도 듁난을 다엿다
645
위여셔 관샤 지어시니
646
일이 다 드러도 나믄 관이 더러 잇
647
굿 보 왜인들도 마도의셔 이 만타
648
졉 긔구 범 마도의셔 십 나의
649
우리들 뎡 방을 다니 드럿기의
650
셔 뉴 냥인 겻방 어더 가지로 들게 되니
651
병쟝 금침 포딘 것 화려고 갸륵다
652
십일 대풍고 비 오고 우레다
653
비젼 봉 판 삼듕을 와 드린다
654
계암의 네 슈 글을 운야 보낸 후의
655
비와 람이 져녁의 아도곤 흉영야
656
졍션 줄이 허져셔 대냥으로 나갈 적의
657
봉 판 발 구고 손조 물의 드리라
658
다 줄로 계유 야 갓가로 진졍
659
난간 야지고 이 다 녓다
660
션장 격군 령들이 밤새도록 니
661
샹이 쥭을 어 다 주어 먹이니라
662
십오일 망궐녜 터 좁아 궐니라
663
신긔가 불평야 탕반 먹고 됴리다
664
십뉵일 삼문로 뒷뫼의 올라가셔
665
마도 라보니 희미히 뵈고나
666
가국은 머러 가고 일신이 고위
667
이 어히업서 도로혀 타연다
668
치묵을 고치라 큰 나모 여긔 업서
669
다 가 어더다가 노라면 더노다
670
평호태슈 사 브려 듕을 보내엿다
671
십칠일 샹가 뒤뫼 올으시니
672
주먹만 한나산이 건방의 먼니 뵌다
673
악공 불러 삼현 치니 굿 보니 장시고
674
도쥬 셔긔 평공겸이 드러와 우리 보니
675
나히 계유 이십이오 미목이 쳥슈다
676
소견의 랑매 필담고 보내니라
677
도쥬 풍악 보쟈 매 경 삼현 보내니라
678
십팔일 동지 문안 삼방의 가 두로 고
679
망하례 이 좁아 뒤뫼 포셜고
680
금관옥패 초고셔 샹 남여 고
681
올라가 녜 후 풍뉴고 안시고
682
듕의 춤추니 례로 춤추이니
683
왜인이 슉공 흑칠긔의 밥을 담고
684
거믄 석거시며 반찬 담은 칠 그
685
젼혀 즁의 풍쇽이라 우오나 경편다
686
삼방의 각각 례 차담을 드리오니
687
가지로 즐기다가 져녁의 도라오다
688
평호 왜인 두 사이 글 가지고 드러와셔
689
운여 달나거 즉시 지어 보내니라
690
십구일 쳥명니 인 불러 쥴 걸니고
691
져므도록 풍뉴 병드러 못 가니라
692
이십일 졍샹이 일을 밥 먹이다
693
념일일 졍암승이 글 네 슈 보내고셔
694
운을 쳥매 즉셕의셔 지어 주다
695
뒤뫼 올라실 졔 건녕귀 여 보니
696
남도 동의 잇고 마도 건방이오
697
마도셔 부산진은 방이 되고나
698
예셔브터 노키 동북을 간다
699
념이일 쳥명니 샹방의셔 밥을 고
700
셩균관 식당 다 몰쇽 려 안고
701
뷘 그 몬져 노코 그 버거 밥을 주고
702
국과 물 식혜들과 좌반 팀 온갓 거
703
로 드리고셔 번의 술을 드리고
704
일시의 슉 주고 일시의 샹을 내니
705
샹듕관 합여셔 예슌 네히 되고나
706
글 예놈이 와 도미 나 감 닐곱
707
공경야 드리거 지필노 답다
708
금은 등병 온갓 거 왜통 내여 주고
709
놈 주라 고 내 방으로 려오니
710
불축손 마두놈이 간사고 욕심 만하
711
됴션 사 주노라고 다 가져 간다
712
념삼일 대풍니 병 덧쳐 누엇더니
713
삼문 와 보거 쇼 물운야
714
대풍 연구 지을 적의 임비쟝 국슈 고
715
계란 고 왜엿 내여 우리 넷 먹게 고
716
니비쟝 오션뎐은 감 권고
717
념일 방의 가니 튝태슈 쟈 왓
718
십삼일 부러딘 치 튝젼 가 다기의
719
브러딘 댱단 형상 그려셔 보엿내
720
왜인의 우리 졉 극진타 리로다
721
오니 먼 바다 물결이 미러다가
722
만의 게 가니 고이키 측냥 업다
723
비태슈 보낸 거시 화복 모양 거
724
궤예 너허다가 샹긔 드리오니
725
동들 화 주고 왜봉 더러 주니
726
나토 아니 밧고 도로 와 드리거
727
샹이 무시니 왜봉 답
728
제 아비 사라실 제 속의셔 람 만나
729
가 굼기 나셔 물이 드러오
730
막을 계규 바히 업서 아조 죽게 되엿더니
731
어로셔 큰 복이 그 굼긔 브드치니
732
물이 바히 아니 드러 인야 사라나니
733
손의게 유언야 복 먹디 말라 매
734
은혜 감격나 못 먹고 드리이다
735
드매 긔이고 비록 못 왜놈이나
736
아븨 유언 딕히 양 인심이 잇다 다
737
념오일 념뉵일은 일기도션 묵으니라
738
부방의셔 밥을 여 샹방텨로 호궤다
739
념칠일 잔풍커 왜션의셔 삼현 치고
740
삼방 일을 두로 구경라 니
741
뎐어관이 고 와 못 가게 말리거
742
놉흔 뫼 올라가셔 됴션을 라보랴 니
743
너 비록 무졍나 인졍을 막디 말라
744
그 놈이 알 셔셔 인도야 오거
745
건넌편 져근 셤의 가지로 가셔 보니
746
면이 악셕이라 다힐 업디라
747
어이야 속겻니 짓고 회션야
748
을 집 근쳐의 가 두로 구경랴 니
749
뎐어관 급히 와셔 셩내야 말리거
750
일 업서 도라오니 고 통분야
751
념팔일 슌풍매 샹 랴니
752
일긔션 도샤공이 의논이 휴이야
753
이러케 됴흔 날을 공연이 허송니
754
애은들 어이리 시유의 방의 가
755
황감시 년구야 머 담 물운다
756
념구일 죵샹이 밥과 반찬 만히 야
757
졍부방 던 대로 일을 다 먹이다
758
포변 왜녀들이 우리 라보고
759
통의게 말을 화 됴션 브거
760
격군 놈 답 어이야 브니
761
오 밤 내 집의 와 날과 자고 가소
762
격군이 마다니 왜녀가 웃고
763
못 삼겻다 못 삼겻다 즘이라 리로다
764
일션의 사들이 일시의 대쇼고
765
이후 그 놈려 셩이라 일니
766
열업고 븟그러워 말 업서 고나
767
날마다 언덕의셔 왜녀들 모다 와셔
768
졋 내야 치며 고개 조아 오라 며
769
념치가 바히 업고 풍쇽도 음난다
770
납월 초일일의 쳥명고 동풍 분다
771
이졍승 글을 보내고 운여 달라
772
어가 불경키에 짓고 도로 주다
773
초이일 비가 오니 쥬듕의셔 묵으니라
774
초삼일 셔북풍의 뉵션의 발야
775
포구의 나갈 적의 물과 돌이 사오나와
776
우리 치묵 병풍 대만 남고 브러지니
777
일션이 경황야 샤공 격군 노들이
778
반 남아 슬피 우니 경이 참혹다
779
근심타고 무며 애다고 나을손가
780
태연이 의 안자 쟝긔 두고 건너가니
781
션듕의 사들이 명완타 고나
782
다 치가 잇건마 그 키 이고 제
783
업칠가 념녀야 반돗 고 노역며
784
일기 예션들 일시의 어가
785
람이 바히 업서 비록 가던 못 야도
786
이리 뒤 져리 뒤 하마 면 업칠노다
787
마도 바다 위니 예비면 태평일쇠
788
묘진방을 먼니 보니 두어 봉이 죡고
789
이거 남산이오 오미방의 놉흔 봉은
790
튝젼라 니 갈 가망이 바히 업
791
오후의 북풍이 녈게 크게 부니
792
키 러딘 위 무셥기 니소냐
793
방의 누은 사 뒤쳐지고 업더지고
794
오좀 누던 니비쟝은 요강 안고 잣바지고
795
안잣던 임도 농의 치여 너머졋
796
창들과 격좌들이 격격야 소니
797
졍신이 어즐고 인가 흐려진다
798
비록 토튼 아니나 몸 둘 히 젼혀 업
799
동북간의 져근 셤이 아오라이 계요 뵈니
800
왜놈려 무러보니 울능도라 고나
801
튝와 남도 뫼히 갓가이 졈졈 오니
802
튱산이 웅쥰야 뉵지 년엿
803
십여니 못 밋처셔 날이 셔 어두오니
804
남도 라보니 무수 등불 빗치
805
포구의 미만야 별쳐로 버러시나
806
예션라 아니 오매 화젼 노코 방포
807
죵시 아니 오니 졀통코 심난다
808
부긔션 돌의 걸녀 밋셔 물이 드니
809
부샹과 션듕인이 계요 왜션 비러 고
810
션창의 리고셔 짐은 다 몰쇽 뎌뎟
811
어둡고 이 머러 가셔 밋처 못 보고셔
812
창황여 소 듯기의 경심다
813
이경냥의 다히고 뭇 려 두로 보니
814
부샹이 방셕 업서 포변의 안잣거
815
나아가 위문고 군관 역관 자보니
816
다 몰쇽 넉 일허 어줍어 말 못 다
817
관소로 드러가 내 병이 이 알파
818
승칠의게 병풍 비러 람 막고 누엇더니
819
이윽고 삼뇨 와셔 드러 든든다
820
방의 버린 즙물들은 기의셔 이 나의
821
초일 동풍 크고 우셜이 교하야
822
뉵션이 움이니 표풍가 념녀로다
823
이 흔 튝젼오 태슈가 잇
824
지명이 복강이오 여긔셔 뉵십닐쇠
825
촌난이 극히 젹고 관소 장녀야
826
비단댱을 쳐 이시며 셩셩젼을 라 잇고
827
듕방각도 욕실 뒷간 곳마다 졍묘다
828
어적긔 파션 일 예션 업 타신디라
829
호관의 문안들과 태슈의 보낸 삼듕
830
아니 밧고 퇴쳑고 이 연 초며
831
치 부러딘 젼후 곡졀 장계야 봉니라
832
녜브터 왜유들이 글 바드라 오 사
833
벼로 됴 필먹 들고 거울 칼 가외 등쇽
834
무수이 가지고 와 윤필을 오되
835
션 몸이 되여 나셔 글 지어 주어노라
836
갑 어이 바들소니 다 주어 내여주니
837
그 놈들이 물유야 열 번이나 쳥고
838
도로 와 드리되 매매히 양니
839
역관들이 와셔 되 예브터 문들이
840
이거 바다다가 치 빗도 갑고
841
친구들도 주디라 젼녜로 바드쇼셔
842
젼 사은 바다던디 우리 소견 그와 달라
843
나토 못 바드니 오활타 웃디 마소
844
초오일 셔풍고 눈도 오고 흐리니라
845
여 격군들과 왜놈도 고
846
파션 예다가 무수이 줄을 야
847
우 사들과 언덕의 잇 예놈
848
일시의 소고 흐로 어오니
849
소가 진동야 바다히 움인다
850
션창의 여 노코 물구멍 혜여 보니
851
아모려도 못 디라 앗갑고 불샹다
852
튝 봉 의 셔셔 듕을 바쳐디라
853
무수이 애걸 도로 주고 아니 밧다
854
초뉵일 음고 미우가 공몽다
855
부복션은 긔션 삼고 부복션의 사들은
856
왜션으로 올마가니 좁아 못다 드러
857
부방 셔긔 원 시온 방의 드다
858
한흥이 왜젼 주고 엿 사다가 드리거
859
먹어 보니 극히 됴화 아국도곤 만히 나의
860
박제샹 슌의고 나흥유 가치이며
861
졍포은 슈졀고 신고령 와 잇던
862
다예라 니 못 가 보니 애도다
863
개 밧긔 바다 속의 바회 나 셔 이시
864
두 굼기 크게 녀 긔구멍 디라
865
일홈이 도문이오 비귀라도 고나
866
예션 아니 나온 일로 도쥬 쳥되
867
칭병고 아니오고 낫거든 오마
868
불 혀고 심심터니 왜놈이 쳥거
869
고포산 심경시 뉵언으로 지어 주다
870
초칠일 마도쥬 쟈 옷 믠머리로
871
현조 고 와셔 뵈 졀 젼과 다
872
필담으로 서 뵈 졉 규구
873
젼녜가 다 이시니 예션이 아니 와셔
874
부션이 치패니 샤쳐 거시오
875
샹 어셔 고쳐 을 보낼 말을
876
졀졀이 셔 주니 아이의 펴 보쟌코
877
죵쟈 내여 주니 글 모기의
878
볼길히 일 업서 글 놈 뵈려 고
879
그저 내여 주엇거나 그러티 아니면
880
창졸간 말 어려워 가지고 나가도다
881
져녁의 긔번실이 답초 셔 뵈
882
불령이 호으로 파션을 게 니
883
븟그럽고 이 업고 이 태슈 듯게 되면
884
잘못 왜인들은 사야 쳐치리
885
이 압 가 길의 각별이 신틱
886
제 임의 복죄매 일공을 바드니라
887
우리의 공 미가 삼슈 두오
888
도미 둘 복 넷과 나 눅육 근
889
계란이 여이오 강고도리 둘 식 고
890
오적어 네 마리와 무오 강 우방근과
891
기 쟝과 쵸와 차 수십 죵을 드리되
892
차죵이 긔묘야 비최게 옷칠고
893
둥글고 소복야 모양이 긔졀다
894
무오 더옥 됴화 길고 크고 물도 만코
895
우리 나라 무오의셔 가 나은디라
896
져므도록 먹어보니 온 마시 바히 업
897
그 밧 물들도 연고 니
898
토품의 고유키 일로조차 알리로다
899
우리 격 거시 은 만냥이 든다 (든다 '에서 ''는 우측 행간에 주서함.)
900
초팔일 듕 온 것 의 알로 이
901
이 고 마시 됴화 왜 듕의 읏듬일다
902
긔번셩과 평공겸이 튝젼 네 셔긔
903
리고 드러와셔 읍고 버러 안
904
졍토쥬도 즐편욱과 도촌호와 귀졍뇔쇠
905
품으로셔 글을 내여 운을 구고
906
그 듕의 구졍뇌가 시년이 삼칠이오
907
필한이 여비야 보던 듕 어엿브다
908
맛 방의셔 음식 상 와 잇거
909
네 사 화 주니 니마의 손을 언저
910
여러 번 치샤고 저 거 다 먹고셔
911
과 실과 고기 됴예 가지고
912
두세 번 손을 들고 품 속의 품고나
913
네 놈 날 향야 부복고 니오
914
처음의 드린 글을 오은 총망야
915
못 지을가 엿더니 즉셕의셔 운니
916
깃브고 감격기가 라 밧기옵고
917
물며 퇴셕 션 늙으시고 병 드시
918
녁질야 휘쇄니 장고 갸륵다
919
그 실과 내여 구졍노 주고
920
네 조 어엿브매 별로 이 표졍다
921
구졍뇌 치샤 날 어린 거
922
이텨로 랑니 명감이 이 업
923
일 다시 드러와셔 치믈 바드리라
924
초구일 대풍니 뉵션이 위다
925
구졍노 편지고 집 두 권 보내엿
926
처음은 고이터니 됴셕의 긔이야
927
양뉴와 초가곡은 졀작이라 리로다
928
듀홍으로 비뎜고 셔문 지어 셔 주다
929
밤 든 후 예 와셔 구졍노의 말 뎐커
930
제 소임 무러보니 다촉 등노 디
931
국슈 음식 먹이오니 극히 감격야 다
932
파션 일 무러보니 처음은 긔이더니
933
하 달내고 랑니 나죵은 셔 뵈
934
예션이 아니 보낸 일은 마도 판 몬져 와셔
935
아니 니 타시로다 호 션쥬 요참고
936
태슈 강호 가고 셋재 봉 여긔 와셔
937
죽거나 귀향 가거나 태슈 쳐분 기리
938
필경의 애 셔 결 밧 업다
939
마인의 위갈기 날마다 심히 니
940
어제 오 회뢰 것 두 놈이 가져시니
941
그 수 어이 알고 수만 냥이 드럿다
942
나죵의 쳥 이 말이 누셜면
943
죽으리 만타 고 만 번이나 당부
944
불측 마두놈이 듕간의셔 됴롱고
945
온갓 일을 다 긔이니 아히 모더니
946
이 놈의 말을 조차 긔미 알리로다
947
츄강이 셔 뵈 샹이 져머실 제
948
칼 치고 녀셔 호협 슝샹터니
949
듕년의 글을 닑어 나히 셔 늙어기의
950
왕유의 망쳔쳐로 다 곳의 젼쟝 두어
951
음풍영월야 여년을 보낸다
952
집 권 드리오니 비졈야 주오쇼셔
953
글은 비록 됴티 아니나 신셰 편도다
954
구졍노 셔 뵈 제 아븨 나히 만하
955
년 삼월이 환갑이니 슈셕시 지어 주면
956
광가 만댱이라 영가 시버이다
957
운뉼시 지어 주니 용약야 칭샤다
958
십이일 츄강이 와 제 붉은 화
959
만발야 경 됴흐니 글 나 지어 주셔
960
무 폐쟝으로 광휘가 나게 오
961
뉴쟝경 운야 오뉼 나 지어 주다
962
십삼일의 왜놈의 글 열 슈 운야 주다
963
십오일 마도셔 비션 드러온
964
우리 나라 치목 세히 마도로 왓다
965
십뉵일 십칠일은 션방의셔 됴병
966
무수 예놈들이 날마다 글 보내니
967
병은 비록 드러시나 다 몰쇽 화답다
968
십팔일 십구일 내 병이 일양일쇠
969
이십일 죠금 나아 소셰고 니러나다
970
념일일 삼신이 뒤뫼 올라보다
971
념이일 삼일은 병 더쳐 못 니더니
972
뉴이 와셔 보고 소음 먹으라
973
념오일 왜유들이 별쟝시 만히 왓
974
이십뉵일 셔남풍의 진말의 발션야
975
오십니 계유 가셔 람 업서 노역터니
976
오후의 람 나니 돗 고 나아갈
977
남박 가 다히니 이니 왓다
978
션창이 사오나와 낭듕의 돗 주고
979
오션이 밤을 샐 제 삼복션 간 업서
980
새도록 념녀러니 새박긔 비션 와셔
981
복션이 어제 져녁 젹간관의 몬져 가셔
982
다 쇼식 아라 왓다 니 깃브도다
983
왜놈의 말 드니 이 흔 풍젼쇠
984
념칠일 노역니 젹간관 드러가니
985
오말은 계유고 삼십니 왓다
986
예브터 낙양이라 뫼도 고 물도 젹어
987
산슈 졀승고 녀염도 즐비다
988
평디가 바히 젹어 포변의 대쇼인가
989
돌로 무어 올녀 삼댱식 놉게 고
990
그 우 집을 지어 졉욱년쟝 야 잇다
991
삼신과 동들은 관소로 다 드러가
992
병 드러 못 리니 굼굼고 애고나
993
이 흔 일홈 무어신고 쟝문라 고나
994
뉵년젼 왜뇌가 사오납고 강셩야
995
안덕텬황 팔셰 먹고 그 어미 하후가
996
탐학고 음난타고 긔병야 와셔 티니
997
하후 텬황 업고 치여 여긔 왓더니
998
물의 뎌 죽기의 안덕됴가 여긔 잇고
999
일본셔 관 나기 긔조브터 시작
1000
슈양뎨 젼셩 제 십만 대군 보내여셔
1001
일본을 치랴다가 여긔 와 다 죽다
1002
임진년의 평슈길이 우리 나라 티라 올 제
1003
쥬길이란 사공놈이 역풍이 불리라고
1004
발션을 아니니 슈길이 대로야
1005
내여셔 요참고 내여 노흐랴니
1006
과연 그 말티 광풍이 크게 니니
1007
슈길이가 뉘우처셔 당 짓고 비 셰워
1008
물 가온대 잇다 알프기의 못 가 보니라
1009
념팔일 예셔 묵어 글 서넛 운다
1010
념구일 신가 구산궁 연졉
1011
다 가셔 구경 병 드러 못 가니라
1012
태슈 보낸 허연 이 권모 마 누룩
1013
삼십일 슌풍 부되 명일이라 아니 가
1014
내 나라 이실 제도 졔셕을 당면은
1015
이 다거든 만니 밧 졀 듕의
1016
병 드러 누어시니 감이 붕듕다
1017
일 듕 샹하인이 다 와셔 문병
1018
왜시 스물 왓거 뇨초야 내리고
1019
방을 구디 닷고 쵸불을 도도고셔
1020
고쵹의 졔야시 히 분운야
1021
념팔일 슉뉵언 짓고 죵샹 셩노 불러
1022
오언졀구 분운야 가지로 짓다매
1023
내 역시 그 법대로 열 슈 운고
1024
니불 덥고 드러누어 가국을 각고
1025
신셰 졈검니 용졸 좀문
1026
브졀업시 홧다가 이 길흘 와시니
1027
의 타시 아니어니 탄야 무엇리
1028
밤새도록 젼젼야 을 못 잘노다
---
## 3권
1
일동장유가 뎨삼
2
갑신 졍월 초일일의 젹간관셔 머므니라
3
식후의 졍샹이 샹듕관을 모흐시고
4
풍뉴 치고 음식 야 져므도록 즐기니라
5
방으로 도라올 제 듕하관 햐쳐 보니
6
졀집이 굉걸고 경치가 긔졀야
7
듁도 만커니와 그 듕의 소쳘 남기
8
모양도 긔이야 이우러 죽어갈 제
9
쇠모 박아 두면 도로 산다 고나
10
초이일 발션야 삼백니 실우 올 제
11
풍일은 온화고 물결이 고요야
12
가기 평안니 길 난 후 처엄이라
13
슈질던 사들도 다 몰쇽 안연야
14
말도 고 잡기야 근심을 니로다
15
향포 디나 초경냥의 다히고 닷 주니
16
젹간관셔 여긔 오기 갑묘방이 되고나
17
초삼일 묘시냥의 셔풍의 노하
18
노도 젓고 돗도 라 오십니 샹관 오니
19
여긔 쥬방오 댱문태슈 겸찰이라
20
젹간관 예션들이 여긔디 라왓
21
두 뫼히 회초야 포구 시니
22
이 불과 수보요 다 길이 업서
23
험고 죵요롭기 일본 듕 뎨일이라
24
천여 병 복뇌군을 두 편의 두어시면
25
비록 만 웅병인들 제 어이 디나가리
26
녀염은 오 호요 셔편의 뫼골 속의
27
웅장 큰 졀 이셔 수풀 밧긔 뵈고나
28
인물은 초졸고 미도 간간 잇다
29
듀방 봉 놈이 듕을 드리
30
샹 듕 하 삼관의게 다 주어 보내엿다
31
묘손 일본법이 와 옷과 등과 기가
32
다 몰쇽 표가 이셔 알기 쉽게 야시니
33
이 고을 표 거 화텨로 그려시
34
크고 흰 둥근 뎜의 여 흰 뎜 둘넛고나
35
태슈의 셩과 일홈 일기 원졍장이
36
젼브터 여긔 오면 복물과 예 치목
37
쥬인 븟쳐 두디라 이번도 그리다
38
초사일 풍역야 샹관셔 머므니라
39
이 십여 선 수십 슈 글을 보내여
40
화답여 달라 휘쇄야 내치니라
41
초오일 묘시냥의 북풍의 노화
42
노도 젓고 돗도 라 실진 가 잘 드니
43
굿 보 남녀노쇼 타고 와셔 본다
44
션창이 야튼디라 양듕의 닷 두니
45
이십니 와 이시며 디명은 안예로다
46
초뉵일 동북풍의 돗기의 발션니
47
역풍이 이 브러 돗물 고 노흘 저어
48
이십니 계유 가니 젼진 길 바히 업서
49
비도 오고 흐린디라 수민기 측냥업다
50
만일의 대양이면 파션이 정녕쇠
51
압 참을 못 다히고 녹노도로 드러가니
52
녀염은 십 호요 삼십니 계유 왓다
53
댱듕의 닷 주니 대풍이 니디라
54
마 집 계유 어더 삼샹이 다 리매
55
임도 오션뎐과 햐쳐의 나도 드니
56
인가도 졍쇄고 경개도 무던다
57
삼복션은 표풍야 남편 개의 드니
58
션창은 됴흔디라 불듕 다다
59
두어 동 리고셔 거러가셔 구경니
60
사 평초고 져근 독뫼 니러셧
61
쉰세 층 석계 올라 뫼 우 셔셔 보니
62
신당을 지어시며 안계가 광활야
63
산슈 졀묘니 물운로 병칭다
64
마샹 젼악들은 쳥누의 드럿
65
방샤가 샤치고 계뎡이 졍결야
66
층 지은 노숑이며 온갓 화훼 다 이시니
67
아국의 잇게 되면 유이 만흘로다
68
셔 뉴 양인 든 쥬인이 제 집 부녀 일이니
69
려오라 쳥니 양 보려 고
70
려오라 허락니 쥬인이 대락야
71
어드로 나가더니 이윽고 려오니
72
비편기 가이 업서 급히 도로 나가라 니
73
무류야 가 거동 소견이 졀도다
74
초칠일 비 오기의 녹노도셔 묵으니라
75
쥬방태슈 문안고 감 도미 보내엿다
76
신 드린 거 그 천여갤쇠
77
왜인이 니 이 산뎨 만하
78
밤이면 의 와 작난다 고나
79
초팔일 묵을쇠 부방의셔 삼 슈역을
80
나입야 분부 람이 이러
81
발션쟈 청다 면야 내치니라
82
초구일 도들 제 뉵션이 긔 나
83
슌풍이 아닌디라 돗 빗기 라
84
오십니 겸애 가니 미시 되엿고나
85
관샤도 굉걸고 졉도 갸륵다
86
비단댱과 급병풍과 화로 쵸 필묵들이
87
온갓 거시 션명야 젼참의셔 승다
88
초십일 눈 리고 셔풍 분다
89
튝인방을 향여셔 십니 드러가니
90
진시 되여 잇고 지명은 튱로다
91
소고숩도 이라 흔 나모 뫼 고나
92
뒤 갯물이라 돗대가 은영다
93
뒤뫼 졀이 이시니 셔졈라 고나
94
십일일 동북풍의 묘말의 발션야
95
이예와 찬기 왼편의 느리고
96
안예태슈 사 디나가며 라보니
97
회칠 셩각회 빗히 고
98
금장식 오층각이 구 속의 표묘다
99
예셔브터 좌우편의 집이 로 잇다
100
구십오리 야셔 왼편을 도라보니
101
긔특 셕벽 우 졀승 졀 잇거
102
그 일홈 무러 니 아목포 반쇠
103
두 즁이 고 와 보시라 쳥거
104
신도 셤 주고 일 졔인들이 잡거 다 주거
105
내 역시 글씨 셔 팔구 댱 내여 주니 티샤고 가고나
106
초혼의 여 가 도포의 다니
107
니 와 이시며 비후라 고나
108
녀염과 왜션 우 등불도 장시고
109
관소 북션이니 뎐각도 굉장다
110
녀염의 셩 거시 연노의 뎨일일쇠
111
일이 다 리 나 홀로 예 잇
112
십이일 눈 리고 시의 발니
113
구가 활대야 대양이나 다쟌타
114
풍세가 녈매 돗 고 나아갈쇠
115
하진을 디나가셔 일비 다히니
116
삼십니 와 이시며 비젼라 고나
117
북태슈 원종경이 삼듕을 보내엿다
118
촌가 십여 호오 남 일쇠
119
신 하륙 나 혼자 예 자다
120
십삼일 셔풍고 초의 발션야
121
져므도록 돗 고 인간으로 드러간다
122
칠십니 우창 가셔 관소로 려가니
123
션창도 텬작이오 녀염도 거룩다
124
우리 네 사은 방의 안잣더니
125
비젼 다 시 불 현 후 드러오니
126
시포식츨 화젼쇼요 귀산덕귀 졍이며
127
그 듕의 근동독은 무진년 적의
128
태슈의 명을 바다 심을 영졉고
129
졍의 늙은 아비 도희라 션
130
셩쟝이와 슈창던 시 권 보엿
131
부가 문임으로 젼후의 다 와시니
132
어렵다 거시오 위인이 긔특야
133
필담이 도도고 시뉼이 편편니
134
도록 챵화야 운 뉼 나히오
135
칠십이운 나히며 오칠일 고시 절구
136
합야 혜게 되면 십 슈나 남다
137
북편으로 여보에 본년란 졀이 이셔
138
장녀고 경됴 어두워 못 가 보다
139
본태슈 잡 제 샹관의게 보내엿다
140
십일 셔북풍의 묘시의 노화
141
젹소셩 디나가니 이 십여리오
142
셩텹이 고쥰고 대관이 산다
143
미시의 도박야 실진을 드러가니
144
션창이 만화여 좌슈포와 일반일다
145
도 즐비고 관샤도 웅장다
146
파마예 쇽엿고 니 왓다
147
본태슈 원쳐공은 강호의 아악두로
148
집졍듕 읏듬으로 듕을 보내엿다
149
병 드러 못 리고 방의 누엇더니
150
졍암 댱노 세 샹가 츈파 낭 고당이라
151
칠뉼 나 칠졀 나 각각 지어 보내기의
152
불 혀고 차운야 역관 주어 보내니라
153
십오일 망궐녜 병으로 불참고
154
평명의 발션터니 비 오고 역풍 부니
155
포구 못다 와셔 션창으로 도로 오다
156
졍샹 식당 몸 알파 못 먹고셔
157
쥬듕의 도라와셔 왜시 다엿 화답다
158
십뉵칠팔 이 세 날은 못 나고 묵을 적의
159
무수 왜션가 글 가지고 와셔 보
160
십구일 셔북풍의 일츌시의 발션야
161
돗 고 노 지어 오십니 디나오니
162
파마태슈 사 라 인가도 장시고
163
분칠 람벽은 녹님간의 은영고
164
금장식 삼층각은 운쇼의 니러난다
165
예셔브터 좌우편의 뫼 고 들은 열려
166
사의 사 년낙 브졀다
167
언덕 우 굿 보니 겨집 남
168
오리에 메여시며 그 수 어이 알리
169
그 디나오니 명셕이라 고나
170
여긔셔 월츌 보기 장관이라 디라
171
일변으로 션며 삼샹을 뫼시고셔
172
타누의 올라안자 면으로 라보니
173
풍쳥 낭뎡고 슈텬이 일일다
174
이윽고 이 니 장도 장시고
175
홍운이 지픠 바다히 뒤눕
176
크고 둥근 옥 바회 그 이로 소사 오니
177
찬난 금기동이 만니의 치엿다
178
아국의 비면 히나마 더노다
179
부상이 갓갑기의 그러타 고나
180
뫼 쟈근 골에 대포으 친 것
181
건곤이 됴요야 호발을 혜리로다
182
텬하의 장 귀경 이에셔 업리
183
나 됴흔 줄을 오이야 알리로다
184
부녀쳐로 드러시면 이런 거 어이리
185
밤비 창망 병고 바라보니
186
수업 등불빗치 십니의 셔년야셔
187
우 만텬 셩신 구만니의 쇼고
188
아래 만 등농 변의 축축니
189
오 밤 이 경치 텬디간 긔관일다
190
이경냥의 병고 드니 튝시의 발션로
191
하션을 아니랴니 도쥬가 쳥키의
192
인졍의 어려워셔 신 잠 려
193
관소로 드시니 우리 동들도
194
려가 귀경니 그 듕의 부샹 햐쳐
195
경치가 긔졀야 노숑 종녀 도 등쇽
196
돌노 방당 우 세 면의 챵울고
197
죵샹 겨신 셕가산 무어시며
198
그 밧긔 긔화이초 좌우 둘러시며
199
밤빗치 희미야 셔히 못 볼노다
200
냥구히 듀람고 내 로 도라오니
201
밤 든 후 신도 도로 로 오니라
202
오 온 혜여 보니 팔십니 되고나
203
념일 일츌시의 인간으로 노화
204
하구로 드러갈 좌우 젼후 도라보니
205
우리 예션들과 압 참의 탐후 온
206
디공고 가 와 영졉라 오 와
207
마쥬인의 듕 와 근쳐의 구경 온
208
가고 오 샹고션이 그리 너른 바다 우
209
다 몰쇽 무명 돗 슌풍의 놉히 고
210
일시의 드러가니 장고 금다
211
흰 구 쳔만 가 슈변의 엿
212
바다흘 덥허시니 물빗 모노다
213
왕쥰 누션 히익 쳔고의 장타 나
214
예 비야 볼쟉시면 응당이 쇼됴리
215
하구의 다라니 포슈가 여튼디라
216
우리 드러가기 걸니여 어렵더니
217
열 금누션이 대령야 맛고나
218
져 금누션 졔작 보소 안밧긔 옷칠야
219
영이 게 빗최이고 니금으로 찬난게
220
뇽과 봉도 그려시며 나틔 공쟉 그려시니
221
궁샤 극치키 만고의 업노다
222
이층뎐 집을 짓고 대공 가쵸 창격들을
223
황금으로 아사겨 요장쳐로 며시며
224
각으로 너른 대단 복식 년복야
225
휘쟝을 지어 내야 쥬황 진홍사와
226
쳔쳥 모단로 만치 줄을 드려
227
왼 두로 둘러 면으로 드리웟
228
인신이 이 기 진실로 외람야
229
두 번 예양고 나죵의 올나
230
졍 부 죵 삼샹이 각 식 오시고
231
을 혀 내여 국셔 뫼시고셔
232
도쥬 졍승 삼 슈역 삼 샹판
233
각 식 올나안자 례로 나아갈 제
234
내 역시 죵샹과 예 올나타니
235
마다 줄을 야 이편 언덕 뎌편 언덕
236
무수 예션군이 례로 어 가니
237
두 편의 굿 보니 바다 고 뫼 여
238
셩셩젼도 라시며 금병풍도 쳐 노코셔
239
그리 만흔 왜녀들이 미만야 안자시니
240
불근 옷도 닙어시며 프 옷도 닙어시며
241
지 옷도 닙어시며 아롱 옷도 닙어시니
242
그 듕의 호니 환가 부려라
243
강물이 크디 아녀 님진만 아니
244
물의 두 편으로 인가가 년쇽고
245
분칠 너른 담의 고래등 큰 집을
246
황금과 젹홍으로 공교히 며시며
247
삼신산 금궐 운 진실로 여긔로다
248
일니 겨유 가셔 날이 셔 져믄디라
249
댱안의 등쵹 빗치 삼십니의 버러시니
250
댱건지 승사고 은하로 올라갈 제
251
좌우의 셩신들이 이치 잇던가
252
우리나라 패일 관등 오희라 리로다
253
하 장고 금니 부 못 그칠다
254
강 우 나모 리 무지게 모양으로
255
반공의 잇 이층각 금누션이
256
그 아래로 드러가니 그 놉기 알니로다
257
그리 만흔 리 기동 목으로 널을 야
258
면으로 다히고셔 쇠모 박아시니
259
비와 물의 샹면 다 널로 고쳐 니
260
아모리 년구나 바히 디 아니쇠
261
리 볼쟉시면 년목 틈이 업서
262
대파 민 며 나모로 며
263
난간을 여시 기동 셰고듕방 드려
264
적동으로 편쇠 치여 듕방마다 장식고
265
큰 항만 주저지 가마 곡지모양으로
266
기동마다 덥허시니 긔묘고 샤치다
267
삼십니 대판셩을 삼경냥의 드러가니
268
셥딘의 쇽엿고 강 일홈은 낭홰로다
269
녜브터 졔슐관이 국셔 의 오더니
270
이번의 남시온이 집과 원로
271
일복션의 안잣다가 국셔션의 못 올나셔
272
뒤 뎌 잇디라 불샹고 이 업다
273
하뉵믈 쳥거 삼샹을 뫼시고셔
274
본원로 드러갈 길흘 센 여염들이 (본원로'의 '원'은 우측 행간에 첨기함.)
275
졉옥 년장고 번화 부려야
276
아국 죵노의셔 만 나 더도다
277
발도 것고 문도 열고 난간도 의디며
278
마루의 안잣니 집안 고
279
기동의 몌여시 어룬은 뒤 안고
280
아 압 안자 일시의 구 보
281
그리 만흔 사들이 소 아니고
282
어린 아 혹 울면 손으로 입을 막아
283
못 울게 거동 법녕도 엄도다
284
나 말이 크고 놉고 놀나고 사오나와
285
소고 노라셔 거의 낙샹 번니
286
이 압 육노 천여리 어이 갈고 념녀로다
287
관소로 드러가니 그 집이 웅걸야
288
우리나라 대궐의셔 크고 놉고 샤려다
289
임도 오션뎐과 방의 드니
290
미롱태슈 관반으로 대령야 영졉다
291
셥진 대판셩은 평수길의 도읍이라
292
사더 복견셩이 동편의 머디 아니코나
293
녜일을 각니 셩낸 털이 니러션다
294
이십일일 시냥의 졍 부 죵 삼샹이
295
슉공을 바드랴고 연향쳥의 나 안자니
296
음식을 드리 무비 긔괴 궤휼다
297
젼복 문어 온갓 거 무쳐 아삭여
298
과즐 괴 둥그러킈 자히나 괴여시니
299
오으로 어러히오 모양이 한과 다
300
혀 먹어 보랴 니 러지지 아니
301
물가의 도요새 죽은 거 갓다가셔
302
두 개의 금을 올녀 버지버 노화시니
303
잡안 디 오랜디라 구린 참혹다
304
가라 거 으로 노화시
305
모양은 대하 고 크기 이 크다
306
다 치나 긴 나로 금을 올녀 노아시며
307
그 밧긔 일홈 업 온갓 거 버려시
308
그 수 수십이오 먹을 것 바히 업다
309
그 듕의 가화 가숑 진짓것과 히 갓다
310
미롱슈와 두 봉이 와셔 보고 나간 후의
311
도쥬 졍승 와 뵈 녜법은 젼과
312
져녁 삼 문가 비로소 드러오니
313
샹방의 슈니 소견이 숑민다
314
우리 슉공 바다 보니 일양으로 긔괴다
315
이십이일 병이 드러 햐쳐의 누어시니
316
수업 왜시들이 뫼쳐로 히거
317
강질야 지어 주니 긔운이 어렵도다
318
오칠뉼 졀구와 고시 뉼 합여셔
319
다 주어 혜여 보니 일삼십여 로다
320
초지의 다히고셔 바로 셔 주엇기의
321
듕초의 건질 적의 반나마 니로다
322
날마다 이러면 사이 못 견쇠
323
북산호라 사 글과 인물 읏듬일다
324
윤필라 가져온 것 년노의 밧디 아니러니
325
여긔 도회쳐라 부긔니 만흔디라
326
온갓 거 가져오 그 수가 풍셩다
327
젼과 갓티 도로 주니 그 듕의 션가
328
니마의 손을 언고 번이나 쳥고
329
손 묵거 부뷔 양 소견이 지셩이매
330
인졍의 일 업서 먹 쟝 가지고셔
331
그 밧근 내여 주고
332
우리나라 됴희 필묵 답녜로 만히 주니
333
저도 날과 치 먹 나 가지고셔 그 밧근 도로 준다
334
미롱슈의 햐쳐 겻 놉흔 난간 우 안자
335
면을 바라보니 지형도 긔졀고
336
인호도 만흘시고 만이나 야 뵌다
337
우리나라 도셩 안은 동의셔 셔의 오기
338
십니라 오되 채 십니 못 고셔
339
부귀 샹들도 간 집이 금법이오
340
다 몰쇽 흙지와 니워셔도 장타
341
장손 왜놈들은 천간이나 지어시며
342
그 듕의 호부 놈 구리 기와 니어 노코
343
황금으로 집을 며 샤치키 이샹고
344
남의셔 북의 오기 니나 거의
345
녀염이 븬 틈 업서 복이 드러시며
346
가온대 낭화강이 남북으로 흘러가니
347
텬하의 이러 경 어 잇단 말고
348
북경을 본 역관이 듕의 와 이시
349
듕원의 장녀기 이에셔 낫쟌타
350
이러 됴흔 셰계 외의 판고
351
더럽고 못 로 구혈을 삼아 이셔
352
쥬평왕 적 닙국야 이 디 이천년을
353
흥망을 모고 셩으로 젼여셔
354
인민이 식야 이쳐로 번셩니
355
모니 하이라 가탄고 가일다
356
제 나라 귀가 부녀 깃졉의 닐 적의
357
바디 아니 닙어기의 셔셔 오줌 누게 되면
358
졔 슈죵 그 뒤셔 명지 슈건 가졋다가
359
달나 면 내여 주니 드매 연다
360
제 형이 죽은 후의 형수 겨집 삼아
361
리고 살게 되면 착다 고 기리되
362
제 아운 길너고 뎨슈 못 다
363
녜법이 바히 업서 금슈와 일반일다
364
대져 디 평슈길이 사오납고 강셩야
365
놉흔 뫼 4다 고 나 뫼흔 놉게 고
366
바른 물은 에게 고 구분 물은 곳게 야
367
물 나 뫼 나흘 고이 둔 것 바히 업고
368
살인으로 여마며 닌국을 침노고
369
대명을 범려니 제 어이 망챤으리
370
번화기 졔일이오 인물이 못 낫디라
371
문도 만커니와 호걸도 잇다
372
셔경셔 가번 쟝노 우리 다리고셔
373
강호로 드러가랴 예 와셔 기리
374
이십삼일 식젼브터 예놈이 무수이 와
375
필담이 난감고 슈창도 즈즐다
376
병 드러 어려오나 나라셔 보낸 이
377
이 놈들을 졔어야 빗 잇게 시미라
378
병이 비록 듕딘들 어이 아니 지어 주리
379
일 힘을 다 드려셔 풍우쳐로 휘쇄니
380
겨우 다 운면 품쇽의셔 고쳐 내야
381
여러 놈이 긔 주면 턱의 다케 히고
382
지어 내티면 그쳐로 내여 놋
383
노병 이 내 근역 싀진가 시브도다
384
져머실 제 갓게 되면 긔 무어시 어려울고
385
우리 보랴 고 이삼쳔니 밧긔 놈이
386
냥식 고 여긔 와셔 다엿 식 묵어시니
387
만일 글을 아니 주면 낙막기 엇더고
388
무론 노쇼 귀쳔고 다 몰쇽 지어 주니
389
이러므로 우리 역 밤나로 쉴 업
390
남 셩 원 삼뇨들도 이텨로 어렵다
391
이십일 이십오일 본원의 머므니라
392
이 날도 글짓기 어제ᄀ치 무수다
393
이십뉵일 날 놉흐니 삼샹이 를
394
나 몬져 가마 고 금션의 가 기리니
395
다 격군들과 머므 션쟝들이
396
여긔셔 머믈고셔 못 라 가디라
397
션두의셔 별고 함누고 나셔시니
398
쳐엄의 의 려 왜션으로 릴 적의
399
이 됴티 아냐 집 나기 퍽 더니
400
이것들 두고 가니 더욱 섭섭셔이고
401
젼과 치 죵샹과 올나안자
402
누 우 의지야 두 편을 라보니
403
어와 장시고 굿 보니 금다
404
줄 야 으기 거번과 되
405
어롱 옷 닙은 예놈 여라문이 예 올나
406
사아대 각각 들고 좌우로 디면서
407
곡됴 느러지게 노래 긔 니
408
그 소 쳥원야 드럼다 쇠
409
날 새도록 어 역슈야 올나갈
410
듕의 졔인들이 침구 나 아니 왓
411
죵샹의 쳔의 덥고 옷 닙은 재 누어 자니
412
비로소 도든 후 퍼방으로 계요 오니
413
오십니 와 이시며 긔이라 고나
414
이십칠일 샹가 관소의 잠간 려
415
슉공 밧고 잠간 쉬여 져므도록 션야
416
쳥포로 올나오니 녀염도 즐비며
417
물의 셩을 고 경개가 긔이다
418
물 쇽의 슈긔 노화 강물을 아다가
419
흠으로 인슈여 셩 안을 드러가니
420
졔작이 긔묘야 법 바담고나야
421
그 슈긔 시 보니 물네 다라셔
422
좌우의 박은 살이 각각 스믈 여이요
423
살마다 다가 널 나식 야
424
물 쇽의 셰워시니 강물이 널을 밀면
425
물네가 절로 도니 살 쟈근 통을
426
노흐로 야시니 그 통이 물을 셔
427
도라갈 제 올나가면 통 아 말둑 박아
428
공듕의 남글 야 말둑이 걸니면
429
그 물이 다져셔 흠 속으로 드고나
430
물네가 빙빙 도니 븬 통이 려와셔
431
셔 슌환야 듀야로 불식니
432
인녁을 아니 드려 셩각회 놉흔 우
433
물이 절로 너머가셔 온 셩 안 긔민들이
434
이 물을 바다 먹어 브죡들 아니니
435
진실로 긔특고 묘도 묘시고
436
디명은 하오 십니 와 잇고나
437
이십팔일 발 수필 금안쥰마
438
듕하관을 다 오니 긔구도 장시고
439
각방 노들도 호가 참남다
440
좌우의 견마오 놈은 우산 밧고
441
두 놈은 부축고 담 긔구 놈 들고
442
놈은 등불 들고 놈은 그 메여
443
사의 거린 수 여식 드럿고나
444
나 고 삼문도 가마 고 몬져 가니
445
금안 지은 고 큰 거듧 말노 알 셧다
446
녀염도 왕왕 잇고 흘손 듁뎐일다
447
토디가 고유야 젼답이 이 됴희
448
이십이 실샹 가 삼샹 됴복 제
449
나 나리쟌코 왜셩으로 바로 가니
450
인민이 부려기 대판만은 못여도
451
셔의셔 동의 가기 삼십니라 고나
452
관 봉등오 오층 문누 우
453
여라문 구리 기동 운쇼의 다핫고나
454
슈셕도 긔졀고 듁슈도 유 잇
455
왜황의 사 라 샤치가 측냥 업다
456
산형이 울장고 슈셰도 환포여
457
옥야 천니 삼겨시니 앗갑고 애올손
458
이리 됴흔 텬부금탕 예놈의 긔물 되여
459
칭뎨 칭황고 젼 전손니
460
개 돗 비린 뉴 다 몰쇽 소탕고
461
천니 뉵십 죠션 드라셔
462
왕화의 목욕 겨 녜의국 들고쟈
463
삼 효측야 셰습 법이 이셔
464
물론 현우고 식이 셔디라
465
둘재 셋재 니 니 비록 영웅 호걸이나
466
범왜와 가지로 벼을 못기의
467
읏듬으로 듕을 혜고 그 다음 의원이라
468
져그나 잘난 놈은 듕 의원 다 된다
469
왜황은 고이야 아모 일 모고셔
470
병농형정 온갓 거 관을 맛뎌 두고
471
간예 일이 업셔 궁실화초 치례고
472
보은 계고 보은 쥬야
473
이나 아이나 거시 션다
474
시방도 셧 왜황 녀쥬라 고나
475
이 드러올 제 굿 보다 오되
476
범왜와 디라 몰나보니 애도다
477
관소가 요란커 임 오 니 세 비쟝과
478
문 밧긔 햐쳐니 밤을 자게 되니
479
왜시가 만히 오 식가로 아니다
480
평안 사 원희난예 미롱지 츅 고
481
북국시례 나모 잔을 윤필 도로 주다
482
근간 쇽엿고 삼십니 와 잇고나
483
이십구일 발야 삼십니 대진 듕화
484
녀염이 즐비야 십니의 년엿고
485
거룩손 비피호가 근원 업시 절로 녀
486
삼니의 고여시니 깁고 멀기 바다 고
487
이 물이 흘러가셔 낭화강이 되여셔라
488
태슈의 사 가 호슈 압님야
489
분쳡이 표묘고 누각이 장녀야
490
경개가 졀승야 예놈 주기 앗갑도다
491
나모리 둘을 지나 오십니 잠간 가니
492
우리 햐쳐 유벽야 듁님이 긔특다
493
여긔도 근강오 팔심니 와 잇고나
494
금을날 일츌시예 인간으로 향여셔
495
십니 팔번산 가 유화고 길흘 나
496
언근셩 드러가니 시졍과 녀염들이
497
대판셩 버금이오 뉵십니 왓고나
498
이월 초일일은 비 맛고 발야
499
납침졍 올라가셔 만호뎡 게 이시니
500
호슈 부림야 경치가 졀승
501
비 오기의 못 오니 올 제나 보리로다
502
예셔브터 길 닥그 두 편의 언덕을 셔
503
긔추 혁통 고 두던의 솔을 심거
504
몃 년 되엿 지 두세 아 되고나
505
일쳔 삼니 강호디 버럿
506
그 속을 드러가니 장도 장시고
507
져므도록 가 길히 산곡으로 가고나
508
길가의 셩쳔 이셔 졍 잇고 경도 됴화
509
젼어관 몬져 와셔 귀경고 가라
510
가마의 려다가 일흘가 념녀여
511
칭병고 아니 려 금슈로 바로 오니
512
열업 조도 귀경라 렷다가
513
던 가마 일허바려 낭패다 고나
514
우리의 햐쳐 일홈 동포관이라
515
가마의 계요 려 숨도 밋처 못 쉬여셔
516
왜션 다엿 놈이 서 가며 글을 드려
517
운하라 보거 됴히 펴고 먹을 라
518
담 먹을 동안 여 슈 나리 니
519
그 듕의 젼승산이 글 양 바라보고
520
필담으로 셔 뵈 문젼의 퇴셕 션이
521
쉬 짓기를 유명터니 션의 조
522
일 처엄 보아시니 업여 뭇니
523
졀연코 귀 별호 퇴셕인가 나이다
524
내 웃고 셔 뵈 늙고 병든 둔 글을
525
표쟝을 과히 니 슈괴키 이 업다
526
승산이 고쳐 쇼국의 쳔 션
527
셰샹의 낫다가 장 귀경여시니
528
저녁의 죽와도 여이 업다 고
529
어드로 나가더니 고쳐 드러와셔
530
아롱보의 무엇 고 삼목의 무엇 너허
531
니마의 손을 언고 업여 드리거
532
바다 노코 피봉 보니 봉 우 여시
533
각 대단 삼단이오 십삼냥 은로다
534
놀납고 어이업서 됴예 셔 뵈
535
그 비록 외국이나 션 몸으로셔
536
은화 갓다가셔 글갑 주려 니
537
그 은 감격나 의예 크게 가치 아녀
538
못 밧고 도로 주니 허물치 말지어다
539
승산이 븟그러워 번이나 졍하고
540
고쳐 셔 온 말이 녜브터 셩현도
541
졔의 슈슈녜 다 바다 겨오시니
542
쇼이 이거 폐을 옵고셔
543
졔 되기 원니 물니치디 마오쇼셔
544
슈슈라 거 포육으로 디라
545
어셔 은단으로 폐을 단 말고
546
셩현 겨오셔도 바들니 만무고
547
내 므 덕으로 그의 스승 될고
548
주고 밧기 다 그니 잡말 말고 가져 가라
549
승산이 도로 나가 감 셜당 가지고 와셔
550
지셩으로 권기의 죠금식 마 보고
551
듕의 시뎐지 열 댱으로 답녜다
552
이윽고 삼문가 차례로 드러오니
553
나 글 다 지엇기의 그리로 가고나
554
삼방의 얼풋 녀 졈심 먹고 길 나셔
555
이십니 계요 가셔 날도 져물고 대우니
556
길이 쥴기 참혹야 밋그럽고 쉬디라
557
가마 멘 놈 다시 서 가며 쳬변
558
갈 길히 바히 업서 두던의 가마 노코
559
이윽이 쥬져하고 갈 이 업디라
560
면의 도라보니 텬디가 어둑고
561
일들은 간 업고 등불은 져시니
562
지쳑을 불분고 망망 대야듕의
563
말 못 예놈들만 의지하고 안자시니
564
오날밤 이 경샹은 고단코 위다
565
교군이 라나면 낭패가 오까
566
그놈들의 오 잡아 흔드러 을 뵈고
567
가마 속의 잇 음식 갓가지로 내여주니
568
지져괴며 먹은 후의 그제야 가마 메고
569
촌촌 젼진야 곳고지가 이러니
570
만일 음식 업더면 필연코 도주쇠
571
삼경냥은 계요여 대원셩을 드러가니
572
두통고 구토야 밤새도록 대통다
573
울 의 한흥이가 계요 드러와시
574
침구 러져셔 못 밋처 왓디라
575
임도 오션뎐의 쳔의 비러 덥다
576
이날 낭패키 일이 다 그러
577
뉵십니 와 듕화고 오십니 와 이시니
578
오 온 길 혜여보니 십니 되고나
579
금슈와 대원셩이 다 몰쇽 미릉쇠
580
초이일 대마도쥬 봉으로 말 보내되
581
어제 비의 대슈져셔 리돌이 다 시니
582
오날 도쳐 동슈고 일이야 가리라
583
가변쟝노 이졍승이 각각 녜물 보내엿
584
우리도 션 필묵 답네야 보내니라
585
내 병은 채 낫디 아니코 왜시 무수니
586
슈응기 어려오나 지어 줄밧 일업다
587
초삼일 인시말의 졍샹이 뒤흘 와
588
긔쳔을 건너갈 물 크기 강만고
589
기소산셔 발원야 남으로 수니가
590
바다흐로 든다 비후의 대챵니
591
리 노홧 여 모와
592
물 가온대 닷 주어 느런이 셰워 노코
593
그 우 널을 고 다덩굴 츩덩굴
594
삼겹으로 바흘 드려 리만치 크게 야
595
널머리 지고 둑만 쇠사과
596
크고 큰 집동화줄 가지로 눌너 노코
597
쇠모 박아시며 바흐로 여시니
598
그 우흐로 뭇인마가 평디쳐로 건너가니
599
이러케 큰 리 줄을 건너가니
600
팔십척도 드러시며 칠십척도 드럿고나
601
쥬고쳔 건너가기 일양으로 릴다
602
듀고 가 졈심니 오십니 왓고나야
603
올 적의 마두놈이 국셔 범마니
604
우리 나라 긔슈놈이 하마라 꾸지
605
하마도 아니니 긔슈 구타니
606
신 통분야 길흘 아니 나고셔
607
슈역을 보내여셔 이 연 긔별니
608
도쥬가 답 그 놈이 괘심
609
압 참의 가 이시니 져녁의 가 치죄새
610
샹녜 드시고 부득이 발야
611
개물과 나모리 무수이 건너가니
612
셩쳔브터 여긔 오기 나히 바히 업고
613
업슨 들 속으로 져므도록 나아가니
614
인가가 녁낙야 거의 서 다핫고나
615
뉵십니 명호옥을 초경말의 드러오니
616
번화고 장녀기 대판셩과 일반일다
617
밤빗치 어두어셔 비록 시 못 보와도
618
산쳔이 광활고 치가 번셩며
619
젼답이 고유고 가샤의 샤치기
620
일노의 뎨일이라 듕원의도 흔티 아니리
621
우리 나라 삼경을 갸륵다 것만은
622
예 비여 보게 되면 몰기 이 업
623
셔시가 쳐음으로 여긔 도읍엿기의
624
칠셔도 그저 잇고 셔복도 잇다
625
아모댄 줄 모기의 못 가보니 애연고나
626
인물이 명미야 연노의 읏듬일다
627
그 듕의 겨집들이 다 몰쇽 일일다
628
새별 두 눈와 쥬 입시울과
629
낫은 옥고 눈섭은 나븨 긋고
630
옥기 손과 매얌이 니마
631
어름을 사겨시며 눈으로 무어낸
632
사의 혈육으로 져리 곱게 삼겻고
633
됴비연 양태진이 만고의 일라나
634
예다가 노화시면 응당이 무리
635
월녀쳔하이 진실로 올흘시고
636
우리 나라 복으로 칠보장엄여 내면
637
신션인 귀신인 황홀난측리로다
638
관소도 웅장고 졉도 거룩다
639
무수 왜시들이 만히 드러와 이시
640
내 몸이 마이 알파 다만 둘만 운고
641
져녁밥 못 먹어셔 임도와 자다
642
지명은 미쟝오 태슈의 사 라
643
초일 삼십니 가 명가 듕화고
644
삼십니가 다옥의 가 신가 잠간 쉰
645
나 몬져 바로 가셔 널리 큰 강 건너
646
삼십니 여셔 강긔셩문 드러가니
647
녀염의 셩장기 대진과 마치 다
648
진셔시 여긔 와셔 하륙 곳이기에
649
열젼궁 잇다 아무 줄 모노다
650
초오일 삼십니 가 길젼 가 듕화
651
예브터 협듕이라 니가 브죡야
652
인가도 쇼됴고 의복도 남누다
653
이 션 관시 이 도원태슈 녕을 바다
654
관소의 와 영후고 이칠뉼 드리거
655
주필여 지어주고 큰 들흘 디나가셔
656
큰 강 나 건너가니 나모리 노화시
657
간이나 넉넉고 낭화강만 흐고야
658
길젼을 드러가니 날이 거의 져므럿다
659
칠십니 와 이시며 듕화 히라
660
초뉵일 명시의 가마 고 몬져 가셔
661
협노로 드러가니 젼토가 쳑박야
662
길 의 비 사 곳곳이 잇고나야
663
십니 계요 와셔 바다의 내라니
664
물빗과 하빗치 만니의 가이 업서
665
마도일기 바다히셔 크고 멀고 퍼러니
666
부샹국 대인구이 머디 아니 리로다
667
십니 황정 가셔 듕화고 내라니
668
젼참 인마 도로 주고 나토 업디라
669
소위 금졀하가 두 솔바탕 계요니
670
일의 명무들이 다 주어 거러가
671
우리 가마고 압참디 가디라
672
믈 의 다라니 글가 무수매
673
나고 니언진이 고 건너가니
674
풍셰가 녈야 이 심히 괴로오
675
믈 깁기 반 길이라 이거시 깃브도다
676
강너 십여니오 건넌 좌우편의
677
돌로 언덕을 놉히 고 십여니나 거의
678
그 쇽으로 여 사아대 질너가
679
김동명 여긔 와셔 예놈 주던 금과 은을
680
믈 속의 다 더디고 븬 손으로 도라오니
681
녯 사의 은 탕 뉘 아니 흠모리
682
언덕의 린 후의 인마 쳬파니
683
연이 더디라 질 글 길흘 나
684
숑음쥭슈 모유형문 좌우 녑히 거리고
685
십니 다 나가셔 빈숑 가 슉소
686
임오 두 비쟝과 셔 밤을 쉬다
687
초칠일 쳥명니 십니 견부갈
688
녀염도 연엿고 숑듁도 층울다
689
큰 내 건너가니 닐흔 두 척 왜션을
690
리 여시 쥬고와 가질다
691
졈심고 길흘 나니 너른 들이 평연다
692
부산이 뵌다 운애야 못 볼노다
693
십니 쾌쳔 오니 일포시 되엿고나
694
인가의 번셩기 명호옥만 못고나
695
황정셔 여긔 오기 원강 히라
696
초파일 마도가 봉야 말 보내
697
이 압 대졍쳔이 믈 만하 못 건너니
698
일 가쟈 여시 궁굼고 심난다
699
지월쟝노 여 졔 언녕동 방군영이
700
글 스물이 와 잇거 주필로 다
701
초구일 쳥명매 평명의 길을 나
702
두어 녕 너머가셔 금곡 가 듕화고
703
오리 남아가셔 어제 던 대졍쳔이
704
부산셔 려오고 슈세가 신급야
705
리 길 업서 믈노 바로 가게 되니
706
문 널에다가 가마쳐로 틀을 야
707
그리 만흔 복물들과 일 졔인들을
708
그 우희 언져다가 건넌편의 리오고
709
우리 가마들을 틀 우 싯고 매야
710
건장 십여명이 부쵹여 건너가셔
711
삼십니 등지 가셔 쥬하라 고나
712
초십일 경인일에 일출시 발야
713
들 지고 뫼로 드러 우진녕 너머 가셔
714
안부천 내니 부사산셔 려오고
715
리 업디라 나모틀 건너기
716
채졍쳔과 치 야 쥰하 보태 가
717
듕화고 내니 비 만히 오디라
718
지세가 광활고 녀염이 부셩기
719
명호옥의 비면은 둘재 가리로다
720
녕 우희 다옥의셔 삼신 잠간 쉬여
721
강구로 드러가니 오젼은 오십니오
722
오후 삼십이니 팔십니 왓고나야
723
우진녕 셔편 흔 윈강 쇽엿고
724
우진녕 동편 흔 쥰하쥐 쇽엿다
725
십일일 대우 비 맛고 작작다
726
올흔편의 대 고 십여니 디나가셔
727
길 가의 쳔견의 일만화 의 심거
728
야흐로 만발니 경이 이 됴타
729
퍼붓드시 비가 오니 가볼 길이 바히 업다
730
살판파 바로 너머 큰 리 나 건너
731
십니 디나가셔 부쳔 다니
732
물이 이 대챵야 계요 여 건너가셔
733
십여리 나마 가셔 길원으로 드러가니
734
일의 모든 사 다 몰쇽 저져시
735
나 홀로 닙은 의복 물 뎜이 업디라
736
가마 큰 효험을 오이야 알리로다
737
동들 블워니 우고 다다
738
도쥬 발셔 가고 비 더욱 크게 오니
739
젼진 길 바히 업서 예셔 자랴 졍되
740
니블 시 짐바리 어 간 줄 모노다
741
집의 제 니블을 날 빌녀 덥게 고
742
져 그저 누어 자니 이 불안다
743
풍우가 대작야 샹부방 못 니고
744
죵샹긔 잠간 녀 인야 잠을 드니
745
십이일 도든 후 대풍의 발야
746
큰 리 나 디나 이윽이 잠간 쉬여
747
오십니 삼도 가니 날이 이 느디라
748
부산 밋치로 운애가 북 끼여
749
진면목을 못 볼러니 구 것고 비 갠 후의
750
아의 람 부니 년화 송이가
751
반은 핀 모양이오 셜이 차아야
752
몃 길이 혓디 거믄 가 바히 업서
753
혼후고 고야 운쇼의 다시니
754
긔관이라 려니와 젼 사의 일긔과
755
수층이나 러지 여긔 사 기리기
756
턴하 명산듕의 비 업다 니
757
졍듕와나 다손가 용녈고 가쇼롭다
758
한홍이와 복마짐이 머므러 기리니
759
의 니블 비 환을 오을 면노다
760
십삼일 발야 뉵칠니 디나가니
761
예셔브터 상근영을 십니 올가니
762
숑이 무밀고 총둑이 목야
763
녕은 그리 험챠니코 잇다감 잇
764
이십니 다옥의셔 잠간 쉬여 올라가니
765
음식 겨집들이 그 손의 들고
766
무어시라 지져괴며 라오며 사라
767
이십니 올라셔 령우 안자보니
768
어제 부산이 그리 놉디 아니터니
769
놉히 올나 라보니 히나 마 더 놉흐니
770
대져 지샹녕이 아국을 의논면
771
됴령과 샹하 예셔 부산 라보기
772
서너 층이 더디라 니나 남다
773
동의 명산듕의 뎨일이라 리로다
774
녕북편 도라보니 상근 물이 이셔
775
호호고 탕탕여 장관이 칠십니라
776
이리 놉흔 졀졍우 이러 큰나큰 물
777
바다쳐로 깁고 머러 그 빗치 심벽야
778
남도 바다 맛치 고 어별합 초 잇고
779
왕 돗단가 이리 가고 저리 가니
780
장도 장시고 텬디간 긔관일다
781
우리 나라 공갈모 장다 거니와
782
여긔 비겨 보게 되면 자최물과 다손가
783
두산 대슈와 한나산 녹담이
784
이와 엇더 쟉신고 아모커나 이샹다
785
관소로 려가니 호슈 등지고셔
786
녀염이 즐비니 승지라 리로다
787
듕화고 내라니 왼편으로 호슈 고
788
녕으로 려갈 뫼불이 니러나셔
789
람이 장디라 불결이 뫼흘 덥허
790
번개쳐로 나 시 면으로 븟터오니
791
길의셔 지쳑이라 연염이 챵텬니
792
만일 더 가다가 타죽기 쉬온 디라
793
교군을 촉야 급급히 려갈
794
삼십니 계요 가니 금양산이 아래로다
795
냥슈가 합금여 폭포되여 려가니
796
젼인의 일긔듕의 유츄이 여긔로다
797
샹모 쇼젼원을 질 드러가니
798
태슈의 사 라 인민도 부려다
799
인물이 초쥰고 미도 만흘시고
800
십니 와시니 합여 팔십일다
801
십스일 청명커늘 일출후 발야
802
큰 내 나 건너가니 고 리 랏다
803
올흔 편의 바다 고 십니 대야듕의
804
노도 지리고 귀경도 시고
805
녀리도 번셩고 여긔도 샹모쥘쇠
806
십오일 오십니 가 신쳔 듕화니
807
십여리 디나가니 소우가 몽몽다
808
우장고 삼십니 가 뉵향강 건너가니
809
예셔브터 들이 뷘틈 업시 연엿
810
십여니 디나가 품쳔 가 숙소니
811
너른 들이 망망고 바다흘 님엿
812
무쟝 쇽엿고 쥬즙이 장도다
813
십뉵일 우장 닙고 강호로 드러갈
814
왼편은 녀염이오 울흔편은 대로다
815
피산 대야 옥야쳔니 삼겻
816
누졔 샤치과 인물남녀 번셩다
817
성첩이 졍장 것과 교냥 쥬즙 긔특 것
818
대판셩 셔경도곤 삼나 더고나
819
좌우의 굿보니 하 장고 무수니
820
저어 붓긋로 이로 긔록 못 로다
821
삼십니 오 길 뷘틈 업시 뭇거시니
822
대쳬로 혜여보면 만을 여러힐쇠
823
녀의 미려기 명호옥과 일반일다
824
실상로 드러가니 여긔도 무쟝쥘쇠
825
처엄의 원가강이 무쟝 태슈로셔
826
평수길이 죽은 후의 평가 업시고
827
이 도읍야 강고 가음열며
828
포가 신밀고 법녕도 업준여
829
지려가 심쟝야 왜국을 통일니
830
아모커나 졔뉴의 영웅이라 리로다
831
가강이 죽은 후의 손이 니어셔셔
832
이디 누려오니 복력이 갸륵다
833
십칠일 비개쟌코 실상셔 머므니라
834
가번졔 쥬공이가 필담고 나가니라
835
십팔일 삼샹과 일 샹듕하관
836
연향을 바드니 진무라 고나
837
대목부와 관반들이 다슷 사 긔 와셔
838
졉 녜와 법이 도쥬와 티
839
식후의 두 집졍이 와셔 뵈오
840
거동이 쳥초고 얼골도 슈발다
841
신 영외에 가 읍고 맛고나
842
대마도쥬 발을 벗고 드러와 거동
843
쳐엄의 봉들이 도쥬의게
844
다 슌 파고셔 하딕고 나간 후의
845
도쥬와 장노가 드러와 뵈고 간다
846
가번쟝노 셔긔 션 나파사 등이 와
847
유굉이 드러와셔 죵일토록 필담매
848
져녁밥 난화내여 먹이니 깃거
849
십구일 이십일은 필담고 무사다
850
대판셩 뉴션쟝이 고목의 여시
851
현동지 환던 부산통인 김한즁이
852
초십일 쥭다 니 참혹고 불샹다
853
이십일 마샹가 도쥬의 집의 가셔
854
조고 도라오니 예놈들 구경고
855
사이라 고 장히 너겨 기린다
856
념이일 듕 인평이 명화지 드리거
857
밧디 아니코 도로 주니 인평이 부복야
858
지셩으로 쳥 이거시 친명이니
859
비니 션 몰리치디 마오쇼셔
860
브득이 바든 후의 답간으로 답녜다
861
태흑두 임신언이 그 아 임신와
862
젼녜로 와셔 뵈매 읍고 안자보니
863
신언은 슌근 풍증이셔 요두고
864
신 쳥슈야 아비도곤 죠금 나의
865
졔들 리고 와 글 여 슈 드리거
866
즉셕의셔 운야 가지고 가고나
867
념삼일 조반후의 님파 듕의 문인들이
868
국교관 님신유와 덕역냥필 묵부돈과
869
후등제균 하구듕언 편강유용 쳔평과
870
졍샹후독 쳥엽양호 숑분위미 숑젼구징
871
열 나히 긔 와셔 필담과 슈창으로
872
죵일고 도라가니 이 날 지은 글이
873
뉼시졀구 합야 부디기쉬로구나
874
이십일 봉곡문인 쇼실댱츄 남태원과
875
듕촌홍도 관슈편과 구보태형 반졍냥과
876
궁문방젼 산안장과 임젼되청 아홉 사
877
어제텨로 필담창화 어둡도록 온 후의
878
동독 졍이가 댱셔야 무럿거
879
칠졀 두 슈 지어내야 패길 주어 뎐니라
880
이십오일 임신언이 졔 아 리고 와
881
삼샹긔 뵈올 서 두 번 읍는고
882
신언은 필담고 글시 나식 드리고셔
883
신 신게 각 세 슈식 드리고
884
셕식고 블현 후의 님문졔 왓다커
885
삼문로 나가보니 열 사 왓고나야
886
필담으로 밤들기의 미쳐 운 못 고셔
887
글만 바다 도라와셔 등불아래 리보니
888
싀반인의 이운이 불경기 심거
889
각인의 보낸 글과 필담 것 도로 준다
890
이십뉵일 노광 와셔 밤드도록 필담다
891
이후브터 날마다 와 온갓 말을 다
892
위인이 강개고 거지가 경솔
893
박남 강긔고 총명 영리야
894
보던 듕 뎨일이오 우리의게 졍이 만하
895
긔이 말이 업고 심열셩복야
896
라 가지라고 날마다 와 보채니
897
그 이 긔특 국법의 구애야
898
못 려 내여오니 애고 불샹다
899
제 나라말 무러보니 불티불탄고
900
여 고을 태슈들이 도 크고 강셩키의
901
빅관이 념녀야 무셔워 다
902
이십칠일 비오 국셔 뎐올
903
신 됴복고 비쟝들은 융복고
904
문와 역관들은 관복을 초고셔
905
신니 신 남여 하졸노 메오시고
906
군물과 고기 뉵녜로 가오시
907
내 혼자 각니 내 몸이 션디라
908
브졀업시 드러가셔 관으게 기
909
욕되기 이 업서 아니가고 누어시니
910
샹 오시 예디 와 이시니
911
가지로 드러가셔 굿보고 오 거시
912
해롭디 아니니 잇디 말고 가쟈커
913
내 웃고 온 말이 국셔 뫼신 신
914
붓그럽고 통분나 왕명을 뎐오니
915
일 업셔 가려니와 글만 짓 이 션
916
굿보랴고 드러가셔 개돗 예놈의게
917
례기 초심되 아모려도 못 갈로다
918
신 일업서 우시며 오시
919
더리고 도라가셔 됴흔 톄 혼자 마쇼
920
조흐란 것 아니오라 리가 그러오
921
므히 뎐명고 황혼의 도라왓
922
시온을 가셔 보고 셔히 무러보니
923
오던 길로 도로 나셔 쉰 다 졍문 디나
924
리 넷과 셩문 세흘 례로 디나가셔
925
관궁의 다니 뎨일문 리 우
926
하마패 세엿기의 샹관들 하마고
927
군물고 머물고셔 담대로 금고
928
뎨이문 뎨삼문의 가마니 다 리고
929
뎨문 뎨오문의 신 하교니
930
이고나반 이목부와 이쟝로 마조 나와
931
읍야 드러가니 집보셕 라시며
932
뎨뉵문 뎨칠문의 돗보석이로고나
933
널듕게 올나가셔 뉴리관의 드러가니
934
신 외헐소요 사모 홍의쟈요
935
나모신 거 갓고로 니가
936
발벗고 안잣니 그 수가 만터고나
937
내헐소 드러가니 솔 그린 집이로다
938
신 올흔편의 수십예 안시
939
거믄 비단 옷도 닙고 일각모도 이시니
940
통다려 무러보니 집졍뉴라 고나
941
마도쥬 현의고 그 겻 안잣고셔
942
그뒤 흥의 나 열아믄 줄 안자시니
943
이거 각태슈 임신언 임신
944
안자이셔 아른 쳬 고나
945
집졍이 인도야 지간의 드러가셔
946
안잣다가 도로 나와 국셔 뫼시고셔
947
드러가 고 관연의 졀고
948
하딕 제 졀니 젼후의 네 쇠
949
당당 쳔승국이 녜관녜복 초고셔
950
머리 근 류의게 기 엇더고
951
퇴셕의 아니온 일 븕기가 측냥 업데
952
슈역들 줄 고 문들 줄 야
953
녜고 물러나니 군관과 모든 샹관
954
두 의 녜고 샹관 쇼동등은
955
퇴쳥으셔 녜고 듕관은 의
956
관이 안 가 멀고 어두어셔
957
얼골을 몰나보 흰 오 닙어더고
958
신 안잔 갓갑고 오란디라
959
셔히 라보니 치 젹고 턱이 고
960
졍신은 이시 거동이 경삽고
961
머리 흔덕이며 졉을 뒤져기고
962
텸시 로 야 딘듕치 아니고
963
젼후의 여닐곱 놈 뫼시고 안잣고나
964
연향텽의 나 안자니 닐곱 상 드리고셔
965
밥 세 번 가져오고 물 세 번 치고나
966
안쥬 세 번 갈고 차 번 드리고셔
967
가화 드려오니 진무와 가질다
968
음식이 긔괴야 하져 것 바히 업
969
누각 젼무들을 단쳥은 아니고
970
기동들과 혁가레의 다 몰쇽 도금고
971
집 우 닌 기와가 구리 거시로다
972
졍우가 협착고 각도도 흔암야
973
별노 샤치 아니되 정교며 견치며
974
지목의 문의 잇고 밋그러올 일쇠
975
신 나오실 제 집졍이 라와셔
976
판계의셔 읍송고 도쥬와 목부들은
977
계하의셔 읍송고 이관반 이댱노
978
뎨삼문 밧긔 나와 읍여 뵈고나
979
신 뎨문의 남여 타고 나오시고
980
뎨뉵문 뎨칠문의 승물과 을 고
981
군용을 베풀고셔 관소로 도라올
982
비가 개디라 우비 업시 고
983
삼현과 국악 티고 삼듕셩을 내네
984
긴 낭과 분댱이며 규칠 놉흔 문을
985
금으로 삭여시며 구리로 민 집이
986
좌우의 버럿거 통려 무러보니
987
집졍과 태슈들의 집이라 고나
988
흑의 집졍들은 쳥귀 이 혹 이시
989
홍의 닙은 아 근구인형엿더고
990
이 말 다 드러니 아니가고 누엇기가
991
진실로 잘 엿디라 깃브고 다다
992
념팔일 도쥬 와셔 슌게 뎐명 일
993
티하고 닐오 관이 다 오되
994
됴션국 신들이 녜모가 한슉니
995
긔특다 다 니 가쇼로와 들리고
996
념구일 임신가 왕유의 듁도와
997
슈목산슈 그린 그림 가지고 와 쳥거
998
찬 지어 써셔 주고 여긔 사 소야진이
999
쇼와 도미 가지고 와 계시야 달나거
1000
셔히 려 보니 젼후의 적의
1001
졔술관 셔긔들이 다 지어 주어시
1002
져다마 뇨초야 나 볼 것 업고나야
1003
아모리 문쟝들도 여긔 나와 지은 글이
1004
이러케 됴티 아니니 감 줄 알니로다
1005
삼월 초일일의 삼병방과 삼슈역이
1006
마샹 거리고 관백의 집 가셔
1007
재주고 돌아오니 관이 기린다
1008
회답셔 초 거 어더다가 드리거
1009
신와 리보니 애안 만흔디라
1010
쥬션야 곳티라고 슈역의게 분부다
1011
초이일 쳥명야 삼슈역 와 알외
1012
긔번실이 태 보고 답셔 고칠 말을 니
1013
셔 입게 엿기의 곳티디 못다
1014
삼샹 드시고 민망고 근심터니
1015
태두 부놈이 오 우리 보랴 고
1016
식후의 온다 듯고 신 오시
1017
글 짓고 필담 제 곳칠 죠금 뵈소
1018
이윽고 임신언이 제 아 신고
1019
가지로 왓다커 네히 긔 나와보니
1020
셰셰히 운야 보내마 니고셔
1021
회답셔 곳칠 말을 이 셔 뵈니
1022
태두 슉시고 대답 아니 디라
1023
민방키 이 업서 답언을 쳥니
1024
그제야 서 뵈니 근낙이라 여시
1025
그거시 우리 것 모 시 본디라
1026
민망고 념녀로아 다과로 접고
1027
우리 먹 음식을 라온 두 사을
1028
은근이 졉니 감격고 깃거야
1029
두세 번 치샤고 크게 됴화 거동
1030
나 나타나고나 곳텨 줄 이 잇도다
1031
여러 션 와 잇다가 피야 다 갓다
1032
초삼일 태도가 삼슈역 와셔 보고
1033
답셔 곳텨주마 샹약고 갓다
1034
삼삼녕졀 오이라 삼샹이 셜찬고
1035
일들 다 모다셔 풍뉴 치고 즐기니라
1036
초일 여러 션 글 보내야 바다갓다
1037
두 댱노 뎨 듕들 날마다 와셔 본다
1038
초오일 삼사샹이 도쥬의 집의 가
1039
우리 네 문 칭병고 아니 갓
1040
졉 후히 희자 노롬구시
1041
바히 볼 것 업다 니 가쇼로와 들리고
1042
셩듕화 샹방비장 병드러 못 가고셔
1043
뉴영쟝 긔년의 그 조부 와실 적의
1044
욕보기로 인혐고 아니 가고 머므니라
1045
쵸뉵일 시예라 여을 바다가
1046
관의 궁의 갈 도쥬가 쥬쟝고
1047
각태쉬 모닷 김영쟝 온슉이
1048
실 듕 긔추오듕 뉴영장 효이
1049
후와 추 삼듕고 임도 거경이
1050
후와 추를 듕고 쟝군관 님츈흥은
1051
후와 추를 몰기고 김만호 응셕이
1052
추삼중 후불고 죠만 닙듕이
1053
긔추 나 오고셔 마상지 졍도은
1054
추듕의 후불고 박셩젹은 후삼듕의
1055
긔 추오듕 고 오니 김만호 분야
1056
병이 나 죽어가니 우고 불샹다
---
## 4권
1
일동장유가 뎨사
2
이졍승 드러와 즉셕의 여 시
3
년야 지어쥬니 셩집이 셩을 내야
4
지어주디 마쟈 나 강잉야 운다
5
초칠일 관도쥬 회답셔와 네 단
6
가지고 쳥알니 신 시복고
7
졔술관 샹판와 그 남은 원역들이
8
모고 나 맛기 집졍 보 고나
9
관의 보낸 물죵 대쳥의 하시니
10
그 수가 만흔 디라 니로 못 긔록다
11
여라믄 시들이 드러와 챵화
12
그 듕의 뉴유한이 한헌뎨 손일쇠
13
제 셰계 무러보니 조비가 찬위 후
14
제 한아비 황로셔 피란여 여긔 와셔
15
태슈가 되엿더니 그 후의 잔미여
16
션비노 이다 불샹고 신긔다
17
초팔일 신언부 그 남은 수십 션
18
글 가지고 왓기에 다 운여 주다
19
초구일 님가부 각각 비쟝 보내고셔
20
미롱지 이십츅을 신을 보내엿
21
장지 권 간지 쉰 폭 답례야 보내고셔
22
별시 운여 쟈 주어 보내니라
23
태두 부놈이 신게 별쟝니
24
신 아니 짓고 각 셔긔로 작매
25
죵사샹 답별쟝은 내가 대작여 주다
26
예 와셔 창화던 그리 만흔 션들이
27
다 몰쇽 와셔 보고 저마다 별쟝니
28
져므도록 화답여 갓가로 니라
29
초십일 미우니 글지어 왓고나야
30
십이일 회뎡 비 맛고 길흘 나
31
품텬을 드러와셔 동의 햐쳐고
32
셕식을 먹은 후의 막 자랴 올 적의
33
셥운각 졍근산과 태실문연 긔북송창
34
보국연산 조변덕과 묵졍관 한대영과
35
님번평인 황익명이 비맛고 라오
36
나모신의 우산 밧고 삼십니 거러와셔
37
십젼 구패야 밤들게야 와셔 보니
38
졍셩이 거룩고 의긔도 잇다 쇠
39
각각 신 만히 니 지셩으로 주디라
40
아니 밧기 불샹여 죠곰식 더러 밧고
41
글을 다 운야 필묵을 답녜다
42
그 듕의 묵졍한이 눈물 짓고 슬허니
43
비록 이국 사이나 인졍이 무궁다
44
십이일 등지 오니 한대영과 평영이가
45
삼십니 라와서 아 못 니별야
46
우리 웃 븟들고셔 읍톄여우 다가셔
47
밤든 후 도라가셔 오히려 아니 가고
48
길 의 셔 잇다가 우리 가마 깃 와셔
49
손으로 눈물 고 목메여 우 거동
50
참혹고 긔특니 이 됴티 아니
51
누고셔 예놈들이 간샤고 퍅다던고
52
이 거동 보와니 이 연도다
53
십삼일도 비 맛고셔 쇼젼원 와셔 자니
54
갈 적의 보리 간 것 밋처 디 아녓더니
55
그 이 수십일의 셔 발슈여시니
56
토품의 고유기 일로조차 알리로다
57
십일 비 맛고서 상근듕화 삼도 자니
58
길 의 물 우희 물방하 노핫거
59
게 려 시 보니 물네 드
60
졍포의 슈긔쳐로 물 속의 드려노코
61
믈네 속의 도 나모 크기 거의 아이오
62
기 물네밧퀴 두 발이 나마 긴
63
도라가면 비슥게 다 말둑 박아두고
64
그 아래 방하학을 다 버려 노코
65
넓고 큰 바조의다가 다 구멍 러내여
66
방하고 다 그 굼게 자 노코
67
방하고의 박아 물네가 도라갈 제
68
물네의 박힌 말둑 고희 둑 드려셔
69
두 둑이 어근나면 방하고가 이고
70
첫고 려진 후 네 고가 려지고
71
다 고가 히면 첫 고가 히고
72
슌환 반복야 닷 셤 다
73
그 듕의 묘 거 겨가 다 절로 려
74
어로 가고 업고 만 남아시니
75
골플모 모양으로 절로 람 나도다
76
십오일 십뉵일은 삼도셔 묵으니라
77
도쥬가 송언 다리 다 기의
78
못 가게 여시니 다리 슈보온 후의
79
발쟈 디라 일 업서 못 가니라
80
부산 라보니 날이 이 어두운디라
81
요이하 눈이 녹고 요이샹은 허여야
82
눈이 그저 혀 이셔 거문 거시 아니뵈
83
뉵월 삼복도 샹봉은 아니 녹아
84
극남방 극열시의 그러니 모로다
85
천녀의 각니 왼 뫼히 혈이매
86
아모리 더온 날도 눈 아니 녹 양이
87
우리 나라 군의도 풍혈혈 두로 이셔
88
뉵월의 관가의셔 어을 셔 오니
89
예도 응당 그러고 못 가 보니 애도다
90
십칠일 길원 가니 리 미쳐 못 노화셔
91
몃을 묵을 줄을 모니 답답다
92
십팔일 십구일은 못 가고 머므니라
93
두 쟝노의 뎨들과 무수 예션
94
풍뉴 듯쟈 쳥거 진삼현 텨셔 뵈고
95
두 통인 무니 그것들이 대락야
96
비로소 오이야 션악을 듯노라
97
이십일 몬져 나 부쳔 와셔 보니
98
리 노하시 물결이 하 급니
99
갈가 념녀야 조심야 건너니라
100
쳥견사 드러와셔 뇽실의 안자보니
101
리의 현판이 김좌승의 글시로다
102
뒤 모시 잇고 년닙히 시
103
졀 뒤의 숑듁 속의 십여댱 폭포물이
104
반공의 려지고 진쥬 물방울이
105
면으로 러지니 심목이 상연다
106
소위 션이쟝이 모양이 이상야
107
나모와 풀도 아니 고 과 닙도 아니로다
108
쇼혀쳐로 삼겨시 프고 둣거워셔
109
두 편의 가가 쳔엽쳐로 숑숑고
110
올 난 것 우 년의 두세 나셔
111
년구면 남기 되니 대뎌 디 고이다
112
서너 질 큰 파쵸가 폭포겨 셔 이시
113
겨울의 닙흔 죽고 줄기 사라 잇셔
114
서너 닙히 나와시니 장고 긔특다
115
영산홍 픠어시며 종녀소쳘 다 잇고나
116
쳐지 고상고 대 압님야
117
실 미 록 두 편으로 환포고
118
그 후의 낙낙쟝숑 문을 리왓고
119
그 안은 호슈 되여 경치가 졀승다
120
우리 나라 낙산 승디라 오되
121
압경은 잇거니와 뒷경은 업디라
122
여긔다가 비교면 여러 층 러질쇠
123
다 듕의 드린 글을 일필의 뎍어주니
124
손 묵거 샤례고 깃거기 측냥업다
125
쥬지승 쥬인이가 칠언절구 드리고셔
126
운라 쳥니 신도 지어주다
127
듕의 사들이 졈심이 업디라
128
조만호와 니언진이 내 밥을 화 먹다
129
남호곡 언뉼시 운야 즁을 주고
130
강구로 드러오니 관샤도 상활고
131
집 뒤 큰 호슈가 경치가 긔졀다
132
십이일 부쳔 와 가의 가마 시러
133
왜인이 메고셔 건너오니 예 진다
134
쥰하 듕화고 무판녕 넘어와셔
135
등지 와 밤을 자니 노쟝듕 날 보고간다
136
졍쳔 물 만타고 예셔 사흘 묵으니
137
냥댱노의 데들과 이 션들이
138
날마다 와셔 보고 슈창으로 쇼일야
139
념오일 발야 정천 다니
140
물이 그리 깁디 아니 예놈이 불측야
141
우리 리고셔 깁흔 로 드러가니
142
그 을 모디라 통분키 이 업다
143
금곡듕화 대쳔 와셔 밤든 후 잠을 드다
144
이십뉵일 견부 즁화 천농쳔 건너가셔
145
빈송 가 슉소니 왜시도 만히 왓다
146
념칠일 황젼 듕화 저녁의 길젼 자다
147
념팔일 적판 듕화 져녁의 강긔 자다
148
념구일 명 듕화 명호옥 슉소 가니
149
올 졔도 보와시 어둡게야 드러와셔
150
새배 나 왓디라 시히 몰나더니
151
오을 일넛기의 오면서 시 보니
152
산쳔이 명녀고 녀염이 즐비니
153
대판과 일반이오 녀의 거룩기
154
왜국듕 뎨일이라 져믄 명무들이
155
좌우의 안 졀 다 주어 보려 고
156
여긔 보고 뎌긔 보니 쳬머리 흔드시
157
져므도록 길흘 오며 도리질 흐고나
158
곳곳이 논과 밧 긔경으로 시작
159
쇼가 바히 젹은디라 래괭이 라셔
160
논과 밧 글로 고 게다가 길마 지어
161
압가지에 줄을 야 흐레 삼고나
162
그리 너른 들논 속의 숫무오 담복 라
163
무셩키 장거 통려 무러보니
164
숫무오 바다 기름 다
165
일공의 강 온 것 고 장히 크고
166
실 업고 물 만키가 민강과 일반일다
167
이 뉼 크기 죵자만야
168
손의 셰흘 쥐면 줌 버러 못 더 쥘다
169
건시도 이샹야 우리 나라 풍기 준시
170
예 비면 고 크기 못다 리로다
171
비파라 실과 주거 시 보니
172
누 외얏 모양이오 마 마시요
173
모과로 겁질이 둣거워셔
174
그리 됴티 아니 고 히 바히 젹고나야
175
의 소리 개소와 새소 우마소
176
아국과 일반이오 아소 우소리
177
텬디로 나고나 죠곰도 더디 아니타
178
삼십일 듀고 듕화 대원셩 슉소다
179
월 초일일에 금슈 듕화 언근 자다
180
열 다엿 왜시들을 불혀고 화답다
181
초이일 팔번산 와 졈심고 발야
182
저녁의 삼산 오니 고당 츈계 보고 간다
183
초삼일 대진 듕화 져녁의 셔경 오니
184
왜시가 만히 오 병드러 못 지으니라
185
초일 졍포 와서 고 듕화고
186
미시의 평방 가셔 듕하관은 의 려
187
슉공 먹고 올나오고 샹관은 속의셔
188
져녁밥 지어먹고 가온대 다 자니라
189
목흥공 셰숙이가 도셔 삭여 보내엿
190
예셔 대판셩이 삼십니라 고나
191
초오일 대우고 본원 드러오니
192
수십 시 와셔 보고 강호의 평인평영
193
글 보내여 문안니 그 졍이 측고
194
신의도 잇다 다 여긔 머믄 격군들이
195
놀며 깃거니 우리 역시 든든다
196
초뉵일 수십 션 챵화고 나가니라
197
초칠일 샹방집 대구 사 최쳔종이
198
문을 품고셔 제 방의 도라와셔
199
드러 누엇더니 엇더 예 놈이
200
가의 올나안자 칼로 목을 지른디라
201
쳔종이 놀라 야 소하고 니러셔니
202
그 놈이 칼을 리고 젼도히 라니
203
일이 경동야 급히 니러 모다 보니
204
창 세모 칼을 혀 노코 누엇
205
호흡이 쳔촉야 아 못 보리러니
206
묘시냥의 운명니 참혹고 불샹다
207
슈역을 잡아드려 신 분부
208
만인의게 왕복여 죄인을 어드라
209
만인이 무상야 바히 경동 아니고
210
져므도록 기리 말도 아니오니
211
졀통고 졀분믈 어이 다 긔록리
212
죵샹 햐쳐되 시가 드러오니
213
샹방의 가 들고 최봉녕을 불러다가
214
수이 사라 고 슈역의게 뎐라
215
바히 동념 아니니 졀통졀통져이고
216
봉판 밤든 후에 신 보고 나가니라
217
초팔일 마두놈이 흑이 업디라
218
샹 년명야 도쥬의게 편지
219
답셔도 아니고 습념을 랴 니
220
만인이 니 념습을 온 후
221
우리 알 배 아니오니 아모리나 디어다
222
혹 그러가 야 죽엄을 그져 두니
223
이러케 분통 일 텬의 잇가
224
부과 슈역들은 죠금도 긔탄업서
225
일분인심 잇게 되면 이러케 무상가
226
초구일 이 관원 와셔 검시니
227
비로소 념습고 삼슈역 잡아드려
228
최니 냥슈역은 결곤 삼도고
229
현동지 늙다 고 분부야 내티니라
230
십이일 도젹 연야 아모 말도 업고나야
231
십이일 입관 졍샹 졔문 지어
232
삼사샹과 샹듕관 다 몰쇽 모다 울고
233
담군이 관을 메고 졍문을 나갈 적의
234
봉판 로막고 못 나가게 디라
235
관을 메고 도라와셔 샹긔 알외오니
236
니강녕 분부야 몬져 난 놈 사야
237
결곤 삼도노라니 밤이 셔 깁흔디라
238
관을 그저 노시니 의 통분다
239
십이일 관을 두고 못 내여 보내니라
240
십삼일 달 은 후 비로소 내여다가
241
강변의 초빈니 불샹코 참졀다
242
이후브터 마인들이 문금을 장히 고
243
듀공이 마인의게 걸고 드러와셔
244
읍톄 여우여 니별고 가디라
245
인졍이 불샹야 우리 역시 턍연다
246
도쥬의 답 편지 비로소 왓다
247
어의가 교휼니 졀졀이 통분다
248
쥬공이 편지야 옥졍을 긔별
249
오아야 대판셩윤 졔쟝 모화 도쥬 모화
250
졍고 대언 통신 듕 사
251
내 와 죽은 거 이 디 그저 두니
252
도리가 그른디라 사을 급히 야
253
만일 죄가 잇게 되면 내 혼자 담당쇠
254
댱뇌 역시 올타 니 사 시작다
255
필경이 엇디 될고 답답기 이 업다
256
십일 대판윤이 죄인을 휘니
257
대마도 던어관놈 녕목젼장이라
258
젼쟝은 도망고 죵 잡아 문로
259
궤 속의 너허다니 이제나 샹명가
260
십오일 슈영댱노 제들 보내여셔
261
회 위로니 삼년통졀 두 즁일쇠
262
십뉵 십칠 년이틀을 삼년통절 고텨 와셔
263
댱노의 녜단 주고 필담고 가고나
264
사가 대발야 마인들이 갓텨다되
265
셔히 못 드니 애기 이 업
266
십팔일 슈역 와셔 신긔 엿오
267
젼쟝이 도망야 여긔셔 칩십리
268
간파로 가 잇다가 섭진로 도라와셔
269
여긔셔 십니라 지젼이 예셔 잡히여셔
270
잡아 왓다 디라 통쾌키 측냥 업다
271
젼쟝의 납쵸키 샹일로 죽여다
272
아히 다 모니 애기 이 업다
273
십구일 젼쟝이 비로소 죄 준다
274
이십일 냥쟝노가 말 보내여 청을
275
마도쥬 못 본 젼은 몬져 보자 오되
276
젼녜 업시 모져 보기 톄예 불가타니
277
댱노가 쳥 도쥬가 나간 후의
278
저 머므러셔 죠용이 필담챠
279
아니 허시고 도쥬가 왓다
280
대쳥의 나가시니 도쥬 아니 오고
281
두 댱노 왓디라 모져 읍 아니고
282
도쥬 쳥오니 비로소 드러오니
283
가지로 읍을 고 상야 안 후의
284
강호셔 온 위안셔 도쥬가 내여 노코
285
그 버금의 쳠댱노가 제 위안서 내여 노코
286
쇼찰의 셔 뵈 고시븐 말 잇거든
287
셔히 달라 니 대져니 강호의셔
288
쳠댱노 분부야 므라 연고로쇠
289
감물이란 봉놈이 도쥬의 알 가셔
290
밀밀이 말을 고 연쟝노의 알 가셔
291
무어시라 아모란 줄 모로다
292
최슈역 엿오 도쥬가 청오
293
사만 샹명면 그거시 족오니
294
죄 업 다른 사 만연티 아니게
295
대판셩윤의게 긔별야 달라
296
샹이 시 판윤의 일
297
우리 알 배 아닌디라 네 어이 이런 말을
298
로 퇴텩 아니코 게 와 알외다
299
슈역이 유유고 무료이 물러가니
300
애을 그 알셔 즉에 잡아내야
301
엄치 못 오니 한심코 분개다
302
도쥬가 나간 후의 의 도라와셔
303
뉴댱흥의 말 드니 김영쟝이 와셔
304
샹겻 안잣더니 샹방의 녜방 비장
305
십여역관 리고셔 분여 대언
306
잇가 내 여어보니 댱노의 뎨듕의
307
셔긔방의 드러가셔 품으로 쇼찰 내여
308
기간의 지수니 필연으로 잇디라
309
마 우리 도 옥졍을 아디라
310
일이 쟝 되려니와 그러티 아니 면
311
반시 우리 무리 죽으리 만타
312
방고 긔탄 업기 이러니 어이리
313
츈계란 즁이 드러와셔 필담으로 뵈니
314
샹이 슈역으로 도쥬의게 말 보내
315
사 졍법기 리의 족거니
316
무죄 다른 사 만연티 말라 니
317
샹의 시 일 아디 못 리로다
318
드매 통야 등장이 날 나
319
나 죵시 일을 뎐갈기 만무
320
즁의 말이 이러니 필연 뒤죈디라
321
일듕 열 명무가 다 몰쇽 졔분야
322
우리 넷과 가지로 샹방의 드라가셔
323
뉴영쟝 몬져 슈역의 최항녕이
324
마인과 부동야 지쳑의 쟝젼의셔
325
위조뎐갈 여시니 그 죄가 듕오매
326
일이 제분야 거쳥야 알외다
327
샹의 처음의 화며 니더니
328
나죵의 슈역 불러 후의 그리 말나 고
329
분부야 내리니 분완키 이 업서
330
소 크게 엿오 문들과 명무 군관
331
죽을 죄 잇사오니 하여 쳐치오
332
졍샹이 오샤 므 일이 그러뇨
333
고쳐 엿오 앗가 비쟝이
334
역관으로 안자 고셩와 니오
335
앗가 온 댱노 편지 지주니 잇다 니
336
인신이 인국인과 부동고 지주 죄
337
만무셕이온디라 스식야 내오쇼셔
338
졍샹과 죵샹이 내 말 모고셔
339
시온려 무시니 젼후곡졀 엿오니
340
졍샹이 니시 만니의 동야
341
화합기 가거 이런 말을 와셔 니
342
의 무익고 갈등만 나리로다
343
내가 엿오 최쳔종의 일이
344
이후의 잇거든 그제야 아오쇼셔
345
졍샹이 오시 언길이 불언흉을
346
그 어이 모고셔 이런 말을 고
347
이제 아니 여셔 후의 변이 잇와도
348
그 연고를 모디라 그러므로 이다
349
녀성야 니시 내 듯고져 아닛 말을
350
그 어이 이대도록 누누히 알외고
351
왜승과 부동한 부간 난용인
352
엄치야 사 아니코 암담 두시고
353
샹이 오샤 댱노와 필담 일
354
고가 그러야 브득이 일이니
355
그 죄업 줄 내 시 아디라
356
어이야 그대도록 혼자 그리 노다
357
내 곳텨 엿오 그 비쟝의 말이
358
샹 말 오면 노 일 업오나
359
그 사을 모다가 불측 보내오니
360
통티 아니 며 노흡디 아니랴
361
집와 죽엄 분명 잇오리
362
비로소 온언으로 우시고 니시
363
만일 병난 앗게 되면 장의고 분개리
364
반시 로 희언으로 미봉
365
죵샹이 오시 김진 자라날 제
366
싀골셔 엿기에 셰 모고셔
367
직셜고 과격야 감언불휘 거시
368
대개풍 잇디라 이 비록 귀커니와
369
갸의 몸 기 소다 리로다
370
분연히 엿오 노둔고 일 모나
371
나라 위 일편단심 흉듕의 잇오니
372
나라밥 먹고셔 아유 구용고
373
망군부국 는 놈은 개돗로 보이다
374
인야 물러와셔 분고 강개야
375
밥 술을 못 먹고셔 듀야로 돌돌니
376
등창이 날 안질이 나고나
377
념일일 념이일도 대판셔 묵으니라
378
춘계승 드러와셔 밋쳐 못 안자실 제
379
슈역이 샹방의 가 급급히 고오
380
판이 와셔 댱노의 뎨듕
381
와셔 필담니 엿와 달라 니
382
샹방의셔 시온 불러 마인이 셩을 내니
383
큰 일이 나게 되엿 이후 그리 마소
384
그 즁이 드러와셔 말도 미쳐 못 여셔
385
먼 잇 마도놈이 어이 미처 아돗던고
386
녜브터 염진참군 잇거니 어이리
387
이십삼일 슈역들이 마인의 말로
388
샹게 혼동야 필담 길흘 막고나
389
이십일 영장노가 혼자 뵈쟈 쳥고
390
도쥬 말 보내 난언 일 잇오니
391
댱노 보오셔야 분을 리라되
392
샹 칭병고 답야 보내오
393
젼녜가 업오니 도쥬와 긔 와야
394
그제야 보련노라 회답여 보내오니
395
댱노가 답 혼자 보랴 은
396
관의 인디라 만일 그러쟉시면
397
아니 봄만 다 고 물너가다 고나
398
이십오일 예 와셔 됴예 셔 뵈
399
갓티인 죄인듕의 열다 마인이오
400
평인이 세힐러니 마인 나 잇다
401
이십뉵일 이십칠일 여긔 묵으니라
402
예브터 강호 온 후 션군관 보내
403
옥결말 못 낫기의 초뉵일 날 양으로
404
젼명 장계 셔 비션의 보내고셔
405
니강녕 뉴쟝흥과 여관 최슈인울
406
션뉘로 텽여셔 옥결말온 후의
407
무히 오 당계 보내려니라
408
이십팔일 강호의셔 목부 승랑이
409
라 왓다 이제야 결말날쇠
410
이십구일 댱노 와셔 슈역야 말 닐오
411
오이야 젼쟝일을 형을 려
412
녜브터 아국법이 뵐 형벌도 잇거니와
413
못 뵐 형벌 잇 젼장의게 형벌
414
뵈디 못 리라 이국인은 못 뵈리라
415
샹 드시고 약됴와 다른 을
416
여러 번 셔 뵈니 나죵의야 뵈마되
417
져므도록 기리 형을 아니 고
418
비로소 초혼의야 죄인을 내여가되
419
제 나라 국긔라고 일은 못 죽이고
420
명이야 졍법다 소문이 이러
421
간사 그 놈들이 아국인 이니 뵈고
422
거 거 죽엿노라 속이랴 도다
423
삼십일 두 션쟝이 급히 와 엿오
424
격군의 니광하가 젼의 발광여실 제
425
제 목을 제가 질너 그 후의 완합고
426
다시 발광 아니 메 일복션의 올렷더니
427
발광옵기예 텰쇠로 잠갓더니
428
오밤의 샹 가 븕고 붓고 두드러져
429
긔식이 엄엄야 명경다
430
오월 초일일에 망궐녜 사배
431
학질로 불참니 암이 서운다
432
초일일 젼쟝일을 형다 디라
433
삼슈역과 상병방을 보내여 보라 니
434
월도란 강물 의 극위텨로 두로 막고
435
그 가온대 관원 안자 젼쟝이 동혀 야
436
려 안티고셔 예 놈 칼 가지고
437
넙셔 쳐직으니 머리 려지니
438
놈 령엿다가 머리 물의 셔
439
단 죠금 무우고셔 그 우 머리 안쳐
440
사흘 후의 뭇다니 효시과 일쳬로다
441
역관과 군관들이 밧긔셔 보고 왓
442
샹명을 계유나 괴슈 못 죽이니
443
하이라 엇디리 운 일다
444
초삼일 예놈들이 젼쟝 툐 보내엿
445
쳔종이 사라실 제 거울 나 일흔디라
446
젼쟝이 가졋다고 등채로 등을 티니
447
젼쟝이 셩을 내야 죽엿다 엿시나
448
그 말을 미들소냐 알 길히 바히 업다
449
초사일 처엄으로 가지 먹어보니
450
졀후 일흔 줄을 일로 가히 알리로다
451
초뉵일 발키로 삼방의 왼뎡고
452
션군관 나기로 이 날로 뎡오니
453
여 사들이 암이 날 다
454
텬종이 죽은 후로 글짓기 아니 니
455
몸은 비록 편여도 도로혀 굼굼다
456
냥냥노의 뎨들과 대판셩 션들이
457
다 몰쇽 드러와셔 니별고 가고나
458
초뉵일 미시말의 샹 실
459
우리 네 문 몬져 나와 로 오니
460
평왕쵸듕 목계숙이 길의 와 기리
461
쵸듕이 매 잡고 상연이 눈물 낸다
462
노당형뎨 션두의 와 손목 잡고 니별니
463
턍암 들이 피의 일반일다
464
초칠일 슌풍 부니 발셜키 됴흐되
465
듕의 비쟝이 쳔여금 은젼으로
466
왜물 무역엿다가 미처 디 못 디라
467
도쥬의게 핑계고 발을 아니 고
468
일의 들이 통분키 엇더리
469
초팔일 발야 져물게야 병고 오다
470
초구일 슌풍 부 듕의 역관들이
471
젼쟝의 살옥일로 수쳔금 무역 것
472
미처 디 못 여셔 곳곳 와 칭탈고
473
발션을 아니 니 그 죄가 엇더리
474
초십일 십일일도 병고의셔 묵으니라
475
십이일 발야 이십니 계유 와셔
476
도쥬가 풍역다고 도로 회션디라
477
우리도 도로 오니 분완키 니소냐
478
십삼일 죵샹이 최학녕과 현태익을
479
나입야 분부 우리 격군듕의
480
발션쟈 의논면 원슈텨로 믜워니
481
너 일 무상니 이후 그리 말나
482
십일 나셔 명셕 와 슉소다
483
십오일 우창 와셔 승칠이 보내여셔
484
졍이내 내야 삼뇨로 가셔보니
485
듕촌삼실이란 사 도셔 이부 삭여 왓
486
장지 열 댱으로 답녜야 보내니라
487
십뉵일 도로 자고 십칠일 발야
488
겸예 못 밋쳐셔 이십니 듁원 와셔
489
양듕의 닷 주고 밤을 계유 디낸 후의
490
이튼날 슌풍 만나 겸예 오니 일럿도다
491
십구일 화진 디나 샹관 오니 니로다
492
이십일 실우 디나 향포 와셔 묵으니라
493
이십일일 동풍 부니 오기 쾌도다
494
젹간관 드러오니 샹쟝개 와셔 본다
495
념이일 슌풍 못 나니 이 업다
496
념삼일 비 리고 젹간관셔 묵으니라
497
념일 풍역야 삼십니 남박 자다
498
념오일 발션야 수십니 계유 와셔
499
풍역으로 회션야 남박 가 도로 자다
500
념뉵일 남도 오니 밤이 마이 드럿고나
501
츄강노경 담이가 왓다 못 보니라
502
념칠일 남도의셔 쥬듕에 머므니라
503
념팔일 동풍 만나 일기도 드러온다
504
념구일 기도의셔 션방의셔 묵으니라
505
뉵월 열이틀을 기도의셔 못 나다
506
십삼일 날샌 후의 돗 고 발션니
507
파도가 흉악야 올 제와 가질다
508
미시냥의 안개 여 디쳑을 불분니
509
물길흘 바히 몰나 왜사공도 망조
510
텬디 아고 밤은 셔 드러
511
일션이 황황야 속슈고 안잣더니
512
츄샹우 와셔 물소가 놉오
513
필연이 셤이오니 돗 급히 디오새다
514
급급히 낙범고 셔히 슬펴보니
515
과연 지쳑산이라 놀납고 이 업다
516
만일 돗 랏더면 파션을 응당쇠
517
그제야 닷 주고 양듕의셔 묵게 되니
518
밤비 아 안개조차 여시며
519
아래 물소 텬디가 진동고
520
디명도 모고셔 위히 안잣 양
521
타인이 볼쟉시면 눈물을 응당 지리
522
동던 다 이로 간쟉신고
523
텰셕 간댱이나 딘졍키 어렵도다
524
밤새도록 고초 안자 날새기만 기리니
525
십일 동트거 츄샹우와 예 보내여
526
셔히 무로라고 못 밋쳐 도라와셔
527
셤 을 라보니 왜션 쳑 엿거
528
통려 무러보니 도쥬의 복션으로
529
어제밤의 길흘 일허 여긔 와 다핫기의
530
야흐로 줄 글러 부듕으로 들어가니
531
압길흘 모디라 가지로 가쟈
532
드매 깃브도다 닷 들고 돗 라
533
북방으로 향여서 삼십니 못 와셔
534
부듕을 도라보고 포구로 드러오니
535
샹방의 쟝무역관 부방 비쟝 슈역들이
536
우리 자랴고 냥식 고 마조 오고
537
삼복션 셔쟝 격군 가지로 나오다가
538
포구의셔 만나보니 죽엇던 사 본
539
피의 깃브기 어이 다 니소냐
540
션창의 다히고 관소로 드러가니
541
졍샹 부샹과 일 샹하관이
542
마조 와 위로고 반기시고 깃거
543
이 적의 일긔션도 길흘 일헛다가
544
도쥬의 만나 삼경냥의 계유 오고
545
그 밧긔 거복션들 계유야 드러오
546
우리 아니오니 밤새도록 념녀야
547
숨을 못들 자고 안자셔 기렷
548
나도 어제브터 병드러 누엇기의
549
관소로 못 리니 동들 와셔 보
550
강진 지도포민 남녀노소 열 사
551
어라 나왓다가 삼월의 표풍야
552
월 초일일에 예 와셔 다니
553
강호의 품고 됴션으로 보낼 로
554
냥식 먹여 두엇더니 놀랍고 불샹야
555
샹 불러보고 쳬 만히 디라
556
나도 려다가 어물 만히 주니
557
감격고 깃거야 부모 본 여 다
558
나라 사으로 이국의 와 만나보니
559
반갑고 귀기야 어이 아니 그러리
560
십오일 망궐녜 병으로 불참다
561
도쥬와 이졍승이 신긔 와셔 뵌다
562
드니 관소의 문망이 만타
563
방의 누어시니 이 환은 면로다
564
거월 이십오일 션군관 예셔 나
565
이 초이일에 부산으로 갓다
566
각읍 진공 분뎡야 경상감 위문 왓다
567
고국 셩신 갓가오니 이 날 다
568
십뉵일 니러나셔 져근 비러 고
569
삼신긔 문후 후 부긔션 둘러보니
570
삼문 모닷거 온화고 도라오다
571
도쥬의 연향을 대삼듕의 잇디라
572
상 양 도쥬가 견집더니
573
오이야 긔별 사로 신쟈
574
십칠일 뇽방승이 뎨 난 보내여셔
575
거울 나 드리거 장지필묵 답녜고
576
황뉼약과 방로 슈영쟝노 면죄다
577
마도쥬 십칠일에 신 쳥오니
578
평복으로 남녀 고 복고 드러가셔
579
다파고 도라와셔 일 회뎡려 니
580
뉵션의 오인이 뉘 아니 용약리
581
십구일 길 나니 예브터 마도쥬
582
포구의 친히 나와 보내 젼녜로
583
이 날이 거의 낫이로 오히려 아니 오니
584
만흘키 심디라 통악악키 이 업다
585
미시나 디난 후의 비로소 나오고
586
뉵션이 나 포구로 나올 적의
587
도쥬와 이졍승이 읍여 보내고
588
람이 미디라 일시의 노역여
589
올 적 길 리고서 쳡노로 바로 드니
590
디명은 션두포요 일명은 사공목이
591
평슈길 임진년의 샤공놈 쥬길이
592
여긔 와 버혓기의 언덕의 당 잇
593
고이 쥬길가 젹간관도 잇다 니
594
아마도 두 곳 듕의 나흔 아니로다
595
좌우의 봉만들의 슈목이 참텬고
596
갯물이 만희야 계유 갈 만하다
597
우리 걸니여셔 나갈 길 업디라
598
격군 스무나므니 예와 려 으고셔
599
계유야 나노라 날이 셔 져므럿
600
등불 혀고 션야 방포 가셔 닷 주니
601
인가도 바히 업고 영듕의셔 밤을 샌다
602
이 날 온 혜여하니 칠십니 고야
603
이십일 대열고 람이 바히 업서
604
셔박포 와셔 자다 이십니 왓고나야
605
념일일 초복이라 일이 발니
606
일긔가 대열 남풍이 부디라
607
가기 됴흐되 왜인이 칭탈고
608
공연이 노하 풍긔표 와 자게 되니
609
슌풍을 일흔디라 통분코 애을샤
610
이십니 계유 오니 아니오나 다디 아니타
611
념이일 일 니러셔 타누의셔 일츌니
612
장고 긔특 눈브시여 어렵도다
613
일이 발션야 아국으로 오랴 니
614
불측 손 대왜가 번 칭탈고
615
늣게야 발션야 바로 노흐랴니
616
왜놈이 듯디 아니코 좌슈포로 가랴거
617
격군을 분부야 줄 글러 리티고
618
돗고 노역야 건출노 노흐니
619
하 즐겁고 니 지향을 못 로다
620
셔남풍이 마이 부니 비슥이 돗 니
621
슌풍은 아니라도 가기 라도나
622
고국을 라보니 연 각진포가
623
녁녁이 버러 이셔 졈졈 나아 오디라
624
인간의 즐겁기가 네 가지가 잇다
625
오날 깃브기 텬디간 엄리라
626
부산을 도라보니 십니 남앗
627
풍도가 구역야 촌진 쳑퇴니
628
갈 길히 바히 업셔 밤새도록 노역야
629
양듕의셔 밤을 새고 이십삼일 텬명시의
630
부산으로 도라오니 부산 쳠 와셔 뵌다
631
상부긔복 다 무히 드러왓
632
리 내여 노코 뭇테 려시니
633
텬금 이 내 몸이 이제 사랏도다
634
각읍 관속 와셔 뵈고 쥬인도 반겨
635
가국이 무고 일이 온반니
636
긔특고 다다 됴여구 분상니
637
놀납고 참혹기 어이 다 긔록리
638
좌슈 와셔 뵈고 각진 변쟝 참알다
639
갈 적의 각방 슈쳥 와 보니 나 업
640
고이야 므러보니 샹방슈 샹례란 년
641
동 부 슈쳥들고 임도의 운향이와
642
냥션뎐의 란 년 비쟝쳥의 드러잇고
643
셔듕화의 차모년은 방의 드러잇고
644
쟝무역관 치가 년 사근찰방 보왓다
645
아모리 기인들 그 이를 못 아셔
646
다 몰속 아니 오니 가통고 가쇼로다
647
념일 부 몬져 나 가디라
648
만나 동 엿다가 예와 분노게 되니
649
섭섭기 이 업고 결연키 측냥업다
650
남셩원 삼문도 와셔 고별고나
651
예셔브터 분노여 샹방 일들은
652
냥산 밀양 대구로셔 됴령을 너머가고
653
부샹 일들은 울산 경 풍긔로셔
654
듁녕을 넘어간다 죵샹 일들은
655
김 챵원 셩로셔 츄풍녕을 향라
656
념오일 졍샹이 셩복고 발니
657
드러가 하딕니 챵연코 챵년다
658
밥먹고 즁방의 가 문후고 도라와셔
659
짐 혀 길흘 나니 동 격군들이
660
다 와서 니별니 인졍이 셥셥다
661
삼십니 강동창와 함안긔댱 병참격기
662
촉야 자 먹고 낙동강 뉴 건너
663
냥산 대도 디나 강 나 디나가셔
664
김로 드러가니 슈로왕 고국이라
665
산쳔이 광할야 이 대도횔다
666
본부로 드러와셔 쥬슈 차 보고
667
햐쳐로 도라오니 죵샹 오시디라
668
드러가 문후고 의 나오니라
669
이십뉵일 오십니와 여녁 듕화니
670
함양 디 여긔 와셔 석 을 묵은디라
671
허다 관속들이 의복을 라먹고
672
로 니면셔 비러먹기 반이오
673
내 차모 은이가 슈식을 식고
674
밋머리로 환니 소견이 불샹다
675
이십니 챵원 가서 길평의 햐쳐니
676
다졍 본부슈 차담과 밥상 밧긔
677
묘찬 일대탁을 안흐로셔 내여오니
678
음식마다 졍결하야 먹엄 다마
679
더위예 병이 드러 못 먹으니 이 업다
680
저녁밥 계유 먹고 임도 보라 가니
681
쥬슈도 나와이셔 함양슈 왓
682
두 비쟝 두 슈가 션젼관 증경이라
683
쳥풍을 희롱니 보기의 우도다
684
쥬슈 거경 티고 거경은 함양 티고
685
함양은 경즙 티고 졀가 다 잇고나
686
쳥하인 아니오고 도지게 업면은
687
못 티기 법이로쇠 마 됴좌가
688
니라 왓디라 쳥풍을 고나
689
쳔안의 셔동녕이 디나다가 와 보기의
690
임도가 불러다가 덕담을 시기오니
691
광대 즁 뎨일이라 드럼 고나야
692
이십칠일 십니 와 칠원셔 둥화니
693
진 병참디라 통인 차모 현신다
694
밥 먹고 을 고 십니 녕산 와셔
695
김필슌의 집의 와셔 햐쳐니 반겨
696
녕산관속 와셔 뵈고 차모 계월 현신다
697
창녕 아젼 하득인이 와셔 보니 다다
698
쥬슈 뎐갈고 나와셔 보고나
699
남셩 이문가 역놈 야 편지 왓
700
답장 내여주고 졍샹긔 편지 고
701
셔뉴 이인의게 문안 보내니라
702
이십팔일 몬져 나 창녕 지경 다니
703
젼의 아던 관속들이 마조 나오 보고나
704
아듕으로 드러가셔 쥬슈 보고 내니
705
쟝교 아젼 기 통인 다 몰속 와셔 보고
706
노별감 이반이도 부러 와 보고 가
707
이 난 후의 셔퇴커 을 니
708
일읍 관속들이 오리뎡의 니별며
709
마 못 떠나 니 인졍이 긔특다
710
이십니 계유 와셔 날이 심히 더온디라
711
쥬막의 려 안자 거풍을 노라니
712
본현 좌슈 별감들이 와셔 보고 가고나
713
이십니 현풍 오니 군관텽 햐쳐로쇠
714
샤가 압님니 소견이 불편야
715
현로 올마오니 방과 마루 시훤다
716
쳥녕 통인 하대원이 라와 현신고
717
지례원 박이 편지야 뭇고나
718
여 인마 하딕고 금쳔 부마 현신다
719
념구일 몬져 나 무계도로 건너 라
720
무계역 드러가니 고령 지공이라
721
셩 기 랑 와셔 보고 가고나
722
듕화고 발야 별고개 넘어오니
723
날이 마이 더온디라 역인 세 놈 더위 먹어
724
러디고 아니 오니 다만 세 놈 리고셔
725
셩 아듕 바로 가셔 목 보고 오노라니
726
길 놈 졀거 고이여 시 보니
727
공 관노 일죽일노 도망야 나왓다가
728
날을 보고 반겨 와셔 놀고 깃거
729
인졍이 불샹야 차담 바다 먹인 후에
730
쥬슈의긔 쳬 바다 내여주니 깃거
731
몽와션 임인년의 후명 바든 고이라
732
비각의 와 텸니 이 슬프도다
733
죵샹이 본로셔 셰혐이 잇디라
734
차담 진지 도로 주고 녜방 시겨 먹다
735
듕역관 니언진이 모양 내게 쳥을
736
고운 차모 만나거든 제게 쳬라
737
임도 홍비쟝이 양 몬져 달나기의
738
못 어더 주엇더니 아 차모 귀란년이
739
인물이 긔특고 얼굴이 비샹키
740
져녁의 뎐갈여 렁 주어 보내고셔
741
아모 말 디라도 일티 말나 엿더니
742
그 년이 불측야 자리의 누엇다가
743
울면셔 비 아비 졔 오이니
744
잠간 보고 와셔 뫼시리라 니
745
열업 숫나 그 말을 고디 듯고
746
잠간 가 녀오라 당부야 보낸 거시
747
날새도록 기린들 그림재나 오돗던가
748
잠 숨을 못 자고셔 눈망울이 벌거야
749
일 니러 와셔 보고 졀통야 거동
750
져마다 긔롱니 우고 졀도다
751
금음날 새 나 부샹 와 듕화고
752
김산으로 들어오니 미시 되엿고나
753
이 고을 관속들이 부산 와 지공 졔
754
내게 은혜 닙엇기에 니방 언국이
755
아병텽 하쳐고 와 보고 반겨다
756
기들도 나와 보고 치샤고 가고나
757
지례슈와 경승이가 와 보고 동침다
758
통인 미룡득이 환을 잘 고
759
던 말 엇디 아니키 다 라 니
760
사근 역마 드리거 타 보니 이 됴희
761
칠월 초일일에 비 리고 흐리니라
762
지례 거창 두 태슈가 경승이 니별고
763
츄풍령 내라니 거창 하인 령야
764
미음을 드리거 우셔 바다먹고
765
황간으로 두러오니 군관텽 햐쳐로다
766
음식이 졍결고 포진도 무던다
767
신흥역놈 이동이가 려갈 적 구죵이라
768
와셔 보고 반겨니 차담 주어 깃금다
769
뉼봉인마 못 왓기의 역마가 모라져
770
우칙으로 복마야 영동으로 드러가셔
771
쥬슈 보고 햐쳐로 와 웃옷 벗고 안잣더니
772
본현 태슈 나와 보고 죵용이 말더니
773
셔울 긔별 드러니 나라셔 삼 신을
774
최쳔종 죽은 일로 샥직을 오시고
775
셔긔 원역 군관들은 역마 주어 졉기
776
갈 제와 티 라 뎐지가 리시다
777
죵샹 오브터 샤의 못 들디라
778
내 하쳐 길텽이라 됴타 고 이리 오시니
779
니방 손셰권의 집으로 올마가셔
780
차모 셤월이 니언진을 허급니
781
제 어미 대샹이라 단으로 걸니
782
니역관 속으니 드매 다
783
옥쳔의 탐후 아젼 원의 편지 드리고
784
차담의 건물 내여 담의 봉여셔
785
황새 신의게 하인 식여 보내오니
786
신은 가고셔 언문 슈답 맛다 왓
787
초일일 본현의 가 쥬슈 니별고
788
십니 니산 듕화 삼십니 옥쳔 오니
789
본관 태슈 와셔 보고 신 보라 가고나
790
삼십니 존역 오니 본군 지공 예도 다
791
일신역 최가놈이 슌 편지 가지고 와
792
길셔 만나보고 반겨셔 졀거
793
집 쇼식 무러보니 닫ᄅ 무다
794
깃브기 측냥 업서 편지 셔 브티고셔
795
차담 바다 먹인 후의 급히 가라 당부다
796
초삼일 일 나 역뒤 넘어가셔
797
뉴쳔으로 드러나기 송찬성 자 보고
798
한훤을 계유야 죵샹 드러오시
799
사회집 갓가오 오노라 못 가보고
800
그져 디나 가게 되니 셥셥기 측냥 업
801
죵샹 몬져 가고 나 죠금 머므러셔
802
죵용이 말을 고 츄후야 길흘 나
803
형강으로 열풋 디나 문의로 드러가셔
804
니영명의 집 녀 햐쳐로 도라오니
805
쥬슈가 와셔 보고 졉고 드러가다
806
듕화고 몬져 나 쳥로 드러가니
807
젼관 적 아뎐 관속 다 와셔 티관
808
예셔 나 사 길 되디라
809
처음의 내온 계교 여긔 와 러져셔
810
바로 가랴 엿더니 송찬셩 가볼 젹의
811
거취 무러보니 갈 젹의 입시야
812
하딕을 여시니 복명을 아니 고
813
예서 러디 거 분의가 그다 니
814
죵샹이 말 드시고 구디 막고 불허니
815
형셰가 그러야 셔울로 가게 되니
816
심난키 이 업고 인졍이 어려오나
817
셰가 일업서 복마의 시른 짐을
818
뉼봉찰방 당부야 집으로 보내라고
819
햐쳐의 누엇더니 빙고재 허원과
820
여산 김츄이 와셔 보고 년침고
821
병영 비쟝 만옥이 나와 보고 가고나
822
본관 아젼 곽샹술이 젼브터 친턴디라
823
조 와셔 치관니 인졍이 그러다
824
초일 작쳔 건너 오공역 듕화고
825
바로 나 발니 일긔가 대열야
826
인마가 번갈야 오기가 어렵도다
827
삼십니 진쳔 오니 햐쳐가 엇디 아니커
828
향텽으로 올마가니 집도 됴코 시훤다
829
초오일 일 나셔 양역 디나가셔
830
광이원 듕화니 오십니라 고나
831
밥 먹고 몬져 가셔 이십니 듁산 오니
832
관문디 드러오 하인 나 아니맛
833
역놈 여 불러내니 아젼 나오
834
거동이 완만커 누고니 무러보니
835
안산 니방이라 매 하인 식여 부녜고
836
햐쳐로 자오니 시훤코 물 것 업다
837
져녁의 려갈 제 날 리고 가던 셰라
838
김악산 니강아지 니험복 세 사이
839
와셔 현신고 뫼시고 가지라
840
경긔 역마 령 것 피렬이 참혹거
841
역병방 잡아다가 립라 지니
842
그제야 됴흔 을 갓다가 오거
843
초뉵일 삼경냥의 고 내니
844
셩두가 쇼삽고 밤긔운 서야
845
길 가기 이 됴타 삼십니나 거의 와셔
846
놈이 말을 고 홰불 혀고 녀오
847
하인야 무러보니 나라셔 뎐교샤
848
날이 심히 대열니 셔셔이 오라시
849
피잔이 쥬막 와셔 신긔심히 불평커
850
쥬막의 드러 쉬니 이 계유 두 홰 우니
851
이윽이 가니 졍신이 퍽 낫거
852
동트기의 고텨 나 오리 디나 오니
853
양지 관쇽 마조 와셔 슈젼 다 왓거
854
잡고 무러보니 신 졔용고
855
고텨 역마 주신디라 연봉이 나왓고나
856
양지읍 드러가니 남양 병참 고나
857
듕화후 길 나니 아 더워 올 길 업서
858
곳곳이 려 쉬여 뇽인으로 드러오니
859
니이 와셔 보고 제 집이 머지 아니니
860
잠간 나와 게 되면 녀리 된다 매
861
인졍의 어려워셔 을 듯고 나가보니
862
오리 계유고 극녁여 졉다
863
초칠일 동시에 니을 니별고
864
널리 러오니 지도 참혹다
865
김포 검천병참인 김포슈 민종이
866
두호여 달라 고 신신이 신칙매
867
일게 뎐갈야 무케 쓰게 니
868
비편 일 무수고 심녁도 이고
869
한흥과 복마짐은 몬져 드려 보내고셔
870
져녁 참 냥 오니 마젼과쳔 병참다
871
두 고 태슈들은 일가요 친디라
872
만지댱셔 편지야 잘 처달라 쳥고
873
인졍의 일업서 극진이 돌보니라
874
초팔일 평명시의 죵샹 뫼시고셔
875
한강의 고 두목개로 올라가셔
876
신촌 고개 넘어 드러 동관왕묘 드러오니
877
샹 몬져 와셔 묘듕의 안잣거
878
샹긔 문후고 동뉴들 다 반기고
879
한훤을 못다야 부방 드러오
880
됴뎡의 여러 샹 마조 나와 보고나
881
일샹하 댱복고 궐하로 나아갈
882
나 댱복 업디라 냥션뎐 뎐갈야
883
무겸텽의 비러다가 가지로 입시
884
삼 신 문와 열닐곱 비쟝들이
885
일시의 추창야 탑뎐의 국니
886
나라희 우시고 삼 심긔 뭇오
887
풍도의 험 것과 역의 어려움과
888
산쳔의 긔이과 인물의 번셩과
889
궁실의 장 것과 풍속의 고이 것
890
치 무신 후 버거 문 브시
891
장동 김문의셔 셔긔 가니 네 누곤다
892
신이 엿오 뒤 업 거시
893
진 김모옵고 죵셔긔 갓더이다
894
갓가이 오라시매 나아가 부복니
895
나라히 무시 고샹 신의 므어신다
896
긔복여 엿기 뎐대로 엿오니
897
고텨 하 문오시 피국의 드러가니
898
피인의 문들이 무셥더냐 언잔터냐
899
문가 유여 놈 왕왕이 잇오나
900
시뉼은 참혹야 졔술 줄 모더이다
901
네 이번 지은 거시 다쇼가 엇더뇨
902
네 문 짓온 것 대략은 오나
903
다 주어 혜게 되면 슈쳔슈가 되이다
904
격졀탄샹 오시 장고 심히 만타
905
드니 너 시 젼도곤 이 낫고
906
윤필을 도로 주미 셩이 녀오니
907
욕국을 아닌디라 아답고 긔특다
908
날이 극열고 셕양이 비최여셔
909
업여셔 말을 엿오니
910
속의셔 불이 나고 관의 이 야
911
물 흐 디라 나라히 보시고셔
912
너 더위 어려오니 몬져 나가 쉬라시니
913
국고 퇴니 텬은이 망극다
914
더위 장히 먹어 막힐 디라
915
신들도 못 기려 햐쳐로 도라오니
916
누이도 반겨고 은 깃거 우디라
917
일가 친쳑들이 나와셔 위문
918
여드레 계유 쉬여 공로 려가니
919
쳐식들 날을 보고 죽엇더니 곳텨 본
920
깃브기 극디라 어린 듯 안잣고나
921
당의 현알고 옷도 벗고 편히 쉬니
922
풍도의 험던 일 져승 고 도 다
923
농 포손고 한가히 누어시니
924
강호의 산인이오 셩의 일민이로다
925
슈뉵 뉵쳔니 만의 도라오니
926
나라히 승평고 가속도 무양니
927
이예셔 깃븐 일이 어 잇단말고
928
쳔신 만고고 십 구야
929
장고 이샹고 무셥고 놀나오며
930
붓그럽고 통분며 우고 다며
931
믜오며 아쳐롭고 간사고 사오납고
932
참혹고 불샹며 고이코 공교며
933
귀고 긔특며 위고 노오며
934
쾌고 깃분 일과 지리고 남감 일
935
갓가지로 초 격거 쥬년만의 도라온 일
936
손을 뵈쟈 고 가 지어내니
937
만의 나 긔록 지리고 황잡니
938
보시니 웃디 말고 파적이나 오쇼셔
일동장유가 해석본:
## 권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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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에 소활(疎闊)하여 공명에 뜻이 없네.
진사청명(進士淸名) 족하거니 대과(大科)하여 무엇하리.
장중제구(場中諸具) 다 없애고 유산행장(遊山行裝) 차려 내어
팔도로 두루 놀아 명산대천 다 본 후에
풍월을 희롱하고 금호(錦湖)에 누웠더니
북창(北窓)에 잠을 깨어 세상 기별 들어 보니
관백(關白)이 죽었다 하고 통신사(通信使) 청한다네.
삼사신 극택(三使臣 極擇)하고 사문사(四文士) 뽑아내니
남추월(南秋月) 시온(時韞)이는, 제술관(製述官) 망정(望定)하고
원자재(元子才) 성사집(成士執)은 상부방(上副房) 서기(書記)로다.
늙고 병든 이내 이름, 이교리(李校理) 과(過)히 듣고
탑전(楊前)에 계청(啓請)하여 벽서(僻書)로 재촉하니,
예부터 이 소임(所任)이 문장중(文章中) 극선(極選)이라.
조자건(曹子建)의 칠보시(七步詩)와 온정균(溫庭衡)의 필하재(筆下才)를
겸하여 두었어야 비로소 담당(擔當)하네.
내 재주 생각하니, 실로 외람(猥濫)하다.
하물며 만리(萬里) 길을 쇠골(衰骨)이 어찌 가리.
사정(私情)이 절박(切迫)하고, 왕사(王事)가 지중(至重)하니,
인신(人臣)이 되어 있어 이험(夷險)을 가릴쏘냐.
가묘(家廟)에 하직하고, 처자(妻子)를 돌아보니.
생리(生離) 사별(死別)이라. 경색(景色)이 참담하다.
장부(大夫)의 철석장(鐵石腸)도 강잉(强你)키 어렵거든
연약한 아녀자야 어이 아니 그리하리.
마음을 굳게 먹고, 떨치고 문을 나니,
사린(四隣)의 친척들이 다 모여 이별한다.
필마(匹馬)를 길이 몰아 차령(車嶺) 넘어 천안(天安) 자고,
동작리(銅雀里) 건너 돌아 대사동(大寺洞) 들어오니,
누이와 딸자식이 반기고 근심하네.
나이 많고 재주 없어 이 소임이 어려워라.
장서(長書)로 사면(辭免)하고, 여러 번 면청(免請)하되,
진정한 이내 마음. 종시(終始)히 못 이루니,
이제는 할 일 없어가기로 완정(完定)하니,
은자(銀子) 팔십오 냥 사 필 포목(沙定布木) 십석미(十石米)와
수화주(水禾細) 도포차(道砲火)와 흑서대(黑星帶) 목화차(木靴次)를
호조(戶曹)에서 내어 주고, 치행(治行)을 재촉하니,
일신(一身)의 상하 의복 사절(四節)로 마련하여
극진(極盡)한 명주 비단 선전(線廛)에 잡아다가
화려키로 위주(爲主)하여 갖가지로 지어내니,
나라에서 주신 것이 반 넘어 모자라니,
예 빚내고 저기 얻어 간신히 차려 내어
길(吉)한 날 받고 받아 가기를 임시하여
의외에 삼 사신(三使臣)이 일시(一時)에 파직(破職)하고
새로이 고쳐 내니, 누구누구 한단 말인가?
조제곡(趙濟谷) 이회계(李晦溪)로 상부사(上副使) 낙점(落點)하고
현암 김교리(玄庵金校理)를 종사관(從事官) 시키시니,
일대(一代)의 준망(俊望)이오. 진신간(縉神間) 극선(極選)이라.
지체도 좋거니와 재덕(才德)이 겸전(兼全)하다.
사행(使行)이 달라지니, 거취(去就)가 양난(兩難)터니,
“자제비장(子弟裨將) 반인 외(伴人外)에 하나도 갈지 말고,
문무역(文武役) 삼반인(三伴人)을 다 모두 인존(因存)하사
급급(急急)히 발행(發行)하라.” 전교(傳敎)를 내리시니,
투자(投刺)를 고쳐 하고, 새로이 치장(治裝)할 때
정원사령(政院司令) 급히 와서 입시(入侍)하라 혼동(混動)하네.
장복(章服)을 급히 차려 궐하(闕下)에 들어가니,
일행(一行) 제인(諸人)들이 다투어 모였구나.
삼 사신(三使臣) 먼저 들고, 제술관(製述官) 따라 든 후
서기(書記)를 부르거늘 사집(士執)은 근친(覲親) 가고,
원봉사(元奉事)만 남았기에 다만 둘이 승명(承命)할 때,
급급(急急)히 추창(推唱)하여 탑전(榻前)에 부복(府伏)하니,
나라께서 웃으시고, 은언(恩言)으로 물으시되,
“네 성명 무엇이며, 어데서 살고 뉘 자손으로
연세(年歲)는 몇몇이며, 전함(前銜)은 무엇인가?”
소신(小臣)이 황공(恐)하여 기복(起伏)하여 여쭈오되,
“진사(進士) 신(臣) 김인겸(金仁謙)은 문정공(文正公) 현손(玄孫)으로
쉰 일곱 먹었삽고, 공주(公州)서 사나이다.”
“어저, 네 그러하면, 장동대신(壯洞大臣) 몇 촌이냐?”
“고 상신(故相臣) 충헌공(忠獻公)의 오촌 질(姪)이 되나이다.”
천어(天語)가 순순(諄諄)하사 고쳐 하교(下敎)하오시되,
“명조(名祖)의 손자로서 문임(文任)에 뽑히어서
나라 일로 가게 되니, 귀하고 기특하다.
재주를 시험하려 너희를 불렀으니,
왜(倭)놈과 수작(酬酌)하듯 즉각에 제진(製進)하되,
글 제(題)를 벌써 내어 제술관(製述官)을 주었으니,
쉬이 나가 어서 지어 또 다시 입시(入侍)하라.”
곡배(曲拜)하고 물러서니, 주서(注書)를 분부하셔
초지(草紙)를 주시거늘 차비문(差備門) 내달아서
글제(-題)를 찾아보니, 추선시(秋蟬詩) 칠률(七律)이라.
시온(時韞)은 먼저 나와 반 넘어 지었기에
또 먼저 입시(入侍)하고, 나와 원봉사(元奉事)는
옥당(玉堂) 서리(胥吏)에게 필묵(筆墨)을 겨우 얻어
풍우(風雨)처럼 지어내어 번개 같이 급히 쓸 때
이 무슨 구경이라 궐내의 하인(下人)들이
다투어 모두 와서 둘러서서 보는구나.
행보(行步)를 바삐 하여 광달문(廣達門) 들이달아
시초(詩草)를 드리오니, 입시(入侍)한 유승지(柳承旨)가
내 글을 먼저 받아소리 높여 여쭈오매,
한 귀 읽고 두 귀 읽고, 세 귀 네 귀 다 읽으니,
용안(龍顔)이 대열(大悅) 하사 격절 탄상(擊節歎賞) 하오시되,
“둘째 귀 셋째 귀는 제 뜻을 잘 새겼고,
제 말로 하였으니, 말째(末-) 귀 더욱 좋다.
남옥(南玉) 원중거(元重擧)는 재사(才士)라 하리로다.
너희 재주 보아하니, 극일시지(極一時之) 선인(選人)이라.
이국(夷國)에 보내어도 근심이 없겠으니,
만리 창명(萬里倉溟) 험한 길에 병(病) 없이 다녀오되,
기교물(奇巧物)을 탐(貪)치 말고, 화국(和國)하고 돌아오라.”
백배 수명(百拜受命) 하고, 승석(乘夕)하여 돌아오니
이튿날 유승지(柳承旨)가 날 보고 이른 말이
“그대네 나온 후에 세 글을 다시 올려
자네 글 뽑아내어 서안(書案)에 놓으시고,
서너 번 음영(吟詠)하고, 세 귀 비점(批點) 하오시니,
용상(龍床)이 매우 높아 어느 귄 줄 모르겠네.”
초야(草野)의 미신(微臣)으로 외람히 등제(登第)하여
어려운 응제시(應製詩)를 일생 처음 짓게 되니,
겁도 나고 급거(急遽)하여 매우 잘못 지은 글을
천포(天褒)를 입사오니, 부끄럽고 영행(榮幸)하다.
한강 제문(漢江祭文) 대작(代作)하여 정성으로 제(祭)한 후에
출행(出行)할 날 다시 받아 일행이 이발(離發)할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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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어느 땐가 계미 팔월(癸未八月) 초삼(初三)이라.
북궐(北關)에 하직(下直)하고, 남대문(南大門) 내달아서
관왕묘(關王廟) 얼른 지나 전생서(典牲署) 다다르니,
사행(使行)을 전별하려 만조 공경(滿朝公卿) 다 모였네.
곳곳이 장막(帳幕)이오, 집집이 안마(鞍馬)로다.
좌우전후(左右前後) 모여들어 인산인해(人山人海) 되었으니,
정 있는 친구들은 옷 잡고 우탄(憂嘆)하고,
철모르는 소년(少年)들은 부러워하기 측량(測量) 없네.
석양(夕陽)이 거의 되니, 낱낱이 고별(告別)하고,
상마포(上馬砲) 세 번 놓고, 차례로 떠나갈 때
절월(節紙)과 전배군관(前陪軍官) 국서(國書)를 인도하고
비단 일산(日傘) 순시(巡視) 영기(令旗) 사신(使臣)들 모여 섰다.
나 역시 뒤를 따라 역마(驛馬)를 칩떠 타니,
까치옷 지로나장(指路羅將) 깃 꽂고 앞에 서고,
말 서자 부축하고, 쌍견마(雙肩馬) 잡았구나.
세라놈의 된 소리로 권마성(勸馬聲)은 무슨 일고?
아무리 말라 해도 전례(前例)라고 부디 하나,
백수(白首)의 늙은 선비 졸연(猝然)히 별성(別星) 노릇
우습고 기괴(奇怪)하니, 남 뵈기 수괴(羞愧)하다.
나는 듯 말을 몰아 부어치(扶於峙) 넘어 서니,
선척(船隻) 그지없고, 안마(鞍馬)도 장(壯)할시고,
기치(旗幟)는 폐일(閉日)하고, 고각(鼓角)은 훤천(暄天)하여
한강(漢江)을 얼핏 건너 이릉(二陵)을 지나오며,
임진년(壬辰年)을 생각하니 분한 눈물 절로 난다.
삼십 리 양재역(良才驛)을 어둡게야 들어가니,
각 읍(各邑)이 명령받아 지공(支供)을 하는구나.
각상 통인(通引) 방자 차모(房子茶母) 일시에 현신(現身)한다.
포진(布陣)도 화려(華麗)하고, 음식(飮食)도 장(壯)할시고,
넋 잃은 관(官)들이 겁내어 전율(戰慄)하니,
말마다 잘못하고, 일마다 생경(生梗)하여
여기 맞고 저기 맞아 소견(所見)이 불쌍하다.
예 자고 새벽 떠나 널다리[板橋] 중화(中火)하고,
용인 읍내(龍仁邑內) 들어가니, 낮이 겨우 지났구나.
접대(接待)하는 기구 범백(器具凡百) 도처(到處)에 일반(一般)이라.
객사(客舍)에 들어가서 삼사신(三使臣)께 잠깐 뵈고,
하처(下處)에 돌아와서 석식후(夕食後) 편히 쉬어
양지(陽智) 중화(中火) 죽산(竹山)자고, 도관(都官) 말마(秣馬) 숭선(崇善)오니,
열읍(列邑) 지공(支供)들이 전처럼 나아온다.
경기역마(京畿驛馬) 떼어놓고, 연원역마(連源驛馬) 체대(遞代)하여
미명(未明)에 먼저 나서 달내[達川]를 지나올 때,
신원수(申元帥) 김장군(金將軍)의 진(陣)터를 바라보고,
율시(律詩) 한 수 지어내어 충혼(忠魂)을 위로(慰勞)한 후
충주(忠州)로 들어가니, 청풍 지대(淸風支待) 나왔다네.
자종이와 신자익이 멀리 와 기다리네.
정담(情談)을 못다 하여 상방(上房)에서 부르거늘
비 맞고 들어오니, 세 문사(文士) 모두 왔다.
이칠절(二七節) 일칠률(一七律)을 사상(使相)이 내어놓고,
차운(次韻)하라 권(勸)하거늘, 요초(療草)하여 색책(塞責)하고,
음성현감(陰城縣監) 장종시가 지참(支站)하러 와 있거늘,
이튿날 잠깐 보고, 우장(雨裝) 입고 출발(出發)하여
단월역(丹月驛) 찾아가서 충렬사(忠烈祠)에 첨배(瞻拜)하고,
역(驛)놈을 재촉하여 무다리 지나와서
안보역(安洑驛) 잘 참(站) 드니, 비도 오고 저물었다.
날 새며 먼저 나서 남여(藍與)로 조령(鳥嶺) 올라
주흘관(主吃關) 들이달아 영남(嶺南) 말 갈아타니,
우세(雨勢)도 장(壯)할시고, 의복 안마(衣服鞍馬) 다 젖는다.
석로(石路)는 참암(巉巖)하고, 황도(荒濤)는 창일(漲溢)한데,
교구정(交龜亭) 올라앉아 좌우(左右)를 둘러보니,
만목(萬木)은 참천(參天)하고, 천봉(千峰)이 묶였으니,
일부당관(一夫當關) 만부막개(萬夫莫開) 검각(劍閣)을 부러워하랴.
슬프다, 순변사(巡邊使)가 지략(智略)도 있건마는
여기를 못 지키어 도이(島夷)를 넘게 하고,
이 막비(莫非) 하늘이라, 천고(千古)의 한(恨)이로다.
용추(龍湫)를 굽어보니, 우후(雨後)의 성난 폭포(瀑布)
벽력(霹靂)이 진동(振動)하고, 백설(白雪)이 잦았구나.
귀 눈이 먹먹하고, 심신(心身)이 늠률(凜慄) 하다.
글 하나 지어 쓰고, 남여(藍與)에 다시 올라
동화원(桐華院) 잠깐 올라 문경(聞慶)으로 돌아들어
하처(下處)에 말 내리니, 상주 관속(尙州官屬) 현신(現身)한다.
본관(本官)은 지친(至親)이라. 잠깐 보고 도로 나와
석반 후(夕飯後) 취침(就寢)하고, 이튿날 일어나니,
밤새도록 대우(大雨) 와서 평륙(平陸)이 성강(成江)이라.
마포원(麻浦院) 겨우 건너 장대(將臺)에 올라 보니,
계수(溪水)가 창일(張溢)하고, 월천군(越川軍) 매우 적다.
삼행차(三行次) 함께 오니, 소솔(所率)도 장(壯)할시고,
다투어 건너려고, 현박(舷舶)이 낭자(狼藉)하다.
나하고 유영장(柳營將)이 한 남여에 겨우 건너
새원[新院] 주막(酒幕) 점심하고, 후영(後營)이 바삐 오니,
유명한 개여울[犬灘]이 바다가 되었구나.
급(急)하고 깊고 머니, 저를 어찌 건너가랴.
각방 복태(各房 卜駄)들이 언덕에 모였구나.
다행히 내 복마(卜馬)는 무사히 먼저 갔네.
역졸 나장(驛卒羅將) 호령하여 실한 남여(藍與) 얻어 타고
군대(軍隊)는 겁(法)을 내어 붙들고 말리는고.
수 십 명 건장(健壯)한 놈 좌우(左右)로 부축하여
시험(試驗)하여 건너오니, 위태(危殆)도 위태할사.
흉용(洶溶)한 성난 물결 어깨 위에 넘는구나.
저편에 내려앉아 지나온 데 돌아보니,
망령(妄靈)되고 오활(迂闊)하니, 후회(後悔)가 그지없다.
오십 리 유곡역(幽谷驛)에 날이 벌써 어두웠다.
지공관(支供官) 선산부사(善山府使) 접대(接待)도 거룩할사.
경상도(慶尙道) 넘으면서 전처럼 당하더니,
차담(茶啖)과 조석상(朝夕床)이 일로(一路)에 제일이라.
이튿날 비 개거늘 영순천(永順川) 지나와서
용궁읍내(龍宮邑內) 낮참(站)드니, 비안현감(比安縣監) 지공 와서
수월루(水月樓)에 앉았다가 날 보고 반겨 하네.
종사상(從事相)의 병방군관(兵房軍官) 색중(色中)의 아귀(餓鬼)로서
서울서 떠나면서 저녁 참(站)에
행수호장(行首戶長) 호령하여 고은 차모(茶母) 추심(推尋)하여
오히려 나삐 여겨 내게 와 간청(懇請)하되,
“예천(禮泉)은 색향(色鄕)이라 날 위하여 먼저 가서
일등 미인(一等美人) 뽑아내어 두었다가 나를 주오.”
들으매 짓이 미워 한 번을 속여 보세.
헛 대답 쾌(快)히 하고, 정녕(丁寧)히 상약(相約)하여,
동정자(洞亭子) 지나와서 예천읍내(禮泉邑內) 들이달아
뭇 기생(妓生) 불러 세고, 그 중에 말째(末-) 기생
늙고 얽고 박박색(薄薄色)을 고르고 가려내어
이방에게 분부하고, 병방차모(兵房茶母) 정한 후에
외막(外幕)에 앉았더니, 전배(前倍)로 먼저 와서
사방(使房)에 잠깐 뵙고, 내게로 급히 와서
웃으며 이른 말이 “청(請)한 말 어찌 된고?”
거동이 절도(絶倒)하되, 웃음을 겨우 참고,
은근히 대답하되, “동행(同行)의 그만 청(請)을
내 어찌 허루(虛漏)하리. 이 중의 제일색(第一色)을
가까스로 뒤져내어 그대 차모 정하였네.
하처(下處)로 어서 가서 불러 보면 아니 알까.
서시 옥진(西施玉眞) 절대색(絶代色)도 이에서는 못 나으리.
오늘밤 합친(合親)하고, 내 덕(德)으로 아오소서.”
들으며 웃는 입이 함박귀만 하는구나.
창황(倉黃)히 돌아서서 전도(顚倒)히 나가거늘,
하는 양(樣) 보려 하고, 나도 함께 따라가니,
안방에 겨우 들며 사령(使令) 불러 분부(分付)하되,
“이 고을 수청 차모(守廳茶母) 어이 현신(現身) 아니하냐?
급히 와 목마르니, 차(茶) 어서 가져오라.”
이윽고 현신(現身)하니, 저 차모(茶母) 거동 보소.
쑥 같은 옅은 머리 실로 땋아 마주 매고,
눈꼽 끼인 오흰 눈을 희부시시 겨우 뜨고,
옻조롱 같은 낯이 멍석처럼 얽었구나.
무명 반물 두룽다리 귀까지 담뿍 쓰고,
헌 저고리 짧은 치마 현순백결(懸鶉百結) 하였어라.
동구(洞口) 안 삼월이는 예 비하면 일색(一色)일세.
차보오 손에 들고, 뜰에 와 주춤할 때
밑살이 터졌던지 방귀 조금 뀌는구나.
저 병방(兵房) 거동(擧動) 보소. 삼중석(三重席)에 지혀 앉아
두 눈이 뚫어지게 죄오고 앉았다가
호풍(豪風)이 소삭(蕭索)하여 무릎 떠 돌아앉아
낙심 천만(落心千萬) 하는 거동 용대기(龍大旗)에 비 맞았다.
일좌(一座)가 박소(拍笑)하고, 사면(四面)으로 조롱(嘲弄)하니,
수괴(羞愧)한 선웃음을 날만 보고 꾸짖는다.
저녁밥 잠깐 먹고, 사방(使房)에 얼른 다녀
홍나주(洪羅州) 잠깐 보고, 돌아와 자고 일어
피골 역골 두 산소(山所)에 얼핏 들러 소분(掃墳)하고,
쇠오뫼 동종(同宗)들이 다 모여 기다리네.
팔대조(八代祖) 지으신 집 삼귀정(三龜亭)이 남아 있고,
청음선조(淸陰先祖) 계시던 집 동성(同姓) 겨레 사는구나.
즉시 일어 말을 타고, 풍산참(豊山站) 바삐 가서
봉화(奉化) 고을 차담 점심(茶啖點心) 재촉하여 찾아 먹고,
오례(烏禮) 산소(山所) 잠깐 다녀 부중(府中)으로 들어가니
안동(安東)은 대도회(大都會)요, 우리 집 선향(先鄕)이라.
인민(人民)도 부성(富盛)하고, 성지(城址)도 웅장(雄壯)하다.
동성(同姓)의 아전(衙前)들이 가끔 와 찾고 가니,
본시 동근(本是同根)이라. 인정(人情)이 귀하도다.
통신사(通信使) 여기 오면, 예부터 연향(宴饗)터니,
올 시절 흉황(凶荒)키로 특별히 폐감(廢減)하나,
전례(前例)로 하루 묵어 풍악(風樂)으로 소일(消日)하네.
태사묘(太師廟)에 현알(見謁)하고, 본주관(本州館)에 들어가서
글 한 수 차운(次韻)하고, 밤이 늦어 돌아왔다.
효월(曉月)에 길을 떠나 영호루(映湖樓) 구경하고,
나룻배 잠깐 건너 일직(一直) 와 말마(秣馬)하여
의성(義城)가 숙소(宿所)하고, 사십 리 의흥(義興) 가서
동헌(東軒)으로 바로 가니, 구정(舊情)이라 반겨 하네.
장기판(將棋板) 내어 놓고, 삼국(三局)을 마친 후에
사행(使行)이 온닿거늘 사차(事次)로 나오니라.
이보령(李保寧) 자문이가 정묘년(丁卯年) 일본 갈 때
여기 기생(妓生) 수청(守廳)하여 딸 하나가 있다 하고,
내려올 때 간청하되, 속신(贖身) 하여 달라 하거늘
들으매 측은(測應)하여 말 내리며 물어보니,
시년(時年)이 십오 세요, 비장 차모(裨將茶母) 정(定)했다네.
욕(辱) 볼까 불쌍하여 내 차모(茶母) 상환(相換)하여
급급히 불러다가 차담상 내어 주고,
자문의 말 다 전하니, 우는 거동 참혹하다.
원(員)에게 이 말하고, 떼어 주라 간청하니.
대비(代費) 주면 면역(免役)하지 그저는 못한다네.
제 어미 일랑이는 병비(兵婢)로 못 가기에
동래(東萊)로 오라 하고, 신녕(新寧)으로 바로 오니,
지례현감(知禮縣監) 송맹백이 지대(支待)하러 왔다하거늘
바로 그리 찾아가니, 반겨도 반겨할사.
아침 저녁 지응 범백(支應凡百) 다 내게 맡기면서
“김진사(金進士) 이리 온 후 내 무슨 근심하리?
많이 드나 적게 드나, 일만 아니 나게 하소.
그러면 지례현감(知禮縣監) 내 소임(所任)과 바꿔하면,
일 나나 아니 나나, 내 담당(擔當)하여 봄세.”
저도 웃고 나도 웃고, 한 데서 자자 하네.
예천(體泉)서 기생(妓生)일로 동행(同行)을 속였으니,
미인(美人) 하나 뽑아내어 깃김 고쳐 하여 보세.
열다섯 관비 중(官婢中)에 행란을 불러내어
내 하처(下處)로 데려다가 가만히 숨겨 두고,
병방비장(兵房裨將) 왔닿거늘 전갈(傳喝)하여 이른 말이
“거번(去番)에 속인 일은 내 잘못 하였기에
일등 기생(一等妓生) 하나 얻어 감추어 두었으니,
내 정(情)이 어떠한가? 와서 보고 데려가소.”
그 말 듣고 대희(大喜)하여 달려와 보자커늘
병풍(屛風)을 열어놓고, 불러내어 뵈고 주니,
흔흔(欣欣) 쾌락(快樂)하여 이끌고 가는구나.
이튿날 만나보고, 흥미(興味)를 물어보니,
날 속인 분한 마음 이제는 잊었으니,
이후는 앞 참(站)에 가 매양 얻어 달라 하네.
청신(淸晨)에 말마(秣馬)하여 영천(永川)으로 바로 가니,
읍지(邑地)도 웅장하고, 안세(眼勢)도 광활하다.
여기는 대도회(大都會)라. 전례(前例)로 연향(宴饗)하매,
감사(監司)도 친히 오고, 열읍(列邑)이 많이 왔네.
조양각(朝陽閣) 높은 집에 포설(鋪設)을 장(壯)히 하고,
순사(巡使)와 삼사신(三使臣)이 다 주어 올라앉아
그 다음 사문사(四文士)를 차례로 좌정(坐定)하고,
풍류(風流)를 치우면서 잔상(蓋床)을 드리오니,
찬품(饌品)도 거룩하고, 기구(器具)도 하도 할사.
군관(軍官)과 원역(員役)들은 이 연석(宴席)에 못 든다고,
연상(宴床)을 각각 받고, 딴 좌(座)에 앉았구나.
누(樓) 앞의 넓은 들에 혁통(奕筒)처럼 길을 닦아
볼품 좋은 닫는 말에 마상재(馬上才)를 시험하니,
그 중에 박성적이 좌우 칠보(左右七步) 날게 하고,
송장걸이 등리장신(鐙裏藏身) 일등(一等)을 하는구나.
사방(四方)에 관망(觀望)할 이 양식(糧食) 싸고 두루 모여
좌우(左右)에 미만(彌滿)하니, 몇 만(萬)인 줄 모르겠다.
창녕(昌寧)의 관(官)들이 왔다가 나를 보고,
반겨 하고 뛰노는 양 그려 두고 보고지고
경주부윤(慶州府尹) 송라찰방(松羅察訪) 낯낯이 반갑구나.
육십 리 모량원(毛良院)에 영일지대(迎日支待) 나왔구나.
김각간(金角干) 묘(墓)를 지나 동경(東京)으로 말을 놓아
동헌(東軒)으로 바로 가니, 윤유백 김참봉이
책방(冊房)에 와 있다가 꿈인가 의심하네.
경주(慶州)는 고국(故國)이라 신라 풍속(新羅風俗) 그저 있다.
첨성대(瞻星臺) 봉황대(鳳凰臺)는 의구(依舊)히 남아 있고,
반월성(半月城) 포석정(鮑石亭)은 거친 내만 끼었어라.
오릉(五陵)에 우는 새는 망국한(亡國恨)을 네 아는가.
초혼(初昏)에 사방(使房)에 가 세 곳으로 문후(問候)하고,
하처(下處)로 나올 때에 홍성로(洪誠老) 따라와서
내 차모(茶母) 어린 아기 보고서 곱다 하고,
달라 하고 간청커늘 밉지만 허락하니,
들입다 손목 쥐고, 가는 양 기괴하다.
자리에 그저 누워 다리 치라 이르고서
투미한 곤한 잠을 새도록 혼침(昏寢)하여
긴 밤을 허송(虛送)하고, 돌아보니 간 데 없네.
아이에 저리 하면, 무엇 하러 데려 갔나.
동행(同行)들이 이 말 듣고, 용렬(庸勞)하다 웃는구나.
윤김양인(尹金兩人) 상별(相別)하고, 구이(仇於) 낮참(站) 달려오니
청하현감(淸河縣監) 지참(支站)하러 와 있다가 날 와 보네.
백희 씨 내려올 때 두호(斗護)하라 하던지라.
이방 병방 불러다가 각별히 존문(存問)하고,
낭이 주애 두 기생은 성희의 소면(所丏)이라.
차담상 내어 주고, 옛말 하니, 반겨하네.
저는 말 갈아 타고, 좌병영(左兵營) 지나가서
울산부(蔚山府)로 바로 드니, 주수(主倅)도 반겨하고,
이의숙 와 있다가 전도(顚倒)히 나와 보네.
느직이 발행(發行)하여 오십 리 용당(龍堂) 자고,
내일(來日)은 습유정(拾遺亭)에 일행이 수험(搜驗)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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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먼저 못 떠나서 종사상(從事相) 뒤를 따라
수험소(搜驗所)에 미쳐 오니, 진애(塵埃)가 창천(漲天)하고
삼행차(三行次) 의롱(衣籠) 짐이 뫼같이 쌓였구나.
일색(日色)이 늦었으니, 이를 어이 다 볼쏘냐.
대삭(袋索)을 많이 얻어 열십자(-十字)로 봉(封)하여서
세세(細細)히 수험차(搜驗次)로 다 내어 주는구나.
이윽고 상부방(上副房)이 차례로 들어오네.
동래(東萊)로 향하리라. 오리정(五里亭)에 다다라서
삼방(三房) 소속들이 관복(官服)을 다 갖추고,
넓은 벌 긴 긴 길에 각각 뒤를 따랐으니,
유의(儒衣) 유복(儒服)으로 나는 참여 부질없어
안비(按轡) 서행(徐行)하여 뒤에 오며 굿을 보니
어지러운 생소 고각(笙簫鼓角) 산악(山嶽)을 진동하고,
무수한 부월 정기(斧鉞旌旗) 천일(天日)을 가리었다.
연락(連絡)한 복태(卜駄) 바리 육십 리에 닿았으니,
거동 행차(擧動行大) 제(除)하고는 비(比)할 데 전혀 없다.
굿 보는 남녀노소(男女老少) 십만으로 헤리로다.
주조문(朱鳥門) 다다라서 삼혈 방포(三穴放砲) 놓은 후에
식파루(息波樓) 들이달아 벽대청(壁大廳)에 좌기(坐起)하고,
열다섯 비장(裨將)들과 열일곱 원역(員役)이며,
허다한 중하관(中下官)이 차례로 참알(參弱)한 후(後)
동래부사 청알(請謁)하고, 각진변장(各鎭邊將) 군례(軍禮)하네.
동행(同行)들 잠깐 보고, 사처(私處)에 와 저녁 먹고,
초 물리고 잠을 자니, 날 새는 줄 모르노라.
이튿날 묵게 되니, 사신(使臣)네 심심하여
관덕당(觀德堂)에 낮에 모아 장교 시사(將校試射) 시키시고,
기생 공인(妓生工人) 밤에 모아 제창 제가(齊唱齊歌) 하는구나.
노병(老病)한 이내 마음 풍류사(風流事)에 뜻이 없어
삼동료(三同僚) 찾아보고, 일찍 와 누웠다네.
오늘도 장복(章服) 없어 사행(使行)을 못 따르니,
이 사연 취품(就稟)하고, 홀로 먼저 나아와서
정원루(靖遠樓) 올라보니, 부방비장(副房裨將) 하처(下處)로다.
조망(眺望)을 잠깐 하고, 한훤(寒喧)을 파하고서
동문(東門) 나 십 리(十里) 가서 충렬사(忠烈祠) 찾아가니,
송천곡(宋泉谷) 정장군(鄭將軍)의 사액(賜額)한 서원(書院)일세.
충렬(忠烈)을 감격하여 공경(恭敬)하여 재배(再拜)하고,
우리 길 생각하니, 괴루(愧淚)를 금(禁)할쏘냐..
수복(守僕)이 불러내어 심원록(尋院錄) 찾아보니,
농암(農巖) 선생 갑자년(甲子年)에 어사(御使)로 내배(來拜)하고,
우리 왕고(王考) 기사춘(己巳春)에 연일수(延日守)로 와 계시다.
필적(筆蹟)이 완연(完然)하니, 감창(感愴)도 할셔이고,
사적(史籍) 책 피람(披覽)하고, 남문(南門)으로 돌아들어,
독목교(獨木橋) 건너 들어 부산(釜山)으로 내려가니,
오리정(五里亭) 군막(軍幕) 속에 네 관원(官員) 그 누군고.
김해(金海) 창원(昌原) 칠전(漆田) 원(員)이 주진첨사(主鎭僉使) 한데 있다.
말 내려 입담(立談)하고, 본진(本鎭)으로 들어가서,
책방(冊房)의 두어 객(客)을 번개처럼 얼핏 보고,
하처(下處)로 찾아가니 남문(南門) 밖이 이슥하다.
창원(昌原) 관속 대령(待令)하여 지응(支應) 범백(凡百) 거행하니,
삼중석(三重席)도 화려하고, 병풍 안석(案席) 휘황(輝煌)하다.
통인(通引) 차모 현신(現身)하고 낮 차담(茶啖) 드리는고.
황산(黃山) 말 갈아타고 영가대(永嘉臺) 올라가니,
동남(東南)의 요충(要衝)이요, 산해(山海)의 인후(咽喉)로다.
성지(城址)도 극탕(極蕩)이요 여염(閭閻)도 장하구나.
왜관(倭館)과 절영도(絶影島)는 팔짱처럼 환포(環抱)하고,
그 밖은 무변대양(無邊大洋) 하늘에 닿아 있고,
그 안은 호수처럼 안온(安穩)하고 광활하다.
슬프다, 임진년(壬辰年)에 이같이 좋은 지리(地理)
충무공(忠武公) 이장군(李將軍)이 지키어 방비(防備)하면,
왜병(倭兵)이 강(强)타 한들 제 어이 등륙(登陸)하리.
삼경(三京)이 함몰(陷沒)하고, 승여(乘輿)가 파천(播遷)하사
거의 망(亡)케 되었더니, 황은(皇恩)이 망극(罔極)하사
천병(天兵)이 나온 후에 겨우 회복(回復)하였으나,
간신(奸臣)이 오국(誤國)하여 강화(講和)는 무슨 일고.
부끄럽고 분한 길을 열한 번째 하는구나.
한 하늘 못 잊을 원수 아주 잊고 가게 되니,
장부(丈夫)의 노한 터럭 관(冠)을 질러 일어선다.
석양(夕陽)이 거의 되니 사행(使行)이 내려오네.
빈일헌(賓逸軒)에 들어가서 삼사신(三使臣)께 참알(參謁)하고
관덕당(觀德堂)에 내려오니, 종사상(從事相)이 하는 말씀
“응구첩대(應口輒對)하여 글 하나 지어내면
창원 기생(昌原妓生) 운정이를 상(賞)을 줌세. 어서 짓소.”
나이 많고 졸(拙)한 선비 괴로이 사양(辭讓) 하니,
“사나이 아니로세. 잔말 말고 어서 짓소.”
문방사우(文房四友) 내어놓고, 성화(星火)처럼 재촉하니,
종시(終始)히 아니하면, 좋은 뜻이 매몰(埋沒)하매
먹[墨] 갈아 종이 펴고, 붓 한 번 두루치니,
“이태백(李太白) 청평사(淸平寺)를 경각(頃刻)에 차운(次韻)커라.”
또 네 기생(妓生) 내어놓고, 비장(裨將)들로 제비뽑아
하나씩 상(賞)을 주니, 이끌고 가는구나.
일장(一場)은 박소(拍笑)하고, 하처(下處)로 돌아오니,
운정이 먼저 와서 수청차(守廳次)로 앉았구나.
의복(衣服)도 치레하고, 교태(矯態)도 그지없네.
평생(平生)에 정(定)한 뜻이 저를 보고 변(變)할쏘냐.
자리 펴고 초 물리며 나가 자라 재촉하니,
무료(無聊)하고 수괴(羞愧)하여 몸 둘 땅이 없어 하네.
사방(使房)에서 통인(通引) 와서 가만히 엿보다가,
이 거동(擧動) 보고 가서 낱낱이 아뢰오니,
이튿날 종사상(從事相)이 날 보고 웃으시되,
“옹졸(蓮拙)은 하거니와 어렵다도 하리로다.”
쉰다섯 동행들이 각 사차(各事次)로 돌아오니,
일천 리(一千里) 멀고 먼 길 스무날에 오겠구나.
영 이남(嶺以南) 칠십 이주(七十二州) 차례로 지참(支站)하니,
대읍(大邑)은 나흘이요, 중읍(邑)은 사흘 하나,
지잔(地殘)한 고을들은 이틀씩 한다 하네.
끓느니 사람이요, 천(賤)할 손 음식이다.
죽조반(粥朝飯) 먹은 후에 영가대(永高臺) 다시 가니,
삼방(三房)의 비장(裨將)들이 격군(格軍)을 점고(點考)하네.
도해(渡海)하려 여섯 배를 차례로 매었으니,
통영(統營)과 좌수영(左水營)서 배가 왔다 하는구나.
크기도 그지없고, 높기도 장(壯)할시고,
열두 발 쌍돛대는 전후로 세워 있고,
열세 간(間) 널로 한 방(房) 좌우로 만들었다.
그 아래 집을 짓고, 그 위는 누(樓)이로다.
여섯 척(隻) 지은 물력(物力) 십만 냥(十萬兩)이 들었다네.
두어 날 몸을 쉬어 장대(將臺)에 올라갈 때,
노송(老松)과 대 속으로 굴곡(屈曲)하여 길이 났네.
맨 위층 올라가니, 지세(地勢)도 좋을시고.
평연(平然)한 잔디밭이 말을 타고 달림직하다.
어주(魚舟)와 상고선(商賈船)은 해변에 왕래하고,
개운포(開雲浦) 두목개[豆毛浦]는 눈앞에 벌여 있다.
유영장(柳營將) 있는 데 가 병(病) 묻고 돌아오니,
영산(靈山)의 아전(前) 기생(妓生) 기다린 지 오래구나.
창원(昌原) 지공(支供) 마치고 가니, 칠원(漆原)이 한다 하네.
합천군수(陜川郡守) 심대중(沈大中)은 부방(副房) 지공(支供)하러 와서
어젯밤 전갈하되, 밤들어 못 가 보고,
이튿날 부방(副房)에서 뭇 군관(軍官)과 노니더니,
다정히 찾아와서 손잡고 반겨한다.
인(因)하여 배를 타니 뭇 기생(妓生) 따라오네.
고인(鼓人)과 취수(吹手)들은 각 배에 올랐구나.
저녁밥 예서 먹고, 촉(燭)불을 밝히고서,
조(趙)선달 노래하고 덕심이 검무(劍舞)하네.
웅천(熊川) 거창(居昌) 곤양원(昆陽員)이 지참(支參)하러 모두 왔네.
초하루 망궐례(望闕禮)를 관복(官服) 없어 불참(不參)하니,
정상(正相)이 이르시되, “자네 비록 선비라도
사용(使用)을 부쳐 있고, 왕사(王事)로 길을 가니,
삭망(朔望)에 망하례(望賀禮)를 아니키 불가(不可)하니,
그대의 사력(私力)으로 장복(章服)을 어이할꼬.
내 얻어 줄 것이니, 이후는 참례(參禮)하고,
유생(儒生)으로 관복(官服)하기 수괴(羞愧)하고 민망하나,
도리(道理)가 그러하니, 사양(辭讓)치 못할노라.”
아침밥 먹은 후에 합천군수 잠깐 보고
상방(上房)으로 들어가니, 삼사신(三使臣) 다 모였다.
일행 상·중·하관(上中下官)이 일곱 고을 수령(守令)들과
백여 명 기생들로 서너 패 새면[三絃]잡이
빈일헌(賓逸軒) 너른 청(廳)에 가득히 앉았구나.
대구(大邱) 기생 옥진 형제 황창무(黃倡舞)를 일등(一等) 하네.
삼사신(三使臣) 체자(替資) 돈과 열읍(列邑)수령 행하(行下)한 것
장(壯)함도 장(壯)하구나, 오백 냥(五百兩) 거의로다.
오늘 밤 이 놀음이 이리 온 후 처음일세.
초계(草溪) 현풍(玄風) 병참(倂站)한다. 곤양 지대(支待) 오늘 하네.
문 닫고 드러누워 조리(調理)하니 조금 낫네.
식후(食後)에 삼사상(三使相)이 해운대(海雲臺) 가신다네.
내 하처(下處) 많이 멀어 상마포(上馬砲) 들은 후에
비로소 말을 타니, 사행(使行)이 벌써 갔네.
비장(裨將)과 군관(軍官)들이 군복(軍服)하고 늘어섰다.
나하고 삼문사(三文士)는 첩로(捷路)로 바로 갈 새.
좌수영(左水營) 남문 들어 동문(東門)으로 내달으니,
누선(樓船) 일 척 꾸며내어 선창(船艙)에 매었거늘,
작은 배에 인마(人馬) 실어 바로 건너가라 하고,
삼료(三僚)로 배에 올라 순풍(順風)에 노를 저어,
수십 격군(格軍)들이 일시(一時)에 노래하니,
쾌(快)하고 편(便)하기가 육로(陸路)에 비할쏘냐.
정종방(正從房) 두 행차는 동래부(東萊府) 대로(大路)에서
군악(軍樂) 치고 오시다가 우리 배 바라보고,
비장(裨將)들과 수령(守令)들이 부러워하기 측량(測量) 없네.
우리가 처음에는 늦게야 떠났기에,
따라갈 길 전혀 없어 부득이 배 탔더니,
부러워할 줄 어이 알리, 우습고 다행(多幸)하다.
배 내려 뒤에 따라 해운대(海雲臺)에 올라가니,
안계(眼界)도 멀도 멀사, 수천(水天)이 일색(一色)이라.
주먹만한 대마도(對馬島)는 구름 밖에 명멸(明滅)하고
태산(泰山) 같은 높은 수동(水棟) 반공(半空)에 가렸으니,
저 물을 어찌 가잔 말고, 마음이 서늘하다.
동래 기생 대구 기생 청홍(靑紅)으로 작대(作隊)하여
무수(舞袖)가 편편(翩翩) 하여 행운(行雲)이 머무는 듯.
가성(歌聲)이 청원(淸怨)하니 물색(物色)을 슬퍼한다.
풍류(風流)를 마친 후에 생복(生鰒) 따는 구경하세.
삼십 명 포잠한(鮑潜漢)이 일시(一時)에 옷을 벗고,
허리에 망태 차고, 노(櫓) 끝에 뒤웅 매어,
억만 장(億萬丈) 풍도중(風濤中)에 거꾸로 뛰어들어
땅으로 머리 가고 하늘로 발이 가게
헤엄하여 가는 상(狀)이 개구리 모양이라.
생복(生鰒)을 따 가지고, 뒤웅에 걸머지어,
호흡(呼吸)을 두르고서 또다시 들어가니,
무섭고 불쌍하여 심골(心骨)이 서늘하다.
인인(仁人) 군자(君子) 보게 되면, 생복(生鰒)을 먹을쏘냐.
좌수사(左水使) 포이만호(包伊萬戶) 차담을 하는구나.
처음에 나올 때는 풍우(風雨)가 대작(大作)하니,
이러한 좋은 경치(景致) 못 볼까 하였더니,
오후에 청명(淸明)하여 비 개고 잔풍(殘風)하니
승지(勝地)의 장한 놀음 하늘이 주시도다.
일모(日暮) 서산(西山)하니, 파연(罷宴)하고 돌아올 때
무수한 횃불 빛이 삼십 리(三十里)에 벌였구나.
순식간(瞬息間)에 돌아오니, 삼경(三更)이 거의로다.
초오일(初五日) 청명(淸明)커늘 몰운대(沒雲臺)를 보려 하고,
합천 군수(陝川郡守) 한가지로 개운포(開雲浦)로 지나오니,
부방(副房)의 비장(裨將)들이 풍류(風流)하고 앞에 섰네.
말을 몰아 함께 오니, 김영장(金營將)이 먼저 왔네.
재에 올라 간간 쉴 때, 유영장(柳營將) 서중화(徐中和)가
세 기생(妓生) 데리고서 미(尾) 좇아 따라왔네.
서너 영(嶺) 다시 넘어 바다를 옆에 끼고
다대개[多大浦] 동문(東門)으로 회원루(懷遠樓) 들이달아
호두각(虎頭閣) 들어가니, 주진첨사(主鎭僉使) 기다리네.
난간 앞에 감 석류가 휘어지게 열렸거늘,
따다가 먹어 보니, 그 맛이 이상하다.
지형(地形)도 좋을시고, 용호(龍虎)가 환포(環抱)하여
해운(海雲)을 가리우니, 선창(船艙)이 절로 되어
전선(戰船)을 매었으니, 이 실로 관방(關防)이라.
지리(地利)를 의논(議論)하면, 부산(釜山)보다 낫다 하리.
남문(南門)을 내달아서 몰운대를 찾아가니.
평지(平地)에 행룡(行龍)하여 봉(峰) 하나가 일어서서,
달구지 자루처럼 바다에 뻗쳤으매,
대(臺) 위에 올라앉아 좌우(左右)를 돌아보니,
바둑처럼 벌인 섬이 예도 있고 제도 있어,
형형(形形) 색색(色色)으로, 기기(奇奇) 괴괴(怪怪)하여,
괴석(怪石) 같은 것도 있고, 소라 같은 것도 있다.
창망(滄茫)한 운연(雲煙) 밖에 만산(萬山)이 은영(隱映)한다.
심대중(沈大中) 이를 보고, 손등치고 차탄(嗟歎)하되,
“관동 구군(關東九郡) 좋다 하나, 이런 데는 못 보았네.
우리 나라 해산 중(海山中)에 제일이라.” 하리로다.
“광활하고 통창(通敞)키는 해운대(海雲臺)만 못하여도
기묘(奇妙)하고 절승(絶勝)키는 매우 낫다.” 하리로다.
삼현(三絃)을 크게 치고, 일장(一場)을 진탕하니,
묘리(妙理) 있는 주진장(主鎭將)이 성찬(盛饌)을 장(壯)히 하여
온갖 실과(實果) 넣은 떡과 연한 고기 가는 회(膾)를
차차로 들이고서 벙거지골 먹인 뒤에
생복(生鰒) 잡아 난팽(暖烹)하고, 고기 잡아 탕(湯)을 하여
석반(夕飯)을 또 드리고, 감배(酣杯)로 개위(開胃)하니,
대접(待接)도 묘리(妙理) 있고, 음식도 맛이 좋네
서울서 떠난 뒤에 처음으로 배부르다.
경치(景致)를 매양 보랴, 일락(日落) 후 회정(回程)하여
왜관(倭館) 지나 원문(轅門) 나서 횃불 켜고 돌아와서
배불러 밥 못 먹고, 그저 누워 자렸더니,
종상(從相)이 부르거늘, 들어가 문후(問候)하니,
해산 승경(海山勝景) 자세 묻고, 나가 쉬라 하는구나.
지례현감(知禮縣監) 편지하여 약과(藥菓) 한 궤(櫃) 보내었고,
모르는 통제사(統制使)도 신행(贐行)을 하는구나.
초팔일(初八日) 제해(祭海)하려 수서계(隨序階)께 습의(習儀)할 때,
오각대(烏角帶) 흑단령(黑團領)은 종사상(從事相)이 빌리시고,
사모(紗帽)와 전후 흉배(前後胸背) 최판사(崔判事)가 보내었네.
삼사상(三使相) 뒤를 따라 영가대(永嘉臺) 들어가서
예의(禮儀)를 얼른 하고, 상방(上房)에 들어가니,
제술관(製述官) 지은 제문(祭文) 정상(正相)이 내어놓고,
수 십자(數十字) 에우치고, 고쳐 지어 들이라네.
돌아와 자고 깨니, 진해격기(陣咳膈氣) 하는구나.
식후(食後)에 객사(客舍)에 가 정상(正相)께 문후(問候)하니,
고쳐 지은 제해문(祭海文)을 보았느냐 물으시네.
이윽고 남시온(南時韞)이 가지고 왔거늘,
펴놓고 내려보니, 전보다 많이 낫네.
시온이 나간 뒤에 사람을 치우시고,
나에게 이르시되, “엊그제 제술관(製述官)이
글 지어 보내면서 기생(妓生) 달라 하였으되.
주지 아닌 이내 뜻을 그대 응당 짐작하리.
저 불러 계책(戒責) 하되, 남모르게 하였으나,
성서기(成書記) 마침 와서 한가지로 들었으매,
그대는 노성(老成)하니, 내 어이 그일 손가.
나 젊은 동류(同類)들과 들지 아니하는 뜻을
내 비록 불명(不明)하나, 자네 뜻 내 모를까?”
저녁에 종사상(從事相)이 영가대(永嘉臺)에 올라앉아
제문(祭文) 받자 하시거늘 장복(章服)하고 따라오니,
전사관(典祀官) 한가지로 성기성생(成期成牲) 하는구나.
오후부터 구토(區吐)하고, 몸이 심히 거북하여
사처(私處)로 돌아와서 석식을 전폐하고,
신음하고 누웠으니, 참사(參祀)를 어찌하리.
강잉(强仍)하여 소세(梳洗)하고, 삼경량(三更量)에 관복(官服)하고,
전사관(典祀官) 곳에 가서 신음하고 앉았더니,
이윽고 삼사신(三使臣)이 차례로 나오거늘
외의(外儀) 위로 바로 가니, 사신(使臣)네도 앉았구나.
자시(子時)를 기다려서 안 반열(班列)에 들어가서
제물(祭物)을 진설(陳設)하니, 삼사신(三使臣)이 삼헌(三獻)하고,
시온(時韞)은 대축(大祀)이요, 사집(士執)은 집례(執禮)하고,
봉향(奉香)은 내가 하고, 봉로(奉爐)는 자재(子才)로세.
현태익(玄泰翼)은 사관(査官)하고, 진폐(進幣)는 최학령(崔鶴齡)이
전폐(奠幣)는 이명윤(李命尹)이 사축(司祝)은 이좌국(李佐國)이
현태심(玄泰心)은 사준(司尊)이 이명화(李命和)는 찬자(贊者)로다.
현계근(玄啓根) 이인호(李仁祐)는 알자(謁者)를 하였으며,
남두민(南斗旻) 이언진(李彦瑱)은 호창(呼唱)을 하는구나.
성월(星月)은 소삭(蕭索)하고, 서풍(西風)이 소슬(蕭瑟)하니,
동해신(東海神) 아명씨(阿明氏)가 흠향(歆饗)을 하시는가?
신판축문(神板祝文) 소화(燒火)하고, 양시생(羊豕牲) 서직반(泰稷飯)을
작은 배에 실어다가 해수(海水)에 넣은 후에
제파(祭罷)하여 돌아오니, 계삼창(鷄三唱)이 되었구나.
울산수(蔚山守)와 이의숙이 왔노라고 전갈(傳喝)하되,
몸 아파 못 가 보니, 섭섭도 하온지고.
늦은 뒤 일어나서 상방(上房)에 문후(問候)하고,
부삼방(副三房) 잠깐 거쳐 울산수(蔚山守) 보고 오니,
성주원(星州員) 청도원(淸道員)이 왔노라 기별 왔네.
내일(來日)은 구일(九日)이라 등고(登高)를 하여 보세.
아침에 부삼방(副三房)이 몰운대(沒雲臺)로 가신다네.
진해 관속(鎭海官屬) 물러가고, 울산 지공(支供) 와서 하니,
밥 먹고 말 타고서 민명천(閔明川)을 가서 보고,
유영장(柳營將) 양선전(梁宣傳)과 장대(將臺)로 올라가니..
남촌별장(南村別將) 포이만호(包伊萬戶) 뒤에 따라 올라오네.
밀양 경주 김해 기악(妓樂) 다 주어 올라왔다.
서중화(徐中和) 조도사(曺都事)도 추후(追後)하여 오는구나.
다정할 사 합천수(陜川守)가 지공하고 돌아갈 때
일행들 먹고 놀라 소 하나 주고 가네.
근검한 주진 첨사(僉使) 이 소 잡고 설찬(設饌)하니,
음식도 무던하고, 검무(劍舞)도 봄 직하다.
글 두 수 지어내어 가절(佳節)을 갚은 후에
부삼방(副三房) 오시거늘 잠깐 가 문후(問候)하고,
상방(上房)에 얼른 다녀 사처(私處)로 돌아오니,
밀양기생(密陽妓生) 와서 뵈니, 기기진대(奇綺眞黛) 분취영이라.
청가(淸歌) 수곡(數曲) 들어보니, 객회(客懷)를 잊겠구나,
수사 연향(水使 宴饗) 내일이라. 일찍 일어 들어가니,
빈일헌(賓逸軒) 동대청(東大靈)이 오히려 좁은지라.
그런 장한 넓은 뜰을 부계(浮階) 매어 포진(布陣)하고,
삼사상(三使相) 남향(南向)하고, 수사(水使)는 북향(北向)이라.
우리 네 문사(文士)는 서향(西向)하여 앉았으며,
삼방(三房)의 군관(軍官)들은 우리 옆에 남향(南向)하고,
역관(譯官) 양의(良醫) 사자관(寫字官)은 수사(水使) 뒤에 앉아 있고,
마상재(馬上才) 별파진(別破陣)과 전악 이마(典樂理馬) 반인(伴人)들은
뭇 역관(譯官) 앉은 뒤에 좌우로 갈라 앉고,
육선장(六船將) 삼집사(三執事)는 마상재(馬上才) 뒤에 있고,
각방(各房)의 노자(奴子)들은 뜰 가운데 앉았으니,
위의(威儀)도 정제(整齊)하고, 풍류(風流)도 장(壯)할시고.
경상도(慶尙道) 일도 기생(一道妓生) 다 모여 왔다 하네.
위로는 사신(使臣)부터 아래로 기생(妓生)까지
이 연석(宴席)에 드는 이는 채화(彩花)를 다 꽂았다.
풍악(風樂)을 사철(乍撤)하고, 연상(宴床)은 드는구나.
저 연상(宴床) 구경하소. 장(壯)하고 거룩하다.
크나큰 교족상(交足床)을 네 놈이 겨우 들어
사신(使臣)네는 네 상(床)이오. 우리는 세 상(床)인데,
그릇 수를 얼른 세니, 한 상(床)에 팔십이요,
모두 다 왜화기(倭畵器)에 수륙 진찬(水陸珍饌) 다 올랐다.
상(床)마다 칼과 수저 다 새로 만들었다.
궁유(窮儒)의 채장(菜臟)으로 먹을 길 전혀 없다.
주리는 일가친척(一家親戚) 나눠 먹여 보고지고.
구작 칠미(九嚼七味) 다 들이고, 공연(公宴)을 파(罷)한 뒤에
개복(改服)하고 다시 드니, 새 연상(宴床) 또 들인다.
그릇마다 묘찬(妙饌)이요, 음식마다 일미(一味)로다.
가난한 좌수사(左水使)가 허비(虛費)도 많을시고,
좌우(左右)로 굿 보는 이 그 수(數)를 어이 세리.
성(城)도 타고 담도 타고 집 위에도 올랐으며,
첨하(檐下)에도 가득하고, 나무 위에 더욱 많다.
잔치의 성(盛)하기와 풍악(風樂)의 장(上) 하기는
서왕모(西王母) 반도연(蟠桃宴)이 이에서 더할쏘냐.
내 기운 불평(不平)하여 맨 먼저 사퇴(辭退)하고,
이튿날 호궤(犒饋)하되 비 마침 장(壯)히 오니
삼방(三房)의 여섯 군관(軍官) 영기(令旗) 세고 군악(軍樂) 치며,
뭇 격군(格軍) 다 먹이러 육선(六船)으로 바로 가고,
사신(使臣)네와 상중관(上中官)은 어제처럼 벌여 앉아
삼현(三絃) 치고 가무(歌舞)하며, 한 상씩 들이는고.
파연에 정사상(正使相)이 부채 한 봉 내어놓고,
일행(一行) 제인(諸人)들을 각 하나씩 나눠주고,
웃으시며 이르시되, “이것이 바람 내어
바다에 건너갈 때, 순풍(順風)을 내어세라.”
오늘도 몸이 아파 일찍이 돌아오니,
경주 기생 와서 뵈니, 취정취색취애(醉情醉色醉愛)로다.
슬며시 부은 정에 다 가까이 하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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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웅천지공(龍川支供) 참혹도 할셔이고,
종사상(從事相) 좌수(座首) 치고, 예방비장(禮房裨將) 공형(公兄)쳤네.
십삼일 대전 탄일(大殿誕日) 망궐례(望闕禮) 하온 후에
승선 택일(乘船擇日) 오늘이라. 재촉하여 조반하고,
비단 도포(道袍) 정자관(程子冠)을 처음으로 입고 쓰니,
재인(才人) 광대(廣大) 모양이라. 소견(所見)이 수상하다.
포변(浦邊)으로 바로 가니, 역관(譯官)들도 다 모였다.
국서(國書)를 모시고서 삼사신(三使臣)이 나오신다.
식파루(息波樓) 바로 들어 일행(一行)이 다 모이니,
정사상(正使相) 맨 앞에서 상선(上船)으로 올라가니,
부종상(副從相) 남여(藍與) 타고, 차례로 승선(乘船)할 때
일기선(一騎船) 돌아보니, 여섯 군관(軍官) 세 역관(譯官)이
모시고 올랐으며, 부기선(副騎船) 돌아보니,
육비장(六裨將) 일서기(一書記)와 서너 역관(譯官) 올랐구나.
시온사집(時韞士執) 장사군관(壯士軍官) 정복선(正卜船) 타 있으며
별파군(別罷軍)과 대여섯 역관(譯官) 부복선(副卜船) 타 있구나.
나하고 삼비장(三裨將)과 홍초관(洪哨官) 두 역관(譯官)은
삼기선(三騎船)을 타 있으며, 양의전악(良醫典樂) 마상재(馬上才)와
두 사자관(寫字官) 두 역관(譯官)은 삼복선(三卜船)을 타 있구나.
닻 들고 노역(櫓役)하여 반양(半洋)으로 내릴 적에
세 배 탄 왜(倭)놈들이 점선차(點船次)로 나오다가
삼사신(三使臣) 만나보고, 돛 지우고 닻을 준다.
맨 대가리 벌건 다리 처음으로 만나보니,
인형(人形)이 전혀 없어 놀랍고 더럽구나.
삼현(三絃) 소리 듣느라고 선두(船頭)에 모여 서서
가리키고 들으려는 상(狀) 소견에 경해(驚駭)하다.
인(因)하여 회선(回船)할 때 돛 달고 중류(中流)하여
육선(六船)이 취타(吹打)하고, 선창(船繪)으로 들어가니,
이 날에 굿 보는 이 모여들어 가득하다.
삼상(三相)이 국서(國書) 모셔 객사(客舍)로 가시거늘,
경주부윤(慶州府尹) 잠깐 보고, 하처(下處)로 돌아오니,
우병사(右兵使) 편지(便紙)하고, 의자(衣資) 식물(食物) 보내었다.
십오일(十五日) 십육일(十六日)은 창원(昌原) 고을 지공(支供)이라.
십칠일(十七日) 언양 지공(彦陽支供), 피폐(疲弊)도 가이 없다.
십구일(十九日) 의흥 지공(義興支供) 원(員)의 부자(父子) 보고 가네.
한가지로 놀자 하되, 병들어 못 가니라.
이튿날 유영장(柳營將)이 문병하고 가는구나.
상방 비장(上房 裨將) 편지 보니, 원자재(元子才) 욕(辱)을 보고,
어젯밤 삯말 타고, 서울로 올라가니,
남제술(南製述) 성서기(成書記) 가 만류하되 우겨 갔네.
들으매 놀라우나, 병(病)들어 못 가기에
예방(禮房)에게 편지(便紙)하여 곡절(曲折)을 자세 아니,
원자재(元子才) 본진(本陣)에 가 첨사(僉使) 보러 들어갈 때
일기 선장(一騎船將) 김구영이 안연(昊然) 부동(不動)하고,
마루에 높이 앉아 무례(無禮)하기 심한지라.
원자재(元子才) 속소(宿所)에 가 사령(使令)으로 부르라니,
거역(拒逆)하고 아니 오고, 다섯 번째 겨우 와서
청죄(請罪)도 아니하고, 방(房)에 들어앉으려니.
분함을 못 이기어 도로 가라 호령(號令)하니,
구영이 발악(發惡)하고, 불공(不恭)한 말 많이 하니,
하인 불러 분에(忿恚)하고, 정사상(正使相)께 아뢰오니,
선장(船將) 불러 화해(和解)하니, 하릴없어 나올 때에
선장(船將)이 중로(中路)에서 자재(子才)의 소매 잡고,
노기(怒氣)가 발발(勃發)하여 무수히 휘욕(詬辱)하니,
사방(使房)에 다시 뵙고, 욕(辱)본 말 다 아뢰니,
선장(船將)과 자재(子才) 종을 오도(五度)씩 결곤(決棍)하니,
자재(子才)가 절분(絶憤)하여 삯말 타고 올라갈 때
남시온(南時韞) 성사집(成士執)이 북문(北門)에 가 보낼 때
불승강개(不勝陳槪)하여 손목 쥐고 눈물지니,
경주기생(慶州妓生) 연이 걔도 시온(時韞)의 소면(所眄)으로
한가지로 나왔다가 제 역시 운다 하네.
상방(上房)의 예방비장(禮房裨將) 사상(使相)께 아뢰오되,
“영기(營紀)로 잡아다가 징집(懲執)을 하게 하오.”
병무군관(兵武軍官)이 말 듣고, 일시(一時)에 간(諫)하오되,
“아무리 서기(書記)오나, 비장(裨將)과 다르옵고,
글 읽는 선비오니, 잡아오는 못 하리다.
정상(正相)이 옳이 여겨 편지하되 아니 오고,
자제 비장(子弟裨將) 조자구로 데려오라 또 보내니,
애달프다, 원자재(元子才)가 삼일(三日) 만에 도로 오니,
김구영 상방(上房)에서 다만 결곤(決棍) 삼도(三度)하니,
자재(子才)도 인입(引入)하고, 두 문사(文士) 칭병(稱病)하네,
이날은 각방 복물(各房 卜物) 다 배에 싣는지라.
행구(行具)를 모두 차려 삼선(三船)으로 보낸 후에
이리 헤고 저리 헤니 자재설치(子才雪恥) 못한 전은
아니 감이 옳은지라. 병세(病勢)를 강잉(强仍)하여
이십일(二十日) 겨우 일어 미음을 조금 먹고,
삼방(三房)으로 들어가니, 시온(時韞) 사집(士執) 앉았구나.
하직(下直)하고 물러갈 말 누누이 아뢰오니,
처음은 종사상(從事相)이 극력(極力)하여 말리더니,
아무래도 못 갈 말을 자세히 베푸오니,
“그대 소집(所執) 그러하니, 나도 과연(果然) 못 말리니,
시험(試驗)하여 상방(上房)에 가 사면(辭免)을 하여 보소.”
바로 일어나 상방(上房)에 가니, 기침(起枕) 아니하였기에
부방(副房)으로 내려와서 못 갈 연고(緣故) 자세히 하니,
“자네 소집(所執) 그러하니, 임의(任意)로 할지어다.”
그리하고 자재(子才) 보고, 욕(辱)본 말 위로(慰勞)하고,
인하여 손목 잡고, “내 한 말 들어 보소.
세 가지 그릇한 일, 아는가 모르는가.
선장(船將)이 무례(無禮)할 때 못 본 체하는 것이
제일(第一) 양책(良策)인데, 일어나지 않는 놈을
잡으러 보낼 적은 욕본취재((辱本取自) 하나이고,
사군자(士君子)의 출처행신(出處行身) 응용불박(應容不迫)할 것인데,
밤중에 남모르게 급급(急急)히 길을 차려
도망(逃亡)하듯 올라가니, 잘못함이 둘이오.
그 욕(辱)을 보고서는 아무래도 못 갈지라.
떠났거든 아주 가지 무엇하러 도로 왔는고.
전후(前後)에 그릇한 일 이것이 세 가지네.”
원자재(元子才) 내 말 듣고, 격절(擊節)하고 칭사(稱辭)하되,
노형(老兄)의 하시는 말 절절(節節)이 옳다 하네.
“나는 시방(時方) 하직하고, 아주 돌아가려 하네.”
삼문사(三文士) 함께 하되, “말씀은 옳사오나,
말초(末梢)까지 생각하고, 상심(詳審)하여 하오소서.”
서울서 올 때부터 한 물에 아니 든 줄
내 뜻을 모르고서 용렬(庸劣)히 여긴지라.
내 말 비록 이러하나, 못 할까 염려(念慮)하네.”
내 웃고 일어나서 상방(上房)으로 바로 가서
문 열고 들어가니, 사상(使相)이 감기 있어
옹금(擁衾)하고 누웠다가 나를 보고 앉는지라.
나아가 문후(問候)하고, 정색(正色)하고 물러앉아
다시 꿇어 여쭈오되, “이번의 천리(千里) 길을
모시고 내려와서 외국(外國)에 가게 되니,
바라옴이 태산(泰山) 같고, 정(情)이 역시(亦是) 깊사오나.
전후(前後)에 불평(不平)한 일 전혀 없지 아니하되,
부질없는 작은 일을 결각(決却)을 아니 내려
봉영봉교(奉令奉敎)하여 죄(罪) 없이 왔삽더니.
오늘은 박부득이(迫不得已) 작죄(作罪)하러 왔나이다.”
사상(使相)이 물으시되, “무슨 일로 그러한고?”
“다른 일이 아니오라 원서기(元書記) 일이올소이다.”
“원봉사(元奉事) 욕(辱)본 일을 김진사(進士) 가로 맡아
부질없이 생성(生成)하여 과거(過擧)를 하려는고?”
내 고쳐 하온 말이 “그렇지 아니하오.
사람은 다르오나, 서기(書記)는 한 가지니,
머리를 삶사오면, 귀인들 아니 익사올까?
한 서기(書記) 욕(辱)보고서 처치(處置)를 하기 전(前)은
행중(行中)의 네 문사(文士)가 다 먹은 듯하오니
완만(緩慢)한 선장(船將)놈을 결곤 삼도(決棍 三度) 겨우 하고,
비록 태거(汰去)하다 하나, 출대(出代) 아직 안 했으니,
금명간(今明間) 순풍(順風) 얻어 급히 배를 타올 때에
인입(引入)하여 데려가면, 서기(書記)의 거취(去就)들은
이를 것 없거니와 토교(土校)를 사랑하고,
선비를 천대(賤待)하면, 청문(聽聞)이 어떻겠소?
서기(書記) 노릇 하는 양반(兩班) 비록 심히 비미(卑微) 하나,
임하(林下)에서 독서(讀書)하고, 자호(字號)하는 선비로서
욕(辱)본 땅에 앉았다가 배 탄 후 또 욕(辱)보면,
하늘로 못 오르고, 바다로도 못 들지라.
뒷발 디딜 평지(平地)에서 하직(下直)하고 가나이다.”
사상(使相)이 하오시되, “김진사(金進士) 이런 말은
진실로 의외로다. 그대 입시(入侍)하여
특명(特命)으로 글 지으고, 이국(異國)에 보내시니,
천은(天恩)을 감격(感激)하여 화국(和國)하고 돌아옴이
분의(分義)에 옳삽거늘 별반(別般) 시비(是非) 끌어내어
김진사(進士) 아니 가면, 저 세 사람 어찌 갈꼬?
넷이 다 못 갈진대 사행(使行)인들 어찌 갈꼬?
나라 일 그릇 되면, 김진사(金進士) 탓 아닌가?”
“어저 그 말 마오시오. 예부터 선비 출처(出處)
나라 일과 남의 일을 순편(順便)케 하려 하고,
제 몸 먼저 더럽힌 일 사책(史冊)에도 없삽나니,
다른 서기(書記) 일이라고 아니 돌아가게 되면,
용렬(庸劣)한 이 선비를 무엇에 쓰오리까?”
사상(使相)이 다시 하되, “내 이미 치죄(治罪)하고,
태거(汰去)를 하였으니, 장수(杖數)를 다투어서
과(過)한 거조(擧措) 부대 말고, 내 말을 시행(施行)하소.”
“하교(下敎) 비록 유리(有理)하나, 천려(賤慮)와 다르외다.
다른 장교(將校) 같사오면, 혹시 용서(容恕) 하려니와
하물며 이 장교(將校)는 동래부사(東萊府使)와 계실 때
친근히 사환(使喚)하여 소아(小兒)처럼 부렸으니,
그놈이 이를 믿고, 방약무인(傍若無人) 하여
양반(兩班) 욕(辱)한 죄(罪)가 사(赦)하기 어렵거늘
볼기 셋 치오시고, 전(前)과 같이 후대(厚待)하니,
일도(一道)의 상하 인민(上下人民) 성내외(城內外)에 다 왔으니,
군관(軍官)을 보내오셔 물의를 들어보오.
토교(土校)를 애석(愛惜)하여 서기(書記)를 천대(賤待)한다
인심(人心)이 분울(憤鬱)하여 저마다 분개(憤槪)하니,
이놈뿐 아니오라 이번 길 가는 중에
이같이 부리던 놈 하나둘이 아니오니,
저마다 효칙(效則)하면, 그 욕이 오죽하오.
육지(陸地)에 있을 때에 하직(下直)하고 가려오니,
소생(小生)은 이번 길에 득죄(得罪)한 일 없사오니,
부질없이 자재(子才)처럼 서울로 아니 가고,
이 근처(近處)에 있삽다가 사신(使臣)네 가오실 때
선두(船頭)에 배별(拜別)하고, 연(連)해 투비(投費) 하려 하오.
각관(各官)의 지공(支供)들을 이제는 못 먹으리니,
일찍이 나가서 먹을 도리(道理) 하사이다.”
인(因)하여 일어서서 나오려 하올 때에
사상(使相)이 일어서서 급급(急急)히 손을 잡고,
위로(慰勞)하며 이르시되, “성의(誠意)가 불부(不孚)하여
처사(處事) 잘못 한 탓이니, 내 장차(將次) 회심(海心)함세.”
누누(累累)이 개유(開兪)하고, 회오(悔悟)하는 뜻을 뵈니,
이 말씀 듣자오니, 마음이 풀리인다.
또 꿇어 여쭈오되, “소생(生)이 우직(愚直)하와
허다(許多)하온 추요언(芻蕘言)를 외람(猥濫)히 아뢰오니,
번연(翻然)히 깨달아서 인구(引咎)를 하오시니,
존안(存案)코 당돌하오나, 이미 돌아가게 되니,
속에 있는 먹은 말씀 다 주어 하오리다.
관복(官服)일로 이르기를 무진년(戊辰年)에 통신(通信) 갔던
문사에게 묻사와서 학창의(鶴氅衣) 정자관(程子冠)을
전례(前例)로 지었더니, 저번에 승선(乘船)할 때
상방(上房)의 한 비장(裨將)이 고담(高談) 대언(大言)으로
내달아 이르오되, ‘정자관(程子冠) 와룡관(臥龍冠))은
사신(使臣)들 쓰시는 것 생심(生心)도 못 쓰리라.’
내 듣고 통분(痛)하여 대답하여 이르오되,
‘삼백년(三百年) 유래(由來) 고규(古規) 그대 어이 모르고서
역관(譯官)이 못 쓰기에 그놈과 부동(附同)하고,
말뚝 전립(戰笠) 써 있기에 부끄럽고 용심(用心) 내어
예부터 하는 관복(冠服) 저희(沮戱)는 무슨 일고.
그러면 서기(書記)들도 그대처럼 군복(軍服) 할까?’
그 비장(裨將) 고쳐 하되, ‘상하 귀천(上下貴賤) 다르거든
등분(等分)이 없을쏘냐? 사또께 여쭙고서
다시 변통(變通)하여 복색(服色)을 정하리라.’
들으매 분(憤)이 나나, 다투기 점잖지 않아
인분(忍憤) 하고 돌아와서 내두(來頭)를 보렸더니,
과연(果然) 수일후(數日後)에 이 비장의 말과 같이
관복 하교(官服下敎) 내리시니, 유래(由來)하여 오는 제도(制度)
한 비장(裨將)의 참소(讒訴) 말로, 일조(一朝)에 그릇되니,
내 비록 궁노(窮魯)하나, 비장에게 조롱받아
굴수무언(屈首無言)하여 한 말도 아니할까.
늙고 병든 이 서기(書記)는 화국(和國)할 재주 없기
구충기수(苟充其數)하여 승핍(乘乏)하여 왔거니와
남원성(南元成) 세 사람은 일대(一代)의 문장(文章)이오.
하물며 서기(書記) 노릇 일시(一時)에 극선(極選)이라.
‘천리마(千里馬) 좋다.’ 하고, 가리어 데려다가
네 굽을 동여매면, 제 어이 걸을 손가.
글만 읽은 선비들은 예로부터 오활(迂闊)하여
윗사람 되시는 이 너그러이 조용(調用)하여
잔 허물 보지 말고, 구속(拘束)하지 않게 하면,
우유자재(優遊自在)하여 걸린 데 없은 후에
사절(使節)도 기운(氣運)이오. 글짓기도 기운(氣運)인데,
어쩌다 조절(調節)키를 하류(下流)와 같이하오?”
사상(使相)이 이르시되, “처음에 원봉사(元奉事)가
생심(生心)이나 내 선장(船將)을 어이 하여 나입(拿入)할까?”
분연(奮然)히 여쭈오되, “그는 그러 아니하오.
그래도 서기(書記)들이 제집에 있을 때에
장교(將校) 하나 두르기는 남의 힘을 아니 비니,
하물며 봉명(奉命)하고, 이역(異域)에 가올 때에
행중(行中)의 한 토교(土校)를 못 처치(處置)하오리까?
기해년(己亥年) 통신(通信)갈 때 제술관(製述官) 이현(李腦) 이가
수역(首譯)을 끌어들여 무수(無數)히 둘렀으되,
그때의 사람들이 ‘그르다’ 아니하고,
이현(李賢)이 데려온 종 결곤(決棍)한 일 없사오니,
국의(國儀)의 선비들은 사행(使行)에 가는 장교(將校)
못 처치(處置) 하려니와 행중(行中)에 가는 서기(書記)
장교(將校) 하나 두르고서 볼기 맞기 옳사올까?”
그밖에 잡 말씀을 무수(無數)히 진정(陳情)하되,
사상(使相)이 어지셔서 뉘 아니 보시고서
온언(溫言)으로 달래시고, 가지 말라 하오시니,
절하고 여쭈오되, “오늘 하직(下直) 하렸더니,
하교(下敎)가 감격(感激)하니, 아직 물러가 있다가
처치(處置)를 기다리와 내일 물러 가오리다.”
인하여 문(門)을 나서 중계(中階)에 내려서니,
역리통인(驛吏通引) 급창기생(及唱妓生) 전에 거만하던 것이
다 뜰에 내려와서 부복(俯伏)하여 보내는고,
처음에 들어올 때 잔망(孱妄)한 이좌보(李佐甫)가
내 기색(氣色) 먼저 알고, 난처(難處)한 일 볼까 하여
제비처럼 나가 서서 창밖에서 엿듣다가
이제야 마주 와서 치하하고 가는구나.
벽 대청에 나와 앉아 잠깐 비겨 쉬올 때에
집사(執事)를 급히 불러 김구영 나입하여
사령(使令) 세 놈 팔을 갈아 낱낱이 고찰(考察)하여
십오도(十五度) 결곤(決棍)하고, 인하여 태거(汰去)하니
착하시다, 우리 사상(使相). 전환양(轉換樣)이 갸륵하사
미친놈 어린 말을 그르다 않으시고
광명쇄락(光明灑落)한 처치(處署) 경각(頃刻)에 내리시니,
우리 무리 영감(靈感)키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행(使行)이 빛나기가 만장(萬丈)이나 더하도다.
남성원(南成元) 사람이 궁금하여 할 것이니,
말 타고 그리 가서 전후사연(前後事緣) 다 이르니,
누웠던 원자재(元子才)가 용약(踊躍)하여 일어나서
손뼉 치고 웃고 하되, “내 무슨 병(病)이런고.
다만 심병(心病) 어렵더니, 노형(老兄)의 한 말씀에
숙병(宿病)이 나으리니, 쾌활(快活)하여 날 듯하니,
기특(奇特)하고 장(壯) 한지라 탄복(歎服)할 뿐 무엇할까.”
저녁밥 예서 먹고, 주진(主鎭)으로 들어가니,
유서이(柳徐李) 세 사람이 일시(一時)에 치하(致賀)하되,
“좌하(座下)의 한 말씀에 대사(大事)를 완득(完得)하여
허다(許多)한 일행(一行)으로 기용여산(氣聳如山) 하게 하니,
봉명조양(鳳鳴朝陽)한단 말을 옛글에 보았더니,
오늘날 이 거동(擧動)은 ‘학립부산(鶴立釜山)이라
하 장(壯)하고 갸륵하니, 우리 일어나 절하네라.
나 역시 절을 받고, 추연(惆然)하여 대답하되,
“불행(不幸)한 날을 만나 광망(狂妄)한 잡말씀을
고저(高低)도 모르고서 마음껏 하였더니,
사상(使相)이 현명(賢明)하사 그르다 않으시고,
일일 청종(一一聽從) 하오시니, 내 무슨 힘이리오.”
부방 삼방(房三房) 잠깐 뵙고, 낱낱이 여쭈오니,
“김진사(金進士) 이번 일은 이 실로 쾌(快)하도다.”
오다가 예방(禮房) 보니, 임오 이인(任吳二人) 앉았다가
기경(起敬) 하고 칭찬하되, “장하고 거룩하다.
우리 사상(使相) 전갈(傳喝)하사 ’치소서.‘ 권(勸)하오되,
들은 체 아니하더니, 한 말에 깨치오니,
우리는 녹록(碌碌)하여 무엇에 쓰잔 말가.”
그 밖에 보는 사람 저마다 탄복(歡服)하니,
괴롭고 웃으올사 하처(下處)로 돌아오니,
내게 온 마두(馬頭)놈이 엎디어 아뢰오되,
“소인(小人)이 이리 와서 모시고 다니다가
쾌(快)하고 기쁜 일을 오늘이야 보았네다.
진사(進士)님 객사(客舍)에서 상사도(上使道)와 다투실 때
각관(各官)의 아전 관속(衙前官屬) 문밖에 다 모여서
혀 차고 이르오되, ‘이 사또 감사(監司) 때에
경주 안동(慶州安東) 동래부사(東萊府使) 다 모두 겁(法)을 내고
그 밖 열읍(列邑) 원(員)님네가 꿈적도 못하더니,
이번에 김진사(金進士)는 어떠한 양반(兩班)인지
정사도(正使道)의 위엄(威嚴)으로 휘우지 못하여서
그 말대로 시행(施行)하니, 사납고도 무섭기가
아국(我國)에 없다.’ 하고, 지점(指點)하고 기리는 양
소인(小人)이 쾌(快)하기를 비할 데 없나이다.”
우습고 기괴(奇怪)하여 꾸짖어 물리치고,
방에 누워 생각하니, 내 소범(所犯) 많았으니,
일변(一邊)으로 구연(懼然)하고, 일변(一邊)으로 부끄럽다.
아침에 일어나니, 상방(上房)에서 부르거늘
객사(客舍)로 들어가니, 서기 제술(書記製述) 모였구나.
나아가 문후(問候)하고, 다시 꿇어 여쭈오되,
“어제 일은 광망(狂妄)하와 존비(尊卑)를 모르고서
작죄(作罪) 많이 하였으니, 대죄(待罪)를 하나이다.”
사상(使相)이 하오시되, “이번에 전후(前後) 일은
정의 불부(情誼不附)한 탓이니, 이후는 힘을 써서
상하(上下)가 교면(交勉)하여 그른 일 없게 하세.”
인하여 주진(主鎭)에 가 삼문사(三文士) 오라 하여
의성 기생(義城妓生) 윤매 봉매 중춤[僧舞] 추니 구경하고,
하처(下處)로 돌아오니, 영산(靈山)의 김필순이
금산 행수(金山行首) 무용이가 와 보고 가는구나.
밤에 자고 일어나니 금산 지공(金山支供) 와서 하네.
이십오일(二十五日) 미우(微雨)하되, 우장(雨裝)하고 성(城)에 들어
세 문사(文士) 찾아보니, 양의(良醫)도 거기 왔다.
시온(時韞)의 수청 기생(守廳妓生) 비점의 조카로서
말 잘하고 협기(俠氣) 있어 저희 중에 대기(大妓)로다.
세 사람이 글을 지어 노래로 불려 보니,
불구(不久)에 떠날지라. 애원 강개(哀怨慷慨)하여
장사(壯士)가 충관(衝冠)하고, 행인(行人)이 단장(斷腸)할 때,
남으로 내려온 후 이 놀음 으뜸이다.
내 역시 글을 지어 부채에 써서 주고,
돌아와 자고 깨니, 자인 지공(慈仁支供) 와서 한다.
양선전(梁宣傳) 병을 묻고, 유장흥(柳長興)을 찾아오니,
부방비장(副房裨將) 들어와서 하는 말 들어 보니,
“경주 기생(慶州妓生) 종애란 년 유지의 소면(所眄)으로
자식 역질(子息疫疾) 핑계하고, 도망(逃亡)하여 내려오되,
죽기를 기약(期約)하고, 호혈(虎穴)로 말을 몰아
하룻밤 하룻낮에 이백 리(二百里)를 달려오니,
동경백(東京伯) 대로(大怒)하여 잡으러 군노(軍奴) 왔네.”
이비장(李裨將) 하릴없어 유장흥(柳長興)을 와서 보고,
어쩔까 의논(議論)하니, 유장흥(柳長興) 이른 말이
“이 일을 주선(周旋)할 이 김진사(金進士) 밖 할 이 없네.”
내 생각하여 보니, 제 비록 기생(妓生)이나,
정인(情人)을 보려 하고, 모사(冒死)하고 달려 온 일
그 뜻이 가상(嘉尙)이오. 협기(俠氣)도 있다 하리.
정사상(正使相) 가 보고서, 이 뜻을 다 하오니,
조비장(曺裨將) 불러다가 삼방(三房)에 전갈(傳喝)하되,
“경주부윤(慶州府尹) 친하기는 나보다 나으시니,
계서 편지하오시고, 머물러 두오소서.”
삼방(三房)에서 대답하되, “쾌(快)한 허락(許諾) 아니었거늘
그릇될까 염려(念慮)하여 부방(副房)에 가 도모(圖謀)하고,
삼방(三房)으로 즉시 오니, 종사상(從事相)이 묻자오되,
“상방(上房)에서 전갈(傳喝)한 일 어이 하면 좋을 손가?
이 기생(妓生)의 호협기(豪俠氣)는 쇠세(衰世)에는 드문지라.
이리 좋은 풍류사(風流事)를 성취(成就)를 하오소서.”
종사상(從事相) 내 말 듣고, 경주 노자(慶州奴子) 불러들여
편지(便紙)하고, 전갈(傳喝)하고, 종애를 아니 주니,
비장(裨將) 대락(大樂)하고, 장흥(長興) 기뻐하네.
이십 칠일(二十七日) 흰죽 먹고, 동행 하처(同行下處) 두루 다녀.
홍초관(洪哨官) 둘러보니, 수청기생(守廳妓生) 운월이는
음녀 속공(飮餘宿供)한 것으로 홍초관(洪哨官)을 얻어 만나
온갖 일에 태(態)도 하고, 날마다 밤에 나가
오쟁이만 지우고서 밤늦게야 돌아오되,
홍비장은 전혀 속고, 대혹(大惑)하여 아주 빠져
각읍(各邑)에 얻은 돈을 다 들어 내어 주고,
나 보는데 희롱(戱弄)하고, 홍비장을 많이 치니,
홍비장 두굿거워 아프다고 에라 하니
소견(所見)이 절도(絶倒)하고, 도리어 불쌍하다.
## 권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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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비안지공(比安支供) 차모(茶母) 선애 현신(現身)한다.
임도사(任都事) 와서 보고, 초 켜고 말하더니,
유서민(柳徐閔) 세 비장(裨將)이 미복(微服)하고 가만히 와
창(窓)밖에서 전갈(傳喝)하되, “임도사(任都事) 나으리를
상방(上房)에서 부르신다.” 임도사(任都事) 소리 듣고,
서중화(徐中和)인 줄 사뭇 알고, 대질(大叱)하고 욕(辱)을 하니,
세 사람이 크게 웃고, 방으로 들어와서
조용히 말하다가 밤 깊어 가는구나.
내일은 영천 지공(永川支供) 통인 차모(通引茶母) 현신(現身)한다.
창녕(昌寧) 고을 관속(官屬)들이 상방 지공(上房支供) 하러 와서
열여섯 아전 통인(衙前通引) 열다섯 기생 관비(妓生官婢)
비 맞고 들어와서 뛰놀고 반겨 한다.
창녕 통인(昌寧通引) 하대윤이 숨 없이 급(急)히 와서
간지(簡紙)가 다 진(盡)하니 일 나게 되었다고
가슴 치고 슬피 우니, 불쌍키 가이없네.
팔십 폭 비안 간지(比安簡紙) 내어 주니 좋아한다.
초삼일(初三日) 지공관(支供官)은 삼가(三嘉)라 하는구나.
아침에 왜놈이 와 배 타라 간청(怒請)하되,
우리 나라 사공(沙工)들이 점풍(占風)하고 돌아와서
역풍(逆風)이 나리라고 승선(乘船)을 말라더니,
우후(雨後)에 그 말처럼 과연 역풍(逆風) 나는구나.
왜놈들의 말을 좇아 만일 배를 탔더라면,
낭패(狼狽)를 아니할까, 다행(多幸)도 할세이고.
오늘은 영일 지공(迎日支供) 통인 차모 현신(現身)한다.
순풍(順風)이 분다 하고, 배 타라 영(令)이 났네.
여기 와 오래 묵어 사십 여일(四十餘日) 되었으니,
궁금코 답답(沓沓)터니, 배를 타면 시원하리.
사경(四更)에 밥을 먹고, 선소(船所)로 바로 가니,
일행(一行)이 다 모여서 각각 배로 오르는고.
격군(格軍)의 부모 처자(父母妻子) 다 주어 모여 와서
옷도 잡고 손도 잡고, 통곡(痛哭)하고 떠나는 양(樣)
참혹(慘酷)하고 불쌍하여 차마 못 보리로다.
두 아들 왔더라면, 나도 저러 하리로다.
각방 수청(各房守廳) 기생(妓生)들은 등불 잡고 바자니며,
정인이별(情人離別) 하는 양(樣)과 행중(行中)의 삼방 동행(三房同行)
각각 기생(各各妓生) 붙들고서 차마 못 떠나는 양(樣)
우습고 기괴(奇怪)하다. 그려다가 뵈고 싶어.
안장(鞍裝)과 쓰던 것은 주인 불러 맡기고서.
배에 올라서서 보니, 때 십월(十月) 초육일(初六日)이라.
성두(城頭)가 소삽(蕭颯)하고, 서북풍(西北風)이 매우 분다.
상선포(上船砲) 세 번 놓고, 거정포(去程砲) 한 소리에
배를 다 정돈(整頓)한 후 일시(一時)에 닻을 주니,
천금(千金) 같은 이내 몸이 죽기로 치우치니,
마음이 활발(活潑)하여 걸릴 것이 전혀 없네.
나랏일로 나왔다가 죽은들 어이할꼬.
사나이 세상에 나 아무 일도 못 이루고
처자(妻子)의 손 가운데 골몰(汨沒)하여 지내다가
녹록(碌碌)한 부유(蜉蝣)처럼 심심히 종신(終身)하면,
그 아니 느꺼운가, 이 역시 쾌활(快闊)이로다.
창해(滄海)를 건너가서 부상(扶桑)에 배를 매고,
삼신산(三神山)에 올라가서 불사약(不死藥) 캐어내어
돌아와 사배(四拜)하고, 구중(九重)에 드리오면,
성명(聖明)하신 우리 임금 만수무강(萬壽無疆)하오시면,
이에서 더한 경사(慶事) 또 어디 있단 말고.
신자(臣子)의 직분(職分)이라. 그 아니 좋을쏘냐.
행리(行李)를 정돈(整頓)하고, 배방을 살펴보니,
제일방(第一房)은 종상(從相)이요, 제이방은 내가 들고,
제삼방은 예방비장(禮房裨將) 제사방은 임도사(任都事)요,
제오방은 공방비장(工房裨將) 제육방은 사공(沙工) 드네.
후면(後面)으로 돌아보니, 홍초관(洪哨官) 반적직(盤纏直)이
수역(首譯)과 건량판사(乾糧判事) 각각 한 방 차지하고,
도훈도(都訓導) 기선장(騎船將)들은 한 방에 들었으며
가운데 큰 한 방은 선신(船神)을 위하였고,
말째칸 좁은 방은 왜인(倭人)이 들었구나.
왜사공(倭沙工) 세 놈하고, 금도(禁徒) 하나 통사(通詞) 하나
다섯이 올라와서 온갖 일을 살피는고.
장풍(長風)에 돛을 달고, 육선(六船)이 함께 떠나
삼현(三絃)과 군악(軍樂) 소리 산해(山海)을 진동(振動)하니,
물속의 어룡(魚龍)들이 응당(應當)히 놀라도다.
해구(海口)를 얼른 나서 오륙도(五六島) 뒤 지우고,
고국(故國)을 돌아보니, 야색(夜色)이 창망(滄茫)하여
아무것도 아니 뵈고, 연해(沿海) 각진포(各鎭浦)에
불빛 두어 점이 구름 밖에 뵐만하다.
배방에 누워 있어 내 신세(身勢)를 생각하니,
가뜩이 심란(心亂)한데, 대풍(大風)이 일어나서
태산(泰山) 같은 성난 물결 천지(天地)에 자욱하니,
크나큰 만곡주(萬斛舟)가 나뭇잎 부치이듯
하늘에 올랐다가 지함(地陷)에 내려지니,
열두 발 쌍돛대는 차아(叉椏)처럼 굽어 있고,
쉰두 폭 초석(草席) 돛은 반달처럼 배불렀네.
굵은 우레 잔 벼락은 등[背] 아래서 진동(振動)하고,
성난 고래 동(動)한 용(龍)은 물속에서 희롱(戱弄)하네.
방(房) 속의 요강 타구(尿缸睡具) 자빠지고 엎어지며,
상하좌우(上下左右) 배방널은 잎잎이 우는구나.
이윽고 해 돋거늘 장관(壯觀)을 하여 보세.
일어나 배문(-門) 열고, 문설주 잡고 서서
사면(四面)을 돌아보니, 어와 장(壯)할시고.
인생(人生) 천지간(天地間)에 이런 구경 또 어디 있을꼬.
구만리(九萬里) 우주(宇宙) 속에 큰 물결뿐이로세.
등 뒤로 돌아보니, 동래(東萊) 산이 눈썹 같고,
동남(東南)을 바라보니, 바다가 가이없네.
위아래로 푸른 빛이 하늘 밖에 닿아 있다.
슬프다. 우리 길이 어디로 가는 것인가.
함께 떠난 다섯 배는 간 데를 모를러라.
사면(四面)을 돌아보니, 이따금 물결 속에
부채만한 작은 돛이 들락날락 하는구나.
선중(船中)을 돌아보니 저마다 수질(水疾)하여,
똥물을 다 토(吐)하고, 혼절(昏絶)하여 죽게 앓네.
다행(多幸)할사 종사상(從事相)은 태연(泰然)히 앉았구나.
배방에 도로 들어 눈 감고 누웠더니,
대마도(對馬島) 가깝다고 사공(沙工)이 이르거늘
고쳐 일어나 나와 보니, 십 리(十里)는 남았구나.
왜선(倭船) 십여 척(十餘隻)이 예선차(曳船次)로 모두 와서
그제야 돛을 지우고, 뱃머리에 줄을 매어
왜선(倭船)으로 던져 주니, 왜놈이 줄을 받아
제 배에 매어놓고, 일시(一時)에 내리오니,
선행(船行)이 안온(安穩)하여 좌수포(佐須浦)로 들어가니,
신시(申時)는 하여 있고, 복선(卜船)은 먼저 왔다.
포구(浦口)로 들어가서 좌우를 돌아보니,
봉만(峯巒)이 삭립(削立)하여 경치가 기절(奇絶)하다.
송삼죽백(松杉竹栢) 귤유등감(橘柚橙柑) 다 모두 동청(冬靑)일세.
왜봉행(倭奉行) 여섯 놈이 금도청(禁徒廳)40)에 앉았구나.
인가(人家)가 소조(蕭條)하여 여기 세 집 저기 네 집
합(合)하여 세게 되면, 사오십호(四五十戶) 더 아니라.
집 형상(形狀)이 궁흉(窮凶)하여 노적(露積) 더미 같구나야.
굿 보는 왜인(倭人)들이 산에 앉아 굽어본다.
그 중에 사나이는 머리를 깎았으되,
꼭뒤만 조금 남겨 고추 상투 하였으며,
발 벗고 바지 벗고, 칼 하나씩 차 있으며,
왜녀(倭女)의 치장(治裝)들은 머리는 아니 깎고,
밀기름 듬뿍 발라 뒤로 잡아매어
족두리 모양처럼 둥글게 꾸며 있고,
그 끝은 뒤로 틀러 비녀를 찔렀으며,
무론 노소(毋論老少) 귀천(貴賤) 하고, 얼레빗을 꽂았구나.
의복(衣服)을 보아하니, 무 없는 두루마기
한동단 막은 소매 남녀(男女) 없이 한 가지요.
넓고 큰 접은 띠를 느직이 둘러 띠고,
일용 범백(日用凡百) 온갖 것은 가슴속에 다 품었다.
남편(男便) 있는 계집들은 까마앟게 이를 칠하고,
뒤쪽에 띠를 매고, 과부 처녀(寡婦處女) 갓난애는
앞으로 띠를 매고, 이를 칠하지 않았구나.
외총 낸 고운 짚신 남녀(男女) 없이 신었구나.
비단옷에 성적(成赤)하고, 꼿꼿이 앉았으되,
그 중의 두 계집이 허어연 설면자(雪綿子)로
머리 싸고 앉았거늘 통사(通詞)더러 물어보니,
벼슬 있는 사람들의 처첩(妻妾)이라 하는구나.
부기선(副騎船) 부복선(副卜船)은 해질 때에 들어오되,
일기선(一騎船) 일복선(一卜船)은 초경(初更)에도 아니오니,
염려가 가이없어 사공(沙工)을 탐후(梁候)하니,
비로소 현영(現影)하여 복선(卜船)과 함께 오네.
상부방(上副房) 두 사상(使相)은 수질(水疾)을 않았다네.
기쁘기 측량없어 상부방(上副房)에 급히 가서
배례(拜禮)하고 묻자오니, 상선(上船) 치목(鴟木) 부러져서
이제야 들어오고, 부방(副房)은 더욱 궂겨
두 번을 치절(鴟析)하여 황황(皇惶)히 위태할 때
민명천(閔明川)이 악몽(惡夢) 꾸고, 적삼 벗어 던졌다네.
위경(危境)을 겪었으나, 사백(四百) 팔십 리(八十里)를
무사(無事)히 건너오니, 천행(天幸)이라 하리로다.
이경(二更)에 국서(國書) 모셔 삼사상(三使相)이 한가지로
관소(館所)로 내려가니, 접대(接待)도 가이없네.
왜공(倭供)이 오늘부터 연(連)하여 한다 하네.
배고프고 밤이 드니, 내 배에서 시켜 먹고,
숙공(宿供)을 받아 보니, 녹육(鹿肉) 차어(鯧魚) 총채(蔥菜)하고,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 잡탕(雜湯) 한 기(器) 장 한 종지
또 무엇 드리는고. 큰 접시 하나 속에
대엿 가지 마른 것을 맨 나중에 한 그릇에
조금씩 한데 놓고, 세 번째 드리는 것
가지김치 한 조각과 무우 장아찌로다.
감자를 가로 베어 차례로 와 드리니
돈 같은 세 조각과 귤병(橘餠) 같은 누런 떡을
두 낱씩 놓아 내어 영리한 왜소동(倭小童)이
차례로 와 들이니 보기에 가소(可笑)롭다.
나하고 여섯 비장 한 방(房)에서 함께 자고,
자재시온(子才時韞) 사집(士執)이는 선방(船房)에 가 잔다 하네.
초칠일(初七日) 청명(淸明)하여 배 놓기 좋건마는
수험(搜驗)도 못하였고, 치목(鴟木)도 주변차(周邊次)로
여기서 묵게 되니, 궁금하기 가이없네.
타루(柁樓)에 올라앉아 삼현(三絃)을 크게 치고,
선장(船將) 전악(典樂) 마상재(馬上才)가 일어나 대무(對舞)하니,
무수(無數)한 남녀왜(男女倭)가 배 타고 와 굿을 보네.
영접관(迎接官) 한 사람과 봉행(奉行) 하나 재판(裁判) 둘이
삼사신(三使臣)께 재배(再拜)하니, 사신(使臣)네는 읍(揖)하신다.
부방(副房)에 들어가니, 세 분이 한데 모여
말씀하고 헤어질 때 종사상(從事相)의 뒤를 따라
삼방(三房)으로 들어가니, 임이오홍(任李吳洪) 다 왔구나.
왜놈이 보낸 음식(飮食) 내어놓고 자세히 보니,
네 모진 세 층 합(盒)을 삼목(杉木)으로 만든 것을
삼중(杉重)이라 이름하고, 매 한 층에 두 가지씩
격격(隔隔)이 넣었으니, 합하여 여섯 가지
한 가지는 송풍(松風)이니, 빛 누렇고 산자(饊子) 같고,
유미(油味)라 하는 것은 백강잠(白殭蠶) 형상(形狀)이오.
소춘과(小春菓) 화면떡(畫面餠)떡은 오화당(五花糖) 모양이오.
낙안(落雁) 세 가지는 붉고 희고 누렇구나.
반월형(半月形) 같은 떡과 반룡형(蟠龍形) 같은 과자를
찹쌀가루 설탕 타서 만들었다 하는구나.
갖가지로 먹어 보니, 맛이 달콤하구나야.
열다섯 생복(生鰒)에서 서넛을 얻어내어
벽해수(碧海水)에 삶아내니, 그 맛이 기절(奇絶)하다.
왜놈이 만홀(漫忽) 하여 일공(日供)을 아니 주매,
유영장(柳營將) 오선전(吳宣傳)이 꾸짖고 재촉하니,
내일(來日)로 바쳐지라 손 묶어 애걸(哀乞)하네.
선방(船房)에 와서 자고, 늦게야 일어나니,
내 비파 박한중이 불근(不勤)키 짝 없네.
어제 오늘 조반죽(朝飯粥)을 늦도록 아니 주니,
선상(船上)에 나와 앉아 결태 십도(決笞 十度) 하온 후에
이비장(李裨將)의 방에 가니, 향고직(饗庫直) 태거(汰去)하고
가합(加合)한 이 못 얻거늘 최영래 천거(薦擧)하니,
어려워라 마라 하되, 이놈을 채정(採定)하다.
다섯 동행 쌍륙(雙六) 처서 다승첩(多勝捷) 하온 후에
급급(急急)히 가서(家書) 써서 장계편(狀啓便)에 부치니라.
왜인(倭人)의 오일 지공(支供) 오늘이야 바치는데,
무수(無數)히 조롱하니, 절통키 측량(測量) 없다.
초구일(初九日) 새벽 비에 뜸 치느라 잠을 깨니,
풍세(風勢)가 불순(不順)하여 또 묵으니 민망(憫惘)하다.
초십일(初十日) 비 개고서 월색(月色)이 정조(情調)커늘
타루(柁樓)에 올라앉아 진주 공인(晉州工人) 불러다가
삼현(三絃)을 크게 치고 객수(客愁)를 소견(消遣)터니
비장들 나와 하되, 사상(使相)이 들으시고,
웃으시고 하오시되, 김진사(金進士)의 풍류(風流)하기
늙어도 쇠(衰)치 않으니, 기특(奇特)다 하신다네.
전악(典樂)이 저[笛]를 불고, 선장(船將)이 병곡(竝曲)하여
새도록 즐기다가 계명(鷄鳴)에 취침(就寢)하다.
십일일(十一日) 청명(淸明)커늘 육선(六船)이 노역(櫓役)하여
포구(浦口)로 나오면서 조선(朝鮮)을 바라보니,
역력(歷歷)히 다 뵈는고, 반갑기도 반가울사.
왼편에 바다 끼고, 오른편에 산을 끼고,
혹선 혹후(或先或後)하여 돛 달고 나아가니,
밀물과 바람결이 사납고 거슬려서
갈 길이 전혀 없어 일기선(一騎船) 방포(放砲)하고,
대포(大浦)로 들어가니, 다섯 배 뒤를 따라
만회(濟回) 굴곡(屈曲) 하여 육칠 리(六七里)나 들어가니,
인가(人家)는 사오 호(戶)요, 빈잔(貧殘)이 참혹하다.
배 위에 앉았다가 왜놈들을 만나보고,
성명을 물어보니, 질화도순길 일세
여기서 부중(府中)까지 얼만가 물어보니,
육로(陸路)는 이백 리(二百聖)요. 수로(水路)는 더 멀다네.
선창(船艙)이 험(險)하기에 상부방(上副房) 못 다니고,
홍초관(洪哨官)과 사방(使房)에 가 쌍륙(雙六)치고 돌아오니,
오선전(吳宣傳) 와서 보고, 밤든 후 돌아가네.
십이일(十二日) 풍우(風雨)하여 못 가고 묵게 되니,
식후(食後)에 상방(上房)에 가 사상(使相)네께 잠깐 뵙고,
동행(同行)들 찾아보고, 내 방으로 돌아와서
임도사(任道使) 홍비장(洪裨將) 장기(將棋)로 소일(消日)하다.
십삼일(十三日) 역풍(逆風)으로 또 묵으니 심란하다.
삼선(三船)으로 두루 다녀 장기 쌍륙(將棋雙六) 소일(消日)하고,
저녁에 비 갠 후에 달빛이 매우 좋아
가국(家國)을 생각하니, 객수(客愁)가 더욱 깊다.
십사일(十四日) 닭 울 때에 대풍(大風)하고 우박(雨雹)하여
흉흉(洶洶)히 성난 물결 산처럼 일어나니,
육선(六船)이 진탕(振盪)하여 다 서로 부딪히고,
뱃줄이 끊어지니, 뭇 배의 격군(格軍)들이
소리치고 구원(救援)하여 다른 줄로 처매 때
배방이 일렁이어 잠 한숨을 어이 자리.
아침에 일어나서 동행(同行)을 만나보고,
위태(危殆)코 무섭던 줄 서로 치위(致慰)하는구나.
왜공(倭供)은 아니 주고, 오늘도 또 묵으니
궁금하고 심란(心亂)하기 한 붓에 다할쏘냐.
오늘은 보름이라 망궐례(望闕禮) 사배(四拜)하고,
삼선(三船)에 두루 다녀 각각(各各) 문후(問候) 잠깐 하니,
왜사공(倭沙工) 와서 하되, 비록 바람 아니 부나
물결이 사나워 못 가리라 하는구나.
도중(島中)이 토박(土薄)하여 생리(生利)가 가난하니
효자토란(孝子土蘭) 심어두고, 그로 구황(救荒) 한다커늘
쌀 서 되 보내어서 사다가 쪄 먹으니,
모양은 하수오(何首烏)요, 그 맛은 극히 좋다.
마[薯]같이 무르지만, 달기는 더 낫도다.
이 씨를 내어다가 아국(我國)에 심어두고,
가난(家難)한 백성(百姓)들을 흉년(凶年)에 먹게 하면,
참으로 좋겠으되, 시절(時節)이 통한(痛寒)하여
가져가기 어려우니, 취종(取種)을 어이 하리.
비 개고 달이 밝아 야경(夜景)이 기특(奇特) 커늘
종사상(從事相) 모시고서 임이오홍(任李吳洪) 네 비장과
판옥(板屋)에 올라앉아 사면(四面)을 돌아보니,
건곤(乾坤)은 요략(寥落)하여 한 점 구름 전혀 없고,
만산(萬山)은 여하(如何)하여 한 편에 둘려 있고,
수파(水波)는 불흥(不興)하여 기름처럼 고였는데,
이따금 큰 고기가 물속에 뛰노는구나.
신세(身勢)는 일평(一萍)이오. 고국(故國)은 천 리로다.
오늘 밤에 여기 와서 이리 놀 줄 어이 알리.
세상에 모를 것은 사나이 일이로다.
십육일(十六日) 풍우(風雨)하여 또 못 가게 되니,
상선(上船)의 이강령(李康翎)과 장기(將棋) 세 번 이기오니
정상(正相)이 기리시고, 부채 하나 상(賞)을 주네.
십칠일(十七日) 순풍(順風) 부나, 정상(正相)이 병(病)이 있고,
부상(副相)도 자저(趑趄)하여 좋은 바람 허송(虛送)하니,
애닲고 심심하여 여러 동행(同行) 데리고서
왜선(倭船) 한 척 빌어 타고, 중류(中流)하여 풍류(風流)하고,
예가 보고 제 가 보니, 왜인(倭人)들이 막는구나.
오늘이야 오일 지공(五日支供)을 비로소 가져오나,
찬물(饌物)은 아니 주고, 다만 쌀만 주는구나.
십팔일(十八日) 종사상(從事相)과 식전(食前)에 쌍륙(雙六)치고,
상선(上船)에 가 세 문사(文士)로 원로시(遠路詩) 차운(次韻)하니.
정상(正相)이 보오시고, 지필묵(紙筆墨) 상(賞)을 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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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구일(十九日) 서북풍(西北風)에 비로소 돛을 달고,
육선(六船)이 차례로써 악포(鰐浦)를 지나오니,
병풍(屛風) 같은 험(險)한 바위 울산부터 여기까지
오백 리(五百里)를 가로막아 물속에 숨어 있고,
배 한 척 지날 만큼 한 곳이 터졌으니,
만일 조금 그릇하면, 경각(頃刻)에 파선(破船)하매,
왜놈이 두 척 배를 두 편에 벌려 서서
뱃길을 내어놓고, 그 사이로 가라 하니,
구당(瞿塘)과 염려퇴(灩澦堆)들 이에서 더 험(險)할 손가.
여섯 배 조심하여 차례로 넘어갈 때
물결이 사나워서 설산(雪山)이 일어서니,
배가 못 견디어 틀리어 틈을 내네.
위태(危殆)하고 황공(惶恐)하여 비할 데 전혀 없다.
거기를 넘어서니, 긴 숨이 나는구나.
바람이 사나워서 서박포(西泊浦)로 들어가니,
인가(人家)는 수삼호(數三戶)요. 경치(景致)도 기절(奇節하다.
역관(譯官)이 마을 뒤에 서복사(西福寺)가 있다커늘
두어 동행(同行) 데리고서 구경차로 올라갈새,
총울(蔥鬱)한 초목(草木) 속에 수십 층 석계(石階) 올라
문 열고 앉아 보니, 계정(溪亭)이 소쇄(瀟灑)하여,
화초(花草)가 기이(奇異)하여 크나큰 동백(冬柏)나무
붉은 꽃 만발(滿發)하고 열 길이나 높았으며,
종려자단(棕櫚紫檀) 노송감자(老松柑子) 좌우에 둘러 있고
영산홍(暎山紅) 남천화(南天花)는 난만(爛漫)히 피어 있고,
그밖에 기화이초(奇花異草) 무수(無數)히 둘렸으며,
때 비록 겨울이나 예가 홀로 봄이로다.
절 뒤의 온 산 나무 모두가 춘백(春栢)일세.
절 집이 삼간(三間)인데, 등메를 듬뿍 깔고,
상탁(宋卓)이 정결(淨潔) 하여 티끌 하나 없구나야.
자그마한 법당(法堂) 속에 금부처[金佛] 셋이 있네.
안계(眼界)를 굽어보니, 바다가 호수(湖水) 되어
대 수풀 속으로써 은영(隱映)하여 뵈는구나.
아국(我國)에 있게 되면, 절승(絶勝)타 하리로다.
중의 모양 보아하니, 머리를 다 깎고서
아무 것도 아니 쓰고, 천릭(天翼) 같은 검은 옷을
담뿍이 입어 있고 가사(袈裟)를 메었으되,
뼈로 만든 흰 고리를 가슴에 달고 있다.
저물도록 해풍(海風) 쏘여 두통(頭痛)이 심하기에
저녁밥 끓여 먹고, 배방에 누었더니,
어두운 후 비가 오니, 심란(心亂)키 가이없다.
이십일(二十日) 서풍(西風) 불매 서박포(西泊浦) 묵게 되니,
삼사상(三使相)이 서복사(西福寺) 가 종일토록 완경(玩景)하되,
나는 몸이 심히 아파 조리(調理)하고 누었어라.
이십일일(二十一日) 조반(朝飯)터니 유한상(劉漢祥) 와서 보고,
정기산(精氣散) 먹으라매 세 첩 지어 한 복 먹다.
태풍(颱風)이 불리라고 재판(裁判)이 저히더니
과연 황혼(黃昏) 때에 비 오고 바람 분다.
감자(柑子)와 건고도리(乾古道魚) 왜놈이 드리오니,
종상(從相)이 나누실 때 내게도 보내었다.
이십이일(二十二日) 종일 대풍(終日大風) 배가 못 가고 병 들어
배방에 들어 누워 두시(杜詩)를 차운(次韻)하니,
종상(從相)도 감기(感氣) 얻어 끓인 밥 하신다네.
이십삼일(二十三日) 병(病)이 나아 삼선(三船)으로 두루 다녀
왜놈은 가자 하되, 일선(一船) 사공(沙工) 막는구나.
내 병(病) 들고 위박(危迫)한 줄 정상(正相)이 들으시고,
상(傷)할까 염려(念)하사 양피옷(羊皮-) 보내었네.
염사일(念四日) 풍역(風逆)하여 또 못 가니 답답하다.
유영장(柳營將) 병이 들어 서복사(西福寺)서 조리(調理)하네.
염오일(念五日) 배를 타고, 채복군(採鰒軍) 데리고서
풍류(風流) 치고 포구(浦口)에 가 생복(生鰒) 잡아 회(膾)를 먹고,
대풍(大風)이 많이 부니, 선방(船房)으로 돌아와서
민명천(閔明川) 병(病)을 묻고, 유시(酉時)에 방(房)에 가니,
약과 홍시(藥菓紅柹) 먹이거늘, 유영장(柳營將) 보러 가니,
일행(一行) 제인(諸人)들이 많이 와 앉았구나.
돌아와 밥을 먹고, 또 다시 올라가서
밤 깊도록 말하다가 돌아와 자고 깨니,
이 날은 염육(念六)이라. 천명(天明)에 배를 타니,
풍조(風潮)가 구역(俱逆) 하기 돛 지우고 노역(櫓役)하여
금포(琴浦) 와 배를 대니, 육십 리(六十里)를 겨우 왔다.
정종방(正從房) 기복선(騎卜船)은 포북(浦北)에 닻을 주고,
부방(副房)의 기복선(騎卜船)은 포남(浦南)에 닿았으니.
그 사이 매우 멀어 왕래(往來)할 길 전혀 없다.
수십 여호(數十餘戶) 마을 앞에 어망(漁網)을 덮었으니,
밑은 검고 길이 길어 몇 발인 줄 모르겠다.
저녁에 비선편(飛船便)에 서울 기별(奇別) 들어 보니,
가국(家國)이 무사(無事)하니, 기쁘기 가이없으나,
회서 기별(回書奇別) 못 들으니, 궁금하기 측량 없다.
염칠일(金七日) 북풍(北風)부니, 효두(曉頭)에 발선(發船)하여
방포압뢰(芳浦鴨瀨) 흑도(黑島) 지나, 선두포(船頭浦) 저만 보고,
부중(府中)으로 들어갈새 좌편(左便)을 돌아보니,
천해(天海)가 망망하여 넓기가 가이없고,
우편(右便)을 돌아보니, 기암(奇巖)과 괴석(怪石)들이
굽이굽이 절승(絶勝)하여 응접 불가(應接不可) 하리로다.
삼현(三絃) 치고 닻 지우고, 포구(浦口)로 들어가니,
도주(島主)와 정암승(酊庵僧)이 배 타고 나와 맞네.
도주(島主)의 배를 보니, 오색 비단(五色) 장막 모양(帳幕模樣)
묘상각(墓上閣) 모양이요, 기(旗)와 독(纛)과 창(槍)과 총(銃)을
어지럽게 꽂은 속에 피 같은 성성전(猩猩氈)을
교의(交椅)에 걸치고서 그 위에 앉았으며,
이정승(以酊僧)의 배를 보니, 붉은 일산(日傘) 꽂았는데,
다홍 대단(茶紅大緞) 옷을 입고, 평상(平床)에 앉았다가
사신(使臣)이 들어가니, 일시(一時)에 일어나서
두 번씩 읍(揖)하니, 사상(使相)네도 답읍(答揖)하네.
두 편에 굿 보는 이 남녀노소(男女老少) 귀천(貴賤) 없이
언덕에 매어 있고, 바위에 묶었으며
배도 타고 와서 보니, 그 수를 어이 알리.
사신(使臣)네 계실 데를 서산사(西山寺)로 정하였다.
부치(府治)가 터가 좁아 들 하나도 전혀 없다.
언정(堰庭)을 싸 올리며, 바위에 의지(依支)하여
제비집 붙여 짓듯 집들이 달리었다.
저녁에 밥을 먹고, 서산사(西山寺)로 올라가니,
삼사신(三使臣) 계신 방이 한간씩 격(隔)지 두어
바다를 임하여서 경치(景致)가 기특(奇特)하다.
선창(船艙)을 쌓아올려 배를 매었으니,
안온(安穩)하고 기절(奇絶)하여 진실로 관방(關防)이라.
우리 넷 있을 데는 맨 가의 북편(北便)이라.
밤 든 후에 숙공(宿供)하니, 옻칠한 세 상(床) 위에
서너 기(器)씩 놓았으니, 먹을 것 전혀 없다.
나중에 들이는 것 떡 같은 유(類)로구나.
방마다 구들 없어 다 모두 마루방에
다다미를 듬뿍 깔고, 바람벽은 아니하고,
사면(四面)에 밀장지로 바람을 막았으며,
그 안에 금병풍(金屛風)을 육첩(六帖)을 처 있으며,
벼루 필묵(筆墨) 종이 붓과 촛대 화로(火爐) 담뱃대를
다 새로 만들어서 다 각각 놓았으며,
비단 이불 비단 요를 사람 수(數)로 들이는데,
이불은 소매 있어 설면자(雪綿子)로 위에 두어
두껍기 측량(測量)없고, 요 모양(模樣)은 많이 넓어
이불처럼 크다 하고, 솜들을 장히 두어
안팎이 다 비단이 각색(各色) 빛이 다 있구나.
사신(使臣)네 이불 요는 대단(大緞)으로 하였으며,
격군(格軍)과 노자(奴子)들은 무명으로 하였으며,
그 값을 헤어 보면, 은(銀) 수 천 냥(兩) 준다 하네.
판옥(板屋)이 소랭(蕭冷)하여 잠자기 어렵도다.
역관(譯官)들 곁에 들어, 무슨 말 의논(議論)하는지
새도록 요란하니, 괴롭기 측량(測量) 없다.
이튿날 소세(梳洗)하고, 사방(使房)에 들어가니,
삼사신(三使臣) 한 데 모여 삼현(三絃)을 장(壯)히 치고,
소동(小童)으로 대무(對舞)하며, 재인(才人)으로 덕담(德談)하고,
줄 걸리고 재주 시켜 종일(終日)토록 단란(團樂)하니,
왜놈들 구경하고, 기특(奇特)고 장(壯)히 여겨
서로 보고 지저귀며 입 벌리고 책책(噴噴)한다.
도박 장기(賭博將棋) 내일 하며 가서(家書) 써 부치고서
거처(居處)가 소냉(蕭冷)하여 배방으로 나오려니,
삼문사(三文士) 만류키에 초 켜고 앉았더니,
격벽(隔壁)의 민명천(閔明川)이 양의(良醫) 하고 함께 와서
삼현(三絃) 치고 놀다가서 밤 깊어서 가는구나.
염구일(念九日) 조반(朝飯) 후에 민명천(閔明川) 보러 가니,
처지(處地)가 고상(高尙)하고, 안계(眼界)가 광활하며,
헌창(軒窓)이 소쇄(瀟灑)하되, 화목(花木)이 총울(蔥鬱)하여
하처(下處)로 의논(議論)하면, 일행중(一行中) 제일(第一)이라.
부복선장(副卜船將) 김진원(金進元)이 좌수포(佐須浦) 있을 때에
배 구멍 낙상(落傷)하여 병(病) 들어 누었더니,
오늘 예 와 객사(客死)하니, 참혹(慘酷)함도 참혹할사.
초일일(初一日) 청(淸)하거늘 망궐례(望闕禮) 새벽 하고,
사방(使房)에 잠깐 다녀 하처(下處)로 돌아오니,
이정암(以酊庵) 삼사신(三使臣)께 찬합(饌盒) 일비(一備) 드리시되,
이름은 아니 쓰고, 별호(別號) 도서(圖書) 쳐 왔기에
불경(不敬)타고 도로 주니, 고쳐 이름 써 왔으되,
그제야 받고 보니, 이름이 용방(龍芳)이다.
술관(製述官) 서기(書記)들과 삼수역(三首譯) 삼판사(三判事)께
각각 예물(禮物) 하였으되, 증루(贈漏)라 하였기에
아니 받고 도로 주니, 증유(贈遺)라 고쳤으나,
무례(無禮)키 한 가지매, 또 다시 내어 주니,
세 번째 고쳤는데, 도서(圖書)는 아니 치고,
계암 별호(桂巖別號) 써 왔으니, 그제야 받은 뒤에
우리도 저와 같이 서너 가지 답례(答禮)하고,
별호(別號) 써 보낸 후에 제 예물(禮物) 떼어 보니,
남초(南草) 스무 봉과 선자(扇子) 넷이로다.
일행(一行)들 나눠 주니, 다 좋아하는구나.
초이일(初二日) 청명(晴明)하고, 서산사(西山寺)서 묵느니라.
공인(工人) 두 놈 격군(格軍)들이 병(病) 들어 못 가기에
김진원(金進元)의 관(棺) 가는데, 동래(東萊)로 보내니라.
봉행(奉行) 셋이 먼저 와서 삼사신(三使臣)께 청알(請謁)하니,
와룡관(臥龍冠) 학창의(鶴氅衣)로 삼중석(三重席)에 앉았으니,
군관(軍官)들 군복(軍服)하고, 좌우에 배립(排立)하니,
봉행(奉行)이 들어와서 공순히 배례(拜禮)하니,
사신(使臣)네 일어서서 두 번을 답읍(答揖)하고,
차담상(茶啖床) 다 먹인 뒤에 재배(再拜)하고 나가고서
대마도주(對馬島主) 평의창(平義暢)과 이정암(以酊庵) 용방(龍芳)이와
서산장로(西山長老) 와서 뵈되, 입고 쓴 것 괴이(怪異)하다.
도주(島主)가 썼는 것은 사모 형상(紗帽形狀) 같았으나,
모자(帽子)는 매우 작고, 뿔 하나 꽂았으되,
언월형(偃月形) 모양으로 꼭뒤에 드리웠고,
이정암(以酊庵) 썼는 것은 파리머리 같았는데,
세 면(面)으로 드림하여 투구처럼 드리우고,
홍금 가사(紅金袈裟) 곱게 지어 담뿍이 입었으며,
서산장로(西山長老) 썼는 것은 더구나 괴이(怪異)하여
모양(模樣)은 휘항(揮項) 같고, 두 뿔이 뾰족하여
괴기(怪奇)처럼 일어서고, 뿔 하나는 앞에 있다.
사상(使相)네와 상읍(相揖)하고, 자리에 앉은 후에
삼차(蔘茶) 한 잔 먹이고서 차담을 들이오되,
사상(使相)과 도주(島主) 장로(長老) 좌우 곁상 갖추었고,
서산(西山) 장로(長老)에게 다만 한 상 주온 뒤에
사상(使相)네 저(著)를 들어먹기를 권(勸)하오니,
삼인(三人)이 저(著)를 들어 두세 번 집어먹고,
놓았던 데 저(著) 놓으니, 삼다(蔘茶) 세 순(巡) 들이고서
사상(使相) 네 순순(巡巡)마다 저(著) 들면 저도 든다.
도주(島主)가 앉은 뒤에 사모(紗帽) 쓴 놈 셋이 앉고,
두 장로(長老) 앉은 뒤에 상좌(上佐) 셋씩 앉았구나.
왜봉행(倭奉行)과 최수역(崔首譯)이 피차 전어(彼此傳語) 서로 한다.
파하여 돌아간 뒤 우리도 돌아왔네.
저녁밥 먹을 때에 유영장(柳營將) 병이 나아
소세(梳洗)하고 나왔으니, 기쁘고 다행하다.
무진년(戊辰年) 일기(日記) 보니, 기국서(紀國瑞)라 하는 놈이
별호(別號)는 난암(蘭庵)이요, 우삼동(雨森東)의 제자로서
음흉(陰凶)하고 불량(不良)하여 해로운 일 많다더니,
일학(一學)이라 이름 고쳐 부산(釜山)서 떠나올 때
도선주(都船主)로 나왔다가 예까지 나왔더니,
호행대차(護行對次) 퇴거(退去) 때에 간사관(幹事官)을 제가(除加)하여
우리와 가게 되니, 근심이 적지 아니해
재판(裁判)과 한 가지로 우리를 와서 보되,
키 크고 글 잘하고, 삼국어(三國語)를 다한다네.
얼굴이 검푸르러 소견(所見)이 흉참(凶慘)하다.
초삼일(初三日) 대마도주(對馬島主) 재판(裁判)을 보내어서
수역(音譯)에게 청(請)을 하고, 우리를 보자 하되,
기해년(己亥年) 사행(使行) 때에 배례 절차(拜禮節次) 다투어서
이 본 일 없는 고로 칭병(稱病)하고 아니 가니,
이정암(以酊庵) 글 보내고, 차운(次韻)하여 달라 하되,
율시(律詩) 하나 절구(絶句) 하나 와운산인(臥雲山人) 도서(圖書) 쳤네.
화답(和答)하여 보낸 뒤에 사방(使房)에 들어가니,
칠율(七律) 세 수 지어다가 삼사신(三使臣)께 들이고서
차운(次韻)하여 달라 하되, 사사(使事)를 하기 전은
창화(唱和)를 못하노라, 아니 지어 주었구나.
서중화(徐中和) 유영장(柳營將)이 곁방에 와서 드니,
주야(晝夜)로 단란(團樂)하여 마음이 든든하다.
초사일(初四日) 사방(使房) 가니, 사상(使相) 심심하여
촉한(蜀漢) 때 인물(人物)로 일행(一行)을 비교(比較)할 때
장완(蔣琬)으로 날 비(比)하고, 시온(時韞)은 장송(張松)이오.
자재(子才)는 비위(費緯)라고 사집(士執)은 범증(范增)이오.
민명천(閔明川)은 관우(關羽) 같고, 김영장(金營將)은 장비(張飛)로다.
서중화(徐中和)는 자룡(子龍)이오 이강령(李康翎)은 마초(馬超)라고
이매(李梅)는 황충(黃忠)이오 유영장(柳營將)은 향총(向寵)이오.
임도사(任都事)는 마대(馬垈)라고 오선전(吳宣傳)은 왕평(王平)이오.
조도사(曺都事)는 위연(魏延)이오 양선전(深宣傳)은 마양(馬良)이오.
홍초관(洪哨官)은 미축(穈築)이오 이마(理馬)는 주창(周倉)일세.
이좌국(李佐國)은 양의(良醫)고로 양의(楊儀)라 이름하고,
권기(權琦)는 총명(聰明)타고 유기(劉基)라 하는구나.
일장(一場)이 대소(大笑)하고, 사처(私處)로 돌아와서
왕유 궁사(王維宮詞) 열두 수를 삼료(三僚)로 차운(次韻)하다.
초오일(初五日) 정사상(正使相)이 쌀 두 섬 동여 놓고,
일행(一行) 제인 중(諸人中)에 아무나 들라 하니
아무도 못 들고서 장사군관(壯士軍官) 조만호(曺萬戶)가
땅 띠움을 겨우 하니, 그 쌀을 상(賞)을 주네.
왜놈들 모두 보니, 피연(疲軟)키 막심(莫甚)하다.
남편(南便) 쪽 언덕 위에 해산사(海山寺)가 있다커늘
삼방(三房)의 제인(諸人)들로 삼현(三絃)을 앞세우고,
구경하고 내려가니, 두 솔 바탕 겨우 하다.
술집과 면방(麵房) 싸전[米] 좌우에 벌였는데,
깊이 있는 왜녀(倭女)들이 풍류(風流) 듣고 다 나오네.
길가 집 한 계집이 문 열고 베를 짜되,
베틀 연장 온갖 것이 조선(朝鮮)과 한 가지다.
층층(層層)한 돌층계(層階)를 매우 높게 올라가니,
대문 중문(大門中門) 들어가서 절에 올라 보아 하니
방사(房舍)도 광활(廣閣)하고, 화초(花草)도 기묘(奇妙)하다.
금(金) 칠한 부처 하나 북벽(北壁)에 앉혀 있고,
동편(東便)의 한 집 속에 도민(島民)들의 부모 신패(神牌)
두루 벌여 앉혔으되, 영(影) 지게 옻칠하고,
금(金)으로 장식(裝飾)하여 축(柷)도 같고, 신주(神主) 같다.
북편(北便)의 작은 문(門)을 단단히 잠갔거늘
왜통사(倭通詞)를 달래어서 문(門)을 열고 들어가니,
중 하나 앉았으되, 기골(氣骨)이 청수(淸秀)하다.
필묵(筆墨)을 달라 하여 필담(筆談)으로 문답(問答)하니,
다과(茶菓) 내어 먹이고서 글씨를 구하거늘
조생원(趙生員)의 큰 붓 얻어 여남은 장 써서 주고,
오던 길로 도로 나와 광청사(光淸寺) 둘러보니,
경개(景槪)가 절승(絶勝)하여 해안사(海岸寺)에 비하면은
산빛과 바다 경(景)이 많이 낫다 하리로다.
남루(南樓)에 올라앉아 종일토록 조망(眺望)하니
이역(異域)의 손의 근심 저기 잠깐 잊을로다.
임도사(任都事) 병을 묻고, 삼문사(文士) 데리고서
유우석(劉禹錫)의 죽지사(竹枝詞)를 십칠 수 차운(次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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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육일(初六日) 조반(朝飯)하고 사방(使房)에 올라가니,
도주(島主)가 문안사(問安使)를 일찍이 보내었다.
또 사자(使者) 보내어서 사신(使臣)네를 청하오니,
위의(威儀)를 갖추어서 삼사신(三使臣)이 가오실새,
구십오 필(九十五匹) 안장말[鞍裝馬]을 도주(島主)가 보내었네.
삼방(三房)의 상종하관(上從下官) 다 말을 태우시며,
양의(良醫)와 삼수역(三首譯)은 가마를 태웠는데,
그 가마 모양 보니, 위에는 옻칠하여
지붕 마루처럼 나무로 하였으며,
사면(四面)은 흰 돛처럼 마치 맞게 베어내어
나무 조각 대고서 못 박아 꾸몄으며,
왼녘으로 밀창(-窓)하여 그리로 들게 하고,
앞과 오른편은 사(紗) 바른 밀창 내고,
등(藤)으로 네모 얽어 아래위를 도리고서
아래채는 아니하고, 길이로 마루 위에
옻칠한 긴 나무를 붙박이로 얹어놓고,
두 놈이 메고 가니, 멜 통과 마치 같다.
우리는 아니 가고 하처(下處)로 돌아와서
격군(格軍) 네 놈으로 흰떡을 치더니,
왜놈의 아이들이 울 틈으로 엿보고는
상관(上官)을 부르면서 빌면서 달라 하거늘,
조금씩 나눠 주니, 뛰놀며 좋아한다.
전어관(傳語官) 승칠(勝七) 이가 들어와 뵈옵는데,
위인(爲人)이 신실(信實)하여 간사(奸詐)치 아니커늘,
전모(煎牟)를 먹게 주니, 조금 떼어 먹어보고,
품에서 종이 내어 싸가지고 나가더니,
저녁에 또 오는데, 제 겨레 이길(伊吉)이를
밥 들이고 들어와서 먹으라 권하거늘,
식후(食後)기에 배가 불러 못 먹겠다 사양(辭讓)하니,
우리가 독(毒) 있다고 아니 먹는 줄로 알고,
제가 조금 맛을 보고, 간절(懇切)히 권하거늘,
인정(人情)에 걸리어서 서너 술씩 맛을 보니,
네 가지 반찬(飯撰)들이 맛이 퍽 무던하다.
화전(華箋)으로 답례(答禮)하니, 치사(致謝)하고 돌아간다.
초경량(初更量)에 사신(使臣)네가 취타(吹打)하고 오시거늘,
즉시 가 뵈옵고서 연향절차(宴饗節次) 묻자오니,
사상(使相)네 하오시되, “연로(沿路)에 굿 보는 이
그 수가 무수(無數)하고, 좌우(左右)에 시정(市井)들이
번화(繁華)키 극진(極盡)하고, 부중(府中)에 들어갈 때
대문에 이르러서 말 탄 이 말 내리고,
제이문(第二門)에 이르러서 가마 탄 이 다 내리고,
셋째 문(門)에 다다라서 사신(使臣)네 남여(藍與) 내려
도주(島主)가 나와 맞는데, 각각 도로(道路) 인도(引導)하여
여러 굽이 들어가서 정청(政廳)에 올라가니,
도주(島主) 장로(長老) 복색(服色)들이 저 때와 한 가지였네.
객동(客東) 주서(主西)하여 상대(相對)하여 앉은 뒤에
군관(軍官) 원역(員役)들이 뵌 대로 재배(再拜)하니,
도주(島主)는 보지 않고, 응연(凝然) 부동(不動)하네.
기해(己亥) 무진(戊辰)년에 도주(島主)가 괘씸하여
남편(南便)으로 비껴 앉아 절을 받는 고로
그때에 다투어서 언약(言約)을 하였기에
이번은 의창(義暢) 이가 그리 아니하는구나.”
공연(供宴)을 하올 때는 사신(使臣)네 시복(試服)하고,
구작구미(九嚼九味) 마친 뒤에 와룡관(臥龍冠) 난삼(襴衫)으로
사연(使宴)을 받으시니, 도주(島主)는 관복(冠服) 벗고,
나와서 대좌(對坐)하니, 범왜(凡倭)와 한 가지다.
술 대신에 차를 들여 구작구미(九嚼九味) 또 하는데,
송백 매화(松柏梅花) 가화초(假花草)를 색색(色色)으로 들이오되,
먼저 든 것 내어놓고, 새것 다시 들여온다.
찬품(饌品)은 숙공(宿供) 같고, 복색(服色)은 정묘(精妙)하여
창벽(窓壁)과 기둥들이 금(金)으로 장식(裝飾)하고,
도주(島主)의 채녀(采女)들은 머리를 풀어내서
왜(倭) 밀기름 많이 발라 꼭뒤로 내리쳤네.
군관(軍官) 역관(譯官) 중관(衆官)들이 다 각각 자리로 가
따라간 전어관(傳語官)들 음식을 빌어먹고,
혹 어떤 몹쓸 놈은 위격(違格)으로 앗아가니,
염치(廉恥)가 도상(都要)하고, 기강(紀綱)이 전혀 없네.
좌우편(左右便) 월랑(月廊) 속에 백여 자루 조총(鳥銃) 놓고,
위의(威儀)와 집물(什物)들이 심(甚)히 간난(艱難)하여 뵈고,
그 밖에 뵈는 것들 장려(壯)한 것 없는 것을
전(前) 사람 일기(日記)들이 과장인 줄 알만 했다.
유영장(柳營將) 문답(問答)할 때 절 아니 하다 하네.
임도사(任都事) 이강령(李康翎)과 우리 넷이 못 갔기에
여섯 사람 나눠 먹게 삼중(杉重) 둘 보내었네.
밤늦도록 말하다가 닭 운 뒤 취침(就寢)하다.
초칠일(初七日) 미우(微雨)하고, 서산사(西山寺)서 머물렀다.
초팔일(初八日) 풍우(風雨)하매, 네 문사(文士) 사방(使房) 가니,
정사상(正使相) 설찬(設饌)하여 동행(同行)들 다 먹이고,
삼현(三絃) 치고 즐기다가 숙소(宿所)로 돌아와서
남산시(南山詩) 차운(次韻)하여 대해연구(大海聯句) 짓고 자다.
초구일(初九日) 사례관(謝禮官)을 도주(島主)와 봉행(奉行)에게
전례(前例)대로 보내오니, 구도주(舊島主) 말 보내되,
무진년(戊辰年) 사행(使行) 때에 인삼(人蔘)을 주었으니,
이번도 달라 하니, 서근 반[三斤半] 보내었다.
장문창(張文昌)의 절구시(絶句詩)를 이십 수 차운(次韻) 하니,
밤이 퍽 깊었거늘, 삼료(三僚)로 함께 자다.
초십일(初十日) 청명(淸明)하니, 승선 택일(乘船擇日) 오늘인데,
도주(島主)가 저녁때에 배 탔다가 도로 가니,
풍도(風濤)도 험하기에 발선(發船)을 못하였다.
십일일(十一日) 십이일(十二日)은 풍세(風勢)도 좋건마는
도주(島主)가 아니 가니, 하릴없이 앉았더니,
오후(午後)에 삼사상(三使相)이 국서(國書)를 모시고서
승선(船)한다 영(令)이 나니, 우리 배로 가서
뱃머리에 서서 보니, 각선(各船)으로 오르신다.
밤 든 후 마도주(馬島主)가 또한 배를 탄다 하네.
십삼일(十三日) 진시량(辰時量)에 비로소 발선(發船)할 때
도주(島主)가 앞에 서고, 육선(六船)이 차례로다.
포구(浦口)를 겨우 나니 서풍(西風)이 많이 불어
배 가기 심히 빨라 물결을 헤치고서
나는 듯 달아나니 바람과 물소리는
천지(天地)가 진동(震動)하고 하늘을 돌아보니,
햇빛과 구름 덩이 뒤로 닿는구나.
배방이 진탕(震盪)하여 이리 눕고 저리 눕고
돛대가 움직이며 우두둑 하는 소리
하 끔찍 놀라우니, 혼백(魂魄)이 위태하다.
선중의 사람들이 다 모두 구토(嘔吐)하고,
다만 하나 도사공(都沙工)이 치만 잡고 앉았으니,
염라국(閻邏國) 십왕전(十王殿)이 널 하나만 가렸구나.
슬프다, 죽고 살기 호흡(呼吸)에 달렸더니,
다행(多幸)히 미시량(未時量)에 일기도(壹岐島) 풍본포(風本浦)에
닻 주고 배 대이니, 이제는 살았도다.
오백 리 큰 바다를 세 시(時)만에 들어오니,
왕령(王靈)이 도운 바라 하늘이라 하리로다.
위태할 손 일기선(一騎船)이 삼십 리 못 나와서
한 아름 구목치(枸木鴟)가 풍도(風濤)에 부러지니,
배가 기울어져 물속에 들락날락
맹렬(猛烈)한 바다 물결 사면으로 일어서서
타루(柁樓) 위에 있는 사람 의복(衣服)이 다 젖는다.
다른 치를 겨우 빼어 바다에 드리치고,
배 구멍 박으려니 바람에 뛰노는 배가
만 장(萬丈)이나 올랐다가 천 장(千丈)이나 내려지니.
인력(人力)이 할 일 없어 속수(束手)하고 앉았더니,
물결이 몰아다가 선혈(船穴)에 절로 드니,
하늘이 도우시고 귀신(鬼神)의 힘이로다.
바야흐로 황황(遑遑)할 때 상서(祥瑞)의 무지개가
배를 걸쳐 호위(護衛)하고, 햇빛이 비추이니.
기특(奇特)하고 이상(異常)한 일 천고(千古)에 드물었다.
정사상(正使相) 도홍(桃紅) 띠로 국서(國書)를 매어 지고,
배 위에 의지하여 한가지로 빠지렬 때
대구통인(大邱通引) 박태충이 적삼 벗어 달라 하고
울면서 간청(懇請)하니, 정상(正相)이 이르시되,
“사람이 죽고 살기 한 옷에 달렸으랴.”
종시(終始)히 아니 주니 정력(精力)이 가륵하다.
그때에 부기선(副騎船)이 곁으로 지나갈 때
서중화(徐中和) 유영장(柳營將)이 민명천(閔明川) 바라보고,
손들어 영결(永訣)하니 그 경색(景色) 생각하니
참혹(慘酷)하고 망조(罔措)하여 비(比)할 데 전혀 없다.
조김이(曺金李) 세 군관(軍官)은 인사(人事)를 못 차리고,
“불쌍할 손 최봉령(崔鳳齡)이 제 형 위태한 거동을
부선(副船)에서 바라보고 질식(窒息)하여 엎어져서
못 깰 뻔했다.” 하니 잔인(殘忍)도 할셔이고.
육지에 내린 후도 반송장이 되었다네.
삼복선(三卜船) 부기선(副騎船)이 차례로 들어오고
일기선(一騎船) 일복선(一卜船)이 맨 나중에 들어오니
부종상(副從相) 상방(上房)에 가 손잡고 눈물 지고
우리도 서로 잡고 눈물이 절로 난다.
뭇 배를 결선(結船)하여 선창(船艙)을 하였으되,
큰 널로 마루 놓고, 두 편에 난간(欄干)하고,
내리는 배다리도 죽난(竹欄)을 다 하였네.
사행(使行)을 위하여서 관사(館舍)를 지었으니,
일행(一行)이 다 들어도 남은 관(館)이 더러 있네.
굿 보는 왜인(倭人)들도 마도(馬島)보다 매우 많다.
대접(待接)하는 기구 범백(器具凡百) 마도(馬島)보다 십 배 나아
우리들 정한 방(房)을 다른 이 들었기에
서유 양인(徐柳兩人) 곁방 얻어 한 가지로 들게 되니,
병장 금침(屛帳衾枕) 포진(布陣)한 것 화려(華麗)하고 갸륵하다.
십사일(十四日) 서풍(西風) 불고, 비 오고 우레 한다.
비전주(肥前州) 봉행 재판(奉行裁判) 삼중(杉重)을 와 들인다.
계암(桂巖)의 네 수 글을 차운(次韻)하여 보낸 후에
비와 바람이 저녁 때에 아침보다 흉녕(洶獰)하여
정선(碇船) 줄이 끊어져서 대양(大洋)으로 나올 때에
봉행 재판(奉行裁判) 발 구르고 손수 물에 들이달아
다른 줄로 겨우 매어 가까스로 진정(鎭定)하되,
배 난간(欄干) 깨어지고, 배 뜸이 다 날렸다.
선장 격군(船將格軍) 사령(使令)들이 밤새도록 애를 쓰니,
사상(使相)이 죽을 쑤어 다 주어 먹이니라.
십오일(十五日) 망궐례(望國禮)를 터 좁아 궐(闕)하니라.
신기(身氣)가 불평하여 탕반(湯飯) 먹고 조리(調理)하다.
십육일(十六日) 삼문사(三文士)로 뒷산에 올라가서
대마도(對馬島) 바라보니, 희미(稀微)히 뵈는구나.
가국(家國)은 멀어가고, 일신(一身)이 고위(狐危)하되,
마음이 어이없어 도리어 태연(泰然)하다.
치목(鴟木)을 고치려도 큰 나무 여기 없어
다른 데 가 얻어다가 하노라면 더딜로다.
평호태수(平戶太守) 사람 부려 삼중(杉重)을 보내었다.
십칠일(十七日) 사상(使相)네가 뒷산에 오르시니,
주먹만한 한라산(漢拏山)이 건방(乾方)에 멀리 뵌다.
악공(樂工) 불러 삼현(三絃) 치니, 굿 보는 이 장(壯)할시고,
도주 서기(島主書記) 평공겸(平公謙)이 들어와 우리 보니,
나이 겨우 이십(二十)이오. 미목(眉目)이 청수(淸秀)하다.
소견(所見)이 사랑하매, 필담(筆談)하고 보내니라.
도주(島主) 풍악 보자 하매 진주(晉州) 삼현(三統) 보내니라.
십팔일(十八日) 동지 문안(問安) 삼방(三房)에 가 두루 하고,
망하례(望賀禮)는 뜰이 좁아 뒷산에 포설(鋪設)하고,
금관옥패(金冠玉佩) 갖추고서 사상(使相) 네 남여(藍與) 타고,
올라가 행례(行禮)한 후 풍류(風流)하고 앉으시고,
행중(行中)의 춤추는 이 차례로 춤추이니
왜인(倭人)이 숙공(宿供)하되, 흑칠기(黑漆器)에 밥을 담고,
검은 깨를 섞었으며, 반찬(飯饌) 담은 칠한 그릇
전혀 중[僧]의 풍속(風俗)이라. 우스우나 경편(輕便)하다.
삼방(三房)에 각각 차려 차담을 들이오니,
한가지로 즐기다가 저녁에 돌아오다.
평호 왜인(平戶倭人) 두 사람이 글 가지고 들어와서
차운(韻)하여 달라커들, 즉시(卽時) 지어 보내니라.
십구일(十九日) 청명(晴明)하니, 재인(才人) 불러 줄 걸리고,
저물도록 풍류(風流)하되 병(病) 들어 못 가니라.
이십일(二十日) 정사상(正使相)이 일행(一行)을 밥 먹였다.
염일일(念一日) 정암승(酊庵僧)이 글 네 수 보내고서
차운(次韻)을 간청(懇請)하매, 즉석(卽席)에서 지어줬다.
뒷산에 올랐을 때 건령구(乾靈具) 띠워 보니,
남도(藍島)는 동(東)에 있고, 대마도(對馬島)는 건방(乾方)이요,
대마도(對馬島)서 부산진(釜山鎭)은 해자방(亥子方)이 되는구나.
예서부터 배 놓기는 동북(東北)을 간다 하네.
염이일(念二日) 청명(晴明)하니, 상방(上房)에서 밥을 짓고,
성균관(成均館) 식당(食堂)하듯 다 모두 내려앉고
빈 그릇 먼저 놓고, 그 다음 밥을 주고,
국과 나물 식혜들과 좌반(佐飯) 침체(沈菜) 온갖 것을
차차로 들이고서 한 번에 술을 드리고,
일시(一時)에 숭늉 주고, 일시(一時)에 상(床)을 내니,
상중관(上中官) 합하여서 예순넷이 되는구나.
글 하는 왜놈이 와 도미 하나 감자(柑子) 일곱
공경(恭敬)하여 들이거늘, 지필(紙筆)로 대답(對答)하다.
금은병풍(金銀屛風) 온갖 것을 왜통사(倭通詞) 내어 주고,
비주(肥州)놈 주라 하고, 배방으로 돌아오니,
불측(不測)한 마두(馬頭)놈이 간사(奸詐)하고 욕심 많아
조선(朝鮮) 사람 주노라고 다 가져 간다 하네.
염삼일(念三日) 대풍(大風)하니, 병(病) 덧나 누웠더니,
삼문사(三文士) 와 보거늘, 소자(小字)를 몰운(沒韻)하여
대풍 연구(大風聯句) 지을 때에 임비장(任裨將) 국수 말고,
계란(鷄卵) 삼고 왜엿(倭-) 내어 우리 넷 먹게 하고,
이비장(李裨將) 오선전(吳宣傳)은 감자(柑子)를 권(勤)하는고.
염사일(念四日) 사방(使房)에 가니, 축주태수(筑州太守) 사자(使者) 왔네.
십삼일(十三日) 부러진 치(鴟) 축전주(筑前州) 가 닿았기에
부러진 장단 형상(長短形狀) 그려서 보내었네.
왜인(倭人)의 우리 대접(待接) 극진(盡)타 하리로다.
오백 리(五百里) 먼바다에 물결이 밀어다가
하루 만에 게를 가니, 기이(奇異)키 측량(測量) 없다.
비주태수(肥州太守) 보낸 것이 화복(花鰒) 모양 같은 것을
궤(櫃)에 가득 넣어다가 사상(使相)께 들이오니,
동행(同行)들 나눠주고 왜봉행(倭奉行) 덜어주니,
하나도 아니 받고, 도로 와 들이거늘,
사상(使相)이 물으시니, 왜봉행(倭奉行) 대답하되,
“제 아비 살았을 때 배 속에서 바람 만나
탄 배가 구멍 나서 물이 콸콸 들어오되,
막을 계교(計巧) 전혀 없어 아주 죽게 되었더니,
어디에서 큰 생복(生復)이 그 구멍 부딪히니,
물이 전혀 아니 들어 인하여 살아나니,
자손(子孫)에게 유언(遺言)하여 생복(生鰒) 먹지 말라 하매
은혜(恩惠)는 감격(感激)하나, 못 먹고 드리나이다.”
들으매 기이(奇異)하고, 비록 못 쓸 왜놈이나
아비 유언(遺言) 지키는 양 인심(人心)이 있다 하리.
염오일(念五日) 염육일(念六日)은 일기도(壹岐島)서 묵으니라.
부방(副房)에서 밥을 지어 상방(上房)처럼 호궤(犒饋)하다.
염칠일(念七日) 잔풍(潺風)커늘 왜선(倭船)에서 삼현(三絃) 치고,
삼방 일행(三房一行) 두루 구경하려 하니,
전어관(傳語官)이 배타고 와 못 가게 말리거늘,
“높은 산에 올라가서 조선(朝鮮)을 보려 하니,
너희 비록 무정(無情)하나, 인정(人情)을 막지 말라.”
그놈이 앞에 서서 인도(引導)하여 오르거늘
건너편 작은 섬에 한가지로 가서 보니,
사면(四面)이 악석(惡石)이라 배 대일 데 없는지라.
어이하여 속였나니 꾸짖고 회선(回船)하여
마을 집 근처에 가 두루 구경하려 하니,
전어관(傳語官) 급(急)히 와서 성내어 말리거늘,
하릴없이 돌아오니, 애달프고 통분(痛憤)하여
염팔일(念八日) 순풍(順風)하며, 사상(使相)이 배 타려니,
일기선(一騎船) 도사공(都沙工)이 의논(議論)이 휴이(攜貳)하여
이렇게 좋은 날을 공연(空然)히 허송(虛送)하니,
애달픈들 어이하리, 시온(時韞)의 배방에 가
황감시(黃柑詩) 연구(聯句)하여 미칠 담(覃)자 몰운(沒韻)하다.
염구일(念九日) 종사상(從事相)이 밥과 반찬(飯饌) 많이 하여
정부방(正副房) 하던 대로 일행(一行)을 다 먹였다.
포변(浦邊)의 왜녀(倭女)들이 우리 배 바라보고,
통사(通詞)에게 말을 배워 조선(朝鮮) 사람 부르거늘,
격군(格軍) 한 놈 대답하되, “어이 하여 부르나니?”
“오늘 밤 집에 와서 나와 한 데 자고 가소.”
격군(格軍)놈이 마다 하니, 왜녀(倭女)가 웃고 하되,
“못생겼다. 못생겼다. 짐승이라 하리로다.”
일선(一船)의 사람들이 일시(一時)에 대소(大笑)하고,
차후(此後)는 그놈더러 축생(畜生)이라 일컬으니,
열없고 부끄러워 할 말 없어 하는구나.
날마다 언덕에서 왜녀(倭女)가 몰려와서
젖 내어 가리키며 고개 조아려 오라 하며,
볼기 내어 두드리며 손 저어 청(請)도 하고,
옷 들고 아래 뵈며, 부르기도 하는구나.
염치(廉恥)가 전혀 없고, 풍속(風俗)도 음란(淫亂)하다.
납월(臘月) 초일일(初一日)에 청명(晴明)하고 동풍(東風) 분다.
이정승(以酊僧) 글 보내고, 차운(次韻)하여 달라 하되
사어(辭語)가 불경(不敬)키에 꾸짖고 도로 주다.
초이일(初二日) 비가 오니, 주중(舟中)에서 묵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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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삼일(初三日) 서북풍(西北風)에 육선(六船)이 발행(發行)하여
포구(浦口)에 나갈 때에 물과 돌이 사나워서
우리 배 치목 풍차(鴟木風遮) 대만 남고 부러지니,
일선(一船)이 경황(驚惶)하여 사공 격군(沙工格軍) 노자(奴子)들이
반 넘어 슬피 우니, 경색(景色)이 참혹(修酷)하다.
근심타고 무사(無事)하며, 애쓴다고 나을 손가.
태연(泰然)히 배에 앉아 장기 두고 건너가니,
선중(船中)의 사람들이 명완(冥頑)타 하는구나.
다른 치(鴟)가 있건마는 그 치 빼고 꽂을 때
배 엎칠까 염려(念慮) 하여 반돛 달고 노역(櫓役)하여
일기도(壹岐島) 예선(曳船)들이 일시(一時)에 끌어가되,
바람이 전혀 없어 비록 가진 못하여도
이리 뒤똥 저리 뒤똥 하마터면 엎어질 듯,
마도(馬島) 바다 위태(危殆)하나 예 비(比)하면 태평(太平)일세.
묘진방(卯辰方)을 멀리 보니, 두어 봉이 뾰족하니,
이것은 남산(藍山)이오. 오미방(午未方)의 높은 봉은
축전주(筑前州)라 이르지만 갈 가망(可望)이 전혀 없네.
오후(午後)에 북풍(北風)이 맹렬(猛烈)하게 크게 부니,
치(鴟) 떨어진 위태(危殆)한 배 무섭기를 이를쏘냐.
배방에 누운 사람 뒤처지고 엎어지고,
오줌 누던 이비장(李裨將)은 요강 안고 자빠지고
앉았던 임도사(任都事)는 농(籠)에 치어 넘어졌네.
창(窓)틀과 격자(格子)들이 격격하여 소리하니,
정신(精神)이 어질하고, 인사(人事)가 흐려진다.
비록 토(吐)튼 아니하나, 몸 둘 땅이 전혀 없네.
동북간(東北間)에 작은 섬이 아스라이 겨우 뵈니,
왜놈더러 물어 보니 울릉도(鬱陵島)라 하는구나.
축주(筑州)와 남도(藍島)산이 가까이 점점 오니,
축산(筑山)이 웅준(雄峻)하여 육지(陸地)를 연(連)하였네.
십여 리(十餘里) 못 미쳐서 날이 벌써 어두우니,
남도(藍島)를 바라보니, 무수(無數)한 등불 빛이
포구(浦口)에 미만(彌滿)하여 별처럼 벌였으나,
예선(曳船)하러 아니 오매, 화전(火箭) 놓고 방포(放砲)하되,
종시(終始) 한 배 아니오니, 절통하고 심란(心亂)하다.
부기선(副騎船) 돌에 걸려 배 밑에서 물이 드니,
부상(副相)과 선중인(船中人)이 겨우 왜선(倭船) 빌어 타고,
선창(船艙)에 내리고서 짐이 모두 다 젖었네.
어둡고 사이 멀어 가서 미처 못 보고서
창황(蒼黃)하여 하는 소리 듣기에 경심(驚心)하다.
이경량(二更量)에 배를 대고, 뭍에 내려 두루 보니,
부상(副相)이 방석(方席) 없어 포변(浦邊)에 앉았거늘,
나아가 위문(慰問)하고, 군관 역관(軍官譯官) 찾아보니,
다 모두 넋을 잃어 어줍어 말 못한다.
관소(館所)로 들어가되, 내 병(病)이 많이 아파
승칠(勝七)에게 병풍(屛風) 빌어 바람 막고 누웠더니,
이윽고 삼료(三僚) 와서 한 데 드니 든든하다.
방(房)에 벌인 집물(什物)들은 비주(肥州)보다 많이 낫네.
초사일(初四日) 동풍(東風) 불고, 우설(雨雪)이 교하(交下)하니,
육선(六船)이 움직이면, 표풍(漂風)할까 염려(念慮)로다.
이 땅은 축전주(筑前州)요, 태수(太守)가 있는 데는,
지명(地名)이 복강(福岡)이요, 여기서 육십 리(六十里)일세.
촌락(村落)은 극히 적고, 관소(館所)는 장려(壯麗)하여
비단장(緋殺帳)을 쳐 있으며, 성성전(猩猩猩)을 깔아 있고,
중방(中房) 각도(閣道) 욕실(浴室) 뒷간 곳마다 정묘(精妙)하다.
어저께 파선(破船)한 일 예선(曳船) 없는 탓인지라.
호행관(護行官) 문안(問安)들과 태수(太守)가 보낸 삼중(杉重)
아니 받고 퇴척(退斥)하고, 이 사연(事緣) 갖추어서,
치(鴟) 부러진 전후 곡절(前後曲節) 장계(狀啓) 써서 봉(封)하니라.
예서부터 왜유(倭儒)들이 글 받으러 오는 사람
벼루 종이 필묵(筆墨)들과 거울 칼 가위 등속
무수(無數)히 가지고 와 윤필(潤筆)을 하오되는
선비 몸이 되어 있어 글 지어 주어 놀아
값을 어이 받을쏘니 다 주어 내어 주니,
그 놈들이 무료(無聊)하여 열 번이나 간청(懇請)하고,
도로 와 들이거든, 매매(每每)히 사양하니
역관(譯官)들이 와서 하되, “예부터 문사(文士)들이
이것을 받아다가 치행(治行)한 빚도 갚고
친구(親舊)들도 주는지라. 전례(前例)로 받으소서.”
“전 사람은 받았던지 우리 소견(所見) 그와 달라
하나도 못 받으니, 오활(迂闊)타 웃지 마소”.
초오일(初五日) 서풍(西風)하고, 눈도 오고 흐리었다.
여섯 배 격군(格軍)들과 왜놈도 배를 타고,
파선(破船)한 배에다가 무수(無數)히 줄을 매어
배 위의 사람들과 언덕에 있는 왜놈
일시(一時)에 소리하고, 물가로 끌어오니,
소리가 진동(震動)하여 바다가 움직인다.
창(船艙)에 매어 놓고, 물구멍 헤어 보니,
아무래도 못 탈지라, 아깝고 불쌍하다.
축주 봉행(筑州奉行) 뜰에 와서 삼중(衫重)을 바치겠다
무수(無數)히 애걸(哀乞)하되, 도로 주고 아니 받다.
초육일(初六日) 음매(陰昧)하고, 미우(微雨)가 공몽(涳濛)하다.
부복선(副卜船)은 기선(騎船) 삼고 그 배에 든 사람들은
왜선(倭船)으로 옮아가니, 배 좁아 못다 들어
부방 서기(副房書記) 원자재(元子才)는 시온방(時韞房)에 함께 들다.
한흥(汗興)이 왜전(倭-) 주고, 엿 사다가 들이거늘,
먹어 보니 극히 좋아 아국(我國)보다 많이 나아
마두령(馬兜鈴) 모양이요, 속은 비어 강정 같고,
빛 붉고 잔 모 있어 연하기 기절(奇節)하다.
건너편 뵈는 곳이 박다진(博多津)이라 하는구나.
박제상(朴提上) 순의(殉義)하고, 나흥유(羅興儒) 갇혔으며,
정포은(鄭圃隱) 득절(得節)하고, 신고령(申高靈) 와 있던 데
다 여기라 이르지만, 못 가보니 애달프구나.
개 밖의 바다 속에 바위 하나 서 있으되,
두 구멍 크게 뚫려 괴구멍 같으므로
이름이 도문(屠門)이오, 비귀[鼻耳]라고도 하는구나.
예선(曳船) 아니 나온 일로 도주(島主)를 청하지만,
칭병(稱病)하고 아니 오고, 낫거든 오마 하네.
불 켜고 심심터니, 왜놈이 청하거늘
고포산(高匏山) 십경시(十景詩)를 육언(六言)으로 지어 주다.
초칠일(初七日) 대마도주(對馬島主) 짧은 옷 민머리로
헌교(軒驕) 타고 와서 뵈되, 절차(節次)는 전과 같다.
필담(筆談)으로 써서 뵈되, 사행 접대(使行接待) 하는 규구(規矩)
전례(前例)가 다 있으니, 예선(曳船)이 아니 와서
부선(副船)이 치패(致敗)하니, 사처(査處)를 할 것이오.
상(傷)한 배 어서 고쳐 사행(使行)을 보낼 말을
절절(切)히 써서 주니, 아예 펴 보지 않고,
종자(從者)를 내어 주니, 글자를 모르기에
볼 길이 전혀 없어 글 하는 놈 뵈려 하고,
그저 내어 주었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창졸간(倉卒間) 말 어려워 가지고 나가도다.
저녁에 기번실(紀蕃實)이 답초(答抄)를 써서 뵈되,
“불령(不侫)이 호행(護行)으로 파선(破船)을 하게 하니,
부끄럽고 가이없고, 이 땅 태수(太守) 듣게 되면,
잘못한 왜인(倭人)들은 사핵(查覈)하여 처치(處置)하니,
이 앞에 가는 길에 각별(俗別)히 신칙(申飭)함세.”
제 이미 복죄(服罪) 하니, 일공(日供)을 받으니라.
우리의 하루 일공(日供) 백미(白米)가 삼수두(三手斗)요,
도미 둘 생복(生鰒) 넷과 닭 하나 녹육(鹿肉) 한 근(斤)
계란(鷄卵)이 여덟이요, 강고도리 둘씩 하고,
오적어(烏賊魚) 네 마리와 무우 생강(生薑) 우방근(牛蒡根)과
기름 장과 초와 차를 수십 종(數十種)을 들이되
차종[茶鐘]이 기묘(奇妙)하여 비치게 옻칠하고,
둥글고 소복하여 모양이 기절(奇絶)하다.
무는 더욱 좋아 길고 크고 물도 많고,
우리나라 무보다 백 배가 나은지라.
저물도록 먹어보니, 매운 맛이 전혀 없네.
그 밖에 나물들도 연하고 살이 찌니.
토품(土品)이 고유(膏油)키는 이로 보아 알리로다.
우리 하루 겪는 것이 은(銀) 만 냥(兩)이 든다 하네.
초팔일(初八日) 삼중(杉重) 온 것 닭의 알로 만든 떡이
많이 달고 맛이 좋아 왜떡 중에 으뜸이라.
기번실(紀蕃實)과 평공겸(平公謙)이 축전주(筑前州) 네 서기(書記)를
데리고 들어와서 읍(揖)하고 벌려 앉네.
정상주도(井上周道) 즐전욱(櫛田彧)과 도촌호(島村暠)와 귀정노(龜井魯)일세.
품에서 글을 내어 차운(次韻)을 구하는데,
그 중에 귀정노(龜井魯)가 시년(時年)이 삼칠(三七)이요.
필한(筆翰)이 여비(餘備)하여 보던 중 어여쁘다.
마침내 사방(使房)에서 음식(飮食) 한 상 와 있거늘
네 사람을 나눠 주니, 이마에 손을 얹어
여러 번 치사(致謝)하고, 젖은 것은 다 먹고서
과즐과 실과(實果) 마른 것은 종이에 싸 가지고,
두세 번 손을 들고 품속에 품는구나.
네 놈이 날 향하여 부복(俯伏)하고 이르오되,
“처음에 드린 글을 오늘은 총망(悤忙)하여
못 지을까 하였더니, 즉석(卽席)에서 차운(次韻)하니,
기쁘고 감격(感激)키가 바라는 밖이옵고,
하물며 퇴석선생(退石先生) 늙으시고 병(病) 드시되
역질(力疾)하여 휘쇄(揮灑)하니, 장(壯)하고 갸륵하다.”네.
한 그릇 실과 내어 귀정노(龜井魯) 주고 하되,
“네 재주 어여쁘매 별로 이를 표정(表旌)하다.”
귀정노(龜井魯) 치사(致謝)하되, “나 같은 어린 것을
이처럼 사랑하니, 명감(銘感)이 가이없네.
내일 다시 들어와서 가르침을 받으리다.”
초구일(初九日) 대풍(大風)하니, 육선(六船)이 위태하다.
귀정노(龜井魯) 편지하고 사집(私集) 한 권 보내었네.
처음은 기이더니, 조격(調格)이 기이(奇異)하다.
양류사(楊柳詞)와 호가곡(胡笳曲)은 걸작(傑作)이라 하리로다.
주홍(朱紅)으로 비점(批點)하고, 서문(序文) 지어 써서 주다.
밤 든 후 한 왜(倭) 와서 귀정노(龜井魯)의 말 전(傳)커늘,
제 소임(所任) 물어보니, 다촉등로(茶獨燈爐) 차지라네.
국수 음식(飮食) 먹이오니, 극(極)히 감격(感激)하여 한다.
파선(破船)한 일 물어보니, 처음은 속이더니,
하 달래고 사랑하니, 나중은 써서 뵈되,
“예선(曳船)을 아니 보낸 일은 마도재판(馬島裁判) 먼저 와서
아니 이른 탓이로다. 호행 선주(護行船主) 요참(腰斬)하고,
태수(太守)는 강호(江戶) 가고, 셋째 봉행(奉行) 여기 와서
죽거나 귀양커나, 태수(太守) 처분(處分) 기다리니,
필경(畢竟)에 애를 써서 자결(自決)할 밖 없다.” 하네.
마인(馬人)의 위갈(威喝)하기 날마다 심히 하니,
어제오늘 회뢰(賄賂)한 것 두 놈이 가졌으니,
그 수를 어이 알고 수 만 냥(數萬兩)이 들었다네.
나중에 간청(懇請)하되, 이 말이 누설(漏泄)되면,
죽을 이 많다 하고, 만 번이나 당부(當付)하네.
불칙(不測)할 손 마두(馬頭)놈이 중간(中間)에서 조롱하고,
온갖 일을 다 속이니, 아득히 몰랐더니,
이놈의 말을 좇아 기미(機微)를 알리로다.
추강(秋江)이 써서 뵈되, “소생(小生)이 젊었을 때
칼 차고 말 달려서 호협사(豪俠事)를 숭상(崇尙)터니,
중년(中年)에 글을 읽어 나이 벌써 늙었으니,
왕유(王維)의 망천(輞川)처럼 다섯 곳에 전장(田庄) 두어
음풍(吟風) 영월(詠月)하여 여년(餘年)을 보낸다.” 하고
“사집(私集) 한 권 드리오니, 비점(批點)하여 주오소서.”
글은 비록 좋지 않으나, 신세(身勢)는 편하도다.
귀정노(龜井魯) 써서 뵈되, “제 아비 나이 많아
내년 삼월이 환갑(還甲)이니, 수석시(壽席詩)를 지어 주면,
광채(光彩)가 만장(萬丈)이라 영행(榮幸)할까 싶소이다.”
사운 율시(四律詩) 지어 주니, 용약(勇躍)하여 칭사(稱辭)한다.
십이일(十二日) 추강(秋江)이 와 “제 뜰에 붉은 매화(梅花)
만발(發)하여 경(景) 좋으니, 글 하나 지어 주소.
무색(無色)한 폐장(閉藏)으로 광휘(光輝)가 나게 하오.”
유장경(劉長卿) 차운(次韻)하여 오율(五律) 하나 지어 주다.
십삼일(十三日)에 왜놈의 글 열 수(首) 차운(次韻)하여 줬다.
십오일(十五日) 대마도(對馬島)서 비선(飛船) 한 척 들어오되,
우리나라 치목(鴟木) 셋이 대마도(對馬島)서 왔다 하네.
십육일(十六日) 십칠일(十七日)은 선방(船房)에서 조병(調病)할 때
무수(無數)한 왜놈들이 날마다 글 보내니,
병은 비록 들었으나, 다 모두 화답(和答)하다.
십팔일(十八日) 십구일(十九日)도 내 병이 일양(一樣)일세.
이십일(二十日) 조금 나아 소세(梳洗)하고 일어나다.
염일(念一日) 삼사신(三使臣)이 뒷산에 올라 보다.
염이일(二日) 삼사일(三四日)은 병 더쳐 못 일더니
유생(劉生)이 와서 보고, 삼소음(蔘蘇飮) 먹으라네.
염오일(念日) 왜유(倭儒)들이 별장시(別章詩) 많이 왔네.
서남풍(西南風)에 진말(辰末)에 발선(發船)하여
오십 리(五十里)는 겨우 가서 바람 없어 노역(櫓役)터니
오후(午後)에 바람 나매, 돛 달고 나아갈 때
남박(南泊)가에 닿았으니, 이백 여리(二百里) 왔다 하네.
선창(船艙)이 사나워서 양중(洋中)에 돛을 주고,
오선(五船)이 밤을 샐 때 삼복선(三卜船) 간 데 없어
새도록 염려(念慮)러니, 새벽에 비선(飛船) 와서
복선(卜船) 어제저녁 적간관(赤間關)에 먼저 와서
다섯 배 소식(消息) 알아 왔다 하니 기쁘도다.
왜놈의 말 들으니, 이 땅은 풍전주(豊前州)일세.
염칠일(念七日) 노역(檀役)하여, 적간관(赤間關) 들어가니,
오말(午末)은 겨우 하고, 삼십 리(三十里) 왔다 하네.
예부터는 내양(內洋)이라. 산도 낮고 물도 적어
산수(山水)도 절승(絶勝)하고, 여염도 즐비(櫛比)하다.
평지(平地)가 전혀 없어 포변(浦邊)의 대소 인가(大小人家)
돌로 쌓아 올려 삼사장(三四丈)씩 높게 하고,
그 위에 집을 지어 접옥 연장(接屋連墻) 하여 있다.
삼사신(三使臣)과 동행(同行)들은 관소(館所)로 다 들어가되,
병들어 못 내리니, 궁금하고 애달프구나.
이 땅 이름 무엇인고, 장문주(長門州)라 하는구나.
육백년전(六百年前) 원뢰조(源賴朝)가 사납고도 강성(强盛)하여
안덕천황(安德天皇) 팔세(八歲) 먹고, 그 어미 백하후(白河后)가
탐학(貪虐)하고 음란(淫亂)타고, 기병(起兵)하여 와서 치니,
백하후(白河后) 천황(天皇) 업고, 쫓기어 여기 왔더니,
물에 빠져 죽었기에 안덕묘(安德墓)가 여기 있고,
일본(日本)서 관백(關白)나기 뇌조(賴朝)부터 시작(始作)하네.
수양제(隋場帝) 전성(全盛)할 때 십만 대군(十萬大軍) 보내어서
일본(日本)을 치려다가 여기 와 다 죽었다네.
임진년(壬辰年)에 평수길(平秀吉)이 우리나라 치러 올 때
주길이란 사공(沙工)놈이 역풍(逆風)이 불리라고
발선(發船)을 아니하니, 수길(秀吉)이 대로(大怒)하여
내어서 요참(腰斬)하고, 배를 내어 놓으려니,
과연(果然) 그 말 같이 광풍(狂風)이 크게 이니,
수길(秀吉)이가 뉘우쳐서 사당(祠堂) 짓고 비(碑)를 세워
물 가운데 있다 하되, 아프기에 못가 보니라.
염팔일(念日) 예서 묵어 글 서넛 차운(次韻)하다.
염구일(九日) 사신(使臣)네가 구산궁(龜山宮) 연접사를
다 가서 구경하되, 병 들어 못 가니라.
태수(太守) 보낸 하얀 떡이 권모 맛에 누룩 같네.
삼십일(三十日) 순풍(順風) 불되, 명일(名日)이라 아니 가네.
내 나라에 있을 때도 제석(除夕)을 당하면은
마음이 다르거든 만리(萬里) 밖 절해중(絶海中)에
병들어 누웠으니, 백감(百感)이 붕중(崩中) 한다.
일행중(一行中) 상하인(上下人)이 다 와서 문병(問病)하네.
왜시(倭詩) 스물 또 왔거늘, 요초(療草)하여 내 던지고,
배방을 굳이 닫고, 촛불을 돋우고서
고촉주(高蜀州)의 제야시(除夜詩)를 자자(字字)이 분운(分韻)하여
염팔일(念八日)에 속육언(續六言) 짓고, 종사상(從事相) 성노 불러
오언 절구(五言絶句) 분운(分韻)하여 한 가지로 짓는다매
나 역시 그 법(法)대로 열 수(首)를 차운(次韻)하고,
이불 덮고 들어 누워 가국(家國)을 생각하고,
신세(身勢)를 점검(點檢)하니, 용졸(庸拙)한 좀문자(-文字)를
부질없이 배웠다가 이 길을 왔으니,
남의 탓이 아니어니, 한탄(恨歎)하여 무엇하리.
밤새도록 전전(輾轉)하여 잠 한잠을 못 자노라.
## 권지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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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 정월(甲申正月) 초일일(初一日)에 적간관(赤間關)서 머무니라.
식후(後)에 정사상(正使相)이 상중관(上中官)을 모으시고,
풍류(風流) 치고 음식(飮食)하여 저물도록 즐기느라.
배방으로 돌아올 때 중하관(中下官) 하처(下處) 보니,
절집이 굉걸(宏傑)하고, 경치(景致)가 기절(奇絶)하여
죽백(竹柏)도 많거니와 그중에 소철(蘇鐵) 나무
모양도 기이(奇異)하고, 시들어 죽어갈 때
쇠못을 박아 두면, 도로 산다 하는구나.
초이일(初二日) 발선(發船)하여 삼백 리(三百里) 실우(室隅) 올 때
풍일(風日)은 온화(溫和)하고, 물결이 고요하여
배 가기 평안(平安)하니, 길 난 후 처음이라.
수질(水疾) 하던 사람들도 다 모두 안연(晏然)하여
말도 하고 잡기(雜技)하여 근심을 잊을로다.
향포(向浦) 지나 초경량(初更量)에 배를 대고 닻을 주니,
적간관(赤間關)서 여기 오기 갑묘방(甲卯方)이 되는구나.
초삼일(初三日) 묘시량(卯時量)에 서풍(西風)에 배를 놓아
노(櫓)도 젓고 돛도 달아 오십 리(五十里) 상관(上關) 오니,
여기는 주방주(周防州)요, 장문태수(長門太守) 겸찰(兼察)이라.
적간관(赤間關) 예선(曳船)들이 여기까지 따라왔네.
두 산이 회초(會招)하여 포구(浦口)를 맺었으니,
사이 불과 수백 보(步)요, 다른 데는 길이 없어
험(險)하고 종요롭기 일본 중(日本中) 제일(第一)이라.
천여 명(千餘名) 복뇌군(伏弩軍)을 두 편에 두었으면,
비록 백만(百萬) 웅병(雄兵)인들, 제 어이 지나가리.
여염은 백여 호(百餘戶)요, 서편(西便)의 산골 속에
웅장(雄壯)한 큰 절 있어 수풀 밖에 뵈는구나.
인물(人物)은 초졸(草拙)하고, 미색(美色)도 간간(間間) 있다.
주방주(周防州) 봉행(奉行)놈이 삼중(杉重)을 들이는데,
상중하(上中下) 삼관(三官)에게 다 주어 보내었다.
묘(妙)할손 일본법(日本法)이 배와 옷과 등(燈)과 기(旗)가
다 모두 표(標)가 있어 알기 쉽게 하였으니,
이 고을 표(標)한 것은 매화(梅花)처럼 그렸으되,
크고 흰 둥근 점(點)에 여덟 흰 점 둘렀구나.
태수(太守)의 성(姓)과 이름 일컫기를 원정장(源正長)이
전부터 여기 오면, 복물(卜物)과 예차(預差) 치목(鴟木)
주인 붙여 두는지라. 이번도 그러하다.
초사일(初四日) 풍역(風逆)하여 상관(上關)서 머무니라.
이 땅의 십여(十餘) 선비 수십 수(數十首) 글을 보내어
화답(和答)하여 달라 하네. 휘쇄(揮灑)하여 내치니라.
초오일(初五日) 묘시량(卯時量)에 북풍(北風)에 배를 놓아
노(櫓)도 젓고 돛도 달아 실진(室津)가 잘 참(站) 드니,
굿 보는 남녀노소(男女老少) 배 타고 와서 본다.
선창(船艙)이 얕은지라 양중(洋中)에 닿을 주니,
백이십 리(百二十里) 와 있으며, 지명(地名)은 안예주(安藝州)로다.
초육일(初六日) 동북풍(東北風)에 해 돋기에 발선(發船)하니,
역풍(逆風)이 많이 불어 돛 못 달고 노(櫓)를 저어
이십 리(二十里)는 겨우 가니, 전진(前進)할 길 전혀 없어,
비도 오고 흐린지라 수민(愁憫)하기 측량(測量) 없다.
만일(萬一)에 대양(大洋)이면, 파선(破船)이 정녕(丁寧)할세.
앞참(站)을 못 대고서 녹로도(鹿老島)로 들어가니,
여염은 사십 호(四十戶)요, 삼십 리(三十里)를 겨우 왔다.
양중(洋中)에 닻을 주니, 대풍(大風)이 이는지라
마을 집 겨우 얻어 삼사상(三使相)이 다 내리매
임도사(任都事) 오선전(吳宣傳)과 한 하처(下處)에 나도 드니,
인가(人家)도 정쇄(精灑)하고, 경개(景槪)도 무던하다.
삼복선(三卜船)은 표풍(漂風)하여 남편(南便) 개에 드니,
선창(船艙)은 좋은지라 불행중(不幸中) 다행(多幸)하다.
두어 동행(同行) 데리고서 걸어가서 구경하니,
백사(白沙) 평초(平鋪)하고, 작은 독산[丘山] 일어섰네.
쉰세 층(層) 석계(石階) 올라 산 위에 서서 보니,
신당(神堂)을 지었으며, 안계(眼界)가 광활(廣閣)하여
산수(山水)는 절묘(絶妙)하니, 몰운대(沒雲臺)로 병칭(竝稱)한다.
마상재(馬上才) 전악(典樂)들은 청루(靑樓)에 들었는데,
방사(房舍)가 사치(奢侈)하고, 계정(階庭)이 정결(淨潔)하여
층(層) 지은 노송(老松)이며, 온갖 화훼(花卉) 다 있으니,
아국(我國)에 있게 되면, 유객(遊客)이 많을로다.
서유 양인(徐柳兩人) 든 주인이 제집 부녀(婦女) 일색(一色)이니,
데려오마 간청(懇請)하니, 하는 양 보려 하고,
데려오라 허락(許諾)하니, 주인(主人)이 대락(大樂)하여
어디로 나가더니, 이윽고 데려오니,
비편(非便)하기 가이없어 급히 도로 나가라 하니,
무료(無聊)하여 가는 거동(擧動) 소견(所見)이 절도(絶倒)하다.
초칠일(初七日) 비 오기에 녹로도(鹿老島)서 묵으니라.
주방태수(周防太守) 문안(問安)하고, 감자(柑子) 도미 보내었다.
사신(使臣)네 드린 것은 한 그릇에 천여 개일세.
왜인(倭人)이 이르기를, 이 땅에 산저(山猪) 많아
밤이면 마을에 와 장난한다 하는구나.
초팔일(初八日) 또 묵을세 부방(副房)에서 삼수역(三首譯)을
잡아들여 분부하되, 바람이 이러한데
발선(發船)하자 청한다 면책(面責)하여 내치니라.
초구일(初九日) 해 돋을 때 육선(六船)이 함께 떠나
순풍(順風)이 아닌지라 쌍돛을 비껴 달아
오십 리(五十里) 겸예(鎌刈) 가니, 미시(未時)는 되었구나.
관사(館舍)도 굉걸(宏傑)하고, 대접(待接)도 갸륵하다.
비단 장(帳)과 금병풍(金屛風)과 화로(火爐) 촛대 필묵(筆墨)들이
온갖 것이 선명(鮮明)하여 전참(前站)보다 백 배 낫다.
초십일(初十日) 행(行)할 때 눈 뿌리고 서풍(西風) 분다.
축인방(丑寅方)을 향하여 백십 리(百十里)를 들어가니
진시(辰時)는 되었는데, 지명(地名)은 충해(忠海)로다.
소금 굽는 마을이라 쌓은 나무 산 같구나.
마을 뒤로 갯물이라 돛대가 은영(隱映)한다.
뒷산에 절이 있어 서념사(西念寺)라 하는구나.
십일일(十一日) 동북풍(東北風)에 묘말(卯末)에 발선(發船)하여
이예주(伊預州)와 찬기주(讚岐州)를 왼편에 늘여 끼고,
안예태수(安藝太守) 사는 데를 지나가며 바라보니,
회(灰)칠한 성가퀴는 햇빛에 눈부시고
금장식(金粧飾) 오층각(五層閣)이 구름 속에 표묘(縹緲)하다.
예서부터 좌우편(左右便)에 마을집이 자주 있다.
구십 오리(九十五里) 행하여서 이 왼편을 돌아보니,
기특(奇特)한 석벽(石壁) 위에 절승(絶勝)한 절 있거늘,
그 이름 물어보니, 아복토(阿伏兔) 반대사(盤臺寺)일세.
두 중이 배 타고 와 보시(布施)하라 청하거늘,
사신(使臣)네도 쌀 섬 주고, 일행(一行) 제인(諸人)들이
잡것을 다 주거늘, 나 역시 글씨 써서
팔구 장(八九張) 내어주니, 치사(致辭)하고 가는구나.
초혼(初昏)에 여섯 배가 도포(韜浦)에 다다르니,
백 리(百里)는 와 있으며, 비후주(備後州)라 하는구나.
여염과 왜선(倭船) 위의 등불도 장할시고.
관소(館所)는 복선(福禪)이니, 전각(殿閣)도 굉장하다.
여염의 성(盛)한 것이 연로(沿路)에 제일(第一)일세.
일행(一行)이 다 내리되, 나는 홀로 배에 있네.
십이 일(十二日) 눈 뿌리고, 사시(巳時)에 배를 내니,
해구(海口)가 활대(濶大)하여 대양(大洋)이나 다르쟎다.
풍세(風勢)가 맹렬(猛烈)하매 돛 달고 나아갈 때
하진(下津)을 지나가서 일비(日比) 땅에 배를 대니,
백삼십 리(百三十里) 와 있으며, 비전주(肥前州)라 하는구나.
본주태수(本州太守) 원종정(源宗政)이 삼중(杉重)을 보내었다.
촌가(村家)는 십여 호(十餘戶)요, 남향(南向)한 마을일세.
사신(使臣)네는 하륙(下陸)하되, 나 혼자 배에 자다.
심삼일(十三日) 서풍(西風)하고, 초사(初巳)에 배를 띄워
저물도록 돛을 달고, 인간(寅間)으로 들어간다.
칠십 리 우창(牛窓) 가서 관소(館所)로 내려가니
선창(船艙)도 천작(天作)이오. 여염도 거룩하다.
우리 네 사람은 한 방에 앉았더니,
비전주(肥前州) 다섯 시객(詩客) 불 켠 뒤 들어오니,
시포직춘(市浦直春) 화전소(和田邵)요, 귀산덕기(龜山德基) 정잠(井潛)이며,
그 중의 근등독(近藤篤)은 무진년(戊辰年) 사행(使行) 때에
태수(太守)의 명(命)을 받아 사신(使臣)을 영접(迎接)하고,
잠(井潛)의 늙은 아비 통희(通熙)라 하는 선비
성장(聖章)이와 수창(酬唱)하던 시(詩) 한 권(卷) 보내었네.
부자(父子)가 문임(文任)으로 전후(前後)에 다 왔으니,
어렵다 할 것이요, 위인(爲人)이 기특(奇特)하여,
필담(筆談)이 도도(滔滔)하고, 시율(詩律)이 편편(翩翩)하니,
밝도록 창화(唱和)하여 백운 배율(百韻排律) 하나이요,
칠십이운(七十二韻) 하나이며, 오칠율(五七律) 고시절구(古詩絶句)
합하여 세게 되면, 사십 수(四十首)나 남직하다.
북편(北便)으로 백여 보(百餘步)에 본련사(本蓮寺)란 절이 있어
장려(壯麗)하고 경(景)이 좋되, 어두워 못 가 보다.
본주 태수(本州太守) 잡떡 한 궤(櫃) 상관(上官)에게 보내었다.
십사일(十四日) 서북풍(西北風)에 묘시(卯時)에 배를 놓아
적수성(赤穗城) 지나가니, 사이는 십여 리(十餘里)요,
성첩(城堞)이 고준(高峻)하고, 대관(大官)이 산다 하네.
미시(未時)에 도박(到泊)하여 실진(室津)으로 들어가니,
선창(船艙)이 만회(灣回)하여 좌수포(佐須浦)와 일반이다.
마을도 즐비(櫛比)하고, 관사(官舍)도 웅장(壯)하다.
파마주(播摩州)에 속하였고, 백 리(百里)는 왔다 하네.
본주태수(本州太守) 원충공(源忠恭)은 강호(江戶)의 아악두(雅樂頭)로
집정중(執政中) 으뜸으로, 삼중(杉重)을 보내었다.
병들어 못 내리고, 배방에 누었더니.
정암장로(酊庵長老) 세 상좌(上座)가 춘파(春坡) 난주(蘭州) 고당(古堂)이라.
칠율(七律) 하나 칠절(七絶) 하나 각각 지어 보내기에
불 켜고 차운(次韻)하여 역관(譯官) 주어 보내니라.
십오 일(十五日) 망궐례(望闕禮)를 병(病)으로 불참(不參)하고,
평명(平明)에 발선(發船)터니, 비 오고 역풍(風) 부니,
포구(浦口)를 못다 와서 선창(船艙)으로 도로 왔다.
정사상(正使相) 식당(食當)하되, 몸 아파 못 먹고서
주중(舟中)에 돌아와서 왜시(倭詩) 대여섯 화답(和答)하다.
십육 칠팔(十六七八) 이 세 날은 못 떠나고 묵을 때에
무수(無數)한 왜(倭) 선비가 글 가지고 와서 보네.
십구일(十九日) 서북풍(西北風)에 일출시(日出時)에 발선(發船)하여
돛 달고 노(櫓)를 저어 오십 리(五十里)는 지나오니,
파마태수(播磨太守) 사는 데라 인가(人家)도 장(壯)할시고,
분(粉) 칠한 바람벽은 녹림간(綠林間)에 은영(隱映)하고,
금장식(金粧飾)한 삼층각(三層閣)은 운소(雲霄)에 일어난다.
예서부터 좌우편(左右便)에 산은 낮고 들은 열려
사람의 사는 마을 연락(連絡) 부절(不絶)하다.
언덕 위에 굿 보는 이 계집 한 떼, 남자 한 떼
사오 리(四五里)에 가득하니, 그 수를 어이 알리.
백 리(百里) 쯤 지나오니, 명석(明石)이라 하는구나.
여기서 월출(月出) 보기 장관(壯觀)이라 하는지라.
일변(一邊)으로 행선(行船)하며 삼사상(三使相)을 뫼시고서
타루(柁樓)에 올라앉아 사면(四面)으로 바라보니,
풍청(風淸) 낭정(浪靜)하고, 수천(水天)이 일색(一色)이라.
이윽고 달이 뜨니, 장(壯)함도 장(壯)할시고,
홍운(紅雲)이 지피는 바다가 뒤눕는 듯
크고 둥근 백옥(白玉) 바퀴 그 사이로 솟아오니,
찬란(燦爛)한 금 기둥이 만리(萬里)에 뻗치었다.
아국(我國)에 비(比)하면, 배가 넘게 더하노라.
부상(扶桑)이 가깝기에 그렇다 하는구나.
낮은 산 작은 골에 대포(大布)를 친 것 같아
건곤(乾坤)이 조요(照耀)하여 호발(毫髮)을 헤리로다.
천하(天下)에 장(壯)한 구경 이에서 또 없으리.
사나이 좋은 줄을 오늘이야 알리로다.
부녀(婦女)처럼 들었으면, 이런 것을 어이하리.
밤빛은 창망(滄茫)하되, 병고(兵庫)를 바라보니,
수 없는 등불 빛이 십 리(十里)에 선연(鮮然)하여
위에는 만천 성신(萬千星辰) 구만 리(九萬里)에 소삼(蕭森)하고,
아래는 백만(百萬) 등롱(燈籠) 해변(海邊)에 촉촉(矗矗)하니,
오늘 밤 이 경치(景致)는 천지간(天地間) 기관(奇觀)이라.
이경량(二更量)에 병고(兵庫) 드니, 축시(丑時)에 발선차(發船船)로
하선(下船)을 않으려니, 도주(島主)가 간청(懇請)키에
인정(人情)에 어려워서 사신(使臣)네 잠깐 내려
관소(館所)로 들으시니, 우리 동행(同行)들도
내려가 구경하니, 그중에 부상(副相) 하처(下處)
경치가 기절(奇絶)하다. 노송종려(老松棕櫚) 매도등속(梅桃等屬)
돌로 싼 방당(方塘) 위에 세 면에 창울(蒼鬱)하고,
종사상(從事相) 계신 데는 석가산(石假山) 쌓았으며,
그 밖에 기화이초(奇花異草) 좌우에 둘렀으며,
밤빛이 희미(稀微)하여 자세히 못 보노라.
꽤 오래 둘러보고, 내 배로 돌아오니,
밤 깊어 사신(使臣)네도 도로 배로 오르니라.
오늘 온 곳 세어 보니, 백팔십 리(百八十里) 되는구나.
염일(念日) 일출시(日出時)에 인간(寅間)으로 배를 놓아
하구(河口)로 들어갈 때 좌우 전후 돌아보니,
우리 배 예선(曳船)들과 앞참(站)의 탐후(探候) 온 배
영접(迎接)하러 오는 배와 각주 태수(各州太守) 행중(行中)배와
지공(支供)하고 가는 배와 영접(迎接)하러 오는 배와
마주인(磨州人)의 행중(行中)배와 근처(近處)에 구경 온 배
가고 오는 장삿배가 그리 넓은 바다 위에
다 모두 무명 돛을 순풍(順風)에 높이 달고,
일시(一時)에 들어가니, 장(壯)하고 끔찍하다.
흰 구름 천만(千萬) 떼가 수변(水邊)에 끼었는 듯
바다를 덮었으니, 물빛을 모를러라.
왕준누선하익주(王濬樓船下益州)를 천고(千古)에 장(壯)타 하나,
예 비하여 볼 때에는 마땅히 소조(蕭條)하리.
하구외(河口外)에 다다르니, 포수(浦水)가 얕은지라
우리 배 들어가기 걸리어 어렵더니,
열한 척(隻) 금루선(金樓船)이 대령(待令)하여 맞는구나.
저 금루선(金樓船) 제작(製作) 보소. 안팎에 옻칠하여
영(影)이 뜨게 비추이고, 이금(泥金)으로 찬란(燦爛)하게
용(龍)과 봉(鳳)도 그렸으며, 낯에 공작(孔雀) 그렸으니,
궁사(窮奢)코 극치(極侈)키는 만고(萬古)에 없을노다.
이층전(二層殿) 집을 짓고, 대공 갖춰 창격(窓隔)들을
황금(黃金)으로 아로새겨 옷장(-欌)처럼 꾸몄으며,
각색(各色)으로 넓은 비단(緋緞) 한 폭(幅)씩 연폭(連幅)하여
휘장(揮帳)을 지어내어 주황사(朱黃絲) 진홍사(眞紅絲)와
천청(淺靑) 모단사(毛般絲)로 팔뚝만큼 줄을 드려
온 배를 두루 둘러 사면(四面)으로 드리웠네.
인신(人臣)이 이 배 타기 진실(眞實)로 외람(猥濫)하여
한두 번 예양(體讓)하고, 나중에 올라탈 때
부종(正副從) 삼사상(三使相)이 각 한 배씩 타오시고,
한 척(隻)을 빼어내어 국서(國書)를 모시고서
도주(島主) 한 척(隻) 정승(酊僧) 한 척(雙) 삼수역(三首譯) 삼상판사(三上判事)
각 한 배씩 올라앉아 차례(次例)로 나아갈 때
나 역시 종사상(從事相)과 한 배에 올라타니,
배마다 줄을 매어 이편 언덕 저편 언덕
무수(無數)한 예선군(曳船軍)이 차례(次例)로 끌어가니,
두 편에 굿 보는 이 바다 같고 산 같아서
성성전(猩猩氈)도 깔았으며, 금병풍(金屛風)도 쳐 놓고서
그리 많은 왜녀(倭女)들이 미만(彌滿)하여 앉았으니,
붉은 옷도 입었으며, 푸른 옷도 입었으며,
자주(紫朱)옷도 입었으며, 아롱 옷도 입었으니,
그중에 호사(豪奢)한 이 사환가(仕宦家) 부녀(婦女)라네.
강물이 크지 않아 임진(臨津)만 아니해
물가의 두 편으로 인가(人家)가 연속(連續)하고,
분(粉) 칠한 넓은 담에 고래등 같은 큰 집을
황금(黃金)과 적홍(赤紅)으로 공교(工巧)히 꾸몄으며,
삼신산(三神山) 금궐운대(金闕雲臺) 진실(眞實)로 여기로다.
일 리(一里)는 겨우 가서 날이 벌써 저문지라
양안(兩岸)에 등촉(燈燭) 빛이 삼십 리(三十里)에 벌렸으니,
장건지(張堅之) 승사(乘槎)하고, 은하(銀河)로 올라갈 때
좌우의 성신(星辰)들이 이같이 껴 있던가.
우리나라 팔일 관등(八日觀燈) 오희(於戱)라 하리로다.
하 장(壯)하고 끔찍하니, 한 붓에 못 그치리라.
강 위에 나무다리 무지개 모양으로
반공(半空)에 떠 있는데, 이 층각(二層閣) 금루선(金樓船)이
그 아래로 들어가니, 그 높기는 알리로다.
그리 많은 도리 기둥 삼목(杉木)으로 널을 하여
사면(四面)으로 대어 놓고, 쇠못을 박았으니,
비와 물에 상하면, 다른 널로 고쳐 하니,
아무리 연구(年久)하나, 전혀 썩지 아니하매
다리를 보게 되면, 연목(連木)한 데 틈이 없어
대패로 민 듯하며, 한 나무로 한 듯하며
난간(欄干)을 하였으되, 기둥 세고 중방 들여
적동(赤銅)으로 편쇠 치어 중방마다 장식(裝飾)하고,
큰 항만한 주저리를 가마 꼭지 모양으로
기둥마다 덮었으니, 기묘(奇妙)하고 사치하다.
백사십 리(百四十里) 대판성(大坂城)을 삼경량(三更量)에 들어가니,
섭진주(福津州)에 속하였고, 강(江) 이름은 낭화(浪華)로다.
예부터 제술관(製述官)이 국서(國書)배에 오르더니,
이번에 남시온(南時韞)이 사집(士執)과 원자재(元子才)로
복선(一卜船)에 앉았다가 국서선(國書船)에 못 올라서
뒤떨어져 있는지라. 불쌍하기 끝이 없다.
하륙(下陸)함을 청(請)하거늘, 삼사상(三使相)을 모시고서
본원사(本願寺)로 들어갈 때 길을 낀 여염들이
접옥(接屋) 연장(連墻)하고, 번화(繁華) 부려(富麗)하여
아국(我國)의 종로(鐘路)보다 만 배(萬)나 더하도다.
발도 걷고 문도 열고, 난간(欄干)도 의지(依支)하며,
마루에 앉았으니 이 집 안에 가득하고,
기둥에 매었으되, 어른은 뒤에 앉고,
아이는 앞에 앉아 일시(一時)에 굿을 보되
그리 많은 사람들이 한 소리를 아니하고,
어린아이 혹 울면 손으로 입을 막아
못 울게 하는 거동 법령(法令)도 엄(嚴)하도다.
나 탄 말이 크고 높고, 놀라고 사나워서
소리하고 뛰놀아서 거의 낙상(落傷)할 뻔하니,
이 앞 육로(陸路) 천여 리(千餘里)를 어이 갈까 염려(念慮)로다.
관소(館所)로 들어가니, 그 집이 웅걸(雄傑)하여
우리 나라 대궐(大關)보다 크고 높고 사려(奢麗)하다.
임도사(任都事) 오선전(吳宣傳)과 한 방(房)에 함께 드니,
미농태수(美濃太守) 관반(館件)으로 대령(待令)하여 영접(迎接)한다.
섭진주(灄津州) 대판성(大坂城)은 평수길(平秀吉)의 도읍(都邑)이라.
사던 데 복견성(伏見城)이 동편(東便)에 멀지 않았구나.
옛일을 생각하니, 성난 털이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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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일 일 사시량(巳時量)에 정부종(正副從) 삼사상(三使相)이
숙공(宿供)을 받으려고 연향청(宴饗廳)에 나 앉으니,
음식(飮食)을 들이는데, 무비기괴(無非奇怪) 궤휼(饋恤)하다.
전복 문어(全鰒文魚) 온갖 것을 한 데 무쳐 아로새겨
과즐 괴듯 둥그렇게 자[尺]이나 괴었으니,
오색(五色)으로 여럿이요, 모양이 한과(韓菓) 같다.
떼어먹어 보려 하니, 떨어지지 아니하네.
물가의 도요새를 죽은 것을 갖다 가서
두 날개에 금(金)을 올려 벌려 집어 놓았으니,
잡은 지 오랜지라 구린내 참혹(慘酷)하다.
가재라 하는 것은 생(生)으로 놓았으되,
모양은 대하(大蝦) 같고, 크기는 매우 크다.
다섯 치[寸]나 긴 나룻에 금(金)을 올려놓았으며,
그밖에 이름 없는 온갖 것을 벌였으되,
그 수(數)는 수십(數十)이오, 먹을 것 전혀 없다.
그중에 가화 가송(假花假松) 실제(實際) 것과 많이 같다.
미농수(美濃守)와 두 봉행(奉行)이 와서 보고 나간 뒤에
도주 정승(島主酊僧) 와 뵈는데, 예법(禮法)은 전과 같아.
저녁에 삼문사(三文士)가 비로소 들어오니,
상방(上房)에 수책(受責)하니, 소견(所見)에 송민(悚憫)하다.
우리 숙공(宿供) 받아보니, 일양(一樣)으로 기괴(奇怪)하다.
이십이 일 병(病)이 들어 하처(下處)에 누웠으니,
수없는 왜시(倭詩)들이 산처럼 쌓이거늘,
강질(强疾)하여 지어 주니, 기운(氣運)이 어렵구나.
오칠율(五七律) 절구(絶句)와 고시 배율(古詩排律) 합하여서
다 주어 세어 보니, 일백삼십여 수(一百三十首)로다.
초지(草紙)에 대어 놓고 바로 써서 주었기에
중초(重抄)에 건질 때에 반 넘어 잊을로다.
날마다 이러하면, 사람이 못 견딜세.
북산호(北山皓)라 하는 사람 글과 인물(人物) 으뜸이다.
윤필(潤筆)하러 가져온 것 연로(沿路)에 받지 않았더니,
여기는 도회처(都會處)라 부귀(富貴)한 이 많은지라
온갖 것을 가져오되, 그 수가 풍성(豊盛)하다.
전과 같이 도로 주니, 그중에 한 선비가
이마에 손을 얹고, 백 번(百番)이나 간청하고,
손 묶어 부비는 양 소견(所見)이 지성(至誠)이매,
인정(人情)에 하릴없어 먹 한 장 가지고서
그밖은 내어주고, 우리나라 종이 필묵(筆墨)
답례(答禮)로 많이 주니, 저도 나와 같이
먹 하나 가지고서 그 밖은 도로 준다.
미농수(美濃守)의 하처(下處) 곁에 높은 난간(欄干) 위에 앉아
사면(四面)을 바라보니, 지형(地形)도 기절(奇絶)하고,
인호(人戶)도 많을시고, 백만(百萬)이나 되어 뵌다.
우리나라 도성(都城) 안은 동(東)에서 서(西)에 오기
십 리(十里)라 하지마는 채 십 리(十里)가 못 되는데,
부귀(富貴)한 재상(宰相)들도 백간(百間) 집이 금법(禁法)이요,
다 모두 흙 기와를 이었어도 장(壯)타는데,
장(壯)할손 왜놈들은 천간(千間)이나 지었으며,
그중에 호부(豪富)한 놈 구리 기와 이어 놓고,
황금(黃金)으로 집을 꾸며 사치(後)키 이상(異常)하고,
남(南)에서 북(北)에 오기 백 리(百里)나 거의 되되,
여염이 빈틈없이 담뿍이 들었으며,
한가운데 낭화강(浪華江)이 남북(南北)으로 흘러가니,
천하(天下)에 이러한 경(景) 또 어디 있단 말고.
북경(北京)을 본 역관(譯官)이 행중(行中)에 와 있으되,
중원(中原)의 장려(壯麗)하기 이에서 낫지 않다네.
이러한 좋은 세계(世界) 해외(海外)에 배판(排判)하고,
더럽고 못쓸 씨로 구혈(九穴)을 삼아 있어
주평왕(周平王) 때 입국(立國)하여 이때까지 이천 년(二千年)을
흥망(興亡)을 모르고서 한 성(姓)으로 전(傳)하여서
인민(人民)이 생식(生殖)하여 이처럼 번성(繁盛)하니,
모를 이(理)는 하늘이라. 가탄(可歎)하고 가한(可恨)이라.
제 나라 귀가 부녀(貴家婦女) 곁집에 다닐 때에
바지 아니 입었기에 서서 오줌 누게 되면,
제 수종(隨從) 그 뒤에서 명주 수건(明細手巾) 가졌다가
손으로 씻겨 주니, 들으매 해연(駭然)하다.
제 형(兄)이 죽은 뒤에 형수(兄嫂)를 계집 삼아
데리고 살게 되면, 착하다고 기리는데,
제 아우는 길렀다고, 제수(弟嫂)는 못한다네.
예법(禮法)이 전혀 없어 금수(禽獸)와 일반(一般)이라.
대저한 저 평수길(平秀吉)이 사납고도 강성(强盛)하여
높은 산 낮다 하고, 낮은 산 높게 하고,
바른 물은 굽게 하고, 굽은 물은 곧게 하니,
물 하나 산 하나를 고이 둔 것 전혀 없고,
살인(殺人)으로 여마(如麻)하며, 인국(隣國)을 침노(侵擄)하고,
대명(大明)을 범(犯)하려니, 제 어이 망치 않으리.
번화(繁華)하기 제일(第一)이요, 인물(人物)이 모인지라
문사(文士)도 많거니와 호걸(豪傑)도 있다 하네.
서경(西京)서 가번장로(加番長老) 우리를 데리고서
강호(江戶)로 들어가려 예 와서 기다리네.
이십삼일 식전(食前)부터 왜놈이 무수(無數)히 와
필담(筆談)이 난감(難堪)하고, 수창(酬唱)도 지긋지긋하다.
병들어 어려우나, 나라에서 보낸 뜻이
이놈들을 제어(制御)하여 빛 있게 하심이라.
병이 비록 중(重)할 진들 어이 아니 지어 주리.
일생(一生) 힘을 다 들여서 풍우(風雨)처럼 휘쇄(揮灑)하니,
겨우 다 차운(次韻)하면, 품속에서 다시 내어
여러 놈이 함께 주면, 턱에 닿게 쌓이는가.
또 지어 내치면, 또 그처럼 내어놓네.
노병(老病)한 이 내 근력(筋力) 시진(澌盡)할까 싶었도다.
젊었을 때 같게 되면, 그 무엇이 어려울꼬.
우리를 보려 하고, 이삼천 리(二三千里) 밖의 놈이
양식(糧食) 싸고 여기 와서 다 엿 달씩 묵었으니,
만일(萬一) 글을 아니 주면, 낙막(落寞)하기 어떠할꼬.
무론 노소(毋論老少) 귀천(貴賤)하고, 다 모두 지어 주니,
이러므로 우리 역사(役事) 밤낮으로 쉴 때 없네.
남성원(南成元) 삼료(三僚)들도 이처럼 어렵다네.
이십사 일 이십오 일은 본원사(本願寺)에 머무니라.
이날도 글짓기를 어제같이 무수(無數)하다.
이십육일 해 높으니, 삼사상(三使相)이 배를 탈 때
나는 먼저 가마 타고, 금선(金船)에 가 기다리니,
다섯 배 격군(格軍)들과 머무는 선장(船將)들이
여기서 머물고서 못 따라 가는지라
선두(船頭)에서 배별(拜別)하고, 함루(含淚)하고 나섰으니,
처음에 배에 내려 왜선(倭船)으로 내릴 때에
마음에 좋지 않아 집 떠날 때 퍽 같더니,
이것들 두고 가니, 더욱 섭섭할 세라.
전과 같이 종사상(從事相)과 한 배에 올라앉아
누(樓) 위에 의지(依支)하여 두 편을 바라보니,
어와, 장(壯)할시고. 구경꾼이 끔찍하다.
줄 매어 끄을기는 전번과 같지마는
아롱옷 입은 왜놈 여남은이 배에 올라
상앗대를 각각 들고, 좌우로 지르면서
곡조(曲調)를 늘어지게 뱃노래를 함께 하니,
그 소리 청원(淸遠)하여 들음직하다 할세.
날 새도록 배를 끌어 역수(逆水)하여 올라갈 때
행중(行中)의 제인들이 침구(寢具) 하나 아니 왔네.
종사상(從事相)의 천릭(天翼) 덮고, 옷 입은 채 누워 자니,
비로소 해 돋은 뒤 평방(平方)으로 겨우 오니,
오십 리(五十里)는 와 있으며, 기이주(紀伊州)라 하는구나.
이십칠 일 사상(使相)네가 관소(館所)에 잠깐 내려
숙공(宿供) 받고 잠깐 쉬어 저물도록 행선(行船)하여
정포(淀浦)로 올라오니, 여염도 즐비(櫛比)하며,
물가에 성(城)을 쌓고, 경개(景槪)가 기이(奇異)하다.
물속에 수기(水器) 놓아 강물을 자아다가
홈으로 인수(引水)하여 성(城)안으로 들어가니,
제작(製作)이 기묘(奇妙)하여 본받음 직 하구나야.
그 수기(水器) 자세히 보니, 물레를 만들어서
좌우에 박은 살이 각각 스물여덟이요,
살마다 끝에다가 널 하나씩 가로 매어
물속에 세웠으니, 강물이 널을 밀면,
물레가 절로 도니, 살 끝에 작은 통(桶)을
놋줄로 매었으니, 그 통(桶)이 물을 떠서
돌아갈 때 올라가면, 통 아래 말뚝 박아
공중(空中)에 나무 매어 말뚝이 걸리면,
그 물이 쏟아져서 홈 속으로 드는구나.
물레가 빙빙 도니, 빈 통이 내려와서
또 떠서 순환(循環)하여 주야(晝夜)로 불식(不息)하니,
인력(人力)을 아니 들여 성가퀴 높은 위에
물이 절로 넘어가서 온 성(城)안 거민(居民)들이
이 물을 받아먹어 부족(不足)들 아니하니,
진실(眞實)로 기특(奇特)하고, 묘(妙)함도 묘(妙)할시고.
지명(地名)은 하내주(河內州)요, 사십 리(四十里)와 있구나.
이십팔일 발행(發行)할 때 수백필(數百匹) 금안준마(金鞍駿馬)
중하관(中下官)을 다 태우니, 기구(器具)도 장(壯)하구나.
각방(各房)의 노자(奴子)들도 호사(豪奢)가 참람(僭濫)하다.
좌우에 쌍견마(雙肩馬)요, 한 놈은 우산(雨傘) 받고,
두 놈은 부축하고, 담배 기구(器具) 한 놈 들고,
한 놈은 등불 들고, 한 놈은 그릇 메어
한 사람이 거느린 수(數) 여덟씩 들었구나.
나하고 삼 문사(三文士)는 가마 타고 먼저 가니,
금안(金鞍) 지은 재고 큰 말, 거듭말로 앞에 섰다.
여염도 왕왕(往往) 있고, 흔할 손 죽전이라.
토지(土地)가 기름져서 전답(田畓)이 매우 좋네.
이십 리(二十里) 실상사(實相寺) 가 삼사상(三使相) 조복(朝服)할 때
나는 내리지 않고, 왜성(倭城)으로 바로 가니,
인민(人民)이 부려(富麗)하기 대판(大坂)만은 못하여도
서(西)에서 동(東)에 가기 삼십 리(三十里)라 하는구나.
관사(館舍)는 본룡사(本龍寺)요, 오층(五層) 문루(門樓) 위에
여남은 구리 기둥 운소(雲霄)에 닿았구나.
수석(水石)도 기절(奇絶)하고, 죽수(竹樹)도 유취(幽趣) 있네.
왜황(倭皇)이 사는 데라 사치(奢侈)가 측량(測量) 없다.
산형(山形)이 웅장하고, 수세(水勢)도 환포(環抱)하여
옥야 천리(沃野千里) 생겼으니, 아깝고 애달픈 손
이리 좋은 천부금탕(天府金湯) 왜놈의 기물(器物)되어
칭제 칭왕(稱帝稱王)하며, 전자 전손(傳子傳孫)하니,
개돝 같은 비린 유(類)를 다 모두 소탕(掃蕩)하고,
사천 리(四千里) 육십 주(六十州)를 조선(朝鮮) 땅 만들어서
왕화(王化)에 목욕(沐浴) 감겨 예의국(禮儀國) 만들고자.
삼대(三代)를 효칙(效則)하여 세습(世襲)하는 법(法)이 있어
무론 현우(毋論賢愚)하고, 맏자식이 서는지라.
둘째 셋째 나는 이는 비록 영웅(英雄) 호걸(豪傑)이나,
범왜(凡倭)와 한가지로 벼슬을 못하기에
으뜸으로 중[僧]을 헤고, 그 다음 의원(醫員)이라.
적으나 잘난 놈은 중[僧] 의원(醫員) 다 된다네.
왜황(倭皇)은 괴이하여 아무 일도 모르고서
병농형정(兵農刑政) 온갖 것을 관백(關白)에 맡겨 두고,
간여(干與)하는 일이 없어 궁실 화초(宮室花草) 치레하고,
보름은 재계(齋戒)하고, 보름은 주색(酒色)하여
딸이나 아들이나, 맏 것이 선다 하네.
지금도 섰는 왜황(倭皇) 여주(女主)라 하는구나.
사행(使行)이 들어올 때 굿 본다 하올 때는
범왜(凡倭)와 같은지라. 몰라보니 애달프도다.
관소(館所)가 요란(搖亂)커늘 임오이(任吳李) 세 비장(裨將)과
문밖에 하처(下處)하니, 밤을 한 데 자게 되니,
왜시(倭詩)가 많이 오되, 식가(息暇)로 아니하다.
평안(平安)사람 원희(願喜)란 왜(倭) 미농지(美濃紙) 백축(百軸)하고,
북국 시례 나무잔을 윤필(潤筆)하매 도로 주다.
근강주(近江州)에 속하였고, 삼십 리(三十里) 와 있구나.
이십구일 발행(發行)하여 삼십 리(三十里) 대진(大津) 중화(中火)
여염이 즐비(櫛比)하여 십 리(十里)에 연(連)하였고,
거룩할 손 비파호(琵琶湖)가 근원(根源) 없이 절로 뚫려
삼백 리에 고였으니 깊고 멀기 바다 같고
이 물이 흘러가서 낭화강(浪華江)이 되었어라.
태수(太守)가 사는 데가 호수(湖水)를 압림(壓臨)하여
분첩(粉堞)이 표묘(縹緲)하고, 누각(樓閣)이 장려(壯麗)하여
경개(景槪)가 절승(絶勝)하니 왜놈 주기 아깝도다.
나무다리 둘을 지나 오십 리(五十里) 잠깐 가니,
우리 하처(下處) 유벽(幽僻)하여 죽림(竹林)이 기특(奇特)하다.
여기도 근강주(近江州)요, 팔십 리(八十里) 와 있구나.
그믐날 일출시(日出時)에 인간(寅間)으로 향(向)하여서
사십 리(四十里) 팔번산(八幡山) 가 중화(中火)하고 길을 떠나
언근성(彦根城) 들어가니, 시정(市井)과 여염들이
대판성(大坂城) 버금이요, 육십 리(六十里) 또 왔구나.
이월 초일일(初一日)은 비 맞고 발행(發行)하여
답침령(褟針嶺) 올라가니 망호정(望湖亭) 게 있으니,
호수(湖水)를 부림(俯臨)하여 경치(景致)가 절승(絶勝)하되,
비 오기에 못 오르니, 올 때나 보리로다.
예서부터 길 닦이되, 두 편에 언덕을 싸서
기추(騎芻) 쏘는 혁통(革筒) 같고, 언덕에 솔을 심어
몇 백 년(百年) 되었는지 두세 아름 되는구나.
일천(一千) 삼백 리(三百里)를 강호(江戶)까지 벌었는데,
그 속을 들어가니, 장(壯)함도 장(壯)하구나.
저물도록 가는 길이 산곡(山谷)으로 가는구나.
길가에 성천(醒泉) 있어 정자(亭子) 있고 경(景)도 좋아
전어관(傳語官) 먼저 와서 구경하고 가라 하되,
가마에 내렸다가 잃을까 염려(念慮)하여
칭병(稱病)하고 아니 내려 금수(今須)로 바로 오니,
열없는 조도사(曺都事)는 구경하러 내렸다가
탔던 가마 잃어버려 낭패(狼須)하다 하는구나.
우리의 하처(下處) 이름 등포관(藤舖館)이라 하네.
가마에 겨우 내려 숨도 미처 못 쉬어서
왜(倭) 선비 대엿 놈이 서로 갈며 글을 들여
차운(次韻)하라 보채거늘 종이 펴고 먹을 갈아
담배 한 대 먹을 동안 여덟 수(首)를 내리 쓰니,
그중에 전승산(田勝山)이 글 쓰는 양 바라보고,
필담(筆談)으로 써서 뵈되, “전문(傳聞)에 퇴석 선생(退石先生)
쉬 짓기를 유명(有名)터니, 선생(先生)의 쓰는 재주
일생(一生) 처음 보았으니, 엎드려 묻자오니,
필연(必然)코 귀한 별호(別號) 퇴석(退石)인가 하나이다.”
내 웃고 써서 뵈되, “늙고 병든 둔(鈍)한 글을
포장(褒獎)을 과(過)히 하니, 수괴(羞愧)키 가이없다.”
승산(勝山)이 고쳐 하되, “소국(小國)의 천(賤)한 선비
세상(世上)에 났삽다가 장(壯)한 구경하였으니,
저녁에 죽사와도 여한(餘恨)이 없다.” 하고,
어디로 나가더니, 또다시 들어와서
아롱보에 무엇 싸고, 삼목궤(衫木櫃)에 무엇 넣어
이마에 손을 얹고, 엎드려 들이거늘
받아 놓고 피봉(皮封) 보니, 봉(封)한 위에 쓰였으되,
각색 대단(各色大緞) 삼단(三緞)이요, 사십삼 냥(四十三兩) 은자(銀子)로다.
놀랍고 어이없어 종이에 써서 뵈되,
“그대 비록 외국(外國)이나, 선비 몸으로서
은화(銀貨)를 갖다 가서 글 값을 주려 하니,
그 뜻은 감격(感激)하나, 의(義)에 크게 가(可)치 않아
못 받고 도로 주니, 허물치 말지어다.”
승산(勝山)이 부끄러워 백번이나 정사(呈辭)하고,
고쳐 써서 하온 말이 “예부터 성현(聖賢)네도
제자(弟子)의 수수(授受禮)는 다 받아 계오시니,
소생(小生)이 이것을 폐백(幣帛)을 하옵고서
제자(弟子) 되기 원(願)하나니 물리치지 마옵소서.”
“수수(授受)라 하는 것은 포육(脯肉)으로 하는지라.
어디서 은단(銀緞)으로 폐백(幣帛)을 한단 말고.
성현(聖賢)네 계시어도 받을 리 만무(萬無)하고,
내 무슨 재덕(才德)으로 그대의 스승 될까.
주고받기 다 그르니, 잡말 말고 가져가라.”
승산(勝山)이 도로 나가 감자 설탕(柑子雪糖) 가지고 와
지성(至誠)으로 권(勸)하기에 조금씩 맛을 보고,
행중(行中)의 시전지(詩箋紙)를 열 장으로 답례(答禮)하다.
이윽고 삼문사(三文士)가 차례(次例)로 들어오니,
나는 글 다 지었기에 그리로 가는구나.
삼방(三房)에 얼른 다녀 점심 먹고 길 떠나서
이십 리(二十里)는 겨우 가서 날 저물고 대우(大雨) 하니,
길이 질기 참혹(慘酷)하여 미끄럽고 쉬는지라
가마 멘 놈 다섯이 서로 가며 체번(遞番)하되,
갈 길이 전혀 없어 언덕에 가마 놓고,
이윽히 주저(躊躇)하고, 갈 뜻이 없는지라.
사면(四面)에 돌아보니, 천지(天地)가 어둑하고,
일행(一行)들은 간데없고, 등불(燈-)은 꺼졌으니,
지척(咫尺)을 불분(不分)하고, 망망(茫茫)한 대야중(大野中)에
말 못하는 왜놈들만 의지(依支)하고 앉았으니,
오늘 밤 이 경상(景狀)은 고단(孤單)코 위태(危殆)하다.
교군(轎軍)이 달아나면, 낭패(狼須)가 오죽할까.
그놈들의 옷을 잡아 흔들어 뜻을 뵈고,
가마 속에 있는 음식(飮食) 갖가지로 내어주니,
지저귀며 먹은 후(後)에 그제야 가마 메고
촌촌(寸寸)이 전진(前進)하여 곳곳에 가 이러하니,
만일 음식(飮食) 없었다면, 필연(必然)코 도주(逃走)할세.
삼경량(三更量)은 겨우 하여 대원성(大垣城)을 들어가니,
두통(頭痛)하고 구토(區吐)하여 밤새도록 대통(大痛)한다.
닭 울 때에 한흥(汗興)이가 겨우 들어왔으되,
침구(寢具)는 떨어져서 못 미쳐 왔는지라
임도사(任都事) 오선전(吳宣傳)의 천릭(天翼)을 빌어 덮다.
이날 낭패(狼須)키는 일행(一行)이 다 그러해
육십 리(六十里)와 중화(中火)하고, 또 오십 리(五十里) 와 있으니,
오늘은 길 헤어 보니, 백십 리(百十里)는 되는구나.
금수(今須)와 대원성(大垣城)이 다 모두 미농주[美濃州]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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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일(初二日) 대마도주(對馬島主) 봉행(奉行)으로 말 보내되,
어제 비에 대수(大水)져서 다리들이 다 떴으니,
오늘 고쳐 중수(重修)하고 내일이야 가리라네.
가번장로(加番長老) 이정승(以酊僧)이 각각 예물(禮物) 보내었네.
우리도 선자 필묵(扇子筆墨) 답례(答禮)하여 보내니라.
내 병은 채 낫지 않고, 왜시(倭詩)는 무수(無數)하니,
수응(酬應)하기 어려우나, 지어 줄 밖 하릴없다.
초삼일(初三日) 인시말(寅時末)에 정사상(正使相)이 뒤를 따라
기천(起川)을 건너갈 때 물 크기 강(江)만하고,
기소산[木會山]서 발원(發源)하여 남(南)으로 수백 리(數百里) 가
바다에로 든다 하네. 비 후(後)에 대창(大漲)하니,
배다리 놓았는데, 백여 척(百餘隻) 배를 모아
물 가운데 닻을 주어 느런히 세워 놓고,
그 위에 널을 깔고, 다래 넝쿨 칡넝쿨
삼겹으로 바를 들여 다리만큼 크게 하여
널 머리를 지자르고, 팔뚝만한 쇠사슬과
크고 큰 짚 동아줄 한 가지로 눌러 놓고,
쇠못을 박았으며, 밧줄로 매었으니,
그 위에로 뭇 인마(人馬)가 평지(平地)처럼 건너가니.
이렇게 큰 다리를 또 둘을 건너가니,
팔십 척(八十隻)도 들었으며, 칠십 척(七十隻)도 들었구나.
주고천(洲股川) 건너가기 일양(一樣)으로 배다리라.
주고(洲股)와 점심하니, 오십 리(五十里) 왔구나야.
올 때에 마두(馬頭)놈이 국서(國書)를 범마(犯馬)하니,
우리나라 기수(旗手)놈이 하마(下馬)하라 꾸짖어도
하마(下馬)도 아니하고, 기수(旗手)를 구타(毆打)하니,
사신(使臣)네 통분(痛憤)하여 길을 아니 떠나고서
수역(首譯)을 보내어서 이 사연(事緣) 기별(奇別)하니,
도주(島主)가 대답하되, “그놈이 쾌씸하되,
앞 참(站)에 가 있으니, 저녁에 가 치죄(治罪)함세.”
사상(使相)네 들으시고, 부득이(不得已) 발행(發行)하여
개울과 나무다리 무수(無數)히 건너가니,
성천(醒泉)부터 여기 오기 재 하나가 전혀 없고,
가 없는 들 속으로 저물도록 나아가니,
인가(人家)가 연락(連絡)하여 거의 서로 닿았구나.
육십 리(六十里) 명호옥(鳴護屋)을 초경말(初更末)에 들어오니,
번화(繁華)하고 장려(壯麗)하기 대판성(大坂城)과 일반(一般)이라.
밤빛이 어두워서 비록 자세히 못 보아도
산천(山川)이 광활(廣闊)하고, 생치(生齒) 이 번성(繁盛)하며,
전답(田畓)이 기름지고, 가사(家舍)에 사치(奢侈)하기
일로(一路)에 제일(第一)이라, 중원(中原)에도 흔치 않으니,
우리나라 삼경(三京)을 갸륵다 하건마는
예 비하여 보게 되면, 매몰(昧沒)하기 가이 없네.
서시(徐市)가 처음으로 여기 도읍(都邑)하였기에
칠서(漆書)도 그냥 있고, 서복사(徐福祠)도 있다 하네.
어디인지 모르기에 못 가보니 애연(哀然)하구나.
인물(人物)이 명미(明媚)하여 연로(沿路)에 으뜸이라.
그중에 계집들이다 모두 일색(一色)이다.
샛별 같은 두 눈치와 주사(朱砂) 같은 입술과
낯 색은 백옥(白玉) 같고, 눈썹은 나비 같고,
삐오기 같은 손과 매미와 같은 이마
얼음으로 새겼으며, 눈으로 뭉쳐 낸 듯
사람의 혈육(血肉)으로 저리 곱게 생겼는고.
조비연(趙飛燕) 양태진(楊太眞)을 만고(萬古)에 일컬으나,
예다가 놓았으면, 응당(應當)히 무색(無色)하리.
월녀(越女) 천하백(天下白)이 진실(眞實)로 옳을시고.
우리 나라 복색(服色)으로 칠보장엄(七寶莊嚴)을 하여 내면,
신선(神仙)인 듯 귀신(鬼神)인 듯 황홀난측(恍惚難測) 하리로다.
관소(館所)도 웅장(雄壯)하고, 접대(接待)도 거룩하다.
무수(無數)한 왜시(倭詩)들이 많이 들어와 있으되,
내 몸이 많이 아파 다만 둘만 차운(次韻)하고,
저녁밥 못 먹어서 임도사(任都事)와 한 데 자다.
지명(地名)은 미장주(尾張州)요, 태수(太守)가 사는 데라.
초사일(初四日) 삼십 리(三十里)가 명해(明海) 가 중화(中)하고,
삼십 리(三十里) 다옥(茶屋)에 가 사신(使臣) 네가 잠깐 쉬되,
나는 먼저 바로 가서 널다리[板橋] 큰 강 건너
또 삼십 리(三十里) 행(行)하여서 강기성문(岡崎城門) 들어가니,
여염의 성장(盛壯)하기 대진(大津)과 마치 같다.
진 서시(秦徐市) 여기 와서 하륙(下陸)한 곳이기에
열전궁(熱田宮) 있다 하되, 어디인지 모를러라.
초오일(初五日) 삼십 리(三十里) 가 길전(吉田) 가 중화(中火)할 때,
예부터는 협중(峽中)이라 생리(生利)가 부족(不足)하여
인가(人家)도 소조(蕭條)하고, 의복(衣服)도 남루(襤褸)하다.
이 땅 선비 관시헌(菅時憲)이 도원태수(稻垣太守) 영(令)을 받아
관소(館所)에 와 영후(迎候)하고, 이칠률(二七律) 들이거늘
주필(走筆)하여 지어주고, 큰 들을 지나가서
큰 강 하나 건너가니, 나무다리 놓았으되,
백간(百間)이나 넉넉하고, 낭화강(浪華江)만 하는구나.
길전(吉田)으로 들어가니, 날이 거의 저물었다.
칠십 리(七十里)와 있으며, 준하주(駿河州) 땅이라네.
초육일(初六日) 개명시(開明時)에 가마 타고 먼저 나서
협로(峽路)로 들어가니, 전토(田土)가 척박(瘠薄)하여
길가에 비는 사람 곳곳이 있구나야.
사십 리(四十里)는 겨우 와서 바닷가에 내달으니,
물빛과 하늘빛이 만 리(萬里)에 가이없어
마도(馬島) 일기(壹岐) 바다보다 크고 멀고 퍼러하니,
부상국(扶桑國) 대인국(大人國)이 멀지 아니하리로다.
또 십 리(十里) 황정(荒井) 가서 중화(中火)하고 내달리니,
전참 인마(前站人馬) 돌아가고, 하나도 없는지라.
소위(所謂) 금절하(金絶河)가 두 살 바탕 겨우 되니,
일행(一行)의 명무(名武)들이 다 주어 걸어가되,
우리는 가마 타고 앞참까지 가는지라
물가에 다다르니, 작은 배가 무수(無數)하매,
나하고 이언진(李彦瑱)이 한 배 타고 건너가니,
풍세(風勢)가 맹렬(猛烈)하여 매우 심히 괴롭지만,
물 깊기 반 길이라, 이것이 기쁘도다.
강 너비 십여 리(十餘里)요, 건넌 쪽 좌우편(左右便)에
돌로 언덕을 높이 쌓고, 십여 리(十餘里)나 거의 한데,
그 속으로 배를 띄워 상앗대로 질러가네.
김동명(金東溟) 여기 와서 왜놈 주던 금(金)과 은(銀)을
물속에 다 던지고, 빈손으로 돌아오니,
옛사람의 맑은 바탕 뉘 아니 흠모(欽慕)하리.
언덕에 내린 뒤에 인마(人馬)를 체파(遞派)하니,
자연(自然)히 더딘지라. 해 질 녘에 길을 떠나
송음죽수(松陰竹樹) 모유형문(茅牖荊門) 좌우(左右) 옆에 길이 끼고,
사십 리(四十里) 지나가서 빈송(濱松) 가 숙소(宿所)할 때
임오(任吳) 두 비장(裨將)과 한 데서 밤을 쉬다.
초칠일(初七日) 청명(淸明)하니, 사십 리(四十里) 견부(見付) 갈 때
여염도 연(連)하였고, 송죽(松竹)도 총울(蔥鬱)하다.
한 큰 내를 건너가니, 일흔두 척 왜선(倭船)으로
다리를 하였으되, 주고(洲股)와 한가지다.
점심하고 길을 나니, 넓은 들이 평연(平然)하다.
부사산(富士山)이 뵌다 하되, 운애(運靉)하여 못 보겠다.
사십 리(四十里) 괘천(掛川) 오니, 일포시(日晡時)는 되었구나.
인가(人家)의 번성(繁盛)하기 명호옥(鳴護屋)만 못하구나.
황정(荒井)서 여기 오기 원강주(遠江州) 땅이라네.
초팔일(初八日) 마도주(馬島主)가 봉행(奉行)하여 말 보내되,
이 앞에 대정천(大定川)이 물 많아 못 건너니,
내일(來日) 가자 하였으되, 궁금하고 심란(心亂)하다.
지월장로(指月長老) 여섯 제자(弟子) 언녕동자(彦寧童子) 방군영이
글 스물이 와 있거늘 주필(走筆)로 색책(塞責)하다.
초구일(初九日) 청명(晴明)하매, 평명(平明)에 길을 떠나,
두어 영(嶺) 넘어가서 금곡(金谷) 가 중화하고,
오 리(五里)는 넘어가서 어제 건넌 대정천(大定川)이
부사산(富士山)서 내려오고, 수세(水勢)가 신급(迅急)하여
배다리 할 길 없어 물로 바로 가게 되니,
문짝 같은 널에다가 가마처럼 틀을 하여
그리 많은 복물(卜物)들과 일행(一行) 제인(諸人)들을
그 위에 얹어다가 건너편에 내려놓고,
우리 탄 가마들은 틀 위에 싣고 매어
건장(健壯)한 십여 명(十餘名)이 부축하여 건너가서
삼십 리(三十里) 등지(藤只) 가니, 준하주(駿河州)라 하는구나.
초십일(初十日) 경인일(庚寅日)에 일출시(日出時)에 발행(發行)하여
들 지나고 뫼로 들어 우진령(宇津嶺) 넘어가서
안부천(安部川) 내달으니, 부사산(富士山)서 내려오고,
다리 또 없는지라 나무틀에 건너기를
대정천(大定川)과 같이하여 준하주(駿河州) 보태사(寶泰寺) 가
중화하고 내달리니, 비가 많이 오는지라
지세(地勢)가 광활(廣閣)하고, 여염이 부성(富盛)하기
명호옥(鳴護屋)에 비하면은 둘째는 가리로다.
영(嶺) 위에 다옥(茶屋) 있어 삼사신(三使臣) 잠깐 쉬어
강고(江尻)로 들어가니, 오전(午前)은 오십 리(五十里)요,
오후(午後)는 삼십 리(三十里)니, 팔십 리(八十里) 왔구나야.
우진령(宇津嶺) 서쪽 땅은 원강주(遠江州)에 속하였고,
우진령(宇津嶺) 동편 땅은 준하주(駿河州)에 속하였다.
십일 일 대우(大雨)하되, 비 맞고 작작하다.
오른편에 대해(大海) 끼고, 십여 리(十餘里)는 지나가서
길가의 청견사(淸見寺)에 일만 매화(一萬梅花) 뜰에 심어
바야흐로 만발(滿發)하고, 경(景)이 많이 좋다 하되
퍼붓듯이 비가 오니, 가 볼 길 전혀 없다.
살타현(薩陀峴) 바로 넘어 큰 다리 하나 건너
사십 리(四十里) 지나가서 부사천(富士川) 다다르니,
물이 매우 대창(大漲)하여 겨우 하여 건너가서
또 십여 리(十餘里)는 넘게 가서 길원(吉原)으로 들어가니,
일행(一行)의 모든 사람 다 모두 젖었으되,
나는 홀로 입은 의복(衣服) 물 한 점이 없는지라.
가마 탄 큰 효험(效驗)을 오늘이야 알리로다.
동행(同行)들 부러워하니 우습고 다행(多幸)하다.
도주(島主)는 벌써 가고 비는 더욱 크게 오니,
전진(前進)할 길이 전혀 없어 예서 자려 정(定)했지만,
이불 실은 짐바리 어디 간 줄 모르노라.
사집(士執)은 제 이불을 날 빌려 덮게 하고,
저는 그저 누워 자니 마음이 불안하다.
풍우(風雨)가 대작(大作)하여 상부방(上副房) 못 다니고,
종사상(從事)께 잠깐 다녀 인하여 잠을 드니,
십이일 해 돋은 뒤 대풍(大風)에 발행(發行)하여
큰 다리 하나 지나 이윽히 잠깐 쉬어
오십 리(五十里) 삼도(三島) 가니, 날이 많이 늦은지라.
부사산(富士山) 밑이로되 운애(運靉)가 듬뿍 끼여
진면목(眞面目)을 못 볼러니 구름 걷고 비 갠 뒤에
아침에 바람 부니 백련화(白蓮花) 한 송이가
반은 핀 모양이요 백설(白雪)이 차아(嵯峨)하여
몇 길이 쌓였는지 검은 데가 전혀 없어
혼후(渾厚)하고 고대(高大)하여 운소(雲霄)에 닿았으니,
기관(奇觀)이라 하려니와 전 사람의 일기(日記)와는
수 층(數層)이나 떨어지되 여기 사람 기리기는
천하(天下) 명산중(名山中)에 비할 데 없다 하니,
정중와(井中蛙)나 다를 손가 용렬(庸勞)하고 가소(可笑)롭다.
한흥(汗興)이와 복마(卜馬)짐이 머물러 기다리니,
남의 이불 빌리는 환(患)을 오늘은 면(免)하리라.
십삼일 발행(發行)하여 육칠 리(六七里)는 지나가니,
예서부터 상근령(箱根嶺)을 사십 리(四十里)를 올라가니,
송삼(松衫)이 무밀(茂密)하고, 총죽(叢竹)이 삽목(揷目)하여
영(嶺)은 그리 험(險)치 않고, 이따금 마을 있네.
이십 리(二十里) 다옥(茶屋)에서 잠깐 쉬어 올라가니,
음식(飮食) 파는 계집들이 찻그릇 손에 들고,
무엇이라 지저귀며, 따라오며 사라 하니,
이십 리(二十里)는 또 올라서 영(嶺) 위에 앉아 보니,
어제는 부사산(富士山)이 그리 높지 않았더니,
높이 올라 바라보니, 배가 넘게 더 높으니,
대저(大抵) 한 상근령(箱根嶺)이 아국(我國)으로 의논(議論)하면,
조령(鳥嶺)과 상하(上下)하되, 예서 부산(釜山) 바라보니,
서너 층이 더한지라. 백 리(百里)나 남직하다.
해동(海東)의 명산중(名山中)에 제일(第一)이라 하리로다.
영 북편(嶺北便) 돌아보니, 상근택(箱根澤) 물이 있어
호호(浩浩)하고 탕탕(蕩蕩)하여 장광(長廣)이 칠십 리(七十里)라.
이리 높은 절정(絶頂) 위에 이러한 크나큰 물
바다처럼 깊고 멀어 그 빛이 심벽(深碧)하여
남도(南道) 바다 마치 같고, 어별 해합(魚鼈海蛤) 갖춰 있고,
왕래(往來)하는 돛단배가 이리 가고 저리 가니,
장(壯)함도 장(壯)할시고, 천지간(天地間) 기관(奇觀)이라.
우리나라 공갈못을 장(壯)하다 하거니와
여기 비겨 보게 되면, 자취물과 다를 손가.
백두산(白頭山) 대택수(大澤水)와 한라산(漢拏山) 백록담(白鹿潭)이
이와 어떠하리, 아무렇거나 이상(異常)하다.
관소(館所)로 내려가니 호수(湖水)를 등지고서
여염이 즐비(櫛比)하니, 승지(勝地)라 하겠구나.
중화하고 내다르니, 왼편으로 호수(湖水) 끼고,
영(嶺)으로 내려갈 때 산불이 일어나서
바람이 장(壯)한지라 불길이 산을 덮어
번개처럼 나는 듯이 사면(四面)으로 붙어 오니
길에서 지척(咫尺)이라 연염(煙焰)이 창천(漲天)하니.
만일(萬一) 더디 가다가는 타 죽기 쉬운지라.
교군(橋軍)을 재촉하여 급급(急急)히 내려갈 때
삼십 리(三十里) 겨우 가니, 금양산(金陽山)이 아래로다.
양수(兩水)가 합금(合襟)하여 폭포(瀑布)되어 내려가네.
전인(前人)의 일기중(日記中)에 쌍유추(雙流湫)가 여기로다.
상모주(相模州) 소전원(小田原)을 해 질 때에 들어가니,
태수(太守)가 사는 데라. 인민(人民)도 부려(富麗)하다.
인물(人物)이 초준(峭峻)하고, 미색(美色)도 많을시고.
사십 리(四十里) 또 왔으니, 합하여 팔십 리(八十里)라.
십사일 청명(淸明)커늘 일출후(日出後)에 발행(發行)하여
큰 내 하나 건너가니, 배로 다리 만들었다.
오른편에 바다 끼고, 사십 리(四十里) 대이중(大泥中)에
행로(行路)도 지루하고, 구경도 갖을시고.
또 사십 리(四十里) 등택(藤澤) 가니, 신시량(申時量)이 되었구나.
여리(閭里)도 번성(繁盛)하고, 여기도 상모주(相模州)일세.
십오 일(十五日) 오십 리(五十里) 가 신내천(神奈川) 중화하니
십여 리(十餘里) 지나가니, 소우(疎雨)가 몽몽(濛濛)하다.
우장(雨裝)하고 삼십 리(三十里) 가 육향강(六鄕江) 건너가니,
예서부터 마을들이 빈틈없이 연(連)하였네.
십여 리(十餘里)는 또 지나가 품천(品川) 가 숙소(宿所)하니,
넓은 들이 망망(茫茫)하고 바다를 임(臨)하였네.
무장주(武藏州) 속하였고, 주즙(舟楫)이 장(壯)하도다.
십육 일 우장(雨裝) 입고, 강호(江戶)로 들어갈 때
왼편은 여염이요, 오른편은 대해(大海)로다.
피산(避山) 대해(對海)하여 옥야 천리(沃野千里) 생겼는데,
누대 제택(樓臺第宅) 사치함과 인물 남녀 번성(繁盛)하다.
성첩(城蝶)이 정장(整壯)한 것과 교량 주즙(舟楫) 기특(奇特)한 것
대판성(大坂城) 서경(西京)보다 삼배(三倍)나 더하구나.
좌우에 구경꾼이 하 장(壯)하고 무수(無數)하니,
서어(齟齬)한 붓끝으로 이루 기록(記錄) 못하리라.
삼십 리(三十里) 오는 길에 빈틈없이 묶었으니,
대체(大體)로 세어보면, 백만(百萬)으로 여럿일세.
여색(女色)의 미려(美麗)하기 명호옥(鳴護屋)과 일반(一般)이라.
실상사(實相寺)로 들어가니, 여기도 무장주(武藏州)일세.
처음에 원가강(源家康)이 무장주(武藏州) 태수(太守)로서
평수길(平秀吉)이 죽은 후에 평가(平家)를 없이하고,
이 땅에 도읍(都邑)하여 강(强)하고 가음 열며
배포(配布)가 신밀(愼密)하고 법령(法令)도 엄준(嚴峻)하여
지려(智慮)가 심장(深長)하여 왜국(倭國)을 통일(統一)하니,
아무렇거나 제 류(類)에는 영웅(英雄)이라 하리로다.
가강(家康)이 죽은 뒤에 자손(子孫)이 이어 서서
이제까지 누려오니 복력(福力)이 갸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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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칠 일 비 개지 않고 실상사(實相寺)서 머무니라.
가번 제자(加番弟子) 주굉(周宏)이가 필담(筆談)하고 나가니라.
십팔 일 삼사상(三使相)과 일행중(一行中) 상중하관(上中下官)
연향(宴饗)을 받으니, 진무(振舞)라 하는구나.
대목부(大目付)와 관반(館伴)들이 다섯 사람 함께 와서
접대(接待)하는 예(禮)와 법(法)이 도주(島主)와 같이 하네.
식후(食後)에 두 집정(執政)이 또 와서 뵈오는데,
거동(擧動)이 청초(淸楚)하고, 얼굴도 수발(秀拔)하다.
사신(使臣)네 성외(城外)에 가 읍(揖)하고 맞는구나.
대마도주(對馬島主) 발을 벗고 들어와 하는 거동(舉動)
처음에 봉행(奉行)들이 도주(島主)에게 하듯 하네.
삼다(蔘茶) 한 순(巡) 파(龍)하고서 하직(下直)하고 나간 후에
도주(島主)와 장로(長老)가 또 들어와 뵈고 간다.
가번장로(加蕃長老) 서기(書記) 선비 나파사(那波師) 등이 와
주굉(周宏)이 들어와서 종일(終日)토록 필담(筆談)하매,
저녁밥 나눠 내어 먹이니 기뻐하네.
십구 일 이십 일은 필담(筆談)하고 무사하다.
대판성(大坂城) 유선장(留船將)이 고목(告目)에 하였으되,
현동지(玄同知) 사환(使煥)하던 부산통인(釜山通引) 김한중(金漢重)이
초십일(初十日) 죽다 하니, 참혹(慘酷)하고 불쌍하다.
이십일(二十日) 마상재(馬上才)가 도주(島主)의 집에 가서
재주하고 돌아오니, 왜놈들 구경하고,
나는 사람[飛人]이라 하고, 장(壯)히 여겨 기린다네.
염이일(念二日) 중[僧] 인평이 명화지(明華紙) 들이거늘,
받지 않고 도로 주니, 인평이 부복(府伏)하여
지성(至誠)으로 간청(請)하되, “이것이 친명(親命)이니,
비옵노니 선생(先生)네는 물리치지 마오소서.”
부득이(不得已) 받은 뒤에 답간(答簡)으로 답례(答禮)하다.
태학두(太學頭) 임신언(林信言)이 그 아들 임신애(林信愛)와
전례(前例)로 와서 뵈매 읍(揖)하고 앉아 보니,
신언(信言)은 순근(醇謹)하되, 풍증(風症) 있어 요두(擾頭)하고,
신애(信愛)는 청수(淸秀)하여 아비보단 조금 나아.
제자(弟子)들 데리고 와 글 여섯 수 들이거늘
즉석(卽席)에서 차운(次韻)하여 가지고 가는구나.
염삼일(念三日) 조반후(朝飯後)에 임파중(林派中)의 문인(門人)들이
국학교관(國學敎官) 임신유(林信有)와 덕력양필(德力良弼) 목부돈(木部敦)과
후등세균(後藤世鈞) 하구준언(河口俊彦) 편강유용(片岡有庸) 삽정평(澁井平)과
정상후득(井上厚得) 청엽양호(靑葉養浩) 송본위미(松本爲美) 송전구징(松田久徵)
열하나가 함께 와서 필담(筆談)과 수창(酬唱)으로
종일(終日)하고 돌아가니, 이날 지은 글이
율시 절구(律詩絶句) 배합(配合)하여 부지기수(不知其數)로구나.
이십사일 봉곡문하(鳳谷門下) 소실당칙(小室當則) 남태원(南太元)과
중촌홍도(中村弘道) 관수령(關俗齡)과 구보태형(久保泰亨) 반정량(飯田良)과
궁무방견(宮武方甄) 산안장(山岸藏)과 입정재청(笠井載淸) 아홉 사람
어제처럼 필담 창화(筆談唱和) 어둡도록 하온 후에
근등독(近藤篤) 정상잠(井上潛) 이가 장서(長書)하여 물었거늘,
칠절(七絶) 두 수 지어내어 패길(稗吉) 주어 전(傳)하였다.
이십오일 임신언(林信言)이 제 아들 데리고 와
삼사상(三使相)께 뵈올 때 서로 두 번 읍(揖)하는고,
신언(信言)은 필담(筆談)하고, 글씨 하나씩 들이고서
신애(信愛)는 사신(使臣)네께 각 세 수씩 들이는고.
석식(夕食)하고 불 켠 뒤에 임문 제생(林門諸生) 왔다커늘
삼문사(三文士)로 나가 보니, 또 열 사람 왔구나야.
필담(筆談)으로 밤들기에 미처 차운(次韻) 못하고서
글만 받아 돌아와서 등불 아래 내려 보니,
시반인 이백운(二百韻)이 불경(不敬)하기 심하거늘
각인(各人)에 보낸 글과 필담(筆談)한 것 도로 줬다.
이십육일 노당(魯堂) 와서 밤늦도록 필담(筆談)하다.
이후부터 날마다 와 온갖 말 다하는데,
위인(爲人)이 강개(帳槪)하고 거지(擧止)가 경솔(輕率)하되,
박람강기(博覽强記)하고 총명(聰明) 영리(怜悧)하여
보던 중 제일(第一)이요, 우리에게 정(情)이 많아
속이는 말이 없고, 심열 성복(心悅誠服)하여
따라가리라 하고, 날마다 와 보채니,
그 뜻이 기특(奇特)하되, 국법(國法)에 구애(拘礙)하여
못 데려 내어오니, 애달프고 불쌍하다.
제 나라 말 물어보니, 불치불란(不治不亂)하고,
여섯 고을 태수(太守)들이 땅도 크고 강성(强盛)키에
백관(百官)이 염려(念慮)하여 무서워한다 하네.
이십칠일 비 오는데, 국서(國書)를 전하올 때
사신(使臣)네는 조복(朝服)하고, 비장(裨將)들은 융복(戎服)하고,
문사(文士)와 역관(譯官)들은 관복(官服)을 갖추고서
사신(使臣)네 타신 남여(籃輿) 하졸(下卒)로 메우시고,
군물(軍物)로 고취(鼓吹)하기 육행례(六行禮)로 가오시되,
내 혼자 생각하니, 내 몸이 선비인지라.
부질없이 들어가서 관백(關白)에게 사배(四拜)하기
욕되기 가이없어 아니 가고 누웠으니,
사상(使相)네 하오시되, “예까지 와 있으니,
한 가지로 들어가서 굳이 보고 오는 것이
해롭지 아니하니 있지 말고 가자.” 하거늘,
내 웃고 하온 말이, “국서(國書) 모신 사신(使臣)네는
부끄럽고 통분(痛憤)하나, 왕명(王命)을 전(傳)하오니,
하릴없어 가려니와 글만 짓는 이 선비는
굿 보려고 들어가서 개돝 같은 왜놈에게
배례(拜禮)하기 토심(吐心)하되, 아무래도 못 가리라.”
사신(使臣)네 하릴없어 웃으시며 하오시되,
“저리하고 돌아가서 좋은 체 혼자 마소.”
“좋으란 것 아니오라 사리(事理)가 그러하오.”
무사(無事)히 전명(傳命)하고, 황혼(黃昏) 때에 돌아왔네.
시온(時韞)을 가서 보고 자세히 물어보니,
“오던 길로 도로 나서 쉰다섯 정문(正門) 지나
다리 넷과 성문(城門) 셋을 차례로 지나가서
관백궁(關白宮)에 다다르니, 제일문(第一門) 다리 위에
하마패(下馬牌) 세웠기에 상관(上官)들 하마(下馬)하고,
군물(軍物) 고취(鼓吹) 머물고서 담뱃대도 금하는고.
제이문(第二門) 제삼문(第三門)에 가마 탄 이 다 내리고,
제사문(第四門) 제오문(第五門)에 사신(使臣)네 하교(下驕)하니,
이 관반(二館伴) 이 목부(二目付)와 이 장로(二長老) 마주 나와
읍(揖)하여 들어가니, 짚 행보석(行步席) 깔았으며,
제육문(第六門) 제칠문(第七門)에 돗 행보석(行步席)이로구나.
널 중계(重階) 올라가서 유리관(琉璃館)에 들어가니,
사신(使臣)네 외헐소(外歇所)요, 한 뿔 사모(紗帽) 홍의자(紅倚子)요,
나무 신 같은 것을 거꾸로 썼는 이가
발 벗고 앉았으니, 그 수가 많더구나.
내헐소(內歇所)로 들어가니, 솔 그린 집이로다.
사신(使臣)네 오른편에 수십 왜(倭) 앉았으되,
검은 비단옷도 입고, 일각모(一角帽)도 써 있으니,
통사(通詞)에게 물어보니, 집정류(執政類)라 하는구나.
마도주(馬島主)가 현의(玄衣)하고, 그 곁에 앉았으며,
그 뒤에 홍의(紅衣)한 이 여남은 줄 앉았으니,
이것은 각주 태수(各州太守), 임신언(林信言) 임신애(林信愛)는
맨 끝에 앉아 있어 알은체하는구나.
집정(執政)이 인도(引導)하여 매지간(梅之間)에 들어가서
앉았다가 도로 나와 국서(國書)를 모시고서
들어가 사배(四拜)하고, 사례단(謝禮單)을 드리고서
또 배례(拜禮)하온 후에 관백연(關白宴)에 또 절하고,
하직(下直)할 때 또 절하니, 전후(前後)에 네 사배(四拜)일세.
당당(堂堂)한 천승국(千乘國)이 예관 예복(禮冠禮服) 갖추고서
머리 깎은 추류(醜類)에게 사배(四拜)하기 어떠할꼬.
퇴석(退石)의 아니 온 일 밝기가 측량(測量) 없데.
수역(首譯)들 한 줄 하고, 문사(文士)들 한 줄 하여
행례(行禮)하고 물러나니, 군관(軍官)과 모든 상관(上官)
두 떼에 행례(行禮)하고, 차(次) 상관(上官) 소동(小童)은
퇴청(退廳)에서 행례(行禮)하고, 중관(中官)은 뜰에 하네.
관백(關白)이 앉은 데가 멀고 어두워서
얼굴을 몰라보되 흰옷을 입었었고.
사신(使臣)네 앉은 데는 가깝고 오랜지라
자세히 바라보니, 낯이 작고 턱 뾰족하고
정신은 있어 뵈나 거동(擧動)이 경삽(輕澁)하고,
머리를 흔들면서 접책(摺冊)을 뒤적이고,
첨시(瞻視)를 자주 하여 진중(鎭重)치 아니하고,
전후(前後)에 예닐곱 놈 모시고 앉았구나.
연향청(宴饗廳)에 나앉으니, 일곱 상 들이고서
밥 세 번 가져오고, 물 세 번 치는구나.
안주를 세 번 갈고, 차(茶) 한 번 드리고서
가화(假花) 한 쌍(雙) 들여오니 진무(振舞)와 한 가지라.
음식(飮食)이 기괴(奇怪)하여 하저(下箸)할 것 전혀 없네.
누각(樓閣)과 전무(殿廡)들은 단청(丹靑)은 아니하고,
기둥들과 서까래에 모두 도금(鍍金)하고,
집 위에 인 기와가 구리 같은 것이로다.
정우(庭宇)가 협착(狹窄)하고 각도(閣道)도 혼암(昏暗)하여
별로 사치 아니하되 정교하고 견치(堅緻)하며,
재목(材木)에 무늬 있고 미끄러울 따름일세.
사신(使臣)네 나오실 때 사집정(四執政)이 따라와서
판계(板階)에서 읍송(揖送)하고, 도주(島主)와 목부(目付)들은
계하(階下)에서 읍송(揖送)하고, 이 관반(二館伴) 이 장로(二長老)는
제삼문(第三門) 밖 나와 읍(揖)하여 뵈는구나.
사신(使臣)네는 제사문(第四門)에 남여(藍與) 타고 나오시고,
제육문(第六門) 제칠문(第七門)에 승물(乘物)과 말을 타고,
군용(軍容)을 베풀고서 관소(館所)로 돌아올 때
비가 개는지라. 우비(雨備)를 없이 하고,
삼현(三絃)과 군악(軍樂) 치며, 삼중성(三重城)을 내달리네.
긴 행랑(行廊)과 분장(粉牆)이며, 주칠(朱漆)한 높은 문(門)을
금(金)으로 새겼으며, 구리로 꾸민 집이
좌우(左右)에 벌였거늘, 통사(通詞)에게 물어보니,
집정(執政)과 태수(太守)들의 집이라 하는구나.
흑의(黑衣)한 집정(執政)들은 청귀(淸貴)한 이 혹 있으되,
홍의(紅衣) 입은 아이는 근구인형(僅俱人形) 하였더라.”
이 말을 들어보니, 아니 가고 누웠기가
진실(眞實)로 잘한지라. 기쁘고 다행(多幸)하다.
염팔일(念八日) 도주(島主) 와서 순(順)하게 전명(傳命)한 일
치하(致賀)하고 또 이르되, 관백(關白)이 다 하오되,
조선국(朝鮮國) 사신(使臣)들이 예모(禮貌)가 한숙(嫺熟) 하니,
기특(奇特)다 한다 하니, 가소(可笑)로와 들리더라.
염구일(念九日) 임신애(林信愛)가 왕자유(王子猷)의 매죽도(梅竹圖)와
수목산수(樹木山水) 그린 그림 가지고 와 청(請)하거늘,
찬(贊) 지어 써서 주고, 여기 사람 소야전(小野田)이
수하미도(樹下美圖) 가지고 와 제시(題詩)하여 달라거늘,
자세히 내려 보니, 전후(前後)의 사행(使行) 때에
제술관(製述官) 서기(書記)들이 다 지어 주었으되,
저마다 요초(療草)하여 하나 볼 것 없구나야.
아무리 문장(文章)들도 여기 나와 지은 글이
이렇게 좋지 아니하니. 감(減)한 줄 알리로다.
삼월 초일일(初一日)에 삼병방(三兵房)과 삼수역(三首譯)이
마상재(馬上才) 거느리고, 관백(關白)의 집에 가서
재주하고 돌아오니, 관백(關白)이 기린다네.
회답서(回答書) 초(抄)한 것을 얻어다가 들이거늘
사신(使臣)네와 내려 보니, 애안(碍眼)한 데 많은지라.
주선(周旋)하여 고치려고, 수역(首譯)에게 분부(分付)하다.
초이일(初二日) 청명(淸明)하여 삼수역(三首譯) 와 아뢰되,
기번실(紀蕃實)이 태학(太學) 보고, 답서(答書) 고칠 말을 하니
벌써 입계(入啓)하였기에 고치지 못한다 하네.
삼사상(三使相) 들으시고, 민망(憫惘)하고 근심터니,
태학두(太學頭) 부자(父子)놈이 오늘 우리 보려 하고,
식후(食後)에 온다 듣고, 사신(使臣)네 하오시되,
“글 짓고 필담(筆談)할 때 고칠 뜻 조금 뵈소.”
이윽고 임신언(林信言)이 제 아들 신애(信愛)하고,
한가지로 왔다 하거늘 넷이 함께 나가 보고,
세세히 차운(次韻)하여 보내마 이르고서
회답서(回答書) 고칠 말을 간간이 써서 뵈니,
태학두(太學頭) 숙시(熱視)하고, 대답(對答) 아니 하는지라.
민망(閥陶)키 가이없어 답언(答言)을 또 청(請)하니,
그제야 써서 뵈되, 근락(謹諾)이라 하였으니,
그것이 우리 쓴 것 모르는 듯이 본지라
민망(閔網)하고 염려(念慮)로워 다과(茶菓)로 대접(待接)하고,
우리 먹는 음식(飮食)을 따라온 두 사람을
은근히 대접(待接)하니, 감격(感激)하고 기뻐하여
두세 번 치사(致謝)하고, 크게 좋아하는 거동(擧動)
낯에 나타나는구나, 고쳐 줄 뜻이 있구나.
여러 선비 와 있다가 피(避)하여 다 갔다네.
초삼일(初三日) 태학두(太學頭)가 삼수역(三首譯) 와서 보고,
회답서(回答書) 고쳐 주마 상약(相約)하고 갔다 하네,
삼삼영절(三三令節) 오늘이라. 삼사상(三使相)이 설찬(設饌)하고,
일행(一行)들을 다 모아서 풍류(風流)치고 즐기니라.
초사일(初四日) 여러 선비 글 보내어 받아 갔다.
두 장로(長老) 제자(弟子) 중들 날마다 와서 본다.
초오일(初五日) 삼사상(三使相)이 도주(島主)의 집에 가되,
우리 네 문사(文士)는 칭병(稱病)하고 아니 갔네.
접대(接待)는 후히 하되, 희자(戱子) 놀음굿이
전혀 볼 것 없다 하니, 가소(可笑)로워 들리는고.
서중화(徐中和) 상방 비장(上房裨將) 병(病)들어 못 가고서
유영장(柳營將) 기해년(己亥年)에 그 조부(祖父) 왔을 때에
욕보기로 인혐(引嫌)하고, 아니 가고 머무니라.
초육일(初六日) 시예(試藝)하러 여덟을 뽑아다가
관백(關白)의 궁(宮)에 갈 때 도주(島主)가 주장(主張)하고,
각주태수(各州太守) 모였는데, 김영장(金營將) 온숙(溫叔)이는
후(帿) 사중(四中) 기추(騎蒭) 오중(五中), 유영장(柳營將) 효백(孝伯)이는
후(帿)와 추(蒭) 각 사중(四中)하고, 임도사(任都事) 거경(巨卿)이는
후(帿)와 추(蒭)를 사중(四中)하고, 장사군관(壯士軍官) 임춘흥(林春興)은
후(帿)와 추(蒭)를 몰시(沒矢)하고, 김만호(金萬戶) 응석(應錫)이는
추삼중(蒭三中) 후불(帿不)하고, 조만호(曺萬戶) 입중(立中)이는
기추(騎蒭) 하나 지우고서 마상재(馬上才) 정도행(鄭道行)은
추사중(四中)에 후불(帿不)하고, 박성적(朴聖迪)은 후삼중(帿三中)에
기추(騎蒭) 오중(五中)하고 오니, 김만호(金萬戶) 분에(憤恚)하여
병이나 죽어가니, 우습고 불쌍하다.
## 권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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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승(以酊僧) 또 들어와 즉석(卽席)에 여덟 시를
연하여 지어주니, 성사집(成士執)이 성을 내어
지어주지 말자 하나, 강잉(强仍)하여 차운(次韻)하다.
초칠일 관반도주(館伴島主) 회답서(回答書)와 예단자(禮單子)를
가지고 청알(請謁)하니, 사신(使臣)네 시복(時服)하고,
제술관(製述官) 상판사(上判事)와 그 남은 원역(員役)들이
모대(帽帶)하고 나 맡기를 집정(執政) 보듯 하는구나.
백관(百官)에 보낸 물종(物種) 대청(大廳)에 쌓았으니,
그 수(數)가 많은지라 이루 못 기록(記錄)하리.
여남은 시객(詩客)들이 들어와 창화(唱和)하되,
그 중에 유유한(劉維翰)이 한헌제(漢獻帝)의 자손(子孫)일세.
제 세계(世系) 물어 보니, “조비(曹丕)가 찬위(纂位)한 후(後)
제 할아비 황자(皇子)로서 피란(避亂)하여 여기 와서
태수(太守)가 되었더니, 그 후(後)에 잔미(殘微)하여
선비 노릇 하나이다.” 불쌍하고 신기(神奇)하다.
초팔일 신언 부자(信言父子) 그 남은 수십 선비
글 다 지어 와 있기에 다 차운(次韻)하여 주다.
초구일 임가 부자(林哥父子) 각각 비장(各各裨將) 보내고서
미농지(美濃紙) 이십첩(二十帖)을 신행(贐行)으로 보내었네.
장지(壯紙) 쉰 권(卷) 간지(簡紙) 쉰 폭(幅) 답례(答禮)하여 보내고서
별시(別詩)를 차운(次韻)하여 사자(使者) 주어 보내니라.
태학두(太學頭) 부자(父子)놈이 사신(使臣)네께 별장(別章)하니,
사신(使臣)네는 아니 짓고, 각 서기(書記)로 대작(代作) 하매
종사상(從事相) 별장(別章)은 내가 대작(代作)하여 주다.
예 와서 창화(唱和)하던 그리 많은 선비들이
다 모두 와서 보고, 저마다 별장(別章)하니,
저물도록 화답(和答)하여 가까스로 마치니라.
초십일(初十日) 미우(微雨)하니, 또 글 지어 왔구나야.
십일 일 회정(回程)할 때 비를 맞고 길을 떠나
품천(品川)으로 들어와서 동해사(東海寺)에 하처(下處)하고,
석반(夕飯)을 먹은 뒤에 막 자려 하올 때에
섭운각(灄雲脚) 정근산과 태실문양(太室汶陽) 귀봉송창(龜峰松窓)과
보국(輔國) 조변덕과 묵정관 한제영과
임번평인(林繁平鱗) 황언명(黃彦明)이 비 맞고 따라오되,
나무 신에 우산(雨傘) 받고 삼십 리(三十里)를 걸어와서
십전구패(十顚九伂)하여 밤늦게야 와서 보니,
정성(精誠)이 거룩하고, 의기(義氣)도 있다 할세.
각 신행(各各 贐行) 많이 하니, 지성(至誠)으로 주는지라
아니 받기 불쌍하여 조금씩 덜어 받고,
글을 다 차운(次韻)하여 필묵(筆墨)으로 답례(答禮)하다.
그중에 묵정관이 눈물 지고 슬퍼하니,
비록 이국(異國) 사람이나 인정(人情)이 무궁(無窮)하다.
십이일 등지(藤只) 오니, 한대영(韓大永) 평영(平英)이가
백삼십 리(百三十里) 따라와서 차마 못 이별(離別)하여
우리 옷 붙들고서 읍체여우(泣涕如雨) 하다가
밤 든 후 돌아가서 오히려 아니 가고,
길가에 서 있다가 우리 가마 곁에 와서
손으로 눈물 씻고 목메어 우는 거동(擧動)
참혹(慘酷)하고 기특(奇特)하니, 마음이 좋지 아니해.
그 누가 왜놈들이 간사(奸邪)하고 퍅(愎)하다던가.
이 거동(擧動) 보아하니, 마음이 연(軟)하도다.
십삼일도 비 맞고서 소전원(小田原) 와서 자니,
갈 때에 보리 간 것 미처 패지 아녔더니,
그 사이 수십 일(數十日)에 벌써 발수(發穗)하였으니,
토품(土品)이 기름지기 이를 따라 알리로다.
십사일 비 맞고서 상근(箱根) 중화(中火) 삼도(三島) 자니,
길가의 냇물 위에 물방아 놓았거늘
말을 내려 자세 보니, 물레를 만들었는데,
정포(淀浦)의 수기(水器)처럼 물속에 들여놓고,
물레 속에 드는 나무 크기 거의 아름이요,
길이는 물레바퀴 두 발이 넘어 긴데,
돌아가면 비슷하게 다섯 말뚝 박아 두고,
그 아래 방아확을 다섯 살 벌여놓고,
넓고 큰 바자에다가 다섯 구멍 뚫어내어
방앗공이 다섯으로 그 구멍 꽂아놓고,
방앗공이에 말뚝 박아 물레가 돌아갈 때
물레에 박힌 말뚝 공이 말뚝 떠들어서
두 말뚝이 어긋나면, 방앗공이 찧이는고.
첫 공이 내려진 후(後) 네 공이 내려지고,
다섯 공이 찧이면, 또 첫 공이 찧이는고.
순환(循環) 반복(反復)하여 하루 닷 섬 찧는다네.
그중에 묘(妙)한 것은 겨가 다 절로 날려
어디로 가고 없고, 쌀만 남았으니,
골풀무 모양으로 절로 바람나는도다.
십오일 십육일은 삼도(三島)서 묵으니라.
도주(島主)가 송언(送言)하되, “배다리 다 떴기에
못 가게 하였으니, 다리 수보(修補) 하온 뒤에
발행(發行)하자.” 하는지라, 하릴없어 못 가니라.
부사산(富士山) 바라보니, 날이 많이 어두운지라
요(腰) 이하는 눈이 녹고, 요(腰) 이상은 허옇게 되어
눈이 그저 쌓여 있어 검은 것이 아니 뵈네.
유월 삼복(三伏) 때도 상봉(上峰)은 아니 녹아
극남방(極南方) 극열시(極熱時)에 그러하니 모르겠다.
천려(淺慮)로 생각하니, 온 산이 냉혈(冷穴)이매
아무리 더운 날도 눈이 아니 녹는 양(樣)이
우리 나라 사군(四郡)에도 풍혈 냉혈(風穴冷穴) 두루 있어
유월에 관가(官家)에서 얼음을 떠서 오니,
예도 응당(應當) 그러하고, 못가 보니 애닮구나.
이십칠 일 길원(吉原) 가니, 다리 미처 못 놓아서
또 며칠을 묵을 줄을 모르니 답답(沓沓)하다.
십팔일 십구일은 또 못가고 머무니라.
두 장로(長老)의 제자(弟子)들과 무수(無數)한 왜(倭) 선비
풍류(風流) 듣자 청(請)하거늘, 진주 삼현(晉州三絃) 처서 뵈고,
두 통인(通引) 대무(對舞)하니, 그것들이 대락(大樂)하여
비로소 오늘에야 선악(仙樂)을 들었다네.
이십 일 먼저 떠나 부사천(富士川) 와서 보니,
배다리 놓았으되, 물결이 하 급(急)하니,
떠갈까 염려(念慮)하여 조심(操心)하여 건너니라.
청견사(淸見寺) 들어와서 잠룡실(潛龍室)에 앉아 보니,
다리에 단 현판(懸板)이 김좌승(金左丞)의 글씨로다.
뒤뜰에 못이 있고, 연(蓮)잎이 처음 나니,
절 뒤에 송죽(松竹) 속에 십여 장(十餘丈) 폭포(瀑布) 물이
반공(半空)에 떨어지고, 진주(眞珠) 같은 물방울이
사면(四面)으로 떨어지니, 심목(心目)이 상연(爽然)하다.
소위(所謂) 선인장(仙人掌)이 모양(模樣)이 이상(異常)하여
나무와 풀도 아니 같고, 꽃과 잎도 아니로다.
소 혀처럼 생겼으되, 푸르고 두꺼워서
두 편에 잔가시가 천엽(千葉)처럼 송송하고,
올해 난 것 위에 내년(來年)에 두셋 나서
연구(年久)하면 나무 되니, 대저(大抵)한 지 괴이하다.
서너 길 큰 파초(芭蕉)가 폭포(瀑布) 곁에 서 있으되,
겨울에 잎은 죽고, 줄기는 살아 있어
서너 잎이 나왔으니, 장(壯)하고 기특(奇特)하다.
영산홍(映山紅) 피었으며, 종려 소철(蘇鐵) 다 있구나.
처지(處地)가 고상(高尙)하고, 대해(大海)를 압림(壓臨)하여
실 같은 미(微)한 사류(絲柳) 두 편으로 환포(環抱)하고,
그 후의 낙락장송(落落長松) 해문(海門)을 가리었고,
그 안은 호수(湖水)되어 경치(景致)가 절승(絶勝)하다.
우리나라 낙산사(落山寺)를 승지(勝地)라 하지마는
앞 경(景)은 있거니와 뒷 경(景)은 없는지라.
여기다가 비교(比較)하면, 여러 층 떨어질세.
다섯 중[僧]이 들인 글을 일필(一筆)에 지어주니,
손 묶어 사례(謝禮)하고, 기뻐하기 측량(測量) 없다.
주지승(住持僧) 주인(主忍)이가 칠언 절구(七言絶句) 들이고서
차운(次韻)하라 간청(懇請하니, 사신(使臣)네도 지어주다.
행중(行中)의 사람들이 점심(點心)이 없는지라.
조만호(曺萬戶)와 이언진(李彦瑱)이 내 밥을 나눠 먹다.
남호곡(南壺谷) 사언율시(四言律詩) 차운(次韻)하여 중을 주고,
강고(江尻)로 들어오니, 관사(館舍)도 상활(爽闊)하다.
집 뒤에 큰 호수(湖水)가 경치(景致)가 기절(奇絶)하다.
이십이일 부사천(富士川) 와 가자(軻子)에 가마 싣고,
왜인(倭人)이 떠메고서 건너오니 배에 진다.
준하주(駿河州) 중화(中火)하고, 무판령(舞板嶺) 넘어와서
등지(藤只) 와 밤을 자니, 노장(老長) 중들 보고 간다.
대정천(大定川) 물 많다고 예서 사흘 또 묵으니,
두 장로(長老)의 제자(弟子)들과 이 땅의 선비들이
날마다 와서 보고, 수창(酬唱)으로 소일(消日)하여
염오일(念五日) 발행(發行)하여 대정천(大定川) 다다르니,
물이 그리 깊지 않은데 왜놈이 불측(不測)하여
우리를 데리고서 깊은 데로 들어가니,
그 뜻을 모를지라, 통분(痛憤)키 가이없다.
금곡(金谷) 중화(中火) 괘천(掛川) 와서 밤 든 후 잠을 드다.
염육일(念六日) 견부(見付) 중화(中火) 천룡천(天龍川) 건너가서
빈송(濱松) 가 숙소(宿所)하니, 왜시(倭詩)도 많이 왔다.
염칠일(念七日) 황정(荒井) 중화(中火) 저녁에 길전(吉田) 자다.
염팔일(念八日) 적판(赤坂) 중화(中火) 저녁에 강기(岡崎) 자다.
염구일(念九日) 명해(鳴海) 중화(中火) 명호옥(名護屋) 숙소(宿所) 가니,
올 때에 보았으되 어둡게야 들어와서
새벽 떠나 왔는지라 자세히 몰랐더니,
오늘은 일렀기에 오면서 자세히 보니,
산천(山川)이 명려(明麗)하고, 여염이 즐비(櫛比)하니
대판(大坂)과 일반(一般)이요, 여색(女色)의 거룩하기는
왜국중(倭國中) 제일(一)이라, 젊은 명무(名舞)들이
좌우편(左右便)에 앉은 절색(絶色) 다 주어 보려 하고,
저기 보고 여기 보니, 체머리 흔들 듯이
저물도록 길을 오며 도리질을 하는구나.
곳곳이 논과 밭을 기경(起耕)을 시작하되,
소가 전혀 적은지라, 가래 괭이 만들어서
논과 밭을 그것으로 파고, 말에다가 길마 지어
앞 가지에 줄을 매어 써레를 삼는구나.
그리 넓은 들 속에서 순무우 담뿍 갈아
무성(茂盛)키 장(壯)하거늘 통사(通詞)에게 물어 보니,
그 씨를 받아내어 기름 짜 쓴다 하네.
일공(日供)에 생강(生薑) 온 것 살지고 장(壯)히 크고,
실(實) 없고 물 많기가 민강(閩薑)과 일반(一般)이라.
이 땅의 생율(生栗) 크기 종자(鍾子)만 거의 하여
한 손에 셋을 쥐면, 줌 벌어 못 더 쥐리라.
건시(乾柿)도 이상(異常)하여 우리나라 풍기 준시(豊基蹲柹)
예 비(比)하면 달고 크기 못하다 하리로다.
비파(枇杷)라 하는 실과(實果) 주거늘 자세 보니,
누런 오얏 모양이요, 맛은 배맛 같구나야,
씨는 모과(木瓜)로되, 껍질이 두꺼워서
그리 좋지 아니하고, 살이 매우 적구나야.
닭의 소리 개소리와 새 소리 우마(牛馬) 소리
아국(我國)과 일반(一般)이요, 아이 소리 웃음소리
천지(天地)로 나는지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삼십일 주고(洲股) 중화(中火) 대원성(大垣城) 숙소(宿所)하다.
사월 초일일(初一日)에 금수(今須) 중화(中火) 언근(彦根) 자다.
십여 수 왜시(倭詩)들을 불 켜고 화답(和答)하다.
초이일(初二日) 팔번산(八幡山) 와 점심하고 발행(發行)하여
저녁에 삼산(森山) 오니, 고당(古堂) 춘파(春坡) 보고 간다.
초삼일(初三日) 대진(大津) 중화(中火) 저녁에 서경(西京) 오니,
왜시(倭詩)가 많이 오되, 병(病) 들어 못 짓고서
초사일(初四日) 정포(淀浦) 와서 배 타고 중화(中火)하고,
미시(未時)에 평방(平方) 가서 중하관(中下官)은 배에 내려
숙공(宿供) 먹고 올라오고, 상관(上官)은 배 속에서
저녁밥 지어먹고, 배 가운데 다 자니라.
목촌공공(木村孔恭) 세숙(世肅)이 도서(圖書) 새겨 보내었네.
예서 대판성(大坂城)이 삼십 리(三十里)라 하는구나.
초오일(初五日) 대우(大雨)하고, 본원사(本願寺) 들어오니,
수십 시객(數十詩客) 와서 보고, 강호(江戶)의 평린(平麟) 평영(平英)
글 보내어 문안(問安)하니 그 정이 간측(懇惻)하고,
신의(信義)도 있다 하네. 여기 머문 격군(格軍)들이
뛰놀며 기뻐하니, 우리 역시 든든하다.
초육일(初六日) 수십(數十) 선비 창화(唱和)하고 나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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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칠일 상방 집사(上房執事) 대구(大邱)사람 최천종(崔天宗)이
개문(開門)을 품(稟)하고서 제 방에 돌아와서
잠들어 누웠더니, 어떠한 왜(倭) 한 놈이
가슴에 올라앉아 칼로 목을 찌른지라
천종(天宗)이 놀라 깨어 소리 하고 일어서니,
그놈이 칼 버리고, 전도(顚倒)히 달아나니,
일행(一行)이 경동(驚動)하여 급히 일어 모두 보니,
창날 같은 세모 칼을 빼어놓고 누웠는데,
호흡(呼吸)이 천촉(喘促)하여 차마 못 보리러니
묘시량(卯時量)에 운명(殞命)하니, 참혹(慘酷)하고 불쌍하다.
수역(首譯)을 잡아들여 사신(使臣)네 분부(分付)하되,
마인(馬人)에게 왕복(往復)하여 죄인(罪人)을 얻으라되,
마인(馬人)이 무상(無常)하여 전혀 경동(驚動) 아니하고,
저물도록 기다리되 한 말도 아니 오니,
절통(切痛)하고 절분(切忿)함을 어이 다 기록(記錄)하리.
종사상(從事相) 하처(下處)한 데 시취(尸臭)가 들어오니,
상방(上房)에 한 데 들고, 최봉령(崔鳳齡)을 불러다가
수이 사핵(查覈)하라 하고, 수역(首譯)에게 전(傳)하라되,
전혀 동념(動念) 아니하니, 절통 절통(切痛切痛)한 게이고.
봉행 재판(奉行裁判) 밤 든 후에 사신(使臣) 보고 나가니라.
초팔일(初八日) 마두(馬頭) 놈이 흑백(黑白)이 없는지라
사상(使相)네 연명(連名)하여 도주(島主)에게 편지하되,
답서(答書)도 아니하고, 습염(襲殮)을 하라 하니,
마인(馬人)이 이르기를, “염습(斂襲)을 하온 후는
우리 알 바 아니오니, 아무렇게나 할지어다.”
혹 그러할까 하여 주검을 그저 두니,
이렇게 분(憤)한 일이 천하에 또 있는가.
부과(附過)한 수역(首譯)들은 조금도 기탄(忌憚) 없어
일분 인심(一分人心) 있게 되면, 이렇게 무상(無常)할까.
초구일(初九日) 이 땅 관원(官員)이 또 와서 검시(檢屍)하니
비로소 염습(僉襲)하고, 삼수역(三首譯) 잡아들여
최이(崔李) 양수역(兩首譯)은 결곤(決棍) 삼도(三度)하고
현동지(玄同知)는 늙다 하고, 분부(分付)하여 내치니라.
초십일(初十日)도 적연(寂然)하여 아무 말도 없구나야.
십이 일 입관(入棺)할 때 정사상(正使相)이 제문(祭文) 지어
삼사상(三使相)과 상중하관(上中下官) 다 모두 모여 울고,
담군(擔軍)이 관(棺)을 메고, 정문(正門)으로 나갈 때에
봉행 재판(奉行裁判) 가로막고 못 나가게 하는지라.
관(棺)을 메고 돌아와서 상방(上房)께 아뢰오니,
이강령(李康翎) 분부(分付)하여 먼저 난 놈 사핵(查覈)하여
결곤 삼도(決棍三度) 하노라니, 밤이 벌써 깊은지라.
관(棺)을 그저 놓았으니, 사사(事事)에 통분(痛慣)하다.
십이일 관(棺)을 두고, 못 내어 보내니라.
십삼일 달 밝은 후(後) 비로소 내어다가
강변(江邊)에 초빈(草殯)하니, 불상코 참절(慘絶)하다.
이후부터 마인(馬人)들이 문금(門禁)을 장(壯)히 하여
주굉(周宏)이 마인(馬人)에게 애걸(哀乞)하고 들어와서
읍체여우(泣涕如雨)하여 이별(離別)하고 가는지라.
인정(人情)이 불쌍하여 우리 역시 창연(愴然)하다.
도주(島主)의 대답 편지(對答便紙) 비로소 왔다 하되,
어의(語義)가 교휼(狡譎)하니, 절절(切切)히 통분(痛忿)하다.
주굉(周宏)이 편지(便紙)하여 옥정(獄情)을 기별(奇別)하되,
오늘이야 대판성윤(大坂城尹) 제장로(諸長老)와 도주(島主) 모아
정색(正色)하고 대언(大言)하되, “통신사(通信使) 행중(行中) 사람
내 땅에 와 죽은 것을 이때까지 그저 두니,
도리(道理)가 그른지라, 사핵(查覈)을 급히 하여
만일(萬一) 죄(罪)가 있게 되면, 내 혼자 담당(擔當)함세.”
장로(長老) 역시 옳다 하니, 사사(査事) 시작한다 하되,
필경(畢竟) 이 어찌 될까, 답답(沓沓)하기 가이없다.
십사일 대판윤(大坂尹)이 죄인(罪人)을 사핵(查覈)하니,
대마도(對馬島) 전어관(傳語官)놈 영목전장(鈴木傳藏)이라 하네.
전장(傳藏)은 도망(逃亡)하고, 종 잡아 사문차(査問次)로
궤(櫃)속에 넣었다니, 이제나 상명(詳明)할까.
십오 일 수영장로(守瑛長老) 제자(弟子)들 보내어서
객회(客懷)를 위로(慰勞)하니, 심연(心緣) 통절(通節) 두 중일세.
십육 십칠 연이틀을 심연(心緣) 통절(通節) 다시 와서
장로(長老)의 예단(禮單) 주고, 필담(筆談)하고 가는구나.
사사(査事)가 대발(大發)하여 마인(馬人)들이 갇혔다되
자세히 못 들으니, 애달프기 가이없다.
십팔일 수역(首譯) 와서 사신(使臣)께 여쭈오되,
전장(傳藏)이 도망(逃亡)하여 여기서 칠십 리(七十里) 땅
단파주(丹波州)로 가 있다가 섭진주(涉津州)로 돌아와서
여기서 사십 리(四十里)라 지전(池田)이에서 잡히어서
잡아왔다 하는지라, 통쾌(痛快)키 측량(測量) 없다.
전장(傳藏)이 납초(納招)키를 삼상(蔘商) 일로 죽였다네.
아득히 다 모르니 궁금하기 가이없다.
십구일 전장(傳藏)이를 비로소 죄 준다네.
이십일 양장로(兩長老)가 말 보내어 청하기를,
대마도주(對馬島主) 못 본 전(前)에 먼저 보자 청하지만,
전례(前例) 없이 먼저 보기 사체(事體)에 불가(不可)타 하니,
장로(長老)가 또 청(靑)하되, 도주(島主)가 나간 후(後)에
저희는 머물러서 조용히 필담(筆談)하자데.
또 아니 허(許)하시고, 도주(島主)가 왔다 하매,
대청(大廳)에 나앉으니 도주(島主)는 아니 오고,
두 장로(長老) 왔는지라 먼저 읍(揖) 아니하고,
도주(島主)를 청(請)하오니, 비로소 들어오니,
한 가지로 읍(揖)을 하고 상대(相對)하여 앉은 후(後)에
강호(江戶)서 온 위안서(慰安書)를 도주(島主)가 내어놓고,
그다음 첨장로(膽長老)가 제 위안서(慰安書) 내어놓고,
소찰(小札)에 써서 뵈되, 하고 싶은 말 있거든
자세히 써달라 하니, 대저(大抵)하니 강호(江戶)에서
첨장로(瞻長老)를 분부(分付)하여 물으라 한 연고(緣故)로세.
감물(監物)이란 봉행(奉行)놈이 도주(島主)의 앞에 가서
밀밀(密密)히 말을 하고, 영장로(瑛長老)의 앞에 가서
무엇이라 또 하는데, 아무런 줄 모르러라.
최수역(崔首譯) 여쭈오되, “도주(島主)가 청(請)하오되
한 사람만 상명(傷命)하면, 그것이 족(足)하오니,
죄(罪) 없는 다른 사람 만연(夏延)치 아니하게
대판(大坂) 성윤(城尹)에게 기별(奇別)하여 달라.” 하네.
사상(使相)이 책(責)하시되, “판윤(判尹)의 사핵(查覈)하는 일
우리 알 바 아닌지라. 네 어이 이런 말을
자하(自下)로 퇴척(退斥)치 아니코, 내게 와 아뢰느냐.”
수역(首譯)이 유유(唯唯)하고, 무료(無聊)히 물러가니,
애달픈 손 그 앞에서 즉각(卽刻)에 잡아내어
엄치(嚴治)를 못하오니, 한심(寒心)코 분개(憤槪)하다.
도주(島主) 나간 후에 사처(私處)로 돌아와서
유장흥(柳長興) 말 들으니, “김영장(金營將)이 와서 하되,
사방(使房) 곁에 앉았더니, 상방(上房)의 예방비장(禮房裨將)
십여 역관(十餘譯官) 데리고서 분(憤)하여 대언(對言)하되,
아까 내 엿듣보니, 장로(長老)의 제자(弟子) 중[僧]이
서기방(書記房)에 들어가서 품에서 소찰(小札) 내어
기간(其間)에 지주(指嗾)하니 필연(必然)이 있는지라.
마침 우리 사도(使道) 옥정(獄情)을 아는지라
일이 장차(將次) 되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반드시 우리 무리 죽을 이 많다 하네”
방자(放念)하고 기탄(忌憚) 없기 이러하니 어이하리.
춘파(春坡)란 중[僧] 들어와서 필담(筆談)으로 써 뵈니,
“사상(使相)이 수역(首譯)으로 도주(島主)에게 말 보내되,
한 사람 정법(定法)하기 사리(事理)에 족하거니,
무죄(無罪)한 다른 사람 만연(蔓延)케 말라 하니,
사상(使相)의 하시는 일 알지 못하리로다.”
들으매 통회(痛駭)하여 등창(-瘡)이 날 듯하다.
낮에 꾸중하신 일을 전갈(傳喝)하기 만무(萬無)하되,
중의 말이 이러하니, 필연(必然) 위죄(爲罪)인지라.
일행(一行) 중 열 명무(明武)가 다 모두 제분(齊憤)하여
우리 넷과 한 가지로 상방(上房)에 들어가서
유영장(柳營將) 먼저 하되, “수역(首譯)의 최학령(崔鶴齡)이
마인(馬人)과 부동(附同)하여 지척(咫尺) 장전(長前)에서
위조 전갈(僞造傳喝)하였으니, 그 죄(罪)가 중(重)하오매,
일행(一行)이 제분(齊憤)하여 거청(擧請)하여 아룁니다.”
사상(使相)이 처음에는 화해(和解)하라 이르더니,
나중에 수역(首譯) 불러 후에 그리 말라 하고,
분부(分付)하여 내치시니, 분완(憤惋)키 가이없어
소리 크게 여쭈오되, “문사(文士)들과 명무 군관(名武軍官)
죽을 죄(罪) 있사오니, 사핵(查覈)하여 처치(處置)하오.”
정사상(正使相)이 말씀하되,“무슨 일이 그러하뇨?”
내 다시 여쭈오되, “아까 한 비장(裨將)이
역관(譯官)으로 한 데 앉아 고성(高聲)하여 이르오되,
아까 온 장로 편지(長老便紙) 지주(指嗾)한 이 있다 하니,
인신(人臣)이 인국인(隣國人)과 부동(附同) 지주(指嗾)한 죄(罪)
만사무석(萬死無惜)이온지라. 사핵(査威)하여 내오소서.”
정사상(正使相)과 종사상(從事相)이 내 말 뜻 모르시고,
시온(時韞)더러 물으시니, 전후곡절(前後曲節) 여쭈오니,
정사상(正使相)이 이르시되, “만리(萬里) 동행(同行)하여
화합(和合)함이 가하거늘, 이런 말을 와서 하니,
사사(事事)이 무익(無益)하고, 갈등(葛藤)만 나리로다.”
내 또 여쭈오되, “최천종(崔天宗) 같은 일이
이후에 있삽거든, 그제야 아오소서.”
정상(正相)이 하오시되, “언길(言吉) 불언흉(不言凶)을
그대 어이 모르고서 이런 말을 또 하는가?”
“이제 아니 하여서는 후에 변(變)이 있사와도
그 연고(緣故)를 모를지라. 그러므로 하나이다.”
여성(勵聲)하여 이르시되, “내 듣고자 않하는 말을
그대 어이 이대도록 누누(累累)히 아뢰는가?”
“왜승(倭僧)과 부동(附同)한 죄(罪) 부재간(覆載間) 난용(難容)인데,
엄치(嚴治)하여 사핵(查覈) 아니하고 암담한데 두시는가?”
사상(使相)이 말하시되, “장로(長老)와 필담(筆談)한 일
사고(事故)가 그러하여 부득이(不得已) 한 일이니,
그대는 내 죄 없는 줄 내 자세히 아는지라.
어이하여 그렇도록 혼자 그리 노(怒)하는가?”
내 다시 하온 말이, “그 비장(裨將)의 한 말뜻이
사상(使相) 말씀 같자오면, 노(怒)할 일 없사오나,
사람을 데려다가 불측(不測)한데 보내오니,
통한(痛恨)치 아니하며, 노(怒)하지 아니하랴?
집사(執事)와 같은 죽음 또 분명(分明) 있사오리.”
비로소 온언(溫言)으로 웃으시고 이르시되,
“만일(萬一) 병난(兵難) 있게 되면, 창의(倡義)하고 분개(憤槪)할 이
반드시 자네로세.” 희언(戱言)으로 미봉(彌縫)하네.
종사상(從事相)이 하오시되, “김진사(金進士) 자라날 때
시골서 하였기에 행세보(行世-)를 모르고서
직설(直說)하고 과격(過激)하여 감언불휘(敢言不諱) 하는 것이
대개 풍채(風采) 있는지라. 이는 비록 귀(貴)커니와
자기(自己)의 몸 꾀하기는 소(小)하다 하리로다.”
분연(憤然)히 여쭈오되, “노둔(老純)하고 일 모르나,
나라 위한 일편단심(一片丹心) 흉중(胸中)에 있사오니,
나랏밥 먹삽고서 아유구용(阿諛苟容)하고,
망군부국(忘君負國) 하는 놈은 개돝으로 보나이다.”
인하여 물러와서 분(憤)하고 강개(陳槪)하여
밥 한술 못 먹고서 주야(晝夜)로 돌돌(咄咄)하니,
등창(-瘡)이 날 듯하나, 안질(眼疾)이 나는구나.
염일일(念一日) 염이일(念二日)도 대판(大坂)서 묵으니라.
춘파승(春坡僧) 들어와서 미처 못 앉았을 때
수역(首譯)이 상방(上房)에 가 급급(急急)히 고(告)하오되,
“재판(裁判) 와서 하오되, 장로(長老)의 제자(弟子) 중[僧]이
또 와서 필담(筆談)하니, 여쭈어 달라.” 하니,
방(上房)에서 시온(時饂) 불러, “마인(馬人)이 성을 내니,
큰일이 나게 됐네. 이후는 그리 마소.”
그 중이 들어와서 말도 미처 못하여서
먼 데 있는 마두(馬頭)놈이 어이 미처 알았던가.
예부터 진창군(陳唱軍)이 있거니 어이하리.
염삼일(念三日) 수역(首譯)들이 마인(馬人)의 하는 말로
사상(使相)에게 혼동(混動)하여 필담(筆談) 길을 막는구나.
염사일(念四日) 영장로(瑛長老)가 혼자 뵈자 또 청(請)하고
도주(島主) 또한 말 보내되, “난언(難言)한 일 있사오니,
장로(長老)를 보오서야 해분(解憤)을 하리라.” 하네.
사상(使相)네 칭병(稱病)하고, 답(答)하여 보내오되,
“전례(前例)가 없사오니 도주(島主)와 함께 와야
그제야 보려노라.” 회답(回答)하여 보내오니,
장로(長老)가 대답(對答)하되, “혼자 보려 하는 뜻은
관백(關白)의 뜻인지라, 만일(萬一) 그러할 작시면,
아니 봄만 못하다.”고 물러간다 하는구나.
염오일(念五日) 한 왜(倭) 와서 종이에 써서 뵈되,
“갇힌 죄인중(罪人中)에 열다섯은 마인(馬人)이요,
평인(平人)은 셋이러니, 마인(馬人) 하나 또 있다.” 하네.
이십육 일 이십칠 일 또 여기서 묵으니라.
왜(倭)부터 강호(江戶) 온 후 선래 군관(先來軍官) 보내는데,
옥사결말(獄事結末) 못 났기에 초육일(初六日) 날 양으로
전명(傳命)한 장계(狀啓) 써서 비선(飛船)에 보내고서
이강령(李康翎) 유장흥(柳長興)과 역관(譯官) 최수인(崔壽仁)을
선래(先來)로 정(定)하여서 옥사결말(獄事結末) 하온 후(後)에
무사(無事)히 오는 장계(狀啓) 보내려 하니라.
염팔일(念八日) 강호(江戶)에서 대목부(大目付) 승차랑(勝次郞)이
사핵(查覈)하러 왔다 하니, 이제야 결말(結末) 날세.
이십구일 장로(長老) 와서 수역(首譯)하여 말 올리되,
“오늘이야 전장(傳藏) 일을 행형(行刑)을 하려 하되,
예부터 아국법(我國法)이 뵐 형벌(刑罰)도 있거니와
못 뵐 형벌(刑罰)도 있삽는데, 전장(傳藏)에게 행할 형벌(刑罰)
남 뵈지 못하리라, 이국인(異國人)은 못 뵈리라.”
사상(使相)네 들으시고, 약조(約條)와 다른 뜻을
여러 번 써서 뵈니, 나중에야 뵈마 하지만
저물도록 기다리되, 행형(行刑)을 아니하고,
비로소 초혼(初昏)에야 죄인(罪人)을 내어가되,
제 나라 국기(國忌)라고 내일(來日)은 못 죽이고,
재명(再明)에야 정법(定法)한다 소문(所聞)이 이러하되,
“간사(奸邪)한 그놈들이 아국인(我國人) 아니 뵈고,
거짓 것을 죽였노라.” 속이려 하는구나.
삼십일(三十日) 두 선장(船將)이 급히 와 여쭈오되,
“격군(格軍)의 이광하(李光河)가 전에 발광(發狂)하였을 때
제 목을 제가 찔러 그 후에 완합(完合)하고,
다시 발광(發狂) 아니하매, 일복선(一卜船)에 올렸더니,
또 발광(發狂)하옵기에 철쇄(鐵鎖)로 잠갔더니,
오늘밤에 상한 데가 붉고 붓고 두드러져
기식(氣息)이 엄엄(奄奄)하여 명재경각(命在頃刻) 한다.” 하네.
오월(五月) 초일일(初一日)에 망궐례(望闕禮) 사배(四拜)하되,
안질(眼疾)로 불참(不參)하니, 마음이 서운하다.
초이일(初二日) 전장(傳藏)이를 행형(行刑)한다 하는지라.
삼수역(三首譯)과 삼병방(三兵房)을 보내어 보라 하니,
월생도(月生島)란 강물 가에 극위(棘圍)처럼 두루 막고
그 가운데 관원(官員) 앉고, 전장(傳藏)이를 동여매어
꿇려 앉히고서 왜(倭) 한 놈 칼 가지고,
옆에서 쳐 죽이니, 머리 땅에 내려지니,
한 놈 대령(待令)하였다가 머리를 물에 씻어
단(壇) 조금 쌓고서는 그 위에 머리 앉혀
사흘 후(後)에 묻는다니 효시(梟示)함과 일체(一體)로다.
역관(譯官)과 중관(中官)들은 밖에서 보고 왔네.
상명(償命)을 겨우 하나, 괴수(魁首)를 못 죽이니,
하늘이라 어찌하리, 분한(憤恨)할 따름이라.
초삼일(初三日) 왜놈들이 전장(傳藏)의 초사(招辭) 보내었네.
천종(天宗)이 살았을 때 거울 하나 잃은지라
전장(傳藏)이 가졌다고 등채로 등을 치니,
전장(傳藏)이 성을 내어 죽였다 하였으나,
그 말을 믿을쏘냐 알 길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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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사일(初四日) 처음으로 가지를 먹어보니,
후(節侯)가 이른 줄을 이로 가히 알리로다.
초육일(初六日) 발행(發行)키로 삼방(三房)이 완정(完定)하고,
선래군관(先來軍官) 떠나기로 이날로 정(定)하오니,
여섯 배 사람들이 마음이 날 듯하다.
천종(天宗)이 죽은 후(後)로 글짓기 아니 하니,
몸은 비록 편하여도 도리어 궁금하다.
양장로(兩長老) 제자(弟子)들과 대판성(大坂城) 선비들이
다 모두 들어와서 이별(離別)하고 가는구나.
초육일(初六日) 미시말(未時末)에 사상(使相)네 배 타실 때
우리 네 문사(文士)는 먼저 나와 배로 오니,
정왕초중(淨王蕉中) 목세숙(木世肅)이 길가에 와 기다리네.
초중(蕉中)이 소매 잡고, 상연(傷然)히 눈물 낸다.
노당 형제(魯堂兄弟) 선두(船頭)에 와 손목 잡고 이별(離別)하네.
창암(愴暗)한 마음들이 피차(彼此)에 일반이라.
초칠일(初七日) 순풍(順風) 부니, 발선(發船)키 좋건마는
행중(行中)의 한 비장(裨將)이 천 여금 은전(銀錢)으로
왜물 무역(倭物貿易) 하였다가 미처 찾지 못한지라.
도주(島主)에게 핑계하고, 발행(發行)을 아니하니,
일행(一行)의 마음들이 통분(痛憤)키 어떠하리.
초팔일(初八日) 발행(發行)하여 저물어야 병고(兵庫) 오다.
초구일(初九日) 순풍(順風) 불되, 행중(行中)의 역관(譯官)들이
전장(傳藏)의 살옥(殺獄) 일로 수 천금(數千金) 무역(貿易)한 것
미처 찾지 못하여서 곳곳이 와 칭탈(稱頉)하고,
발선(發船)을 아니하니, 그 죄가 어떠하리.
초십일(初十日) 십일일은 병고(兵庫)에서 묵으니라.
십이일 발행(發行)하여 이십 리(二十里) 겨우 와서
도주(島主)가 풍역(風逆)하다고, 도로 회선(回船) 하는지라.
우리도 도로 오니, 분완(憤惋)키를 이를쏘냐.
십삼일 종사상(從事相)이 최학령(崔鶴齡)과 현태익(玄泰翼)을
나입(拿入)하여 분부(分付)하되, “우리 격군중(格軍中)에
발선(發船)하자 의논(議論)하면, 원수(怨讐)처럼 미워하니,
너희 일 무상(無常)하니, 이후(以後)는 그리 말라.”
십사 일 떠나서 명석(明石) 와 숙소(宿所)하다.
십오 일 우창(牛窓) 와서 승칠(勝七)이 보내어서
정잠(井潛)이 찾아와서 삼료(三僚)로 가서 보니,
중촌삼실(中村三實)이란 사람 도서 이부(圖書二部) 새겨 왔네.
장지(壯紙) 열 장(張)으로 답례(禮)하여 보내니라.
십육 일 도포(韜浦) 자고, 십칠일 발행(發行)하여
겸예(鎌刈)를 못 미쳐서 백이십 리(百二十里) 죽원(竹原) 와서
양중(洋中)에 닻을 주고, 밤을 겨우 지낸 후(後)에
이튿날 순풍(順風) 만나 겸예(鎌刈) 오니 일렀구나.
십구 일 진화(津和) 지나 상관(上關) 오니 백 리(百里)로다.
이십 일 실우(室隅) 지나 향포(向浦) 와서 묵으니라.
이십일 일 동풍(東風) 부니, 배 오기 쾌(快)하구나.
적간관(赤間關) 들어오니, 상장개(上長愷) 와서 본다.
염이일(念二日) 순풍(順風)하되, 못 떠나니 가이없다.
염삼일(念三日) 비 뿌리고 적간관(赤間關)서 묵으니라.
염사일(念四日) 풍역(風逆)하여 삼십 리(三十里) 남박(南泊) 자다.
염오일(念五日) 발선(發船)하여 수 십리(數十里) 겨우 와서
풍역(風逆)으로 회선(回船)하여 남박(南泊) 가 도로 자다.
염육일(念六日) 남도(藍島) 오니, 밤이 많이 들었구나.
추강(秋江) 노경(魯坰) 국담(菊潭) 왔다 하되 못 보았다.
염칠일(念七日) 남도(藍島)에서 주중(舟中)에 머무니라,
염팔일(念八日) 동풍(東風) 만나 일기도(壹岐島) 들어온다.
염구일(念九日) 기도(岐島)에서 선방(船房)에서 묵으니라.
유월(六月) 열이틀을 기도(岐島)에서 못 떠나다.
십삼 일(十三日) 날 샌 뒤에 돛 달고 발선(發船)하니,
파도(波濤)가 흉악(凶惡)하여 올 때와 한가지다.
미시량(未時量) 안개 끼어 지척(咫尺)을 불분(不分)하니,
물길을 전혀 몰라 왜사공(倭沙工)도 망조(罔措)하네.
천지(天地)는 아득하고, 밤은 벌써 들었는데,
일선(一船)이 황황(遑遑)하여 속수(束手)하고 앉았더니,
추상우 와서 하되, “물소리가 높사오니,
필연(必然)이 섬이오니, 돛을 급히 내립시다.”
급급(急急)히 낙범(落帆)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果然) 한 지척산(咫尺山)이라. 놀랍고 가이없다.
만일(萬一) 돛을 달았더면, 파선(破船)을 응당(應當)할세.
그제야 닻을 주고, 양중(洋中)에서 묵게 되니,
밤빛은 아득한데, 안개조차 끼었으며,
배 아래 물소리는 천지(天地)가 진동(振動)하고,
지명(地名)도 모르고서 위태(危殆)히 앉았는 양(樣)
타인(他人)이 볼작시면, 눈물을 응당(應當) 지리.
동행(同行)하던 다섯 배는 이대로 간작시고.
철석(鐵石) 같은 심장(心臟)이나, 진정(鎭定)키 어렵구나.
밤새도록 곧게 앉아 날 새기만 기다리네.
십사 일 동트거늘 추상우와 왜놈 보내
자세히 물으라 하니 못 미쳐 돌아와서
섬 가를 돌아보니, 왜선(倭船) 한 척 매었거늘,
통사(通詞) 시켜 물어보니, “도주(島主)의 복선(卜船)으로
어젯밤 길을 잃어 여기 와 닿았기에
바야흐로 뱃줄 끌러 부중(府中)으로 들어가니,
앞길을 모를지라, 한가지로 가자.” 하니,
들으매 기쁘구나, 닻 들고 돛을 달아
북(北)으로 향(向)하여서 삼십 리(三十里)를 마침 와서
부중(府中)을 바라보고 포구(浦口)로 들어가니,
상방(上房)의 장무역관(掌務驛官) 부방비장(副房裨將) 수역(首譯)들이
우리를 찾으려고 양식(糧食) 싸고 마주 오고,
삼복선(三卜船) 서장 격군(書狀格軍) 한 가지로 나오다가
포구(浦口)에서 만나 보니, 죽었던 사람 본 듯
피차(彼此)에 기쁘기를 어이 다 이를쏘냐.
선창(船艙)에 배를 대고, 관소(館所)로 들어가니,
정사상(正使相) 부사상(副使相)과 일행(一行) 상하관(上下官)이
마주 와 위로(慰勞)하고, 반기고 기뻐하네.
어저께 일기선(一騎船)도 또한 길을 잃었다가
도주(島主)의 배를 만나 삼경량(三更量)에 겨우 오고,
그 밖에 기복선(騎卜船)들 겨우 하여 들어오되,
우리 배 아니오니, 밤새도록 염려(念慮)하여
잠 한숨을 못들 자고, 앉아서 기다렸네.
나는 어제부터 병(病)들어 누웠기에
관소(館所)로 못 내리니, 동행(同行)들 와서 보네.
강진(康津) 땅 지도(智島) 포민(鮑民) 남녀노소 열 한 사람
어채(漁採)하러 나왔다가 삼월(三月)에 표풍(漂風)하여
사월(四月) 초일일(初一日)에 예 와서 배 닿으니,
강호(江戶)에 취품(就稟)하고, 조선(朝鮮)으로 보낼 차(次)로
양식(糧食) 먹여 두었더니 놀랍고 불쌍하여
사상(使相)네 불러보고, 체자(替資) 많이 하는지라
나도 데려다가 쌀 어물(魚物) 많이 주니,
감격(感激)하고 기뻐하여 부모(父母) 본 듯하여 한다.
한 나라 사람으로 이국(異國)에 와 만나 보니,
반갑고 귀하기가 어이 아니 그러하리.
십오일 망궐례(望闕禮)를 병(病)으로 불참(不參)하다.
도주(島主)와 이정승(以酊僧)이 사신(使臣)네께 와서 뵌다.
들으니 관소(館所)에는 문망(蚊蝱)이 장(壯)타 하되,
배방에 누었으니, 이 환(患)을 면(免)할로다.
거월(去月) 이십오 일에 선래군관(先來軍官) 예서 떠나
이 달 초이일(初二日)에 부산(釜山)으로 갔다 하네.
각읍 지공(各邑支供) 분정(分定)하여 경상감사(慶尙監司) 위문(慰問)왔다.
고국(故國) 성식(聲息) 가까우니, 마음이 날 듯하다.
십육일 일어나서 작은 배 빌어 타고,
삼사신(三使臣)께 문후(問候)한 후(後) 부기선(副騎船) 둘러보니,
삼문사(文士) 모였거늘, 온화(穩話)하고 돌아오다.
도주(島主)의 연향(宴饗)을 대삼중(大三重)에 있는지라.
사상(使相)네 사양(辭讓)하되, 도주(島主)가 견집(堅執)하더니,
오늘이야 기별(奇別)하되, 차(茶)로 대신하자 하네.
십칠일 용방승(龍芳僧)이 제자(弟子) 난주(蘭州) 보내어서
거울 하나 드리거늘 장지 필묵(壯紙筆墨) 답례(答禮)하고,
황률(黃栗) 약과(藥果) 방백자(方栢子)로 수영장로(守瑛長老) 면죄(免罪)하다.
대마도주(對馬島主) 십팔일에 사신(使臣)네를 청(請)하오니
평복(平服)으로 남여(藍與) 타고, 개복(改服)하고 들어가서
다파(茶罷)하고 돌아와서 내일 회정(來日回程) 하려 하니,
육선(六船)에 오백인(五百人)이 뉘 아니 용약(踊躍)하리.
십구일(十九日) 길 떠날 때 예부터 대마도주(對馬島主)
포구(浦口)에 친히 나와 보내는 일 전례로되,
이날이 거의 낮이로되 오히려 아니오니,
만홀(慢忽)키 심한지라, 통악(痛聘)키 가이없다.
미시(未時)나 지난 후에 비로소 나오는고.
육선(六船)이 차차 떠나 포구(浦口)로 나올 때에
도주(島主)와 이정승(以酊僧)이 읍(揖)하여 보내는고.
바람이 미(微)한지라, 일시(一時)에 노역(櫓役)하여
올 때 길 버리고서 첩로(捷路)로 바로 드니,
지명(地名)은 선두포(船頭浦)요, 일명(一名)은 사공목(沙工項)이
평수길(平秀吉) 임진년(壬辰年)에 사공(沙工)놈 주길(周吉)이를
여기 와 베었기에 언덕에 사당(祠堂) 있네.
고이할 손 주길사(朱吉祠)가 적간관(赤間關)도 있다 하니,
아마도 두 곳 중의 하나는 아니로다.
좌우(左右) 봉만(峯巒)들에 수목(樹木)이 참천(參天)하고,
갯물이 만회(灣回)하여 겨우 한 배 갈 만하다.
우리 배 걸리어서 나갈 길 없는지라.
수십 명 격군(格軍)들이 배에 내려 끌어내서
겨우 하여 떠나노라 날이 벌써 저물었네.
등불 켜고 행선(行船)하여 방포(芳浦) 가서 닿을 주니,
인가(人家)도 전혀 없고, 양중(洋中)에서 밤을 샌다.
이날 온 데 헤어보니, 칠십 리(七十里)는 되는구나.
이십일 대열(大熱)하고, 바람이 전혀 없어
서박포(西泊浦) 와서 자니, 이십 리(二十里) 왔구나야.
염일일(念一日)은 초복(初伏)이라, 일찍이 발행(發行)하니.
일기(日氣)가 대열(大熱)하되, 남풍(南風)이 부는지라.
배 가기 좋지마는 왜인(倭人)이 칭탈(稱頉)하고,
공연(空然)히 배를 놓아 풍기포(豊崎浦) 와 자게 되니,
순풍(順風)을 잃은지라 통분(痛憤)코 애달플 사.
이십 리(二十里)를 겨우 오니, 아니오나 다르지 않다.
염이일(念二日) 일찍 일어 타루(柁樓)에서 일출(日出) 보니,
장(壯)하고 기특(奇特)하되, 눈부시어 어렵도다.
일찍이 발선(發船)하여 아국(我國)으로 오려 하니,
불측(不測)할 손 대차왜(大借倭)가 백번이나 칭탈(稱頉)하고,
늦게야 발선(發船)하여 배를 바로 놓으려니,
왜놈이 듣지 않고, 좌수포(佐須浦)로 가려 하니,
격군(格軍)을 분부(分付)하여 뱃줄 끌러 내려치고,
돛 달고 노역(櫓役)하여 건술(乾戌)로 배 놓으니
하 즐겁고 날 듯하니, 지향(指向)을 못 할로라.
서남풍(西南風)이 매우 불어, 비슥이 돛을 다니,
순풍(順風)은 아니라도 배 가기 빨랐도다.
고국(故國)을 바라보니, 연해(沿海) 각 진포(各鎭浦)가
역력(歷歷)히 벌려 있어 점점(漸漸) 나아 오는지라.
인간(人間)의 즐겁기가 네 가지 있다 하되,
오늘날 기쁘기는 천지간(天地間) 없으리라.
부산(釜山)을 바라보니, 사십 리(四十里)는 남았는데,
풍도(風濤)가 구역(俱逆)하여 촌진(寸進) 척퇴(尺退)하니,
갈 길이 전혀 없어 밤새도록 노역(櫓役)하여
양중(洋中)에 밤을 새고, 이심삼 일 천명시(天明時)에
부산(釜山)으로 들어오니, 부산첨사(釜山僉使) 와서 뵌다.
상부 기복(上副騎卜) 다섯 배는 무사(無事)히 들어왔네.
배다리 내어놓고, 뭍으로 내려서니,
천금(千金) 같은 이내 몸이 이제는 살았구나.
각 읍 관속(各邑官屬) 와서 보고, 주인(主人)도 반겨 하네.
가국(家國)이 무사(無事)하고, 일행(一行)이 온반(穩返)하니,
기특(奇特)고 다행(多幸)하다. 조여구 분상(奔喪)하니,
놀랍고 참혹(慘酷)하기를 어이 다 기록(記錄)하리.
좌수사(左水使) 와서 뵈고, 각진 병장(各鎭兵將) 참알(參謁)한다.
갈 때에 각방 수청(各房守廳)와 보는 이 하나 없네.
괴이하여 물어보니, 상방 수청(上房守廳) 상례란 년
동래부사(東萊府使) 수청(守廳) 들고, 임도사(任都事)의 운향이와
양선전(梁宣傳)의 앵매란 년 비장청(裨將廳)에 들어 있고,
서중화(徐中和)의 차모(茶母)년은 책방(冊房)에 들어 있고,
장무역관(掌務譯官) 치가(治家)한 년 사근찰방(沙斤察訪) 보았다네.
아무리 기생(妓生)인들 그 사이를 못 참아서
다 모두 아니오니, 가통(可痛)하고 가소(可笑)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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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사일(念四日) 부사행차(副使行次) 먼저 떠나가는지라.
만리 동행(萬里同行) 하였다가 예 와 분로(分路)하게 되니,
섭섭기 가이없고, 결연(缺然)키 측량(測量) 없다.
남성원(南成元) 삼문사(三文士)도 와서 고별(告別)하는구나.
예서부터 분로(分路)하여 상방(上房) 일행(一行)들은
양산 밀양(梁山密陽) 대구(大邱)에서 조령(鳥嶺)으로 넘어가고,
부방(副房) 일행(一行)들은 울산 경주(蔚山慶州) 풍기(豊基)로서
죽령(竹嶺)을 넘어간다, 종사상(從事相) 일행(一行)들은
김해 창원(金海昌原) 성주(星州)로서 추풍령(秋風嶺)을 향(向)하라네.
염오일(念五日) 정사상(正使相)이 성복(盛服)하고 발행(發行)키에,
들어가 하직(下直)하니, 창연(愴然)코 창연(愴然)하다.
밥 먹고 종방(從房)에 가 문후(問候)하고 돌아와서
짐 차려 길을 나니, 동행(同行)한 격군(格軍)들이
다 와서 이별(離別)하니, 인정(人情)이 섭섭하다.
삼십 리(三十里) 감동창(甘洞倉) 와 함안 기장(咸安機張) 병참(倂站) 격기
재촉하여 찾아 먹고, 낙동강(洛東江) 하류(下流) 건너
양산(梁山) 땅 대도(大道) 지나, 또 강 하나 지나가서
김해(金海)로 들어가니, 수로왕(首露王) 고국(故國)이라.
산천(山川)이 광활(廣)하여 이 또한 대도회(大都會)라.
본부(本府)로 들어가서 주수(主倅)를 찾아보고,
하처(下處)로 돌아오니, 종방 행차(從相行次) 오는지라.
들어가 문후(問候)하고, 사처(私處)로 나오니라.
이십육 일 오십 리(五十里) 와 자여역(自如驛) 중화(中火)하니,
함양 지대(咸陽支待) 여기 와서 석 달을 묵은지라.
허다(許多)한 관속(官屬)들이 의복(衣服)을 팔아먹고,
마을로 다니면서 빌어먹기 태반(太半)이요,
내 차모(茶母) 은행이가 수식(首飾)을 매식(買食)하고,
민머리로 사환(使喚)하니, 소견(所見)이 불쌍하다.
이십 리(二十里) 창원(昌原) 가서 길청(-廳)에 하처(下處)하니,
다정(多情)할 손 본부 태수(本府太守) 차담(茶啖)과 밥상 밖에
묘찬(妙饌) 일대탁(一大卓)을 안쪽에서 내어오니,
음식(飮食)이 정결(淨潔)하여 먹음직하다마는
더위에 병(病)이 들어 못 먹으니 가이없다.
저녁밥 겨우 먹고, 임도사(任都事) 보러가니,
주수(主倅)도 나왔으며, 함양(咸陽)도 또한 왔네.
두 비장(裨將) 두 태수(太守)가 선전관(宣傳官) 증경(會競)이라.
청풍(淸風)으로 희롱하니, 보기에 우습도다.
주수(主倅)는 거경(巨卿) 치고, 거경(巨卿)은 함양(咸陽) 치고,
함양(咸陽)은 경집(敬緝) 치고, 절차(節次)가 다 있구나.
청하인(廳下人) 아니 오고, 도지개 없으면
못 치는 법(法)이로되, 마침 조좌수가
다니러 왔는지라 청풍(淸風)을 하는구나.
천안(天安)에서 동령이 지나다가 와서 보네.
임도사(任都事)가 불러다가 덕담(德談)을 시키오니,
광대(廣大)중 제일(第一)이라. 들음직 하구나야.
염칠일(念七日) 사십 리(四十里) 와 칠원(漆原)서 중화(中火)하니,
진해 병참(鎭海倂站) 하는지라. 통인차모(通引茶母) 현신(現身)한다.
밥먹고 말을 타고, 또 사십 리(四十里) 영산(靈山) 와서
김필순(金弼淳)의 집에 들어 하처(下處)하니 반겨하네.
영산 관속(靈山官屬) 와서 뵈고, 차모(茶母) 계월 현신(現身)한다.
창녕 아전(昌寧衙前) 하득인이 와서 보니 다정(多情)하다.
주수(主倅)는 전갈(傳喝)하고 나와서 보는구나.
남성(南成) 이 문사(二文士)가 역(驛)놈 시켜 편지(便紙) 왔네.
답장(答狀) 써 내어주고, 정사상(正使相)께 편지(便紙) 쓰고,
서유(徐柳) 양인(兩人)에게 문안(問安) 써 보내니라.
이십팔 일 먼저 떠나 창녕지경(昌寧地境) 다다르니,
전에 알던 관속(官屬)들이 마주 나와 보는구나.
아중(衙中)으로 들어가서 주수(主倅) 보고 내달리니,
장교 아전(將校衙前) 기생 통인(妓生通引) 다 모두 와서 보고,
노별감(老別監) 이반이도 부러 와 보고 가네.
사행(使行)이 떠난 뒤에 서래(暑來)커늘 말을 타니,
일읍(一邑) 관속(官屬)들이 오리정(五里亭)에 이별(離別)하며
차마 못 떠나 하니, 인정(人情)이 기특(奇特)하다.
이십 리(二十里)는 겨우 와서 날이 심히 더운지라.
주막(酒幕)에 내려앉아 거풍(擧風)을 하노라니,
본현(本縣)의 향소(鄕所)들이 와서 보고 가는구나.
이십 리(二十里) 현풍(玄風) 오니, 군관청(軍官)이 하처(下處)로세.
객사(客舍)가 압림(壓臨)하니, 소견(所見)이 불평(不平)하여
현사(縣舍)로 돌아오니, 방(房)과 마루 시원하다.
창녕 통인(昌寧通引) 하대원이 따라와 현신(現身)한다.
지례원(知禮員) 송맹박이 편지(便紙)하여 묻는구나.
자여인마(自如人馬) 하직하고, 김천 부마(金泉夫馬) 현신(現身)한다.
염구일(念九日) 먼저 떠나 무계도(茂溪渡) 건너 달려
무계역(茂溪驛) 들어가니, 고령지공(高靈支供) 한다 하네.
성주기생(星州妓生) 차애 재랑 와서 보고 가는구나.
중화(中火)하고 발행(發行)하여 별고개 넘어오니,
날이 많이 더운지라 역인(驛人) 세 놈 더위 먹어
떨어지고 아니오니, 다만 세 놈 데리고서
성주 아중(星州衙中) 바로 들어 목사(牧使) 보고 오노라니,
길에 한 놈 절하거늘 고이하여 자세히 보니,
공주 관노(官奴) 일죽 일로 도망하여 나왔다가
날 보고 반가워서 뛰놀며 기뻐하네.
인정(人情)이 불쌍하여 다담(茶啖) 받아 먹인 후(後)에
주수(主倅)에게 체자(替資) 받아 내어 주니 기뻐하네.
몽와선생(夢爲先生) 임인년(壬寅年)에 후명(後命) 받은 고을이라.
비각(碑閣)에 와 첨배(膽拜)하니, 마음이 슬프도다.
종사상(從事相)이 본주수(本州倅)와 세혐(世嫌)이 있는지라
다담(茶啖) 진지 도로 주고, 예방(禮房) 시켜 먹는다네.
역관(譯官)의 이언진(李彦瑱)이 매양(每樣) 내게 청(請)을 하되,
고운 차모(茶母) 만나거든 제게 체자(遞子) 하라 하되,
임도사(任都事) 홍비장(洪裨將)이 매양 먼저 달라기에
못 얻어 주었더니, 아이 차모(茶母) 귀란 년이
인품(人品)이 기특(奇特)하고 얼굴이 비상(非常)커늘
저녁에 전갈(傳喝)하여 사령(使令) 주어 보내고서
아무 말 할지라도 잃지 말라 하였더니
그년이 불측(不測)하여 자리에 들어 누었다가
울면서 빌어대니 아비 제(祭) 오늘이니
잠깐 보고 와서 뫼시리라 하니
열없는 숫 사나이 그 말을 곧이듣고,
잠깐 가 다녀오라 당부하여 보낸 것이
날 새도록 기다린들 그림자도 오돗던가.
잠 한숨을 못 자고서 눈망울이 붉어져서
일찍 일어 와서 보고, 절통(切痛)하여 하는 거동(擧動)
저마다 기롱(譏弄)하니, 우습고 절도(絶倒)하다.
그믐날 새벽 떠나 부산(扶山) 와 중화(中火)하고,
김산(金山)으로 들어오니, 미시(未時)는 되었구나.
이 고을 관속(官屬)들이 부산(釜山) 와 지공(支供)할 때
내게 은혜(恩惠) 입었기에 이방(吏房) 백언국이
아병청(衙兵廳)에 하처(下處)하고, 와 보고 반겨한다.
기생(妓生)들도 나와 보고, 치사(致謝)하고 가는구나.
지례수(知禮守)와 경승(敬勝)이가 와 보고 동참하다.
통인(通引) 마용득이 사환(使喚)을 잘하는고.
타던 말 언짢거늘, 다른 말 갈라 하니
사근역마(沙斤驛馬) 들이거늘, 타 보니 매우 좋다.
칠월(七月) 초일일(初一日)에 비 뿌리고 흐리었다.
지례 거창(知禮居昌) 두 태수(太守)와 경승이를 이별(離別)하고,
추풍령(秋風嶺) 다다르니, 거창 하인(居昌下人) 대령(待令)하여
미음(米飮)을 들이거늘 말 위에서 받아먹고,
황간(皇澗)으로 들어오니, 군관청(軍官廳) 하처(下處)로다.
음식(飮食)이 정결(淨潔)하고, 포진(布陣)도 무던하다.
신흥역(新興驛)놈 이동이가 내려갈 때 구종(驅從)이라.
와서 보고 반겨하니, 차담(茶啖) 주어 기뻐하네.
율봉 인마(栗峰人馬) 못 왔기에 역마(驛馬)가 모자라서
우격으로 복마(卜馬)하여 영동(永同)으로 들어가서
주수(主倅) 보고 하처(下處)로 와 웃옷 벗고 앉았더니,
본현 태수(本縣太守) 나와 보고, 조용히 말하더니,
서울 기별(奇別) 들어 하니, 나라에서 삼사신(三使臣)을
최천종(崔天宗) 죽은 일로 삭직(削職)을 하오시고,
서기 군관(書記軍官) 원역(員役)들은 역마(驛馬) 주어 대접(待接)기를
갈 때와 같이 하라 전지(傳旨)가 내리시다네.
종사상(從事相) 오늘부터 객사(客舍)에 못 들지라.
내 하처(下處) 길청(吉廳)이라 좋다 하고 이리 오니,
이방(吏房) 손세권의 집으로 옮아가서
차모(茶母) 섬월이를 이언진(李彦瑱)을 허급(許給)하니,
제 어미 대상(大祥)이라 백단(百端)으로 애걸(哀乞)하니,
이 역관(李譯官) 또 속으니, 들으매 간간(衎衎)하다.
옥천(沃川)의 탐후아전(探候衙前) 원(員)에 편지(便紙) 드리는고,
차담(茶啖)의 건물(乾物) 내어 행담(行擔)에 봉(封)하여서
황새마을 신생(申生)에게 하인(下人) 시켜 보내오니,
신생은 나가고서 언문 수답(諺文酬答) 맡아 왔네.
초이일(初二日) 본현(本縣)에 가 주수(主倅)를 이별(離別)하고,
사십 리(四十里) 이산(利山) 중화(中火) 삼십 리(三十里) 옥천(沃川) 오니,
본읍 태수(本邑太守) 와서 보고, 사신(使臣) 보러 가는구나.
삼십 리(三十里) 증약(增若) 오니, 본군 지공(本郡支供) 예도 한다.
일신역(日新譯) 최가(崔哥)놈이 순사편지(巡使便紙) 가지고 와
길에서 만나보고, 반겨서 절하거늘
집 소식(消息) 물어보니, 다들 무사(無事)하다 하네.
기쁘기 측량(測量) 없어 편지(便紙) 써 부치고서
차담(茶啖) 받아 먹인 후(後)에 급히 가라 당부하다.
초삼일(初三日) 일찍 떠나 역 뒤 재 넘어가서
유천(楡川)으로 들어가서, 송찬성 찾아보고,
한훤(寒喧)을 겨우 하여 종사상(從事相) 들어오네.
사위 집 가까워도 오느라 못 가 보고,
그저 지나가게 되니, 섭섭하기 측량(測量)없다.
종사상(從事相)은 먼저 가고, 나는 조금 머물러서
조용히 말을 하고, 추후(追後)하여 길을 떠나
형강(荊江)을 얼른 지나 문의(文義)로 들어가서
이영명의 집에 다녀 하처(下處)로 돌아오니,
주수(主倅)가 와서 보고, 대접(待接)하고 들어간다.
중화(中火)하고 먼저 떠나 청주(淸州)로 들어가니,
전관(前官) 때 아전 관속(衙前官屬) 다 와서 치관(致款)하네.
예서 나 사는 데 하룻길 되는지라.
처음에 먹은 계교(計巧) 여기 와 떨어져서
바로 가려 하였더니, 송찬성 가 볼 때에
거취(去就)를 물어 보니, 갈 때에 입시(入侍)하여
하직(下直)을 하였으니, 복명(復命)을 아니하고,
예서 떨어지는 것은 분의(分義)가 그르다니,
종사상(從事相) 말 들으시고, 굳이 막고 불허(不許)하니,
형세(理)가 그러하여 서울로 가게 되니,
심란(心亂)키 가이없고, 인정(人情)이 어려우나,
사세(事勢)가 하릴없어 복마(卜馬)에 실은 짐을
율봉찰방(栗峰察訪) 당부(當付)하여 집으로 보내라고,
하처(下處)에 누웠더니, 빙고재(氷庫帖) 허생원과
연산(連山) 김추백(金秋桓)이 와서 보고 연침(聯枕)하고
병영 비장(兵營裨將) 맹만옥이 나와 보고 가는구나.
본관 아전(本官衙前) 곽상술이 전부터 친(親)하던지라
자주 와서 치관(致款)하니, 인정(人情)이 그러하다.
초사일(初四日) 작천(鵲川) 건너 오송역(吳松驛) 중화(中火)하고,
바로 낮에 발행(發行)하니, 일기(日氣)가 대열(大熱)하여
인마(人馬)가 번갈(煩渴)하여 오기가 어렵도다.
삼십 리(三十里) 진천(鎭川) 오니, 하처(下處)가 어찌 아니커늘
향청(鄕廳)으로 옮아가니, 집도 좋고 시원하다.
초오일(初五日) 일 떠나서 장양역(長楊驛) 지나가서
광활(廣閣)하고 시원한 들더위도 극심(極甚)한데,
광이원 중화(中火)하니, 오십 리(五十里)라 하는구나.
밥 먹고 먼저 가서 이십 리(二十里) 죽산(竹山) 오니,
관문(關門)까지 들어오되, 하인(下人) 하나 아니 맞네.
역(驛)놈 시켜 불러내니, 한 아전(衙前) 나오는데,
거동(擧動)이 완만(緩慢)커늘 누구냐 물어보니
안산군(安山郡) 이방(吏房)이라 하매 하인 시켜 부예(附隸)하고
하처(下處)로 찾아오니, 시원하고 물 것 없다.
전년(前年)에 내려갈 때 날 데리고 가던 데라.
김악산 이강아지 이험복 세 사람이
또 와서 현신(現身)하고, 모시고 가리라 하네.
경기 역마(京畿驛馬) 대령(待令)한 것 피열(疲熱)키 참혹(參酷)커늘,
역병방(驛兵房) 잡아다가 대림(待臨)하라 꾸짖으니,
그제야 좋은 말을 갖다가 태우거늘
초육일(初六日) 삼경량(三更量)에 말 타고 내달으니,
성두(城頭)가 소삽(蕭颯)하고, 밤기운 서늘하여
길 가기 매우 좋아 삼십 리(三十里)나 거의 와서
한 놈이 말을 타고, 횃불 켜고 달려오네.
하인(下人) 시켜 물어보니, 나라님이 전교(傳敎)하사
날이 심(甚)히 대열(大熱)하니, 서서(徐徐)히 오라시네.
피잔(疲殘)히 주막(酒幕) 와서 신기(身氣) 심(甚)히 불평(不平)커늘
주막(酒幕)에 들어 쉬니, 닭이 겨우 두 훼 우니
이윽히 가매(假寐)하니 정신(精神)이 퍽 낫거늘,
동트기에 다시 떠나 오리(五里)는 지나오니,
양지 관속(陽智官屬) 마주 와서 취수 전배(吹手前陪) 다 왔거늘,
말 잡고 물어보니, 사신(使臣)네 제용(諸容)하고,
고처 역마(驛馬) 주신지라. 연봉(延逢)이 나왔구나.
양지읍내(陽智邑內) 들어오니, 남양 병참(南陽倂站) 하는구나.
중화후(中火後) 길 떠나니, 차마 더워 올 길 없어
곳곳에 내려 쉬며 용인(龍仁)으로 들어오니,
이행이 와서 보고, 제 집이 아니 머니,
잠깐 나와 찾게 되면, 여리 생색(閭里生色) 된다 하매
인정(人情)이 어려워서 말을 타고 나가보니,
오 리(五里)는 겨우 되고, 극력(極力)하여 대접(待接)한다.
초칠일(初七日) 개동시(開東時)에 이행이 이별(離別)하고,
널다리[板橋] 들어오니, 지대(支待)도 참혹(參酷)하다.
김포 검천(金浦黔川) 병참(倂站)인데, 김포수(金浦倅) 민백종이
두호(斗護)하여 달라 하고, 신신(申申)히 신칙(申飭)하매,
일행(一行)에게 전갈(傳喝)하여 무사(無事)히 하게 하니.
비편(非便)한 일 무수(無數)하고, 심력(心力)도 쓰이었다.
한흥(汗國)이와 복마(卜馬) 짐은 먼저 들여 보내고서
저녁참 양재(良才) 오니, 마천 과천(馬川果川) 병참(井站)한다.
두 고을 태수(太守)들은 일가(一家)요 친한지라.
만지장서(滿紙長書) 편지(便紙)하여 잘 처 달라 간청(懇請)하니,
인정(人情)에 하릴없어 극진(極基)히 돌보니라.
초팔일(初八日) 평명시(平明時)에 종사상(從事相) 모시고서
한강(漢江)의 배를 타고, 두모개(頭毛浦)로 올라와서
신촌(新村) 고개 넘어 들어 동관왕묘(東關王廟) 들어오니,
상사 행차(上使行大) 먼저 와서 묘중(廟中)에 앉았거늘,
들어가 문후(問候)하고, 동료(同儀)들 반기고서
한훤(寒喧)을 못 다하여 부방 행차(副房行次) 들어오네.
조정(朝廷)의 여러 재상(宰相) 마주 나와 보는구나.
일행상하(一行上下) 장복(章服)하고, 궐하(闕下)로 나아갈 때
나는 장복(章服) 없는지라 양선전(梁宣傳) 전갈(傳喝)하여
무겸청(武兼廳)에 빌어다가 한가지로 입시(入侍)할 때
삼사상(三使相) 사문사(四文士)와 열일곱 비장(裨將)들이
일시(一時)에 추창(推唱)하여 탑전(榻前)에 국배(掬拜)하니,
나라께서 웃으시고, 삼사신(三使臣)께 묻자오되,
풍도(風濤)에 험(險)한 것과 행역(行役)에 어려움과
산천(山川)의 기이(奇異)함과 인물(人物)의 번성(繁盛)함과
궁실(宮室)의 장(壯)한 것과 풍속(風俗)의 괴이(怪異)한 것
낱낱이 물으신 후(後) 다음 문사(文士) 부르시되,
“장동(壯洞) 김문(金門)에서 서기(書記) 간 이 네 누군가?”
사신(使臣)이 여쭈오되, “맨 뒤에 엎딘 것이
진사(進士) 김모(金某)옵고, 종사 서기(從事書記) 갔더이다.”
가까이 오라 시매 나아가 부복(俯伏)하니,
나라께서 물으시되, “고상신(故相臣)의 무엇이냐?”
기복(起伏)하여 여쭙기를 전대로 여쭈오니,
다시 하문(下問)하오시되, “저 나라 들어가니,
저 나라 문재(文才)들이 무섭더냐, 언짢더냐?”
“문재(文才)가 유여(有餘)한 놈 왕왕(往往)이 있사오나,
시율(詩律)은 참혹(慘酷)하여 제술(製述)할 줄 모르더이다.”
“네 이번 지은 것이 다소(多少)가 어떠하뇨?”
“네 문사(文士) 짓사온 것 대략은 같사오나,
다 주어 헤게 되면, 수 천수(數千)나 되나이다.”
격절(激切) 탄상(歎賞) 하오시되, “장(壯)하고 심(甚)히 많다.
들으니 너희 시재(詩才) 전보다 매우 낫고,
윤필(潤筆)을 도로 주어 청백(淸白)히 다녀오니,
욕국(辱國)을 아닌지라 아름답고 기특(奇特)하다.”
날이 마침 극열(極熱)하고, 석양(夕陽)이 비치어서
끓는 땅에 엎디어서 말씀을 여쭈올 때
속에서 불이 나고, 관대(冠帶)에 땀이 배어
물 흐르듯 하는지라 나라께서 보오시고
“너희 더위 어려우니, 먼저 나가 쉬라.” 하시니,
국배(掬拜)하고 사퇴(辭退)하니, 천은(天恩)이 망극(極)하다.
더위를 장(壯)히 먹어 막힐 듯하는지라.
사신(使臣) 네 못 기다려 하처(下處)로 돌아오니,
누이도 반겨 하고, 딸은 기뻐 우는구나.
일가(一家) 친척(親戚)들이 나와서 위문(慰問)하네.
여드레 겨우 쉬어 공주(公州)로 내려가니,
처자식(妻子息)들 나를 보고, 죽었던 이 다시 본 듯
기쁘기 극(極)한지라. 어린 듯 앉았구나.
사당(祠堂)에 현알(見謁)하고, 옷도 벗고 편(便)히 쉬니,
풍도(風濤)의 험(險)하던 일 저승 같고 꿈도 같다.
농자(弄子) 포손(抱孫)하고, 한가(閑暇)히 누웠으니,
강호(江湖)의 산인(散人)이요, 성대(聖代)의 일민(逸民)이로다.
수륙(水陸) 육천 리(六千里)를 한 해 만에 돌아오니,
나라께서 승평(昇平)하고, 가속(家屬)도 무양(無恙)하니
이에서 기쁜 일이 또 어디 있단 말고.
천신(千辛) 만고(萬苦)하고, 십생(十生) 구사(九死)하여
장(壯)하고 이상(異常)하고, 무섭고 놀라우며
부끄럽고 통분(痛忿)하며, 우습고 다행(多幸)하며,
미우며 애처롭고, 간사(奸邪)하며 사나옵고,
참혹하고 불쌍하며, 고이하고 공교(工巧)하며,
귀(貴)하고 기특(奇特)하며, 위태하고 노여우며,
쾌(快)하고 기쁜 일과 지루하고 난감(難堪)한 일
갖가지로 갖춰 겪어 일 년 만에 돌아온 일
자손(子孫)을 뵈려하고, 가사(歌辭)를 지어내니,
만(萬)의 하나 기록(記錄)하되, 지루하고 황잡(荒雜)하니,
보시는 이 웃지 말고, 파적(破寂)이나 하오소서.
# perspectives
시 분석 및 정보
시인 프로필 및 창작 과정
김인겸(1701~1772)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시인으로, 일동장유가는 그가 일본에 통신사로 파견되었을 때의 경험을 기록한 장편 한문 가사이다. 조선과 일본 간의 외교적 사절단 역할을 수행하며, 김인겸은 일본의 풍경, 문화, 사람들에 대한 관찰을 시로 남겼다. 이 작품은 그의 개인적 경험과 당시 국제적 정세를 반영하며, 외교적 사명을 수행하면서 느낀 감정과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창작 배경
일동장유가는 1764년 김인겸이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후 쓴 작품으로, 조선과 일본 간의 외교와 문화 교류를 중심으로 한다. 그는 일본의 자연 경관, 사회적 풍습, 그리고 조선 사절단의 활동을 상세히 묘사하며, 당시 조선인의 시각에서 일본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했다.
문학적 특징
- 일동장유가는 한문으로 쓰였으며, 장편 서사시 형태를 띠고 있다.
- 김인겸은 일본의 풍경과 문화를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조선인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강조하였다.
- 작품에는 외교적 긴장감과 개인적 감정이 교차하며, 유교적 가치관과 철학적 성찰이 드러난다.
역사적, 문화적 배경
역사적 배경
1764년은 조선 후기이며, 이 시기는 조선과 일본 간의 외교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시기였다. 통신사는 양국 간의 외교와 문화 교류를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김인겸은 이러한 사명 속에서 일본을 방문했다.
당시 한국인의 관점
조선인은 일본을 문화적으로 열등한 나라로 보는 경향이 있었으며, 김인겸 역시 작품에서 조선 문화를 우월하게 여기며 일본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는 일본의 자연 경관과 일부 풍습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도 남겼다.
현대 한국인의 관점
현대 한국인은 일동장유가를 통해 당시 조선인의 세계관과 국제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작품은 단순히 외교 기록이 아니라, 당시 동아시아 국제 질서 속에서 조선인의 자부심과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학작품으로 평가된다.
현대 미국인의 관점
미국인은 이 작품을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 교류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본다. 특히 김인겸의 세밀한 묘사는 18세기 동아시아의 정치·문화적 상황을 생생히 전달하며, 조선과 일본 간의 관계를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데 유용하다.
영향력 분석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일동장유가는 한반도와 일본 간의 역사적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이 작품은 외교와 문화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현대 사회에서도 국가 간 협력과 소통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얻을 수 있는 통찰
김인겸은 타국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열린 자세로 관찰한다. 이는 현대인에게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현실 세계를 반영하는 방식
작품은 당시 국제 관계와 정치적 긴장감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과거 동아시아 외교 전략과 문화 교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영향력 및 분야
- 문학: 한문 가사의 대표작으로 평가받으며, 동아시아 문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역사: 18세기 조선과 일본 간 외교 관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기록이다.
- 문화 연구: 두 나라의 풍습과 사고방식을 비교·분석하는 데 유용하다.
자주 묻는 질문
- 일동장유가는 왜 중요한가요?
- 이 작품은 조선 후기 통신사의 활동과 국제 관계를 생생히 기록한 문학작품으로서 역사·문학적으로 가치가 높습니다.
- 김인겸은 어떤 관점에서 일본을 묘사했나요?
- 그는 유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일본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자연 경관 등 일부 긍정적인 측면도 인정했습니다.
추가 정보
시 제목 의미 및 설명
-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동쪽으로 가며 장대한 여행을 노래함"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日東'은 일본을 가리키며, '壯遊'는 장대한 여행을 의미한다.
주요 용어 설명
- 통신사(通信使): 조선이 일본에 파견한 외교 사절단.
- 삼현(三絃): 전통 악기 중 하나로, 왜놈들의 연주 장면에서 언급된다.
- 순풍(順風): 배가 항해하기 좋은 바람을 뜻하며, 작품에서 여정을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한다.
김인겸의 <일동장유가>에 등장한 지역들의 역사적 사건들
대마도(쓰시마섬)의 역사적 사건
대마도 정벌
대마도는 조선과 일본 간의 외교와 갈등의 중심지였으며, 특히 왜구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었다. 고려와 조선은 왜구를 근절하기 위해 세 차례에 걸쳐 대마도를 정벌했다.
- 제1차 대마도 정벌 (1389년)
박위가 이끈 첫 번째 정벌은 고려 창왕 2년에 이루어졌다. 이때 고려군은 대마도에 상륙해 왜구의 본거지를 공격하며, 왜선 300척과 해안 건물을 불태우고 포로로 잡혀 있던 고려인 100여 명을 구출했다15. - 제2차 대마도 정벌 (1396년)
조선 태조 5년에 김사형이 이끄는 두 번째 정벌이 진행되었다. 이 작전은 왜구의 지속적인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이루어졌으며, 병선을 동원해 대마도를 공격했다. 당시 기록은 상세하지 않지만, 조선군이 성과를 거두었음을 태조가 치하한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15. - 제3차 대마도 정벌 (1419년)
세종 1년에 발생한 기해동정으로 알려진 대규모 전투였다. 이종무가 이끄는 조선군은 병선 227척과 병력 17,000명을 동원해 대마도를 공격했다. 조선군은 적병을 참수하고 가옥과 선박을 파괴하며 왜구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하지만 전투 중 상당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전면적인 토벌에는 실패했다35.
왜구의 활동
대마도는 척박한 환경으로 인해 농업이 어려웠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주민들이 해적 활동에 나섰다. 왜구는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한반도와 중국 연안을 침략하며 약탈과 살인을 자행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대마도는 왜구 문제의 중심지가 되었고, 조선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군사적 대응을 지속했다14.
일본 내 다른 지역들
우진령(宇津嶺)
김인겸의 작품에 등장하는 우진령은 일본 여행 중 묘사된 자연 경관으로, 당시 통신사들이 지나던 주요 경로였다. 이 지역은 일본의 정치적 중심지와 문화적 거점으로 연결되는 길목이었다.
역사적 의의
김인겸이 묘사한 대마도와 일본의 여러 지역들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조선 후기 국제 관계와 외교적 긴장감을 반영하는 장소들이다. 특히 대마도의 역사는 조선과 일본 간의 갈등과 협력의 상징으로, 당시 동아시아 국제 질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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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3 - [문학 (Literature)] - List) 기행가사 목록: 시대의 반영과 감정의 표현
List) 기행가사 목록: 시대의 반영과 감정의 표현
기행가사 목록 일부 :백광홍, , 1556년정철, , 1580년조우인, , 1617년경조우인, , 1623년경송주석, , 1675년작자미상, , 1694년박권, , 1695년노명선, , 1698년경권섭, , 1704년위세직, , 1707년 이전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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