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아침, 해를 찾아서>
#### 1. 도시 속 회색빛 아침
또다시 알람 소리가 울린다. 습관처럼 손을 뻗어 알람을 끄려다가 허공을 휘저었다. 스마트폰이 자리를 옮겼나? 아, 어제 배달 음식을 주문하다가 침대 맨 끝으로 밀려났던 게 기억났다. 결국 온몸을 비틀어 간신히 알람을 껐다. 이런 아침 체조로 하루를 시작하는 건 이제 일상이다.
삼십이 층. 내가 사는 곳은 도시의 숫자 중 하나일 뿐이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32'를 누르면서 문득 생각한다. 이 숫자가 내 나이와 같아질 때까지 여기 살 것인가. 그렇다면 앞으로 3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출근 준비를 하며 거울을 본다. 언제부터인가 내 얼굴에서도 도시의 색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회색빛이다. 옷장을 열어보니 모든 옷이 무채색이다. 검정, 회색, 흰색… 마치 도시가 내 옷장에 침입해 모든 색을 먹어버린 것 같다. 한때는 노란색 셔츠도 있었는데, 아마도 세탁기가 그 셔츠를 회색으로 개조했을 것이다.
#### 2. 창가에 선 화자와 해의 위안
아침 식사 대신 커피 한 잔을 들고 창가에 선다. "여러분, 오늘도 평화로운 아침입니다. 현재 기온은…" 라디오 소리가 흐른다. 평화롭다니, 내 위장은 전쟁 중인데.
해가 떠오르는 걸 보며 생각한다. 저 해는 매일 출퇴근을 하나? 아침에 동쪽에서 출근해 저녁에 서쪽으로 퇴근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장인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야근은 없어 보여서 부럽다.
문득 고향의 산자락이 떠오른다. 새벽 이슬을 밟으며 산책하던 길, 아침 안개 사이로 비치던 햇살… 지금 그 산에는 등산객들이 셀카봉을 들고 인증샷을 찍고 있을 테지. 자연도 이제는 인스타그램의 배경이 되어버린 세상이라니.
#### 3. 달빛 아래의 고독
퇴근 후의 밤. 달빛이 도시의 어둠을 비춘다. 수많은 불빛 사이에서 달은 마치 “나도 여기 있어요!”라고 외치는 것 같다. 하지만 도시는 네온사인에 더 관심이 많다.
아파트 창문들이 하나둘 불이 켜진다. 각각의 창문마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겠지. 저기선 누군가 배달 음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창문에선 고양이가 창틀을 걷고 있을 것이다. 맞은편 창문의 알록달록한 커튼은 도시 한복판의 작은 반란 같다.
나는 달빛 아래 서서 혼잣말을 한다. "달님, 오늘도 야근하시느라 수고 많으시네요." 그러자 구름이 달을 살짝 가렸다가 지나간다. 마치 달이 윙크를 한 것 같다. 이제 나는 달과도 대화를 나누는구나. 고독이 무섭긴 무섭다.
#### 4. 노인과의 만남
어느 토요일 아침, 평소처럼 창가에서 해돋이를 보고 있을 때였다. 옆 베란다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한 노인이 서 있었다. 흰 머리카락이 아침 햇살에 반짝였다. 마치 달토끼가 인간으로 변신한 것처럼.
"아침마다 해 보시나 봅니다."
노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네… 매일 이맘때쯤 일어나서요."
"나도 그래요. 이제 나이가 들어 잠도 줄고… 사실 넷플릭스 보다가 잠들었는데 그만 일찍 깼어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피식 웃음이 났다. 노인은 이 아파트에서 혼자 산 지 십 년이 넘었다고 했다. 자녀들은 모두 외국에 있어서 영상통화로만 본다고 했다. "요즘 애들은 카톡도 잘 안 해요. 인스타 DM이 대세라나 뭐라나…" 노인의 말에 또 한 번 놀랐다.
“젊었을 때는 나도 당신처럼 바빴어요. 회사, 회사, 회사… 마치 삼성물산 주식 같았죠. 늘 오르락내리락하다가 결국 횡보…” 노인의 재치 있는 비유에 웃음이 났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한결 따뜻해졌다. 그와의 만남이 생각보다 나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 5. 무심한 동료들과의 단절
"김 과장님, 이번 프로젝트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됐나요?"
월요일 아침, 팀장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회의실을 가른다. 마치 아침잠을 깨우는 알람처럼.
"네, 지난주에 보고드린 대로… 어… 진행 중입니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업무용 노트북은 윈도우 업데이트 중이라 켜지지도 않았다. 마치 내 인생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다.
회의실에서 모두는 노트북 화면만을 바라본다. 누군가 발표할 때면 가끔 고개를 끄덕이는데, 자는 건지 끄덕이는 건지 구분이 안 된다. 누군가는 키보드 소리를 내며 타자를 치고 있는데, 카톡을 하는 건지 회의록을 작성하는 건지…
"점심 같이 드실래요?"
회의가 끝나고 동료가 묻는다.
"아… 죄송해요. 오늘은 처리할 업무가…"
"아, 네. 그럼 다음에요."
서로가 거짓말인 걸 알면서도 주고받는 일상의 의례. 마치 가벼운 탁구공처럼 핑퐁을 주고받는다.
#### 6. 자유에 대한 내적 갈망
퇴근 후, 습관처럼 편의점에 들렀다. 도시락을 고르는데 유통기한이 내일까지다. 나와 비슷하네. 직장인의 유통기한은 퇴사할 때까지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늘을 올려다본다. 빌딩 숲 사이로 보이는 별 하나. 저 별은 몇 광년 전의 빛일까? 어쩌면 지금은 이미 사라진 별일지도 모른다. 마치 내 청춘처럼.
아침에 만난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도시 속에서도 자신만의 자연을 만들 수 있다고. 노인의 베란다 화분들은 마치 작은 반란군 같았다. 회색빛 도시에 맞서는 녹색 게릴라들.
베란다에 서서 생각했다. 나도 저런 반란을 일으켜볼까? 회사에선 착실한 직장인이지만, 퇴근 후엔 반란군 대장이 되는 거야. 물론 반란의 내용은 화분 가꾸기지만…
#### 7. 해와의 약속
다음 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이었다. 베란다 문을 열자 찬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분명 실내복을 입고 나왔는데도 한기가 느껴졌다. 아침에 찾는 자유인이 되려면 적응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부터 조금씩 달라져보자.”
중얼거리듯 외쳤다.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며, 메모장을 꺼냈다. 야심 차게 작성한 계획들이 보였다.
'베란다에 작은 화분 놓기'
'아침 산책하기'
'동네 도서관 가보기'
'이웃 노인과 차 한 잔 마시기'
맨 밑에 "운동화 사기"라고 덧붙여져 있었다. 오, 맞다. 산책을 하려면 신발부터 바꿔야겠군. 해가 떠오르며 메모장을 비췄다. 마치 이 약속을 지켜보겠다는 듯이.
#### 8. 도시 속에서 찾은 나만의 청산
봄이 왔다. 내 베란다에는 작은 화분들이 줄지어 서 있다. 처음에는 제대로 피울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이제 꽃들이 도시의 푸른 하늘을 향해 당당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내 손길에 익숙해진 모양이다.
매일 아침 산책
은 이제 습관이 되었다. 집 앞 공원을 한 바퀴 돌면서 이웃들과 인사를 나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려웠지만, 이제는 그들의 이름도 기억나기 시작한다.
이웃 노인과는 주말마다 차를 마신다. 노인은 내게 화초 기르는 법을 가르쳐줬고, 나는 노인에게 네이버 지도 사용법을 알려드렸다. "구글 지도가 더 좋다고요. 네이버는 맨날 어디로 보내는지 모른다니까." 노인의 말에 둘이서 크게 웃었다.
회사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어느 날 점심시간, 평소처럼 혼자 있으려던 차에 후배가 다가왔다.
"선배님, 요즘 달라지신 것 같아요. 뭔가… 편안해 보이세요."
"그래?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나 보네."
"저… 혹시 시간 되시면, 이따가 커피 한잔 어떠세요?"
예전 같았으면 거절했겠지만, 이번에는 수락했다. 후배와 나눈 대화는 의외로 즐거웠다. 서로의 취미와 꿈을 이야기하다 보니, 다음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제 아침마다 떠오르는 해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더 이상 과거의 자연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속에서 찾은 나만의 작은 자연을 비추는 빛이 된 것이다. 고층 빌딩 숲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좁지만, 그 속에서도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도 해가 떠오른다. 베란다의 화초들이 새싹을 틔우고, 아침 산책길에서 만나는 이웃들이 활짝 웃는다. 도시는 여전히 분주하게 돌아가지만,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만의 리듬을 만들어가고 있다.
삼십이 층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은 예전과 같지만,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제 나는 안다. 진정한 자유는 장소가 아닌,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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