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2024/12 59

Short story) 지중해의 탄환 - 용서의 바다

1장: 고향으로의 귀환노을이 드리운 지중해의 항구. 붉은 지붕과 석조 골목이 이어진 마을은 여전히 과거와 다름없었다. 알레산드로는 오래된 가죽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천천히 항구에 발을 디뎠다.이곳은 그의 고향이었다. 동시에 그가 가장 증오했던 곳이기도 했다.항구의 바람은 짭조름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무겁고 숨 막히는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바람이었다. 아버지와 누이가 숨진 사고 이후 10년 만의 귀환. 그는 짐을 내려놓으며 주머니에서 작은 금속 조각을 꺼냈다.탄환이었다."왜 여기에 있었지..."알레산드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형사로 일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이 탄환은 그의 가족과 관련된 진실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그는 결심했다. 이곳에 남겨진 진실을 찾아내겠다고.항구 근처의 작은 카페에 도착한 알레산드로는..

Poem) 이상, <삼차각설계도 - 선에 관한 각서 4>

이상,  탄환이일원도(一圓壔)를질주했다(탄환이일직선으로질주했다에있어서의오류등을수정)정육설탕(각설탕을칭함)폭통(瀑筒)의해면질(海綿質)전충(塡充)(폭포의문학적해설)     #perspectives이상의 「삼차각설계도 - 선에 관한 각서 4」는 그의 대표적인 실험적 시 작품 중 하나로, 독특한 시각적 표현과 난해한 언어 사용으로 유명합니다. 이 시를 분석하며 그 의미와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역사적 배경1930년대 일제강점기 한국은 급격한 근대화와 함께 문화적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상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전통적인 문학 형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실험적 시도를 통해 당대의 복잡한 현실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시 분석1. **"탄환이일원도(一圓壔)를질주했다"**   - 이 구절은 탄환의 움직임을..

Short story) 회전하는 경계 - 선과 원의 유산

제1장: 기억 속의 선과 원뉴욕, 2043년.낡은 연구소의 복도는 여전히 섬세하게 깔린 흰 타일 위로 빛나는 조명이 깜빡이고 있었다. 에바 윌리엄스의 얼굴은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손에 든 낡은 노트는 페이지마다 수많은 선과 원의 조합이 그려져 있었고, 각 기호는 수십 년 전 그녀가 겪은 사건을 암시하고 있었다.책상 위의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에는 세계 지도와 함께 "균열 잔재 발생 보고서"라는 제목이 떠 있었다. 20년이 지났지만, 균열이 만들어낸 흔적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 남아 있었다. 뉴욕의 타임스퀘어 한가운데에서는 매일 정지된 시간이 반복되었고,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은 보이지 않는 경계선으로 구분되어 있었다.그녀의 손길이 노트 위의 한 페이지에서 멈췄다. 원형으..

Poem) 이상, <삼차각설계도 - 선에 관한 각서 3>

이상,    1 2 31 ᆞ ᆞ ᆞ2 ᆞ ᆞ ᆞ3 ᆞ ᆞ ᆞ  3 2 13 ᆞ ᆞ ᆞ2 ᆞ ᆞ ᆞ1 ᆞ ᆞ ᆞ∴nPh=n(n-1)(n-2)‥‥‥(n-h+1)(뇌수는부채와같이원(圓)까지전개되었다, 그리고완전히회전하였다.)   #perspectives이상의 '삼차각설계도 - 선에 관한 각서 3'은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복잡한 구조와 수학적 표현을 통해 독특한 시적 세계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 시를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역사적 배경1930년대 한국은 일제 강점기 하에 있었으며, 문학계에서는 모더니즘의 영향이 크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상(李箱)은 이 시기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전통적인 시 형식을 탈피하고 실험적인 기법을 도입했습니다.## 당시 한국인의 관점19..

Short story) 교점의 도시

1화: 선과 점의 연결기하학적 도시, 그리고 그 속의 사람들도시를 감싸는 네온사인 아래, 이준호는 낡은 카페에 앉아 설계도를 펼쳐 보았다. 낡은 수첩엔 삼각형, 사각형, 원형으로 나뉜 도시의 구조와 이를 연결하려는 새로운 선들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었다. 그는 이 수첩을 보며 항상 생각한다. "이 도시를 바꿀 수만 있다면, 이 선들이 사람들을 이어주는 교점이 될 텐데..." 하지만 현실은 그의 야망과는 거리가 멀었다."이봐, 고객님. 두 시간째 같은 자리에서 같은 커피를 빨아먹고 계신데요. 혹시 여기서 밤을 새실 건 아니죠?"박수진이 장난스럽게 말을 걸며 커피를 내려놓았다. 카페 바리스타인 그녀는 종종 이준호를 ‘설계도 작가’라고 부르며 농담을 던졌다. 그녀는 그의 기하학적 설계도가 뭔가 있어 보이지만, ..

Poem) 이상, <삼차각설계도 - 선에 관한 각서 2>

이상,  1+33+13+1  1+31+3  3+11+3  1+33+1  3+13+11+3선상의점A선상의점B선상의점CA+B+C=AA+B+C=BA+B+C=C2선의교점A3선의교점B수선(數線)의교점C3+11+31+3  3+13+1  1+33+1  3+11+3  1+31+33+1(태양광선은,凸렌즈때문에수렴광선이되어일점에있어서혁혁히빛나고혁혁히불탔다. 태초의요행은무엇보다도대기의층과층이이루는층으로하여금凸렌즈되게하지아니하였던것에있다는것을생각하니낙(樂)이된다. 기하학은凸렌즈와같은불장난은아닐는지. 유클리드는사망해버린오늘유클리드의초점은도처에있어서인문(人文)의뇌수를마른풀과같이소각하는수렴작용을나열하는것에의하여최대의수렴작용을재촉하는위험을재촉한다. 사람은절망하라, 사람은탄생하라, 사람은탄생하라, 사람은절망하라.)   #perspec..

Short story) 빛과 숫자의 경기장

1장: 새로운 코치와 분석가토트넘 홋스퍼 유소년 축구 아카데미. 축구를 사랑하는 아이들의 꿈이 싹트는 이곳은, 언제나 활기차고 생동감 넘쳤다. 그러나 오늘 훈련장은 무겁고 묘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리디아 코치는 한쪽에 서서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훈련장을 가로질러 스크린 앞에 서 있는 필립에게 향했다. 필립은 무언가를 설명하며 손가락으로 데이터를 가리켰다.“보세요. 루크의 패스 성공률은 82%. 하지만 볼을 받는 각도를 바꾸면 90%까지 향상될 겁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움직이면 훨씬 효율적인 경기력을 끌어낼 수 있어요.”리디아는 팔짱을 끼고 눈을 좁혔다.“효율적인 경기력? 축구는 단순히 숫자를 쌓는 게임이 아니에요. 데이터는 방향을 알려줄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중요한 건 선수의..

Poem) 이상, <삼차각설계도 - 선에 관한 각서 1>

삼차각설계도 - 선에 관한 각서 1>      1 2 3 4 5 6 7 8 9 01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2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3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4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5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6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7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8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9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0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 ᆞ(우주는멱(冪)에의(依)하는멱에의한다)(사람은숫자를버리라)(고요하게나를전자(電子)의양자(陽子)로하라)스펙트럼축X축Y축Z속도etc의통제예컨대광선은매초당30만킬로미터달아나는것이확실하다면사람의발명은매초당60만킬로미터달아날수없다는법은물론없다. 그것을기십배기백배기천..

Short story) 별의 그림자

프롤로그: 초대장한도현은 피곤한 얼굴로 도시의 회색빛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공기가 무거웠다. 아니, 공기만 무거운 게 아니었다. 월급이 들어오는 속도보다 더 빨리 빠져나가는 통장의 잔고, 냉랭한 동료들의 시선, 하루를 견디게 했던 꿈조차 희미해진 현실이 도현을 짓눌렀다.그날도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문 앞에 놓인 초대장을 보기 전까지는.검은 봉투. 금박 글씨로 쓰인 이름. “한도현 님께.”도현은 문득 무언가 잘못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초대장을 열었다."당신을 위한 특별한 기회입니다.자연 속에서의 생존 게임에 초대합니다.최후의 승자에게는 10억 원의 상금이 주어집니다.인간의 본질과 자연의 조화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세요."초대장의 내용은 간결했다. 하지만 그 아래 쓰..

Essay) 이상, <산촌여정>

이상, 1향기로운 MJB의 미각을 잊어버린 지도 20여 일이나 됩니다. 이 곳에는 신문도 잘 아니 오고 체전부(遞傳夫)는 이따금 하드롱 빛 소식을 가져옵니다.거기는 누에고치와 옥수수의 사연이 적혀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사는 일가 때문에 수심이 생겼나 봅니다. 나도 도회에 남기고 온 일이 걱정이 됩니다.건너편 팔봉산에는 노루와 멧돼지가 있답니다. 그리고 기우제 지내던 개골창까지 내려와서 가재를 잡아먹는 곰을 본 사람도 있습니다. 동물원에서밖에 볼 수 없는 짐승, 산에 있는 짐승들을 사로잡아다가 동물원에 갖다 가둔 것이 아니라, 동물원에 있는 짐승들을 이런 산에다 내어 놓아준 것만 같은 착각을 자꾸만 느낍니다. 밤이 되면 달도 없는 그믐 칠야에 팔봉산도 사람이 침소로 들어가듯이 어둠 속으로 ..

Short story) 조커의 역단

조커의 역단> 1장: 초대도시는 빛과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네온사인 아래에서 차가운 밤공기가 준희의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카메라를 목에 걸고 카지노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블랙 메이즈.” 금색 글씨가 화려하게 반짝이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또 시작이군.”준희는 작게 한숨을 쉬며 카지노로 들어섰다. 그는 프리랜서 기자로서 여러 주제를 다뤘지만, 이번 이야기는 그에게 있어 특별했다. 그의 아버지는 한때 이 카지노와 연관이 있었고, 그로 인해 준희의 가족은 산산조각 났다. 그래서인지 카지노의 화려함은 그에게 항상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운명과의 만남카지노 내부는 눈부셨다. 기계음, 웃음소리, 그리고 기대에 찬 한숨이 공간을 채웠다. 준희는 카메라를 들어 카지노의 구석구석을 찍었다. 하지..

Poem) 이상, <역단>

이상, #화로방거죽에극한이와다앗다. 극한이방속을넘본다. 방안은견듼다. 나는독서의뜻과함께힘이든다. 화로를꽉쥐고집의집중을잡아땡기면유리창이움폭해지면서극한이혹처럼방을눌은다. 참다못하야화로는식고차겁기때문에나는적당스러운방안에서쩔쩔맨다. 어느바다에조수가미나보다. 잘다저진방바닥에서어머니가생기고어머니는내아픈데에서화로를떼여가지고부억으로나가신다. 나는겨우폭동을기억하는데내게서는억지로가지가돗는다. 두팔을벌리고유리창을가로막으면빨내방맹이가내등의더러운의상을뚜들긴다. 극한을걸커미는어머니―기적이다. 기침약처럼딱근딱근한화로를한아름담아가지고내체온우에올나스면독서는겁이나서근드박질을친다. #아침캄캄한공기를마시면폐에해롭다. 폐벽에끄름이앉는다. 밤새도록나는몸살을알른다. 밤은참많기도하드라. 실어내가기도하고실어들여오기도하고하다가이저버리고새벽이된다. 폐..

Short story) 뱅쇼의 향기 속에서

뱅쇼의 향기 속에서> 1장: 낯선 향기 속으로눈발이 거리를 덮으며 차가운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전기 가로등의 희미한 빛이 눈송이를 반짝이며 투명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바쁜 퇴근길, 거리는 고요했지만 서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거센 바람이 코끝을 스쳤지만,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발걸음을 재촉했다.“오늘도... 그냥 지나가야지.”그녀는 버릇처럼 자신에게 말했다. 그동안은 그저 지나쳤던 익숙한 골목. 그러나 오늘, 그녀는 멈춰 섰다.좁은 골목 끝에 작고 오래된 간판이 보였다. **"뱅쇼의 향기"**라고 적힌 간판이 어딘가 이질적이면서도 끌렸다. 서윤은 왜인지 알 수 없었지만, 발길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그녀를 맞이한 것은 따스한 온기와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뱅쇼의 독특한 향이었다.“어서 ..

Poem) 이상, <절벽>

이상,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향기가만개한다. 나는거기묘혈을판다.묘혈도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속에나는들어앉는다.나는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 꽃은보이지않는다.향기가만개한다. 나는잊어버리고재차거기묘혈을판다.묘혈은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로나는꽃을깜빡잊어버리고들어간다.나는정말눕는다. 아아. 꽃이또향기롭다. 보이지않는꽃이―보이지도않는꽃이.    #perspectives이상의 은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복잡하고 추상적인 이미지와 반복적인 구조를 통해 깊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시를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해 보겠습니다.## 역사적 배경1930년대 한국은 일제 강점기 하에 있었으며, 문학계에서는 모더니즘이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이상(李箱, 1910-1..

Short story) 트윈의 속삭임

트윈의 속삭임> 프롤로그: 디지털의 연인어둠이 깔린 방 안에서 희미하게 깜빡이는 홀로그램이 윤아의 얼굴을 비췄다. 홀로그램 속 모습은 너무도 익숙했다.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던 기억의 잔해들이 디지털 형태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윤아는 손끝을 떨며 홀로그램의 손을 향해 손을 뻗었다."윤아야."홀로그램이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그가 살아 있는 것처럼.“...준호?”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눈앞에 선 연인의 디지털 트윈은 과거의 기억 속 그를 완벽히 재현하고 있었다. 그가 미소 지었다.윤아는 몇 달 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자신이 선택한 이 기술이 이 모든 고통을 덜어줄 거라 믿었다. 이별을 마주한 이후 그녀는 삶을 버텨낼 이유조차 잃어버린 상태였다. 에코가..

Poem) 이상, <이런 시>

이상, 역사(役事)를하노라고 땅을파다가 커다란돌을하나 끄집어내여놓고보니 도모지어데서인가 본듯한생각이들게 모양이생겼는데 목도(木徒)들이 그것을메고나가드니 어데다갖다버리고온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 위험(危險)하기짝이없는 큰길가드라.그날밤에 한소나기하얐으니 필시(必是)그돌이깨끗이씻겼을터인데 그이튿날가보니까 변괴(變怪)로다 간데온데없드라. 어떤돌이와서 그돌을업어갔을까 나는참이런처량(悽凉)한생각에서아래와같은작문(作文)을지였도다.「내가 그다지 사랑하든 그대여 내한평생(平生)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이다. 내차례에 못올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생각하리다. 자그러면 내내어여쁘소서」어떤돌이 내얼골을 물끄러미 치여다보는것만같아서 이런시(詩)는그만찢어버리고싶드라 #perspectives## 역사적 배경이 시는 ..

Short story) 살구나무의 날개

살구나무의 날개> 1장: 내전의 그림자혼란은 갑작스러웠다.지우는 새벽부터 이어진 긴 진료를 마치고 병원의 낡은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밖에서는 총성과 비명이 간헐적으로 들려왔고, 곳곳에서 타오르는 불빛이 병원 창문을 통해 붉게 스며들었다.외곽의 작은 병원이었지만, 난민들과 부상자들로 가득 찬 병원은 이미 통제 불가능한 상태였다. 의료진은 턱없이 부족했고, 들어오는 환자들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지우, 수술실 쪽 좀 도와줘!”간호사 민정이 절박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우는 피로를 떨치고 달려갔다. 수술대 위에는 중년 남자가 심각한 총상을 입은 채 놓여 있었다.“지금 상태로는 수혈이 필수예요. 하지만…”민정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병원에는 수혈에 필요한 혈액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방법이 없으면 ..

Poem) 윤동주, <병원>

윤동주,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perspectives## 역사적 배경이 시 배경은 일..

Short story) 눈 속의 꽃

눈 속의 꽃> 제1장. 눈이 내리던 그날겨울이 깊어가고 있었다. 하얗게 내린 눈은 거리를 고요하게 만들었지만, 이현수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요란했다. 철학 카페 ‘로고스’의 창문 밖, 바닥까지 길게 늘어진 커튼 사이로 흩날리는 눈발이 보였다. 그날의 기억은 너무 생생해서 마치 어제의 일처럼 그의 머릿속을 떠다녔다.“현수, 당신의 논리로는 이별을 해결할 수 없어.”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은 그의 가슴에 깊은 틈을 남겼다. 최수진. 그녀는 평온하면서도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후, 그의 앞에서 떠났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그의 뒤에 남겨졌다고 느꼈다. 눈발 속으로 걸어가던 그녀의 뒷모습은 흐릿해지다가 완전히 사라졌다.이현수는 철학자였다. 삶의 복잡한 감정을 논리의 언어로 분석하며, 이성을 통해 모..

Poem) 윤동주, <눈이 오는 지도>

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방 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 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그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내려 덮어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일년 열두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perspectives윤동주의 시 는 1939년 3월에 쓰여진 작품으로, 이별의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섬세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