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것을 사랑하는 법>
나는 언제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었다. 여의도의 고층 빌딩 숲 사이에 자리 잡은 사무실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풍경은 내 손안에 들어온 작은 세상처럼 느껴졌다. 내가 쏟아놓은 투자 자본과 끊임없이 분석한 숫자들은 내 미래를 약속해주는 존재였다. 경제의 흐름, 시장의 변동성, 그것들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내 자부심이었고, 그것이 내 성공의 열쇠라고 생각했다.
내가 다니는 자산운용사에서 5년 동안 큰 손실 없이 투자 성공을 거듭해오면서, 사람들은 나를 신뢰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예측의 귀재’라고 부르는 것을 즐겼다. 한 번도 큰 실패를 겪은 적이 없었고, 내 확신은 그만큼 단단해졌다. 나는 마치 왕처럼, 시장을 내 예측대로 이끌어가는 사람이 되었다고 자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은이 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은은 나보다 두 살 어린 동료이자, 오랜 친구였다. 그녀는 나와는 전혀 다른 투자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기회를 보고 달려드는 유형이었지만, 지은은 언제나 신중하고 보수적인 전략을 택했다. 그녀는 늘 자신의 '모름'을 인정하는 사람으로, 그 사실이 나를 답답하게 만들 때가 많았다.
지은은 내 책상 앞에 앉아 조용히 나를 쳐다봤다. "유진, 이번엔 너무 과감한 거 아니야?"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걱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지은, 너무 신중한 거 아니야? 위험을 감수해야 더 큰 기회도 오는 거야. 이번 기회는 놓치면 안 돼. 내가 다 계산해봤어. 틀림없어."
지은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녀는 늘 그렇게 나를 말리곤 했다. “미래를 확신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잖아. 시장은 항상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어.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저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지은은 늘 그랬다. 불확실성을 강조하며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내 손안에 들어온 데이터와 시장의 흐름을 분석할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확신을 주었다. 그 확신은 나를 성공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기억해. 모른다는 걸 인정할 때, 더 준비할 수 있어." 그녀는 조용히 사무실 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것이 옳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작은 불안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이번에도 틀릴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생각을 곧 밀어냈다. 불안감은 실패의 씨앗이었다. 나는 실패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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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금리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인상된다는 뉴스가 속보로 전해졌다.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내가 선택한 주식들은 순식간에 급락했고, 모니터 속 그래프는 붉은색으로 뒤덮였다. 내 포지션은 돌이킬 수 없는 손실로 바뀌어갔다.
나는 얼어붙은 채 모니터를 바라보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이건 일시적인 거야. 시장은 곧 돌아올 거야.”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뇌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붉은 숫자들은 계속해서 하락선을 그렸고, 내 마음은 그 붉은 바다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지은이 내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나의 상태를 보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내 옆에 서서 말했다. "이래서 내가 신중하라고 했잖아, 유진. 우리는 절대로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없어. 아무리 분석을 해도, 예측은 항상 틀릴 수 있는 거야."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도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잘못된 건가? 정말 내가 모르는 것이 있었나? 그 생각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나는 고개를 젓고 그 감정을 밀어냈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내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내가 짊어진 확신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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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자존심과 신뢰를 무너뜨리는 충격이었다. 이번 투자는 단순히 나의 자본만이 아니라, 나의 미래와 가족의 미래까지도 걸린 중요한 투자였다. 나는 몇 년 전 부모님께 안정된 은퇴 생활을 약속했었다. 그 약속은 내가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며칠 후,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의 목소리는 밝았다. "유진아, 이번에 투자 잘 되고 있지? 어머니랑 은퇴 여행 계획 중인데, 네가 성공하면 떠나려고."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실패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부모님이 내게 거는 기대를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네, 아버지.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좋은 결과 나올 겁니다." 나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대답했지만, 마음속에는 엄청난 죄책감이 차올랐다.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실패의 무게가 점점 커져갔다. 아버지의 기대와 내가 짊어진 약속들, 그리고 나의 자존심은 점점 더 나를 억눌렀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정말 모른다는 것을 인정할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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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점점 더 악화될 무렵, 나에게 또 다른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나와 함께 일하던 동료 중 한 명이 나를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내가 선택한 주식 포지션을 미리 알고 있었고, 그 정보를 이용해 반대 포지션을 취해 큰 수익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분노와 배신감에 휩싸였다. 우리가 함께 일해왔고, 서로 신뢰했었는데, 그가 나를 그렇게 이용했다니. 나는 그를 찾아가 따졌다. "왜 그랬어? 우리가 함께 일해온 동료잖아."
그는 냉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유진, 이건 비즈니스야. 너는 지나치게 확신에 차 있었고, 그 확신이 너를 망친 거야. 난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뿐이야."
그의 말은 마치 내 가슴에 칼을 찌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를 향한 분노에 치를 떨었지만, 동시에 그의 말이 맞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확신 속에 자만했고, 그 자만이 나를 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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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무너진 뒤, 나는 민석 상사에게 호출되었다. 그는 우리 팀에서 가장 경력 많은 투자 전문가였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 앞에서 더 이상 자신감 넘치는 투자 전문가가 아니었다. 내가 쌓아온 자존심은 모두 무너져 있었다.
"유진, 이번에 배운 게 뭐지?" 민석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실망과 동시에 따뜻한 이해가 묻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떨군 채 대답했다. "제가 다 안다고 생각한 게 문제였습니다. 사실은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 말을 입 밖에 내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 말은 내가 지금까지 지켜왔던 자존심을 완전히 내려놓는 것이었다
. 그러나 그 말을 하고 나니, 내 마음속에 조금의 평화가 찾아왔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한 순간, 나는 그 무거운 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민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깨달은 게 중요해. 시장은 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아. 우리가 모르는 변수들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어. 그걸 받아들이고 대비하는 게 진정한 투자자의 자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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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나의 실패를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이제는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살지 않았다. 대신, 나는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 사실을 인정한 순간, 나는 더 많은 가능성에 대비할 수 있게 되었고, 더 겸손한 태도로 시장을 바라볼 수 있었다.
지은과 다시 함께 일하면서 나는 그녀의 방식에 더 큰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의 신중함과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태도는 이제 나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게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나는 어느 날 지은에게 물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가 항상 알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게 더 많아. 그걸 인정할 때, 오히려 더 많은 준비를 할 수 있어.”
나는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진정한 투자자는 모든 것을 안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라, 모른다는 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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