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8 6

Short story) 유리창 너머의 별

나는 다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차가운 유리창에 손을 얹고, 그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는 게 어느새 습관처럼 굳어버린 시간이었다. 밖은 겨울의 깊은 밤. 별들이 물먹은 보석처럼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밤은, 내 마음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유리창에 흐릿하게 입김을 불었다. 잠시 뿌옇게 변한 창 너머로 도시의 불빛이 흐릿하게 어른거렸다. 그 사이로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들. 이 작은 별들조차 언젠가는 사라지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가 사라졌던 것처럼. 아니, 정확히는 떠나간 것처럼. “괜찮아,” 나는 중얼거렸다. 누구에게 들려주려는 말도 아니었다. 그저 그가 나를 떠나기 전, 내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었다. 언제나 괜찮다고 말했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으면서도. 괜찮다고 말하면, 정말 ..

Poem) 정지용, <유리창1>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고흔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아아, 늬는 산(山)새처럼 날아갔구나!    #ref.:1930년 1월 『조선지광』 89호에 발표https://namu.wiki/w/%EC%9C%A0%EB%A6%AC%EC%B0%BDhttps://ko.wikisource.org/wiki/%EC%9C%A0%EB%A6%AC%EC%B0%BD1

Short story) Jacob's Story: I’ll Build a Window Facing South

The warm sunlight creeping in through my southern window gently brushed my face, coaxing me awake. As I opened my eyes, the familiar sight of my farm greeted me. The fields stretched out like a patchwork of soft brown earth, rows of corn swaying in the morning breeze. My body felt sore from yesterday’s harvest, but it was the kind of ache that brought with it a quiet sense of accomplishment. Lif..

Short story) 가을의 카페에서

**1. 가을의 시작과 첫 만남**  이른 아침, 가을이 깊어갈 무렵. 나는 카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붉고 노랗게 물든 나뭇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아스팔트 위에 고요히 쌓여 있었다. 이곳에 온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도심의 바쁜 생활을 떠나 이곳에 오기로 결심한 후,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듯했다. 도시에서의 시간은 늘 빠르게 흘렀지만, 이곳에서는 마치 멈춘 것처럼 느리게, 그리고 고요하게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유정**이 처음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이 열리며 차가운 가을바람이 함께 들어왔고,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짧은 단발머리와 짙은 눈빛을 가진, 도시적인 외모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카운터 앞에 서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Poem)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밭이 한참갈이괭이로 파고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강냉이가 익걸랑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웃지요.  #ref.:1934년 2월 《문학》제 2호https://ko.wikisource.org/wiki/%EB%A7%9D%ED%96%A5_(%EC%8B%9C%EC%A7%91)/%EB%82%A8%EC%9C%BC%EB%A1%9C_%EC%B0%BD%EC%9D%84_%EB%82%B4%EA%B2%A0%EC%86%8Chttps://namu.wiki/w/%EB%82%A8%EC%9C%BC%EB%A1%9C%20%EC%B0%BD%EC%9D%84%20%EB%82%B4%EA%B2%A0%EC%86%8Chttp://m.hwasunnews.co.kr/art..

Short story) 인내의 미학

5월 말의 서울은 늘 그렇듯 차가운 비를 품고 있었다. 하늘은 흐렸고, 공기는 습했다. 내일도 비가 온다고 했다. 나에게 내일은 두 가지로 중요한 날이다. 하나는 종합소득세 신고 마감일, 또 하나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투자 기회의 결단을 내릴 날이다. 둘 다 쉬운 일이 아니다. 세무사로서의 일이 마감이 다가올수록 정신없이 바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 투자자로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일은 언제나 나를 망설이게 만든다.오늘도 사무실에 앉아 수없이 많은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 자영업자들, 중소기업 고객들이 하나같이 불안해하며 세금 문제로 나를 찾는다. 그들의 불안감이 고스란히 나에게로 전달되었다. “이번에 세금이 왜 이렇게 많이 나온 거죠?” 같은 질문을 반복해 듣는 것도 익숙해졌지만, 그럼에도 내 일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