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story) 오월의 반란, 서하의 웃음

<오월의 반란, 서하의 웃음>


**제1장: 바람뜰의 초입**  

서울의 회색빛 거리 위를 한 대의 낡은 그랜저가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서하는 핸들을 고쳐 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창밖 풍경은 날카로운 도심의 빌딩 숲에서 점차 부드러운 녹음으로 바뀌고 있었다.  

사흘 전, 그녀는 해고당했다.  

사건은 방송국 회의실에서 터졌다. 서하는 드라마 기획 회의에서 **"여성 캐릭터가 스토리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냉소적이었다.  
“서하 작가, 당신은 드라마를 너무 이상적으로 만들려 하잖아.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고.”  

그날 이후, 그녀는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해고 통지서를 들고 회사를 떠나야 했다. 도시의 아스팔트 도로를 지날 때마다 그녀의 마음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했다.  

어디로 가야 할까.  

결국 그녀는 어린 시절 떠났던 고향 **바람뜰 마을**로 향하기로 했다. 마을의 이름처럼 자유로운 바람과 넓은 들판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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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그랜저가 마을 초입에 다다르자, 창문 밖으로 보리밭이 보였다. 바람이 일렁이며 초록빛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을 입구의 오래된 버드나무 아래, 한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지팡이를 짚은 그는 차를 멈춘 서하를 향해 물었다.  
“누구시여?”  

서하는 창문을 내리며 환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저, 서하예요. 이 마을 출신입니다.”  

그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하? 그 도시로 떠났던 아이 말인가. 오랜만일세.”  

그의 반가움보다는 경계심이 깔린 말투를 뒤로하고, 서하는 차를 몰아 마을로 들어섰다.  


**제2장: 꾀꼬리의 귀환**  

바람뜰 마을은 여전히 조용했다. 낮은 돌담길이 이어지고, 마을 중앙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서 있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도시에서 돌아온 그녀를 낯설어했다.  

“도시 여자라더니... 저 옷차림 좀 봐.”  
“결혼도 안 했다지? 나이가 벌써 마흔이라는데.”  

서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일부러 마을의 공터를 걸으며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돌아왔어요. 다들 잘 지내셨죠?”  

그녀의 밝은 목소리에도 마을 사람들은 무언가 불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시에서 온 그녀의 말투와 태도가 마을의 오래된 침묵을 깨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  

그날 밤, 서하는 보리밭 끝자락에 앉아 작은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첫 문장을 적었다.  

**“바람뜰: 웃음으로 시작하는 반란.”**


**제3장: 교복을 입은 반란군**  

며칠 뒤, 마을 회의가 열렸다. 회의장은 마을 남성들로 가득했다. 이장은 손을 들며 말했다.  
“이번 축제는 늘 하던 대로 진행합시다. 남성들은 무대를 맡고, 여성들은 부엌과 장터를 준비하면 되겠소.”  

그 순간, 쾅— 하고 문이 열렸다. 모두가 고개를 돌리자, 회의장에 교복을 입고 나타난 서하가 보였다.  

검정 치마와 하얀 블라우스, 머리에는 단정히 묶은 리본. 그녀는 교복 자락을 살짝 잡아당기며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어머, 제가 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네요!”  

회의장은 정적에 빠졌다. 마을 남성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여성들은 웃음을 참으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이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게 무슨 짓이오! 여긴 회의장이오!”  

그러나 서하는 태연히 마이크를 잡았다.  
“맞아요, 이건 ‘개념 없는 행동’이에요. 근데요, 우리 마을의 ‘개념 없는 전통’을 깨는 첫걸음이죠.”  

순간, 회의장은 술렁였다. 서하는 이어 말했다.  
“왜 우리 여성들은 무대에 설 기회를 얻지 못하나요? 전통이 중요하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그 전통이 누군가를 억누르고 있다면, 그건 그냥 억압일 뿐이에요.”  

이장은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당신이 우리 마을 전통을 망치려 한다면, 당장 나가시오!”  

그러나 그 순간, 방 한쪽에 앉아 있던 **김 할머니**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흠... 웃기긴 하네.”  

서하는 그 웃음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마이크를 쥐며 당당히 말했다.  
“이건 시작이에요. 바람뜰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 겁니다.”  


**제4장: 할머니들의 동맹**  

서하가 교복을 입고 나타났던 날 이후, 바람뜰 마을은 조용히 들끓었다.  

“도시에서 돌아온 여자가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축제를 망치려고 작정했나 봐.”  
“참, 요즘 젊은 것들은... 개념이 없다더니.”  

그러나 모든 사람이 서하를 비난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마을의 여성들, 그중에서도 **김 할머니**를 비롯한 몇몇은 그녀의 기발한 행동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첫 만남: 김 할머니와 서하**  

김 할머니의 집 앞에서 서하는 오래도록 기다렸다. 회색빛 대문이 열리고,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딜 그렇게 서성대나 했더니, 도시 여자네. 뭐 하러 왔어?”  

서하는 다가가며 환히 웃었다.  
“할머니, 저랑 얘기 좀 해요. 바람뜰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김 할머니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대꾸했다.  
“뭐? 이 나이에 변하고 말고가 어딨나. 다 늙어가는데.”  

“하지만 변하지 않으면, 더 늙어가야 하잖아요. 그냥 가만히.”  
서하의 한 마디에 김 할머니는 흠칫 놀랐다.  

서하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할머니, 축제 때 왜 남자들만 무대에 오르고 여성들은 부엌에서 일만 해야 하죠? 다른 것도 다 마찬가지예요. 마을 회의에서도 여자들은 말 한 마디 못 하잖아요. 그냥,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는 한참 서하를 지켜보다,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정말 우리 마을에 불을 지피려고 왔구나.”  

서하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불이 아니라 바람이에요, 할머니. 따뜻한 바람.”  

그날 대화를 시작으로, 김 할머니는 조금씩 서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조용한 설득**  

서하는 김 할머니를 비롯한 몇몇 여성들을 찾아다니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가 강조한 건 변화는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웃음은 모든 억압을 무너뜨리는 첫 번째 무기예요.”  
서하의 말은 단순했지만 강렬했다. 여성들은 처음엔 의아해했지만, 서하와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조금씩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그녀가 여성들의 과거 이야기를 듣는 데 집중한 것이 효과적이었다.  
“김 할머니, 예전에 장터에서 장사하시던 얘기 있잖아요. 그거 정말 멋졌어요. 그렇게 용감하셨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조용히 계세요?”  
그녀의 말에 김 할머니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옛날엔 이 마을에서 나름 큰소리 좀 쳤지. 근데 그런 게 다 뭐 필요하냐 싶더라고.”  
“할머니가 다시 큰소리 치시면, 사람들이 다시 귀 기울일걸요?”  

그날 이후, 김 할머니는 다른 여성들과의 대화에서 조금씩 서하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제5장: 바람뜰 여성 아카데미**  

며칠 뒤, 서하는 마을에서 쓰이지 않던 낡은 창고를 빌려 새로운 모임을 열었다. 이름은 **‘바람뜰 여성 아카데미’**. 김 할머니와 다른 몇몇 여성들이 서하를 따라오면서, 새로운 모임의 첫 날이 시작되었다.  

칠판에는 커다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오늘의 주제: 웃음으로 반란을!”**  

김 할머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니, 웃음이 무슨 반란을 일으킨다는 거야?”  

서하는 웃으며 대답했다.  
“할머니, 사람들이 우리가 웃기 시작하면 당황할 거예요. 왜냐면 웃는다는 건, 우리가 두렵지 않다는 뜻이니까요.”  

그날 첫 수업은 억압적인 전통을 풍자하는 연극 연습이었다.  
여성들은 처음엔 머뭇거리며 역할을 맡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몰입했다. 김 할머니는 남성들의 과장된 명령을 연기하며 모두를 웃겼다.  

“어이! 밥은 다 됐나? 안 되면 쌀이라도 씹어 먹어야 할 거 아니여!”  
그녀의 대사는 그간 참아왔던 억울함을 날카로운 유머로 승화시킨 것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 여성들은 창고를 나가며 서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뭐라고 재밌네.”  
“맞아, 진짜 신나네.”  

그날 밤, 김 할머니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웃음으로 반란이라니... 그 도시 여자가 참 별난 짓을 하긴 해도, 하나는 맞는 말이네.”  



**제6장: 균열의 시작**  

서하의 아카데미가 입소문을 타면서, 마을 남성들의 불편함은 점점 커졌다.  
특히, 이장은 서하가 마을에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감추지 않았다.  

“여자들이 이상한 연극을 한다지? 그 여자가 모임을 열어서 마을을 시끄럽게 만든다고.”  
봉수 아재가 말했다.  
이장은 분노를 참지 못하며 손을 내리쳤다.  
“이게 다 그 도시에서 온 여자의 짓이야! 놔두다간 큰일 나겠어.”  

그러나 이미 마을 여성들은 변화의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작은 모임이 점점 커지고, 여성들의 웃음이 들판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그 바람은 이제 점차 멈출 수 없는 **반란**이 되어가고 있었다.  


**제6장: 균열의 시작**  

바람뜰은 조용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어딘가 흔들리고 있었다.  

“여자들이 저기서 뭐하는 거야?”  
“웃음으로 세상을 바꾼다고? 참 기가 막히네.”  

마을의 여성들은 달라지고 있었다. 바람뜰 여성 아카데미에서 매일 새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그 이야기는 억눌렸던 감정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힘이 있었다.  

특히 김 할머니는 이제 서하의 가장 든든한 동맹이 되어 있었다. 수업이 끝난 뒤 할머니는 여성들과 삼삼오오 모여 말했다.  
“우리도 한 번 크게 웃어야지. 웃으면서 하고 싶은 말 다 해보자고.”  

그런 변화는 남성들에게 점차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이장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봉수 아재를 불렀다.  
“여자들이 저렇게 나대는 게 다 그 도시 여자 때문이야. 내버려뒀다간 큰일 난다니까.”  

“이장님, 축제가 다가오니 그때를 기회로 삼아보죠.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망신을 줘야 합니다.”  
이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축제에서 저 여자가 하는 걸 끝장내야겠어.”  



**제7장: 축제 준비, 그리고 대립**  

바람뜰 축제는 마을에서 가장 큰 행사였다. 전통 풍물놀이와 장터, 남성들이 준비한 무대 공연이 매해 이어져 왔다. 여성들은 음식을 만들고 장을 보며 뒤에서 행사를 지원하는 역할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우리가 무대에 올라야 해요.”  
서하의 제안에 여성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김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이번엔 우리가 나서야지. 이장 눈치 볼 필요 없어.”  

이장은 서하의 계획을 듣고 격노했다.  
“여자들이 무대에서 뭘 한다고? 웃기지도 않는군!”  

그러나 서하는 회의에서 당당히 말했다.  
“우리가 준비한 건 단순한 연극이 아니에요. 이 마을의 진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거예요. 전통은 소중하지만, 억압을 유지하려는 핑계가 되어선 안 되잖아요.”  

이장의 얼굴이 붉어졌지만, 그는 축제 당일까지 서하를 지켜보며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제8장: 축제의 반란**  

축제 당일, 마을은 북적거렸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장터가 열리고, 풍물놀이가 시작되며 사람들은 신명나는 북소리에 맞춰 웃고 떠들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한 곳으로 쏠렸다. 무대 뒤에서 여성들이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서하와 여성들의 연극 차례가 다가왔다. 무대 위에 커튼이 열리자, 관객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연극은 남성 중심의 마을 일상을 과장된 풍자로 묘사하며 시작됐다. 김 할머니는 남성의 역할을 맡아 우스꽝스러운 명령을 반복했다.  
“여편네! 밥은 다 됐냐? 오늘도 못했으면 맨밥이라도 먹으란 말이야!”  

여성들은 남성들의 요구를 억지로 들어주는 척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관객석 곳곳에서도 폭소가 이어졌다.  

중반부에는 서하가 바람개비를 들고 춤을 추며 등장했다.  
“여기 바람이 분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웃는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바꾼다!”  

연극은 남성 중심의 권력 구조를 조롱하면서도, 여성들이 웃음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는 모습을 보여줬다.  



**제9장: 균열의 확산**  

무대 뒤에서 이장은 이를 악물고 있었다.  
“저 여자가 마을을 망치려고 작정했어!”  

그러나 관객석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여성들은 물론, 몇몇 남성들조차 연극의 메시지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있었다.  

특히 이장의 아들 **주영**은 연극 무대에서 춤추는 아내 **미정**을 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미정이 저렇게 웃는 건 처음 봐.”  

공연이 끝난 뒤, 마을은 흥분으로 들끓었다. 여성들은 무대에서 내려오며 서로를 안고 웃음을 터뜨렸고, 남성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깨달은 듯 서 있었다.  

이장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는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끝난 게 아니야. 저 여자를 반드시 마을에서 몰아내야겠어.”  



**제10장: 새로운 바람, 오월의 기억**  

축제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보리밭은 이제 초록빛에서 황금빛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바람뜰에는 이전과는 다른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여성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침묵하지 않았다. 아카데미의 모임은 더욱 활기를 띠었고, 여성들 간의 연대는 점점 더 강해졌다.  

서하는 보리밭 끝자락에 서서 마을을 바라봤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바람개비가 들려 있었다.  

“이건 시작일 뿐이에요.”  
그녀는 중얼거리며 들길을 따라 걸어갔다. 멀리서 여성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꾀꼬리 한 마리가 그녀 곁을 날아 지나갔다. 마을은 여전히 변화 속에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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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반란, 서하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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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김영랑, <오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