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철학의 서점>
1장: 위기의 문우당
비가 내리는 오후였다.
낡은 철학 서점 **‘문우당’**의 창문을 타고 투명한 빗방울들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윤은 카운터에 앉아 엎드린 채 펜을 쥐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손때 묻은 노트가 펼쳐져 있었지만, 오늘따라 아무런 단어도 적히지 않았다. 시를 쓰겠다는 욕심조차 비에 씻겨 내려가 버린 기분이었다.
“비가 오는 날은 손님이 더 없네. 참 신기하지.”
이윤이 고개를 들자, 문우당의 주인인 이종화 교수가 허공에 말을 던지고 있었다. 이종화 교수는 고색창연한 나무 선반 앞에 서 있었다. 낡은 철학서와 문학책들이 가지런히 꽂힌 그 선반은 시간이 멈춘 공간처럼 보였다. 마치 ‘여기서만큼은 어떤 변화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고집스러운 선언처럼.
이윤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여기 오는 사람은 비 오는 날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요.”
“너무 고요해서 그렇겠지. 비는 철학적이면서도 우울하거든.”
이종화 교수는 먼지를 털어내며 조용히 웃었다. 그는 여든 번쯤은 손때를 탔을 책을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었다.
문우당은 더 이상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서점이었다. 대학가에서 멀어져 간 지도 오래, 서점은 이제 주변의 카페와 빌라들 사이에서 외로운 섬처럼 남아 있었다. 이곳을 찾는 건 간혹 지나가는 독립 출판물 애호가나 몇몇 문학 청년들뿐이었다.
그날도 서점에는 고요한 정적만이 가득했다. 그런데 갑자기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젖은 우산을 든 소현이 빠르게 안으로 들어섰다.
“늦어서 죄송해요!”
소현의 목소리는 다소 숨이 가빴다. 짙은 청색 우산의 물기를 털며, 그녀는 서둘러 들어와 가방을 내던지고 카운터로 걸어왔다. 비에 젖은 머리칼이 볼에 붙어 있었지만,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천천히 좀 다녀. 비 오는 날 뛰어다니면 넘어져.”
이종화 교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책을 꽂아 넣었다.
“오늘은 좀 늦게까지 있어야 해요. 계산 좀 맞춰야 하거든요.”
소현은 이윤을 향해 짧게 눈인사를 했다. 그녀와 이윤은 문우당의 유일한 아르바이트생이자 비슷한 또래였지만, 서로의 사생활에 대해 깊이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이윤은 그녀를 ‘어쩌면 나와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교수님.”
소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까 건물주가 또 찾아왔어요. 임대료 말이에요….”
그 말에 문우당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윤은 무심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종화 교수의 동작이 멈췄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이제 3개월 밀렸지.”
“네. 그런데 이번엔 좀 강경하더라고요. ‘이달 말까지 정리하라’고 하던데….”
이종화 교수는 한숨을 쉬었다. 카운터 너머에서 이윤은 조용히 펜을 내려놓았다. 임대료 문제는 문우당에서 금기어 같은 존재였다. 누군가 한 번 입 밖에 내면 서점이 정말로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문우당이 사라지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 순간, 소현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서점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 마치 이곳에 남은 마지막 희망이 무너져내리는 걸 두 눈으로 보고 있는 듯했다. 이윤은 그런 그녀를 보며 자신에게도 되묻고 있었다.
‘문우당이 사라지면 나에게 남는 건 뭘까? 꿈도, 시도, 철학도 모두 의미가 없어지는 걸까?’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문우당 창밖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도시의 모습은 이윤에게 철학서에 등장하는 "흐릿한 시간의 풍경" 같았다. 어딘가를 향해 부지런히 걷고, 또 다른 어딘가로 흘러가는 사람들. 하지만 이윤과 소현에게는 지금 그 모든 것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우리가 뭔가 해보죠.”
이윤이 문득 입을 열었다.
소현이 그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리가요?”
“맞아요. 문우당을 지킬 방법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서점이 사라지면 안 되잖아요.”
이종화 교수는 잠시 두 청년을 번갈아 보았다. 비 내리는 창가에서 젖은 도시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오래도록 그늘져 있었다.
“철학이 밥은 못 먹여도, 삶을 지탱하게는 해준다.”
이종화 교수가 마침내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그 철학이 지켜질 공간이 없다면, 그땐 누가 지탱해 주나?”
말끝에 교수는 피곤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순간, 이윤은 마음속 깊이 그 문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문우당의 위기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시작된 작은 질문은, 이윤과 소현, 그리고 이종화 교수에게 저항과 변화를 향한 첫걸음을 내딛게 만들 것이다.
비는 계속 내렸지만, 문우당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2장: 저항의 시작
비가 그친 후의 새벽.
도시의 회색 하늘에 가느다란 햇빛이 드리웠다. 문우당의 조용한 내부에도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한 아침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소현은 서점 창가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이윤이 했던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우리가 해보죠. 문우당을 지킬 방법이 있을 거예요.”
‘무슨 수로?’
소현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마른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는 선반을 천천히 손끝으로 쓰다듬으며, 그녀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문우당은 어릴 적 할머니가 사주시던 책 냄새 같았다. 익숙하고 따뜻하지만, 현실에서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크라우드 펀딩을 해보자고?”
그날 오후, 카페에서 이윤은 단호하게 말했다.
소현이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눈썹을 찌푸렸다.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요?”
“나도 알아요. 근데 다른 방법이 있어요?”
테이블 너머에서 이윤의 시선은 흔들림이 없었다. 현실에 찌든 듯한 얼굴이었지만, 그 속에는 어딘가 꿈틀대는 의지가 있었다.
소현은 잠시 숨을 고르며 이윤을 바라보았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건데요?”
“철학과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문우당에 남아있잖아요. 독서 모임을 열고 서점의 이야기를 더 알리면 돼요. 이 서점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전하면, 우리를 돕고 싶은 사람들도 분명 있을 거예요.”
이윤의 말에 소현은 코웃음을 치려 했지만, 그 속에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우당을 지키는 마지막 끈이랄까, 그것은 단순히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지닌 ‘철학과 문화의 의미’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서점의 마지막 저항이겠네요.”
소현이 피식 웃었다.
“나쁘진 않아요. 한번 해봐요.”
문우당에서의 첫 번째 모임
몇 주 뒤, 문우당에서는 조촐한 독서 모임이 열렸다. ‘철학과 시간’이라는 주제를 내세운 그날, 평소와 달리 서점 안은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고작 열 명 남짓이었지만, 그 작은 숫자가 마치 희망처럼 느껴졌다.
이윤이 조용히 책을 펼쳤다.
“오늘은 베르그송의 말을 나누려고 해요. 그는 시간이라는 것이 단순히 시계가 흘러가는 숫자가 아니라 우리의 의식 속에서 흐르는 것이라고 했죠.”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천천히 노트를 꺼내 적기 시작했다. 이윤은 책을 읽으며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비록 수는 적었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작은 열기가 있었다.
그리고 문득, 문우당의 한쪽 구석에서 이종화 교수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묘한 감정이 스쳤다. 어쩌면 오래전 자신이 교단에 섰을 때 느꼈던 감정일지도 몰랐다.
“시간이 멈춘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이종화 교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갈등의 조짐
하지만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기부는 목표 금액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서점에서의 작은 모임은 좋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그날 밤, 서점에서 이윤과 소현은 팽팽하게 맞섰다.
“이대로는 안 돼요. 뭐라도 해야지!”
“그러니까 뭘 더 하자는 거예요?”
소현은 짜증이 났다. 이윤의 열정은 알겠지만, 그들의 상황은 너무나 막막했다. 문우당의 미래를 걱정하며 잠 못 드는 밤이 그녀를 지치게 하고 있었다.
“우리가 철학을 이야기하지만, 이건 현실이에요. 현실에선 돈이 필요하다고요.”
“알아요. 근데 문우당이 사라지면 우리도 사라져요. 그건 현실이 아니에요?”
이윤의 말에 소현은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그 순간 서점 창밖으로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비 내리는 창가를 바라보았다.
서점에 찾아온 뜻밖의 손님
며칠 뒤, 문우당에는 한 명의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그녀는 검은 우산을 들고 서점을 둘러보며 천천히 걸었다. 그 모습에 이윤과 소현은 자연스럽게 그를 지켜보았다.
“이 서점, 아직 있군요.”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혹시… 저희를 아세요?”
소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손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서 철학을 배우고 책을 읽던 학생이었어요. 이 서점이 없었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이종화 교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마치 오래된 기억이 새어 나오는 듯한 눈빛이었다.
“문우당이 필요한 사람들은 분명 더 있어요. 그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만 찾으면 돼요.”
그날 이후, 이윤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문우당의 이야기를 알리기 시작했다. 소현도 지쳐 있던 마음을 추스르고 프로젝트에 다시 힘을 보탰다.
“서점은 철학을 품은 공간이에요. 하지만 그 철학은 사람들 마음속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이윤의 목소리가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문우당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작은 글을 남기며 이야기가 퍼져나갔다.
3장: 흩어짐과 모색
비는 그치지 않았다.
서점 문우당에는 여전히 고요와 습기가 가득했다. 며칠간 지속된 비는 창밖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더 깊게 만들었고, 서점 안의 공기마저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이윤은 문우당의 작은 창구에 앉아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의 숫자.
정확히 39만 7천 원.
“한숨도 못 자겠네.”
이윤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목표 금액인 500만 원은커녕 반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였다. 누군가의 소액 기부와 응원의 댓글이 올라오긴 했지만, 그 작은 관심만으로는 부족했다.
"이번에도 실패인가?"
머릿속을 스치는 의심과 피로가 그를 잠식하려 했다.
문우당의 갈등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네요.”
소현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차가웠다. 그녀는 서점 카운터에 앉아 화면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숫자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이윤이 다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직 포기할 때는 아니잖아요.”
“포기 아니에요. 현실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이윤은 그녀의 말에 잠시 숨이 막혔다. 그도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마음이 자신을 더 짓누르고 있었다.
“문우당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곳이라고, 우리가 그렇게 떠들어대도…”
소현이 말을 잇지 못했다. 감정이 목에 차올라 더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이종화 교수가 앉아 있었다. 작은 철제 의자에 기댄 채 책을 읽고 있는 그에게서 이 모든 현실이 무거운 무게로 내려앉은 듯했다.
“나는 나의 문우당을…”
그날 밤, 이윤은 서점 한쪽에 기대어 낡은 노트를 펼쳤다. 펜 끝에서 묵직한 감정이 흘러나오듯 시를 적어나갔다.
‘서점의 등불이 꺼져가는 날,
어디에선가 한 철학이 죽는다.
비는 내리고, 시간은 흘러
우리는 잃어버린 이름을 부른다.’
이윤은 글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흘러가는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빠르게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서점의 마지막 밤을 준비하다
“서점 문을 닫기 전에 마지막 이벤트를 여는 게 어때요?”
소현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오랜만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이윤이 놀란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지막… 이벤트요?”
“‘문우당의 밤’. 서점의 마지막 이야기를 전하는 거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요.”
소현은 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를 꺼내 펼쳐 보였다. 거기에는 ‘문우당 철학의 밤’이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이종화 교수도 그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군. 하지만… 그 마지막이 의미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나.”
"철학과 시,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며칠 뒤, 문우당의 작은 공간은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문우당의 밤은 마치 서점의 오랜 추억이 되살아난 것처럼 조용하면서도 강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윤은 조용히 서점 문을 열며 안을 바라보았다.
“정말 사람들이 왔네요.”
그의 목소리에는 놀라움과 안도가 섞여 있었다.
서점 중앙에는 한쪽에 놓인 테이블에 마이크와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작은 의자에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현이 마이크를 잡고 천천히 말했다.
“이곳, 문우당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작은 쉼터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꿈이 시작된 곳이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분명하고 따뜻했다.
“오늘 이 밤은 문우당이 우리에게 남긴 이야기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곳이 사라지더라도, 여기서 나눈 철학과 시는 남을 거예요.”
이종화 교수의 마지막 강연
이종화 교수는 작은 단상에 섰다. 구부정한 어깨와 피곤한 눈빛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단했다.
“철학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물어보는 일일 거다. 문우당은 바로 그런 질문이 시작된 곳이다.”
잠시 말을 멈춘 그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눈빛에 담긴 기대와 아쉬움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공간이든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공간이 남긴 의미는 그곳을 지킨 사람들 속에서 살아남는다. 문우당이 사라져도, 여러분이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면 철학은 죽지 않을 것이다.”
그 순간, 서점 안에 묵직한 고요가 내렸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마지막 시 낭송
이윤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노트를 들고 단상에 섰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서점 전체에 울려 퍼졌다.
“시간이 흐르고,
사라져 가는 것들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기억하는 한,
어떤 빛도 꺼지지 않는다.
여기에, 아직 남아 있는 것처럼.”
이 시를 끝으로 서점 안에는 박수와 함께 작은 울음소리가 섞여 들렸다. 문우당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조용하면서도 강렬하게 끝이 났다.
희망의 조짐
그날 밤, 이윤과 소현은 문우당의 문을 닫고 밖으로 나섰다. 비는 그쳤고, 하늘에는 구름 사이로 희미한 별빛이 보였다.
“이제… 어떻게 될까요?”
소현이 작게 물었다.
이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제, 다시 시작해야죠.”
그들의 발걸음이 도시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문우당은 문을 닫았지만, 그곳에 남은 이야기들은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4장: 온라인, 새로운 연결
문우당의 문이 닫힌 날, 비는 그치고 있었다.
이윤은 서점의 마지막 열쇠를 조심스럽게 돌리며 문우당의 나무 문이 내는 낮은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마치 오래된 시계의 마지막 초침처럼 느껴졌다.
“끝났네.”
소현이 옆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끝이 가볍게 떨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문우당의 불이 꺼지자 어둠이 빠르게 공간을 삼켜버렸다. 오래된 나무 선반들, 구석구석에 쌓인 먼지, 책을 읽다 만 사람들이 남기고 간 자국들. 그 모든 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끝이 아니야.”
이윤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 다른 방식으로 시작해야지.”
소현이 그의 옆에서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이내 결연하게 고개를 들었다.
“맞아. 이곳은 없어졌지만, 문우당의 의미까지 사라질 순 없으니까.”
온라인 플랫폼의 시작
며칠 후, 한지훈이 운영하는 IT 스타트업 사무실. 좁고 복잡한 책상들 위에는 키보드와 커피잔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한지훈은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봐. 온라인 플랫폼을 하나 만들면 돼. 문우당처럼 철학과 책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는 공간.”
이윤과 소현은 한지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한지훈의 모니터에는 심플하지만 세련된 웹사이트 디자인이 떠 있었다.
‘문우당 온라인 서점’
“그냥 책을 파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독서 모임, 철학 강연, 그리고 글쓰기 워크숍까지 모두 온라인에서 할 수 있게 하는 거야.”
한지훈은 모니터를 클릭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실제 공간은 없어졌지만, 여기서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이윤은 화면을 보며 작은 희망을 느꼈다. 문우당이 남긴 정신이 여기에 살아 숨 쉬는 듯했다.
“철학과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문우당이지.”
소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시작해 봐요. 문우당의 이야기를 더 멀리 퍼뜨리자고요.”
다시 돌아온 사람들
온라인 플랫폼이 공식적으로 오픈된 날, 이윤은 노트북 화면 앞에 앉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사이트 접속 통계를 확인했다. 처음에는 단 몇 명의 방문자뿐이었다. 하지만 그날 오후, 플랫폼에 첫 번째 댓글이 달렸다.
“문우당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슬펐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다시 그 정신이 살아있네요. 감사합니다.”
이 댓글을 시작으로 하나둘씩 반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 “오랜만에 철학 강연을 들으니 마음이 정돈되는 기분이네요.”
- “작은 서점 하나가 남긴 이야기가 이렇게 멀리 전해질 줄 몰랐어요.”
심지어 과거 문우당의 단골 손님들이 자신의 사연을 올리기 시작했다.
- “여기서 헤겔을 처음 만났고, 제 삶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죠.”
- “그날, 문우당에서 들었던 시 낭송회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윤은 조용히 댓글을 읽으며 목 안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사라진 공간이 또 다른 형태로 사람들과 연결되고 있었다.
이종화 교수의 강연, 다시 시작되다
문우당 플랫폼의 또 다른 큰 프로젝트는 이종화 교수의 철학 강연이었다. 교수는 한동안 강연을 거절했지만, 이윤과 소현의 설득에 결국 온라인 강연을 시작하기로 했다.
첫 번째 강연 날, 이종화 교수는 화면 앞에 앉아 조용히 준비된 카메라를 응시했다. 오래된 서재를 배경으로 교수는 책 한 권을 펼치며 입을 열었다.
“철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상 속에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우리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교수의 목소리는 느리지만 깊었다. 온라인 채팅창에는 빠르게 댓글이 올라왔다.
- “이 강연을 들으며 저도 제 삶을 돌아보게 되네요.”
- “철학을 멀리하고 살았는데, 문우당 덕분에 다시 시작해봅니다.”
이종화 교수는 화면 너머의 사람들을 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강연은 문우당의 정신을 이어받아 다시 사람들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소현의 글쓰기, 그리고 첫 에세이
소현은 문우당 온라인 플랫폼에 글쓰기 코너를 맡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문우당의 마지막 밤을 떠올리며 첫 에세이를 썼다.
제목: ‘비가 그친 후에도’
“문우당은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제 마음속에 남았습니다. 때로 우리는 무언가를 잃고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자리에는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되기도 하죠. 비가 그친 후에도 땅은 젖어 있고, 그곳에는 작은 꽃들이 피어나니까요.”
소현의 글은 플랫폼을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의 댓글을 남겼다.
- “이 글을 읽고 울컥했습니다. 나도 잃어버린 꿈을 다시 찾아야겠어요.”
- “문우당이 제게도 그런 공간이었어요. 고맙습니다.”
희망의 무지개
어느덧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이윤과 소현은 작은 카페에 앉아 문우당 플랫폼의 통계를 함께 보고 있었다.
“한 달 만에 회원 수가 천 명을 넘었다고요?”
소현이 놀라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윤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진 공간이 이렇게 사람들과 다시 연결될 줄은 나도 몰랐어요.”
창밖에는 맑은 하늘 아래 가느다란 무지개가 떠 있었다. 그들은 잠시 말없이 그 무지개를 바라보았다.
“우리, 문우당을 정말 다시 살린 거네요.”
소현이 말했다.
이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대답했다.
“아니. 문우당은 처음부터 사람들 마음속에 살아있었어. 우리는 그걸 이어준 것뿐이야.”
문우당은 사라졌지만, 그곳의 정신은 새로운 연결을 통해 사람들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 철학과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디서든 질문하고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그 작은 공간의 의미는 더 멀리 퍼져 나가고 있었다.
5장: 꿈의 재구성
가을의 끝자락, 어느 맑은 날이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도시의 거리에서, 이윤은 낡은 가죽 가방을 어깨에 걸고 느릿하게 걸었다. 문우당이 문을 닫은 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공백이 전부 지워진 건 아니었다.
그의 손에는 한 권의 시집이 들려 있었다.
표지에는 심플하게 적힌 제목.
『비가 그친 시간』
이윤의 첫 시집이었다.
시집의 발간
"이윤 씨, 축하해요. 시집이 정말 예뻐요."
출판사 사무실, 편집자였던 소현이 손에 시집을 들고 말했다. 책의 표지는 비가 그친 후 물방울이 남은 창문을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이었다.
이윤은 조용히 웃으며 시집을 받아들었다.
“표지가 정말 잘 어울리네요. 문우당 생각도 나고.”
소현은 잠시 시집을 넘기며 속표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이윤이 직접 적은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잃어버린 꿈을 지키는 건 공간이 아니라 마음속의 기억이다.”
소현은 그 문장을 읽으며 작게 미소 지었다.
“문우당도 기뻐할 거예요. 여기에 이렇게 남았으니까요.”
이종화 교수의 초대
그날 저녁, 이윤과 소현은 이종화 교수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교수의 집은 마치 문우당의 축소판 같았다. 오래된 철학책과 노트가 가득 쌓인 공간은 여전히 따뜻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교수님, 오늘 온라인 강연 보셨죠? 댓글 반응이 정말 좋더라고요.”
소현이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종화 교수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질문은 남는 법이지. 철학은 그것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이어가는 거야.”
이윤이 조용히 교수의 책상 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완성된 이종화 교수의 저서가 놓여 있었다.
『존재와 의미의 경계』
“이제 책도 출간되셨으니까, 더 많은 분들이 교수님의 철학을 기억할 거예요.”
이윤이 말했다.
이종화 교수는 책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문우당이 사라졌을 때, 나는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너희를 보면서 깨달았지. 철학과 시는 결국 사람들 속에서 살아있다는 걸.”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믿음이 깃들어 있었다.
소현의 에세이 출간 준비
소현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문우당의 마지막 날부터 오늘까지의 이야기를 기록한 에세이를 출간 준비 중이었다.
『비와 철학의 서점』
출판사 편집장은 원고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서점의 기록이 아니에요. 청춘들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꿈을 지켜나가는지 보여주는 성장의 기록이네요.”
소현은 부끄러운 듯 작게 웃었다.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문우당 덕분이었어요.”
에세이의 일부는 이미 문우당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 글을 읽고 댓글을 남겼다.
- “이 글을 읽으며 제 어린 시절 꿈꾸던 서점을 떠올렸어요.”
- “사라졌지만 남아있는 것들. 그게 무엇인지 이제 알 것 같아요.”
소현은 독자들의 반응을 보며 문득, 문우당에서 처음 일하던 날의 자신을 떠올렸다. 그때는 세상이 두렵고 좁아 보였지만, 이제는 자신이 걸어갈 길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았다.
문우당 플랫폼의 확장
문우당 온라인 플랫폼은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철학 강연, 독서 모임, 글쓰기 워크숍이 정기적으로 열리면서 회원 수는 꾸준히 늘어갔다.
그중에서도 이윤과 소현이 진행하는 **‘비 오는 날의 독서회’**는 가장 인기가 많았다. 비 오는 날이면 사람들이 모여 온라인으로 시와 철학을 나누었다.
그날도 독서회가 끝난 후, 이윤은 화면 너머의 사람들에게 말했다.
“비가 오는 날은 마치 문우당에 모여 있던 그날처럼 느껴지네요. 여기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다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소현이 그 옆에서 작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게 바로 문우당이 남긴 철학 아닐까요? 사라진 것들 속에서도 계속 살아남는 의미 말이에요.”
마지막 장면: 비가 그친 날
며칠 후, 이윤과 소현은 문우당이 있던 자리를 찾았다. 그곳은 이제 새 건물이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공터는 텅 비어 있었지만, 그들은 그곳에 서서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 공간을 바라보았다.
“이제 정말로 없어졌네요.”
소현이 작게 말했다.
이윤은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웃었다.
“아니. 문우당은 아직도 남아있어. 사람들 기억 속에, 그리고 여기서 다시 시작된 이야기들 속에.”
그의 시선은 하늘로 향했다.
맑은 하늘 위로, 비가 그친 자리에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소현도 하늘을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비가 그쳤네. 이제 진짜 시작이겠죠?”
이윤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부터는 우리가 만들어가야지.”
그들의 발걸음이 천천히 도심의 거리로 향했다. 비는 그쳤고, 하늘에는 무지개가 떠 있었다. 문우당이 사라진 자리에서 시작된 새로운 이야기들은 여전히 사람들 속에서 흐르고 있었다.
마무리
“사라진 공간은 마음속에 남는다. 비가 그친 후에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에필로그: 희망의 여운
몇 년 후, 어느 비 오는 날. 한 청년이 낡은 철학 책을 손에 들고 온라인 플랫폼에 접속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문우당이라는 서점을 기억합니다. 그곳은 제게 꿈과 질문을 남겨준 곳이었어요.”
그 이야기는 다시 한 번 퍼져 나가며 또 다른 누군가의 기억과 꿈이 되었다.
**<비와 철학의 서점>**은 물리적으로는 사라졌지만, 그것이 남긴 정신과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이윤, 소현, 그리고 문우당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비가 그친 후의 무지개처럼 희망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흐르고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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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osohantry.tistory.com/entry/Poem-윤동주-쉽게-씌어진-시
https://sosohantry.tistory.com/entry/Short-story-문우당-시간의-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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