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story) 남촌의 바람과 함께

<남촌의 바람과 함께>

 

 

오늘도 나는 산 너머 남촌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긴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그때의 설렘과 두근거림이 다시금 떠오른다. 고등학생이었던 그 시절, 모든 것이 반짝이던 그때가 문득 그립다.

 

작은 언덕 위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문득 노트북 화면 속에 저장된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수줍게 미소 짓고 있는 나와 그녀의 모습이다.

 

"정말 그때는 모든 게 서툴렀지. 하지만 그 서툼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겠지."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 해 봄, 학교에 전학생이 왔다. 이름은 수아. 그녀는 산 너머 남촌에서 이사 온 소녀였다. 긴 생머리에 맑은 눈동자, 그리고 조용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첫날부터 학교의 화제가 되었지만, 그녀는 그저 조용히 미소 지을 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마음이 끌렸지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다. 친구들은 나를 놀리며 "야, 그냥 가서 말 걸어봐!"라고 부추겼지만, 막상 그녀 앞에 서면 말문이 막혀버렸다.

 

첫 번째 시도는 정말 엉망이었다. 쉬는 시간에 용기를 내어 그녀의 교실로 갔다. 하지만 그녀의 반 친구들이 나를 보며 웃기 시작했다.

 

"어? 민호 아니야? 무슨 일이야?"

 

당황한 나는 그저 "아,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어."라고 얼버무렸다. 그때 그녀와 눈이 마주쳤지만,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정말 그때는 땅속으로 숨고 싶었지."

 

두 번째 시도는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밤새 고민하며 편지를 썼다. "안녕, 나는 2학년 3반에 있는 민호야. 너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렇게 편지를 써." 하지만 막상 전달하려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에게 부탁했다.

 

"정훈아, 이거 좀 전해줄 수 있어?"

 

정훈은 웃으며 말했다. "너 정말 용기 없구나! 알았어, 내가 전해줄게." 하지만 다음 날, 정훈은 미안한 얼굴로 돌아왔다.

 

"미안해, 민호야. 내가 편지를 잃어버렸어."

 

"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화가 난 나는 정훈과 다투고 말았다. 그렇게 두 번째 시도도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서 이번에는 직접 찾아가기로 했어."

 

주말에 그녀의 집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산 너머 남촌은 멀지 않았지만, 가본 적이 없어서 지도를 찾아보며 계획을 세웠다. 토요일 아침, 배낭에 물과 간식을 챙겨 집을 나섰다.

 

하지만 산길은 생각보다 험했다. 길을 잘못 들어 깊은 숲속에 들어가 버렸다. 주변은 온통 나무와 풀이 우거져 있었고,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귀신이라도 나오면 어쩌지?"

 

겁에 질린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갑자기 발이 미끄러져 진흙탕에 빠지고 말았다.

 

"아, 정말 왜 이런 일이!"

 

옷은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었고, 신발은 한 짝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헤매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결국 나는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다행히 근처에 작은 오두막이 보여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할머니는 내 사정을 듣고는 웃으며 따뜻한 밥과 옷을 내어 주셨다.

 

"젊은이, 무슨 사연으로 여기까지 왔니?"

 

나는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할머니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사랑은 참 힘들지만, 그만큼 소중한 거란다."

 

그 말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음 날 아침, 할머니의 도움으로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학교에 돌아온 나는 수아와 마주쳤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지난 주말 어디 갔었어? 다친 데는 없니?"

 

놀란 나는 물었다.

 

"어, 어떻게 알았어?"

 

그녀는 부끄러운 듯 말했다.

 

"사실... 네 친구가 네가 나에게 편지를 전하려 했다고 말해줬어. 그래서 네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거든."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미안해. 용기가 없어서 직접 말하지 못했어."

 

그녀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제 말했잖아. 우리 친구가 되어줄래?"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함께 과학 실험을 하다가 폭발을 일으킨 일, 학교 축제에서 함께 춤을 추려다 무대에서 넘어져 모두의 웃음거리가 된 일 등등.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마다 심장이 뛰었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때로는 어색한 침묵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우리의 추억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시련이 있었기에 우리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아."

 

현재의 나는 그녀와 함께 이 언덕에 앉아 있다. 그녀는 내 옆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다. 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릴 때마다 내 마음도 함께 흔들린다.

 

"무슨 생각해?"

 

그녀가 고개를 돌려 묻는다.

 

"그냥 옛날 생각하고 있었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말이야."

 

그녀는 웃으며 책을 덮었다.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지. 하지만 그게 우리 추억이잖아."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앞으로도 많은 일이 있겠지만, 함께라면 괜찮을 거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나도 그래. 너와 함께라면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

 

산 너머 남촌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우리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향기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그녀를 처음 봤을 때의 두근거림을 느꼈다.

 

"정말, 남풍이 불 때 나는 좋아."

 

그녀는 내 어깨에 살짝 기대며 말했다.

 

"나도. 이 바람은 우리를 처음 만나게 해준 것 같아."

 

그렇게 우리는 함께 미래를 꿈꾸며 앉아 있었다. 산 너머 남촌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바람이 불어오고, 우리는 그 속에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날의 감정들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했다.

 

"수아야, 고마워. 나의 모든 어리석음과 서툼을 이해해줘서."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바로 너잖아. 그리고 나는 그런 너를 좋아해."

 

가슴이 벅차올랐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산 너머 남촌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축복을 내리는 듯했다.

 

"앞으로도 함께하자."

 

"응, 언제까지나."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불어오는 남풍을 맞이하며,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다.

 

 

 

남촌의 바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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