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우당의 시작>
1장: 철학이 사라진 시대
겨울의 한가운데, 대학 강의실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이종화는 책상을 두드리는 손을 멈추고 강의실을 둘러보았다. 학생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앞에 놓인 그의 강의안에는 굵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철학은 질문하는 법을 가르친다.”
“철학이 왜 필요한지 아는 사람?”
그는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한참이 지나 학생 하나가 어색하게 고개를 들었다.
“교수님, 철학이 밥 먹여주나요?”
강의실 한쪽에서 웃음이 터졌다. 이종화는 차가운 공기에 잠긴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밥.
그는 그 단어를 곱씹었다. 철학은 현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질문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 그게 지금이었다.
그날 밤, 이종화는 학교 연구실에서 오래된 책장을 열었다.
수십 년 묵은 먼지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철학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는 책장 한켠에서 그는 헤겔의 책을 꺼내들었다. 표지는 낡았지만 글귀는 선명했다.
“철학은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실천이 되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다…”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책상을 등지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불 꺼진 캠퍼스는 더 이상 학생들이 오가지 않는 텅 빈 공간처럼 보였다.
며칠 뒤, 비 내리는 밤.
이종화는 연구실을 나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모래알처럼 무너지는 강의, 의미를 잃은 철학. 그것들을 붙잡을 힘이 그에게 남아 있을까.
그렇게 걷다가 그는 작은 골목에 들어섰다. 비가 흘러내리는 오래된 간판이 눈에 띄었다. 글씨는 바래서 잘 보이지 않았다. 가게 안은 텅 비어 있었고, 창문에는 빗물이 흘러내리며 흐릿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그 순간, 이종화는 멈춰 섰다. 오래된 책장과 가게 안의 빈 공간. 거기에는 무언가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문득 그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여기에 질문이 시작되는 곳을 만들면 어떨까…”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조용히 손에 든 책을 꾹 쥐고 그는 빗속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며칠 후, 그가 친구 김수경을 찾아갔다.
출판사 사무실에서 책을 정리하던 김수경은 이종화의 말을 듣고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서점을 열겠다고? 이 시대에?”
“서점이라기보다… 질문이 시작되는 공간이야.”
김수경은 고개를 갸웃했다.
“질문이 시작되는 공간?”
“그래. 철학을 다시 세상에 가져오고 싶어. 아무도 읽지 않아도, 아무도 보지 않아도 괜찮아. 누군가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그의 눈빛은 진지했다. 김수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시대에 책은 안 팔려. 철학은 더더욱 그렇고.”
“그걸 알아. 하지만 문우당이 필요해.”
이종화는 탁자에 종이를 펼쳤다. 그곳에는 그가 구상한 서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문우당(問雨堂).”
“비에 묻다?”
“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서둘러 피하지만, 질문은 그 빗속에서 시작될 수 있어. 나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어.”
김수경은 이종화를 바라보았다. 오랜 세월 동안 변하지 않은 그의 고집. 그것은 무모함이었지만,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신념처럼 보였다.
“알겠어. 도와줄게. 하지만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이종화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후회는 없어. 시작이니까.”
며칠 후, 문우당이 있던 폐업한 서점의 문이 다시 열렸다.
이종화는 낡은 나무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책장의 냄새가 그를 감쌌다.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돼.”
그는 책장 하나를 닦으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곳에서 질문이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이곳에서 철학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까.
서점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방울이 창문을 타고 흐르며 작은 무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지막 장면: 문우당 간판
며칠 뒤, 새로 단 서점 간판이 빗속에서 반짝였다.
“문우당 (問雨堂)”
비를 맞으며 누군가 서점 앞에서 잠시 멈춰 선다.
그리고 이곳이 그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2장: 문우당의 첫 손님
문우당의 첫날, 서점 안은 고요하기만 했다.
낡은 나무 책장과 오래된 책들이 제자리를 찾아갔고, 서점의 작은 창문 너머로 겨울비가 조용히 흘러내렸다.
이종화는 책장 사이를 오가며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었다. 책을 한 권 한 권 정돈할 때마다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 고요함이 그를 감쌌다.
“잘 될까.”
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누군가에게는 이 공간이 사치로 보일지 몰랐다. 철학과 시가 과연 밥 한 끼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책장 위에 놓인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쓰다듬으며 그는 생각했다.
“질문은 언제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문우당의 문이 열린 첫날, 아무도 오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점심이 지나고 해가 질 무렵, 이종화는 작은 원형 테이블에 앉아 책을 펼쳤다.
창밖에는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문득 바람에 간판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한 책장 안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만이 작은 숨을 쉬고 있었다.
그때, 문득 문이 덜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여기 비 좀 피해도 되나요?”
문 앞에 서 있는 소녀는 후줄근한 교복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빗물이 교복 자락을 따라 뚝뚝 떨어졌지만, 그녀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며 안으로 들어왔다.
이종화는 천천히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를 피하러 온 거라면, 앉아서 잠시 쉬어도 괜찮아.”
소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 책장과 책들, 그리고 낡은 서점의 분위기가 어딘지 낯설어 보이는 듯 했다.
그녀의 시선이 책장 한 곳에 멈췄다.
“여기… 헤겔 책 있나요?”
이종화는 잠시 멈칫했다.
교복을 입은 이 소녀가 헤겔을 찾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헤겔? 정신현상학을 말하는 거야?”
“네, 그 책이요.”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멋쩍은 듯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사실… 제목만 들어봤어요. 어려운 책이란 것도 알아요.”
이종화는 조용히 책장으로 걸어가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꺼냈다. 낡은 표지를 닦으며 그는 말했다.
“이 책은 쉽게 읽히지 않아. 하지만 중요한 건 완벽하게 이해하는 게 아니야.”
소녀는 조심스레 책을 받아들었다.
“그럼요? 뭐가 중요한데요?”
이종화는 잠시 창밖의 비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네가 어떤 질문을 던지게 되느냐가 더 중요하지. 철학은 답을 찾는 공부가 아니야.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거지.”
소녀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마치 무언가를 이해한 듯 하다가도, 다시 혼란스러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럼… 그냥 읽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그래. 이해가 안 돼도 괜찮아.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른 말을 하거든.”
그날 밤, 문우당에는 작은 불빛이 켜져 있었다.
소녀는 책을 들고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책은 아직 펼치지 않았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헤겔의 제목을 따라가며 천천히 움직였다.
“어렵다… 진짜 어렵네.”
이종화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어려운 건 당연해. 철학은 늘 낯설거든.”
소녀는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왜 그런 걸 읽어요? 교수님처럼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은 이해하려고 읽겠지만… 저 같은 애들은 읽어도 모르잖아요.”
이종화는 조용히 웃었다.
“철학은 배운 사람만의 것도 아니고, 이해하는 사람만의 것도 아니야. 너처럼 질문을 던질 준비가 된 사람이면 누구나 읽을 수 있어.”
소녀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다 이내 테이블 위의 책에 다시 떨어졌다.
“그럼… 질문이 뭐라고요?”
“네가 궁금한 것, 답을 찾고 싶은 것, 아니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생각도 괜찮아. 그게 질문이 되는 거야.”
소녀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저도 읽어볼게요. 조금씩이라도.”
이종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천천히 읽어도 좋아. 이 서점은 언제든 열려 있으니까.”
소녀는 헤겔의 책을 품에 안고 서점 문을 나섰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후드를 쓰지 않고 천천히 빗속을 걸어갔다.
창밖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이종화는 문득 생각했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시작될 것이다. 아주 작은 질문일지라도.”
서점 안은 다시 고요해졌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이전과 다른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마지막 장면: 문우당 창가의 불빛
문우당의 창가에는 여전히 작은 불빛이 남아 있었다.
비는 그치지 않았지만, 그 불빛은 빗속에서도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이종화는 다시 책을 펼치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질문은 여전히 이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3장: 무너진 벽과 작은 저항
문우당은 조용히 살아 숨 쉬었다.
비 오는 날이면 문우당 서점의 낡은 간판은 더 깊은 색을 머금었고, 서점 안에는 종이 냄새와 나무의 향이 섞여 부드럽게 퍼져나갔다.
이종화는 여느 때처럼 책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책장 사이에는 누군가 두고 간 메모지들이 꽂혀 있었다.
“교수님, 철학이 왜 필요하냐고 물었는데… 조금 알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내가 누군지 생각했어요.”
그 메모들을 손에 들고 이종화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문우당은 아주 느리게, 그러나 꾸준히 사람들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1. 정민우의 등장
어느 날 오후, 서점 문이 덜컥 열렸다. 문 너머로 작은 키의 청년이 들어왔다. 헝클어진 머리, 낡은 가방을 어깨에 멘 모습이 어딘가 지쳐 보였다.
“아르바이트 구한다는 글 보고 왔습니다.”
이종화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어딘가 흔들리는 불안감이 묻어 있었다.
“이름이 뭐지?”
“정민우입니다.”
이종화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책은 좋아하나?”
민우는 머쓱하게 웃었다.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일은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해보자. 책도 조금씩 읽어봐.”
정민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점 구석에 서 있던 빗자루를 집어 들었다.
2. 현실의 벽
서점은 조금씩 사람들의 발걸음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장부는 비어 있었다. 김수경은 문우당의 상황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종화, 이렇게 계속해도 괜찮겠어? 임대료만 나가고 있잖아.”
이종화는 대답 대신 작은 메모지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
“문우당에서 처음으로 철학책을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수경은 메모를 보고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 말이 밥이 되진 않아.”
“철학은 밥을 먹여주지 못할 수도 있지만, 사람을 살게 할 수는 있어.”
이종화의 목소리는 단단했지만, 그 역시 어깨에 드리운 현실의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3. 철학과 현실 사이
정민우는 어느 날 서가에 앉아 책을 정리하다 문득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집어 들었다. 책장을 넘기다가 그는 중얼거렸다.
“진짜 어렵네… 이런 걸 왜 읽지?”
그때 이종화가 다가와 말했다.
“어렵지? 철학은 원래 쉬운 답을 주지 않아.”
정민우는 책을 내려놓고 이종화를 바라보았다.
“교수님은 철학이 진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요? 아무리 질문하고 생각해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잖아요.”
이종화는 그의 질문에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대답했다.
“철학은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을 바꿔. 그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첫걸음이야.”
정민우는 고개를 숙이며 작게 말했다.
“…그런 말, 너무 비현실적이에요.”
이종화는 그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으며 말했다.
“비현실적인 일이 더 오래 남는 법이야.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질문을 던져봐.”
4. 작은 저항: 철학의 밤 준비
서점 운영이 위기에 처하자, 김수경은 독립 출판 프로젝트와 작은 이벤트를 제안했다.
“‘철학의 밤’을 여는 거야. 사람들이 와서 서로 이야기하고 질문을 나눌 수 있는 자리.”
이종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문우당이 그 질문의 시작이 되면 돼.”
정민우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진짜 사람들이 올까요?”
“와도 좋고, 오지 않아도 좋아. 중요한 건 우리가 이곳을 지키는 거야.”
철학의 밤 준비는 소박하게 진행되었다.
테이블 위에는 작은 꽃병이 놓였고, 빛바랜 종이에는 손글씨로 쓴 문구가 적혀 있었다.
“질문은 답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저 던져질 뿐입니다.”
정민우는 서점 한 구석에서 그 글귀를 읽으며 작게 미소 지었다.
“뭐, 던지다 보면 하나는 맞겠죠.”
이종화는 그런 그를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래, 시작이 중요하니까.”
5. 비 오는 밤, 문우당의 불빛
‘철학의 밤’이 열린 날, 비는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정민우는 가게 문 앞에 서서 혹시나 오는 사람이 있을까 두리번거렸다.
“역시 아무도 안 오는 거 아니에요?”
그때, 문이 조용히 열렸다.
박윤지가 교복을 입은 채 서점 안으로 들어왔다.
“저… 혹시 오늘 이야기 나눌 수 있나요?”
이어서 한두 명의 사람들이 문우당으로 들어왔다. 누군가는 직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렀고, 누군가는 우연히 간판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이종화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 앞에 섰다.
“여러분, 이곳은 질문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질문도, 답이 없는 이야기라도 괜찮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이내 조용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마지막 장면: 정민우의 질문
이야기 끝 무렵, 정민우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철학이 저를 바꿀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교수님 말대로 질문을 던지다 보면 바뀔지도 모르겠네요.”
이종화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시작이야. 질문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는 거니까.”
문우당의 창가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책장 위에서 작은 불빛이 새어나오며 서점 전체를 따뜻하게 감쌌다.
이종화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빗줄기 너머로 문우당의 간판이 흐릿하게 보였다.
“질문은 여전히 이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4장: 흐르는 질문, 피어나는 희망
겨울비가 그친 다음 날, 문우당은 조용한 새벽을 맞이했다.
서점의 창밖에는 맑은 공기가 고요히 흘렀고, 나무 간판에 맺혀 있던 물방울들이 하나둘 아래로 떨어졌다. 서점 안은 따뜻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 속에는 미세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전날 **‘철학의 밤’**에 참여한 사람들이 남긴 메모들이 가득했다.
“철학은 처음으로 제게 질문을 주었어요.”
“답을 몰라도 괜찮다는 말이 위로가 되네요.”
“이곳에서 제 이야기를 처음 꺼냈어요. 감사합니다.”
이종화는 조용히 메모를 읽으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그 메모들을 차곡차곡 모아 작은 나무 상자에 넣었다.
정민우가 서점 문을 열며 들어오더니, 하품을 크게 했다.
“교수님, 어제는 좀 뿌듯했어요. 사람이 이렇게 올 줄 몰랐거든요.”
이종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곳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공간이란 뜻이야.”
정민우는 빈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근데… 교수님은 언제부터 철학을 좋아하게 됐어요?”
“음… 언제였을까.”
이종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도 네 나이 때는 답을 찾고 싶었어. 철학을 읽으면 뭐라도 알게 될 줄 알았지. 그런데 철학은 오히려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더라.”
“혼란스러운데 왜 계속 읽어요?”
이종화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 혼란이 나를 살아 있게 했거든. 나는 그걸 ‘생각하는 혼란’이라고 불러.”
정민우는 말없이 그의 말을 곱씹었다.
“혼란이라… 그거 나쁘진 않네요.”
1. 작은 글쓰기 모임
그날 오후, 박윤지가 다시 문우당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가방에서 작은 공책을 꺼내며 수줍게 말했다.
“저… 교수님이 말한 것처럼, 읽으면서 떠오른 질문들을 적어봤어요.”
이종화는 공책을 받아 펼쳤다. 글씨는 삐뚤빼뚤했지만, 그 안에는 깊이 있는 고민이 묻어 있었다.
“우리는 왜 사랑을 원할까?”
“나의 존재는 어디에서 시작될까?”
“세상을 바꾸려면 나부터 변해야 하는 걸까?”
“대단하구나.”
이종화의 목소리에는 놀라움이 묻어 있었다.
“이 질문들은 언젠가 너에게 길을 알려줄 거야.”
박윤지는 작게 웃으며 물었다.
“그럼… 저도 이 서점에서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이종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이곳은 그런 곳이니까.”
그렇게 문우당은 매주 작은 글쓰기 모임을 열게 되었다. 사람들이 각자의 질문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서점은 조금씩 더 따뜻해졌다.
2. 김수경의 결심
한편, 김수경은 문우당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변화를 지켜보며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현실적인 출판사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문우당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어느 날 그녀는 이종화에게 물었다.
“이 서점… 진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을까?”
이종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건 우리가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하지만 이곳에서 시작된 질문은 언젠가 그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어.”
그날 밤, 김수경은 결심했다.
“그래, 책이 팔리진 않아도 괜찮아. 나는 이곳에서 ‘작은 책’을 만들 거야.”
그녀는 문우당과 함께 독립 출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문우당에서 나눈 이야기와 질문들을 모아 한 권의 작은 책을 만드는 것이다.
3. 흐르는 시간, 피어나는 희망
시간이 흐르면서 문우당은 조금씩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 직장인들은 퇴근길에 들러 시집을 읽으며 잠시 숨을 고르고,
- 학생들은 철학책을 펼쳐놓고 서로의 질문을 나누었다.
- 박윤지는 글쓰기 모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고,
- 정민우는 혼란스럽지만 새로운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정민우가 이종화에게 다가가 말했다.
“교수님, 저 이제 대학에 가보려고요.”
이종화는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왜 갑자기 결심했어?”
정민우는 작게 웃으며 답했다.
“여기 있으면서 생각했어요. 답은 없지만, 그래도 찾아보고 싶어졌거든요. 철학이 뭐라도 알려줄지도 모르니까.”
이종화는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가라. 질문을 멈추지 말고.”
문우당의 창가에는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빗소리는 더 이상 쓸쓸하지 않았다.
서점 안에서는 작은 목소리들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종화는 서점의 한 켠에 앉아 조용히 책을 펼쳤다. 창문에는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책을 읽는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그리고 작은 질문들을 남기고 떠난 이들까지.
“문우당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흐르는 질문들과 함께, 누군가의 마음속에 작은 씨앗을 심으며.”
마지막 장면: 나무 간판의 의미
서점 문을 나서는 박윤지가 창가를 바라보았다. 비에 젖은 문우당의 나무 간판이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비에 묻는 질문이 멈추지 않는다면, 답도 언젠가 찾아오겠지.”
5장: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문우당의 작은 불빛은 이제 더 많은 이들에게 닿고 있었다.
초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문우당 간판을 스칠 때마다 나무 문은 조용히 열리고 닫히길 반복했다. 서점 안은 더 이상 비어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이곳을 찾았다.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문우당은 더 이상 '사라질 공간'이 아니었다.
이곳은 질문이 시작되는 작은 움직임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었다.
1. 문우당의 작은 책
김수경은 문우당에서 모인 이야기들을 정리하며 독립 출판을 준비했다.
책의 제목은 『문우당, 질문의 기록』
표지는 단순했다. 비가 내리는 서점 창가의 그림과 함께 문우당의 철학이 한 문장으로 적혀 있었다.
“질문은 흐르고, 답은 찾아온다. 언젠가.”
김수경은 첫 인쇄본을 손에 들고 이종화에게 보여주었다.
“드디어 완성했어요. 문우당의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예요. 시, 질문, 짧은 글들… 다 모았죠.”
이종화는 책을 천천히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시작된 작은 목소리들이 세상에 닿을 수 있겠지.”
김수경은 미소 지으며 답했다.
“사람들이 읽어주면 좋겠어요. 문우당이 여기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될 테니까요.”
2. 박윤지, 자신의 이야기를 쓰다
글쓰기 모임이 열린 날, 박윤지는 작은 노트를 들고 문우당을 찾았다.
“저… 오늘은 제가 쓴 글을 읽어도 될까요?”
이종화와 김수경, 모임에 모인 사람들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윤지는 노트를 펼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첫 문장을 읽었다.
“어릴 적, 나는 비 오는 날이면 방에 혼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세상은 바쁘게 흐르는데, 나는 왜 이렇게 멈춰 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문우당에서 깨달았다. 멈춘 순간도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있다는 걸.”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더 단단해졌다.
“질문은 두려운 게 아니었다. 나를 알게 해주고,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는 문이었다.
이제 나는 나를 기록한다. 내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모임은 조용했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곧 누군가의 박수 소리로 채워졌다.
“잘했어, 윤지.”
이종화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윤지는 노트를 닫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주눅 들었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3. 정민우의 새로운 시작
어느 날, 정민우는 문우당에 편지를 남겼다.
“교수님, 이제 떠나보려고요. 여기서 배운 질문들을 가지고, 저만의 답을 찾으러 갑니다.
문우당은 제게 철학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곳이에요. 답이 없어서 좋았어요.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감사합니다.”
이종화는 문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정민우에게 말했다.
“길이 어려워도 괜찮아. 질문이 있으면 너는 길을 잃지 않을 거야.”
정민우는 씩 웃으며 답했다.
“그 말이 참 이상해요. 그런데… 교수님 말처럼 될 거 같아요.”
그가 떠난 서점 안은 잠시 조용했지만, 그곳에는 무언가 가득 남아 있었다.
그것은 이곳을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이자, 흐르는 질문의 힘이었다.
4. 문우당, 세상을 만나다
김수경의 『문우당, 질문의 기록』은 작은 출판사에서 조용히 출간되었다. 처음에는 몇 권 팔리지 않았지만, 어느새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이런 문장이 시작되었어요. 누군가가 철학을 읽고 이런 질문을 던졌대요.”
“질문이 흐르는 서점이라니… 그 서점은 어떤 곳일까요?”
책을 읽은 사람들이 문우당을 찾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책장을 훑었고, 누군가는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다.
5. 마지막 낭독회, 그리고 비가 그친 날
문우당에서 마지막 낭독회가 열리던 날, 이종화는 서점 한가운데에 섰다.
그의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여러분, 문우당은 질문이 시작되는 공간입니다. 철학은 답을 찾는 게 아니라, 답을 기다리게 만드는 힘이에요. 이곳에서 시작된 질문들이 여러분에게 오래 남길 바랍니다.”
그는 천천히 시 한 구절을 읽기 시작했다.
“흐르는 시간 위에 던진 물음표 하나,
그것은 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의 마음에 작은 물결을 일으킨다.”
낭독이 끝난 후, 사람들은 조용히 박수를 쳤다. 누군가는 눈물을 닦았고, 누군가는 작은 노트에 글을 적고 있었다.
문우당의 문이 닫히고, 창밖에는 비가 그치고 있었다.
이종화는 창가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먹구름이 걷힌 자리에는 작은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그는 문우당 간판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문우당이 어디에 있든, 그것은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이어질 것이다.”
에필로그: 흐르는 질문의 끝에서
시간이 흘러, 문우당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 작은 책 『문우당, 질문의 기록』은 새로운 세대의 질문을 모으는 출발점이 되었고,
- 박윤지는 글을 쓰는 작가로 성장해 독자와 만났다.
- 정민우는 철학과 함께 새로운 길을 걸으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문우당은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흐르고 있었다.
마지막 문장
“비에 묻는 질문 하나가 누군가의 세상을 바꾼다.
문우당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질문이 시작되는 곳, 그리고 이야기가 계속되는 곳.”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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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osohantry.tistory.com/entry/Short-story-비와-철학의-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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