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Writing)/짧은 이야기 (Short story with AI)

Short story) 오랑캐꽃의 빛, 세계를 비추다

sosohantry 2024. 10. 26. 19:22

<오랑캐꽃의 빛, 세계를 비추다>
 
 
1. 오랑캐꽃의 전설
"할머니, 이 꽃은 왜 오랑캐꽃이에요?"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일곱 살 한별이가 물었다. 소해 할머니는 텃밭 한켠에 피어있는 보랏빛 꽃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뒤뜰 평상에 앉아 있던 손자를 무릎에 앉혔다.
"옛날 옛적에, 우리 마을에 오랑캐들이 쳐들어왔단다. 그때 마을 사람들은 모두 도망쳤지. 하지만 한 소녀가 있었어. 그 소녀는 다리를 다쳐서 혼자 남겨질 수밖에 없었지."
한별이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소해 할머니는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말이다, 그 소녀를 발견한 오랑캐 장수가 있었어. 누구나 그 장수를 무서워했지만, 그는 의외로 소녀를 돌봐주었단다. 전쟁이 끝나고 장수는 떠나면서 주머니에서 보랏빛 씨앗을 꺼내 소녀에게 주었지. '이 꽃은 우리 고향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오. 당신의 용기를 잊지 않기 위해 이 꽃을 남기겠소.'"
"와, 그래서 이 꽃이 오랑캐꽃이 된 거예요?"
"그렇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꽃은 우리 마을에서만 자라. 다른 곳에 심으면 시들어버린단다. 마치 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말이야."
한별이는 꽃잎을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보랏빛 꽃잎은 마치 비단처럼 부드러웠다.
"할머니, 근데 이 꽃이 우리 마을을 지킨다면서요, 왜 마을이 자꾸 없어져요?"
소해 할머니는 잠시 말을 잃었다. 도시 개발로 인해 마을이 점점 사라져가는 현실을 어린 손자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꽃은 지키고 싶은 걸 지키는 게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는 걸 지키는 거란다. 봐봐, 저 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꺾이지 않고 휘어지지."
어린 한별은 할머니의 말뜻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왠지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그날 이후로 한별은 매일 오랑캐꽃을 들여다보았다. 때론 꽃에게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나도 커서 너처럼 될 거야. 휘어져도 꺾이지 않을 거야." 어린 한별의 말에 오랑캐꽃은 미소 짓듯 살랑살랑 흔들렸다.
 
 
2. 마을을 떠나는 날
열여덟이 된 한별은 캐리어를 끌고 마을 버스정류장에 섰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정류장 벤치에 앉자 지난 밤 할머니와 나눈 대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서울로 가서 뭐하겠다고?" "댄서가 될 거예요, 할머니. 제가 춤추는 영상을 올렸더니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아이고, 요즘 세상에 그게 무슨 밥벌이냐..."
할머니는 한숨을 쉬다가도 이내 씩씩하게 웃어보였다. "너희 어미도 춤추는 걸 좋아했지. 꼭 닮았어."
한별은 주머니에서 낡은 휴대폰을 꺼내 동영상을 재생했다. 학교 뒤편 빈 운동장에서 몰래 찍은 춤 영상이었다. 댓글창에는 여전히 새로운 반응들이 달렸다.
'와... 시골에서 이런 댄서가 나오다니' '완전 특이해! 전통춤이랑 힙합이 섞인 것 같아요' 'YG에서 러브콜 오겠는데?'
실제로 온 건 YG가 아닌 작은 기획사였지만, 한별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텃밭의 오랑캐꽃 몇 송이를 조심스레 꺾어 책갈피에 넣은 걸 떠올렸다. 할머니가 몰래 봤다면 또 잔소리했겠지.
"어머, 저 꽃이 여기서도 자라네?"
귀에 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할머니가 서 있었다. 손에는 도시락 가방을 들고 있었다.
"할머니! 어떻게..." "이 할미가 손주 떠나보내는데 점심도 못 싸주나. 근데 방금 저기 봤어. 오랑캐꽃이." "네? 여기요?"
한별이 할머니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류장 옆 작은 화단에 보랏빛 꽃 한 송이가 피어있었다. 마을 밖에서는 절대 자라지 않는다던 그 꽃이.
"허, 이상하네. 여태 여기서 본 적 없는데." "할머니, 이거 혹시..." "그래, 네가 떠나도 될 만큼 자랐다는 뜻일까?"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도시락을 건넸다. 따듯한 온기가 한별의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할머니, 전설에서 오랑캐 장수가 준 씨앗... 정말 있었던 일이에요?" "글쎄... 난 그저 할미한테 들은 대로 너한테 들려준 것뿐이야. 하지만 말이다, 전설이든 뭐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 꽃이 네 맘속에 어떤 의미로 자리 잡았는지, 그게 중요하지."
버스가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할머니는 한별의 어깨를 꼭 껴안았다.
"춤추는 걸 보니 너는 이미 알고 있더구나. 꽃처럼 휘어지되 꺾이지 않는 법을. 가서 마음껏 피어라."
버스에 오르며 한별은 창밖으로 보이는 오랑캐꽃을 바라봤다. 그리고 주머니 속 책갈피에 넣어둔 꽃잎을 살며시 만졌다. 이제 그는 자신만의 전설을 써내려 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정류장을 떠나는 버스 안에서, 한별은 이어폰을 꽂고 연습했던 음악을 틀었다. 전통 사물놀이 장단이 힙합 비트와 섞이는 순간, 그의 몸은 저절로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처럼, 이제 그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3. 새로운 세계, 낯선 무대
서울의 첫인상은 현기증 나는 속도였다. 지하철은 쉴 새 없이 달렸고, 사람들은 마치 누군가와 경주라도 하듯 빠르게 걸었다. 연습실에 도착한 한별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다듬었다. 시골 냄새가 날까 봐 새로 산 향수를 뿌리고, 투박한 사투리가 새어나올까 봐 말투도 고치려 애썼다.
"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컨트리 보이'가 왔네!"
연습실 문이 열리며 들어온 건 에린 프로듀서였다. 서른 중반의 그녀는 해외에서 안무가로 활동하다가 한국에 기획사를 차린 실력자였다. 유튜브에서 한별의 영상을 보고 직접 연락했다고 했다.
"안녕하세요, 프로듀서님." "에이, 뭘 그렇게 긴장해. 난 네 춤이 좋아서 데려온 거야. 특히 그 전통적인 움직임이 현대 춤과 섞이는 부분... 정말 특별하더라고."
한별은 얼굴이 붉어졌다. 사실 그건 우연이었다. 학교 뒤 운동장에서 연습할 때, 근처 사물놀이패의 장단이 들려와서 그 리듬에 맞춰 즉흥적으로 춤을 춘 것뿐이었다.
"오늘부터 다른 연습생들과 함께 트레이닝을 시작할 거야. 아, 저기 와요, 얘들아!"
문이 다시 열리고 세 명의 연습생이 들어왔다. 모두 한별보다 어려 보였지만, 훨씬 세련된 모습이었다.
"지성, 민규, 재현이에요. 다들 2-3년 정도 트레이닝 받은 친구들이야."
세 사람은 공손하게 인사했지만, 한별은 그들의 눈빛에서 의구심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시골뜨기가 우리랑 어울릴 수 있을까?'
음악이 시작되고 춤 연습이 시작됐다. 처음엔 괜찮았다. 기본적인 힙합 동작들은 독학으로 익혀둔 터였다. 하지만 고난도 기술이 시작되자 한별은 헛돌기 시작했다.
"잠깐, 한별아. 그 동작 아직도 안 되는 거야?" "죄송합니다..." "다들 10분간 쉬어요. 한별아, 잠깐 내 방으로 와볼래?"
에린의 사무실에는 세계 각국의 무용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그중에는 한국의 전통 춤 공연 포스터도 있었다.
"솔직히 말할게. 네 실력은 아직 많이 부족해. 하지만 난 네가 가진 특별한 뭔가를 놓치고 싶지 않아." "특별한... 거요?" "응. 아까도 봤지만, 네가 춤출 때 보이는 그 독특한 움직임. 마치 바람에 휘어지는 갈대 같아. 도시 애들한텐 없는 거야."
한별은 주머니 속 책갈피를 만졌다. 오랑캐꽃 말린 것이 바스락거렸다.
"근데 말야, 네가 자꾸 그걸 감추려고 하는 것 같아. 시골 출신인 게 부끄러워?" "아... 아니요. 그런 건..." "춤에는 정답이 없어. 네가 가진 걸 부끄러워하지 마. 오히려 그걸 더 강조해보는 건 어때?"
에린은 노트북을 켜고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아프리카 전통 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연이었다.
"보이지? 전통이 현대와 만나면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난 네가 그런 걸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날 밤, 한별은 옥상에서 혼자 춤을 췄다. 이번엔 억지로 꾸미지 않았다. 할머니가 들려준 전설 속 오랑캐꽃처럼, 그저 자연스럽게 흔들렸다. 어둠 속에서 그의 그림자는 마치 보랏빛 꽃잎처럼 일렁거렸다.
 
 
4. 글로벌 무대의 유혹과 갈등
"한별아, 큰 기회야. 세계적인 프로듀서 마이클 리가 우리 연습생들 보러 온대!"
에린의 목소리는 들뜬 것처럼 들렸지만, 한별의 마음은 무거웠다. 지난 6개월간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발하느라 밤낮없이 노력했다. 사물놀이 장단에 힙합을 접목하고, 전통 무용의 손짓을 현대 춤에 녹여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솔직히 좀 촌스럽네요." "너무 한국적이에요. 글로벌한 감각이 부족해요."
동료 연습생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유일하게 에린만이 그의 편이었다.
마이클 리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공연을 연출하는 유명 프로듀서였다. 그가 누군가를 선택하면, 그 사람은 바로 세계 무대에 설 수 있었다.
"모두들 들어봐요. 마이클은 아시아 댄서를 찾고 있어요. 하지만 그가 원하는 건 서구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이야. 우리만의 색을 보여주되, 너무 동양적이면 안 돼."
에린의 말에 연습실이 술렁였다. 모두가 자신의 기회라 생각했다.
오디션 날, 한별은 거울 앞에서 마지막 연습을 하고 있었다. 주머니 속 말린 오랑캐꽃은 이제 바스러질 것처럼 연약해져 있었다.
"Next... Han Byeol?"
마이클 리는 한별의 이력서를 흥미롭게 보았다. "So, you're from countryside? Interesting..."
음악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순수한 힙합 비트였다. 한별은 완벽한 팝핀과 힙합 동작을 선보였다. 마이클의 눈이 반짝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한별의 귓가에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꽃은 지키고 싶은 걸 지키는 게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는 걸 지키는 거란다."
한별은 즉흥적으로 음악을 바꿨다. 미리 준비한 안무 대신, 사물놀이 장단이 섞인 자신만의 음악으로.
"What are you doing?" 마이클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한별은 멈추지 않았다. 전통 춤사위가 힙합과 섞이고, 어깨짓이 물결처럼 흘렀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오랑캐꽃처럼.
"Stop! STOP!"
음악이 끊겼다. 적막이 흘렀다.
"This is... not what we're looking for. Too... Korean."
마이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른 연습생들의 눈빛이 한별을 향했다. 동정? 비웃음?
하지만 이상하게도 한별은 편안했다. 오히려 무언가가 풀린 것 같았다.
그날 밤, 옥상에서 혼자 있던 한별에게 에린이 다가왔다.
"마이클이 너에 대해 물어보더라." "네? 하지만 그분이 싫어하셨잖아요." "아니. 그는 네가 마음에 들었대.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뭔데요?" "전통적인 요소는 모두 빼고, 순수한 힙합만 추라고 하더라. 그러면 바로 미국 무대에 세워준대."
한별은 잠시 말이 없었다. 달빛 아래서 그의 얼굴이 일렁였다.
"글로벌 스타가 되고 싶지 않아요?" "...그럼요. 정말 되고 싶죠." "그럼 마이클의 제안을..."
"하지만," 한별이 주머니에서 바스러진 오랑캐꽃을 꺼냈다. "이렇게 되면... 제가 저일 수 있을까요?"
 
 
5. 소해 할머니의 지혜
한별은 고향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마이클의 제안을 거절한 후, 에린은 일주일간의 휴식을 제안했다.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찾아봐."
버스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텃밭으로 향하는 길에 익숙한 보랏빛이 눈에 들어왔다. 오랑캐꽃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할머니!" "어머, 우리 별이가 웬일이야?"
소해 할머니는 텃밭에서 무를 캐고 있었다. 손주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기색도 잠시, 이내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오늘 오랑캐꽃이 유난히 예쁘게 피더라니... 네가 올 줄 알았나 보구나."
할머니는 무더기를 내려놓고 손을 털었다. "들어가자. 시장할 텐데 무국 끓여줄게."
부엌에서 국이 끓는 동안, 한별은 할머니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세계적인 프로듀서의 제안, 자신의 정체성을 버려야 한다는 조건, 그리고 그 선택 앞에서의 망설임까지.
"할머니, 제가 바보 같죠? 그냥 그분 말대로 하면 될 텐데..."
소해 할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부엌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왔다. 오래된 사진첩이었다.
"이거 봐봐."
흑백사진 한 장. 젊은 여인이 한복을 입고 춤을 추고 있었다.
"이게 누군데요?" "너희 어머니야."
한별은 숨을 들이켰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은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있었다.
"너희 어머니도 춤꾼이었어. 전통무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게 꿈이었지. 하지만 그 때는 다들 서양 춤만 좋아하던 시절이라..."
할머니의 목소리가 잠시 떨렸다.
"결국 그 꿈을 포기하고 평범한 직장을 택했지. 하지만 난 봤어. 저녁마다 마당에서 몰래 춤추던 모습을. 마치 오랑캐꽃처럼 홀로 피어나던 그 춤을..."
한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할머니, 이제야 알겠어요. 왜 제가 이렇게 춤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왜 하필 이런 춤을 추게 됐는지..."
소해 할머니는 손주의 손을 꼭 잡았다.
"그래서 말인데, 내일 나랑 어디 좀 가보자." "어디요?" "옛날 사물놀이패 있던 데 말이다. 거기서 아직도 공연한다더구나."
한별의 눈이 반짝였다.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단다. 진정한 세계 무대는 남의 것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 네 것을 세계가 알아보게 만드는 거야."
그날 밤, 한별은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달빛에 비친 오랑캐꽃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 꽃은 단순한 전설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의 춤처럼, 두 개의 다른 세계가 만나 피워낸 아름다움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6. 오랑캐꽃을 가슴에 달다
다음 날 아침, 한별과 할머니는 마을 뒷산으로 향했다. 30년 전만 해도 이곳에서는 매주 사물놀이 공연이 열렸다고 했다. 좁은 산길을 오르며 할머니는 숨을 몰아쉬었다.
"할머니, 천천히 가요." "에이, 괜찮아. 근데 저기 보이는 강당... 옛날에는 거기서..."
말을 마치기도 전에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둥둥둥, 둥따라라둥. 한별의 발걸음이 절로 멈췄다.
"아직도 있네..."
낡은 강당 안에서는 예순 넘은 노인들이 사물놀이를 연습하고 있었다. 꽹과리, 장구, 북, 징이 어우러져 만드는 장단은 한별의 심장을 울렸다.
"어머, 이게 누구야? 소해 씨?" "김 선생님..."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는 동안, 한별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단에 맞춰 어깨가 출렁이고, 팔이 물결처럼 흘렀다.
"어? 저 동작... 혹시 춤꾼이야?" "네, 제가 서울에서..."
"잠깐만!" 김 선생이 한별의 말을 자르며 휴대폰을 꺼냈다. "이 친구 맞지? 유튜브에서 본 그 영상..."
노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우리도 봤어! 전통이랑 힙합이 섞인 거... 참 신기했지." "요즘 젊은이가 이런 걸 하다니..."
한별은 당황했다. 자신의 영상을 이런 곳에서 볼 줄은 몰랐다.
"한번 춰볼래? 우리가 반주 해줄게."
잠시 망설이던 한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꽹과리 소리가 울리자, 한별의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연습실에서처럼 꾸며내거나, 억지로 만들어내는 춤이 아니었다. 그저 흐르는 대로, 몸이 기억하는 대로 움직였다.
할머니가 들려준 전설 속 오랑캐꽃처럼, 두 개의 다른 세계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전통 춤사위가 힙합의 파워풀한 동작과 만나고, 비보잉의 회전이 진쇠장단과 어우러졌다.
"야... 이게 바로 우리가 찾던 거였어." "맞아, 옛 것과 새 것이 이렇게..."
연습이 끝나고, 김 선생이 한별에게 다가왔다.
"이걸 가져가렴."
작은 보자기를 펼치자, 오래된 옷고름이 나왔다. 보랏빛이었다.
"이건..." "그 전설 속 오랑캐꽃 색이지. 옛날 무용수들이 가슴에 달고 추던 거야. 이제는 네가 가져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별은 휴대폰을 꺼내 에린에게 문자를 보냈다.
 
[프로듀서님, 제가 찾았어요. 제가 진짜로 원하는 걸요.]
[Tell me more.]
[우리 공연요... 오랑캐꽃을 주제로 하면 어떨까요?]
[Babarian flower? What's that?]
[아주 특별한 꽃이에요. 두 개의 다른 세계가 만나서 피워낸...]
 
그때, 뒷산에서 다시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한별은 보랏빛 옷고름을 꼭 쥐었다. 이제 그는 알았다. 자신의 춤이,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저녁 무렵, 할머니의 텃밭에서 오랑캐꽃을 바라보며 한별은 생각했다. 어쩌면 이 꽃은, 수백 년 전 그 소녀처럼, 다른 세계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뿌리를 잃지 않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7. 무대 위의 빛, 전 세계를 향해
"Ladies and gentlemen, please welcome our next performer... Han Byeol!"
서울 예술의전당 대극장. 세계 현대무용 페스티벌의 마지막 순서였다. 객석에는 전 세계의 무용 관계자들이 앉아있었다. 마이클 리도 보였다.
무대는 캄캄했다. 그리고 한 줄기 보랏빛 조명이 켜졌다.
한별이 등장했다. 검은 힙합 의상 위에 보랏빛 옷고름이 달려있었다. 가슴 한켠에는 말린 오랑캐꽃도 달았다.
처음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뒷산 사물놀이패 노인들이 무대 구석에서 연주를 시작한 것이다.
둥... 둥... 둥따라라둥...
한별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통 춤사위로 시작된 동작이 서서히 현대적인 힙합으로 변화했다. 그러다 다시 전통으로 돌아가고, 또다시 현대로 흘렀다.
"Amazing..." "C'est magnifique!" 관객석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사물놀이 장단이 점점 빨라졌다. 한별의 동작도 격렬해졌다. 비보잉의 파워무브가 전통 춤사위와 섞이며 무대를 휩쓸었다.
그때였다.
객석 뒤쪽에서 누군가가 일어났다. 소해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천천히 무대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고 한별을 향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달 밝은 밤에~ 핀 꽃 한 송이~"
전설 속 소녀가 부르던 노래였다. 할머니의 떨리는 목소리가 사물놀이 소리와 어우러졌다.
한별의 춤이 달라졌다. 더 이상 안무가 아닌, 영혼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마치 수백 년 전 그 소녀의 영혼이 깃든 것처럼.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마지막 장면. 한별은 무대 중앙에서 천천히 회전했다. 보랏빛 옷고름이 나비처럼 날았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오랑캐꽃 같았다.
"휘어져도 꺾이지 않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울렸다.
음악이 멈추고, 한별이 마지막 포즈를 취했다. 순간 객석이 폭발했다.
"BRAVO!" "ENCORE!"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에린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마이클 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박수를 쳤다.
무대 위의 한별은 울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 달린 오랑캐꽃이 무대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어머니..." 그는 속삭였다.
그날 밤, 세계 각국의 언론이 한별의 공연을 보도했다.
"Traditional meets Modern: A New Wave in K-Dance" "Korean Dancer Redefines Global Performance" "The Legend of Oranje Flower: A Cultural Revolution"
하지만 한별에게 가장 소중한 건 공연이 끝난 후 할머니가 건넨 쪽지였다.
 
[네 어머니가 보면 얼마나 자랑스러워했을까...
이제 네가 새로운 전설이 된 거야.
사랑하는 할머니가]
 
한별은 쪽지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할머니의 글씨는 언제나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 쓴 듯 보였다. 오래된 필체였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과 자부심은 한 글자, 한 글자에 가득 묻어났다. 무대 위에서 느낀 감격과 전율이 다시 한 번 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객석에 섰을 때 느꼈던 모든 감정이 뒤엉켜 터져 나오려 했지만, 한별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할머니가 자신의 어머니와 똑같이 자랑스러워할 거라는 그 말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자랑이 그를 어루만지는 느낌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한별은 홀로 무대에 남아 있었다. 조명이 꺼지고 객석이 텅 빈 공간에 서니, 그가 방금 겪은 일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무대에서 그가 꺾이지 않고 피어올랐던 순간이 마치 전설처럼 자신에게 돌아오는 듯했다. 한별은 잔잔한 보랏빛 오랑캐꽃이 마치 자신의 마음속에서도 조용히 피어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때, 무대 뒤에서 에린이 다가왔다. 그녀는 여전히 감동에 젖은 얼굴로 한별을 바라보았다.
"한별," 에린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진짜 해냈어. 너는... 하나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냈어."
한별은 고개를 들어 에린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감사해요, 에린. 저를 믿어줘서요. 그리고 제 어머니와 할머니에게도요. 오늘의 무대는 그분들 덕분에 가능했으니까요."
에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네가 그 무대에서 보여준 모든 것이 세계에 새겨졌어. 그 오랑캐꽃이 세상을 움직였어."
한별은 그 말을 들으며 천천히 미소 지었다. 그의 가슴속에 새겨진 오랑캐꽃의 전설은 이제 그 자신만의 것이 되었다. 자신이 수백 년 전의 전설을 새롭게 살아 숨 쉬게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꽃이 피어있을 공간을 그는 충분히, 그리고 강하게 채워냈음을 느꼈다.
 
 
8. 다시 찾은 마을, 그리고 새로운 시작
그날 밤이 지나고 며칠 후, 한별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공연에서의 화려한 조명과 박수를 뒤로하고, 고요한 들판 위에 선 채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을은 언제나처럼 조용하고, 그리고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그의 귀환을 맞이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떠나기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의 마음속에 있던 무거움이 사라졌다. 그가 돌아온 것은 단지 공연 후의 휴식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피어야 할 곳을 알고, 이제야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할머니!" 그는 집 앞에 앉아 있는 소해 할머니에게 소리쳤다.
할머니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우리 전설의 주인공이 돌아왔구나! 자, 이제 여기서도 네 꽃을 활짝 피우렴."
한별은 그 말에 웃으며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할머니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들판에 핀 오랑캐꽃들을 바라보았다. 마을을 떠날 때는 이 꽃들이 자신의 과거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그 속에서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자신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할머니, 이제는 정말로 알 것 같아요. 제가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요."
할머니는 그를 바라보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한별아. 이제는 네가 어딜 가든 그 꽃을 지켜낼 거니까."
한별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이 오랑캐꽃을 잃어버린 무엇으로 기억하지 않았다. 그가 선택한 이 길과 그의 꽃은, 이제껏 그가 꿈꾸던 바로 그 빛으로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비보잉으로 피어난 오랑캐꽃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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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이용악, <오랑캐꽃>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갔단다고려 장군님 무지 무지 쳐들어와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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