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가는 길>
서울 외곽의 작은 음악 카페에 앉아 있으면 마치 시간 속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 든다. 찬바람이 유리창에 닿을 때마다, 가을이 더 깊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커피잔을 두 손에 감싸 쥐고 조용히 창밖을 바라봤다. 바깥은 바람에 휩쓸린 낙엽들로 가득했고, 가로등 아래로 늘어진 그림자가 바닥에 길게 드리워졌다. 이곳은 늘 조용했고, 그 고요함 속에서 나 자신과 대면하게 만들었다.
카페 안에서는 브루노 마스의 "Just the Way You Are" 가 흘러나왔다. 노래가 내 마음속 깊은 곳을 자극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연스럽게 고향 생각이 났다. 고향은 내게 멀리 있었고, 그리움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으로 남아 있었다. 내가 떠난 후, 나는 그곳을 잊으려 했지만, 도망친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도시에서 더 나은 삶을 찾아왔지만, 어느새 나는 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고향은 잊히지 않는 장소였다. 내가 떠나온 이유도, 그곳을 다시 찾기 두려운 이유도 그 안에 있었다. 도시는 내가 그 모든 것을 잊게 해줄 것 같았지만, 사실 그것은 더 큰 공허함을 내 안에 남기고 있었다.
카페 문이 열리며 바람이 한차례 스쳐 지나갔다.
“민수야?”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수진이 서 있었다. 고향에서 함께 자란 친구,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얼굴이 낯설기도 했고, 반가운 마음도 있었다.
“수진이?” 나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밝게 웃으며 내 맞은편에 앉았다. “오랜만이네. 넌 여기 자주 오니? 나도 가끔 여기 와서 시간을 보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오랜 시간 동안 서로의 삶이 달라졌음을 인식하는 어색함이 있었다. 우리는 한때 너무도 가까운 친구였지만, 그간의 시간이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했음을 느꼈다. 그 시간이 얼마나 많은 것을 변하게 했는지, 우리는 이제야 천천히 알아가고 있었다.
수진이 내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고향엔 마지막으로 언제 갔어?”
그 질문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질문을 피하려고 했고, 그곳을 떠난 후로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았다. “글쎄… 10년은 넘은 것 같아.”
수진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정말? 그럼 그동안 한 번도 안 갔다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응, 일이 바빠서… 늘 가야지 하면서도 계속 미뤄졌어.”
그 말은 절반의 진실이었다. 바쁘다는 이유는 합리적인 핑계였다. 하지만 나는 고향을 일부러 멀리하려 했다. 그곳은 내가 떠나온 이유였고, 그곳에서 이루지 못한 꿈들과 마주해야만 하는 장소였다. 도시에 와서 나는 더 나은 삶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고향을 잊으려 했던 이유는, 그곳에서의 내가 너무도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수진은 내 표정 속에서 무언가를 읽고 있는 듯했다.
“나는 가끔 고향을 생각해. 우리가 실개천에서 뛰어놀던 거 기억나? 맨발로 들판을 뛰어다니면서 아무 걱정 없이. 그 시절에는 모든 게 자유롭고, 내일에 대한 걱정도 없었지.” 그녀는 아련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 시절은 나에게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맑은 실개천, 푸른 들판, 그리고 하늘 아래서 마음껏 달리던 나. 하지만 그 기억은 점점 더 멀어졌다. 나는 더 이상 그 시절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곳에서 도망치듯 떠났고, 이제는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두려웠다.
수진이 나의 마음을 꿰뚫은 듯 물었다.
“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니?”
그 질문은 나를 다시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다. 그 자유롭고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났고, 그 시절의 나를 포기하기로 했으니까. 그때의 자유로움과 무한한 가능성은 지금의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수진은 나를 잠시 지켜보더니, 문득 물었다.
“그럼… 지금 넌 행복해?”
그 질문은 나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너무 오랫동안 내게서 멀어져 있었다. 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달려왔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행복…? 글쎄, 잘 모르겠어. 그냥… 살아가고 있는 거지. 그게 행복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어.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야.”
수진은 내 대답을 듣고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비슷해. 도시에서 더 나은 직장, 더 나은 생활을 꿈꾸면서 살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뭘 위해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혼란스러워지더라. 뭔가를 이루기는 했지만, 그게 나를 채워주지는 않았어.”
그녀의 말은 내 마음속에 깊이 박혔다. 나는 도시에서 성공을 이루기 위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달려왔다. 더 많은 돈,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성취.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나를 채워주지 못했다. 나는 그 과정 속에서 점점 공허해졌고, 내 자신이 점점 텅 비어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성공을 위해 나아갔지만, 그 목표들이 진정한 나를 잃어가게 만들었다.
나는 수진에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나도 그래. 도시에 와서 더 나은 삶을 이루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계속 앞만 보고 달렸지.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더라. 고향을 떠나온 것도 나를 위한 선택이라고 믿었는데… 이제는 잘 모르겠어. 내가 뭘 잃어버리고 있는지조차.”
수진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둘 다 너무 많은 걸 잃어버린 것 같아. 더 나은 삶을 위해 너무 많이 놓치고 산 거지.”
그녀의 말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파고들었다. 나는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달려왔지만,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나는 내가 이루지 못한 꿈들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달려왔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잊었다.
수진의 말이 끝나고 나서도 나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음이 복잡했다. 내가 진짜로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 대답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 그 답을 찾기 위해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우리가 고향에 돌아가면, 잃어버린 것들을 찾을 수 있을까?”
수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하지만 적어도 고향은 우리가 시작했던 곳이잖아. 그곳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거야.”
그녀의 말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고향은 분명 내가 출발했던 곳이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 멀리 와버렸고, 다시 돌아간다고 해서 그때의 나를 찾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두려움과 불안 속에 갇혀 있었다. 다시 돌아가면, 내가 이루지 못한 꿈들과 마주해야만 할 것이었다.
“그래도… 고향이 너무 많이 변했으면 어떡하지?” 나는 솔직하게 내 두려움을 털어놓았다.
수진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고향이 변했을 수도 있지. 세월이 흘렀으니까.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우리가 그곳에서 무엇을 다시 찾을 수 있느냐는 거지. 변한 건 고향만이 아니잖아. 우리도 많이 변했으니까.”
그녀의 말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어쩌면 변한 것은 고향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동안 나 자신이 변했다는 사실을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때였다. 고향은 변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곳에서 나 자신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깊은 숨을 내쉬고 결심했다.
“그럼… 이번 주말에 같이 가볼까?”
수진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자. 우리 둘이 함께 가면 덜 두려울 거야.”
우리는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약속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마침내 나 자신을 다시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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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도 복잡했다. 차를 타고 고향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내 마음속 깊은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다. 도시의 빌딩 숲이 점점 사라지고, 작은 마을과 들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길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그 끝에서 나는 어떤 나를 마주할지 알 수 없었다.
“수진아, 우리가 정말 가는 게 맞는 걸까? 혹시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닐까?” 나는 내 마음속 깊은 불안을 꺼내놓았다.
수진은 침묵하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늦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걸 확인하지 않으면, 우린 평생 그 두려움 속에 갇혀 살게 될 거야. 직접 가서 확인해야 알 수 있잖아."
나는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두려움 속에서 멀리서만 고향을 바라보는 것보다, 직접 마주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곳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지는 가봐야 아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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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말없이 그곳을 바라보았다. 마을의 풍경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그곳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고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그곳에서 나는 나의 과거와 마주하게 되었다.
고향에서의 시간은 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잃어버린 나의 일부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고향은 변했지만, 그 속에서 내가 잃어버린 것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변한 것은 고향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나로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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