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유, <속사미인곡(續思美人曲)>
## 원문:
삼년(三年)을 님을 나 뉴락(流落)니
내 언졔 무심(無心)여 님의게 득죄(得罪)가
님이 언졔 박졍(薄情)여 날 대졉(待接) 소(疎)히 가
내 얼골 곱돗던지 질투(嫉妬)산 즁녀(衆女)로다
유한(幽閑) 이 내 몸을 션음(善淫)다 니노쇠
셔하(西河)의 식옥(拭玉)고 샤쟈거(使者車)로 도라오니
봉황셩(鳳凰城) 다르며 고국쇼식(故國消息) 경심(驚心)다
황혼(黃昏)의 녯긔약(期約)을 다시 거의 즐너니
참언(讒言)이 망극(罔極)니 님이신들 어이고
시호(市虎)도 셩의 (成疑)고 증모(曾母) 투져(投杵)져
우리 님 날 밋기야 셰샹(世上)의 뉘 비(比)고
듕산방셔(中山謗書)를 협듕 (篋中)의 득 두고
함졍(糮穽)의 건져 내여 션디(善地)의 편관(編管)니
구연셩(九連城) 노슉(露宿)고 압녹강(鴨綠江) 밧비 건너
셩초(星貂)를 부리오고 초교(草轎) 리시러
쳥쳔강(淸川江) 삼일우(三日雨)의 졍삼(征衫)을 다 적시고
셩야(星夜)의 질치(疾馳)야 패슈(浿水)를 건너올
일하 음신 (日下 音信)을 어로셔 드리다
근긔압송(近畿押送)은 고금(古今)의 초견(初見)이오
딜졔직(子姪除職)은 이은(異恩)도 됴첩(稠疊)다
박명(薄命) 이 내 몸의 님의 은혜(恩惠) 이리니
녀관 잔등(旅館殘燈)의 피눈물이 절노 난다
금오리 금귀(金吾吏金擇龜) 벽졔역(碧蹄驛)의 만나보고
션산(先山)의 잠간(暫間)드러 통곡(痛哭)여 별(拜別)고
셩셔구 (城西舊宅)의 가묘(家廟)의 하직(下直)니
원근친쳑(遠近親戚)이 손잡고 니별(離別)
쳥운 구붕(靑雲舊朋)은 안즁(眼中)의 드무도다
엄졍(嚴程)이 유한(有限)니 경각(頃刻)인들 엄뉴(淹留)랴
관악산(冠岳山) 십리디(十里地)의 송츄(松湫)의 쉬여
쳐니장(千里行裝)을 초초(草草)히 려
죵남(終南)을 회슈(回首)니 오운(五雲)이 의의(依依)고
의릉(懿陵)을 쳠망(瞻望)니 숑(松柏)이 챵챵(蒼蒼)다
고신원누(孤臣怨淚) 한수(漢水)의 득려
님 향(向) 일편정(一片情)을 참고 아 나가니
내 음 이러 졔 님잉신들 니즐손가
호남(湖南)길 더위잡아 노령(蘆嶺)의 올나쉬여
북으로 도라보고 두셰 번 탄식(歎息)니
부운(浮雲)이 폐일(蔽日)야 경국(京國)을 못볼노다
금셩산(金城山) 라보고 젹소(謫所) 가니
남쥬 대도회 (南州大都會)의 낙토(樂土) 쳐음 보왜
쥬인(主人) 뎡군(鄭使君)이 마조나 반겨니
거쳐(居處)도 과분(過分)고 의식(衣食)도 념녀(念慮)업다
망라(網羅)의 벗기신 몸 이곳의 언식(偃息)니
가지록 님의 은혜(恩惠) 도쳐(到處)의 망극(罔極)다
시욕살(時帝欲殺)야 화(禍色)이 충격니
도거졍확(刀鉅鼎鑊)이 됴셕(朝夕)의 위급(危急)일새
졀도쳔극(絶島荐棘)으로 즁노(衆怒)를 막으시니
종시(終始)예 곡젼(曲全)심 오이야 더욱 알다
션녁 방(宣力四方)은 신(臣子)의 직분(職分)이라
봉사미로(奉仕微勞) 일 것 전(全)혀 업다
젼후은포(前後恩褒) 화곤(華袞)도곤 빗나시니
이죄위영(以罪爲榮)은 디 더욱 망외(望外)로다
(姿色)도 업 내오 덕(才德)도 업 날을
무어 취(取)시며 무어 듕(重)히 녁여
언언(言言)이 쟝허(獎허)며 (事事)의 두호(斗護)샤
비박(菲薄) 이 몸을 다칠가 념(念)시니
엇그졔 만난 님이 졍의 닉듯서듯
님의 나 모르고 내 도 님 모르며
무 일 이대도록 견권(繾綣)미 곡진(曲盡)고
년(百年)을 로(偕老)며 이에셔 더손가
님의 은혜(恩惠) 이럭록 긔질(忌疾)은 더 심(甚)의
도(海島)도 하고 한 대 원악디(遠惡地) 골나내여
년형극(百年荊棘)을 츄도(楸子島)의 처음 여니
골육(骨肉)도 구시(仇視)거든 이야 니손가
니(行李) 다 리고 금오낭(金吾郞)을 기릴
엇더타 우리 묘군(卯君) 금능(金陵)의 원뎍(遠謫)니
문운(門運)도 건둔(蹇屯)고 가화(家禍)도 쳡쳡(疊疊)다
월남촌(越南村) 을밤의 긔회(期會)여 니별(離別)니
타향대침(他鄕對枕)은 이 님의 은혜(恩惠)
격샹망(隔海相望)은 경뇌(瓊雷)나 다 손가
니진항구(梨津港口)의 쥬즙(舟楫)을 뎡돈(整頓)야
동풍(東風)아 건 듯 불며 쌍범(雙帆)을 놉히 다니
챵파묘망(滄波渺望)며 물밧근 하일다
고도(孤島) 지졈(指點)니 흑(黑子)만 계유하다
시야쟝반(時夜將半)매 광풍(狂風)이 졉텬(接天)니
듕뉴실타(中流失柁)야 호흡(呼吸)의 위(危殆)
장년(長年)이 쇽슈(束手) 고 쥬듕(舟中)이 실(失色)니
묘연(渺然) 이 내 몸이 (死生)이야 관계(關係)랴
(再生)신 님의 은혜(恩惠) 듕도(中道)의 귀허(歸虛)가
감심(甘心)던 모든 원(願)을 오날 일워 줄가
경(經史) 묵숑(黙誦)고 녯람을 싱각니
부강(涪江)의 뎡슉(程叔子) 셩경(聖經)으로 득력(得力)고
쳥회(淸淮)의 댱방(張子房)은 튱신(忠信)으로 힘입으나
평(平生)을 졈검(占檢)니 이 공부 쇼여(工夫掃如)다
셕(採石)의 착월(捉月)던 니젹선(李謫仙)과 힘긔 놀 듯
샹슈(湘水)이 유명(有名)고 화복(禍福)이 텬(在天)나
젼위위안(轉危爲安)이 져근덧 이로다
(死生)이 유명(有命)고 화복(禍福)이 텬(在天)나
오날 사라남은 우리님 도으신가
동방(東方)이 긔(旣白)매 소고 낙범(落帆)야
셕긔(石磯)의 비 고 도듕(島中)의 드러가니
쵼낙(村落)이 쇼조(蕭條)하야 수십호 어가(數十戶漁家)로다
풍우(風雨) 무릅고 와실(蝸室)을 자드니
모(茅茨) 다니고 듁창(竹窓)의 무지(無紙)대
샹샹옥누(床床屋漏) 른대 전(專)혀업다
말만 좁은 방(房)의 조슬(蚤蝨)도 만흘시고
팔쳑 댱신(八尺長身)이 구버들고 구버나며
다리 서려 누워 긴밤을 새와나니
쥬듕(舟中)의 적신 의복 어늬 불의 뇌오며
일(一行)이 긔갈(飢渴)들 무어로 구손고
탁(行槖)을 어내니 수두미(數斗米) 이로다
쥭(白粥)을 어 내여 둘너안쟈 요긔(療飢)하고
복물(卜物)도 도박(到泊)을 일야(日夜)로 바라더니
여(餘厄)이 미딘(未盡)야 듕양(中央)의 치패(致敗)니
만여(萬事餘生)이 라나미 다(多幸)나
결활(結活)이 무(無策)니 어이아 지보(支保)고
십쟝형니(十丈荊檷) 면(四面)의 둘너치고
구만니 댱텬(九萬里長天)을 뎡듕(井中)의 라보
듀야(晝夜)의 들니니 도(海島)와 풍(盲風)이오
됴모(朝暮)의 섯두니 댱무(獐霧)와 만우(蠻雨)로다.
셔식(褄息)을 미뎡(未定)여 냥질(兩姪)을 니별(離別)
댱부(丈夫)의 일촌간장(一村肝腸) 냥항누(兩行淚)를 금(禁)소냐
남관(藍關)의 별손(別孫)던 한니부(韓吏夫)의 정경(情境)이오
월강(越江)의 송뎨(送弟)던 뉴후(柳子厚)의 회포(懷抱)로다
압숑관(押送官) 별(拜別)야 님계신 대 도라가니
경경(耿耿) 일단심(一丹心)이 다시곰 새로워라
가을이 졈졈(漸漸)깁고 회(客懷) 뇨락(蓼落)대
송옥(宋玉)의 비추부(悲秋賦) 초셩(草聲)으로 놉이 읇고
뉴박이(柳朴二客)을 쵸쵸(悄悄)히 상대(相對)야
용슬수간옥(容膝數間屋)을 초창(草刱)믈 경영(經營)
도듕(島中)의 모든 셩9百姓) 딘심(盡心)여 완역(完役)니
번토운와(燔土運瓦)던 챵화현풍속(昌化縣風俗)일다
제도(制度) 추익(湫익)나 거처(居處) 쇼쇄(簫서)다
언앙굴신(偃仰屈身)미 이졔야 죠안(粗安)다
감군은삼(感君恩三字)를 벽샹(壁上)의 대셔(大書)고
망미헌(望美軒) 편(扁額)은 도듕(島中)의 뉘 모르리
죵일폐호(終日閉戶)고 쥬셔(朱書) 파열(披閱)니
의리무궁(義理無窮)을 늙게야 다
됴작(鳥鵲)은 본 업고 오연(烏鳶)만 적괴며
어두귀면(魚頭鬼面) 로한(逋漢)이 만나보니
야록(野鹿)의 셩졍(性情)이로 만(貉蠻)의 어음(語音)일다
샹대(相對脈脈)야 무 말을 슈작(酬酌)고
엄동(嚴冬)이 깁허지고 뉵디(陸地) 못 통(通)니
냥식(糧食)도 핍졀(乏絶)거든 반찬(飯饌)이야 의논(議論)며
염쟝(鹽藏)을 못먹거든 어육(魚肉)이야 랄소냐
도듕 슈십니(島中數十里)의 일년초(一年草) 희한(稀罕)다
됴셕(朝夕)밥 못닉일 졔 방(房) 덥기 각가
졍뎌대명일(正朝大名日)의 소(素)국의 을 쑤어
갯물의 저린 샹찬(上饌)으로 올나시니
어와 이 경샹(景像)은 (生來)의 처엄보내
츈풍 도리화(春風桃梨花)야 못보다 관계(關係)랴
을이 다 딘(진(盡))토록 국화(國花) 못보거든
낙모가졀(落帽佳節)의 츅신(逐臣)을 뉘 우시며
녕균(靈均)이 여긔 온들 무어로 셕찬(夕餐)고
삼하(三夏) 열딘(閱盡)고 고황(苦況)을 포긱(飽결)니
염증(炎症)도 그지업고 비습(卑濕)도 심(滋甚)다
승예문(蠅蚋蚊盲)은 (百) 가지로 지지고
샤갈오공(蛇蝎蜈蚣)은 벽(四壁)의 죵횡(縱橫)니
일도 흥황(興況) 헙고 악(百惡)만 구비(具備)다
샹인물(傷人害物) 것 셰샹(世上)의 하도 할샤
듕야(中夜)의 이 업겨 옹금(擁衾)고 니러안쟈
신셰(身勢) 탄(自歎)고 핑(平生)을 무렴(撫念)니
고로(孤露) 이 내 몸이 셩(子姓)도 업슨내오
쟝(瘴海)의 병(病)이 든들 구호(救護)리 뉘 이시며
반계(盤溪)예 녯 폐려(蔽慮) 뷔여신들 뉘 딕힐고
셔텬권(賜書千卷)을 고각(高閣)의 못거시니
두셔튱(蠹書虫) 다 먹은들 긔 누라셔 포쇄(暴洒)며
평쳔쟝(平泉庄) 만원화(滿圓花)랄 젼벌(前伐)들 뉘 금(禁)고
쳔하(天下)의 무고(無辜)니 나밧긔 이실가
쥬문왕(周文王) 티기(治岐) 졔 인정(仁政)을 베프시면
가련(可憐) 이 내 몸이 반드시 몬져 들너
뎐디간(天地間) 독닙(獨立)야 방(四方)을 둘너보니
우리님 아니시면 눌을 다시 의지고
시운(時運)이 불(不幸)야 쳔니(千里)의 나시니
내 신셰고혈(身勢孤孑) 줄 님이 모르실가
긴매 들고 안쟈 녯 건앙(愆殃)을 녁슈(歷數)니
우직(愚直)기 본셩(本性)이오 광망(狂妄)도 내 좨오나
근본(根本)을 각니 님 위(爲) 정셩(精誠)일
일월(日月)튼 우리 님이 거위 아니 조림(照臨)가
셩(生成)신 이 은혜(恩惠) 결쵸(結草)기 긔약(期約)나
협(莢笥)의 츄퓽선(秋風扇)이 어 날 다시 날고
쳥신(淸晨)의 혼 누어 두음(白頭吟)을 슬피 읇고
황금(黃金)을 못어드니 댱문부(長門賦)를 어이 사리
지하(지荷)로 오 짓고 부용(芙蓉)으로 치마 지어
협듕(峽中)의 두어신들 눌 위(爲)흐야 단장(粀)고
고국(故國)의 도라갈 벽(碧海) 문이 고
옥누(玉樓) 놉흔 곳의 야야(夜夜)의 님을 뫼셔
일당우불(一堂旴拂)의 슈답(酬答)이 여향(如響)니
전셕(前席)의 문귀(問鬼)던 가부(賈太傅) 이갓가
어촌원계셩(漁村遠溪聲)이 긴을 르니
우리 님 옥음(玉音)은 이변(耳邊)의 완연(宛然)고
우리 님 어로향(御爐香)이 의슈(衣袖)의 품여계라
어날 이 내 을 진즛것 삼을손가
왕셔긔지(王庶幾改之) 여일망지(餘日望之)노라
## 속사미인곡(續思美人曲) 현대어 번역:
삼 년을 임을 떠나 해도에 유배되니 내 언제 무심하여 임에게 죄 얻었나.
임이 언제 인정이 박하여 내게 대접을 거칠게 하셨는가.
내 얼굴 고왔던지 모든 여자 질투로다.
인품 있는 이 내 몸을 음란하다 이르로쇠.
서하에서 잠시 쉬고 수레 타고 돌아오니 봉황성에 다다르니 고국 소식 놀랍구나.
황혼녘에 옛 약속을 다시 거의 찾았으나 모함이 망극하니 임이신들 어이할까.
저자에 호랑이 있다 의심하게 말 만들고 증모는 거짓말에 베틀을 던졌음이라.
우리 임 날 믿는 것을 세상에 뉘 비할까.
비방하는 문서들은 상자 속에 가득 두고 함정에서 건저 내어 좋은 땅에 귀양 보내니 구연성에서 노숙하고 압록강을 바삐 건너 성초에서 내려지고 초교에 몸을 실어 청천강 삼일우에 정삼이 다 젖었으니 별뜬 밤에 빨리 달려 패수를 건너올새 세상의 기쁜 소식 어딘가서 들었구나.
서울 근처로 압송함은 고금에 첫 일이요, 아들과 조카가 함께 제수되니 특별한 은혜가 거듭되었구나.
박명한 이 내 몸에 임의 은혜 이러하니 여관의 흐릿한 등에 피눈물이 절로 난다.
금오리 김택귀를 벽제에서 만나보고 선산에 잠깐 들러 통곡하여 이별하고 성 서쪽의 옛집의 사당을 하직하니 가깝고 먼 친척들과 손잡고 이별할새 함께 하던 옛 친구들은 눈앞에 드물도다.
가는 길이 험하여 여유가 없으니 잠시인들 오래 머물 것이런가.
관악산 십 리쯤의 선산에서 하루 쉬고 천릿길 행장을 급하게 차려갈 새 종남산을 바라보니 오색구름 아름답고 의릉을 바라보니 솔 잣나무 푸르구나.
외로운 신하 원통한 눈물 한강에 가득 뿌려 임 향한 한조각 마음 참고 참아 떠나가니
내 마음 이러할 제 임인신들 잊을 손가.
호남길 가려 잡아 노령에 올라 쉬어 북쪽을 돌아보고 두세 번 탄식하니 뜬구름이 하늘 막아 서울 땅을 못 보겠다.
금성산 바라보고 귀양지에 찾아가니 남도의 큰 마을 좋은 땅을 처음 보네.
주인 정사군이 마주 나와 반겨하니 거처도 과분하고 의식도 염려 없다.
그물처럼 벗겨진 몸 이곳에서 편히 쉬니 갈수록 임의 은혜 곳곳마다 망극하다.
재상들은 나를 죽이려 하려는지 재앙을 일으키려 티격티격 다투오니 큰 형벌이 내려질 듯 아침저녁 위급할새 먼 섬으로 유배 보내 가시나무 둘러치고 여러 사람 노여움을 막으시니 끝내 간곡하심을 오늘 더욱 알겠노라 사방으로 힘을 씀은 신하된 자 직분이라.
봉사하는 작은 수고 말할 것이 전혀 없다.
안팎으로 베푼 은혜 천자보다 빛나시니 죄가 도리어 영화 되니 이 더욱 다행이라.
고운 얼굴 없는 나요, 재주도 없는 나를 무엇을 취하시며 무엇을 중히 여겨 말마다 너그럽고, 일마다 보호하셔 볼품없는 이 한 몸 다칠까 염려하시니 엊그제 만난 임이 마음은 오래된 듯 임의 뜻 나 모르고 내 뜻도 임 모르며 무슨 일 이토록 잊히지 않음이 간곡한고.
백년을 해로한들 이보다 더하겠나.
임의 은혜 이럴수록 미워함이 더 심하여 많고 많은 해도 중에 가장 먼 곳 골라내어 한평생 고통스런 추자도를 처음 여니 가족도 두려워하는데 남이야 이를 손가.
행장을 다 차리고 금부도사 기다릴새 어찌하여 우리 아우 금릉에 귀양하니 가문 운이 꽉 막히고 가문 화도 첩첩하다.
월남촌 가을밤에 다시 만나자 이별하며 타향에서 베개를 마주하고 누웠으니 이 또한 임의 은혜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게 됨은 심한 천둥과 다를 손가.
이진 항구에서 배와 삿대 정돈하여 동풍이 건듯 불 때 쌍을 높이 다니 푸른 파도 아득하며 물 밖은 하늘이네.
외로운 섬 가리키니 겨우 바둑돌이라.
바야흐로 깊은 밤에 광풍이 하늘에 닿아 바다에서 키를 잃고 호흡이 위태할새 선장은 속수무책 배 안에서 실색하니 아득한 이내 몸이 죽고 산들 관계하랴.
다시 살게 하신 임의 은혜인데 중간에서 헛되이 돌아가랴.
책망을 달게 받으려던 모든 소원 오늘날 이루려고
경사를 암송하고 옛사람을 생각하니 부강에서 살았던 정숙자는 정성과 공경으로 깨달아서 힘을 얻고 청회의 장자방은 충신으로 힘입었으니 평생을 점검하니 이 공부 남지 않았네.
채석에서 달을 잡던 이적선과 함께 놀 듯 상수에서 투신하던 굴삼여를 거의 볼 듯 배 창문에 의지하여 옷깃을 바로 하고 천명을 기다릴새
한 조각 나무 얻어 연장으로 고쳤더니 위험이 편안해지니 잠시 사이로다.
죽고 삶이 명에 있고 화복은 하늘에 있어 오늘날 살아남은 우리 임이 도우신가.
동쪽이 밝아오매 소리하고 을 내려 석기에 배를 매고 섬 가운데 들어가니 마을이 쓸쓸하니 수십 호 어가로다.
비바람 무릅쓰고 초라한 집 찾아드니 지붕은 다 날리고 대창에 창호지 없고 평상은 모두 젖어 마른 데 전혀 없다.
한 말 크기 좁은 방에 이와 벼룩 많을시고.
팔 척의 큰 키가 굽어 들고 굽어 나며 다리를 세워 누워 긴 밤을 새우나니 배 안에서 젖은 의복 어느 불에 말리오며 일행이 굶주린들 무엇으로 구할 손가 행탁을 떨어내니 쌀 몇 말뿐이로다.
흰 죽을 쑤어내어 둘러앉아 요기하고 복물선도 도착하기 밤낮으로 바라더니 남은 액이 다하지 않아 바다에서 실패하니 죽을 고비 만 번 넘겨 살아남아 다행하나 살 방법에 대책 없으니 어이하여 지탱하고 열 길이나 가시 울타리 사면에 둘러치고 북쪽에 구멍 두어 물길을 겨우 내니 아득히 높고 먼 하늘 우물에서 바라보듯 밤낮으로 들리나니 바닷물결 급한 바람 아침저녁 일어나니 독한 안개 거친 비라.
살 곳을 정하지 못해 두 조카를 이별할새 장부의 한 조각 간장을 태우나니 흐르는 두 줄기 눈물을 금할 소냐.
남관에서 손자와 이별하던 한유의 모습이요, 월강에서 아우를 보내던 유종원의 회포로다.
압송관이 이별하며 임 계신 데 돌아가니 염려되던 충성심이 다시금 새로워라.
가을이 점점 깊고 객의 회포 쓸쓸한데 송옥의 비추부를 초가로 높이 읊고 유씨 박씨 두 손님을 근심으로 상대하여 무릎이나 겨우 움직일 수 칸 작은 집을 처음으로 집 짓고자 다스릴 새 섬 안의 모든 백성 진심으로 일을 끝내니 흙 이기고 기와 나르던 창화현의 풍속이라.
격식은 못 갖췄어도 거처는 깨끗하다.
몸을 맘대로 움직임이 이제야 편안하다.
감군은 세 글자를 벽 위에 크게 쓰고 망미헌 편액을 섬 안에서 뉘 모르리.
종일 문을 닫아걸고 주자학 책 펼쳐보니 이치가 무궁함을 늙게야 깨달았다.
새와 까치 본 데 없고 까마귀 솔개 지저귀며 흉하게 생긴 얼굴 어부들을 만나보니 들사슴의 성정이요, 오랑캐 말소리로다.
상대하기 답답하니 무슨 말로 수작할꼬.
추운 겨울 깊어지고 육지와 통하지 않아 양식도 떨어지니 어찌 반찬 의논하며 소금장도 못 먹거든 생선이야 바랄 소냐.
섬 안 수십 리에 풀들도 희한하다.
조석 밥 못 익힐 제 방이 덥기 생각할까.
정월 대명절에 소국에 떡을 쑤어 갯물에 절인 배추 명절 음식으로 올리니 어화, 이 모양은 태어나서 처음 보네.
봄바람에 도리화야 무엇보다 관계하랴.
가을이 다 지나도록 국화를 못 보거든 모자 날리는 아름다운 중양절에 쫓겨서 귀양 간 신하 뉘 울고 있으며 영균이 여기 온들 무엇으로 만찬할꼬 여름 석 달 책 다 읽고 쓴맛을 겪었으니 찌는 더위도 그지없고 축축함도 더 심하다.
파리 쉬파리 모기 등애 백 가지로 쏘고 있고 뱀 전갈 지네들은 네 벽에서 기어 다니니 한 가지도 흥겹지 않고 모든 악만 갖추었다.
사람을 상하게 하고 물건을 해치는 것 이 세상에 많기도 많구나.
한밤중에 잠이 없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일어나 앉아 신세를 한탄하고 평생을 생각해보니 외로운 이내 몸이 자손도 없는 게오.
바다에서 병이 든들 구호할 이 뉘 있으며 반계의 쓰러진 옛집 비었던들 뉘 지킬꼬.
하사받은 서적 천 권 고각에 묵혀 있으니 좀벌레 갉아먹는들 그 뉘라서 말릴 것이며 평천장에 가득한 꽃 잘라간들 뉘 금할꼬.
천하에 죄 없는 이 나밖에 또 있을까.
주문왕이 기산을 다스릴 제 어진 정치 베푸시면
가련한 이내 몸이 반드시 먼저 들려니 천지간에 홀로 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우리 임 아니시면 누구를 다시 의지할꼬.
시운이 불행하여 천 리에 떠나시니 내 신세 외로운 줄 임이 모르실까.
긴 소매 들고 앉아 내 허물을 헤아리니 우직함이 본성이요, 망령됨도 내 죄이나 근본을 생각하니 임 위한 정서 일새.
일월같은 우리 임이 거의 아니 굽어볼까.
나를 살게 하신 임의 은혜 결초보은 하기를 기약하나 광주리의 가을 부채 언제 다시 나오려나.
맑은 새벽 혼자 누워 백두음을 슬피 읊고 황금을 못 얻으니 장문부를 어이 사리.
마름으로 옷을 짓고 연꽃으로 치마 지어 상자 안에 두었던들 누굴 위해 단장할꼬.
고향으로 돌아갈 꿈 해를 문이 밟고 옥루 높은 곳에 밤마다 임을 모셔 집을 울리는 탄식 소리 울리는 듯하니 귀신을 근본 묻던 가태부 이 같을까.
어촌의 먼 닭 소리 긴 잠을 깨우노니 우리 임 옥음은 귓가에 뚜렷하고 우리 임 어로향을 옷소매에 품었어라.
어느 날 이내 꿈을 참된 것으로 삼을 손가.
두어라. 임이 이를 고치기를 원하노니 날을 예정하고 이를 바라노라.

# perspectives
시 분석 및 정보
시인 인터뷰 및 프로필
이진유 시인에 대한 직접적인 인터뷰 자료는 제공된 검색 결과에 없습니다. 그러나 유사한 시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시인의 창작 과정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시인의 개인적 경험과 창작 과정
이진유 시인의 구체적인 경험은 검색 결과에 나와있지 않지만, 다른 예술가들의 경험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시 관련 뉴스 및 최신 정보
이진유의 <속사미인곡>과 직접 관련된 최신 뉴스는 없지만, 한국 현대 시단의 동향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 황인찬 시인은 아이돌 그룹의 노래 가사를 쓰고, 강연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5.
- 한국 현대 미술계에서는 이진주 작가의 개인전 "비좁은 구성 Part 2"가 2023년 8월 31일부터 2024년 7월 7일까지 열리고 있습니다6.
멀티미디어 자료 조사 및 설명
<속사미인곡>과 직접 관련된 멀티미디어 자료는 검색 결과에 없지만, 관련 예술 작품들을 통해 시의 분위기를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 이진주 작가의 전시 "비좁은 구성"은 일상의 상징적 물건들이나 기억의 파편들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현실에 기반한 낯선 풍경을 만들어냅니다6.
- 이진우 작가의 작품은 전통 한국 미학에 깊이 몰입하여 철학적 탐구와 예술적 직관으로 만들어집니다. 그의 작품은 관객의 의식에 명상에 가까운 상태를 유도하려 합니다7.
이러한 시각 예술 작품들은 <속사미인곡>의 서정적이고 명상적인 특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 및 문화적 배경
시의 역사적 배경
이진유의 <속사미인곡>은 1727~1728년경 영조 초기에 창작되었습니다7. 당시는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시기였습니다. 경종이 사망하고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이 정권을 장악했고, 이에 따라 소론 계열이었던 이진유는 정치적 보복의 대상이 되었습니다7.
이진유는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체포되어 나주를 거쳐 추자도로 유배되었습니다7. 이 작품은 그의 3년간의 유배 생활 중에 지어졌으며, 당파 싸움으로 인한 개인적 비극과 함께 당시의 정치적 혼란을 반영하고 있습니다1.
그 당시 한국인의 관점에서 본 해석
당시 한국인들에게 이 작품은 정치적 격변기의 희생자가 느끼는 억울함과 연군지정(戀君之情)을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하던 시대에 충(忠)이라는 덕목은 매우 중요했으며,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여성의 목소리를 빌려 표현하는 것은 문학적 관례였습니다2.
또한 이 작품은 당시 사대부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미인곡' 계열의 가사 전통을 잇는 것으로 인식되었을 것입니다. 정철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의 영향을 받아 창작되었다는 점에서, 문학적 전통의 계승으로도 여겨졌을 것입니다26.
현대 한국인의 관점에서 본 해석
현대 한국인들은 이 작품을 조선 후기 정치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역사적 자료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당파 싸움의 폐해와 그로 인한 개인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7.
또한 언어학적 관점에서 이 작품은 한글 문학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시로 여겨집니다. 양반 계층에서 한글로 문학 작품을 창작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문자 생활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습니다7.
현대 미국인의 관점에서 본 해석
미국인들은 이 작품을 통해 동양의 정치 문화와 문학 전통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정치적 갈등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과정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성의 목소리를 빌려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서구의 페미니즘 문학 이론과 연결 지어 해석될 수 있습니다. 권력 구조 속에서 소외된 목소리를 대변하는 문학적 장치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10.
마지막으로, 유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창작된 문학 작품이라는 점에서, 억압적 환경 속에서 피어나는 예술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영향력 분석
이 시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 충절과 의리의 가치 재고: <속사미인곡>은 정치적 격변기에 충절을 지키는 선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현대인들에게도 신념과 가치관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1.
- 역경 극복의 교훈: 작품에 드러난 유배 생활의 고난과 그 극복 과정은 현대인들에게 삶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과 지혜를 제공합니다3.
- 언어 표현의 풍부화: 순우리말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이 작품은 현대 한국어의 표현력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4.
이 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통찰
- 정치와 개인의 관계: 개인의 운명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1.
- 충성의 다면성: 임금에 대한 충성이 단순한 복종이 아닌, 깊은 애정과 존경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드러냅니다2.
- 고난의 승화: 유배라는 극한의 상황을 예술로 승화시킨 점에서, 역경을 창조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3.
이 시가 현실 세계를 반영하는 방식
- 정치적 현실의 은유: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남녀 간의 사랑으로 표현함으로써, 당시의 복잡한 정치적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2.
- 유배 생활의 사실적 묘사: 추자도에서의 고단한 삶을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당시 유배 정책의 가혹함을 드러냅니다4.
- 사회 변화의 징후: 양반 사대부가 한글로 작품을 창작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문자 생활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습니다4.
이 시의 영향력이 미친 분야
- 문학: 연군가사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개인의 경험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후대 문학에 영향을 미쳤습니다5.
- 역사 연구: 조선 후기 정치사와 유배 제도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3.
- 교육: 현재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어, 학생들의 고전 문학 이해와 역사 의식 함양에 기여하고 있습니다4.
자주 묻는 질문과 답변
Q: <속사미인곡>의 '임'은 누구를 가리키나요?
A: '임'은 표면적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실제로는 작자가 충성을 바치는 임금을 상징합니다2.
Q: 이 작품이 한글로 쓰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조선 후기에 들어 한글 사용이 확대되면서 양반층에서도 한글 창작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더 넓은 독자층에게 자신의 심정을 전달하고자 했던 작자의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4.
Q: <속사미인곡>과 정철의 <사미인곡>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A: <속사미인곡>은 <사미인곡>에 비해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더 직설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배지에서의 구체적인 생활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5.
추가 정보
핵심 용어 및 어려운 용어 설명
- 유배(流配): 죄인을 일정 기간 동안 먼 곳으로 보내 살게 하는 형벌
- 연군지정(戀君之情):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
-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 충신이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글
- 사미인곡(思美人曲): 정철이 지은 가사로,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한 작품
- 위리안치(圍籬安置): 죄인을 가시나무로 울타리를 둘러 가두어 놓는 형벌
시 제목의 의미 및 설명
속사미인곡(續思美人曲)
- 속(續): 이어서, 계속해서
- 사(思): 생각하다, 그리워하다
- 미인(美人): 아름다운 사람, 여기서는 임금을 비유
- 곡(曲): 노래
"미인(임금)을 그리워하는 노래의 후속작"이라는 의미로, 정철의 <사미인곡>을 계승하여 지은 작품임을 나타낸다.
한자어 단어별 설명
- 사(思): 생각하다, 그리워하다. 여기서는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다.
- 미인(美人): 글자 그대로는 '아름다운 사람'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임금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곡(曲): 노래나 악곡을 의미한다. 가사 문학의 전통에서 '곡'이 붙은 작품들은 대개 노래로 불렸음을 시사한다.
이진유는 이 제목을 통해 자신의 작품이 정철의 <사미인곡>의 전통을 잇고 있음을 명확히 하면서, 동시에 유배 중인 자신의 처지에서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주요 지역과 역사적 사건
서하(西河)
봉황성(鳳凰城)
- 고구려의 중요한 성곽 중 하나로, 요동반도 동남부의 전략적 요충지2
- 1642년 조선 인조 때 이경석, 김상헌 등이 청나라에 의해 1년간 구금된 장소2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근거지 역할2
압록강(鴨綠江)
청천강(淸川江)
패수(浿水)
관악산(冠岳山)
- 1839년 기해박해 당시 순교한 프랑스 신부들의 무덤이 있던 삼성산 성지가 위치12
종남산(終南山)
- '종남산 지름길'이라는 고사성어의 배경이 된 산으로, 출세와 영달의 상징13
의릉(懿陵)
이 지역들은 대부분 한국과 중국의 역사적 관계, 조선 왕조의 통치, 그리고 유배 경로와 관련된 중요한 장소들입니다. 작품에서 이 지역들을 언급함으로써 작가의 여정과 심정을 더욱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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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3 - [문학 (Literature)] - List) 기행가사 목록: 시대의 반영과 감정의 표현
List) 기행가사 목록: 시대의 반영과 감정의 표현
기행가사 목록 일부 :백광홍, , 1556년정철, , 1580년조우인, , 1617년경조우인, , 1623년경송주석, , 1675년작자미상, , 1694년박권, , 1695년노명선, , 1698년경권섭, , 1704년위세직, , 1707년 이전이진
sosohantry.tistory.com
# ref.:
http://www.davincimap.co.kr/davBase/Source/davSource.jsp?job=Body&SourID=SOUR001989
https://newmoun.tistory.com/1030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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