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이별, 그리고 시작>
1장: 우리들의 소소한 추억
은서는 운동장의 끝에 서서 바람을 맞았다. 졸업식 준비로 친구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들뜬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은서는 그런 소란스러움을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는 언제나처럼 작은 공책이 들려 있었다. 친구들과의 마지막 시간이 될지 모르는 이 순간들을 기억해두고 싶었다.
멀리서 지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은서야! 거기 서서 뭐해? 얼른 와!”
지윤은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은서를 손짓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녀의 밝은 미소는 마치 태양처럼 반짝였다.
은서는 걸음을 옮기며 미소를 지었다. “도와줄 거라도 있어?”
“도와줄 건 당연히 있지! 의자 정리, 그리고 민혁 잡기.”
“민혁?” 은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윤은 고개를 돌려 운동장 끝 한쪽을 가리켰다. 민혁은 혼자 앉아 작은 노트를 펼쳐 놓고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운동장에 모인 다른 친구들과는 딴판으로, 그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연구였다.
“아, 저 오만한 천재. 또 자기 세상 속에 빠졌네.” 지윤이 혀를 찼다.
“내가 가서 부를게.” 은서는 말없이 민혁 쪽으로 걸어갔다.
민혁의 세상 속
“민혁아.”
은서가 부르자, 민혁은 깜짝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반짝이는 그의 눈이 은서를 응시했다.
“어? 아, 미안. 또 정신이 없었네.”
민혁은 노트를 덮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무슨 연구 중이야?”
“간단한 실험 계획. 고등학교 졸업했으니 이제 더 큰 걸 해봐야지.”
“좋은 자세네. 근데 졸업식 준비는 안 할 거야?”
은서의 물음에 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연구도 중요하지만, 너희도 내 우선순위에 들어가니까.”
민혁의 말에 은서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에게는 과학이 우선이었지만, 그럼에도 친구들에 대한 애정은 그의 말 속에 스며 있었다.
동준의 리듬
민혁과 함께 운동장으로 돌아오자, 기타 선율이 들려왔다. 동준이 운동장 가장자리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었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했다.
“동준아, 그 곡 뭐야?” 은서가 물었다.
“즉흥곡. 졸업식에서 부를 곡을 연습하는 김에 만들어봤어. 제목은 ‘안녕, 빛나는 날들’ 어때?”
“완전 네 스타일이야.” 민혁이 작게 웃었다.
“너무 뻔하지 않아?” 지윤이 장난스럽게 소리쳤다. “다음엔 더 신나는 걸로 만들어봐!”
“신나게? 알았어. 졸업식 당일에 진짜 폭발적인 곡을 들려줄게!” 동준은 기타를 한 번 튕기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은서의 시선 속 친구들
은서는 그 순간을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민혁의 진지함, 지윤의 밝은 에너지, 동준의 자유로운 영혼. 그들은 서로 너무 달랐지만, 함께 있으면 어딘가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이렇게 다들 빛나는데, 난 왜 항상 그림자처럼 느껴질까?’
은서는 조용히 생각했다. 그녀는 항상 관찰자였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자신은 그들 사이에 섞이지 못한 채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곧 졸업이었다. 이 시간이 지나면 각자 다른 길로 떠날 것이었다. 은서는 이 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었다. 마지막이라면, 조금 더 용기를 내보고 싶었다.
졸업식 리허설을 마치며
“자, 리허설 끝! 다들 졸업식 때는 이대로만 하면 완벽할 거야!”
지윤이 손뼉을 치며 외쳤다. 모두가 지친 듯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은서는 친구들 사이에서 조용히 앉아 그들을 바라보았다. 문득, 졸업 연설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공책이 들려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친구들에게, 선생님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은서는 고개를 들고 석양에 물든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붉은 빛 속에서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작게 속삭였다.
“내일은… 달라져야겠지.”
2장: 졸업식과 새로운 결심
졸업식장의 아침
졸업식 당일 아침. 은서는 긴장된 마음으로 교복 매무새를 다듬었다. 깨끗이 다려진 셔츠와 교복 치마는 평소보다 딱 맞게 느껴졌다.
책상 위에는 밤새 고쳐 쓴 연설문이 놓여 있었다. 여러 번 읽고 지운 흔적이 남아 있는 종이는 구겨진 부분도 많았다.
“다 준비했어?”
엄마가 방 문턱에 서서 물었다. 은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준비됐어.”
“떨릴 수도 있지. 그래도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돼.”
엄마의 말에 은서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긴장감을 삼키며 연설문을 가방에 넣었다.
졸업식장의 소란
학교 강당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학생들은 교복 위에 학사모를 쓰고 있었고, 부모들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은서는 무대 뒤에서 친구들과 함께 서 있었다. 지윤은 친구들과 재잘거렸고, 민혁은 손목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동준은 기타를 들고 연습하듯 손가락을 움직였다.
“준비됐어?” 지윤이 은서에게 물었다.
“아마도…” 은서는 불안한 듯 대답했다.
“걱정 마! 넌 항상 잘해. 이번에도 그럴 거야.” 지윤은 자신 있게 말했다.
무대 위의 떨림
“다음은 졸업생 대표, 은서의 졸업 연설입니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졌다. 은서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무대 위로 걸어갔다. 관객석에 앉아 있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얼굴이 보였다. 한 명 한 명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연단 앞에 선 은서는 손에 든 연설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이 살짝 떨렸다.
‘괜찮아. 준비한 대로 하면 돼.’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원고를 읽는 걸로는 부족해. 네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해.’
은서는 손에 든 연설문을 천천히 접어 옆으로 밀어두었다. 강당은 점점 더 조용해졌다.
“안녕하세요. 저는 졸업생 대표, 은서입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졌다.
솔직함으로 전하는 이야기
“솔직히 말하면, 제가 이 자리에서 무언가를 말하는 게 아직도 두려워요.”
은서는 잠시 침을 삼키며 말을 이어갔다.
“1학년 때, 저는 발표를 망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제 모습은 너무 초라했고, 사람들 앞에 다시 서는 게 무서웠어요.”
강당 안은 침묵에 잠겼다. 은서는 관객석의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민혁이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지윤은 은서를 응원하듯 미소 짓고 있었다.
“하지만 저는 그 이후로 깨달은 게 있어요. 그때의 실패가 제게 무엇보다 큰 가르침이 되었어요. 그 순간은 정말 힘들었지만, 제게는 항상 곁에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민혁은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제가 더 나아지도록 도와줬고, 지윤은 언제나 유쾌한 농담으로 저를 웃게 했어요. 동준은 기타로 제 마음을 위로했죠.”
은서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서서 말하고 싶어요. 제 실패를 넘어설 수 있게 도와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고요.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가더라도, 여기서 함께한 이 시간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줄 거라고 믿습니다.”
박수와 안도의 순간
은서가 마지막 말을 끝내고 고개를 숙이자, 강당 안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러나 이내 커다란 박수 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 선생님들,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이 모두 기립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은서는 눈가가 살짝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녀는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지윤이 먼저 그녀를 향해 뛰어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와! 완전 감동이었어. 너 최고야!”
민혁과 동준도 다가와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민혁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은 연설이었어. 진심으로.”
“응, 진짜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했더라.” 동준도 웃으며 동의했다.
졸업식 후, 특별한 제안
졸업식이 끝난 뒤, 운동장 한가운데에 친구들이 모였다. 모두 졸업장을 손에 들고 있었고, 동준은 기타를 메고 있었다.
“이제 끝났다. 우리 뭐 할까?” 지윤이 활짝 웃으며 물었다.
은서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우리 여행 갈래?”
“여행?” 모두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응, 졸업 기념으로. 마지막으로 우리 다 같이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보자.”
지윤이 먼저 손뼉을 치며 외쳤다.
“좋다! 완전 좋아! 어디로 갈 건데?”
“조용한 시골 마을로 가자. 특별한 건 없지만, 우리끼리만의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곳으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렇게, 그들의 특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3장: 여행의 시작과 신비로운 마을
여행의 출발
“출발!”
동준의 힘찬 외침과 함께 차가 움직였다. 친구들은 설렘에 들떠 짐을 챙기고 각자 자리에 앉았다. 지윤은 차 뒷좌석에서 스낵을 꺼내며 계속해서 재잘댔다.
“우리 이 여행에서 무조건 새로운 거 해봐야 해! 민혁, 너는 실험 얘기 금지!”
민혁은 조수석에 앉아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그럼 네 농담도 금지해야겠네.”
“뭐라고?” 지윤이 손을 들어 민혁을 향해 장난스럽게 주먹을 내질렀다.
은서는 조용히 운전석에 앉아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친구들의 목소리가 차 안에 가득했고, 차창 밖으로는 푸른 숲과 평야가 이어졌다. 이 순간은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은서는 순간적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
“은서야, 너무 진지해 보인다?”
동준이 반쯤 돌아보며 물었다.
“아니야. 그냥… 좋아서 그래. 우리 이렇게 같이 있는 거.”
그녀의 말에 차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가, 지윤이 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더 즐기자! 음악 틀어봐!”
예상치 못한 폭우
여행은 순조로웠다. 차 안의 음악과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점심 무렵,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비 오는 거 아니야?” 동준이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 오는 것 같긴 해. 괜찮겠지.” 민혁이 핸드폰으로 날씨를 확인하며 대답했다.
그러나 비는 점점 거세졌다. 굵은 빗줄기가 창문을 때렸고, 도로가 미끄러워졌다. 은서는 핸들을 꽉 잡으며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길이 미끄러워. 속도를 줄여야겠어.”
한참을 달리던 차가 작은 강가 근처에서 멈췄다. 빗물로 강물이 불어나 있었고, 다리 위는 물살에 휩쓸리는 듯 보였다.
“어떻게 하지? 다리를 건너야 목적지인데.” 은서가 물었다.
“위험해 보이는데.” 민혁이 다리를 살피며 고개를 저었다.
“근데 돌아가기도 늦었어. 이러다 밤에 길에서 헤매겠어.” 지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팀이 나뉘다
은서는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다른 길이 있는지 찾아보자. 두 팀으로 나뉘어서 둘러보고 다시 여기서 만나자.”
“좋아. 민혁, 동준, 너희 둘은 다리 반대쪽으로 가 봐. 지윤이랑 나는 주변을 더 살펴볼게.”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짐을 챙겨 움직였다.
팀 1: 은서와 지윤 – 신비로운 마을로
은서와 지윤은 강가를 따라 걸으며 다른 길을 찾았다. 빗줄기는 점점 약해졌고, 안개가 서서히 마을의 모습을 드러냈다.
“여긴 뭐지?”
지윤이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며 멈춰 섰다. 마을은 작고 조용했다. 오래된 돌집들과 나무 울타리들이 줄지어 있었다. 무엇보다 이상했던 것은, 그렇게 큰 비가 왔음에도 마을의 길이 전혀 젖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비가 안 온 것처럼 깨끗해…”
은서는 손끝으로 땅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그때, 한 노인이 그들 쪽으로 걸어왔다. 그는 길고 낡은 지팡이를 짚으며, 흰 수염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길을 잃었나 보구먼.”
노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네. 저희가… 여행 중인데 길을 잘못 들었어요. 여긴 어디인가요?” 은서가 물었다.
노인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낡은 지도를 내밀었다.
“이게 네가 찾던 길일지도 모르지. 때론 길을 잃어야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 법이란다.”
지윤이 지도를 받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지도는 낡고 바랜 종이에 점 몇 개 찍혀 있는 것이 전부였다.
“뭐야, 이게 길을 찾으라고 주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요!”
지윤이 항의하듯 말하자,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점은 항상 길을 알려준다. 네가 그것을 이어갈 수 있다면 말이야.”
팀 2: 민혁과 동준 – 강을 건너는 선택
반대편에서 길을 찾던 민혁과 동준은 강을 따라 올라갔다. 물살은 여전히 강했고, 그들이 찾던 새로운 다리는 보이지 않았다.
“다리를 찾을 수 없겠는데?” 민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냥 건너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러다 길에서 밤새겠어.”
동준이 물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민혁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위험해. 물살이 너무 빠르고, 잘못하면 떠내려갈 수도 있어.”
“그럼 네 방법대로 하자. 근데 네 판단이 맞아야 한다, 민혁.”
동준의 말에 민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우회로를 찾기 위해 길을 돌기 시작했다. 가파른 언덕과 미끄러운 길을 지나며, 민혁은 동준의 직관적인 선택에 점점 의지하기 시작했다.
“넌 대충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이상하게 길을 잘 찾아.”
민혁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감각이지. 너도 좀 배워라.” 동준이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밤의 재회
두 팀은 늦은 밤, 마을 입구에서 다시 만났다. 은서와 지윤은 마을에서 받은 지도를 꺼내 보였다.
“노인이 준 지도야. 뭔가 특별해 보이진 않지만, 이게 뭔가를 알려줄지도 몰라.”
민혁은 지도를 받아 들고 살펴보며 말했다.
“이 점들을 연결하면 어떤 패턴이 나올지 모르겠네. 한번 분석해 볼게.”
비가 그치고 별이 떠오르는 밤, 친구들은 마을 근처 작은 쉼터에 모여 다시 계획을 세웠다.
“내일은 지도를 따라가 보자. 뭔가 특별한 걸 찾을지도 몰라.” 은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4장: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며
이튿날 아침, 친구들은 지도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도에 찍힌 점들은 숲 속 깊은 곳을 향하고 있었고, 그 길은 뚜렷한 방향 대신 희미한 흔적처럼 보였다. 은서는 지도를 손에 들고 앞장섰고, 민혁은 한 발짝 뒤에서 주위를 살피며 걸었다.
“이거… 그냥 걷는 게 맞는 건가?” 동준이 불평하듯 말했다.
“노인이 준 지도야. 뭔가 의미가 있을 거야.” 은서가 대답했다.
“노인의 말이 좀 추상적이긴 했어.” 민혁이 중얼거리며 지도를 들여다봤다.
“‘길을 잃어야 새로운 길을 찾는다.’ 멋지긴 하지만, 이건 너무 막연하지 않나?”
“그러니까 네 과학으로 풀어봐, 천재님.”
지윤이 민혁을 놀리듯 말했다. 민혁은 대꾸하려다 입을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첫 번째 점: 흔적이 남긴 이야기
지도의 첫 번째 점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오래된 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공터였다. 중심에는 거대한 나무가 서 있었고, 나무의 밑동에는 오래된 흔적들이 새겨져 있었다.
“여기, 글씨 같은데?” 동준이 나무를 가리켰다.
은서가 가까이 다가가 보니, 거칠게 새겨진 글씨가 희미하게 보였다.
“‘여기에서 시작하라.’” 은서가 낮게 읽었다.
“뭘 시작하라는 거지?” 지윤이 물었다.
“아마도 우리 자신을 돌아보라는 뜻 아닐까?” 은서가 말했다.
그녀는 나무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여행이 단순한 여정이 아니라, 자신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하려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점: 갈등과 화해
다음 점에 도착하기 위해 친구들은 가파른 언덕을 올랐다. 길은 점점 더 험해졌고, 지친 기색이 하나둘 나타났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돼?” 지윤이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지도를 보면 곧 도착할 거야.” 민혁이 대답했다.
“그 말 네 번째 듣는 거 같아.” 동준이 투덜거렸다.
“너희 그만 좀 싸워. 지금 여기 있는 것도 쉽지 않잖아.” 은서가 중간에서 말했다.
“싸운다고? 난 그냥 얘기하는 거였는데.” 동준이 민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민혁은 멈춰 섰다. 그의 얼굴에는 평소 보기 힘든 감정이 묻어났다.
“내가 뭐든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말해. 동준, 넌 항상 내가 뭘 해도 불만인 것 같잖아.”
“그게 아니야.” 동준도 멈춰 서서 말했다. “난 네가 항상 너무 조심스러워서 답답했을 뿐이야. 근데… 너 없으면 이렇게 길을 찾아오는 것도 쉽지 않았겠지.”
민혁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신중한 건 맞아. 하지만 너의 직관도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걸 알아. 네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야.”
그들의 짧은 대화는 더 이상의 갈등을 막았다. 은서는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었다. 서로 다른 친구들이지만, 결국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세 번째 점: 서로를 이해하다
세 번째 점은 숲 속의 작은 호수였다. 친구들은 호수 근처에 앉아 숨을 돌렸다. 고요한 물결은 그들의 얼굴을 비추며 흔들리고 있었다.
“이 호수… 마치 거울 같아.” 지윤이 속삭였다.
“여기서 잠시 쉬자. 모두 너무 지쳤어.” 은서가 말했다.
지윤은 조용히 말했다. “사실, 나도 졸업 후가 두려워.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은서는 그녀의 손을 가볍게 잡으며 말했다.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처럼, 앞으로도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맞아. 나도 이런 내가 괜찮아졌으면 좋겠다.” 지윤이 웃으며 대답했다.
동준은 기타를 꺼내 조용히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민혁은 그 소리를 들으며 호수 표면을 응시했다.
“이 여행이… 정말 필요했나 봐.” 민혁이 작게 말했다.
은서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어.”
마지막 점으로 향하며
해가 지기 시작하자, 친구들은 지도의 마지막 점으로 향했다. 그곳은 언덕 위의 작은 평지였다. 평지의 한가운데에는 낮은 돌무더기가 있었다.
“여긴가 봐.” 은서가 말했다.
지윤은 돌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노인이 말한 게 이런 뜻이었을까? 우리가 서로에게 중요한 걸 깨닫는다는 거.”
민혁은 지도를 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우리가 기억할 장소가 될 거야. 시간 캡슐을 묻기에 완벽한 장소야.”
그날 밤, 친구들은 종이에 각자의 마음을 적어 넣었다. 그리고 시간 캡슐을 땅에 묻으며 약속했다.
“언젠가 다시 여기로 돌아오자.” 은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더 나은 우리가 되어 보자.” 민혁이 덧붙였다.
돌아오는 길, 은서는 멀리서 다시 한 번 언덕을 바라보았다. 캡슐이 묻힌 곳이 작게 보였다.
‘길을 잃는 것도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이었지.’
그녀는 조용히 속으로 읊조렸다.
5장: 강을 건너며 발견한 자신
언덕 위에서의 밤
시간 캡슐을 묻은 후, 친구들은 언덕 위에 자리를 잡았다. 불을 피우고 둘러앉은 그들 사이에는 조용한 감정의 여운이 흐르고 있었다. 바람은 부드럽게 불었고, 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했다.
“여긴 진짜 멋진 곳이네.” 지윤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우리가 다시 여기 올 때쯤엔 어떻게 변해 있을까?” 동준이 기타 줄을 튕기며 물었다.
은서는 주변을 둘러보며 조용히 말했다.
“아마 더 나아진 우리가 되어 있겠지.”
각자의 고백
불꽃이 사그라들 무렵, 은서가 입을 열었다.
“우리 다들 적은 거 한 가지씩 말해볼래? 시간 캡슐에 넣은 메시지.”
“오, 흥미롭네.” 지윤이 두 손을 들어 동의했다. “내가 먼저 할게.”
지윤은 고개를 살짝 젖히며 웃었다.
“나는 이렇게 적었어.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를 두려워하지 말 것.’ 미래가 두려웠지만, 여기서 깨달았어. 우리가 이렇게 앞으로 걸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지윤답다.” 은서가 부드럽게 말했다.
동준은 기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음악이 내 길임을 믿으라’고 적었어. 사실… 음악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그냥 좋아하는 것뿐인지 계속 고민했거든. 근데 여기 오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더라. 좋아하는 거라면 계속해야지.”
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민혁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 것’이라고 적었어.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게 많았거든. 실패를 두려워하다가 중요한 걸 놓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
그의 말에 동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천재님, 이제부터 실험도 더 크게 하시는 건가요?”
“크게 말고 더 깊이.” 민혁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은서가 말했다.
“나는 ‘지금의 나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적었어. 내가 자주 과거에 발목 잡히는 타입이라, 지금의 내가 괜찮다고 믿고 싶었어.”
그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마지막 밤의 선율
동준은 기타를 다시 들고 천천히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여행 중 만들어둔 곡이었다.
“이 곡 제목은 아직 없는데, 아마 우리 이야기라고 해야겠지.”
그는 멜로디를 이어갔고, 친구들은 조용히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은서는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 이렇게 함께 있는 게, 우리 인생의 길 중 하나인 것 같아. 잊지 말자.”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지윤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여행의 끝과 각자의 길
며칠 뒤, 여행은 끝이 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지만, 친구들 사이에는 새로운 다짐이 생겼다.
“우리 약속 잊지 말자. 이곳에 다시 모이기로 한 거.” 지윤이 손을 내밀었다.
“물론이지.” 민혁이 손을 겹쳤다.
“그땐 더 멋진 이야기를 가져오자.” 동준이 말했다.
“그리고 더 성장한 우리가 되자.” 은서가 덧붙이며 웃었다.
각자의 길로
은서는 첫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원고를 다듬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이 여행에서 느낀 것들, 친구들과 함께한 순간들을 담고 있었다.
민혁은 연구소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법을 배웠다.
지윤은 NGO 활동에 참여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시작했다.
동준은 작은 무대에 올라 자신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조금씩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6장: 빛나는 이야기의 재회
몇 년 후, 다시 그곳으로
고요한 여름날 오후. 네 사람은 다시 약속했던 마을로 모였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들이 함께했던 순간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언덕 위에서의 밤, 노을에 물든 하늘, 그리고 서로에게 했던 약속까지.
은서는 가장 먼저 도착해 언덕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은서야!”
지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냈어?”
은서는 반갑게 그녀를 맞이하며 웃었다. “너야말로. 멋진 모습 그대로네.”
곧 민혁과 동준도 도착했다. 민혁은 작은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고, 동준은 기타를 메고 있었다.
“다 모였네.” 민혁이 미소를 지었다.
“근데 우리, 옛날보다 더 멋있어진 거 같지 않냐?” 동준이 농담을 던지며 기타를 퉁겼다.
“거울 보면서 하는 말이겠지.” 지윤이 웃으며 응수했다.
시간 캡슐을 열다
네 사람은 언덕 위로 올라가 돌무더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 아래 묻혀 있던 캡슐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 있다.” 민혁이 조심스럽게 캡슐을 들어 올렸다.
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몇 년 전 적어 넣었던 종이와 작은 물건들이 그대로 있었다.
“누가 먼저 읽어볼래?” 동준이 물었다.
“내가 먼저 할게.” 지윤이 종이를 꺼내며 말했다.
그녀는 웃으며 자신이 적은 글을 읽었다.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를 두려워하지 말 것.’ 완전 나다워서 웃기네. 근데 진짜 이걸로 내가 여기까지 왔어.”
그녀는 NGO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며 느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사람들을 돕는 일이 내가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이었어. 근데… 이건 아마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 덕분이었을 거야.”
다음은 동준이었다.
“내 건 단순해. ‘음악이 내 길임을 믿으라.’ 근데 진짜 그랬다니까. 지금 작은 공연을 하고 있어. 아직 갈 길이 멀긴 한데,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좋아.”
그는 기타를 퉁기며 멜로디를 짧게 연주했다.
“이건 너희 덕에 나온 곡이야. 진짜야.”
민혁은 자신이 적은 메시지를 읽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 것.’ 그때는 무서웠어. 뭔가 잘못될까 봐. 근데 지금은 실패가 나쁜 게 아니라는 걸 알아. 내가 연구한 게 성공하기까지 수십 번 실패했지만, 결국 이걸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는 캡슐을 다시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우리가 서로에게 배운 게 이렇게까지 이어질 줄 몰랐어.”
마지막으로 은서가 종이를 꺼냈다.
“‘지금의 나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라.’ 그땐 내가 내 자신을 믿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조금 달라졌어. 내 소설이 출간됐거든. 이 이야기가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담고 있어.”
“네가 그 책 쓴 거야?” 지윤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응. 너희 이야기를 내가 글로 풀어냈어. 우리가 길을 찾는 과정, 그리고 함께했던 순간들.”
빛나는 재회
그들은 하나씩 종이를 접어 다시 캡슐 안에 넣었다. 이번에는 새로운 메시지를 적었다.
“다음번엔 우리가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기대된다.” 민혁이 말했다.
“그땐 더 큰 무대로 갈 거야.” 동준이 자신 있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할게.” 지윤이 웃으며 덧붙였다.
“나는 더 많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 그리고 너희와 같은 사람들을 만날 거야.” 은서가 말했다.
그들은 캡슐을 다시 묻고,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 순간,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우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언덕을 내려오며
언덕을 내려오며 은서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길을 잃는 것도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이었지.”
그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멀리 붉은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들은 다시 각자의 길로 돌아가겠지만, 그들이 함께한 시간은 앞으로도 그들의 빛나는 이정표가 될 것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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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3 - [문학 (Literature)/한국 시 (Korean Poetry)] - Poem) 이상, <삼차각설계도 - 선에 관한 각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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