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story) 푸른 달빛 아래, 맨시티 팬 루크의 여정

<푸른 달빛 아래, 맨시티 팬 루크의 여정>
 

## 1장: 달빛 아래의 경기장

에티하드 스타디움의 밤은 고요했다. 푸른 달빛이 텅 빈 경기장을 비추는 가운데, 한 남자가 울타리 너머로 경기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루크. 목에 걸린 하늘색 맨시티 머플러가 차가운 밤바람에 나부꼈다.

"이런 때 보안요원이라도 마주치면 대형사고겠는데..." 루크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피식 웃었다. 한밤중에 경기장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심스러워 보일 터였다. 하지만 그는 이 시간, 이 장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었다.

경기장의 푸른 잔디가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마치 바다처럼 잔잔히 물결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루크는 주머니에서 오래된 티켓 한 장을 꺼내들었다. 20년도 더 된 티켓이었지만, 그는 이 티켓을 늘 지갑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첫 경기 관람 티켓. 아버지와 함께한 그날의 기억이 달빛처럼 투명하게 떠올랐다.

"아, 맞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추억에 젖어드는 건지..." 루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이제 나이가 들어서 추억팔이나 하고 있다니."
 
 

## 2장: 첫 만남과 아버지의 가르침

"아빠, 우리가 지면 어떡해요?" 어린 루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걱정 마라. 지는 게 끝이 아니니까." 아버지는 루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답했다. "우리 팀이 지금은 약해 보일 수도 있지. 하지만 네가 큰 사랑으로 응원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강해질 거야."

그날은 맨시티가 2:0으로 완패한 날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활기찬 목소리로 경기를 설명해주었다. "봤지? 우리 수비수가 저렇게 열심히 뛰는 걸? 저런 모습이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야."

어린 루크는 그날, 진정한 사랑에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패배의 쓴맛도, 실망의 순간도, 모두 팬으로서 겪어야 할 과정이라는 것을.

"그래도 아빠, 다음에는 이기면 좋겠어요!"
"그럼! 우리가 오늘도 이렇게 응원하니까, 분명 이길 날이 올 거야."

아버지는 그날 돌아가는 길에 루크에게 첫 맨시티 머플러를 사주었다. 지금도 루크의 목에 걸려있는 바로 그 머플러였다.


 
## 3장: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이게 실화냐, 벤? 우리가 진짜 결승전을 보러 간다고?" 루크는 티켓을 손에 쥐고 마치 보물을 든 것처럼 조심스럽게 다뤘다.

"야, 그렇게 부드럽게 쓰다듬다가는 티켓이 닳아 없어질 거 같은데." 벤이 웃으며 말했다. "근데 진짜 운이 좋았지. 추첨에 당첨될 확률이 복권 당첨보다 낮았다는데."

결승전 당일, 두 사람은 새벽부터 일어나 공항으로 향했다. 벤은 비행기 안에서도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내가 봤는데 말이야, 우리 팀 선수들이 어제 SNS에 올린 훈련 영상 봤어? 컨디션이 미쳤더라고. 이번에는 진짜야!"

"너 그거 알아? 네가 지금 진지한 표정으로 하는 말이 다 징크스가 될 수 있다는 거?" 루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에이, 말도 안 돼. 나는 우리 팀을 믿... 아차." 벤이 입을 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됐다. 이제 우리 질 것 같으니까 조용히 해줄래?"

실제로 그날 경기는 패배였다. 마지막 휘슬이 울리고 경기장이 적팀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을 때, 루크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벤은 루크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야, 우리 저녁 뭐 먹을까? 난 피자가 좋은데."
"지금 피자 얘기가 나와?"
"그래, 지금이야말로 피자를 먹어야 할 때지. 우리가 함께한 이 순간이 바로 우승이니까."
 
 

## 4장: 혼자가 된 시간

에티하드 스타디움의 한 구석, 루크는 혼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예전에는 벤과 함께 앉았던 자리였다. 벤이 런던으로 이사 간 지도 벌써 2년. 가끔 메시지로 연락은 하지만, 그때처럼 함께 경기를 보는 일은 이제 없었다.

"죄송합니다만, 혹시 이 자리 비어있나요?" 
어떤 관중이 물었다. 루크는 잠시 망설였다. 그 자리는 벤의 자리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 네. 비어있습니다."
"다행이네요. 친구분이 오실 거라 생각했는데."
"원래는 있었죠... 친구가."
"오, 미안합니다. 민감한 주제였나 보네요."
"아뇨, 걱정 마세요. 그냥 이사 갔을 뿐이에요. 제가 마치 이별한 연인처럼 말했네요."

루크는 쓴웃음을 지었다. 옆자리의 관중은 어색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경기에 집중했다. 루크도 경기를 보려 했지만, 자꾸만 벤과의 추억이 떠올랐다.

"차라리 연인이었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네. 최소한 이별 노래라도 들으면서 위로받았을 텐데." 
루크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피식 웃었다. 주변 관중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자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경기장은 여전히 푸른빛으로 가득했다. 변한 건 사람이지, 이 곳의 색깔은 변함없었다.



## 5장: 도시와 팬 문화의 변화

"팔로우 해주시면 맨시티 공식 굿즈 이벤트에 자동 응모됩니다!" 
루크는 스마트폰 알림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요즘은 SNS 팔로워 수로 진정한 팬을 구분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제 인스타그램에 방문하시면 오늘 경기 하이라이트 편집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은 필수!"
"네이버 카페에서 티켓 양도합니다. 프리미엄 10만원..."

루크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문득 아버지가 티켓을 구하던 방식이 생각났다.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고, 간혹 매진되면 실망한 채 돌아오던 그 시절이.

"아... 옛날이 더 좋았던 거 같은데." 
루크는 중얼거리다가 깜짝 놀랐다. 
"이런, 내가 벌써 아재가 된 건가? 옛날이 좋았다니... 다음에는 '요즘 애들은 말이야...'라고 할 것 같네."

하지만 변한 건 팬 문화만이 아니었다. 도시도 변했다. 에티하드 스타디움 주변은 이제 세련된 카페들과 부티크들로 가득했다. 예전에 루크와 벤이 자주 들르던 오래된 피자 가게는 이제 없었다.

"저기 봐요,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인생샷 스팟이에요!"
귀에 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경기장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중에는 다름 아닌 옆집 아저씨도 있었다.

"어? 아저씨? 아저씨도 맨시티 팬이었어요?"
"아니, 난 그냥 인스타용으로..." 
옆집 아저씨는 멋쩍게 웃으며 말을 흐렸다.
 
 

## 6장: 달빛 속에서 부르는 응원가

루크는 텅 빈 경기장 앞에서 혼자 응원가를 흥얼거렸다. 
"Blue Moon~ You saw me standing alone~"

"Without a dream in my heart~"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받아 불렀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경비원이었다.

"어... 저기... 이렇게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저도 30년 된 팬이에요." 경비원은 미소를 지었다. "가끔 이렇게 혼자 오시는 분들 있어요. 특히 달이 밝은 날에는요."

"그런데 말이죠..." 경비원이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이었다. "응원가를 부르실 거면 제대로 불러야죠. 키가 너무 낮잖아요."

루크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혼자 부르고 있었어요. 벤이랑 같이 부를 때는 제가 하이파트를 맡았거든요."

"아, 그럼 제가 로파트를 맡아드릴까요?"
"네? 아... 아뇨, 괜찮습니다."
"왜요? 저 노래 잘하는데..."
"경비원님, 그러다 민원 들어올 것 같은데요."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달빛은 여전히 푸르게 경기장을 비추고 있었다.



## 7장: 미래를 위한 다짐

"그래서 말인데..." 경비원이 루크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오신 거예요?"
"아..." 루크는 잠시 망설였다. "사실... 이제 이사를 가거든요. 런던으로요."

"아하." 경비원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벤이라는 분을 만나러 가시나 보네요?"
"네? 아니요! 그게 아니라 회사 때문에..." 루크는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벤은 그냥 친구라니까요!"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경비원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런데 이사 가시면 경기는 어떻게 보실 거예요?"

루크는 주머니에서 새 시즌권을 꺼냈다. "이미 준비했죠. 매 홈경기마다 올 생각이에요. 4시간이면 되니까... 그리고 출장도 최대한 맨체스터로 잡을 예정이고요."

"와, 그 정도면 진정한 팬이시네요." 경비원이 감탄했다.
"뭐... 제가 좀 미친 것 같죠?"
"전혀요. 제가 더 미쳤어요. 30년 동안 이 시간에 경비 서고 있잖아요."

둘은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루크는 문득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맨시티를 사랑한다고 해서 이 도시에만 머물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 8장: 새벽을 맞이하며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했다. 루크는 경기장을 마지막으로 한번 둘러보았다.

"어, 저기 보이세요?" 경비원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경기장 한쪽에 무지개가 걸려있었다.
"와... 이런 건 처음 보네요."
"이런 날은 특별한 일이 생길 거예요. 그리고 보세요, 무지개 끝에 있는 게 무슨 색인지."

루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보았다. 
"푸른색이네요."
"그렇죠? Blue Moon이 당신을 축복하는 걸지도 모르죠."

"그런데..." 루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침에 무지개라니, 좀 이상하지 않나요?"
"아, 저거요?" 경비원이 멋쩍게 웃었다. "실은 어제 잔디에 물 주는 스프링클러 점검했거든요. 그래서..."

루크는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진짜 무지개든 가짜 무지개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이 순간, 이 감정이었다.

"그럼 이제 가봐야겠네요." 루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런던 가서도 자주 오세요. 제가 몰래 들여보내 드릴게요."
"그건 농담이시죠?"
"물론이죠. 전 성실한 경비원이니까요... 대신 앞문으로 오세요."

루크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제 날이 밝아오고 있었지만, 달은 여전히 희미하게 하늘에 걸려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푸르게 빛나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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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아래, 영원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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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이호우, <달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