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story) 종로의 요리사

<종로의 요리사>

 

서울의 겨울은 잔인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찌를 듯 날카롭게 불어오고, 그 얼어붙은 공기는 마치 내가 사는 이 시대의 고통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 같았다. 종로 한복판에 자리 잡은 내 작은 식당 '대정식당'. 이름은 거창하지만, 내 마음은 결코 이 식당을 사랑할 수 없었다. 내가 요리를 내놓는 사람들은 조선의 땅을 짓밟는 자들이었으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일본 관리들이 들어섰다. 그들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거만하고, 그들이 나를 볼 때마다 눈에는 그 특유의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나는 익숙하게 허리를 굽혔다. 속으로는 삼켜야 할 말들이 줄줄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침묵이 나를 보호해줄 유일한 무기였다. 

하지만 그 침묵의 뒤엔 다른 무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저항이었다. 내가 일하는 이 식당은 단순한 요리 공간이 아니었다. 일본의 관리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요리를 먹는 사이, 나는 다른 손님들에게 비밀을 전달하고, 독립운동가들이 은밀히 드나드는 장소가 되었다. 나는 단순한 요리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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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늘처럼 식당을 정리하고 있을 때, 그녀가 찾아왔다. 이지혜, 내게 있어 가장 믿음직한 동료이자, 아마도 나보다 더 위험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과 강인한 표정은 나를 늘 긴장시키곤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검은 코트를 단단히 여미고는 나를 향해 다가왔다.

“장 선생, 이번 건 쉽지 않아요.” 그녀는 늘처럼 간단명료하게 말을 시작했다.

“이번엔 얼마나 위험한 일이죠?”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물어봤다. 내 목소리 속엔 긴장감이 묻어났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낮게 속삭였다. “이번엔 정말 큰 일이에요. 이번 정보는 조선 전체를 뒤흔들 수 있을 만큼 중요한 거예요.”

나는 잠시 숨을 삼켰다. 이 일은 점점 더 큰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둘 수는 없었다. 어차피 내 삶은 그날, 조선이 독립하는 날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날이 과연 언제 올 것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며칠 뒤, 이지혜는 예상보다 훨씬 일찍 찾아왔다. 그녀는 긴장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와 무언가를 손에 쥐여주었다. “이건 내일 전달해야 해요.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요.”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얼마나 위험한지. 하지만 나는 익숙한 동작으로 음식을 내놓는 척하며 정보를 옮겼다. 내가 주방에서 접시를 닦는 동안, 일본인 관리가 내 식당에 들어섰다.

“이봐요, 장 씨. 오늘 음식이 조금 짜네요?” 그는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 순간, 내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가 무언가를 눈치챘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그런가요? 죄송합니다. 바로 새 음식으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잠시 나를 응시하더니 고개를 돌리고 나갔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위기는 지나갔지만, 언제 또 이런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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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이지혜가 다시 찾아왔을 때는 그날과는 다르게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말을 꺼내기 전 몇 번이나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 침묵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배신자가 나타났어요,” 그녀가 마침내 내뱉은 말은 무겁고도 날카로웠다.

“누가…” 나는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믿었던 사람이 우리를 배신했다니. 그동안 함께 싸웠던 사람들 중 누군가가 일본 경찰에게 우리를 팔아넘겼다니.

“우린 다 감시당하고 있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숨겨진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일본 경찰들이 우리 계획을 전부 알고 있었던 거예요. 동지 몇 명이 붙잡혔어요.”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주먹을 꽉 쥐었다. 내 안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뭐죠?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해요?” 

이지혜는 나를 진정시키려는 듯 한 손을 들었다. “침착해야 해요. 우리가 움직이는 순간, 적들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지금은 조용히, 신중하게 행동해야 해요.”

나는 그 말을 이해했지만, 마음은 너무나도 분노에 휩싸였다. 배신자의 정체는 누구일까?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우리를 등지고 일본 편에 선 것일까?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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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일본 경찰들이 우리의 움직임을 눈치챘고, 이지혜와 나는 포위망 속에 갇혔다. 나는 그녀와 함께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좁은 골목길을 헤매고, 어두운 뒷골목을 달리면서, 나는 총알이 내 옆을 스쳐가는 걸 느꼈다.

그러다 갑자기, 총성이 울렸다. 나는 다리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피가 땅 위로 흘러내렸다. 그 순간, 내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앞이 흐려졌다.

하지만 이지혜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나를 부축해 가까운 은신처로 데려갔다. “기현 씨, 버텨요. 그날이 오면,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날이 오면, 우리는 웃을 수 있을 거예요.”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이 올까? 우리의 희망은 실현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그날을 보지 못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대로 죽어도,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끝까지 싸웠으니까. 그게 나의 길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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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의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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