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 <서정별곡(西征別曲)>
원본:
명시(明時)에 득죄(得罪)야 / 전야(田野)의 도라와셔
일곡(一曲) 셤호(蟾湖)의 / 모옥(茅屋)을 지어 두고,
연(煙沙) 월적(月磧)의 / 경조(耕釣)를 일을 삼아
(紫陌) 홍진(紅塵)의 / 일염(一念)이 쳐더니,
건곤(乾坤)니 (再泰)하고 / 일월(日月)이 다시 밝가
탈니(脫離) 유잠(遺簪)을 / 일시(一時)의 수습(收拾)하니,
쳥강(淸江) 셕(白石)의 / 어조(魚鳥)를 이별고,
옥셔(玉署) 금화(金華)의 / 완노(鵷鷺)를 로더니,
연경(燕京) 만리(萬里)길을 / (使价)로 명시니,
룡누(龍樓)의 직(下直)고, / 일긔(馹騎)를 이 모라
영은문(迎恩門) 지나 다라 / 홍졔원(弘濟院) 다라니,
고구(故舊) 친척(親戚)이 / 숀고 일은 말이
풍상(風霜) 외(塞外)의 / 됴히 녀 도라오쇼.
동지(冬至) 긴긴 밤을 / 벽제(碧蹄)셔 계유 와
임진(臨津)을 건너리라. / 송악산(松岳山) 라보니,
오백년(五百年) 도읍지(都邑地)의 / 기세(氣勢)도 웅쟝(雄壯)다.
선쥭교(善竹橋) 나린 물이 / 지금(至今)의 오열(嗚咽)니,
졍포은(鄭圃隱) 쳔고원(千古怨恨) / 여긔 아니 부쳣가?
만월(滿月臺) 너분 터의 / 쇠(衰草)만 나마시니,
인간(人間) 흥폐(興廢) / 일너 듸 업거니와
고국(故國) 풍연(風煙)의 / 수(客愁)를 도도놋.
평산(平山)을 겨유 지나 / 총슈(葱秀站) 드러가니,
주쳔사(朱天使) 구유쳐(舊遊處)의 / 승젹(勝跡)만 나마 이셔
챵(蒼崖)의 인 글 / 묵젹(墨蹟)이 어제론 듯
황강셩(黃崗城) 드러가니, / 일(白日)이 노파셰라.
통판(通判)이 다졍(多情)여 / 별연(別莚)을 노피 베퍼
금슬(琴瑟) 쳥쥰(淸樽)으로 / 원(遠客)을 위로(慰勞)
고누(高樓) 야심후(夜深後)의 / 츌곡(出塞曲)을 노피 브니
일촌(一村) 니은 간장(肝臟) / 여기선 다 쳣다.
층빙(層氷)은 강(塞江)고, / 젹셜(積雪)은 만산(滿山)듸,
연광졍(鍊光亭) 오푼 집의 / 풍일(風日)도 낙(冷落)다
듕화(中和)의 잠 어 / 긔셩(萁子城) 드러가니,
영명(永明寺) 부벽누(浮碧樓)을 / 아니 보려 랴마
왕정(王程)이 유한(有限)니, / 훗긔약(期約)을 머무로니라
숙영관(肅寧館) 밤 쉬어 / 청천강(淸川江) 건너 드니,
남누(南樓) 셜월(雪月)의 / 금영(錦筵)을 버려,
(百隊) 홍장(紅粧)이 / 좌우(左右)의 버러시니,
타향(他鄕) 평수(萍水)의 / 낙라 련마
졀(絶色) 금가(琴歌) / 여(旅限)을 바아놋다.
남녀(藍輿)를 눅게 메여 / 상누(百祥樓)의 올나가니,
일(一帶) 빙강(氷江)이 / 벽뉴리(碧琉璃) 가
셜마(雪馬)를 빗기 모라 / 조쟝(祖帳)의 드러가니,
금(金杯)의 가득 부어 / 권(勸)야 일 말이
젼산(前山)의 일모(日暮)고, / 노(客路)의 쳔(天寒) 니,
냥관(陽館)을 나간 후(後)면, / 고인(故人)이 뉘 이리?
가산(嘉山)길 오십니(五十里)를 / 몽듕(醉夢中)의 드러가서
납쳥젼(納淸殿) 잠간(暫間) 보고 / 신안관(新安館) 드러가서
영츈당(永春堂) 놉푼 집의 / 봄빛 어듸 간고?
운흥관(雲興館)넌 보고, / 고션셩(古宣城) 드러가니,
의검졍(倚劒亭)놉 우의 / 단벽(丹碧)이 어릐엿다.
쳥유당(聽流堂) 져문 날의 / 곡난간(曲欗干)의 비겨시니,
홍군(紅桾) 쉬(醉袖)들이 / 어름 우의 희롱*戱弄)니,
냥쥬(陽州) 연 쳥동(白蓮靑銅) / 보경(寶鏡)을 지엿 듯
무릉계(武陵溪) 삼월 도화(三月桃花) / 유수(流水)의 여 듯
만곡슈(萬斛水)긴 눈셥 / 거의 아니 펴이거냐?
용만관(龍灣館) 여 드러 / 통군졍(統軍亭)을 올나 보니,
호쳔(胡天) 지쳑(咫尺)의 / 의슈(衣帶水)의 가려시니,
쳥구(靑丘)일역(一域)이 / 여긔 와 진(盡)탄 말가?
장(行裝)을 졈겸(點檢)야 / 압녹강(鴨綠江) 건너리라.
여가(驪歌)다 부니, / 셕양(夕陽)이 거의로다.
졍거(征車)의 (醉)코 올나 / 고향(故鄕)을 도라보니,
종남산(終南山) 일쳔리(一千里)의 / 구이 머흐럿다.
삼강수(三江水)다 지나셔 / 구련셩(九連城) 도라드니,
음풍(陰風)은 권지(捲地)고 / 삭셜(朔雪)이 영장(盈丈),
황모(黃茅) 위간(白葦間)의 / 포막(布幕)을 나쵸 치고,
일점(一點) 한등(寒燈)이 / 침변(枕邊)의 발가시니,
강두(江頭)의 (醉) 술이 / 하마면 다 거다.
공명(功名)도 그름갓고, / 부귀(富貴)도 츈몽(春夢)이라.
인(人生)이 언마완, / 형역(形役)이 되야 이셔
고당(高堂) 학발(鶴髮)의 / 온졍(溫情)을 못밧들고
운(白雲) 쳔말(天末)의 / 방촌(方寸)만 서기고?
왕준(王遵)은 즐어(喞御)고, / 모의(毛義) 봉격(奉檄)니,
군친(君親)이 일쳬(一體)여니, / 충효(忠孝)ㅣ 어이 다를소냐?
금셕산(金石山) 지나거냐? / 셜암(雪巖)이 어오.
봉황산(鳳凰山) 겻 두고, / 안시셩(安市城) 여긔로다.
당가(唐家) 만병(百萬兵)이 / 예 와셔 (敗)탄 말가?
산쳔(山川)은 의구(依舊), / 인걸(人傑)은 어 간고?
져근 듯 비러다가 / 셩쥬(聖主)긔 드리고져.
요동(療東) 옛 지계(地界)를 / 거의 회복(回復) 련마
쳔츄(千秋)의 챵망(悵望)니, / 속졀 업슬 이로다.
팔도하(八渡河) 나린 물이 / 몃 구비나 서렷고?
쳥셕영(靑石嶺) 회평영(恢平嶺)이 / 놉고도 험시고.
졍형(井陘)이 이러며, / 구졀(九折)인들 비길소냐?
연산역(連山驛) 조반 후(後)의 / 낭산(娘子山) 너머가니니,
요양역(遼陽驛) 어듸요? / 탑(白塔)이 여긔로다.
천연(千年) 화표주(華表柱) / 오히려 나마시되,
만고(萬古) 정영위(丁令威) / 어 가고 놋오던고?
흥망(興亡)을 뭇 나, / 옛일을 뉘 알소니?
평원(平原)이 극목(極目) 고, / 쵸(白草) 연천(連天)
북풍(北風)이 높이 불려 / 부운(浮雲)을 다 거드니,
건곤(乾坤)이 묘막(杳漠)야 / 졔(涯際)를 모로놋다.
사봉(沙河峰) 지나 다라 / 심양(瀋陽)의 드러가니,
성지(城地)도 졀험(絶險)고, / 젼우(殿宇)도 굉려(宏麗)다.
황긔포(黃旗浦) 기포(白旗浦) / 소흑산(小黑山) 신광년(神光嶺)이
지명(地名)도 고 만코, / 도리(道理)도 요원(遙遠)다.
여양역(閭陽驛) 건너편의 / 십삼산(十三山)이 버러시니,
우공(愚公)이 졔 왓가? / 우부(愚斧)로 가가?
무산(巫山) 육봉(六峰)이 / 언제 나라 저 왓고?
쇼능하(大小陵下) 겨우 건너 / 고교포(高橋浦)의 다다라니,
운간(雲間)의 비긴 모히 / 의무려(醫巫閭) 아니런가?
쳔봉(千峰)이 두발(斗拔)고, / 반공(半空)의 다아시니,
오악(五岳)이 뫼도곤 / 놉 말 못노라.
졍참(征驂)을 주(暫駐)고, 발(渤海)를 구버보니,
장풍(長風)의 놀낸 물결 / 은옥(銀玉)이 아(嵯峨)다.
노련(魯連子) 다시 살아 / 금셰(今世)의 날작시면,
창명(滄溟)이 깁다 나, / 필연(必然)이 바라려니,
연산역(連山驛) 조반후(朝飯後)의 / 영영(永寧寺) 보고,
거마(車馬)를 밧비 모라 / 영원위(寧遠衛) 드러가니,
금탕(金湯)이 굿다 들 / 쇄약(鎖鑰)을 뉘 알쇼니?
붕셩(崩城) 벽(破壁)의 / 옛 긔지(基址)만 나마셔라.
통구(通衢) 십노(十字路)의 / 석문(石門)니 최외(崔嵬)다.
조장군(祖將軍) 사셰은영(四世恩榮) / 환혁(煥赫)도 다마는
이소경(李少卿) 농서가성(隴西家聲) / 뉘라서 일카라리?
관동(關東)은 육십니(六十里)라. / 양하슈(兩河水) 몃춧 가라
망부셕(望夫石) 즈리라. / 뎡여(貞女祠) 올나가니,
네 원(怨恨) 각거든 / 녹감즉도 다마
쳔츄(千秋) 풍우(風雨)의 / 눌 위야 셔 잇다?
산관(山海館) 거의로다. / 만리성(萬里城) 바라보니,
쳔구(千衢) 비 후(後)의 / 옥홍(玉虹)이 빗겨닷
츄쳔(秋天) 발근 졔 / 은한(銀漢)이 둘너다.
진황졔(秦皇帝)의 어린 계교(計巧) / 쳔고(千古)의 웃건마
당시(當時)의 보던 셔(讖書) / 과연(果然) 오늘 마도다.
유관(楡關)을 월(越)리라. / 창여(昌黎祠) 드러가니,
슈양산(首陽山) 어듸요 / 고쥭국(孤竹國)이 여긔로다.
층(層臺)의 막대 집허 / 이제묘(夷齊廟) 드러가니,
쳥풍(淸風)이 늠열(凜烈)야 / 셰(百世)의 리닷
난하수(灤河水) 말근 고 / 일(一杯)를 가득 부어
산두(山頭)의 올여 노코 / 재(再拜)야 일은 말이
산중(山中)의 나 미궐(薇蕨) / 마다 풀으거든
슬푸다! 금셰(今世) 람 / 올 줄 모로다.
사하역(沙河驛) 고 지나 / 풍윤(豊潤)을 가셔라.
계셩(薊州城) 드리다라 / 와불(臥佛寺)의 올나가니,
삼층(三層) 각(翠閣)의 / 금상(金像)이 최외(崔嵬)다.
금산(金山寺) 장육신(丈六身)을 / 뉘라셔 놉다터니?
이제묘(夷齊廟) 보게 되면, / 소사미(少沙彌) 되리로다.
상(床) 우의 부쳐 / 몇 겁(劫)을 누어 이셔
셔쳔(西天)을 가? / 줄를 모로고?
삼하슈(三河水) 다 디나셔 / 통강(通州江) 니,
장범(檣帆)이 독립(獨立)고, / 읍니(邑里)도 은셩(殷盛)다.
동악묘(東岳廟)의 옷슬 가라 / 치화문(致華門)드러가니,
황조(皇朝) 옛 궁궐(宮闕)이 / 완연(宛然)니 잇다마
한관(漢官) 위의(威儀)를 / 어듸 가 보리?
오봉문(五鳳門) 너머 드러 / 태화젼(太華殿) 라보니,
금화(金華) 벽(翠壁)은 / 조일(朝日)을 라이고,
수각(水閣) 누(丹樓) / 운(彩雲)이 어엿다.
경쳔(擎天) 옥쥬(玉主) / 일(一雙)이 마조 셔코,
가공(架空) 은교(銀橋) / 다시 버러 잇다.
지(太液池) 말근 물이 / 만수산(萬壽山) 둘러시니,
곤명(昆明)이 넙다 들 / 쳥결(淸潔)미 이러랴?
인공(人功)이 극딘(極盡)니 / 민역(民力)이 견딀쇼냐?
존망(存亡)이 유슈(有數)니 / 폐홍(廢興)이 유덕(有德)이라.
궁(窮奢) 극치(極侈)고 / 장구(長久)니 뉘 잇던고?
옥하관(玉河館) 깁흔 고 / 벗업시 혼 누어
졍(行程)을 묵산(黙算)니, / 쳔니(四千里) 밧기로다.
수방(殊方) 니(客裏)의 / 츈(春色)이 도라오니,
유(遊子) 쳔(天涯)의 / 쵼심(寸心)이 로와라.
챵젼(窓前) 효월(曉月)은 / 여침(旅枕)을 여어 보고,
젹니(笛裏) 양유(楊柳) / 몽(客夢)을 놀놋다.
교두(橋頭)의 우 물이 / 동(東海)로 갈작시면,
향누(思鄕淚) 려야 / 고원(故園)의 붓치고져.
언졔면 쳥츈(靑春)으로 / 벗슬 마 됴히 도라가리요?
현대어 해석본:
문명이 흥성할 때 오히려 죄를 지어
밭을 갈러 시골로 돌아와서
한 굽이 섬강가에 띠집을 지어두고
안개 낀 모래밭과 달뜨는 자갈길에
농사짓고 낚시질로 일을 삼고
번거로운 서울 땅의 띠끌 먼지
미련 두던 마음을 끊었더니
이 세상이 다시금 태평해져
해와 달이 다시금 비추었네.
벗어서 버려두던 망건과 갓
일시에 거두어 다시 쓰고
맑은 강의 흰 돌들과 새와 고기 이별했네.
홍문관은 화려하고
줄 지어 선 대신들은 위엄을 자랑하며
연경의 만리 길에 사신으로 명하시니
주상께 하직하고 역마를 빨리 몰아
영은문 지나 달아 홍제원에 다다르니
오랜 친구 친척들이 손잡고 하는 말이
험한 땅 나라 밖을 좋이 다녀 돌아오소.
동짓달 긴긴 밤을 벽제에서 겨우 새워
임진강을 건너리라 송악산을 바라보니
오백년 도읍지에 기세도 웅장하다.
선죽교 흐른 물이 지금도 오열하니
정포은의 오랜 원한 여기 아니 부쳤는가.
만월대 넓은 터에 시든 풀만 남았으니
인간 세상 흥망이야 말해 쓸 데 없거니와
옛 나라의 흐릿함이 객수를 돋우누나.
평산을 겨우 지나 총수참에 들어가니
주천사 예 놀던 곳 자취만 남아 있어
절벽 위에 새긴 글자 바로 어제 쓰여진 듯
황강성에 들어가니 한낮 해는 높았구나.
통판이 정이 많아 송별연을 크게 열어
거문고와 맑은 술로
떠나는 객 위로하니
높은 누각 밤 깊은 후 출새곡을 높이 부니
한 토막 이은 간장 여기서 다 끊겼구나.
층층 얼음 강을 덮고 쌓인 눈은 산 가득한데
연관정 높은 집에 바람도 차갑구나.
중화에서 잠깐 쉬어 기자성에 들어가니
영명사 부벽루는 아니 보려 하랴마는
왕명으로 가는 길에 머무르지 못하리니
뒷날을 기약하리.
숙녕관에 밤을 쉬고 청천강을 건너가니
남쪽 누각 눈 위로 달 아래에
비단으로 돗자리를 벌렸는 듯
수많은 미인들이 좌우로 벌렸으니
타향에서 만남이 즐겁다 하련마는
미인들의 거문고와 사랑 노래
나그네 한을 재촉하는구나.
가마를 눅게 메어 백상루에 올라가니
일대의 얼음 강은 푸른 유리 깎았는 듯
눈 속으로 말을 몰아 장막으로 들어가니
금 술잔에 가득 부어 권하면서 하는 말이
앞산에 해가 지고 갈 길에 날이 차니
이 길을 나간 후면 옛 벗이 뉘 따르리.
가산 길 오십 리를
취한 듯 꿈꾸는 듯 들어가니
납청전 잠깐 보고 신안관에 들어가니
영춘당 높은 집에 봄빛은 어디 갔나.
운흥관 넌짓 보고 고선성에 들어가니
의검정 높은 누각 단청이 어리었다.
청유당 날 저물 때 굽은 난간 빗겨 앉아
곱게 꾸민 기생들이 얼음 위에 희롱하니
양주 땅의 백년 청동으로 거울을 지었는 듯
무릉계곡 삼월 도화 물 위로 띄웠는 듯
근심으로 잠긴 눈썹 거의 아니 펴지겠나.
용만관 달아들어 통군정에 올라보니
오랑캐 땅 지척에서
한줄기 물줄기가 띠가 되어 가렸으니
우리 땅의 경계가 여기에서 다했는가.
행장을 점검하여 압록강을 건너리라.
이별가를 다 부르니 석양이 거의로다.
수레에 의지하여 고향을 돌아보니
종남산 일천 리에 구름이 험하구나.
삼강수를 다 지나서 구련성에 돌아드니
음산하여 땅으로 흘러가고
쌓인 눈은 두텁게 덮여가니
누런 잔디 흰 갈대 사이에다
장막을 낮춰 치고
한 점의 찬 등불이 잠결에 밝았으니
강가에서 취한 술이 벌써 다 깨었구나.
공명도 구름 같고 부귀도 봄꿈이라.
인생이 얼마인데 세상 굴레 엮여 있어
집 안의 늙은 부모 온정을 못 받들고
흰 구름 하늘 끝에 마음만 썩이는가.
왕준은 마부를 재촉했고
모의는 격문을 기꺼이 받들었으니
임금 부모 하나이니 충효 어이 다르겠나.
금석산 지나가니 설암은 어디인가.
봉황산 곁에 두니 안시성이 여기로다.
당나라 백만 병사 여기 와서 패했는가.
산천은 그대로인데 인걸은 어디 갔나.
잠시 동안 빌어다가 주상께 드리고자.
요동의 옛 우리 땅 거의 회복 하련마는
오랜 세월 근심해도 속절 없을 뿐이로다.
팔도하 흐른 물이 몇 굽이나 서렸는가.
청석령 회평령이 높고도 험하구나.
정형이 이러하며 구절인들 비길 소냐.
연산역 아침 먹고 낭자산 넘어가니
요양약이 어디인가 백탑이 여기로다.
천년의 화표주는 오히려 남았으되
만고의 정령위는 어디 가고 못 오는가.
흥망을 묻자 하나 옛 일을 뉘 알소냐.
들판은 눈 밖의 하늘에 닿아 있고
온갖 풀은 하늘에 잇닿았는데
북풍이 높이 불어 뜬 구름을 다 걷으니
천지가 아득하여 그 끝을 모르노라.
사하봉을 지나 달아 심양으로 들어가니
성터는 매우 험하고 전우도 넓고 넓다.
황기포 백기포 소흑산 신광령
지명도 많고 많고 갈 길은 아득하다.
여양역 건너편에 십삼산이 벌렸으니
우공이 제 왔는가 우부로 깎았는가.
무산 여섯 봉우리를 언제 날아 지고 왔나.
대소 능하 겨우 건너 고교포에 다다르니
구름 사이 비친 산이 의무려 아니런가.
천 봉우리 우뚝 서서 반 공중에 닿았으니
오악이 이 산을 보고 높다는 말 못하리라.
마차를 잠지 멈춰 발해를 굽어보니
큰 바람에 놀란 물결 은옥처럼 높았구나.
노련자가 다시 살아 이 세상에 날게 되면
동해가 깊다 해도 필연 이 곳을 바라리라.
연산역서 아침 먹고 영녕사를 잠깐 보고
마차를 바삐 몰아 영원위에 들어가니
아무리 성곽이 굳다 해도
쉬 열릴 줄 그 뉘가 알았을까.
성은 무너지고 벽은 허물어져
지금은 옛 터만 남았구나.
오가는 길 네거리에 돌문이 험하구나.
조장군이 네 세대 받은 은혜
아름답기 하다마는
소무의 충절과 이광의 변절을
뉘라서 일컬으리.
관동은 육십 리라, 양하수 며칠 가서
망부석을 찾으리라, 정여사에 올라가니
옛 원한 생각하니 느낌직도 하다마는
오랜 시절 비바람에 뉘 위해 서 있느냐.
산해관이 거의로다, 만리장성 바라보니
많은 거리 비 갠 후에 무지개가 비취는 듯
가을 달 밝을 때 은하수가 둘렀는 듯
진시황의 어리석음 오랜 세월 웃건마는
그 때에 보던 예언 과연 오늘 맞았도다.
유관을 넘으리라, 창여사에 들어가니
수양산은 어디인가, 고죽국이 여기로다.
층층계에 막대 짚어 이제묘에 들어가니
맑은 바람 살을 엘 듯 오랜 세월 뿌리는 듯
난하수 맑은 곳에 술 한 잔을 가득 부어
산 위에 놀려 놓고 재배하며 이른 말이
산 중에 나는 고사리 해마다 푸르거든
슬프다 지금 사람 키울 줄을 모르누나.
사하역을 자고 니나 풍윤으로 가자스라.
계주성에 들이달아 와불사에 올라가니
삼층의 푸른 누각 금불상이 우뚝하다.
금산사의 장육신이 뉘라서 높다더니
이제묘를 보게 되면 아기중일뿐이로다.
상 위에 취한 부처 몇 겁이나 누워 있어
극락세계 꿈꾸는가 깰 줄을 모르는고.
삼하현 다 지나서 통주강 다다르니
돛대는 홀로 서고 읍리는 번성하다.
동악묘에 옷 갈아입고 치화문을 들어가니
황조의 옛 궁궐이 뚜렷이 있다마는
한인 관리 위엄을 어디 가 찾아보리.
오봉문 넘어 들어 태화전을 바라보니
궁궐의 이끼낀 벽 아침 해를 받고 있고
물 위의 붉은 누각 오색 구름 어리었다.
하늘을 두드릴 듯 옥수는 한쌍이 마주 서고
공중에 달린 듯한 은정교는
다섯 연못에 걸려 있다.
태액지 맑은 물이 만수산을 둘렀으니
곤명이 높다 한들 청결함이 이러하랴.
사람들의 공력이 끝없으니
민역民力이 견소냐 백성들이 어찌 견딜 소냐.
존망이 이어졌으니
망하고 흥하는 것이 남긴 덕이라.
사치가 심하고서 오래 간 이 뉘 있던가.
옥하관 깊은 곳에 벗 없이 혼자 누워
돌아 갈 길 헤아리니 사천 리 밖이로다.
타향의 나그네에게 봄빛이 돌아오니
떠도는 이 타향에서 마음이 새로워라.
창앞의 새벽달은 객지 잠을 깨우는데
피리 속의 버드나무 객의 꿈을 놀래로다.
다리에서 흐른 물이 동해로 갈작시면
고향 그린 눈물 뿌려 옛 고향에 부치고자.
언제면 청춘으로 벗을 삼아
좋이 돌아가리오.

# perspectives
시 분석 및 추가 정보
- 시인 프로필: 박권(朴權, 1658-1715)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시인으로,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했습니다1.
- 창작 배경: 이 작품은 1694년(숙종 20년) 박권이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 연경(현재의 베이징)에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지은 기행 가사입니다4.
- 시 관련 뉴스: 최근 연구에서는 조선 시대 사신들의 기행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박권의 '서정별곡'은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역사적 및 문화적 배경
- 시의 역사적 배경: 17세기 말 조선과 청나라의 외교 관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당시 조선은 청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형식으로 외교 관계를 유지했습니다6.
- 당시 한국인의 관점: 청나라를 오랑캐로 여기면서도, 문물의 발전을 인정하고 배우려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 현대 한국인의 관점: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를 인정하며, 당시의 외교 관계와 문화 교류의 양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합니다.
- 현대 미국인의 관점: 동아시아의 역사적 외교 관계와 문화 교류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문학 작품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영향력 분석
- 이 시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과거 외교 사절단의 경험을 통해 문화 간 소통과 이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합니다.
- 이 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통찰: 낯선 환경에서의 경험과 감정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인간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 이 시가 현실 세계를 반영하는 방식: 당시의 정치적, 문화적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역사적 현실을 문학적으로 재현합니다.
- 이 시의 영향력: 조선 후기 기행 문학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현대에는 역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7.
추가 정보
- 핵심 용어 설명:
- 서정별곡(西征別曲): '서쪽으로 가는 길에 부른 노래'라는 뜻으로, 중국으로 가는 여정을 담은 가사를 의미합니다.
- 연경(燕京): 현재의 베이징을 가리키는 옛 이름입니다.
- 시 제목의 의미: '西征別曲'은 '서쪽으로 가는 길에 부른 이별의 노래'라는 뜻으로, 작가가 사신으로 중국으로 떠나면서 느낀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시각적 자료 위치
주요 경유지 : 영은문, 홍제원, 의주, 압록강, 심양, 산해관 등
- 영은문 터: 현재는 독립문 근처에 표지석만 남아있습니다. 영은문 주초(기둥을 받치던 돌)가 독립문 앞에 보존되어 있습니다6.
- 홍제원 터: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위치해 있습니다. 현재는 표지석만 남아있으며, 연세스포츠센터 건너편 새마을금고 앞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8.
- 의주 옛 모습: 고지도나 그림은 검색 결과에 나와있지 않습니다.
- 압록강 풍경: 압록강 상류는 폭이 좁고 수심이 낮아 보입니다. 강 건너편으로 북한 혜산시의 마을 모습이 보이며, 1960-70년대 한국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주택들이 보입니다9.
- 심양(선양) 고궁: 청나라 초기에 지어진 황궁으로,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궁전 중 하나입니다. 90채의 건물과 20개의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로, 중로, 서로로 나뉩니다1011.
- 산해관 만리장성: 만리장성의 동쪽 끝점으로, 바다와 맞닿아 있습니다. '천하제일관'이라는 현판이 걸린 성문과 '노룡두'라 불리는 바다로 뻗은 성벽 부분이 유명합니다121314.
이 유적지들은 한국과 중국의 역사적 관계와 각국의 중요한 문화유산을 보여주는 장소들입니다.
외교 관계
17세기 말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는 "편의적 외교"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1. 청나라는 자신을 "천조상국(天朝上國)"으로 여기고 조선을 "속국"으로 간주했지만, 서구 열강의 도전으로 인해 근대적 외교 체제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1.
청나라는 조선과의 관계에서 다음과 같은 방식을 취했습니다:
- "속국 자주" 이론: 조선이 속국이지만 전통적으로 내정과 외교를 자주적으로 관리했다는 주장
- "속국 통보" 요구: 조선이 서구 국가들과 조약을 체결할 때 청나라에 통보하도록 요구
사신들의 복장
조선 사신들의 복장은 다음과 같이 묘사됩니다:
- 달리영(관복):
- 구름 무늬 비단으로 만들어짐
- 가슴과 등에 흉배(補子) 부착
- 소매는 넓고 옆트임의 겨드랑이 부분은 뒤로 자연스럽게 젖혀짐5
- 흉배:
- 운학(雲鶴) 흉배: 문관 당상관의 상징
- 백한(白鷳) 흉배: 문관 당하관의 상징5
- 공식 행사 시 복장:
- 오사모(烏紗帽): 검은 모자
- 품계를 나타내는 특별한 흉배
- 정식 관복4
사신들의 복장은 밝고 화려한 색상이었으며, 특히 사신은 정식 관복을 착용했습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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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3 - [문학 (Literature)] - List) 기행가사 목록: 시대의 반영과 감정의 표현
List) 기행가사 목록: 시대의 반영과 감정의 표현
기행가사 목록 일부 :백광홍, , 1556년정철, , 1580년조우인, , 1617년경조우인, , 1623년경송주석, , 1675년작자미상, , 1694년박권, , 1695년노명선, , 1698년경권섭, , 1704년위세직, , 1707년 이전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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