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Literature)/한국 시 (Korean Poetry)

Poem) 송주석, <북관곡(北關曲)>

sosohantry 2025. 3. 20. 20:35
반응형

송주석, <북관곡(北關曲)>

을묘츈乙卯春의 봉곡鳳谷 부군府君 긔쳐 우암尤庵 부군 뫼시고
덕원德源 소配所의 가실졔 지으신 가歌辭니
지평持平 오졍챵吳挺昌의 소疏희 진달進達노
어명御命이 나리이다
 
어와 설운지고 이 行次 무사 일고
쟝長沙 쳔일天一涯에 가태부賈太傅 行色인가
조주潮州 팔천니八天里예 한니부韓吏部 길히런가
 
북관北關 천니千里 밖에 어대라고 가시는고
평생을 도라보나 지은 죄 없건마는
늦게야 어찐 일로 이런 화禍 만나신고
부기연간사戊己年間事를 생각거든 목이 멘다
슬플사 효종대왕孝宗大王 큰 뜻을 품으시고
감반구학甘盤舊學에 동덕同德을 차자시니
 
그 적의 일개신一個臣이 초야草野로 니러오니
풍운계합風雲契合이 천지에 드문지라
촉선생蜀先生 제갈양諸葛亮이 그대도록 하도던가
중회重恢 대사업大事業을 적이면 일을러니
신민臣民이 무록無祿하야 덧없이 여히오니
고신孤臣의 피눈물이 침석枕席에 젖었세라
 
님 향한 단심丹心이 죽기를 생각거든
상제喪制 중重한 일을 구차히 하올손가
기복년朞年服 중자설衆子說이 녜대로 하였더니
해윤海尹 흉소凶䟽 후後에 사설이 횡유橫流하야
비주卑主 이종설二宗說과 국본國本이 미정 상소
전후에 이름 달나 세철世哲에게 극히 되니
 
흉凶 참소 위험危險한 말 몸의 쌀 니노매라
선왕先王이 성명聖明하사 간상奸相을 통촉洞燭하니
망타網打할 흉한 계교計巧 발 뵈디 못하더니
인선후仁宣后 복제服制 일이 마초아 날 제이고
참언讒言이 망극罔極하야 온갓 길로 나아가니
대성인大聖人 총명聰明인들 의혹疑惑이 업사실가
 
그려도 짐작斟酌하고 녜 일을 생각하사
종시終始히 죄罪 주기는 참아 하디 아니시니
이제 곳 계시던들 이런 일이 이실런가
금상今上도 처엄에는 은권恩眷이 중重하시니
여닯 번 사관史官 행차行次 우연偶然한 뜻이신가
좌우左右에 뫼신 사람 무삼 말쌈 살와관대
 
그 덧대 어이하야 이 뜻을 변變하신고
간신姦臣이 틈을 보아 내외內外로 향응響應하니
흉인凶人의 한 상소上䟽로 효시嚆矢를 삼아 두고
주야晝夜에 마련하야 일시一時에 니러나니
한 사람 잡난 말이 죄목罪目도 하도 할사
무리無理코 패악悖惡한 말 발명키 측거니와
 
폄손군부貶損君父는 일호一毫나 근사하며
강출降黜 국통國統은 적으나 불彷佛한가
이러한 못할 말로 함부로 하거든
그 밖의 다른 말을 일러 무삼 할일손고
아마도 주상主上 전하殿下 선입先入을 주主하시니
고신孤臣의 원억寃抑한 일 뉘라서 폭백暴白할고
 
두어 달 객여중客旅中에 세뉼歲律이 고쳐세라
결단決斷 언제 날고 대죄待罪도 지리하다
전후前後에 구救한 사람 아오로 죄 닙으니
조정朝廷에 현사賢士 대부大夫 며치나 나마시며
남북南北에 내친 선배 기 무삼 죄罪 이실고
정거停擧야 해벌解罰이야 어두정된 졔이고
 
심할사 시절時節 사람 낣뜰도 낣뜰시고
죽일 말 도모圖謀커든 삭출削黜에 끄칠손가
마참내 원찬遠竄 계사啓辭 소회所懷에 드러시니
금오랑金吾郞 선문先文이 급함도 급할시고
전지傳旨를 들란 후에 창황蒼黃이 길을 나니
싹낸 말 빈 사람 군속窘束도 할세이고
 
장양역長揚驛 빗긴 날에 골육骨肉을 니별離別하고
여읜 말 채쳐 모라 어드로 간단 말고
가난 이 마음음 어하도 업거니와
보내난 심사心事를 생각거든 가이 없다
하믈며 가향家鄕 친속親屬이야 니별離別인들 미쳐 할가
감창感愴한 정회情懷를 어이구러 견대난고
 
주거리住車里 너무 다라 죽산竹山에 조반朝飯하고
니천利川 따 광주廣州 따을 밤낫을 지낸 후에
신릉新陵을 바라보고 어름으로 강을 건너
장안長安 지척咫尺을 곁으로 지난말이
부운浮雲이 옹울雍鬱하야 천일天日을 가려시니
처량凄凉한 이 행색行色을 어이구러 빗최실고
 
신변身邊 녜 초구貂裘로 눈물을 가리우고
평구역平邱驛 지내다라 본접本接 골 드러 자고
포천抱川을 도라 드러 김화金化로 향한말니
봉만峯巒도 높을시고 도로道路도 머도 멀사
양문역楊文驛 풍전역風田驛 몇이나 지나거니
동주東州는 어애매요 보개산寶蓋山 뵈노매라
 
식목역植木驛 낫 말 먹여 김성金城을 곁에 두고
구례九禮 재 겨우 너머 창도역昌道驛 든단 말가
보리 비탈 험險한 길에 빙설氷雪이 닙혓이니
부뜨라며 업뜨라며 어이구러 디내거니
신안역新安驛 점심 후에 회양淮陽을 드러오니
갓득이 냉낙冷落한대 우설雨雪은 무삼 일고
 
쥬인主人이 권당眷黨이라 대접待接이 극진極盡하다
니튼날 조반朝飯 후에 철령鐵嶺을 올라가니
엄풍嚴風이 차도 찰사 북도北道도 여기로다
운산雲山이 첩첩疊疊하니 고향故鄕이 어대매오
도로혀 바라보니 눈물이 절로 난다
고산高山은 구역舊驛이라 역관驛館이 비여세라
 
□을 철향哲向에 잠간 드러 인마人馬를 재촉하야
동천東川 골 저문 후에 불 혀고 드러오니
안변수安邊守 다한 손이 두어히 모다세라
그날 밤 계요 새와 덕원德源을 들냐 하야
남산역南山驛 잠간 지나 방하旁下 뫼 주점住點하고
지능智陵을 빗거 보고 병풍암屛風岩 나려 쉬여
 
원산촌遠山村 다다르니 대양大洋이 거기로다
정편征鞭을 다시 보아 부내府內에 드러오니
여염閭閻이 소죠簫條커든 집인들 조흘손가
그 더디 몃 날인고 이월二月이 하매로다
영嶺 우흘 바라보니 적설積雪이 희여세라
시절時節을 헤아리고 고원故園을 생각하니
 
화양동華陽洞 심근 매화 몃 가지 버러시며
소제蘇堤 약한 버들 하마면 푸르리라
엇지타 이 따에는 봄빛이 업서시며
바람을 어이 조차 그대도록 요란한고
창窓 지게 주어 닷고 적막히 안자시니
집 념녀念慮 나라 근심 혐가림도 하고 만타
 
이 후에 무삼 죄를 또 아니 더을넌가
객창客窓에 겨오 든 잠 몇 번이나 놀래친고
하날을 원망할가 사람을 탓할손가
녜부터 현인賢人 군자君子 뉘 아니 굿겻실고
동한東漢 적 당고화黨錮禍와 송조宋朝에 위학금爲學禁을
전사前史에 지내 보고 분개憤慨히 너이던 일
 
내 집에 친히 볼 줄 내 엇디 아라실고
아마도 설운 뜻이 가지록 가이 업다
어나 제 조흔 바람 이운 풀 부러내야
초택楚澤을 니별離別하고 고국故國에 도라가셔
겨렛것 모다 안자 이 사설辭說 니르려니

 

 


송주석, <북관곡(北關曲)> 현대어 해석:

아, 서럽구나. 이 행차 무사할까?  
장사의 먼 길에 가태부(가의)의 행색인가?  
조주 8천 리에 한유의 길과 같은가?

북관 천 리 밖에 어디로 가시는 것인가?  
평생을 돌아보니 지은 죄 없건마는  
늦게야 어찌된 일로 이런 화를 만나셨는가?  
무기년간의 일을 생각하니 목이 메는구나.  
슬프도다, 효종대왕께서 큰 뜻을 품으시고  
감반구학(옛 학문)에 동덕(같은 뜻을 가진 이)을 찾으셨으니

그때 한 신하가 초야에서 나왔으니  
풍운의 만남이 천지에 드문 일이었네.  
촉나라 제갈량이 그렇게 했던가?  
중요한 대사업을 적이 일으켰으니  
신하와 백성이 무능하여 덧없이 여의었으니  
외로운 신하의 피눈물이 베개와 자리에 젖었구나.

임금을 향한 충심이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데  
상제의 중요한 일을 구차히 할 수 있겠는가?  
기년복에 대한 중자설이 예전대로 하였는데  
해윤의 흉소 이후에 사설이 횡행하여  
비주이종설과 국본이 미정이라는 상소가  
전후로 이름을 달리하여 세상의 현명한 이에게 극히 되었네.

흉악한 참소와 위험한 말이 몸에 쌓이는구나.  
선왕께서 성명하시어 간신을 꿰뚫어 보셨으니  
망타할 흉한 계교를 발견하지 못하더니  
인선왕후의 복제 일이 맞아떨어져 날 제쳐두고  
참언이 심하여 온갖 방법으로 나아가니  
대성인의 총명함에도 의혹이 없었겠는가?

그래도 짐작하고 예전 일을 생각하시어  
끝내 죄를 주기는 참아 하지 아니하셨으니  
지금 곧 계셨더라면 이런 일이 있었겠는가?  
현 임금께서도 처음에는 은혜가 두터우셨으니  
여덟 번의 사관 행차가 우연한 뜻이셨던가?  
좌우에 모신 사람들이 무슨 말씀을 올렸기에

그때 어찌하여 이 뜻을 바꾸셨는가?  
간신이 틈을 보아 내외로 호응하니  
흉인의 한 상소로 시작을 삼아 두고  
밤낮으로 준비하여 일시에 일어나니  
한 사람 잡는 말이 죄목도 하도 많구나.  
무리하고 패악한 말 밝히기 어렵거니와

임금을 폄하하는 말이 조금이라도 근사하며  
국통을 강등시키는 말이 조금이라도 비슷한가?  
이러한 못할 말로 함부로 하거든  
그 밖의 다른 말을 일러 무엇을 하겠는가?  
아마도 주상 전하께서 선입견을 갖고 계시니  
외로운 신하의 원통한 일을 누가 밝힐 수 있을까?

두어 달 객지 생활에 세월이 바뀌었구나.  
결단은 언제 날 것이며 대죄도 지루하구나.  
전후로 구한 사람들 도리어 죄에 빠지니  
조정의 현명한 대부들 얼마나 남아 있으며  
남북으로 내쳐진 선배들이 무슨 죄 있었던가?  
정거와 해벌이야 어두워진 뒤의 일이고

심하도다, 시절 사람 낯뜨겁도다 낯뜨겁구나.  
죽일 말을 도모하건대 삭출에 그칠 것인가?  
마침내 원찬 계사가 소회에 들어 있으니  
금오랑의 선문이 급함도 급하구나.  
전지를 들은 후에 창황히 길을 나니  
싹 난 말 빈 사람들 군속도 할 것이고

장양역 비 오는 날에 골육을 이별하고  
여읜 말 채 하지 못하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구나.  
가는 이 마음은 어찌할 수 없거니와  
보내는 심사를 생각하니 가이 없구나.  
하물며 고향의 친척들과의 이별을 어찌 미처 할 수 있겠는가?  
감창한 정회를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주거리를 너무 달려 죽산에서 아침을 먹고  
이천, 광주를 지나 밤낮을 지낸 후에  
신릉을 바라보고 얼음으로 강을 건너  
장안 지척을 곁으로 지나는데  
구름이 옹울하여 하늘을 가렸으니  
처량한 이 행색을 어찌 비추겠는가?

몸에 걸친 예전 초구로 눈물을 가리고  
평구역을 지나 본접 골짜기에서 자고  
포천을 돌아 김화로 향하는데  
봉우리와 산들도 높고 길도 멀구나.  
양문역, 풍전역 몇이나 지나가니  
동주는 어디메요, 보개산이 보이는구나.

식목역에서 낮에 말 먹여 김성을 곁에 두고  
구례 고개를 겨우 넘어 창도역에 든다네.  
보리 비탈 험한 길에 얼음과 눈이 덮였으니  
부딪치며 넘어지며 어찌 지내가는가?  
신안역에서 점심 후에 회양을 들어오니  
갑자기 냉낙한데 비와 눈은 무슨 일인가?

주인이 친척이라 대접이 극진하구나.  
다음날 아침 식사 후에 철령을 올라가니  
엄한 바람이 차도 차구나, 북도도 여기로구나.  
구름 낀 산이 첩첩하니 고향이 어디메요?  
도리어 바라보니 눈물이 절로 난다.  
고산은 옛 역이라 역관이 비었구나.

□을 철향에 잠깐 들러 사람과 말을 재촉하여  
동천 골짜기에 저문 후에 불 켜고 들어오니  
안변수의 다한 손님이 두어 명 모였구나.  
그날 밤 계요를 새워 덕원을 들어가려 하여  
남산역을 잠깐 지나 곁에 있는 산에 머물고  
지능을 비껴 보고 병풍암에 내려 쉬어

원산촌에 다다르니 큰 바다가 거기로구나.  
말채찍을 다시 보아 부내에 들어오니  
민가가 쓸쓸한데 집이 좋을 리 있겠는가?  
그 더딘 것이 몇 날인가? 2월이 다 되어 가는구나.  
고개 위를 바라보니 쌓인 눈이 희구나.  
시절을 헤아리고 고향을 생각하니

화양동 깊은 매화 몇 가지 피었으며  
소제의 연약한 버들 얼마 안 있어 푸르리라.  
어찌 이곳에는 봄빛이 없으며  
바람을 어찌 좇아 그렇게 요란한가?  
창을 지게 주어 닫고 적막히 앉아 있으니  
집 생각, 나라 근심 헤아림도 하고 많구나.

이후에 무슨 죄를 또 더하지 않을까?  
객창에 겨우 든 잠 몇 번이나 놀라 깼는가?  
하늘을 원망할까, 사람을 탓할까?  
예부터 현인 군자 누가 굽히지 않았던가?  
동한 때 당고화와 송조의 위학금을  
전사에서 지나 보고 분개히 여기던 일

내 집에서 친히 볼 줄 내 어찌 알았겠는가?  
아마도 서러운 뜻이 갈수록 더해가는구나.  
어느 때 좋은 바람이 이 구름 풀어내어  
초택을 이별하고 고국에 돌아가서  
친척들 모두 앉아 이 사설 이르려나.

 

 


북관곡

 

# perspectives

시 분석 및 추가 정보

시 분석 및 비평

<북관곡>은 조선 숙종 때 송주석(1650-1692)이 지은 기행가사로, 2음보 1구로 총 232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2·4조의 형식이 주를 이룹니다5. 이 작품은 유배가사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유배자가 아닌 배행자의 시점에서 쓰여졌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9.

작품의 주요 내용은 송주석의 할아버지인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1675년 함경남도 덕원으로 유배 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5. 송주석은 할아버지의 충성심, 정적들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68세 노인의 처지에서 느끼는 그리움과 슬픔을 주관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5.

시인 프로필

송주석(1650-1692)은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문인으로, 유명한 성리학자 송시열의 손자입니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 바로 <북관곡>입니다.

시 관련 뉴스 및 최신 정보

<북관곡>은 조선시대 기행가사 중 하나로 꾸준히 연구되고 있으며, 최근에도 이 작품에 대한 학술 논문들이 발표되고 있습니다78.

 

역사적 및 문화적 배경

시의 역사적 배경

<북관곡>은 1674년 효종비의 복상문제로 인해 발생한 정치적 갈등의 결과로 쓰여졌습니다5. 이는 조선 시대 예송논쟁의 일부로, 당시의 정치적 긴장과 갈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한국인의 관점에서 본 해석

당시 한국인들에게 이 작품은 정치적 갈등의 산물이자 유배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느끼는 인간의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특히 유교적 가치관이 강했던 당시, 임금에 대한 충성심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을 것입니다.

현대 한국인의 관점에서 본 해석

현대 한국인들에게 <북관곡>은 조선 시대의 정치적 갈등과 유배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여겨집니다. 또한 할아버지를 따라 유배길에 오른 손자의 충성심과 효심을 통해 당시의 가족 관계와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영향력 분석

  • 이 시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북관곡>은 정치적 갈등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족 간의 사랑과 충성심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 이 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통찰: 정의와 의리를 지키는 것의 어려움과 그로 인한 개인적 희생,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인간적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이 시의 영향력: <북관곡>은 유배가사의 한 유형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후대의 유배가사 창작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조선 시대 정치사와 문학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12.

 

기타 정보

핵심 용어 설명

  • 유배가사: 귀양살이를 소재로 한 가사 작품
  • 배행자: 유배 가는 사람을 따라가는 사람
  • 예송논쟁: 조선 시대 왕실의 예법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

시 제목의 의미

'북관곡'에서 '북관'은 함경도를 지칭하는 말로, 송시열이 유배된 함경남도 덕원을 의미합니다. '곡'은 노래를 뜻하여, 전체적으로 '북쪽 변방으로의 유배길을 노래한 작품'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 link:

2025.04.03 - [문학 (Literature)] - List) 기행가사 목록: 시대의 반영과 감정의 표현

 

List) 기행가사 목록: 시대의 반영과 감정의 표현

기행가사 목록 일부 :백광홍, , 1556년정철, , 1580년조우인, , 1617년경조우인, , 1623년경송주석, , 1675년작자미상, , 1694년박권, , 1695년노명선, , 1698년경권섭, , 1704년위세직, , 1707년 이전이진

sosohantry.tistory.com

 

 

 

# ref.:

http://www.davincimap.co.kr/davBase/Source/davSource.jsp?job=Body&SourID=SOUR002544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