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8 5

Poem) 윤동주, <길>

잃어 버렸읍니다.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길에 나아갑니다.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어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담은 쇠문을 굳게 닫어길 우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읍니다.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담 저쪽에 내가 남어 있는 까닭이고,내가 사는 것은, 다만,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perspectives윤동주의 시 "길"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암울한 현실과 시인의 내면 갈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 시를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해보겠습니다.## 역사적 배경이 시는 일제강점기 말기에 쓰여졌습니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식민 지배 하에 있었고, 한국인들의 정체성과 문화..

Short story) 문운당의 시작

1장: 철학이 사라진 시대겨울의 한가운데, 대학 강의실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이종화는 책상을 두드리는 손을 멈추고 강의실을 둘러보았다. 학생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앞에 놓인 그의 강의안에는 굵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철학은 질문하는 법을 가르친다.”“철학이 왜 필요한지 아는 사람?”그는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한참이 지나 학생 하나가 어색하게 고개를 들었다.“교수님, 철학이 밥 먹여주나요?”강의실 한쪽에서 웃음이 터졌다. 이종화는 차가운 공기에 잠긴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밥.그는 그 단어를 곱씹었다. 철학은 현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질문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 그게 지금이었다.그날 밤, 이종..

Short story) 새로운 시대의 문우당

1장: 질문이 사라진 시대1. 차가운 효율의 세상2050년의 도시는 조용하고 완벽했다.회색빛 건물들이 빼곡히 하늘을 가리고 있었고, 도로에는 자율주행 차량이 소리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헤드셋을 착용한 채 거리를 걸었고, 누구도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공기처럼 스며든 AI는 사람들의 하루를 효율적으로 설계해주었다.아침이면 가상 비서가 가장 건강한 메뉴를 추천했고, 오늘의 업무 스케줄과 최적의 이동 경로를 알려주었다.“당신의 하루를 최적화합니다. 행복 지수 97%를 유지하세요.”화면 속 AI가 상냥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어딘가 텅 빈 표정 같았다.2. 최나현, 감정을 모방하다최나현은 거대한 디지털 타워의 37층 연구실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는 가상 화면이 떠 있었고, 그 속에는..

Short story) 문우당, 시간의 페이지

1장: 흐르는 시간, 멈춘 페이지비가 그친 오후.창밖으로 흘러내리는 빗방울 자국들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도시의 골목길은 여전히 젖어 있었지만, 그 위를 걷는 사람들은 제각기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작은 서점이 있던 자리. 그곳에는 이제 공터만이 남아 있었다.이윤은 그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없어졌구나.”낡은 가죽 가방을 어깨에 멘 채, 그는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문우당.이윤에게 그 이름은 언제나 비 오는 날의 고요와 같았다. 철학과 시가 사람들에게 속삭이는 공간이었고, 그가 펜을 들 때마다 세상과 연결될 수 있었던 유일한 자리였다.“당신의 시는 시대와 맞지 않습니다.”출판사 편집장의 말이 다시금 귓가를 때렸다. 첫 시집 **『비가 그친 시간』**이 세상에 나왔지만, 평은 냉혹했다. 아름답지..

Short story) 비와 철학의 서점

비와 철학의 서점> 1장: 위기의 문우당비가 내리는 오후였다.낡은 철학 서점 **‘문우당’**의 창문을 타고 투명한 빗방울들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윤은 카운터에 앉아 엎드린 채 펜을 쥐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손때 묻은 노트가 펼쳐져 있었지만, 오늘따라 아무런 단어도 적히지 않았다. 시를 쓰겠다는 욕심조차 비에 씻겨 내려가 버린 기분이었다.“비가 오는 날은 손님이 더 없네. 참 신기하지.”이윤이 고개를 들자, 문우당의 주인인 이종화 교수가 허공에 말을 던지고 있었다. 이종화 교수는 고색창연한 나무 선반 앞에 서 있었다. 낡은 철학서와 문학책들이 가지런히 꽂힌 그 선반은 시간이 멈춘 공간처럼 보였다. 마치 ‘여기서만큼은 어떤 변화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고집스러운 선언처럼.이윤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