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Writing) 187

Short story) 금잔디의 봄날

제1장: 불안과 압박의 겨울 지우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창밖은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싸늘한 겨울바람이 교실 창문을 때릴 때마다 유리가 덜컹거렸다. 교실 안은 온통 교재와 연습장, 시뻘겋게 표시된 시험지로 채워져 있었다. 몇몇 친구들은 속삭이며 성적 이야기를 나눴고, 그 사이로 누군가의 긴 한숨이 깊게 흘러나왔다. 마치 수능의 압박이 한 덩어리의 구름처럼 교실을 짓누르고 있는 듯했다. 지우는 무심코 연필을 굴리며 책상에 엎드렸다. 머릿속은 시험 문제들로 가득했지만, 그 모든 것이 어지럽게 섞여서 답이 보이지 않았다. “아, 왜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냐…” 그녀는 작게 중얼거리며 연필을 입에 물었다. 바로 그때, 옆자리의 선우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우야, 너 아직도..

Short story) 강철 무지개와 얼음 성소의 전설

1장: 고원의 도전과 얼음 성소 북방의 끝없는 고원은 차가운 바람이 한순간도 쉬지 않고 몰아치는 황량한 곳이었다. 하늘은 뿌연 회색으로 내려앉아 있었고, 땅은 얼음과 바위가 뒤엉켜 끝없는 설원처럼 보였다. 이런 곳에서 사람은 목숨을 잃기 쉬웠지만, 한길수는 담담하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의 얼굴에는 얼음 조각이 달라붙어 얼룩져 있었고, 입술은 터져 말라 있었다. 하지만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봐, 이왕 얼어 죽을 거라면 제대로 된 눈싸움이라도 벌어져야 하는 거 아니야?” 그는 혼잣말을 하며 두터운 털옷 속에서 손을 빼냈다. 마치 누군가와 싸우기라도 할 것처럼 손에 눈을 모아 작은 공을 만들고는 멀리 던졌다. 그 작은 눈덩이는 바람에 휩쓸려 눈사태가 일어날 듯이 흩어져 사라졌다. 한..

Short story)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1. 일상 속의 무기력함 윤서는 아침부터 머리를 짓누르는 피로감을 떨치기 위해 커피잔을 꽉 쥐었다. 회사로 향하는 지하철은 늘 그렇듯 출근 인파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거나 창밖의 빠르게 지나가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윤서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기계처럼 이어지는 날들이었다. 알람 소리에 일어나고, 직장에 가서 일하고, 피로에 절어 퇴근해 침대에 쓰러진다. 삶은 정해진 대본을 따라 움직이는 무대 같았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창밖의 흐릿한 도시 풍경이 그의 시야를 스쳤다. 윤서는 곧 시선을 돌렸다. 그 생각은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쏟아지는 업무와 상사의 재촉은 그런 사색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밤이었다. 야근을..

Short story) 별의 저편에서 부르는 그리움

1장: 우주 정거장에서의 반복되는 일상 광활한 어둠 속에서 심우주 정거장은 하나의 섬처럼 떠 있었다. 외부는 어둠과 별빛만이 깃든 고요의 공간이었고, 내부는 기계음과 전자 장치의 깜박임으로 가득 찬 첨단의 세계였다. 여기에서 아델은 하루도 빠짐없이 일상의 반복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의 얼굴은 언제나 냉정했고, 회색 눈동자에는 잔잔한 불꽃조차 비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임무란 곧 생명줄이자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는 벽이었다. 아델은 서서히 회전하는 지구의 홀로그램을 보며 문서를 검토했다. 파란색의 구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그에게는 그저 냉랭한 풍경에 불과했다. 정거장의 복도는 황금빛 조명이 비치고 있었고, 동료들 몇몇이 지나가며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누구도 아델과 길게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

Short story) 바람의 노래와 산유화의 전설

1장: 바람의 첫 속삭임이안은 눈을 감고 가만히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무의 잎사귀들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부드러운 마찰음, 멀리서 흘러가는 개울의 속삭임, 그리고 바람의 말. 그는 그 소리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왜 자신에게만 들리는지 알 수 없었다. 다른 마을 사람들은 그를 이상한 아이로 보았다. 외따로 떨어진 산마을에서 자라며 느꼈던 고독은 그를 내적으로 더 단단하게 만들었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바람이 전하는 미묘한 불안을 품고 있었다.그날은 여느 때와 다르게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푸른 하늘은 갑자기 짙은 회색 구름으로 덮이고, 나무들이 몸부림치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바람이 귓가를 휘감아 말했다. “산유화.” 단어는 낯설었지만, 동시에 매우 익숙한 듯 이안의 마음을 관통했다. 그..

Short story) 그리움의 길에서 만난 카드의 신

1장: 그리움 속 방황안개가 자욱한 숲속에서 주인공은 길을 잃은 채 헤매고 있었다. 이 숲은 다들 잊으려 했던 기억과 후회를 마치 잡동사니처럼 쌓아둔 곳 같았다. “여기 오지 말았어야 했어... 그냥 집에서 라면이나 끓일 걸.” 그는 중얼거리며 바닥에 쌓인 낙엽을 밟았다. 낙엽들이 어이없다는 듯 ‘바삭’하고 울었다.머리 위로 까마귀 한 마리가 지나가며 쏘아보듯 울었다. “아니, 너도 나 비웃는 거야?” 주인공은 까마귀를 향해 소리쳤지만, 새는 답할 리 없었다. 숲은 여전히 어둡고 길은 여전히 헷갈렸다.강가에 다다르자 석양이 강물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붉은 물결은 그의 눈에 비쳐 마치 ‘어, 또 왔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인공은 그 자리에서 고개를 떨구었다. “정말이지, 언제쯤 이 멜로드라마가 끝..

Short story) 초혼의 메아리

#1장: 검색창의 메아리 (서울 네이버 본사) 2030년의 서울은 현실과 디지털이 경계를 넘나드는 도시로 변모해 있었다. 고층 빌딩들 사이에서 푸른 홀로그램 광고들이 떠오르고, 자율주행 자동차는 바쁜 도시 속에서 조용히 사람들을 실어나르며 흐르고 있었다. 이곳, 네이버 본사 사옥은 미래의 심장부였다. 최첨단 양자 AI 연구의 중심지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곳이기도 했다. 윤하는 본사 30층 연구실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거대한 창문 밖으로는 번쩍이는 도시의 불빛이 펼쳐졌지만, 그녀의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돼 있었다. 오늘은 현우의 실종 5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그녀의 심장은 오래된 상처가 다시 덧나는 듯 아팠다. 윤하는 손가락을 움직여, 검색창에 '현우'라는 이름을 타이핑했다. 키보드의 소리는..

Short story) 입동의 빈대떡과 남대문 시인들

**1. 잃어버린 일상** 코로나는 예상치 못하게 우리의 삶을 휘어잡았다. 그 시절, 서울의 거리는 생기를 잃고 정적에 잠겼다. 강민호는 여느 날처럼 출근하려 했지만,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집 안에 갇혀 있었다. 아침마다 붐비던 지하철이 한산해지고, 회사는 텅 빈 공간이 되어갔다. 화면 속 동료들의 얼굴은 무감각하게 보였고, 점심시간의 수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일상이 단절되고 고립된 그 느낌은, 마치 서울이라는 큰 도시가 멈춰버린 듯했다. 그 시절, 정미숙은 남대문시장의 포장마차를 여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다. 텅 빈 시장, 손님 없는 포장마차. 매일 아침 고소한 빈대떡을 부쳐도 그것을 먹을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미숙은 포기하지 않았다. 가족, 특히 대학에 갈 아들을 생각..

Short story) 벽 너머의 저항

### 1. 억압의 시작 **1920년대 미국 - 리안의 이야기** 리안은 미국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흑인 청년입니다. 차별은 그의 일상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는 공장 안에서도 백인 감독관과 동료들로부터 경멸의 시선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견뎌야 했습니다. “넌 흑인이잖아. 그러니 네 자리를 알도록 해.” 감독관의 냉담한 말은 그의 가슴을 날카롭게 찔렀습니다. 매일 아침 그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왜 이 차별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그 물음은 점차 그에게 분노로 쌓여가고, 자신의 삶에 대한 무력함과 불안이 겹쳐집니다. 리안은 주변에서 비슷한 고통을 겪는 흑인들을 보며, 그들과 자신이 처한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많은 ..

Short story) 도시의 아침, 해를 찾아서

#### 1. 도시 속 회색빛 아침 또다시 알람 소리가 울린다. 습관처럼 손을 뻗어 알람을 끄려다가 허공을 휘저었다. 스마트폰이 자리를 옮겼나? 아, 어제 배달 음식을 주문하다가 침대 맨 끝으로 밀려났던 게 기억났다. 결국 온몸을 비틀어 간신히 알람을 껐다. 이런 아침 체조로 하루를 시작하는 건 이제 일상이다. 삼십이 층. 내가 사는 곳은 도시의 숫자 중 하나일 뿐이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32'를 누르면서 문득 생각한다. 이 숫자가 내 나이와 같아질 때까지 여기 살 것인가. 그렇다면 앞으로 3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출근 준비를 하며 거울을 본다. 언제부터인가 내 얼굴에서도 도시의 색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회색빛이다. 옷장을 열어보니 모든 옷이 무채색이다. 검정, 회색, 흰색… 마치 도시가..